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복음

제8장 사단, 유혹자 참소자

Author
gospel323
Date
2017-10-1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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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8
제8장 사단, 유혹자 참소자

1. 피조세계의 영적존재들

1.1 인간 - 거룩한 육체를 소유했던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세계의 으뜸은 인간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롬3:23)이었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통치자였다. 그에게는 지혜가 넘쳐났고 거룩함이 있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인간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육체는 인간의 특징이 된다. 범죄 이전의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을 대면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거룩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창2:7) 인간이 피조세계를 직접 다스리게 된 것은 인간이 육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영혼과 함께 육체는 인간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범죄는 인간을 거룩한 영적존재에서 타락한 육체만 의지하는 존재로 바꾸어 놓았다. 이때부터 인간에게 육체는 거룩한 것이 아니라 죄에 오염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물질적인 것이란 의미로 바뀐다. 바울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주장 하는 부패한 본성을 가진 인간을 언급할 때 육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헬라 이원론에서는 육체를 영혼의 무덤으로 표현한다. 일반 종교에서도 육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종교는 별로 없다. 악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본다. 이는 현재 인간에게 있어서 육체는 분명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제약이 많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종교나 헬라 이원론과는 달리 기독교는 비록 인간의 육체가 지금은 죄로 오염되어 있지만 악하거나 무가치 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인간의 육체는 거룩한 것이요 귀중한 것이며 미래 완전히 회복될 것이고 지금부터 조금씩 점차 회복해나간다. 이것을 신학용어로 성화라고 한다.

바울에 의해 세워진 고린도 교회는 큰 문제에 빠지게 되었다. 헬라 이원론 영향으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혼은 중요하고 육체는 버려질 것이기에 무가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영혼이 이미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기에 육체로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자기 아비의 아내를 취하고(고전5:1) 창기 집에 마음대로 드나드는 음행을 저질렀다.(고전6:15) 바울은 여기에 대해서 대답한다. 우리의 육체는 버려질 것이 아니라 부활의 때에 다시 회복될 것이다. 그러기에 너희 몸은 너희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주고 사셨으니 거룩하게 하라.(고전6:14-20)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새 인류는 거룩해진 모습으로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다시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이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영광을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여 모든 피조세계를 다시 창조주 하나님께 돌려 드릴 것이다.

1.2 천사 - 지정의 인격을 소유한 영물

하나님의 피조물에는 지정의를 가진 영물이 하나있다. 영물이란 영적 피조물이란 의미이다. 영이라 하지 않고 영물이라 함은 시공을 초월하는 하나님같이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사는 피조물이다. 그들은 분명 인간과 같이 지정의를 가진 자유인격이다. 사단이 자기 의지에 따라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보면 천사도 로봇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천사가 인간과 다른 것은 육체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피조세계를 직접 통치하는 존재가 아니다. 피조세계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 직접 통치한다. 성경은 몇 종류의 천사에 대해서 기록한다.

이름이 알려진 두 천사가 있다. 미가엘은 천사들의 군장으로 하늘의 천사군대를 이끌고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대적한다.(계12:7) 가브리엘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에게 수태고지를 한다.(눅1:26)그룹과 스랍이 있다. 이는 천사들의 개별 이름이 아닌 어떤 역할을 맡은 천사의 종류이다. 그룹과 스랍은 명백히 구분된다. 그룹은 낙원의 입구를 지키며 하나님의 보좌를 보좌하는 존재이다.(시18:9,10;80:1;99:1). 스랍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종들을 정결케 한다.(사6:7) 하나님은 그룹들 위에 좌정하시고(삼상4:4, 시80:1, 시99:1등) 스랍들은 하나님 뒤에 서 있다.(사6:1-2) 그룹은 두 날개(왕상6:27), 스랍은 여섯 날개(사6:2)로 묘사되어 있다.

