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복음

제16장 교회,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

Author
gospel323
Date
2017-10-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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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6
제16장 교회,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

1. 첫 아담의 범죄

1.1 창조목적 - 하나님 백성 삼으심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신 인간은 그중에 으뜸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며 관리하는 대리통치자의 역할을 맡기셨다. 이를 위하여 그에게 지혜를 주셨다. 하나님은 인간이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며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원했다. 모든 만물을 자유인격 인간에게 맡기시고 그가 자유의사에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며 경배하기를 원하셨다. 이때 모든 세계는 아름다운 질서 속에 있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피조물 인간과 그가 다스리는 피조세계의 질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신 것이다.(창1:26) 이때 하나님은 인간의 하나님이 되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된다.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기를 원하셨다.(창1:28)

아담의 범죄는 이 모든 아름다움을 파괴하였다. 인간에게 피조물 됨을 거부하고 하나님처럼 되라는 사단의 유혹은 달콤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서 죄인으로 몰락시켰다.(롬3:23) 아담의 반역은 아담 자신과 아담의 후손인 인류와 모든 피조세계까지도 죄로 인한 파괴를 가져왔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단절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가져왔고 더 나아가 인간과 모든 피조세계의 사이도 갈라놓았다. 이 세상에는 더 이상 평화와 안식이 없다. 모두 적이고 모두 쓰러뜨려야 할 경쟁자이다. 이제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인류는 더 이상 하나님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을 거부한 아담의 죄가 모든 인류를 하나님 백성에서 죄의 노예로 만들었다. 인류는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로 섬기지 않는다. 자신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가 아니라 진짜 통치자라고 선언했다. 자신의 피조물 됨을 거부했다. 인류는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거부했고 죄인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인류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졌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도 거부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심판과 형벌만 남아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한 인류를 그대로 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인류를 하나님 백성 삼으셔서 모든 피조세계를 회복하시기로 작정하셨다.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사 십자가 속죄사역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실 것임을 말씀하셨다. 또 십자가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난 하나님 백성, 여자의 후손들이 세상을 회복시키며 죄와 사단을 이길 것을 말씀하셨다.(창3:15) 노아에게는 무지개를 보여주시며 이러한 새로운 하나님 백성들이 거할 땅(거소)을 보존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창9:15), 아브라함을 부르사 그의 자녀들이 죄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하나님 백성 될 것임을 약속하셨다.(창12:1-3)

1.2 아브라함 - 하나님 백성을 택하심

이스라엘은 아담의 죄(반역)로 오염되고 파괴된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백성의 모형이었다.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 영광을 회복하고 하나님 대리통치자로서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나님 백성의 가시적 모델이요 예표였다. 아브라함은 이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고 그의 직계 후손들은 이 일에 쓰임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이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며 죄악에 물들어 있는 이방인들 중에서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백성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방인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이는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백성이기 때문이었다.(레11:45) 죄에 오염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거룩함이 무엇인지 몰랐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죄를 지으며 더러움에 살고 있으면 무엇이 죄 인줄 모른다. 죄가 문화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다 행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이 죄 인줄 알 수 있겠는가? 한국에서는 조상제사, 일본에서는 신사참배가 미풍양속으로 권장되고 학교에서 효자로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숭배의 해악과 죄의 세력의 실체를 보여주시며 이방인과 구별되도록 개인에게는 할례, 민족에게는 율법을 주셨다.

이스라엘은 이방인과 구별되어 아담이 잃어버린 첫 창조의 목적을 회복할 백성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먼저 죄의 오염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되는 법을 가르치셨다. 율법의 많은 정결의식은 죄와 죄의 결과에 대한 무서움을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백성의 죄를 사하는 데는 희생제사가 필요함을 가르치사 죄는 반드시 죽음을 가져옴을 보여주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었다.(롬6:23) 이스라엘은 죄로 오염되어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께 순종하며 그분의 보호를 받는 하나님 백성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계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확인시키시는 것은 이것이었다.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26:11-12) 성전은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장 좋은 모형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의 설계도를 보이사 성막을 직접 지으셨고(출26:1), 다윗에게도 성전의 모형을 보여주심으로 성전을 직접 만드셨다.(대상28:19) 하나님은 성막과 성전가운데 계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섬기는 거룩한 백성, 하나님 나라였다. 그들은 범죄한 인류가운데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아담의 죄에서 벗어나 다시 하나님을 섬기고 모든 피조세계를 하나님께로 돌릴 하나님 백성의 모델이었다.

