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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he Lord Presbyterian Church</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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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2026. 7. 19. 주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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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img src="https://gospel323.com/wp-content/uploads/2026/07/image002-2.jpg" alt="" width="1200" height="1020"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179" />]]></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19 Jul 2026 18:55: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7"><![CDATA[주보자료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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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오경(30)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레1:1-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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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wYkLVpxNMFI?si=XCkJfWL0Zkj-8dGE"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strong>온라인 예배 실황은 월요일에 주일설교 말씀만 남겨 두고 삭제됩니다.</strong>

<div style="text-align:justify;"><b>오경</b><b>(30) - </b><b>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b><b>(</b><b>레</b><b>1:1-9)</b>

<b>1. 성막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함</b>

(1) 금송아지 사건 – 율법(십계명)과 성막을 주신 이유

-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과 성막을 주신 이유를 보여준다. 그들은 애굽에서 속량구속 되어 나왔지만 여전히 애굽의 관습과 종교에 젖어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열 가지 기적과 유월절, 홍해를 건넌 지 불과 50일 밖에 안됐다. 그런데도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이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 자기들 수준으로 하나님을 만들고 믿는다.

-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는다. 구원의 길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도 없다. 그들이 가진 종교심은 죄의 욕구를 투사하는 우상을 만든다. 자기의, 자기소견, 자기주인됨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고 하나님이라 부른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사람이 만든 모든 종교는 예배 형태와 구원 방법 등 다양하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사람 스스로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도달하려 함이고, 그 위에 소원성취라는 달콤한 매력이 가미된다. 거기에는 절대로 구원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과 제사장 희생제물 절기를 구원의 길로 주신 이유다.

<b>2.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b><b>예배</b>

(1) 구약제사의 기본은 희생제사이며 그 의미는 속죄이다.

- 레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 첫째 하나님께 예배(제사) 드리는 법이다.(1-10장) 하나님은 제사를 명하셨다. 백성은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나아오고 삶에서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하게 살아간다. 예배 중심의 삶이다.(1-7장). (대)제사장(8-10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적 제사장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 예배에는 반드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셔야 한다.

- 둘째, 하나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법이다.(11-27장)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신다. 거룩함이 없다면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다. 피조물 개인에게 거룩함은 부정결한 더러운 환경에서 벗어나는 정결법(11-15장)과 내면적 더러운 죄에서 벗어나는 성결법(18-20장)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거룩히 드리는 헌신법(21-27장)으로 유지한다.

- 레위기의 중심은 16장과 17장이다. 그것은 대속죄일에 드려지는 속죄제사와 그 속죄제사에서 뿌려지는 피의 의미다. 피흘림이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고 거룩을 유지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 히브리서는 레위기 17장 11절을 인용하며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히9:22) 말한다.

- 봉헌자가 직접 짐승에게 안수하여 죄를 전가하고 죽인다. 성막에서 드려지는 희생제사들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봉헌자가 안수한 후 직접 짐승을 죽이는 것이다. 이는 죄의 결과인 죽음의 책임이 제사장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봉헌자는 죄에 대한 무서운 심판과 자기 대신 죽은 대속제물의 의미를 깊이 체험하게 된다.

- 제사장은 그 피를 받아 단에 뿌리고 제물을 태운다. 희생제물은 봉헌자가 죽이지만, 제사장은 봉헌자가 죽인 짐승의 피를 받아 제사예식에 따라 번제단 사면에 피를 뿌리고 제물을 제단에 태운다. 제사의 핵심은 피뿌림에 있으며, 이 피뿌림은 제사장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피뿌림에 의해서만 속죄가 이루어진다. 중요한 점은, (대)제사장은 죄인의 대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중보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함이다.

- 하나 더, 로마카톨릭에서 미사(예배)는 레위기 희생제사의 연속이고 사제는 레위기의 제사장 직무와 구조적 연속성이 있다. 그러므로 사제의 중요한 역할은 제단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나타내는 성체성사를 집례 하는 것이다. 물론 십자가 희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현재화 함이다. 카톨릭 예배의 중심은 전례와 성찬례에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제가 집례 하는 성찬을 통해 오기 때문이다. 설교는 성체성사를 집례 후 그 의미를 해설하는 요소이다.

- 개혁교회는 목사를 구약의 제사장과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희생으로 레위기의 제사와 제사장 제도는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제사장도, 새로운 희생제사도 필요치 않다.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라 말씀과 성례를 맡은 교회의 공적 사역자이다. 이미 완성된 십자가 희생을 말씀을 통해 선포하고 성례(세례와 성찬)를 통해 그 은혜를 교회에 전달하는 사명을 감당한다. 개혁교회는 말씀강론(설교)이 예배의 중심적인 은혜의 방편이다. 목사는 새로운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말씀으로 선포하는 사역자이다. 이것이 개혁교회가 설교를 예배의 중심에 두는 이유이다.

(2) 구약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 완성되었다.

- 번제는 제물의 모든 것을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 번제는 제물의 모든 것을 태워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듯이 봉헌자가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까지 온전히 드림을 나타내는 헌신의 제사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번제물로 드리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 속죄제는 하나님께 죄용서를 받기 위해 반드시 드려야 하는 의무제이다. 그 특징은 피뿌림의 방식이 다른 희생제사처럼 단사면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향단 뿔에 바르고 성소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리거나(제사장, 회중), 번제단 뿔에 바르고 번제단 밑에 쏟는 것에(족장, 평민) 있다.

-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3)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란?

- 첫째, (속죄제) 예배는 죄용서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이다. 하나님은 예수 십자가 앞에서 자기 죄를 회개하고 죄용서 받은 자들의 예배를 받으신다. 예배는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4)

- 둘째, (속건제) 죄용서를 구함은 하나님께 대함만이 아니다. 이웃에게 죄를 지었을 경우 그에게 손해 입힌 것의 1/5을 더하여 120%를 갚는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지은 죄를 용서받고 거룩해진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이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8)

- 셋째, (번제) 예배는 구원받은 자로서 우리의 삶 전체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의 삶을 성령을 따라 죄를 이기며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 넷째, (소제) 예배는 우리의 몸과 마음의 헌신만이 아니라, 우리가 수고해서 얻은 모든 소산물과 소유까지도 구체적으로 함께 드린다. 헌금은 은혜주신대로 최선을 다해 감사함으로 드리되 마음에 부담이 되는 정도가 되면 안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

- 다섯째, (화목제) 예배는 하나님과 화목케 될 뿐 아니라 이웃과의 화목을 가져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리고 우리와 이웃 사이에 막혀있던 모든 담을 제거하신 화목제물이 되셨다. 예수님은 예배 전 먼저 이웃과 화해하라고 하신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2:1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b>&lt;</b><b>결론</b><b>&gt;</b><b>그리스도 안에서</b><b>, </b><b>그리스도와 함께</b><b>, </b><b>그리스도와 합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자</b><b>.</b>

</div>]]></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19 Jul 2026 18:54: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3"><![CDATA[주일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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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2026. 7. 12. 주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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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12 Jul 2026 16:12:0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7"><![CDATA[주보자료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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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오경(29) -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다 (출40:34-3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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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ladaNfXMmiI?si=nGEQbiF-ol7LuMP8"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strong>온라인 예배 실황은 월요일에 주일설교 말씀만 남겨 두고 삭제됩니다.</strong>

<div style="text-align:justify;"><b>오경(29) - </b><b>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다 </b><b>(</b><b>출</b><b>40:34-38)</b>

<b>1. 새언약을 예표하는 십계명</b>

(1) 구약 이스라엘의 역할

- 구약 이스라엘은 아담의 죄로 오염된 죄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 구속경륜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경륜을 회복하도록 예표적으로 세우신 하나님 백성의 모델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구약 이스라엘의 탄생은 출애굽 구원과 시내산 언약체결로 역사 속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모든 인류들을 향한 구원계시를 주셨다. 율법과 성막/성전을 주시며 하나님 나라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계시하셨다.

- 율법은 하나님 백성이 행해야할 의(옳고 맞고 바른 것)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율법은 에덴에서 잃어버린 의로움을 제시하며 구원받은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려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해준다.

- 하나님은 십계명을 친히 두 돌판에 새겨서 모세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성막 지성소에 그 십계명 돌판을 두시고 언약궤라 부르셨다. 아담의 죄로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고 상실한 죄인들에게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내면적 성품을 하라 하지말라는 열 개의 계명의 형태로 말씀해주신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 속죄의 피를 흘리시고 새언약의 성령을 부어주셨다. 구약 이스라엘은 구속사적인 역할을 다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언약의 하나님 나라 신약교회가 출범했다. 그렇다면 구약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과 신약교회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성도는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 율법은 윤리도덕법, 국가사회법, 종교의식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영원히 지켜야 할 법이 있다. 십계명(윤리도덕법)이 바로 그것이다. 십계명은 죄인들에게 하나님 형상을 요구하는 율법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십계명을 완전히 지키고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십계명을 완전히 지키신 둘째아담 이전에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에게 십계명(윤리도덕법)은 영원히 유효하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셨다.(마5:17) 예수님 믿고 성령 받으면 율법을 온전히 지키게 된다.

- 국가사회법(시민법)은 십계명을 BC 15세기 출애굽 신정국가에 적용한 율법으로 오늘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노비해방법, 토지보존법, 동형보복법 등의 율법은 이웃사랑의 정신만 남고 종결폐지 되었다. 종교의식법은 십계명을 지키며 하나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려다 죄를 짓게 될 때 죄용서 받도록 하신 율법이다. 율법이 예언한 대로 예수님이 오셨고 십자가와 부활(성령강림)으로 죄인이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 신약교회가 탄생되었으므로 종교의식법은 그 역할을 다하고 종결폐지 되었다.

<b>2.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다</b><b>.</b>

(1) 성막을 주신 이유

- 출애굽기 열세 장에 걸쳐 모세가 받은 성막의 식양과 성물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계시 받은 내용을 기록하고(25-31장) 모세가 그대로 만들었다고 기록을 중복한 것은(35-40장) 그만큼 성막은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성막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신 그대로 만들었다. 사람의 어떠한 조언이나 도움도 개입될 수 없다.

- 이스라엘은 정월(아빕월) 15일 고센을 떠나 출애굽하고 오순절에 시내산에 도착한 후 율법을 받고 하나님 백성으로 언약체결예식을 했다. 이스라엘은 계속 시내광야에 머물러 있었고 모세는 그들에게 율법과 성막규례를 가르치며 1년을 보낸다. 금송아지 사건은 바로 그 시내광야에 머물 때 벌어진 일이다.

-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지 1년이 되었다. 그동안 성막의 구조물과 성막에서 사용될 기물들이 모두 완성되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자 하나님은 성막을 세우라고 말씀하셨고 모세는 그대로 준행한다. 드디어 출애굽 한 다음해 정월 1일에 성막이 세워진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했다. 모든 백성이 볼 수 있도록 구름기둥 불기둥이 성막 지성소 위에 항상 있었다.

-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증표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는 개인적으로 함께해 주셨지만 이제부터는 구약 이스라엘을 하나님 언약백성 삼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 증표가 하나님께서 백성들 가운데 성막을 세우시고 그곳에 거하시는 것이다.

- 한마디로, 구약 이스라엘은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은 성막 지성소에 임재하셨고, 백성은 성막을 중심으로 사면에 진을 치고 거주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중앙에 있었다. 열두 지파들은 성막을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에 각각 세 지파씩 위치했다. 그리고 백성의 이동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 성막을 앞세우고 따라갔다.

- 성막과 성전이 완공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가득히 임했다.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 성전은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심이 무엇인지 실제로 보여주시는 구약 하나님 나라 구원계시의 정점이었다. 성막은 백성들의 삶 중심에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하나님 백성이었다.

(2)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을 떠나시고 성막/성전은 폐하여 졌다.

- 광야 40년을 마치고 가나안에 정착 후 성막은 약 300년을 실로에 세워져 있었다. 실로의 성막은 엘리의 불량한 두 아들 제사장에 의해 큰 변화를 맞는다. 두 아들은 블레셋과 벌어진 아벡전투에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져왔고 블레셋에 빼앗긴 것이다.

