엘샤다이 칼럼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Author
gospel323
Date
2018-07-1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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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복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 함축시켜 요약해줍니다(고전15:3-4) 우리의 구원은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때 얻게 됩니다.

십자가는 왜 그리 중요할까요?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셨는데 왜 우리가 구원받습니까?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피를 보고 왜 우리 죄를 용서하시나요?

부활은 무엇입니까? 왜 십자가는 부활과 함께 증거되나요? 십자가 없이 부활만 믿으면 안되나요?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주인되어 살아온 죄인입니다. 지나온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온 피조물의 반역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내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자기주인(=죄)으로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이런 죄인이 어떻게 죄용서 받고 의로움을 얻어 다시 하나님 백성 되는 구원을 받을까요?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첫째, 십자가를 믿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자기주인됨(=죄)을 못 박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스스로 구원 얻을 수 없는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바로 죄의 본질과 죄인인 우리가 처한 처절한 현실입니다. 그것은 내 힘으로는 내 본성의 죄의 뿌리(=원죄, sin)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자기주인됨의 죄의 본성은 내가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종이로 잠시 덮어둔 것과 같습니다. 내 속의 자기주인됨(죄)의 공장이 폐쇄되지 않는 한 죄의 행동들은 계속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또한, 내 힘으로는 이미 자기주인되어 살아온 죄의 행위(=자범죄, sins)들의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미 죄의 행위를 저지르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지금 아무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저질러진 죄의 행위들은 없엘 수 없습니다. 그 죄들의 형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 죄 값을 치러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절망의 상황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스스로 구원 얻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놀랍고 완전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저지른 죄의 값을 치룰 뿐만 아니라 앞으로 죄를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입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나도 똑같이 매달려 하나님 공의의 사망 형벌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처절한 죽음에 연합되어 나도 똑같이 나의 죄 값인 사망 형벌을 치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주인됨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것입니다.이때 하나님은 우리의 지나간 죄들에 대한 죄의 책임 형벌을 면제시키십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나의 죄 값이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가 죄용서 받는 이유입니다.

그냥 십자가 역사적 사실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죄용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주인됨을 못 박지 않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만 그의 죄 값이 치루어 졌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나도 못 박힘과 동의어 임음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누누이 가르치는 믿음인데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십자가를 믿는 것은 2천년 전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했던 예수를 믿으라는 말의 뜻은 바로 이 것입니다. 자기주인됨의 아담적 자아(=죄)를 못박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둘째, 십자가 죄용서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란 무엇인가요?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죄와 사망이 현존하는 이 세상에서 구원 얻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아직 부활의 몸을 입지 못했기에 여전히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아직도 우리 속에 자기주인됨의 죄의 공장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죄용서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미 저질러진 죄의 형벌을 면제해주었지만 앞으로 저질러질 죄의 행동들은 어떻게 되나요? 자기중심성 죄의 공장은 반드시 자기주인됨의 죄의 행동들을 쏟아낼 것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만약 십자가 죄용서에만 머문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뭔가 불완전한 구원이 될 것입니다.

마치 구멍 뚫려 물이 차오르는 배를 고치려 선박수리공장에 들여다 놨더니, 배의 물을 다 빼주고 그냥 예쁘게 페인트를 칠해 다시 바다로 내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배는 반드시 다시 물이 들어와 가라앉는 상황을 곧 다시 처하게 될 것입니다. 구멍 뚫린 곳을 막아주지 않고 물을 빼주는 것은 엄밀히 말해 구원해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가 침몰되는 것을 잠시 지연시켜준 것일 뿐입니다.

십자가 죄용서는 이런 임시방편 눈가림이 아닙니다. 마지막 심판대에서 무죄선언 받았으니 앞으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이단들의 거짓자유도 아닙니다. 죄용서는 과거의 지은 죄용서이니 죽지 직전에 믿고 모든 죄용서 받으면 된다는 넌센스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렇게 부족하고 불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셋째, 부활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나의 주인(=주님)으로 사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기죽음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십자가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부활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직접 인격으로 살아계신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십자가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포함합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만 전하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 복음”이 아닙니다.

바울의 유명한 갈2:20절 고백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에 머무르지 않고“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로 끝이 납니다. 즉 십자가에 못박힘은 거기 머무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주인으로 사심으로 완성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칭의”의 의미요, “성령으로 함께하심이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이 부활의 주님으로 고백될 때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때 비로소 하나님 백성 됨의 생명을 체험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십자가를 믿어 죄용서받고 부활을 믿어 의롭다하심 얻었다 합니다(롬4:25) 실제로, 구원이 죄용서에만 머무르면 우리는 절대로 내 속의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힘들고 반드시 한계에 도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아직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용서는 반드시 의롭다하심(=칭의)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얻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십자가 죄용서에만 머무르게 되면 “반쪽복음”이 되어 복음은 무능력해질 것입니다. 한편, 십자가 죄용서 없이 부활의 승리만 강조하면 구원이 없는 “다른복음” 될 것입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부활로 나아가야하지만, 부활은 반드시 십자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십자가 죄용서에 머무르지 말라는 의미에서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십자가 없이 부활만 강조하며 십자가를 건너뛰면 "다른 복음"이 됩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지 않고는 절대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의 복음”이라 부르지 않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줄여서 “십자가의 도”(고전1:18) 곧 “십자가 복음”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경중을 달아봄이 아니라 십자가가 없다면 우리에게 죄용서가 없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부활이 없기 때문입니다(롬4:25).

넷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구원(생명, 하나님의 의)를 실제로 체험해 봅시다

하나님 나라 백성되는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얻게 됩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나도 못박혀 자기죽음을 고백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할 때 얻습니다. 이때 영생이 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부활 생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살아감을 체험하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것을 알고 이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는 이것을 체험하기 위해 구원의 내용(=하나님 나라)과 방법(=십자가 복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내용과 구원의 방법을 배워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내가 실제로 십자가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 구원에 들어가고 체험해야 합니다. 영생, 생명, 구원은 내가 실제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힐 때만 체험됩니다. 십자가에 자기죽음을 고백하기 전까지 오늘 내 삶에서 구원은 절대로 체험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구원받은 성도라도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부활이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삶에서 체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신앙생활은 힘이 들고 피곤한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진 종교생활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십자가에 자기 주인됨을 못박고 그리스도의 주인되심을 고백해 봅시다. 자기 주인됨의 본성을 가진 우리에게 잘 해보지 않았던 이 고백 참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구원의 현재를 사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것을 배우고 훈련하고 싸워나가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이 고백을 자꾸 잊어버리고 놓치지만 점차 예수의 주되심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 하나님 나라 구원, 영생의 축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