바울이 기록한 정사, 권세, 세상 주관자, 하늘의 영 등으로 묘사된 천사들도 있으나(엡6:12) 더 이상의 탐구는 사변적으로 흐르기 쉽다. 성경이 기록한 이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천사는 숭배대상이 아니고 믿는 자들을 위한 돕는 영으로 지음 받았음이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1:14)

1.3 사단과 귀신들 - 하나님께 범죄한 천사

성경은 선한 천사들과 함께 범죄한 천사에 대해서도 계시한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1:6)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12:9)

이 세 구절에서 사단과 귀신들에 대해 중요한 몇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께 범죄한 천사들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니다. 착한사람 죽어 천사되지 않듯, 악한사람 죽어 귀신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이고 천사는 천사이다. 귀신은 천사 중에서 하나님께 범죄한 천사들이다. 둘째, 그들의 범죄내용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근무지 이탈 정도의 의미보다는 피조물 천사로서 위치를 거부함이다. 사단타락의 내용은 앞에서 이미 언급했다. 하나님의 지위를 탐내는 교만함이다(사14:12-15, 겔28:14-17) 셋째, 그가 하와를 속인 옛 뱀이었고 마귀요 사단이다. 마귀와 사단은 동일 존재이다. 사단은 단수이다. 범죄한 천사의 우두머리이다. 넷째, 그의 사자들과 함께 내어쫓겼다. 범죄한 천사들이 바로 귀신들이다. 귀신들은 복수이다.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전서 2장 4절과 유다서 1장 6절에 기록된 귀신들은 묶여있는 귀신들이며 타락한 천사들은 지금 밖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는 귀신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묶여 있는 귀신들과 활동하고 있는 귀신들은 다른 종류의 귀신들이 아니라 같은 귀신들을 다른 관점에서 묘사한 것이다.

사단과 귀신에 대해서 중요한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사단이 첫 범죄자였다. 사단이 먼저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을 품었고, 인간에게 나타나 자기처럼 하나님을 거부하도록 유혹하였다. 인류의 죄는 사단의 유혹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혹을 받고 범죄한 자는 인간이다. 판단도 인간이 했고 행동도 인간이 하였다. 그러므로 죄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사단은 유혹자로서의 책임만 있다.

둘째, 사단은 범죄한 천사이다. 육체가 없는 영물이다. 따라서 피조세계를 직접 다스릴 수 없다. 육체가 없이 피조세계를 다스리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사단이 직접 공중에서 나타나지 않고 뱀 속에 들어간 것은 아마도 하와가 의심하지 않을 대상자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또 육체가 없는 피조물 사단은 영의 상태로는 피조세계에 직접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단은 사단에게 굴복한 사람을 통해서만 역사한다. 피조세계는 인간의 범죄로 인해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지 피조물들 자체는 선과 악이 없다. 사단에게 유혹받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악을 저지르는 인간만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2. 사단은 피조세계를 직접 다스릴 수 있는가?

2.1 사단은 하나님의 대적자가 될 수 없다.

히브리어로 `사단'(Satan)은 `대적'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대적”은 “법정에서의 대적” 즉 “고소자(송사자)”이다. 따라서 사단의 정확한 의미는 고소자이다. 스가랴 3장 1절에 사단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여호수아를 대적하여 고소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사단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성격은 스가랴 3장 4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죄과에 대한 참소였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죄과를 제하심으로 사단의 대적을 무력화 시키신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슥3:1)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슥3:4)

사단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한다고 할 때 대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바로 사단이다. 즉 사단이 대제사장을 사단(대적, 고소)하고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사단'(대적, 적수)을 헬라어 `마귀'(고소자, 고발자, 참소자)라고 번역하는 것은 아주 타당한 번역이다(계12:10)

사단이 대적자임은 하나님께 대함이 아니라 인간에게 대함이다. 하나님께 대적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사단을 너무 큰 존재로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남을 존재는 아무도 없다. 사단과 마귀는 같은 의미로 고소자이다. 히브리어 사단은 법정적 대적자 즉 고소자이고 헬라어 마귀도 고소자, 참소자이다. 히브리어 사단의 헬라어 번역이 바로 마귀이다. 뜻은 둘 다 법정적 참소자이다. 사단은 “하나님께 대적한 자”이고 마귀는 “인간을 고소하는 자”란 의미가 아니다. 사단도 “인간을 대적하는 자 곧 법정적 고소자”이다. 사단은 절대로 하나님의 대적자가 될 수 없다.

2.2 사단은 피조물이다.