1.3 이스라엘 - 하나님 백성의 모형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날 영적 이스라엘 백성의 모델이요 예표였다. 이는 모든 인류를 사로잡고 있는 원죄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의 예표이지만 그들만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작정하신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러셨다면 성자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로 새롭게 태어날 하나님 백성들의 모형이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교 바리새인들의 저항을 받았다. 이는 원죄에 대한 바울의 주장 때문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죄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인간은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인간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은 바울과 유대인들의 공통 주제였다. 이것에 대한 해결책 제시가 유대교 종교와 기독교 복음을 가르게 된다. 유대교와 일반종교는 죄에 대한 이해가 동일하기 때문에 해결책 제시도 유사하다. 제시되는 방법은 약간 다르지만 결국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아진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은 죄에 대한 정의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 해결책도 다르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칭의와 성화를 통한 법적으로 실제적으로 거룩한 자, 의로운 자, 새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독특성 유일성이고, 다른 종교에서 볼 때는 기독교의 배타성으로 보인다.

원죄는 하나님을 대적한 첫 아담의 법적인 죄책과 그 아담의 후손인 우리 속에 본성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실제적인 부패한 본성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절대로 자기 힘으로는 의로워지고 거룩해 질 수 없다. 원죄에 대한 이해, 죄책과 오염의 의미, 특히 부패한 본성에 대한 처절한 계시가 유대교 더 나아가 일반종교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칭의와 성화의 복음”의 유일성을 주장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당시 율법의 행위를 통해 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던 유대교 바리새인들과 바울을 충돌하게 만들었고 오늘날 일반종교와 부딪히게 되는 내용이다.

원죄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차이를 가져왔다. 구약성경에서 출발한 세 종교는 공통점이 많다. 첫 인류가 아담과 하와라고 보는 점, 믿음의 조상을 아브라함으로 보는 것은 세 종교가 모두 같다. 하와의 탄생에 있어서는 유대교와 기독교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슬람은 아담에게서 나왔다는 점만 다르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는 원죄부분에 있다. 유대교는 원죄가 아예 없다고 하고 이슬람은 아담과 하와가 회개함으로 용서를 받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기독교는 원죄가 있다고 가르친다. 원죄가 있으니 예수는 원죄를 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신다. 유대교와 이슬람은 원죄가 없기 때문에 예수는 그리스도도 삼위일체 하나님도 아닌 선지자에 불과하다. 이처럼 원죄에 대한 이해가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결정적 분기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백성이었지만 그들은 장차 올 새로운 하나님 백성의 모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 속에 있는 원죄 때문이었다. 바울이 율법을 비판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의 수단으로 지키는 율법은 인간의 내면 속에 깊게 뿌리 박혀있는 죄의 본성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율법은 거룩함의 외형적인 모습은 만들 수 있지만 그 내면의 죄의 욕구는 제어하지 못한다. 오히려 율법이 탐심을 갖게 만든다.(롬7:8) 그래서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칭의와 성화를 주심으로 변화시키는 것만 우리의 구원이 된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나님 백성 삼으심은 열방의 제사장 나라로 부르심이었다.(출19:5) 제사장 나라란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이방인을 하나님께 거룩한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 직무로 비교함으로 그 역할을 알 수 있다.(롬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이스라엘은 모든 이방민족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의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한 나라였다. 이것은 처음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축복과 같다.(창12:3)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이방의 빛(사49:6)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이 모두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될 것이라는 계시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셨고 열방의 하나님이셨다. 이스라엘은 열방을 돌이키기 위한 먼저 부름받은 백성이었다.

그러나 죄의 오염은 이스라엘을 배타적 유대 민족주의에 빠지게하여 먼저 하나님 백성됨이 이방인 구원의 수단이 아닌 이방인을 멸시하고 그들을 비난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종교우상, 율법우상, 형상우상을 섬기며 점점 더 실패해간다. 하나님 백성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포로가 되어 멸망되었다. 이스라엘 암흑기인 앗수르 바벨론 포로시기에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육적 이스라엘을 포함한 전 인류가운데서 새로운 하나님 백성의 회복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유대교는 육신적 이스라엘의 회복이 성취될 것으로 생각하고 지금도 기다리지만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이스라엘이 이미 회복되고 성취되었음으로 받아들인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

2.1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시다.(고전15:45) 마지막 아담이란 예수께서 첫 아담과 같은 새로운 인류의 대표자라는 의미요, 예수 이후에 또 다시 인류의 대표의 역할을 할 아담은 없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첫 아담과 대비되는 마지막 아담이 되심은 세 가지 부분에서 확인된다.

