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복음

제22장 옛 언약과 새 언약

Author
gospel323
Date
2017-10-13 13:23
Views
2176
제22장 옛 언약과 새 언약

1. 율법과 성전

1.1 예수께서 배척당하신 이유

예수는 공생애 기간동안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들에게 많은 배척을 당하셨다. 이는 그의 치유의 기적 때문이 아니다. 그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치유기적은 그의 가르침을 위한 한 방편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크게 종합해서 보면 하나님 나라의 구원과, 그 구원을 가져다주기 위한 자신의 그리스도 사역이었다. 예수는 자신의 그리스도 사역을 위해 유대인들의 율법과 성전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주셨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이시고(요10:30)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신적 권위를 가지고 이런 가르침을 한다고 하셨다. 이 일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를 배척하였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일부러 어기셨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눅13장), 죄인들과 식사하는 것(눅15장), 장로들의 유전이지만 식사 때 손을 씻는 의식을 일부러 어기신 것(막7장)이다. 또한 예수는 성전에 관한 부분도 말씀하셨다. 헤롯 성전이 무너지리라는 예언(마24장), 예수 자신의 몸이 성전이라는 것(요2장),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내어 쫓으신 것(막11장) 등이다. 이처럼 율법과 성전에 대한 예수의 새로운 가르침은 유대인들에게 저항을 받았다. 여기서 율법과 성전은 옛 언약의 대표적 표징이다.

1.2 스데반의 순교이유

스데반의 순교이유도 율법과 성전에 대한 그의 주장 때문이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의 순교장면을 기록한다. 스데반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며 많은 사람에게 복음의 선한 증거를 행했다. 그는 지혜가 충만하여 많은 사람을 가르쳤는데, 한 회당에서 사람들과 일어나 변론을 하게 되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하는 말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스데반을 잡게 한 후 공회에 데려갔다. 다음은 그들이 공회 앞에 스데반을 고소하는 죄명이다.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행6:12-13)

여기서 유대인들이 고소한 내용을 보면 스데반이 성전을 헐고 율법을 폐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스데반의 대답이 사도행전 7장에 기록되어 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율법과 성막을 전해준 모세, 그리고 다윗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설명한 후 유대교를 지탱하는 두 기둥 곧 성전과 율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한다. 다음은 스데반의 말이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행7:46-50)

스데반은 우선 이사야 66장 1-2절을 인용하며 성전에 대해 설명한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최고로 여기고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아니하시다는 것이다. 창조주가 자기가 지은 피조세계의 한 장소에 갇혀있지 않으시다는 말이다. 성전 건물의 신성함을 주장하고 자랑하는 유대교에 큰 저항이 일어났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하니라....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행7:51-58)

또한 스데반은 유대인들이 천사의 전한 율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율법을 지키지 아니한다고 했다. 그 근거로 그들의 조상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리라고 예언한 선지자를 죽였고, 지금 유대인들은 오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을 지키고 율법준수를 자랑으로 여기던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대단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예수 죽인 자는 바로 당신들이라고 직설적으로 언급하니 유대인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초대교회 스데반의 죄명은 성전과 율법을 모독하는 것이다.

1.3 바울의 체포 이유

바울의 체포이유도 율법과 성전을 훼방함이었다. 사도행전 21장은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체포되는 장면이 기록되어있다. 거기에도 바울이 왜 유대인들에게 그토록 저항을 받았는지 이유가 나와 있다. 우선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나 자신의 선교사역에 대한 보고를 하고 초대교회의 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예루살렘 상황에 대해 소식을 듣는데 그것은 바울이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이곳 유대인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행21:21) 할례와 율법에 관한 바울의 견해가 유대인들과 충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성전에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잡힌다. 그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체포한 이유가 나온다. 그것은 스데반의 순교 이유와도 똑같다. 바울이 율법과 성전을 훼방한다는 것이다.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행21:27-28)

1.4 복음은 율법과 성전에 대한 새 언약 관점의 혁명적인 재해석을 가져왔다.