- 언약궤를 빼앗긴 이후 실로는 블레셋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훗날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파괴의 모델로 사용된다.(렘7:12, 렘26:6) 언약궤와 성막은 분리되어 약 100년 동안 다른 곳에 거하게 된다.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서 약 70년을 거한 후 최종 예루살렘 다윗의 장막에 거하고, 모세의 성막은 놉 땅의 제사장들에게로 갔다가 기브온 산당으로 옮겨진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하나님의 성막은 기브온 산당에 있었고"(대상21:29) 또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는데 거기에는 모세가 만든 회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대하 1:3-6)

- 언약궤와 성막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데, 왜 하나님은 약 100년 동안 이중성소가 되도록 하셨을까? 하나님은 다윗의 장막에 거하셨고, 또 기브온 산당에 있는 성막제사도 받으셨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언약궤가 없는 기브온 성막에서 일천번제 드리는 것을 받아주셨다. 기브온 산당의 성막과 예루살렘 다윗의 장막의 이중성소는 시온산 예루살렘에 세워질 하나님 나라로 발전하는 구속사의 전환기이며 과도기적 사건이다.

- 약 100년간 떨어져 있던 성막과 언약궤는 다윗에 소원대로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에서 만나게 된다. 하나님은 솔로몬 성전이 완공되고 언약궤가 안치될 때 다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다. 이로서 시내산 성막계시가 시온산 성전계시로 발전하여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계시로 더욱 선명하게 밝혀지게 된다.

- 왕상8:10-11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 솔로몬 성전의 봉헌식은 언약궤를 안치하는 예식이었다. 건물건축이 모두 완성됐어도 언약궤가 없다면 성전이 아니다. 건물성전은 지성소에 하나님이 직접 주신 십계명 두 돌판을 모셔둔 건물일 뿐이다. 하나님은 솔로몬 성전에 언약궤가 안치될 때 모세의 성막이 세워질 때와 동일하게 구름으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다.

- 이스라엘 멸망기에 솔로몬 성전은 점점 우상숭배의 장소가 되기 시작했다. 아하스가 그 시작이었다. 아하스 이전부터 우상숭배는 있었다. 솔로몬 말년에 이미 멸망산 산당을 세워졌고 그모스와 몰렉 아스다롯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왕하11장) 그러나 이 우상들은 예루살렘 성전 밖에 있었다. 성전 자체가 우상숭배 장소는 아니었다.

- 그런데 아하스는 아무도 감히 하지 못하던 무서운 일을 했다. 예루살렘 성전에 다메섹에서 본 앗수르 우상제단을 그대로 설치한 것이다. 아하스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놋제단을 치우고(왕하16:10-16) 하나님의 전의 기구를 모아 부수고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아버린다.(대하28:24) 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공식적으로 우상종교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첫 사건이었다. 이후 우상숭배는 므낫세에 의해 절정에 이른다. 므낫세는 성전 안에 우상을 세워 예루살렘 성전을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만든 왕이다. 이것이 성전파괴와 예루살렘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 참고로 아하스는 히스기야의 아버지였고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우상숭배의 절정을 달렸는데 유독 히스기야만 바른 신앙을 가졌을까? 히스기야에게는 이사야 선지자와 미가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선지자는 히스기야와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전함으로 종교개혁의 큰 배경이 되었다. 요시야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시야 때에는 예레미야와 스바냐 선지자가 있었다. 또한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어 왕과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되었 유다 역사상 가장 철저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3) 하나님의 영광이 에스겔의 새성전 곧 신약교회에 임하셨다.

-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 오랫동안 권고 책망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셨다. 그들이 계속 거부했고 하나님은 예루살렘 멸망과 솔로몬 성전의 파괴를 선언하시며 새로운 참된 성전을 세우시겠다 말씀하신다.

-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는 우상숭배 현장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시는 환상을 보여 주셨다.(겔11:23) 이후 성전은 바벨론 느브갓네살에 의해 파괴된다.

- 성전파괴 후 에스겔은 성령의 능력으로 회개하고 새로워진 이스라엘 백성이(36장) 마른 뼈에서 율법을 따라 죄를 이기는 새로운 백성으로 살아나고(37장) 그들이 하나님의 큰 백성이 되는 것을 새성전과 예루살렘 성의 모습으로 예언한다.(겔40-48장)

- 에스겔은 예루살렘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심을 환상으로 보았고(겔11장) 새언약의 성령으로 새워진 새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심을 환상으로 본다.(겔43:1-10) 하나님의 영광은 스룹바벨 건물성전에 임하지 않았다. 헤롯이 증축한 성전에도 임하지 않았다. 스룹바벨성전에는 언약궤가 없고 하나님의 영광도 임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일까? 건물성전은 이미 솔로몬성전 하나로 끝났다. 스룹바벨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임재의 장소가 아닌 그리스도와 새언약의 성령을 기다리며 신약교회를 준비하는 이정표로서의 성전이었다.

- 에스겔이 예언한 하나님이 지으실 새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신약교회였다. 하나님의 성령은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모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임했다. 약 83년에 걸쳐 엄청난 규모로 화려하게 지은 헤롯증축성전에 임하지 않았다. 요세푸스 기록에 따르면 헤롯은 약 1년 6개월동안 성전본체를 개축했고, 부속건물은 약 8년 만에 완성했다. 그후 헤롯은 성전을 계속 크고 화려하게 확장공사를 했고 AD 63-64년경에 최종 완공되었다. 헤롯성전은 AD 70년 로마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다. 완공 후 6-7년 만에 파괴된 것이다.

-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찬 새예루살렘성전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예언한다. 그것은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였다. 곧 구원받은 성도들 신약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사도요한은 이 예루살렘 성을 어린양의 보혈로 정결케 되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교회로 가르친다.(계21-22장)

<b>&lt;</b><b>결론</b><b>&gt;</b><b>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b><b>(</b><b>고전</b><b>3:16)</b>

</div>]]></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12 Jul 2026 16:07:2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3"><![CDATA[주일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 7. 5. 주보]]></title>
			<link><![CDATA[https://gospel323.com/?kboard_content_redirect=1469]]></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gospel323.com/wp-content/uploads/2026/07/image002.jpg" alt="" width="1200" height="1020"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171" />]]></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05 Jul 2026 17:08:5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7"><![CDATA[주보자료실]]></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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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오경(28) - 금송아지 하나님과 선악과 범죄 (출32:1-14)]]></title>
			<link><![CDATA[https://gospel323.com/?kboard_content_redirect=1468]]></link>
			<description><![CDATA[<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mMuV2oILSL0?si=jsDCZJjoQBMJu714"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strong>온라인 예배 실황은 월요일에 주일설교 말씀만 남겨 두고 삭제됩니다.</strong>

<div style="text-align:justify;"><b>오경(28) - 금송아지 하나님과 선악과 범죄 </b><b>(</b><b>출</b><b>32:1-14)</b>

<b>1.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b><b>.</b>

(1) 하나님만 섬기는 방법

- 첫째, 하나님을 형상우상으로 만들지 말라. 하나님을 형상우상으로 만들면, 내가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조종하게 된다. 이것은 사람들 케이스에 따른 임상결과가 아닌 모든 사람 본성에 있는 죄의 결과이기에 필연이다. 죄의 본성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하나님을 부리려고 한다.

- 둘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로 인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다운 거룩한 삶을 살아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 가운데 존귀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기도문의 첫 번째 간구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의 삶을 실천하는 길이다.

- 셋째, 하나님이 너의 창조주이심을 알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안식일 규례는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창조경륜 회복과 출애굽 속량구속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죄의 본성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안식을 기억하지 않고 돈과 풍요를 좇아 끊임없이 다른 일에 몰두한다. 안식일 규례가 주로 노동금지에 맞춰있는 이유이다.

<b>2. 금송아지 하나님과 선악과 범죄</b><b>.</b>

(1) 백성들이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만들었다.

-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40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1절)

- 금송아지 우상은 분명 그들이 애굽에서 섬겼던 황소 모양의 신 아피스(Apis)를 닮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들은 아피스를 다시 섬기려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들은 출애굽의 여호와 하나님을 형상화하되 그 모양을 당시 사람들이 신으로 추앙해오던 황소의 형상으로 만든 것이다.

- 출32:4-6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 아론은 그 금송아지를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했고 내일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자고 했다.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다른 신을 섬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긴다고 생각했다.

- 백성들이 아론에게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라고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해줄 하나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물과 양식을 제공하고 대적들로부터 보호해줄 신이 필요하다. 사실 그 신이 여호와든 바알이든 상관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자가 그들의 신이다.

- 그들은 불과 약 한 달 전에 언약체결식을 했다. 모세가 십계명과 율법을 낭송할 때 그들은 황소의 피를 뿌리며 순종하겠다고 분명히 서약했다. 그들은 십계명 제2계명이 하나님을 형상우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금송아지 형상으로 만든 것이다. 그들은 그 우상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면,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주인이다. 나는 내 필요에 의해 하나님을 섬겨드리고 있는 것뿐이다. 이는 하나님이 내게 필요하지 않다면, 하나님 보다 더 잘해주는 신이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버리고 그 신을 섬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게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과 보이는 형상우상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 칼빈은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라 했다. 그 우상은 자신의 욕망이 투사된 존재이다. 하나님과 단절된 피조물의 부족과 결핍을 채우려고 죄인은 단 한번도 우상 만들기를 멈추는 법이 없다.

- 아론의 금송아지는 모세에 의해 부숴졌지만 백성들 마음속에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우상은 가나안에 정착 후 사사시대를 거쳐 왕국시대에도 계속 등장한다. 그후 분열왕국 시대에 국가적인 금송아지 우상이 또 다시 등장한다. 이는 광야 금송아지 이후 약 515년 이후의 일이다.

- 북이스라엘 열지파의 왕이 된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성전으로 가서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제단을 만든다. 그리고 여호와라고 선포한다.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이라"(왕상 12:28) 성경은 여로보암을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새로운 아론으로, 북이스라엘을 새로운 광야 반역 공동체로 말하고 있다.

- 광야의 금송아지와 벧엘의 금송아지는 하나로 연속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약파기를 보여준다. 출애굽 이스라엘이 시작된 광야에서부터, 북이스라엘 왕국이 시작될 때부터 백성들은 하나님이 말씀을 거역하고 우상을 요구하고 만든다. 벧엘의 금송아지는 요시야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왕하23장) 약 309년이나 존속되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어느 선지자를 보내 다윗 집에 요시야라 이름 하는 아들이 태어나 벧엘의 금송아지 제단을 파괴할 것이라 말씀하신다.(왕상13장) 이는 요시야가 태어나기도 약 300년 전의 일이다.

- 지금도 아론처럼 백성들이 원하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우상을 여호와라고 선포해주는 종교인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메시지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한다. 그들은 온갖 프로그렘으로 사람들의 종교욕구를 채워주고, 사람들의 죄욕구를 설교를 통해 합리화시켜 준다. 그들은 여호와의 제사장이 아니다. 제단에 붙어 살며 백성들이 가져온 제물을 먹고 사는 금송아지 벧엘 제사장들이다.

(2)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깨뜨렸다. - 처음부터 이스라엘이 옛언약을 깨뜨렸음을 보여줌

-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기며 뛰놀고 있을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서 직접 새겨주신 십계명 두 돌판을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왔다. 그는 금송아지를 여호와라 부르며 우상숭배하는 백성들을 보고 십계명 두 돌판을 던져 깨뜨린다.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 깨졌음을 나타냄이다.

-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신 하나님 나라 에덴의 선악과 행위언약을 다시 재현하는 언약이다. 증표가 선악과(율법)에서 십계명(율법)으로 바뀌었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 나라 백성 삼으심이란 점에서 같고, 그 대상이 아담 한사람에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 십계명(율법)은 선악과(율법)과 같이 하나님 나라 언약 백성의 순종여부를 나타내는 증표였다. 주의할 점은 선악과는 아담과 직접 맺은 행위언약이므로 아담의 순종여부에 따라 실패할 가능성이 있지만, 십계명(율법)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두고 맺은 은혜언약이므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내주로 말미암아 지킬 수 있게 되어 반드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단 십계명(율법)은 새언약의 성령을 부어주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질 수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십계명(율법) 두돌판은 시내산 언약이 체결되었음을 확증하는 언약증표였다. 하나님께서 직접 두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주시며 이스라엘이 언약백성임은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증표인 십계명 두 돌판을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아오기도 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2계명을 어긴 것이다.

- 금송아지 사건은 단순한 우상숭배가 아니라 아담의 선악과 사건과 비교되는 언약파기 범죄이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십계명 두 돌판을 직접 파괴했다. 개인의 분노감정이 아닌 이스라엘이 이미 언약을 깨뜨렸음을 선언한 예언적 상징행위이다. 개인의 감정폭발이 아닌 근거는 하나님께서 십계명 돌판을 깨뜨린 모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새 돌판을 준비해서 다시 시내산에 올라오라 하심에 있다(출34장).

