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샤다이 칼럼

성령강림주일에 요엘서 2장 28절을 묵상하며...

Author
gospel323
Date
2018-07-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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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함을 알렸습니다. 오순절 성령충만받은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행2:17-18)

베드로는 오순절 예루살렘에서 초대교회 제자들이 15개국 사람들에게 각각 난 곳 방언으로 전하고 있는 십자가 복음선포를 요엘서 2장 28절을 인용하며 이것이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한다는 예언의 성취라고 말한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체험한 예언 환상과 꿈은 노스트라다무스식의 미래 쪽집게 예언과 종교적 엑스타시(황홀경)가 아니라, 십자가 복음과 그 복음이 가져다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녀, 젊은이, 늙은이(장년)들은 모든 계층의 사람을 의미하며, 남종과 여종은 모든 성별을 말합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예언 환상 꿈은 십자가 복음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는 사도행전 2장 후반부와 신약 전체를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이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게 만드는 예언, 환상, 꿈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십자가 죄사함은 모든 인류의 차별을 없애고 하나 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에게 이방인은 부정한 죄인이며,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 불리워졌습니다. 부정과 불법은 유대인이 이방인을 지칭하며 정죄할 때 사용되는 고유용어로 부정(不淨)은 이방인들이 우상숭배와 성적타락으로 정결함이 없음을 말하고 불법(不法)은 이방인들이 율법이 없고 또 율법을 지키지 않는 더러운 백성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인과 구별되어 거룩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소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부정과 불법을 본받지 말라는 의미와 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이방인들도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되도록 구원하라는 의미였지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저주하는 Negative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과는 맞지 않는 일입니다.(출19:5-6) 그럼에도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차별하는 것은 아담의 죄성(원죄)으로 인함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에게는 어떠한 차이도 없습니다. 민족적 우열문제는 없고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대인이 이방인을 배척하는 것은 모든 인류 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고 존귀한 존재 곧 하나님 형상입니다. 이는 그가 어떤 민족(유대인, 이방인), 어떤 인종(히브리인, 헬라인), 어떤 신분(주인, 노예), 어떤 계층(성인, 아이), 어떤 성별(남자, 여자)이건 똑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 사회, 나라, 민족 등을 차별합니다. 크게는 약한 나라의 인종 , 민족, 국가 등을 차별하지만, 작게는 약한 사람의 신체특징, 출생지, 학력유무, 재산정도로 우열을 구분합니다. 다른 사람의 열등함을 지적함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시키려는 죄의 본성 때문입니다.

죄에 오염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는 필연적으로 차별과 분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아담 나라는 하나됨이 없고 늘 차별로 인한 분열과 갈등만 나타납니다. 유대인들도 수천 년간 내려온 선민 우월의식과 배타적 민족주의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아담의 죄로 인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이 모든 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인류가 하나 되게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신이 하나님 되어 사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는 하나님 백성이 됩니다. 이 구원은 유대인 혈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십자가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히브리 유대인들이었던 초대교회 제자들의 이런 놀라운 변화가 어디서 왔습니까? 십자가 부활을 목격하고 오순절 성령강림을 확인한 후 생겨났습니다. 모든 인류가 하나 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본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본 환상과 꿈이요, 이것을 말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둘째, 십자가 죄사함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를 알 때 인류는 자신을 과신하지도,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도, 자신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 피조물로서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됩니다. 이웃에 대한 진정한 배려의 마음이 나옵니다. 사랑은 사랑받은 자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과 선지서의 핵심이라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 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 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 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6-40),

또한 바울도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아니 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8-10)

모든 차별과 갈등은 아담의 죄로 인한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나옵니다. 사람들은 상대를 비난함으로 자신의 죄를 감추기도 합니다. 십자가 죄사함 만이 인류 사회의 온갖 분열과 고통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으로만 모든 인류는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믿음으로 하나님 백성 된다는 로마서의 주제입니다.

죄사함 받음은,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말이요, 구원받음은 하나님 백성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모두 같은 표현으로 모든 인류가 십자가에서 죄사함 얻고 하나님 백성 됨을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인류"와 "믿음으로"라는 단어입니다.

즉, 로마서는 믿음으로 구원받음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구원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까지 확대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음만 말하면 그것은 로마서의 중요한 주제를 놓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것은 이방인도 하나님 백성될 수 있음을 설명키 위함입니다. 바울의 이방인 선교는 모든 인류가 하나 되게 하는 십자가 복음의 교리적 귀결입니다. 로마서의 믿음은 바로 이방인이 율법 없이 구원 얻을 수 있음의 근거설명입니다.

죄로 인하여 왜곡된 자기사랑만 존재하며 이웃사랑이 상실된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인류속에 내재된 아담의 죄를 사하심으로 아담의 죄책은 제거되고, 또 죄의 오염을 이기게 하심으로 모든 인류는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환상과 꿈은 내게 수동적으로 보여지지만 예언은 내가 능동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인 십자가 복음은 언어(말)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문서(글)는 기록으로 고정된 말로서 언어의 다른 형태입니다.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확인한 십자가 복음을 말과 글로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인류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 백성 될 수 있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십자가 죄사함을 받아들이면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도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1세기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수 천년간 내려오던 유대 민족주의가 무너지고 모든 인류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 복음으로 아담의 죄를 용서받고, 정결케 되어, 거룩하게 되고,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받아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되어 한 가족이 되는 것, 바로 이것이 초대교회가 오순절에 체험한 요엘서 2장 28절에 예언된 환상과 꿈이요, 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