바울의 복음 증거가 유대인들과 충돌한 것은 율법과 성전에 대한 새 언약 관점의 혁명적인 재해석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유대교 바리새인들, 기독교 유대주의자들과 치열하게 싸웠던 이유를 알게 되면 초대교회가 이해했던 복음 곧 새 언약의 성취로 이해한 십자가 복음의 핵심을 알게 된다. 유대인들이 초대교회를 핍박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초대교회가 율법과 성전을 버린 배교자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초대교회는 유대교의 가르침과 달리 성전이 구원의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의 가르침이 모세가 가르쳐 준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요 더 상위의 계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성전과 율법을 무시하는 배교자로 정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할례가 문제되지 않았던 것은 당시 복음은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들에게만 증거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이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미 어려서 할례를 받았고 그 자녀에 대해서 할례를 거부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 사이에 복음이 증거될 때 옛 언약을 따르는 유대교와 충돌되는 부분은 오직 율법과 성전뿐이다. 그러나 복음이 이방인에게 증거되기 시작할 때, 헬라인과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할례문제가 나오게 된다.

둘째, 나무에 달려 죽은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받은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메시아로 확신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율법과 유대교를 모욕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갈3:13; 고전1:23; 갈5:11) 바로 이 두 가지가 옛 언약 하에 있던 모든 유대인들의 생각이었다.

복음은 역사적 십자가 사건과 그 사건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사건은 새 언약의 성취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새 언약 하에서 옛 언약인 율법과 성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복음의 내용을 이루게 된다. 다메섹 계시를 통해 복음을 받게 된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언약과 계시가 완성된 새 언약의 성취 입장에서 십자가 복음으로 옛 언약(할례, 율법, 성전)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울이 십자가 사건과 그 의미를 설명하는 복음 증거의 내용이었다.

2. 할례 율법 성전에 대한 새 언약의 해석

2.1 아브라함 자손에게 주신 할례

구약/유대교 : 아브라함 자손에게 주신 구원(하나님 백성됨)의 증표이다.
신약/기독교 : 참 아브라함 자손은 마음의 할례 곧 예수의 대속적 죽음을 자기의 죄 사함을 위함으로 믿는 모든 인류이다.

할례는 아브라함 언약(창12:1-3)의 증표이며 그 특징은 개인적 구별에 있다.(창17:1-14) 할례를 행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창17:7)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의 근원 열국의 아비로 삼으셨고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축복하셨다. 이것이 아브라함 언약이다.(창12:1-3) 구약은 아브라함의 여덟 자녀 중 사라에게서 태어난 이삭을 아브라함 자손으로 지목하고, 또 이삭의 아들 야곱과 그의 열 두 자녀들로 제한한다. 할례는 아브라함 자손 됨의 증표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할례받은 혈통적 아브라함 자손인 유대인으로 국한시켰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직계자손인 열두지파만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녀로 인정하고 하나님은 자신들에게 아브라함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으로 알았다. 땅의 모든 족속이 유대인을 통하여 복을 받고, 하나님은 오직 유대인들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을 주심으로 믿었다. 이러한 복은 영적인 복도 포함하지만 주로 일반적 육신적 축복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 나온다. 선민사상은 타민족에 대한 우월의식에서 나왔고 배타의식으로 흘러간다.

새 언약은 유대인들의 선민사상과 배타의식을 거부하며 아브라함 자녀는 할례를 행한 혈통적 자녀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신 축복은 유대인이 아닌 예수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는다는 것이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됨에 대한 증표로 마음에 행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였다.(롬2:28)

할례는 이미 의롭다 칭함받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지 할례를 행하면 하나님 백성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것이 복음과 일반종교의 차이이다. 이미 신분적으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에게 거룩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복음에서 윤리는 구원의 결과로 동반되는 것이지 구원의 조건은 되지 않는다. 일반 종교는 모두 윤리가 구원의 조건이 된다.