- 아담처럼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졌다. 모세가 여호와께 속한 자는 나오라 하자 레위지파가 나온다. 모세는 그들에게 허리에 칼을 차고 이스라엘 진중에 들어가 범죄한 자들을 죽이라고 명한다. 이로 인해 범죄한 백성 약 삼천명이 죽임을 당한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부터 하나님은 백성이 범죄할 때마다 직접 징계하셨다. 금송아지 범죄 이전에는 율법수여가 없었으므로 징계기록이 없다.

- 광야 40년 동안 계속된 징계가 있었다. 민수기의 사건들은 모두 즉각적인 하나님의 징계를 동반했다. 다베라에서 백성의 불평으로 진중에 큰 불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민11장)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백성이 만나를 불평하자 메추라기를 진저리 치도록 주시고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다(민11장) 미리암이 모세의 중보자 자리를 탐내자 문둥병에 걸린다(민12장) 가데스바네아에서 불신앙으로 40년 광야생활이 형벌로 주어지고 그 기간 동안 출애굽 세대는 모두 죽고 새로운 세대로 교체된다.(민14장) 모세의 사촌 고라가 회중의 지도자들을 모아 모세를 대적하자 고라와 그 가족은 땅이 갈라져 빠져죽고 반역에 동참한 백성의 지도자 250명은 분향하는 동안 여호와의 불이 나와 그들을 불사른다.(민16장)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모압평지에서 바알브올 음행사건으로 24000명이 죽는다.(민25장) 이는 모두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였다.

- 징계는 형벌이 아니다. 징계는 하나님 백성에 주어지는 성화의 과정이다. 징계가 없다면 자녀가 아니라고 했다.(히12:5-11) 여기서 징계는 형벌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다. 죄를 버리고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되어가도록 교육, 훈련, 양육할 목적으로 징계하는 것이다.

- 성도는 죄의 형벌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를 모두 담당하셨기 때문이다.(롬8:1, 히10:14) 그러나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은 징계를 배제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를 훈련하시고(히12:6), 때로는 질병이나 고난, 삶의 결과, 공동체적 책망 등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시고 거룩함으로 이끄신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징계는 남아 있는 형벌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은 자녀를 향한 언약적 사랑의 훈련이다.

- 이는 다윗의 밧세바 사건에도 적용된다. 다윗의 참회로 죄는 용서받았지만 다윗이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고치시고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징계는 시행되었다. 암논의 죽음, 압살롬의 반역과 죽음, 그의 집안에 칼이 끊이지 않는 징계가 계속되었다. 금송아지 사건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중보로 언약백성임을 유지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우상숭배의 죄를 버리도록 역사 속에서 징계를 시행하셨다.

- 바울은 이 사건을 예로 들어 고린도 성도들에게 은혜를 받은 자도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경외함으로 살아야 한다고 교훈하며(고전10장) 동시에 징계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정죄형벌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복음의 빛으로 해석한다.

(3) 하나님께서 새로운 돌판에 십계명을 다시 새겨 주신다. - 새언약의 그리스도를 예표함

- 시내산 은혜언약은 십계명(율법) 순종으로 에덴의 선악과(율법) 행위언약을 회상시키고 재현하지만, 그 목적은 인간의 순종능력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십계명(율법)은 인간의 실패를 드러내어 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려함이다. 그래서 시내산 (옛)언약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주실 때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새언약을 예표하는 사건이 된다.

- 금송아지 범죄로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 나라 언약은 파기되고 이스라엘은 진멸당할 위기에 처했다. 백성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방법이 없다. 이런 범죄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개인적으로 나라적으로 계속 반복된다. 전적부패 전적무능력한 죄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십계명(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다. 중보자 모세가 필요하다. 모세는 선지자로 불렸지만 엘리야나 이사야 같은 그런 선지자가 아니다. 모세는 왕 선지자 제사장이 세워지기 전에 이 세 직분을 출애굽 구원중보자로서 모두 감당했다. 하나님은 그를 제사장이며 왕이며 선지자로 세우셔서 우리의 구원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예표하게 하셨다.

-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직접 맺은 언약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모세를 중보자로 세운 은혜언약이었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중보자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구원하신다. 모세가 백성의 죄용서를 위해 자기 목숨을 담보로 중보기도 하듯,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담당하려 대속제물로 죽으셨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 하나님은 모세에게 새로운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을 다시 주셨다. 자기 행위로 지키는 옛언약의 십계명(율법)이 아닌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령의 능력으로 지키는 새언약의 십계명(율법)이다. 내용은 동일하지만 방법은 중보자 모세를 통해 죄용서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지키게 하시는 새언약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십계명이다. 돌판에 새겨졌던 옛언약의 율법이 성령의 법으로 마음에 새겨지는 새언약의 율법이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넉넉하게 지키게 되는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새언약의 성령을 부어주시기 전까지, 십계명(율법)은 반드시 성막/성전와 함께 주어졌다. 성막규례(종교의식법)이 없이는 죄인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소극적으로 죄 없는 상태)을 유지할 수 없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또한 십계명(율법)은 결코 죄인이 의롭게 만들지 못한다.(적극적으로 의를 행함) 그래서 십계명(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원의 결과로 주셨고 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참고로 율법이란 십계명(윤리도덕법)과 성막규례(종교의식법)과 국가사회법을 모두를 일컫는 613개 계명을 뜻하지만, 지금 우리는 율법을 좁은 의미로 십계명 윤리도덕법으로만 말하고 있다.

<b>&lt;</b><b>결론</b><b>&gt;</b><b>십계명을 지켜보려 애를 써본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아온다</b><b>. </b>

</div>]]></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05 Jul 2026 17:07: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3"><![CDATA[주일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 6. 28. 주보]]></title>
			<link><![CDATA[https://gospel323.com/?kboard_content_redirect=1466]]></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gospel323.com/wp-content/uploads/2026/06/image002-3.jpg" alt="" width="1200" height="1020"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166" />]]></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28 Jun 2026 16:19:2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7"><![CDATA[주보자료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 6. 28. 온라인 실시간 예배 - 이기은 목사]]></title>
			<link><![CDATA[https://gospel323.com/?kboard_content_redirect=1465]]></link>
			<description><![CDATA[<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IU9nWNoJGIw?si=-rp5h3FfmSkOyTNs"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strong>온라인 예배 실황은 월요일에 주일설교 말씀만 남겨 두고 삭제됩니다.</strong>

<div style="text-align:justify;"><strong>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 (롬4:1-9, 롬5:1-11)</strong>

우리는 종종 구약은 율법 신약은 복음이라는 구조로 설명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조건과 대비되는 복음으로 하나님의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함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의 구원을 얻는 믿음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증거함과 동시에 특별히 로마서 4장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를 들어서 <strong>아브라함이 받은 구원의 은혜와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감당하신 용서의 은혜를 다윗이 받은 구원의 은혜로 증거하고 있습니다.</strong>

바울은 죄인 된 인간이 얻게 된 구원을 은혜, 믿음, 칭의의 개념을 통하여 설명함과 동시에 이를 위하여 스스로 친히 감당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사하여 주시고 가리워 주시는 은혜로 함께 증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은혜, 믿음, 칭의의 내용을 보자면

<strong>은혜는</strong> 어떠한 행위나 공로로 얻어내는 삯이 아닌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4,5절)로 설명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이 <strong>은혜는 칭의의 근본적인 원인</strong>이요 이유인 것입니다.

<strong>믿음은</strong>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수용하는 태도라 할 수 있는데 3절에 <strong><em>“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em></strong>고 증거하면서 이 <strong>믿음이 바로 칭의를 얻게 되는 통로요 수단</strong>이라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strong>칭의는</strong>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합법적으로 의롭다 선언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strong>믿음의 결과요 구원받은 자의 상태</strong> 인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먼저 구약의 믿음의 본이 되었던 아브라함을 들어 복음을 설명한 내용을 살펴보면

<strong>1. 아브라함이 받은 칭의의 복</strong>

바울은 창세기 15장6절 “<strong><em>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em></strong>”를 인용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그가 도덕적으로 완벽했거나 위대한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 아님과 더불어 <strong>아브라함이 의롭다 선언 받은 시점이 그가 할례를 받기 전 즉 무할례시이었음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strong>. 이는 구원과 칭의가 할례 같은 종교적 의식이나 율법준수보다 먼저 일어났음을 뜻하며 오직 믿음만이 칭의의 조건임을 명백히 증거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다윗이 받았던 복은 아브라함이 받았던 칭의의 복과는 다른 모습의 칭의의 복이 있음을 또한 보게 됩니다.

<strong>2. 다윗이 받은 죄사함의 복</strong>

아브라함이 칭의가 시작된 모델이라면 다윗은 실패와 죄 속에서도 주어지는 칭의의 은혜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시편 32편을 인용하며 <strong><em>“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em></strong>”을 설명합니다.

사실 다윗은 밧세바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율법에 치명적인 죄를 지은 인물이었습니다. <strong>행위의 기준으로는 결코 의로울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불법을 용서하시고 그 죄를 덮어주셨던 것입니다.</strong>

이 사건을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하고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게 만든 뒤 약 1년 가까이 자신의 죄를 철저히 숨겼습니다. 겉으로는 완벽한 왕이요 의로운 자 인척 했지만 그의 영혼과 육체는 죄책감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다윗은 로마서4장7-8절의 고백(시편32:3-4)을 하기 직전 자신의 당시 상태를 이렇게 스스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strong><em>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회개하지 않고 숨길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em></strong>.”

이렇게 죄책감에 시달리던 다윗에게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strong><em>‘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은 부자</em></strong>’의 비유를 들려주며 “<strong><em>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em></strong>”고 매섭게 책망을 합니다(사무엘하12장). 이때에 다윗은 당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최고의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변명하지 않고 엎드리며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strong><em> “</em></strong><strong><em>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em></strong>

나단은 다윗의 회개를 듣고 즉시 <strong><em>“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em></strong>”라고 말해 주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선포합니다.

이러한 배경이 바로 바울이 다윗을 아브라함과 함께 소환한 이유였는데 다윗의 죄는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고의적인 살인과 간음과 같은 죄는 제사(동물의 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속한 것이었기에 오직 ‘사형’에 처해야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strong>이처럼 다윗은 율법의 행위나 종교적 의식으로는 도저히 용서받을 길이 없는 완벽한 사형수였던 것입니다.</strong> <strong>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즉 믿음만을 보시고 율법의 요구를 뛰어넘어 일방적으로 그의 죄를 덮어주신 것이었습니다.</strong>

그리고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용서를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듣게 되었을 때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 된 자신이 아무런 대가 없이 죄를 장부에서 지워주시는 하나님의 이 엄청난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서 그 감격에 겨워 부른 노래가 바로 로마서 4:7-8절이었습니다.

<strong><em>“</em></strong><strong><em>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em></strong>

이처럼 아브라함이 아무 공로가 없을 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다윗은 율법에 의해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죄사함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구약을 대표하는 믿음의 두 사람을 세워 구원은 오직 인간의 행위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칭의)로만 주어진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해 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더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우리는 칭의를 이해함에 있어서 오직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받는 은혜만으로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윗의 경우를 통하여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함을 받기 전에 <strong>하나님의 먼저 된 사랑과 용서가 있었음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strong>

우리는 우리의 죄 사함과 새 생명을 얻게 된 구원이 오직 우리의 믿음으로 값없이 거저 받은 은혜라 고백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strong>값없이 받은 구원의 은혜가 하나님 입장에서는 결코 값없이 거저 주신 은혜의 선물은 아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strong>이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생명을 내어 주시고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요 용서가 먼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가치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내가 다시 살게되었다는 생명의 가치만이 아니라 이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더 크게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로마서5:8

<strong><em>“</em></strong><strong><em>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em></strong>

이처럼 하나님의 용서는 인간이 허물과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인 된 상태에 있을 때 <strong>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와 베푸시는 주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베푸시는 은혜로서, 자격 없는 자에게 먼저 내밀어지는 손길이라는 점에서 세상의 조건부 용서와 구별됩니다</strong>.

또한 하나님의 용서는 당신의 완벽한 거룩함과 공의를 결코 훼손하지 않으십니다. 죄에 대한 심판이라는 엄격한 법적 요구를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하나님 스스로 그 삯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즉 <strong>정당한 대가가 완전히 치러진 합법적인 용서</strong>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죄를 멀리 옮기시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시는 용서 이십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의 기억에서 우리의 죄를 지우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strong>인간의 죄에 대한 법적 채무 기록을 완전히 지워버리시는 적극적이고 완전한 사면을 의미합니다</strong>.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용서를 통하여 우리를 단지 창조주를 거역한 반역을 용서받은 죄인으로만 남겨두지 않게 하시고 용서와 더불어 의롭다 칭해주시며(칭의)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완전히 새로운 신분으로 회복시켜주셔서 <strong>하나님과 단절된 죽음의 관계에서 생명의 관계로 옮겨지는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strong>.

