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샤다이 칼럼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

Author
gospel323
Date
2018-07-1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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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4
초대교회와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내용을 당시 언어로 “유앙겔리온”(복음)이라 불렀습니다. 유앙겔리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일컫는 초대교회의 고유한 용어입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좋은 복된 소식이기에 우리말로 복음으로 번역했지만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입니다.(고전15:3-4)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전하고 다닌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제자들의 설교와 바울의 서신서 등을 읽어보면 초대교회는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적 사건만 전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신약의 사도행전과 서신서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아무 설명 없이 그 그림을 계속 보여주기만 하면 되니 말입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비디오나 사진으로 십자가 장면을 찍어 보여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십자가 부활사건에 나타난 의미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회심후 마게도니아와 소아시아 로마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죄를 위한 속죄제사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사함으로 인한 사망권세를 깨뜨리신 증거였습니다. 이제 죄로 하나님과 단절(사망)되었던 인간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다시 본래 인간에게 주셨던 축복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기업으로 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약성경, 특히 바울 서신서에 기록된 십자가의 의미, 복음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배운 것입니다. 즉 역사적 십자가 사건에서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 모든 죄가 사함받았다는 내용을 배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 속죄함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첫째, 부활은 십자가 죄용서에서 오는 당연한 원리적 결론입니다. 사망은 죄로 인하여 인류에게 내려진 형벌입니다.(롬6:23) 지금 인류가 당하는 고통스러운 삶과 육체의 썩음은 모두 사망의 그림자입니다. 인류는 깍아지른 절벽 끝으로 한걸음 한걸음 떠밀려가고 있습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앞에 있는 사람들이 절벽에서 떨어짐을 보고 사망의 실체를 봅니다. 점차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기 차례가 다가옴을 피부로 느끼며 절규합니다. 어느 누구도 이 사망의 마지막 코스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죄 때문에 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 형벌이 끝났음을 보여주는 확증입니다. 사망은 바로 죄로 인해 왔습니다.(롬6:23) 예수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죄 때문에 사망이 왔다면, 죄를 용서받으면 사망권세도 이겨야 합니다. 죄로 인한 사망 권세가 더 이상 인류를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죄를 사하고, 그 결과 우리로 사망의 형벌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복음에는 십자가에서 죄사함 받음과 그 결과 사망이 무력화됨을 보여주는 부활이 처음부터 모두 원리적으로 들어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절대로 분리될 수없는 관계입니다.

둘째, 부활은 십자가로 온 백성의 죄가 실제 용서받았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부활은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하나님의 신적 사역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인류역사에 개입하셔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적으로 나타내심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많은 사람의 대속제물로 말씀하시고(막10:45) 그 증거로 부활하실 것을 누누이 증거 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세인들이 무덤을 봉인하고 병사들로 예수의 무덤을 지키게 한 것은 사흘 만에 부활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실제적 육체부활입니다. 정신의 부활, 영혼의 부활도 아닙니다. 잠시 의식을 잃고 죽었다가 다시 의식이 돌아온 회생이 아닙니다. 실제 죽은 몸이 죽지 않는 부활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회생은 죽을 몸이 죽을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지만 부활은 죽을 몸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처럼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남을 말합니다.

참고로, 여기서 죽을 몸과 죽지 않는 몸의 구분은 죄의 오염된 여부로 나눠집니다. 지금 우리의 육체는 아담의 본성을 가진 죄에 오염된 죽을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죄에 오염에서 벗어난 첫 아담의 모습을 회복한 몸입니다. 이는 죄가 더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이러한 예수의 모든 가르침이 옳았다는 것을 확증합니다. 그 가르침은 예수가 하나님으로서 인류의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사흘만에 다시 부활한다는 것으로 집약됩니다. 부활은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하나님께서 직접 보증사인(endorsement) 한 것입니다.

셋째, 부활은 십자가 복음을 받은 모든 성도들의 실존적 소망과 능력이 됩니다. 예수 부활은 나의 부활을 보여주는 첫 열매였습니다.(고전15:20)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더 이상 사망의 형벌이 없는 날이 올 것이고 또 이미 부분적으로 와있습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고 또 이미 부분적으로 와있습니다. 더 이상 사단이 우리를 참소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고 또 이미 부분적으로 와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이루어질 완전한 구원을 지금 이 땅에서 먼저 체험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감격이 있습니다. 내 죄를 친히 담당하시기 위해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한한 감사가 나옵니다. 예수 십자가가 바로 나를 위함임을 알 때 자발적으로 나오는 눈물과 감사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자신을 괴롭혀온 지난 날 죄의식에서 벗어남은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함입니다. 지금도 자신을 공격하는 죄의 욕구를 이김은 부활의 능력을 체험함입니다. 자기가 하나님되어 자기 주장하는 아담의 본성적인 죄에서 벗어나 자신의 피조물됨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섬기는 것이 능력중의 능력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입니다.

이제 사단은 더 이상 우리를 유혹하고 참소하며 지배하지 못합니다. 십자가에서 죄사함 받음으로 사망과 사단의 권세가 모두 꺽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오 거룩하신 주님, 그 상하신 몸, 멸시와 욕 가시관 쓰셨네. 주님이 당하신 고난, 이 죄인을 위한 것이니, 범죄한 날 위해 주 욕을 보셨네. 나 무엇으로서 주 은혜 보답하리까. 무한하신 주의 사랑 고맙고 크도다. 내 평생 사는 동안 주 위해 살리라. 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김두완 곡 부활절 칸탄타 "승리의 그리스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