2.2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율법

구약/유대교 :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 백성 되는(구원의) 행위규범이다.
신약/기독교 : 참 이스라엘은 율법의 마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새로운 백성들이다.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모세언약으로 그 특징은 민족적 구별에 있다.(출19:1-24:8) 율법을 지키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출19:6)

아브라함 언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개인과 맺은 언약임에 비해 모세 언약은 그 수가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남자 장정만 육십만명으로 늘어난 이스라엘 민족(열 두 지파)과 맺은 집단적 언약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그들 민족이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 되는 의미는 똑같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 이삭과 그 아들 야곱의 열 두 자녀를 큰 민족으로 만드시고 그들 전체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겠다고 하셨다. 율법은 하나님이 이미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것처럼(창15장) 이스라엘이 430년간의 애굽 포로생활을 끝내고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주신 언약이다. 이미 출애굽해서 하나님 백성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계명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시고 그 명령을 지키면 하나님 백성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 되는 특별한 민족으로 보았다. 율법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됨을 입증하는 규범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모두 부정하고 더러운 백성으로 여겼다. 거룩함의 기준이 없는 이방인들은 실제로 영적, 육신적으로 모두 더러웠다. 이방인들과 비교해서 종교적 도덕적 우월성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할례와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의 자부심으로 자리잡고 우월의식을 갖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새 언약은 유대인과 이스라엘 백성의 선민사상 우월의식을 거부하며 참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을 지키는 혈통적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새로운 백성이라 말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시기 때문이다.(롬10:4)

여기서 율법도 하나님 백성되게 하는 조건이 아니라 이미 유월절과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 백성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백성답게 살라는 삶의 규범이었다.

2.3 유대인들에게 주신 성전

구약/유대교 : 유다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 백성 되는 장소
신약/기독교 : 참 유대인은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셔 성전 삼은 신약교회이다

성전은 유다백성 들에게 주신 다윗언약으로 그 특징은 국가적 구별에 있다.(삼하7:13-14)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삼하7:13)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으려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언약이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다. 하나님은 다윗 왕을 대표로 다윗왕국(유다왕국, 유대인)과 언약을 맺으시는데 하나님은 성전에 거하시고 다윗 왕국의 백성이 성전에 계신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행하면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왕상9:1-9)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삼하7:13-14)

아브라함 언약(할례)과 모세 언약(율법)은 다윗언약인 성전에서 비로소 국가적 언약으로 집약되는데 유대인들은 바로 할례와 율법을 지키며 성전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섬김으로 다윗왕국에게 주신 영원한 축복을 받을 것으로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할례와 율법 성전을 통한 구별은 유대인들에게 선민사상을 갖게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본래 의미가 아니었다. 선민사상은 인간의 죄성 때문이었다. 유대인 선민사상은 배타의식, 우월의식, 그리고 지배의식을 거쳐 마침내 육신적 정복신학으로 귀결되었다. 유대인들은 다윗왕국의 축복을 정복자로 오실 다윗의 후손 메시아에 의해 완성될 것으로 기대했다.

새 언약은 유대인들의 선민사상 지배의식을 거부하고 유대인들의 이방인 정복신학을 부인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는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유대인의 왕국을 강대하게 하는 자가 아니었다. 온 인류의 하나님을 거부한 아담의 원죄를 해결할 대속제물로 오신 분이셨다. 참 유대인, 참 다윗왕국의 백성은 할례, 율법, 성전을 지키는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순종하는 새로운 백성들이다.

2.4 회복될 하나님 백성에게 주실 새 언약

구약/유대교 : 말세에 하나님 백성 유대인들에게 부으실 하나님의 영과 이스라엘의 회복
신약/기독교 : 참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 십자가로 죄 사함 받고 성령이 임하신 그리스도인들이다.