사단은 범죄한 육체의 인간보다는 모든 면에서 제약을 덜 받는다. 또 인간처럼 육체의 죽음도 없다. 그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보다 월등하다. 그에게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단은 대단한 존재로 여겨진다. 마치 인간이 감히 어찌 할 수 없을 만큼 커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죄로 오염된 인간과 비교했을 때이다. 범죄 이전의 인간은 사단보다 월등한 지혜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덜 받는 육체를 소유했고 죽지도 않았다. 이것이 산 영이라는 의미이다.(창2:7) 사단이 인간보다 뛰어나게 된 것은 인간이 영적인 능력들을 다 잃어버리고 죄에 오염된 육체로 제한되어졌기 때문이다. 사단이 원래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단은 능력이 있으나 전능하지 않고, 지식은 있으나 전지하지 않으며, 장소의 제약은 덜 받으나 편재하지는 못하다. 사단은 피조물이다. 사단은 범죄한 인간과 지금 비교하면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것은 분명하나 창조주 하나님께 비교하면 형편없는 존재이다. 무한하신 창조주와 유한한 피조물은 비교대상이 아니다. 그 차이는 젖먹이 갓난아기와 아인슈타인 박사 정도가 아니고, 벌레와 인간정도의 차이도 아니며, 나무젓가락과 아폴로 우주선 정교함의 차이도 아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그 차이를 표현할 수 없다. 설명하려는 시도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다.

사단이 피조물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단은 지금도 인간을 공격하고 있고 유혹하고 있으며 어떤 일부사람들의 지정의를 장악하여 귀신들리게 하기도 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사단을 이길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사단은 인간에게 무서운 존재요 대단한 존재이다. 그러나 사단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사단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지 말라. 사단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원래 인간이 사단보다 더 월등했다. 재림과 심판 이후 우리는 부활된 모습으로 다시 모든 면에서 사단을 능가하게 될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의 경배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2.3 사단은 형벌 받을 존재이다.

성경은 사단의 결과에 대해서 명확하게 계시한다. 지금 사단은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거부한 죄인되게 함으로 모든 피조세계의 훼손을 가져왔지만 이것은 결코 영원하지 못하다. 한시적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일어나 세상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이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의 예언이다.(창3:15) 사단의 최후결과는 영원히 타오르는 불 못 곧 지옥에 갇혀 영원히 형벌 받음이다.(계20:10, 마25:41)

한국의 불교문화는 지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대부분 지옥의 주인을 염라대왕으로 생각한다. 염라대왕이 이승에서 잘못한 사람을 지옥에서 벌주는 것이다. 사실 불교에서는 염라대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후의 지옥심판을 담당하는 십대왕 중 염라대왕(閻羅大王)은 다섯 번째 대왕이다. 유독 염라대왕이 유명한 것은 사람의 살아생전 행위에 따라 심판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업경이라 불리우는 거울을 통해 생전의 죄를 보게 되고 행한 그대로 벌을 받게 된다. 한국 전래동화들도 대체로 이것과 비슷한 구도를 가진다. 저승사자들은 세상에서 잘못한 사람들을 지옥으로 데려오고 지옥의 왕은 그들을 벌준다.

여기서 지옥의 왕은 누구인가? 조금만 부주의해도 사단을 염라대왕으로 대체해서 생각하기 쉽다. 불교의 염라대왕 개념을 사단과 혼동해서, 사단을 지옥의 왕으로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만의 정서이다. 성경으로 주의 깊게 가르쳐주지 않으면 우리 민족은 대부분 사단을 지옥의 주인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되면 사단은 염라대왕처럼 지옥에서 생활하며 자신은 고통을 당하지 않고, 사람들을 벌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사단은 절대로 지옥의 왕이 아니다. 불교의 지옥과 성경의 계시는 다르다. 지옥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이는 하나님이 염라대왕처럼 지옥에 앉아 생활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형무소의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생활하지 왜 감옥에 앉아 지내겠는가? 사단은 지옥의 감옥에 갇혀 형벌 받을 죄수요 피조물이다. 지옥은 사단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니고 사단이 형벌 받는 감옥이다. 지옥에 대한 성경적 정의는 하나님의 은혜가 조금도 미치지 않는 곳이다. 모든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전달된다. 구원이 있다.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러나 지옥에는 절대로 구원이 없다.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거두신 곳이다. 즉 그곳은 하나님과 영원한 단절이요 영원한 형벌을 의미한다.

3. 피조세계에서 사단이 하는 일

3.1 유혹자(계12:9) - 부패한 본성을 자극하여 인간을 유혹

요한 계시록 12장은 사단이 하는 일을 정확하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그것은 “온 천하를 꾀는 자”(계12:9)와 “우리 형제를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는 자”(계12:10)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대적이 아니라 인간의 대적인데 그 내용은 유혹자와 참소자이다.