첫째, 광야시험에서 이기심이다. 첫 아담은 에덴에서 사단의 유혹에 실패했지만, 예수는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이기셨다. 에덴의 유혹은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것이었지만 광야의 시험은 “너는 하나님을 거부한 죄인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그리스도 사역을 하지말고 첫 아담처럼 네 육신을 위하여 살라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단의 유혹을 이기셨다.

둘째,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하심이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시 받은 성령은 앞으로 죄 사함 받은 모든 백성에게 임할 성령의 모습이었다. 첫 아담의 범죄는 인간을 죄의 본성으로 살아가는 육체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신은 영원히 인간과 함께 하지 아니하셨다.(창6:3) 예수는 범죄한 인류를 떠나신 하나님의 영이 다시 거하시도록 하는 성령의 담지자요 성령의 파송자이셨다. 예수의 십자가를 믿어 죄 사함 받은 성도는 누구나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 충만을 체험하게 된다.

셋째, 죽기까지 순종하심이다.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자기가 하나님 됨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의 삶은 하나님께 순종함이었다. 그의 전 생애 사역동안 한 번도 하나님을 거스리거나 거부함이 없었다. 그분 자신도 성자 하나님이셨지만 성부 하나님보다 한 발자국도 앞서지 아니하셨다. 예수는 늘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셨고, 모든 백성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 묵묵히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을 거역한 첫 아담과 대비되었다. 사단은 끝까지 예수의 인성을 자극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을 막고 하나님께 불순종 하도록 유혹했지만 성자 예수께서는 이런 모든 사단의 시험을 이기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빌2:8)

첫 아담은 사단의 유혹으로 자기가 하나님 되겠다고 죄를 지었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은 인류를 떠나셨고(창6:3), 인류는 죄로 인한 사망의 형벌에 놓이게 되었다.(롬5:12) 그러나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광야시험에서 사단의 유혹을 이기셨고, 그 자신이 먼저 백성에게 주실 성령을 받으셨고, 그의 전 생애를 심지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첫 아담의 모든 실패를 회복하셨다. 그 결과 인류는 사망의 형벌과 죄의 오염에서 벗어나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게 되었다.(롬5:19)

2.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순종

첫 아담의 불순종과 가장 대조되는 예수의 순종은 바로 십자가 속죄제물 되심이었다. 온 인류가 지금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첫 아담의 범죄 때문이었다. 아담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인류는 죄의 책임과 오염에 빠지게 되었다. 첫 아담의 대표성 때문이었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순종하심은 전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예수에게 전가하시고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주시기 때문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전 인류를 위한 구원사건이 되는 것은 예수께서 마지막 아담이 되시기 때문이다. 첫 아담과 대비되는 예수의 대표성 때문이다.

예수의 십자가 순종을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께 순종한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주인 된 아담의 죄를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가 하나님 됨이다. 그러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인류는 죄 사함 받았기에 하나님을 섬기고 자기의 피조물 됨을 인정한다. 하나님께 순종한다. 성령께서는 그들 속에 거하사 자기의 피조물됨을 인정하게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드신다.

십자가는 새로운 하나님 백성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아담의 죄책과 오염에서 회복된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주인 된 아담의 부패한 본성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빠져나온 사람이다. 이들은 예수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자신의 죄를 사하기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전 인격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다. 자신이 하나님을 거부한 죄인임을 인정한 사람들이다. 아담의 원죄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해짐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 은혜는 내가 값으로 지불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기에 하나님의 선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뿐임을 아는 사람들이다. 성령께서 믿는 그의 안에 들어와 그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고 의롭다 칭함 받은 사람임을 알게 된 사람이다. 성령께서 여전히 육체 속에 있는 자신의 죄의 욕구를 이기도록 힘주심을 힘입어 죄의 세력과 사단의 유혹에서 영적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바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회복된 하나님 나라, 교회 공동체이다.