새 언약은 하나님의 영의 임재로 그 특징은 죄와 사망에 잡힌 사단의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고, 그 범위는 모든 인류이다. 그 결과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렘31:33)

새 언약은 이스라엘의 포로 회복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글에서 나온다. 선지자들은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겠다는 언약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그들에게 새로운 언약을 주시는데 이는 옛 언약처럼 돌에 새기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사람들 마음에 부어주심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시고 다시 하나님 백성이 되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렘33:31-33) 이때가 바로 주의 날, 여호와의 날, 말세이다. 유대인들은 이 날이 오기를 지금도 기대하고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십자가 사건으로 이 날이 이미 도래하였다고 말한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베드로의 설교가 바로 그것이다.

“이사야40-66장 네 번에 걸친 여호와 종의 노래, 그리스도 대속을 통한 하나님 백성의 회복 예언”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33:31-33)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36:24-28)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욜2:27-32)

예수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선지자들이 예언한 새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체험한 초대교회는 그 후부터 구약의 모든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예언을 예수 그리스도와 또 그를 믿는 신약교회와 연결시켜 해석하기 시작했다.(갈6:16)

여기서 초대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 성자 하나님이시고, 구약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해 오리라고 예언한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할 자료는 무엇인가? 우리는 초대교회가 증거한 이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고, 또 오늘의 유대인들과 불신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유대인들은 우리의 구약해석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불신자들은 우리 간증체험을 객관성이 없다고 거부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복음의 사실성을 어떻게 우리 자신이 확신하고 또 증거할 수 있을까? 예수 부활이다. 예수의 부활은 신자나 불신자에게 모두에게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큰 증거가 된다. 만약 부활이 허구라면 기독교는 무너질 것이고, 부활이 사실이라면 모든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전15:12-20) 그래서 초대교회는 십자가 사건의 의미와 그 십자가 사건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부활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미5:2 예수 그리스도의 베들레헴 탄생 예언
호11:1 애굽 피신 예언
학1-3장 이스라엘 성전회복
슥2장 성전 회복
슥9:9 나귀타고 예루살렘 입성
슥11:12 은 30에 팔리심
슥11:13 은 30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삼
말3:1, 4:5-6 세례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함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맺으신 옛 언약은 유대인들의 한계로 거룩한 하나님 백성을 만들 수 없었다. 그것은 언약으로 주신 할례, 율법, 성전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 본성 속에 내재한 죄의 부패성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할례를 통해 몸에 영구한 흔적을 남기고, 율법을 지켜 부정함을 피하고, 성전 제사를 통해 매번 죄 사함을 받아도 그 거룩함은 행동을 잠시 제어하는 정도의 표면적이고 한시적일 뿐 내면을 전혀 바꾸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아담의 원죄 곧 인간의 부패한 본성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말세 때 새 언약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겉과 행동으로만 율법을 지켜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내면적으로 완전히 변화시켜 거룩해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일은 거룩하신 영,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심이다.

그러나 거룩케 하는 영이신 성령께서는 죄인 가운데 거하실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범죄한 첫 아담의 후손으로 법적 죄책을 가졌으며, 또한 실제적 오염된 아담의 후손이요 형벌 받을 아담들인 모든 인류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우리에게는 “죄 값을 치름”, “지금 죄의 세력을 이김” 하나님께는 “죄를 사해주심”이 필요했다.