로마서 5:10,11

<strong><em>“</em></strong><strong><em>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 하느니라”</em></strong>

이처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구원의 복을 단지 값없이 거저 받았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근거한 십자가의 대속의 값을 지불한 소중한 구원임을 증거함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함을 누릴 수 있는 근거가 됨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 하며 소망가운데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이유가 됨도 증거합니다.

로마서 5:1-6절

<em>“</em><em>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strong>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strong> <strong> </strong><strong>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strong>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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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28 Jun 2026 16:17:1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8"><![CDATA[교육과 사역]]></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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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개혁주의 종말론(12) - 신약 사도들의 종말론 - 바울 베드로 요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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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Zd0BGxwT-hc?si=hhZFM1FDB37yC4pK"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div style="text-align:justify;"><strong>개혁주의 종말론(12) - 신약 사도들의 종말론 - 바울 베드로 요한</strong>

&lt;서론&gt;여호와의 날이 도래했다. 이 세대와 오는 세대의 중첩(Overlap)

신약 사도들의 종말론은 단순히 미래에 일어날 시기적 타임라인을 나열하는 미래학이 아니다. 신약의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고 재림으로 완성되는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긴장 속에 있는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실현된 하나님 나라 종말론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은 종말론이 구원론과 기독론, 교회론을 강력하게 규정한다.

<b>서론 </b><b>1. </b><b>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b><b>. </b><b>여호와의 날이 도래했다</b><b>.</b>

선지서의 일곱 주제 - "그리스도께서(By whom), 여호와의 날에(When), 남은 자들에게(To whom), 성령을 부어주시고 새언약을 출범시키심으로(How to), 이스라엘 곧 하나님 나라(신약교회)를 회복하신다(What)."

구약선지자들 예언 - “여호와의 날에 남은 자들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새언약 하나님 나라와 이스라엘을 회복해주실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 -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그러므로 지금이 여호와의 날이다. 지금이 (구약선지자들이 말한 그) 말세다.

<b>서론 </b><b>2. </b><b>이 세대와 오는 세대의 중첩</b>

유대교 랍비들은 구약선지자들의 여호와의 날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이 세대”(올람하제)와 “오는 세대”(올람하바)의 단절로 가르쳤다. 바울과 신약의 사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대와 오는 세대가 중첩된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완전히 재해석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히브리어 올람하제(이 세대, 이 세상)와 올람하바(오는 세대, 오는 세상)는 구약성경 용어가 아니고 제2성전시대 탈무드와 미쉬나에 등장하는 정통파유대교와 랍비유대교, 현대유대교의 종말론 용어이다. 요즘 유대교 종말론 용어를 메시아닉쥬 운동가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세대주의적 이스라엘회복주의자/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이 자주 사용하고 있다. 개혁신학에서는 이 세대와 오는 세대로 표현할 뿐 사용하지 않는다.

(1) 이 세대(This Age)와 오는 세대(The Age to Come)의 성격

바울에게 “이 세대”는 단순히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율법의 정죄가 있는 세상이며, 사단의 유혹과 참소가 지배하는 죄와 사망의 나라이다.

엡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고후4:4: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오는 세대“는 죄의 세력(죄,사망,사탄)이 완전히 제거되고 성령의 충만함이 온전히 지배하는 의와 진리, 거룩과 생명의 종말론적 새창조가 이루어진 나라이다.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 새에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다.

에베소서 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 이 세대와 오는 세대의 중첩 – 게할더스 보스, 헤르만 리델보스, 리차드 개핀

당시의 유대교 랍비들은 “이 세대”가 완전히 끝나고 “오는 세대”가 시작될 것을 가르쳤다. 즉, ‘이 세대’가 역사 속에서 지속되다가 여호와의 날에 메시아가 오시면 한순간에 종말을 맞이하고, 곧바로 ‘오는 세대’가 즉시 임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세대와 오는 세대가 명확하게 구분된다. 이 세대와 오는 세대는 중첩됨이 없다.

바울과 신약의 사도들은 유대교 종말론의 두 세대 분리구조를 완전히 혁명적으로 바꾸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 미래에 속해 있던 “오는 세대”가 오늘 우리의 삶 역사 한복판으로 들어왔고 그 결과,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이 지상에는 “이 세대”와 “오는 세대”가 동시에 공존하며 중첩되는 긴장이 상태가 형성됨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구약의 여호와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되었다. 이것이 신약의 사도들이 말하는 말세의 의미이다.

고전10: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본문에서 성도가 새로운 피조물임은 한 개인의 인격 변화를 뜻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주적 의미를 갖는다. 그는 미래에 완성될 오는 세대의 새창조를 현재 이 세대에서 미리 맛보고 소유한 자들이라는 선포이다.

<b>&lt;</b><b>결론</b><b>&gt;</b><b>개혁주의 종말론의 특징 </b><b>– </b><b>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b>

(1) 구원의 보증, 성령

엡1:1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5:5)

바울은 성령을 구원의 보증(계약금/선불)이라고 부른다. 이는 미래에 완전히 도래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성령을 통해 우리가 현재 이 땅에서 먼저 미리 선불로 받아 맛보며 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소유한 것이다.

롬8:23 "이뿐 아니라 또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성령은 ‘오는 세대’의 보증이자 첫 열매이다. 오는 세대의 보증을 이미 받았으나, 성도는 이 세대의 죄악과 부패를 보며 또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 속의 죄성을 보며 탄식한다. 우리는 이미 새 창조에 속했으나, 몸은 아직 이 세대의 썩어짐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이 탄식은 절망이 아니라, 재림 때 임할 최종적 완성(몸의 구속)을 향한 거룩한 열망이다.

(2) 성령을 의지한 거룩한 삶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바울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한 이유는 그것이 도덕적으로 나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죄와 사망, 사탄의 나라에 속한 이 세대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지금 이 땅에서 살지만 오는 세대(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므로 오는 세대 하나님 나라의 의와 생명,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고전7:29-31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이 세대의 모든 가치관은 죄와 사망의 나라 것들로서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종말을 맞이한 것들이다. 성도들은 이 세상 것들에 연연하지 말고, 오는 세대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종말론적 거룩함을 유지하라고 말한다.

<b>제</b><b>1</b><b>부 바울의 종말론</b>

<b>1. 데살로니가전서 </b><b>– </b><b>파루시아</b><b>(</b><b>주의 강림</b><b>)</b><b>와 휴거</b>

(1) 우리 산 자들도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살전4:13-18)

살전4:13-18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세대주의 종말론에서 가장 중요한 휴거의 근거본문이다. 휴거란 끌 휴(携)'와 '들 거(擧)'를 사용하여, “하늘로 이끌려 올라감을 의미한다. 영어 단어인 Rapture는 ”강력한 힘으로 붙잡다“ 또는 ”낚아채다“라는 뜻의 라틴어 랍티오(Raptio/Rapio)에서 유래했다. 휴거는 주의 재림 때 교회시대에 죽은 신자들이 부활하고 지상에 살고 있던 신자들과 함께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는 사건을 말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휴거 이후 땅에서는 7년대환란이 시작되고 그리스도의 지상재림, 7년대환란때 죽은 신자의 부활, 유대인의 천년왕국, 곡마곡전쟁, 불신자의 부활, 최후의 심판, 새하늘과 새땅으로 이어지는 종말론의 진행된다. 한마디로 세대주의에서 휴거는 종말론 엔드타임의 시작점이다.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16절) 본문은 과연 세대주의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살아있는 신자(이방인 교회)들의 휴거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주의 강림(Parousia)에서 헬라어 파루시아(강림)는 고대 헬라로마 세계에서 파루시아는 황제나 왕의 공식 방문을 가리키는 정치적 용어였다. 이는 왕이 도시를 방문하면, 시민들이 성 밖으로 나가 왕을 영접하고 왕과 함께 도시로 들어옴을 뜻한다. 이것이 주의 강림에서 사용된 헬라어 파루시아의 어원적 배경이다.

주께서 강림(파루시아)하실 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살전4:17). 영접한다 헬라어의 신약 사용 예를 살펴보면 모두 귀빈을 맞이하여 함께 목적지로 돌아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부활한 성도가 부활한 몸으로 공중에서 7년을 머물며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자들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함을 "하늘로 철수하는 휴거"가 아니라 "재림하시는 왕을 맞이하여 영광스럽게 동행하는 사건"으로 해석한다. 개혁주의는 재림과 휴거를 분리하지 않는다. 주의 재림 때 우리 몸의 부활, 최후의 심판, 새하늘과 새땅, 새창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2) 그날이 도둑같이 이르리니...(살전5:1-11)

살전5:1-1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세계종말에 관한 예언을 하시며, 그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다고 하셨다. 이는 인간 스스로 계산하여 날짜를 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예수님은 종말의 날짜를 지정해주시 않으시고, 재림의 때를 노아의 때와 도둑의 때와 같다고 하셨다. 그날은 노아의 경고를 수없이 듣고도 무시하며 방탕하게 살다가 갑자기 홍수 맞아 죽게 된 사람들과 같을 것이다. 그날은 도둑이 침입할 줄 모르고 잠을 자다 갑자기 도둑맞은 사람들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항상 깨어있으라. 악한청지기(마24장) 열처녀(마25장) 달란트(마25장) 양과 염소(마25장)

바울은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를 그대로 인용하여 그날이 도적같이 이르리니 너희는 깨어 있으라(살전5:1-11) 말한다. 이는 주님이 도둑처럼 살금살금 오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님은 자기의 때에 당당하게 오시지만 불신자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주의 재림을 의식하며 늘 깨어서 빛 가운데 사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주의 재림은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 그날은 기다리고 준비하던 날이 임한 날이기에 전혀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은 슬픔과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기쁨과 소망의 날이 된다.

<b>2. 데살로니가후서 </b><b>- </b><b>불법의 사람과 배교</b>

(1) 종말의 징조 – 배교(살후2:3)

살후2:1-4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바울은 재림의 임박성을 말하며 성도들을 미혹하는 시한부종말론자들을 경계시키며 종말의 징조를 말한다. 배교와 불법의 사람 출현이다. 개혁신학은 이 두 사건을 재림 직전에 나타나는 종말론적 징조로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이미 역사 속에서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배교는 하나님에 대한 공개적 반역으로 교회가 정통진리에서 벗어나 거짓교리를 따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개인적 실수가 아니라 교리적 작업을 거친 광범위한 신앙적 반란이다. 로마카톨릭은 종교다원주의를 교리로 채택함으로 배도를 공식화했다. 개신교는 교리화까지는 아직 아니지만 자본주의 번영신학과 은사주의에 완전히 잠식당했고, 동성애 퀴어신학 정치신학 등으로 점점 배도의 길로 가고 있다.

(2) 종말의 징조 – 불법의 사람(살후2:3)

살후2: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불법의 사람” 혹 “멸망의 아들“은 바울 종말론에서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정체와 활동을 가장 선명하게 계시하는 핵심인물이다. 불법의 사람은 하나님의 법의 정면으로 거부하고 파괴하며 반역하는 인물이며 악의 결정체이다. 멸망의 아들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가룟유다를 향해 쓰셨던 명칭이다(요17:12). 이는 그의 본질이 멸망에 속해 있으며, 그의 최종적인 운명은 영원한 파멸과 지옥형벌로 정해져 있음을 말하는 종말론적 유기선언이다.

그들의 핵심 죄악은 하나님 보좌 찬탈하며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운다.(4절, 신성모독적 자기숭배) 또한 그들은 사단의 능력과 거짓 표적을 나타낸다(9절) 그는 단순히 말 잘하는 정치가나 군사 독재자가 아니다. 사단의 초자연적인 권세를 직접 부여받아 대단한 기사와 이적을 행함으로써, 수많은 불신자와 배교자들이 자신을 추앙하게 만든다. ex&gt;작은뿔 넷째짐승, 열뿔짐승, 두뿔짐승...

바울은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7절) 적그리스도의 영과 악의 세력은 바울시대부터 교회사 전체를 관통하며 배후에서 비밀리에 끊임없이 작동해 왔다. 적그리스도는 역사와 단절된 미래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흥하던 악의 세력들이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 한 인격체 안에 최종적으로 압축되고 집약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살후2:7-8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왜 이 불법의 사람이 지금 당장 온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는가? 하나님께서 그의 전면적 등장과 발악을 막고 계시기 때문이다. 개혁신학은 이를 복음전파를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때문으로 보며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일반은총적 법질서와 국가 권력으로도 해석한다. 하나님의 때가 차서 이 억제 장치를 거두실 때, 비로소 불법의 사람은 전면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은 작은뿔 넷째짐승(단7:20-27)과 열뿔짐승, 두뿔짐승(계13장)의 예표적 인물들이다. 이는 마지막 때에 등장하는 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 많은 불법의 사람이 예표적으로 계속 등장했으며 최후의 날에 그들 모두를 합친 것 같은 단 한 사람이 등장할 것이다.