사단은 유혹자이다. 사단이 인간의 의사와 상관없이 장악하는 것은 특수한 상황이다. 사단이 어떤 사람을 그렇게 장악하는지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우나 분명 지정의를 장악한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성경에는 귀신들린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온 세상은 귀신들린 것이 아니다. 어떤 소수의 일부 사람이 귀신들린 것이다. 사단의 본래 모습은 유혹하는 자이다. 지정의를 가진 독립 인격에게 찾아와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며 죄를 짓도록 자꾸 유혹한다.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나 하와를 포로로 잡고 아담을 협박해서 선악과 금령을 어기도록 한 것이 아니다. 유혹한 것이다. 네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속임으로 인간 스스로 범죄하게 하였다.

인간이 하나님 형상인 것은 그가 지정의를 가져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원하고 행동하는 독립적 주체라고 말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반사체라는 의미였다. 이런 자유 인격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 창조되었다고 언급했다. 인간은 자유인격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책임진다. 이것이 짐승과 다른 인간의 특징이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는 아담의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것이 원죄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악을 자기에게 맞춰 판단한다. 피조물 됨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원죄이다. 그런데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반드시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하나님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창2:20)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중심적 본성은 반드시 타인에게는 피해를 주고 공격적이 된다. 여기에 자기중심적 본성은 단순히 사회생활에 필요한 물질만 요구하지 않는다. 무차별로 모든 것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이 가진 명예를 요구하고, 해서는 안 될 금지된 욕망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요구한다. 인간의 자기중심적 본능은 절대로 거룩하거나 도덕적이지 못하다. 의와 거룩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기에 필연적으로 더럽고 불의하다. 그래서 이것을 부패한 본성이라 한다. 이것은 아담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었을 때 형성되었다. 그래서 이것을 원죄라고 부른다.

원죄로 인해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죄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반응하게 되어있다. 본능이다. 죄를 미워하지 않고 좋아한다. 이성으로는 거부하려 하지만 그의 감성이 요구하고 있고 의지는 본능에 따라 결국 죄를 선택하고 행동한다. 이것이 인간이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의미이다. 사단은 이런 인간에게 죄를 짓도록 유혹한다.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 자신을 위장한 후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욕구대로 할 것을 유혹한다. 그리고 인간이 부패한 본성에 이끌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참소하고 인간에게 가차없이 정죄한다. 이 정죄를 이겨낼 장사가 없다.

여기서 분명히 해두자. 죄는 사단이 짓는가 인간이 짓는가? 죄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는가 사단에게 있는가? 사단은 유혹자이다. 죄를 짓도록 유혹한 것은 사실이지만 죄를 짓도록 최종 결정하고 실행한 것은 사람이다. 결국 책임이 사람에게 있다. 절대로 죄의 책임을 사단에게 돌릴 수 없다. 인간이 책임을 져야한다. 그것이 자유인격 인간의 독특성이다.

몇 년전 한국에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끈 판결이 있었다. 7년이상 끌어온 담배인삼공사에 대한 흡연자들의 소송건이었다. 소송자들은 30-40여년간 국산담배만 피웠는데 폐암이 걸렸다는 것이다. 결과는 흡연자들이 패소였다. 법원은 판결 이유를 “소송자들의 흡연이 니코틴 의존에 기인한 것이며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담배가 폐암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임은 인정되지만 그것을 선택한 것은 폐암 걸린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담배 회사를 핑계대지 말고 그것을 선택한 사람이 책임지라는 것이다. 담배회사가 담배를 만들고 광고함으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도록 유혹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피우겠다고 결정한 것은 그 사람이며 책임도 그가 져야한다. 왜냐하면 담배회사가 아무리 광고했어도 피우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죄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사단이 아니다. 사단은 유혹자로서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유혹자에게 넘어가 죄를 지은 형벌을 받을 것이다.

3.2 참소자(계12:10) - 죄를 통해 인간을 고소

사단 이름의 의미가 참소자, 고소자라고 했다. 마귀는 히브리어 사단의 헬라어 번역이다. 마귀와 사단은 똑같이 고소자이다. 사단이 고소자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사단은 두 가지 의미에서 고소자이다.