새 언약은 옛 언약처럼 몸의 흔적, 돌판, 건물 같은 것에 언약을 새겨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됨을 말하지 않고 -그것은 인간 본성이 부패함으로 불가능하다- 우리 마음에 성령으로 새겨 주셔서 모든 인류 가운데 거룩해진 새로운 하나님 백성의 탄생을 예언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이었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을 통해 죄 사함 받고 거룩해진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 이들이 진정한 하나님 백성, 영적 아브라함 자손, 참 이스라엘, 다윗왕국의 유다백성들이다. 모든 선지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 초대교회의 해석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약의 언약대로 할례를 행하는 아브라함 자손,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 민족, 성전 제사를 드리는 유다 백성 곧 자신들로 보았다. 이방인과 구별되는 하나님 백성이란 자부심, 그 자부심을 지켜주는 할례, 율법, 성전 이 세 가지는 유대교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혈통적 유대인들만 하나님 백성됨에 대한 유대교 선민사상을 정면으로 지적하며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언약(렘31:31-34)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이 기독교였다. 초대교회는 새 언약에 근거하여 예수 십자가를 받아들여 죄 사함 받아 의롭다 칭함 받고 거룩해진 백성 즉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새로운 신약교회가 구약이 말하는 진정한 하나님 백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복음은 옛 언약 속에서 주어진 할례와 율법 성전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새 언약의 의미로 해석하여 영적인 할례(롬2:28), 율법의 마침 그리스도(롬10:4), 마음의 성전(고전6:23), 성도의 공동체 성전(고전3:16)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믿고 순종하는 신약교회가 바로 영적 아브라함 자손, 영적 이스라엘 민족, 영적 유다백성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갈6:16)

이제부터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의 혈통적 우열을 따지는 차별이 없어졌다. 온 세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민족적(히브리인 헬라인), 구속사적(유대인 이방인), 신분적(주인 노예), 성별적(남자 여자) 차별이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백성만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 백성, 하나님 자녀임을 주장하는 것이 초대교회 복음이었다.(갈3:28, 엡2:19)

수천 년 동안 옛 언약의 전통 속에서 살아온 유대인 초대교인들에게 어떻게 이런 엄청난 구약의 해석과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강림은 십자가 부활사건을 재확인 해주었으며 이것이 바로 말세에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 하신 새 언약의 성취임을 확신시켜 주었다. 또한 바울은 자기가 증거하는 복음은 다메섹에서 나타난 주님께서 직접 주신 계시라고 강조한다.(갈1:12)

따라서 기독교 복음은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죄인된 인류가 다시 하나님 백성 됨”이고 그 핵심 내용은 죄 문제 해결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 있는 죄를 해결하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내용이다. 율법과 행위를 통해 의로워지려고 하는 것이 유대교를 포함한 일반종교들이고, 원죄의 본질을 파악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을 때만 죄 사함이 가능하고, 죄의 세력을 이기며, 의로워 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기독교 복음이었다. 이것을 가장 강력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한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고, 가장 잘 설명된 그의 서신이 바로 로마서이다.

<요약>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지는데 구약이란 새 언약(신약)의 관점에서 바라본 옛 언약이다. 선지자들은 언약을 파기하고 멸망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새 언약을 주셔서 다시 하나님 백성으로 회복될 것을 예언하였다.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다르게 물리적 존재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심으로 새겨 주신다. 이것은 메시아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루어 주시고 이때가 바로 여호와의 날, 주의 날, 말 일... 이라고 예언하였다.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한 초대교회는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아 그리스도였고 신자들 속에 임한 성령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신 지금이 선지자들이 말하던 말세라고 설명한다.(히1:1-2) 이것이 새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모르고 옛 언약을 육신적으로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여 옛 언약(할례, 율법, 성전)을 영적으로(성령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요4:24) 지키자고 증거된 초대교회 복음의 핵심이었다.

-------------------------------------
"십자가 복음의 영광"에 나오는 모든 글 인용 출처와 각주들이 아래한글 파일을 HTML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모두 지워져 버렸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복음은 어느 개인과 교회의 창작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초대교회와 바울이 우리에게 전해준 복음입니다. 어거스틴, 칼빈등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이 피흘리며 지켜온 복음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지금도 신학교에서 교수님들을 통해 가르쳐지고 있고, 어릴적 교회 목사님들과 우리 부모님들을 통해 배워온 복음입니다. 이 복음 이외에 다른복음은 없습니다.(갈1:8)

본 내용은 복사방지탭이 걸려있지 않고 모든 사람이 가져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사랑하고, 후대들에게 가르치려는 의도라면, 상업적 의도와 도용, 저자의 의도를 왜곡하는 일만 없다면 얼마든지 가져가셔서 사용해도 좋습니다. 십자가 복음이 널리 전파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