(3) 종말론적인 삶 -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살후3:6-15)

살후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잘못된 종말론은 성도들에게 규모 없는 삶을 살게 한다. 성경적 종말론은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적 긴장 속에서 오늘의 삶에 충실하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b>3. 디모데전후서, </b><b>디도서</b><b>(</b><b>목회서신</b><b>) - </b><b>말세의 징조</b>

(1) 말세에 고통하는 때와 거짓 가르침(딤전4:1-5, 딤후3:1-9, 딤후4:3-4)

딤전4:1-5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후3:1-9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b>제</b><b>2</b><b>부 베드로의 종말론</b>

<b>1. 베드로전서 </b><b>– </b><b>이미와 아직의 종말론</b>

벧전1:5,20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베드로는 종말을 단순히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종말로 이해한다. 이는 종말이 곧바로 온다는 뜻보다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 인류가 마지막 구속사 시대에 들어왔다는 의미이다. 이미 실현된 종말론과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종말론이 함께 있는 것이다.

<b>2. 베드로후서 </b><b>– </b><b>재림과 심판의 필연성</b>

(1)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벧후3:4)

불신자들은 주의 재림과 심판이 없다고 비웃지만, 베드로는 첫째, 창조가 실제였고 노아 홍수가 실제였던 것처럼 재림도 반드시 실제로 일어난다고 말한다. 즉 창조 범죄 홍수(심판)의 전례대로 노아방주 새인류, 범죄, 재림(심판)이 일어난다는 구속사적 구조를 제시한다.

(2)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3:8)

세대주의자들과 안식교는 이 구절로 재림 날짜를 계산하지만, 이는 예언적 계산 공식이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뜻이다. 재림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심이라"(3:9)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이다.

(3)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벧후3:10)

첫창조와 새창조의 관계에 대한 두 견해가 존재한다. 첫째, 만유파괴론이다. 현재 우주가 완전히 소멸되고 새 우주가 창조된다. 첫창조 지구는 완전히 없어지고 새하늘과 새땅은 첫창조와 별개의 것이다. 둘째, 만유갱신론이다. 불은 소멸이 아닌 정화의 불이며 첫창조를 완전히 회복완성 하는 것이다. 아담의 죄로 더럽혀진 지구(첫창조)를 완전히 불로 태워 정결케 한 후 지구를 다시 새창조 하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지금 이 세상이 잘 정돈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불타고 없어지지만, 만유파괴론과 다른 것은 새창조는 첫창조 지구를 새하늘과 새땅으로 만드는 것이다. 개혁신학은 만유갱신론을 선호한다.

(4)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3)

베드로 종말론의 절정으로 그 핵심은 새창조이다. 죄가 없고, 사망이 없으며 저주가 없고 의의 영원한 통치인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성취된다. 이는 이사야 65-66장의 새하늘과 새땅 새창조 예언을 인용하는 것이다.

<b>제</b><b>3</b><b>부 요한의 종말론</b>

<b>1. 요한일서 </b><b>- </b><b>적그리스도</b>

(1)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요일2:18)

요일2:18-23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요한에 의하면 마지막 때가 이미 시작되었다. 요한은 1세기 초대교회 시대를 이미 "마지막 때"로 이해한다. "마지막 때"는 재림 직전의 짧은 기간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부터 재림까지의 시대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요한에게 종말은 미래의 사건만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현실이다.

(2)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요일2:18)

요한서신은 신약에서 "적그리스도"라는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적그리스도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요일2:22)이다. 1세기 후반 초대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영지주의 이단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들은 교회에서 나간 배교한 이단이며, 니골라당의 무율법주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고, 교회 성도를 끊임없이 미혹한다.

요일4:1-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적그리스도의 영이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4:3) 요한에게 적그리스도는 한 명의 미래적 인물만이 아니라 교회 안팎에서 활동하는 거짓 교사들의 영적 세력을 의미한다. 개혁주의 해석은 대체로 이것을 말세의 거짓 교사들과 배교 세력의 총체적 현상으로 본다.

(3)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요일2:19)

이단은 교회에서 나간 배도/배교의 무리이다. 요한은 종말의 가장 중요한 징조를 전쟁이나 재난보다도 배교/배도에서 찾는다. 이단은 마지막 때가 될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바울이 말한 배교(살후2:3)와 동일한다.

(4)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요일3:2)

요일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요일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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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이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으나 아직 죄의 몸을 벗은 것은 아니다.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으나(구원) 아직 부활에 이른 것은 아니다. 주의 재림 때 완전한 부활영화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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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은 이미 시작되었다. 요한은 영생을 미래에만 얻는 것이 아니라 현재 누리는 것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줄을 알거니와"(요일3:14) 이는 요한복음 5:24와 동일한 사상이다. 성도는 이미 종말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 완전한 부활생명은 아직 아니다.

<b>2. 요한이서의 종말론 </b><b>– </b><b>미혹하는 자</b><b>.</b>

(1)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요이1:7)

요이1: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한이서는 짧은 서신이지만 종말론적 경계를 강조한다. 특히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한다. 그들은 미혹하는 거짓교사이므로 멀리하고, 진리 안에 거하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라고 한다.

요이1:9-11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b>3. 요한계시록의 종말론 </b><b>– </b><b>예수님</b><b>, </b><b>바울 베드로의 종말론과 동일</b><b>.</b>

요한에게 마지막 종말계시를 기록하라 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종말계시는 복음서와 서신서의 종말계시와 다를 리가 없다. 건물성전을 자랑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을 말씀하신다. 이에 놀란 제자들이 예수님께 성전파괴와 세계종말의 징조를 묻자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며 가까운 종말 성전파괴를 말씀하시되 미래에 있을 세계종말과 함께 겹쳐서 말씀하셨다(마24장,막13장,눅21장)

주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고, 인간의 죄로 인한 개인 간의 싸움, 나라와 민족 사이에 전쟁은 더욱 일어나고, 피조세계에서는 자연질서가 파괴되어진 천재지변이 계속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끝이 아니라 재난의 시작이다. 요한계시록 종말예언은 예수님의 종말예언과 동일하다.

핍박 속에서도 복음이 온 세상으로 전파된다.(마24:14) 성전파괴 문맥 속에서 온 세상은 먼저 지중해를 둘러싼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의 로마제국 전역을 말한다. 바울이 로마제국 서편 끝인 서바나(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려한 이유다. 이 말씀대로 복음은 로마제국 전역 온 세상으로 증거 되었고 그 후에 AD70년 로마 디도장군에 의해 성전은 파괴되고 예루살렘은 멸망한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성취되었다.

또 한편 온 세상은 교회의 복음증거로 말미암아 온 세계에 복음이 증거 될 것도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복음을 못 들어서 멸망에 이르도록 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심판받는 것은 복음을 못 들어서가 아니라 복음을 거부해서다. 사도요한은 교회의 두증인 사명(계11장)을 통해 복음이 전 세계로 증거 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것을 예언했다. 복음은 성도들의 핍박과 고난, 순교의 피를 밑거름으로 삼아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될 것이다. 이 또한 교회의 두증인 환상과 동일하다.

더 나아가 바울은 온 세상에게 복음이 증거 되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고, 유대인의 남은 자들이 돌아온다고 했다(롬11:25) 말세가 되면 복음은 온 세상에 증거 되고 그로 인해 이방인과 유대인(=모든 인류)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지금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돌아오고 있고, 지금 유대인들의 남은 자들도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그 수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전 세계 모든 인류 100%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참고로, 메시아닉 쥬(유대인)과 메시아닉 젠타일(이방인)의 하나됨을 한새사람(엡2:15)이라 강조하는 신학은 매우 위험하며 주의를 요한다. 그들의 주된 사역은 한국교회를 대체신학이라 비판하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교회가 유대인 전도를 금지할리도 없고 금지한 적도 없는데 한국교회가 대체신학에 잡혀 유대인 전도금지하고 있다고 엉뚱한 비판한다. 그들은 유대인 전도를 강조하기 위해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잘못을 저지르되 그것도 용어를 잘못 선택했으며 그 내용도 틀리게 비판 하는 삼중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유대인 전도는 소중한 일이나 그것은 팔레스타인 무슬림 전도와 동일한 가치이며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 중 일부는 선을 넘어 랍비유대교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구분을 무너뜨린 십자가 복음이 아니다.

불법이 성행하며 교회 내에 거짓선지자들이 생겨난다.(마24:24) 예수님은 말세가 되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말씀하셨다. 실제로 성전파괴 전후로 거짓 그리스도들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하며 유대인 회복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도요한은 용(사탄)의 대리자 두 짐승 적그리스도를 예언했다(계13장) 그들은 사탄의 대리자로 정치권력자와 종교권력자 거짓선지자들이다. 지금은 두뿔짐승 거짓선지자가 거짓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바울도 동일하게 교회 내에서 배교와 배도가 일어나 복음은 왜곡되고 불법의 사람이 나타난다고 했다(살후2:3-4) 말세가 되면 교회 내에 배도가 일어나 십자가복음은 없어지고 다른복음 다른진리가 증거 되게 될 것이다. 거짓선지자와 이단들은 기적과 표적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온갖 것을 줌으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 교회는 십자가 복음을 떠나게 될 것이다.

요한일서는 말세에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적그리스도가 등장함을 말한다. 이들은 교회에서 나간 이단들로 다른복음을 전하는 거짓선지자들이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요일2:18-20) 역시 요한계시록의 두뿔짐승 환상과 같다.

<b>&lt;</b><b>개혁주의 종말론을 마치며</b><b>&gt;</b>

<b>1. 주의 재림과 세계종말의 네 가지 징조</b><b>(</b><b>살후</b><b>2:1-12)</b>

(1)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짐.(마24:12)

불법은 하나님의 법 이외의 모든 것을 통칭한다. 하나님의 법은 구원진리이며 아담의 죄를 제거하는 진리이다.(엡1:13) 그래서 구원받고 죄용서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 예수님은 말세가 되면 세상은 하나님의 법이 아닌 다른 진리로 가득차게 될 것으로 말씀하신다. 그 결과 사람들은 아담의 죄를 벗어나지 못하고 더욱 죄에 사로잡혀 이웃사랑이 식어지고 더욱 자기사랑만(=죄, 아모르수이) 하게 된다.

불법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의 법이며, 온갖 타락과 부패를 가져온다. 말세가 되면 세상은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는 불법으로 가득찰 것이다. 사람들은 철저한 무신론 인본주의 사상으로 가득 찬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사람들은 객관적 절대진리가 없이 주관적 상대진리로 혼란해진다. 그 결 과 아무 것도 따를 수 없다는 회의주의가 판을 치고 허무주의의 막다른 골목에 갇히며 일부는 신비주의에서 탈출구를 찾는다. 그들의 삶은 타락과 부패이다.

전쟁과 난리, 심지어 지진과 홍수, 천재지변, 하늘의 표적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의 죄로 피조세계가 고통을 받는다.(롬8:22) 죄는 피조세계를 더욱 훼손해서 홍수와 기근 등 온갖 천재지변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는 사람이 죄의 본성을 따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말세 때 죄가 창궐 할수록 개인 간의 싸움, 나라와 민족들 사이에 전쟁은 더욱 일어나고, 피조세계에서는 자연질서가 파괴되어진 천재지변이 계속 일어나며, 마지막에 가서는 하늘의 징조까지 나타나게 될 것이다.

(2)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돌아옴(롬11:25)

복음은 성도들의 핍박과 고난, 순교의 피를 밑거름으로 삼아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될 것이다. 복음은 온 세계로 증거 되어 이방인과 유대인(=모든 인류)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지금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돌아오고 있고, 지금 유대인들의 남은 자들도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그 수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전 세계 모든 인류 100%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2011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통계에 의하면 세계의 하루 출생 인구수는 383,040명이다. 하루마다 대략 38만명씩 불신자가 태어나는데 전 세계 모든 인구가 다 복음을 들어야 주의 재림이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성경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다고 말씀하셨지, 복음을 모든 인류가 다 듣고 난후에야 재림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다. 이는 복음이 전 세계에 편만이 증거 될 것을 말함이다.(행19:10) 지금 복음은 거의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어가고 있다. 주의 재림은 멀지 않았다.