첫째, 하나님께 대해서 인간을 고소한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은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 정녕 죽으리라(창2:17)는 법률조항이 적용된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께 이 법률조항을 제시하며 인간을 고소한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인간을 그냥 구원해주시면 안된다고 고소하는 것이다. 이는 사단은 법원의 검사(prosecutor)로서 인간을 고소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소하는 것은 검사와 유사하지만 검사 자신은 형벌 받지 않기에 검사라는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 사단은 먼저 형벌받은 존재이다. 하나님께 이미 심판의 형이 내려졌고 인간의 구원이 끝나면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 대법원 최종판결이 내려졌다. 모든 재판은 끝났다. 이런 사단이 하나님께 고소하는 것이다. “나와 똑같이 범죄한 인간을 그대로 구원해 주시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 인간이 사망의 형벌 받아야 함을 끝까지 고소한다. 마치 자신의 잘못으로 AIDS 걸린 환자가 세상을 향해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자신의 무분별한 삶을 반성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탓하고 적개심을 표현한다. 근본적으로 삐뚤어진 것이다. 사단은 자신만 지옥형벌을 받지 않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함께 사망형벌 받도록 계속 참소한다. 자기만 죽지 않겠다고 같이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 작전을 쓴다. 이러한 사단의 참소 때문에 인간은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망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둘째, 범죄한 인간 자신에게 직접 고소한다. 죄는 유혹에서 시작한다.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일단 유혹이 시작되면 부패한 본성이 작동한다. 감정은 하고 싶어하고, 지성은 그것을 합리화시켜주고, 의지는 행동하게 한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자기 판단에 의해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죄를 짓게 되면 사단은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고소하고 또 인간 양심에도 고소한다. 처절하게 정죄한다. 네가 지은 죄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죄에 대해서 달콤하게 느끼게 만들고 모든 이성과 감성에 맞도록 포장시켜 유혹하지만 일단 인간이 그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으면 당장 자세가 바뀌게 된다. 은밀한 곳에서 아름답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없어지고 온 세상이 떠나가도록 범죄를 들춰내어 정죄하고 부끄럽게 한다. 그래서 사단은 비열하고 냉혹한 고소자이다.

3.3 귀신들린 자의 전 인격을 장악

사단은 고소자, 유혹자이지만, 일부 어떤 사람들의 지정의를 완전장악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을 통칭해서 귀신들린 사람이라고 부르겠다. 사단들림보다 귀신들림이란 용어가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단과 귀신들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용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통칭해서 사단 하나로 설명하고 있다. 귀신들림은 범죄한 천사들 중 하나에게 잡힌 것이지 사단에게 잡힘이 아니라고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사단 하나로 통칭해서 설명해도 그 의도가 충분하게 전달된다.

성경에는 귀신들린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군대귀신 들려 통제가 불가능한 자는 공관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마8:28-34, 막5:1-20, 눅8:26-39) 변화산에서 내려온 예수님이 치료하신 것은 귀신들려 간질하는 아이였다.(마17:14-21, 막9:134-29, 눅9:37-43)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 주신 여자였다.(막16:9) 바울이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힌 것은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기 때문이다.(행16:16-18)

우리 주변에도 귀신들린 사람이 분명히 있다. 분명 그 안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 초능력자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는 귀신들림이다. 평생 지정의를 완전히 잡히지는 않지만 주로 귀신들림 현상이 올 때 그 시간만큼은 분명 자기 인격이 아니다. 이것을 부인하면 기독교가 아니다.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극히 일부분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귀신들린 것은 아니다. 귀신들린 자는 자기인격이 없다. 사단이 그 사람의 몸을 빌려 행동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의식과 행동은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다. 결국 책임은 사단에게 있다. 그 사람은 자기 행동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이 귀신들렸다 말하지 않고 모든 사람은 지정의를 갖은 자유인격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어 사는 죄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사람은 사단에게 유혹받지만 자기가 결정하고 행동하므로 책임도 자기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과 어떤 사람, 일반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구분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지정의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인이고, 그들 중 어떤 사람이 귀신들려 있다. 지정의를 빼앗긴 귀신들림은 특수한 상황이고, 세상 사람들은 지정의를 가지고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인들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요약>

사단을 과소평가하지도 또 과대평가하지도 말라. 오해는 무지를 비판하고, 무지는 오해를 비난한다. 사단에 대해서 무지한 것과 사단에 대해서 오해한 것은 별 차이가 없다. 사단은 타락한 천사로 인간보다는 월등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사단은 피조물이다. 그는 감히 하나님께 대적하는 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인간을 참소하는 고소자에 불과하다. 사단을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올려두지 말라. 그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사단은 하나님께 형벌 받을 존재에 불과하다. 사단은 어떤 사람의 인격을 완전 장악해서 귀신들리게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사단은 지정의를 가진 자유인격 인간을 유혹해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를 짓도록 유혹한다. 유혹은 사단이 하나, 죄는 인간이 짓는다. 그래서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유혹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고 인간에게는 유혹에 넘어가 범죄한 책임을 물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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