2.3 교회 - 새로운 하나님 백성 탄생

교회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첫 백성이었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새 백성이다.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다. 영적 아브라함 자손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들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자기들을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섬긴다. 이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께서 하신 말씀 속에 잘 나타나있다.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5-19)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 이루어질 새로운 하나님 백성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하나님의 속죄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자들이다.(16절) 예수는 그들의 주인이 되사 그들을 자신의 사람들로 명명하셨다. 교회는 예수께서 직접 세우셨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18절)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 사역을 근거로 새로운 백성을 탄생시키셨고 죄와 사망과 사단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도록 지켜주신다.(18절) 교회는 죄의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 되는 유일한 통로이다. 세상 죄인들은 교회를 통하여 십자가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백성이 된다.(19절) 교회가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는 것이다.(벧전2:9)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경에 대한 무지와 죄로 인한 배타적 민족주의 교만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예를 들며 바울을 공격하며 비난했다.(창17:2) 그러나 하나님 백성 됨은 유대인을 넘어 전 세계 모든 이방인도 포함된다는 것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의 내용이었다.(갈1:12) 이방인 전도는 교회의 양적 팽창을 의미하는 정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함은 이스라엘 유대인만을 위함이 아니었고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감취었던 비밀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모든 피조세계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었다.(골1:25) 복음 속에는 십자가 죄 사함과 그 죄 사함 받을 자의 범위가 모든 인류까지임을 이해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쉽지 않았다. 심지어 교회내의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도 이방인 전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바울의 위대성은 십자가 대속의 의미를 이해함에도 있지만 그 복음이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자랑하던 모든 유대인의 특권을 포기한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는 것에 대해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갈라디아서 3장, 로마서 4장, 에베소서 2장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8-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3:13-14)

3.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새로운 하나님 백성

3.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이는 죄 사함과 하나님의 백성 됨이 예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고, 그가 친히 자기 백성을 피흘려 사셨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2)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1:18)

새로운 하나님 백성들은 예수의 십자가로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수의 사람들로 예수께 자신의 전 인생을 의탁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주님이 되셔서 자기 백성들을 돌보신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하나님 백성, 그리스도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가 다른 것은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께 이 땅과 하나님 백성의 통치권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본체론적 의미와 함께 하나님의 대권을 위임받으신 분이란 의미가 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은 아들의 나라(골1:13), 주 예수의 나라(벧후1:11), 그리스도의 나라(계11:15)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주님으로서,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죄와 사단의 권세를 십자가로 꺾으시고 우리를 건져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거룩한 백성되게 하시며 보호하신다. 그 후 먼저 죽은 성도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가 없고 사단의 세력이 없는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심판 때까지는 이 땅의 성도와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보호하신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 때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하나님의 나라(백성)를 하나님께로 돌려드리신다.(고전15:24) 이때 비로소 세상은 주 예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불리우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리통치를 거부한 첫 아담과는 달리, 마지막 아담 예수의 대리통치는 하나님을 전혀 거역하지 않으시기에 지금 주 예수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와 동일하다.

3.2 교회는 그리스도 몸의 지체들

교회에 대한 바울의 가장 아름다운 설명은 성도들을 한 몸의 지체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서 12장, 고린도 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에 기록되어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12-27)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 몸에 붙은 한 지체로 표현한다. 이것은 바울만의 독특한 표현이다. 당시 유대인 헬라인의 종교적 차별, 종과 자유자의 사회 신분적 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십자가는 새로운 백성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유대인도 아니었고 헬라인도 아니었다. 그들은 종도 아니었고 주인도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자신의 죄인 됨을 회개하고 예수를 주로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성령 세례의 의미이다. 성령은 성도를 그리스도 몸에 동참케 하여 한 지체 되도록 하신다.(13절) 그들은 각자 자기를 부르신 부름의 소명을 따라 교회 안에서 봉사한다.(고전7:20) 어떤 사람은 발의 역할, 어떤 사람은 머리, 손, 귀, 눈, 코의 역할을 감당한다. 이들은 각각 그 역할에 있어서 차별이 없고 동등하며 모두 동일하게 존귀히 여김을 받는다.(17절) 오히려 상대적으로 연약하여 부족한 지체가 있을 때 그는 더 귀히 여김을 받고 보호를 받는다.(23절) 또한 몸의 지체는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영광을 얻는다.(26절) 이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다.(27절)

구원은 개인에게서 시작한다. 국가가 구원받으면 그 속에 있는 개인이 구원받음은 없다. 그 안에 있는 개인이 먼저 구원을 받아야 그런 개인들이 모인 사회와 국가 구원으로 발전된다. 그러나 성경은 개인구원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성경은 구원받은 개인을 중요시하지만 구원받은 우리도 중요하게 여긴다. 개인구원은 구원의 첫 출발이지 종착역이 아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있다. 여기서 구원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를 사함 받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됨을 의미한다. 자기의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 됨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되어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이다. 이들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할 자들이다. 이들은 같은 십자가를 믿고, 같은 하나님을 모시며, 같은 성령에 의해 인도받는 한 몸이며 한 지체이다.

