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샤다이 칼럼

십자가는 죄와 사단을 이기게 합니다.

Author
gospel323
Date
2018-07-11 09:49
Views
986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쓰는 “당근이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이 영화 보러 갈래?” “당근이지” 이 대화에서 "당근이지"를 “That's a carot.”(당근)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구세대이고, “of course”(당연하지)로 이해하는 사람은 신세대입니다.

영어에는 여성을 높여 부르는 "마담“(madam)이 있습니다. 이 단어을 미국에서 사용하면 존칭이 되지만 한국에서는 비존칭이 됩니다. 미국 여성들은 마담 소리를 좋아하지만, 한국에서는 뺨 맞습니다.

이처럼 언어(말, 글)는 같은 단어라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습니다.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단어를 사용하던 시대의 용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용어중 하나가 바로 “죄”(sin)입니다. 죄는 인류가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된 원인이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할 만큼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의 죄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십자가 복음의 핵심인 속죄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일반인들은 “죄”를 정해놓은 규범 어김으로 생각합니다. 즉 법이나 규칙을 어겨 그 법에 의거하여 형벌을 받아야 하는 행위로 이해합니다. 속으로 어떤 의도로 했든 규정(법)만 어기지 않으면 어떠한 행동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성경의 핵심 가르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죄지은 것 없이 착하게 살았는데 죄인이라니...”

종교인들은 “죄”를 인간 내면 속에 떠오르는 악한 생각까지 포함시킵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선한 행동으로 보여도 그 의도가 악하면 죄라는 것입니다. 범죄행위를 한 것보다 그 마음 속에 일어나는 악한 생각들까지 죄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개념보다 죄를 좀 더 넓게 이해한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십자가만이 죄사함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가르침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내 노력없이 오직 믿음으로 죄가 없어지다니...”

이처럼 “죄”를 오늘의 의미로 생각하면 성경은 이해하기 어려운 난수표가 됩니다. 이때 기독교 진리는 이성과 반대되는 맹목적 신앙의 대상으로 오해하게 만듭니다. 이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생각없이 무조건 믿는 사람이란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지적자살(Intellectural sucide)해야 한다고 조소합니다.

그러면, 2천년전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가르치던 성경의 “죄”(sin)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해결하신 인류의 죄는 무엇입니까? 일반인들의 “범죄행위”만을 죄라하고, 종교인들은 “내면적 악한생각”까지 좀더 넓히지만 성경은 그러한 죄(자범죄) 뿐만 아니라 그 죄가 발행할 수밖에 없는 “원죄”를 중요시합니다. 이것이 일반종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인 십자가 복음의 유일성입니다.

계속해서 설명해보면, 일반인들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행위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는 물리현상이 아닌 인격적 존재 인간에 관한 문제이기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종교인들은 범죄행위의 원인을 인간 내면의 탐욕(본성)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죄의 원인은 모르고 죄의 결과만 막으려는 일반인들보다 훨씬 진리에 접근했지만 인간에게 악한 죄의 욕구가 왜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인간에게는 제어할 수없는 악한 욕구가 있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 범죄 행위와 그 죄의 원인에 대한 이해가 이렇기에 일반인들은 사람들의 죄를 억제하기 위해 도덕교육을 시키거나 형벌을 엄하게 줄 뿐이고, 종교인들은 엄청난 노력과 초인적 의지, 뛰어난 지성을 죄의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방법들입니다. 이것 외에 죄를 억제하고, 죄를 이길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은 죄를 하나님을 거부하는 아담의 본성으로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죄 이지만 세상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다면 범죄행위를 일으키는 인간 내면에 있는 죄의 욕구가 생기는 근본원인과 해결방법입니다. 이것이 일반인 용어로 풀어쓴 기독교 진리, 곧 십자가 복음이 말하는 성경의 핵심입니다.