또한 개혁주의는 로마서 11장의 “온 이스라엘”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돌아오는 “유대인 택자들의 총수”와 “이방인 택자들의 총수”가 연합된 “단일한 하나님의 언약백성(교회)”로 이해한다. 따라서 유대인의 돌아옴을 세대주의자들처럼 종말의 가시적, 정치적 징조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유대인이 돌아옴(알리야)을 제3성전 건립이나 백투예루살렘 같은 재림과 종말의 핵심 징조로 여긴다. 아니다. 유대인의 돌아옴은 바울의 가르침처럼 이방인 구원이 유대인을 시기케 하여 결국 하나님이 예정하신 모든 유대인 남은 자들이 역사 전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성령의 점진적 구속사역이다.

(3) 교회 내의 배교와 배도 – 복음이 왜곡되고 변질됨.(살후2:3)

말세가 되면 교회는 십자가복음을 떠나 다른복음 다른진리를 따를 것이다. 거짓선지자와 이단들은 기적과 표적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온갖 것을 줘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 교회 안에는 가짜 십자가(신앙과 교리)가 버젓이 서있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 니골라당의 교훈은 오늘날 사단신학의 영육이원론 방탕주의이다. 또한 바알 숭배 이세벨의 교훈은 오늘날 현대교회가 빠지기 쉬운 번영신학 우상숭배로 볼 수 있다. 로버트슐러의 적극적 사고나 조엘오스틴의 긍정의 복음은 인본주의 심리치유이지 죄 문제를 다루는 성경의 복음이 아니다. 이처럼 말세가 될수록 세상은 더욱 불법이 심해지고, 심지어 교회도 십자가 복음을 버리고 거짓진리인 다른복음을 따라가며 배교와 배도의 길을 걷게 된다. 동성연애 목사도 배도의 한 현상이다.

(4) 불법의 사람 - 적그리스도가 출현함.(살후2:4)

우리는 지금 이 시대가 계시록 20장에 언급된 사단이 마지막에 놓인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단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더욱 발악하여 사람들을 미혹케 할 것이다. 세상에 불법을 성하게 하고, 핍박으로 복음전파를 막고, 배교를 통하여 교회가 타락하도록 하는 배후에는 분명 사단이 있다.

지금 세상에는 불법이 성행되도록 하는 리더들이 있다. 그들은 정치가, 과학자, 문화 예술인, 연예인, 종교지도자들로 활동하며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 불법을 따르도록 각 분야에서 이끌어 간다. 그들의 이론과 사상으로 일반 사람들은 더욱 하나님의 법을 떠나게 된다. 세상에는 이런 슈퍼스타들이 있다.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들은 직간접적으로 사단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다.

마지막 때 나타나는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화신인 한 지도자이다. 그는 직접 사단과 통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단의 힘으로 기사와 표적을 일으키며 모든 불신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지금의 불법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은 자기 분야에서 부분적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모든 분야 모든 불신자들에 게 절대적 추앙받게 될 것이다. 그는 모든 불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더욱 세상을 따르도록 할 것이다. 바로 이 지도자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등장할 때 세상은 완전히 어두워질 것이고 이때 세계의 종말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

지금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출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막고 계시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학자들은 하나님이 막는 것/막는 자를 “복음 전파의 사명과 이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또는 정부의 법적 질서)”로 해석한다. 사단이 적그리스도를 통해 최종 발악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제도와 복음 전파를 통해 막고 계시다.

이는 더 많은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지금도 참고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지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가 점점 가까워 왔다. 우리는 복음을 떠나도록 수많은 사람을 미혹시키는 수퍼스타들을 보면서 그의 출현을 예견해 본다.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사도요한이 말한 것처럼 “이미 역사 속에 수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고(요일2:18, 점진적 출현), 그 불법의 비밀이 마지막 날에 한 인격체(사단의 화신) 안에서 ”최종적으로 집약“되어 나타날 것이다.

<b>2. 개혁주의 종말신앙과 오늘의 삶</b>

(1) 세계종말과 개인종말

세계가 끝나는 마지막 날이 있다. 모든 인류는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그때 사람이 이 땅에서 행한 모든 일들은 낱낱이 드러난다. 자기가 지내온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심판을 받게 된다. 지옥 형벌을 받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죄 없다 하심을 받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 죄는 모두 용서되고 무죄선고를 받는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구원의 보증이 되신다. 성령님은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가 제거된 거룩한 몸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간다. 본래인간의 축복이 회복된다. 지금 우리는 사망에 잡혀있는 몸이다. 선천적 장애, 사 고로 인한 불구, 질병으로 인한 쇠약함, 노화로 인한 퇴화... 이는 모두 아담의 죄로 인한 사망의 흔적들이다. 주께서 재림하실 때 죄가 제거되고 사망이 없기에 이런 모든 것들이 회복된다.

부활한 우리는 범죄이전 본래인간에게 주신 완전한 몸이 될 것이다. 우리는 내면적으 로나 외형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형상”(갈4:19) “하나님의 형상”(고후4:4) “하나님의 영광”(롬3:23)이 회복됨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죄와 사망이 없고 하나님 대리통치자로서 의 권위를 회복한 완전한 구원을 얻게 된다.

개인의 마지막 종말이 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모세는 인생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강건함은 70대까지요 80대가 되면 육체의 수명이 다되어 간다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수명은 반드시 마지막이 있다. 우리는 시한부 인생이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육체의 죽음은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 우리주변에는 먼저 죽는 사람들이 있다. 사건 사고,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다. 이러한 죽음은 아무도 모르고 예상할 수 없다. 하나님 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아무도 거부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라도 세상을 떠날 수 있다.

구원의 기회는 우리 육체가 살아있을 때뿐이다. 구원은 우리가 다시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어디에도 죽음이후 하나님 백성 되는 길을 말하고 있지 않다. 죽음이후 후손들의 공덕으로 선조의 죄가 용서 받는다는 카톨릭의 연옥도 없고, 지옥은 자기 스스로 공덕을 쌓아 빠져나올 수 있다는 불교의 지옥도 아니다. 구원은 우리가 살았을 때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때만 있다. 그때에만 우리는 하나님 백성 되는 구원을 얻는다.

(2) 주의 재림이 반드시 있음을 명심하자.(살전5:1-11)

그 날은 도적같이 이를 것이다. 사람들은 주의 재림을 무시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날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다. 노아시대 사람들은 심판이 없다고 마음대로 살아가다가 홍수심판을 맞이했다.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은 주의 재림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죄악 속에 살아가다가 생각지 않은 날에 주의 재림을 맞이할 것이다.

재림의 징조들을 보며 지금 이 시대를 분별하자. 불법이 성해질 것이다.(마24:12) 세상 문화는 점점 하나님과 멀어져가고 처처에 전쟁과 난리가 일어나며 지진과 기근, 하늘징조까지 나타나게 될 것이다. 또한 복음은 온 세계에 전파될 것이다.(마24:14) 교회 내의 배도와 배교가 일어나고(마24:24,살후2:3),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마24:15,살후2:4)

(3) 그 날을 계산하여 정하지 말라. / 시한부 종말론을 조심하자.(마24:36)

성경은 어떠한 날자 정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도 성경을 오해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날과 그때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말씀하시고 재림 날짜에 대한 모든 억측을 단호히 금하셨다.(마24:36) 이는 시한부 종말론 때문이다. 시한부 종말론은 교회와 이스라엘을 분리하는 지상 천년기 종말도식에서 나온다. 교회가 이스라엘 회복 예언의 성취요 완성이라는 실현된 하나님 나라, 현천년설에서는 절대로 시한부 종말론이 나올 수 없다.

성경이 아닌 예언과 환상으로 받았다는 재림 날짜에 절대로 속지 말라. 몰몬교, 여호와증인, 안식교... 모두 시한부 종말론과 연관이 있다. 불건전 신비주의에 서 나온 시한부종말론은 성도들의 삶을 파괴한다. 이단들은 종말 때에 있을 큰 환 란(마24:10)을 협박수단으로 사용한다. 두려워 말라. 환란이 있겠지만 성도는 능히 이길 수 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4) 깨어 있어 근신하고 최선을 다하여 오늘을 살아가자.(살후3:8-13)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규모 없이 행하는 모든 자에게서 떠나라. 바울은 올바른 종말신앙을 가진 성도의 규모 있는 삶을 모범으로 보여주었다. 그것은 수고하며 일하고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아니한 것이다. 성경적 종말신앙은 성도로 하여금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더욱 규모 있게 살도록 한다.

살후3:8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잘못된 종말론에 빠져있는 성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현실을 포기하여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주의 재림만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신앙은 교회내의 다른 성도나 주변 불신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교회의 일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살후3:10-11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올바른 종말신앙은 우리로 최선을 다하여 오늘을 살아가게 한다. 재림은 우리로 죄의 현실과 싸우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도록 가르친다. 주께서 종말의 시기를 정하지 말도록 엄히 명하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살후3: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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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Thu, 25 Jun 2026 07:04: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3"><![CDATA[주일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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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2026. 6. 21. 주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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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img src="https://gospel323.com/wp-content/uploads/2026/06/image002-2.jpg" alt="" width="1200" height="1020"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161" />]]></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21 Jun 2026 16:11:2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7"><![CDATA[주보자료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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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오경(27) - 성막규례, 구원과 예배 계시 (출24:12-1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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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A48v37ufOTo?si=9M2DRoZ5UPI0lkUM"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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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justify;"><strong>오경(27) - </strong><b>성막규례</b><b>, </b><b>구원과 예배 계시 </b><b>(</b><b>출</b><b>24:12-18)</b>

<b>1. 언약체결식</b><b>(</b><b>출</b><b>24:1-11)</b>

(1) 백성에게 언약서를 낭독하고 피를 뿌림

- 이스라엘은 유월절과 홍해기적을 체험했고, 신광야에서 하늘만나와 르비딤에서 반석생수를 맛보며 시내산에 도착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강한손과 편팔로 자신들을 속량구속 하시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 시내산까지 인도하셨음을 직접 경험했다. 그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에 올라오라 하신 후 친히 언약백성의 율법을 주시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이다.

- 언약체결식은 언약서에 대한 백성의 순종을 서약한 후 피를 뿌려 확정하는 예식이다.(출24:1-10) 언약서에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십계명(윤리도덕법)과 출애굽 신정국가 시민들의 규례들(국가사회법)이 기록되어 있다.(출20-23장) 모세가 언약서를 백성들 앞에서 한구절씩 낭송하자 모든 백성들은 일일이 순종할 것을 맹세한다. 모세는 백성의 대표들에게 피를 뿌린다. 이로서 출애굽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다. 구약 이스라엘이다.

- 언약의 피를 몸에 뿌린 후 둘로 쪼갠 짐승 사이를 지나는 것이다. 이는 고대 근동에서 주군과 봉신이 조약을 맺을 때, 언약조항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무서운 표시이다. 만약 두 당사자 중 누구라도 언약조항을 지키지 않으면 짐승처럼 둘로 쪼개져 죽을 것을 의미한다. 모세는 시내산 언약체결식에서 황소의 피를 뿌렸다고만 기록했지만(출24장) 예레미야는 소를 반으로 갈라 백성의 대표들이 그 사이를 지났다고 말한다.

- 렘32: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언약을 어긴 그들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 언약체결예식 후 하나님은 다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성막식양을 보여주신다. 성막은 원복음 여자의 후손 속죄제사 구원계시를 담고있는 하늘성전의 모형이다. 하나님은 성막규례(종교의식법)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계시를 담아두셨다.

- 히8:1-5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께서 언약체결식 후 성막규례를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구약 이스라엘이 삶에서 죄를 지어 부정해지고 거룩함을 상실할 때 하나님 백성에서 끊어짐을 면하도록 죄용서를 받을 속죄방법을 주신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용서 받을 성막규례(종교의식법) 없이 윤리도덕법(십계명) 국가사회법으로만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주셨다면 구약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 됨을 유지하지 못하고 모두 죄로 인해 죽게 될 것이다.

- 율법은 의와 거룩을 제시하고 백성이 불의(죄) 할 때 속죄제사(종교의식법)를 드려 죄용서 해줄 뿐 백성을 의롭게 하지 못한다. 제사를 드린다고 사람이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죄용서 곧 저지른 죄의 형벌을 면제받을 뿐이다. 율법의 행위는 죄인에게 의로움을 가르쳐줄 뿐 죄인이 의를 행하도록 만들지는 못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용서 받고 성령을 받아 의롭다하심을 얻는 칭의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의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하심을 얻는 복음 안에서만 성취된다.