유기체란 물질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생활 기능을 가지게 된 살아있는 조직체 곧, 생물을 일컫는다. 여기에 반대말은 무기체이다. 유기체와 무기체의 차이는 분리되었을 때 죽느냐 사느냐의 차이에 있다. 무기체는 분리되어 있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 자동차는 분해되어도 각 파트는 그 기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바퀴는 그대로 바퀴이고, 엔진은 그대로 엔진이다. 그러나 유기체는 다르다. 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야 살고 분리되면 그대로 죽어버린다. 심장이 분리되면 심장개별로 기능을 발휘하지 않고 곧 죽어버린다. 팔도 눈도 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로 붙어있어야 서로 살고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이것이 한 몸 유기체의 비밀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몸이요, 서로 붙어있어야 살 수 있는 한 몸이다. 이것이 교회의 신비이다.

3.3 교회는 하나님 백성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교통하심

구약의 하나님은 성막과 성전에 거하셨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지 않았기에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이다. 포로기의 선지자들은 이것을 지적했다. 이스라엘 포로기에 선지자들은 성전 회복을 명하였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건축하고 스룹바벨은 무너진 성전을 새로 건축하였다. 특히 학개 선지자는 성전건축을 강하게 선포하였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학1:3-8)

유대인들은 지금도 예루살렘 성전자리에 세워져있는 이슬람 황금돔 사원을 바라보며 통곡의 벽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이 다시 세워지도록 기도하고 있다. 아마도 이슬람 세계와 세계전쟁을 치루지 않고는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지기 힘들 것 같다. 그러나 신약의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은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님 백성들 속에 이미 세워졌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19-21)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탄생시켰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셨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공동체였다. 하나님의 성령은 성도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며 그들을 다스리신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개인에게 내주하시고 그런 하나님 백성의 무리 가운데 임재하신다. 그들 가운데 각각 거하시며 하나로 통일시켜 주신다. 성령께서는 성령의 교통하심 속에서 모든 교회 공동체들이 하나되게 하신다. 세상에는 많은 교회가 있다. 언어와 문화권이 다른 교회가 있다. 예배 순서와 찬송 곡조가 다른 교회가 있다. 교회정치 형태가 다른 교회가 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임을 인정하고,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을 신앙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죄 사함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교회는 모두 같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이다. 성령께서는 그들 안에 거하셔서 동질성을 주신다. 하나 되게 하시며 성령으로 교통하게 하신다(코이노니아).

초대교회의 하나 됨은 현대교회 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수 천년 내려오던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종교적 구별은 뛰어넘기 어려웠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직접 받은 베드로조차도 극복하기 힘들었다.(갈2:11) 당시는 주인과 노예의 구분이 엄연히 존재하는 신분제 사회였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의 차별도 심각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초대교회가 탄생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셨다.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어떤 구별도 없다. 남녀 성별에 의한 억압도 없다. 주인과 종의 신분적 차별도 없다. 어른 아이의 구분도 없다.(갈3:28) 이는 그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하나로 만드시고 교통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이 하나되게 하시는 공동체이다. 아담의 범죄로 모두 분열되고 단절된 세상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하나됨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모든 성도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하나된 신비체이다. 로마 카톨릭은 이것을 구원을 위한 교권적이고 성례전적으로 보지만, 개혁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교통으로 이해한다. 개혁교회의 이해가 올바르다.

<요약>

첫 아담의 범죄로 인류는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렸다. 하나님 백성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얻어, 인류는 다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며 그분의 보호를 받고 그분께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한 지체이다. 교회는 성령의 임재로 보편성을 띤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들은 전 세계 어디에 위치하든지 모두 한 교회, 한 몸이다. 교회는 예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주 예수를 섬기며,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죄와 사단의 세력을 이기는 거룩한 백성의 공동체요, 회복되어진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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