기독교 복음이 인류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지금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고통의 원인인 인간의 범죄행위들은 인간 내면의 부패한 본성에서 나온 것인데 그것은 바로 인류가 자신의 피조물됨을 부인하고 하나님 되려는 아담의 범죄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바로 피조물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함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용어로 죄 좀 더 세밀히 분류해서 원죄라 부릅니다.

이를 좀 더 설명해보면, 피조물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하는 것을 인간의 자기중심적 본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때 자기가 하나님 되려하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본능은 하나님께는 비신앙적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비윤리적이 됩니다. 자신의 피조물 됨을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자신과 똑같은 귀중한 존재로 인정하지만 자기가 하나님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피조물로 봅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공격적이 되고 자신에게는 이기적이 됩니다. 여기서 인간 사회의 온갖 갈등과 자범죄들이 발생하고 고통이 생겨납니다.그 고통을 성경 용어로 표현한 것이 사망의 증상들입니다.(롬6:23)

이러한 원죄의 가르침은 오직 기독교 복음에만 있습니다. 유교와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구약을 인정하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에도 없습니다. 부패한 인간 욕구는 피조물이 하나님처럼 되려하는 아담의 본성에서 왔다는 진리는 오직 기독교 복음에만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사회의 모든 갈등과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는 눈물과 아픔이 없는 평화의 세상이 될 수 있습니까? 인간은 어떻게 사망에서 벗어나 다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어떻게 다시 본래인간, 하나님 백성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인류가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피조물의 위치로 돌아올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본성(죄)를 이길 때만 가능합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아담의 죄를 용서 받고 우리 내면에 있는 죄를 이길 때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에 오염되어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담의 특징이기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내 속에 내재되어있는 내가 제어할 수없는 나의 본성...

로마서는 죄의 세력이라 표현하며 마치 죄를 인격적 존재처럼 표현합니다. 그러나 죄는 별도의 지정의를 가진 독립적 자유인격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 안에 나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제어할 수없는 또 하나의 나 자신입니다. 이는 내 안에 나의 통제를 받지 않는 또 다른 인격이 아니라 내 본성을 말함임이다.

내 안에 두개의 인격이 존재한다면 이는 귀신들림입니다. 죄는 인격이 아닌 내 선한 생각과 의지를 따르지 않는 내 본성, 곧 나 자신입니다. 모든 인간은 귀신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죄에 오염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신들린 자와 죄인의 차이는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여부를 구분짓기 위해 중요합니다. 귀신들림은 지정의를 귀신에게 빼앗겼기에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이 없지만 죄의 오염은 인간이 지정의를 가진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두가지 관점은 신자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인간문제의 원인을 죄의 오염으로 보면 회개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한 성화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사단에게 직접 잡힘으로 보면 자기책임없이 사단만 결박합니다. 여기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단꺽기 위함임을 강조하는 귀신론 계열 사단신학과 십자가는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함임을 강조하는 십자가 복음의 갈림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만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우리 죄를 사하시고(칭의) 우리 죄의 본성을 이기게 하십니다(성화). 이때 사단의 세력은 내게 대하여 무너지게 됩니다.

도덕교육으로 제어하지 못하고, 형벌로도 억제할 수 없던 죄의 세력(욕구)는 우리의 노력과 의지를 가지고 없애며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할 때만 성령의 도우심으로(영접), 로마서 용어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칭의와 성화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 칭의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처럼, 성화도 성령의 도우심이기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과 초대교회가 증거한 십자가 복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로 죄의 세력을 이기면, 사단은 내게 대하여 힘을 쓰지 못하고 떠나갑니다. 죄를 가지고 나를 유혹하고 참소하던 사단이 무력화되고 결박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사단의 세력을 꺽는 능력입니다. 이는 죄를 이기기에 사단이 무너지고 꺽였다는 표현이지 죄를 이김없이 나무 십자가를 가지고 드라큘라를 쫓아내는 것처럼 사단을 물리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