- 또한 성막규례는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칭의)를 얻은 백성이 하나님께 성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도록 하심이다. 구원의 목적은 예배에 있다. 성막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얻는 구원의 길을 계시하지만 그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한다. 하나님은 성막 속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원리를 계시하셨다.

<b>2. 성막규례</b><b>, </b><b>구원과 예배 계시</b><b>.</b>

(1) 지성소 – 하나님의 보좌(에덴).

-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 에덴에 두셨다. 처음부터 사람은 에덴에 맞춰 창조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으로 살아갈 때 모든 것이 옳고 맞고 바르도록(=의)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 에덴이고 성막의 지성소이다. 하나님은 언약궤위에 두신 하나님의 보좌를 시은좌(은혜의 보좌)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십자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 지성소를 가로막은 성소휘장에는 게루빔 천사들이 수놓아져 있다. 이는 죄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에덴을 지키는 게루빔을 수놓은 것이다. 기록에는 없지만 그들 손에 화염검이 들려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염검은 게루빔과 구분된 별도로 것으로 하나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불일 수 있으나 세밀히 구분할 필요는 없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 우리는 어떻게 다시 지성소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다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야만 한다. 하나님께 형벌 받을 원수관계에 있는 죄인은 예배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의 성막규례(종교의식법)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구원계시를 정확히 보여준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신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다. 그 안에는 모세의 십계명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있다. 언약궤의 덮개는 두 천사가 날개로 덮고 있는 모습인데 이곳을 속죄소 또는 시은소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율법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하시는 곳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바로 시은소에서 시작된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은혜를 주신다. 우리는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의 요소가 있지만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요소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성경을 강해하는 목사의 설교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성도는 성경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간다.

(2) 성막 뜰에서 죄사함을 받고 내성소에서 예배를 드린다.

- 성막은 죄인들에게 주셨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막예배는 아담이 에덴에서 드렸던 예배와 동일한 방식일 수 없다. 아담이 에덴예배를 드릴 때 속죄의 피가 없었다.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로고스(말씀)으로 함께하셨고 속죄의 피로 함께함은 아니다. 성막예배는 죄인이 드리는 예배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로 드리는 죄사함의 속죄제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 성막/성전의 입구(문)는 동쪽에 있다. 모세의 성막문, 솔로몬 성전문, 에스겔 성전문 예루살렘 성전문 모두 동문이다. 범죄한 아담이 에덴의 동편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성소 하나님께 예배드리려면 성막의 동쪽 문으로 들어와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지성소를 떠나간 범죄한 아담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면 번제단에서 희생제사를 드려야 한다. 희생제사는 제물의 피를 번제단 사면에 바르고 뿌리고 붓는 것이 핵심이다. 번제단에서 제물로 불로 태우는 것은 그 다음요소이다. 희생제사는 피를 드리는 것이 목적이지 고기를 태우는 것을 목적하지 않는다. 피는 그리스도께서 내가 죽어야할 죄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셨음을 말한다. 그래서 내가 죄사함을 얻는 것이다.

- 물두멍은 제사장의 손과 발을 씻어 거룩한 봉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출30:18-21) 제사장은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거나 성소로 들어가 분향을 드리기 전에 반드시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 정결케 되어야 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과 칭의를 받은 자들이 매일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으로 죄를 버리고 성화되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함을 계시한다.

- 출30:20-21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또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무를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께 불사를 때에 손과 발을 씻을지니 죽기를 면하리라.“

- 예배는 십자가에서 죄 용서를 받은 자만 드릴 수 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킨 사망의 원인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며 그의 백성도 거룩한 백성이다. 이는 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아담의 본성대로 살아가던 모든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도 죄를 이기며 거룩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다. 번제단에서 속죄제사로 칭의를 얻고, 물두멍에서 매일 말씀과 성령으로 성화를 누려야 죄를 이기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죄를 위한 속죄제사였다. 죄는 우리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기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용서 받았다. 죄용서는 아담 죄에 대한 죄책의 법적소멸과 아담 죄에 대한 오염의 실제적 정결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과거 모든 죄를 소멸하셨고, 성령으로 함께하심으로 현재 우리 본성 속에 있는 죄의 세력을 이기게 하신다.

- 내성소는 지성소 성소휘장 앞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그곳에는 떡상과 분향단, 등잔대가 있다. 제사장은 번제단에서 매일 아침저녁 두 번의 상번제를 드리고 내성소로 들어와 역시 아침저녁 두 번 분향하며 예배를 드린다. 우리가 하나님께 매일 드리는 예배이다.

- 예배는 하나님 백성의 특권이다.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요6:48), 생명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요1:9), 향단은 기도와 예배를 의미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여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롬8:34)와 성도가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와 기도이다(계8:3-5,계5:8-15)

- 성도의 삶은 예배하는 삶이다. 예배(worship)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경배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인격적 교제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아무나 드릴 수 없다. 십자가에서 죄용서 받은 자만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

(3) 대제사장 -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예배여야 한다.

- 다시 말하지만 성막은 죄인들에게 주시는 구원계시요 예배계시이다. 그러므로 성막예배는 죄인이 직접 드릴 수 없고 우리의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셔야 한다. 성막예배는 제사장의 직무이다. 죄인은 희생제물을 성막으로 가져오는 일 밖에 없다. 성막뜰에서 상번제를 드리고 내성소에서 떡상의 진설병을 교체하고 등잔대의 기름을 채우며 분향단에서 매일 두 번 예배 하는 것은 제사장들의 일이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셔야만 함을 보여준다. 또한 대제사장이 해야 할 중요한 직무가 있다. 그것은 속죄일(욤키프르)에 백성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린 후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역할은 오직 대제사장만 할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시는 중보자셨다. 그는 짐승의 피가 아닌 자기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우리는 십자가 피로 죄용서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지성소로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드린다.

- 히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 에덴예배는 창조중보자 로고스(말씀)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예배였다. 거기에는 속죄의 피가 없었다. 성막예배는 구속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예배였다.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다. 부활이후 새에덴 예배는 더 이상 제사와 속죄 의식이 없고 창조중보자이시며 구속중보자이신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하는 예배이다. 에덴의 예배는 창조중보자와의 교제였고, 성막의 예배는 구속중보자의 피를 통한 예배였으며, 새에덴의 예배는 어린 양의 피로 완성된 구속을 영원히 찬양하며 하나님과 어린양 그리스도를 대면하는 예배이다.

<strong>&lt;결론&gt;성막규례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구원과 예배계시이다.</strong>

</div>]]></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21 Jun 2026 16:10: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3"><![CDATA[주일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개혁주의 종말론(11) - 구약 선지자들의 종말론 -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title>
			<link><![CDATA[https://gospel323.com/?kboard_content_redirect=1460]]></link>
			<description><![CDATA[<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wyrqiVgGZiY?si=uVgcxO7BNoyzOwie"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strong style="text-align:justify;">개혁주의 종말론(11) - </strong><strong>구약 선지자들의 종말론 -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strong>

&lt;서론&gt;구약 예언들은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시간 속에 성취되었다.

<b>서론 </b><b>1. </b><b>구약 선지서들의 일곱 주제</b>

(1) When (때) : 여호와의 날

(2) What (내용) : 하나님 나라(통치), 이스라엘 회복

(3) To whom (대상) : 남은 자

(4) How to (방법) : 성령 부어주심, 새언약, (새성전, 새예루살렘, 새하늘과 새땅 = 새에덴)

(5) By whom (주체) :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By whom), 여호와의 날에(When), 남은 자들에게(To whom), 성령을 부어주시고 새언약을 출범시키심으로(How to), 이스라엘 곧 하나님 나라(신약교회)를 회복하신다(What)."

구약선지자들 예언 - “여호와의 날에 남은 자들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새언약 하나님 나라와 이스라엘을 회복해주실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 -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이 일곱 주제는 거의 모든 대선지서와 소선지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구약 선지서들을 읽을 때 이 주제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교회에서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긴장 속에 성취되었음을 확인한다.

<b>서론 </b><b>2. </b><b>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지 않고 예언한 이유</b>

(1) 예언적 원근법 / 원근통시법 (Prophetic Perspective / Prophetic Foreshortening)

예언적 원근법이란 선지자가 미래를 바라볼 때,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개의 거대한 산봉우리가 한눈에 겹쳐서 하나의 산맥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앞산(초림)과 뒷산(재림) 사이에는 긴 시간의 계곡(교회시대)이 있지만, 선지자의 묵시적 시선에서는 이 계곡이 보이지 않고, 두 산봉우리가 맞닿아 있는 것처럼 초림과 재림이 하나로 압축되어 관찰되는 것이다.

(2) 구속사의 점진적 다중성취 (Progressive Fulfillment/Multi-layered Fulfillment)

또 다른 조직신학적·성경신학적 용어는 예언의 “다중적 성취” 또는 “점진적 성취”이다. 즉 하나의 예언이 역사 속에서 단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전개에 따라 겹겹이 성취되며, 결국 최종적인 재림 때 완성된다는 종말론적 패러다임이다.

이사야 7:14 임마누엘 예언, 이사야 9:6-7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사야 61:1-3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 다니엘 7:13-27 그리스도의 나라 영원, 에스겔 47:1-12 “성전생수가 흘러나옴“, 스가랴 9:9-10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b>&lt;</b><b>결론</b><b>&gt;</b><b>선지자들의 예언은 이미</b><b>(already)</b><b>와 아직</b><b>(not yet)</b><b>의 시간 속에 성취됐다</b><b>. </b>

구약 선지자들은 장차 올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원근통시 관점으로 예언했지만, 그 나라는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시작되고, 교회 시대에 확장되며, 재림 때 완성된다. 따라서 구약의 많은 예언은 포로귀환, 그리스도의 초림, 교회, 재림,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구속사적 단계 속에서 점진적이고 다층적으로 성취된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게할더스 보스의 "already and not yet(이미와 아직)" 이다.

<b>1. 이사야서 </b><b>– </b><b>제</b><b>5</b><b>복음서</b><b>, </b><b>구약의 복음서</b><b>, </b><b>구약의 로마서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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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제</b><b>1</b><b>부 심판과 메시아 예언 </b><b>(1-39</b><b>장</b><b>)</b>

<b>1. 이스라엘의 심판과 구원 </b><b>(1-12</b><b>장</b><b>)</b>

(1) 언약적 고발(1-5장)

사1:11-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2:2-4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1)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사5:1-7 포도원 이스라엘 비유

(2) 이사야의 소명, 그루터기(6장)

(3) 임마누엘, 한 아기, 한 가지 (7-12장)

사7:3 이사야의 첫째 아들 스알야숩 –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사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이 처녀는 누구이고 임마누엘 아이는 누구인가?

일부 신학자들은 처녀를 이사야가 재혼한 아내로서 마할살렐하스바스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예언당시는 처녀임 후에 이사야와 결혼) 그러나  이 주장은 성경의 근거가 아닌 추론이며 또 이사야의 첫 아내(스알야숩의 어머니)가 일찍 죽었다는 추정에 근거하기에 대부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에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재까지 개혁신학자 주류는 처녀를 이사야 예언 당시 결혼하지 않은 "왕실과 관련된 어떤 젊은 여인" 또는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이 알 수 있었던 특정 여인"인데 그 처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 (1차성취) 이 예언의 궁극적 성취는 동정녀 잉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사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11:1-5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사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11:10 “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인용) 롬15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사11:16 남은자의 돌아옴을 출애굽에 비유함 - 앗수르(바벨론,열국)에서 남은 자들이 돌아올 때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b>2. 열방을 향한 심판</b><b>(13-23</b><b>장</b><b>)</b>

(1) 바벨론 멸망 – 바벨론왕의 교만을 사탄의 교만과 타락에 비유

사13:10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바벨론 멸망때 해달별 어두워짐

사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b>3. 소묵시록</b><b>(24-27</b><b>장</b><b>)</b>

(1) 역사적 지평이 열국심판에서 종말론적 심판으로 확장됨.

사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26:3-4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사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사27:1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cf&gt;욥40:15 땅에서 가장 큰 짐승 – 베헤못(개역개정) 하마(개역한글)  욥41:1 바다에서 가장 큰 짐승 – 리워야단(개역개정) 악어(개역한글)

<b>4. 여섯 화와 시온의 영광 </b><b>(28-35</b><b>장</b><b>)</b>

(1) 여섯 화(Woe) - 화있을진저

1화: 에브라임의 교만(사28장)

2화: 아리엘(예루살렘)(사29장)

3화: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사30장)

4화: 애굽에 내려가는 자들(사31장)

5화: 학대하는 자, 앗수르(사33장)

6화: 세상나라 열국, 에돔(사34장)  사34:4 “하늘의 만상(해달별)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2) 시온의 영광 (사35장)

사35:1-2 광야와 메마른 땅, 사막이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

사35:3-4 여호와께서 오셔서 구원(신원,보수,보복)해 주심

사35:5-6 질병치유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5-6절) -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그리스도 예언의 성취를 나타나는 증표였다.

사35:7-9 거룩한 길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찬송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

사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시온으로 돌아옴

<b>5. 히스기야와 남은 자</b><b>(36-39</b><b>장</b><b>)</b>

사36-37장 히스기야의 기도 - 앗수르 산헤립 18만5천 침공 막아냄. 그 후 병듬

사38-39장 히스기야의 잘못 - 바벨론 사신 내탕고 보여줌 바벨론 침공의 빌미

사37:32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욜2:32 “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롬9:12-13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남은 자임

<b>제</b><b>2</b><b>부</b><b>: </b><b>회복</b><b>, </b><b>여호와의 종과 종들</b><b>, </b><b>새 창조 </b><b>(40</b><b>–</b><b>66</b><b>장</b><b>)</b>

<b>1. 종을 통한 구원사역 </b><b>(40-48</b><b>장</b><b>)</b>

(1) 내 백성을 위로하라(40-43장)

사40:3-5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사40:9-11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사42:1-7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2) 고레스(44-45장) - 이사야는 약 150년 뒤에 등장할 고레스를 예언함.

44:28-45:1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 40-55장은 크게 보면 기름부음 받은 두 구원자를 제시한다. 고레스와 예수 그리스도이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하는 역사적 구원자였고, 여호와의 종(그리스도)은 십자가 대속으로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속량구속자였다. 단 고레스는 역사 속에서 여호와의 종(사42:1)을 예표하는 인물일 뿐 그리스도는 아니다. 여호와의 종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성취하신다. 여호와의 종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포로해방자 보다 훨씬 큰 메시야 구속사적 사명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레스가 이사야의 여호와의 종 예언을 역사 속에서 성취했다고 하지 않는다.

(3) 출바벨론(46-48장)

<b>2.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b><b>(49</b><b>–</b><b>55</b><b>장</b><b>) - </b><b>이사야서의 중심부</b>

(1) 여호와의 종의 노래

제1노래(42:1-4) 하나님의 의를 전하러 선택받은 여호와의 종.(성령 기름부음)

제2노래(49:1-6) 하나님의 의로 남은 자를 돌이키며 이방의 빛이 될 종

제3노래(50:4-9) 하나님의 의를 전하다가 매를 맞으며 유죄판결 받는 종.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는 그리스도를 패역자, 혹은 선동가로 판단하여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그리스도)은 사람들 판결에 연연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무죄(Not Guilty), 즉 의롭다 선언을 하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4노래(52:13-53:12)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시기 위해 대속제물 죽으실 종

(2) 회개촉구와 여호와의 종들 탄생 (54-55장)

사54:1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54: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사54:17 “...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b>3. 이스라엘 회복</b><b>, </b><b>새하늘과 새땅</b><b>(56-66</b><b>장</b><b>)</b>

(1) 종들의 불의와 하나님의 의(56-59장)

사56:6-7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1)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사58:6-7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59:16-17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사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2) 이스라엘 회복과 메시야의 노래(60-62장)

사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60:4-6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1:1-3 “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보복)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61: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사62:1-10 헵시바(=내가 그녀를 기뻐한다) 쁄라(=결혼한 여자) 두 이름 모두 하나님과 언약관계가 회복된 이스라엘을 의미함.

사62:12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바 된 자요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3) 종들(=남은자들)의 중보적 탄원기도- 종말론적 기도(63-64장)

사63:11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출애굽 때도 성령이 역사. 출바벨론 때도 성령이 역사

사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인용) 롬9:21

(4) 새하늘과 새땅(새에덴), 꺼지지 않는 불 (65-66장)

사65:17-25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66: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인용) 스데반 행7:48-50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사66: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사66:20-2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가마)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나는 그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늘 있듯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늘 있을 것이다.”

사66:24 “...(나를 거역한) 그들을 먹는 벌레가 죽지 않으며, 그들을 삼키는 불도 꺼지지 않을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들을 보고 소름이 끼칠 것이다.”

<b>2. 예레미야서 </b><b>– </b><b>새언약 용어를 최초 사용 </b><b>– </b><b>예레미야 때문에 구약 신약 명칭 생김</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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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는 단순한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라, 언약 파기, 심판, 포로, 회복, 새 언약이라는 구속사적 구조를 따라 배열된 책이다. 따라서 예레미야서를 읽을 때는 시간순 배열보다 신학적 배열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b>제</b><b>1</b><b>부 </b><b>- </b><b>언약파기 한 이스라엘 심판예언</b><b>(1-29</b><b>장</b><b>)</b>

<b>1. </b><b>예레미야의 소명</b><b>(1</b><b>장</b><b>)</b>

요시야 13년 열방의 선지자로 소명을 받는다.(5절)

렘1: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렘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렘1: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b>2.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b><b>(2-25</b><b>장</b><b>)</b> - 가장 긴 부분 임

(1) 언약파기 한 이스라엘(2-6장)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렘4:4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신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인용) 바울 롬2:28-29 “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2) 성전파괴 설교(7-10장) - 언약신학에서 매우 중요

렘7: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7:14-15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3) 언약파기 고발(11-20장)

렘11:9-10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따라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

렘13:4-9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가져오라 하시기로... 띠를 가져오니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더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예레미야 13장은 심판 유다의 예언(1-25장) 중에서도 특별히 "바벨론 포로의 필연성"을 상징행동으로 보여주는 장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성전설교(7장) 언약파기(11장) 썩은 허리띠(13장) 토기장이(18장) 깨진 토기그릇(19장) 등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 허리띠처럼 썩고 옹기처럼 깨지게 된다.(심판)

(4) 이스라엘 목자(왕) 책망 -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21-24장)

시드기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책망

렘22:5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마23: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렘23:5-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5) 바벨론 포로 70년 예언(25장) - 1부의 결론임

렘25:11-13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b>3.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들의 충돌</b><b>(26-29</b><b>장</b><b>)</b>

렘26:6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개혁주의 신학자들 다수는 예레미야 7장과 26장을 같은 사건으로 보며 예레미야 26장은 예레미야 7장 성전파괴 설교 후 발생한 재판과 반응을 기록한 것으로 이해한다.

성전파괴 설교 후 재판(26장)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멍에 논쟁(27-28장) 예레미야와 스마야 편지 논쟁(29장)

렘29:8-1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b>제</b><b>2</b><b>부 </b><b>– </b><b>이스라엘 회복과 새언약</b><b>(30-33</b><b>장</b><b>) - </b><b>예레미야서의 제일 중요한 부분</b>

<b>1.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통합 다윗왕</b><b>(30</b><b>장</b><b>)</b>

렘30: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렘30:1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b>2. 이스라엘이 회복됨 새언약</b><b>(31</b><b>장</b><b>) - </b><b>핵심</b>

렘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히8:8-13 “...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히10:10-18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b>3. 아나돗 숙부의 밭을 삼 </b><b>– </b><b>70</b><b>년 후 포로귀환 됨을 확증</b><b>(32</b><b>장</b><b>)</b>

예루살렘 함락 직전 예레미야가 아나돗 숙부의 밭을 구매한다(32장). 바벨론 포로 70년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 할 것을 상징행동 하는 것이다. 다윗 언약의 영속성이 재확인된다.

<b>4.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b><b>, </b><b>그리스도 우리의 의</b><b>(33</b><b>장</b><b>)</b>

렘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33:15-16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strong>제3부 - 이스라엘 멸망과 열국 심판 예언(34-52장)</strong>

<b>1. 역사적 네러티브</b><b>(34-44</b><b>장</b><b>)</b>

시드기야에게 이스라엘 멸망예언(34장), 레갑자손(35장) 여호야김(36장) 예레미야 시위대 뜰에 갇힘(37장) 예루살렘 멸망(39장) 백성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남(40장) 왕의 종친 이스마엘이 총독 그다랴를 죽임(41장)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음.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가나안에 머물고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함(42장)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예레미야와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 다바네스로 내려감(43장) 예레미야가 애굽에 내려간 이스라엘 사람들의 멸망을 예언(44장) 서기관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을 책에 기록함(45장)

렘34: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b>2. 열방 심판 예언</b><b>(46-51</b><b>장</b><b>)</b>

이사야, 에스겔과 비슷한 구조이다. 유다만 아니라 열방도 심판받는다. 애굽, 블레셋, 모압, 암몬, 에돔, 다메섹, 게달, 엘람, 바벨론

바벨론의 멸망예언은 요한계시록에서 인용한다.

렘51:7-8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되니...”

“앗수르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 분노의 몽둥이”(사10:5)  “바벨론은 나의 철퇴, 병기”(렘51:20) “온 세계의 방망이”(렘50:22)

렘51: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원수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 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

렘51:45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

<b>3. 이스라엘 회복을 희미하게 보여주며 마침</b><b>(52</b><b>장</b><b>)</b>

예레미야서의 맨 마지막은 시드기야의 비극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이 바벨론 왕의 상에서 먹으며 머리를 드는 장면을 보여주며 이스라엘 회복을 예언하고 끝난다. (열왕기하 25장과 동일)

렘53:31-34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b>3. 에스겔서 </b><b>– </b><b>여호와의 영광이 건물성전을 떠나 새성전</b><b>(</b><b>신약교회</b><b>)</b><b>에 임하심</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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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제</b><b>1</b><b>부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심</b><b>(1-24</b><b>장</b><b>)</b>

<b>1. 포로 제</b><b>5</b><b>년 </b><b>- </b><b>여호와의 영광의 현현</b><b>(1-7</b><b>장</b><b>)</b>

(1) 하나님의 보좌, 네 생물, 불바퀴(1장)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년" (겔1:1-2) BC 593년경

유대인들은 성전이 없으면 하나님도 없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갇혀있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영광이 바벨론 그발강가에 나타나셨다.

(2) 에스겔의 소명(2-3장)

“내가 먹으니 입에는 달기가 꿀과 같으니라. 너는 이 두루마리(책)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내 입에는 달기가 꿀 같더라”(겔3:1-3)

(3) 예루살렘 심판 상징행동 예언(4-7장)

박석에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함을 그릴 것.(4:1-3)

잠을 잘 때 좌편으로 누워 390일을 지낼 것. 이스라엘의 죄악 일수임(4-6절)

그후 잘 때 우편으로 누워 40일을 지낼 것. 유다가 범한 죄의 날임 하루가 일년

그 기간 동안 인분 불에 구워 부정하게 만든 떡을 먹으라. (쇠똥으로 교체허락)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아서 성이 포위될 때 1/3은 성안에서 불사르고 1/3성읍사방에서 칼로 치고, 1/3은 바람에 흩으라(5:1-4)

<b>2. 포로 제</b><b>6</b><b>년 </b><b>– </b><b>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심</b><b>(8-24</b><b>장</b><b>)</b>

(1) 우상숭배 예루살렘 성전(8장)

겔8:1-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제단문 어귀 북쪽에 그 질투의 우상이 있더라...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렸고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명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에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 같이 오르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2) 먹그릇 천사 다섯 살육기계 천사(9장)

겔9:3-6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3) 여호와 영광이 지성소를 떠나 성전문지방 성전동문을 지나심(10장)

겔10:4, 18-19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성전)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4) 여호와께서 감람산 위를 지나 성전을 떠나심(11장)

겔11:16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겔11:19-20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이 굳은 마음을 제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11:23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중에서부터 올라가서 성읍 동편 (감람)산에 머물고” 여호와께서 지성소를 떠나 성전동문으로 나와 감람산에 머물고 떠나심

<b>3. 이스라엘 심판 선언</b><b>. (12-24</b><b>장</b><b>)</b>

겔18:2-4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겔18:23-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b>4. 열국 심판 </b><b>(25-32</b><b>장</b><b>)</b>

겔28:13-15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b>제</b><b>2</b><b>부 이스라엘 회복과 여호와께서 다시 임재하심</b><b>(33-48</b><b>장</b><b>)</b>

<b>1. 포로 제</b><b>12</b><b>년 </b><b>– </b><b>마른뼈 생기 환상</b><b>, </b><b>새언약의 성령</b><b>(33-39</b><b>장</b><b>)</b>

(1) 예루살렘 성전파괴 소식들음(겔33:21)

겔33:21 “우리가 사로잡힌지 십 이년 시월 오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2) 이스라엘 목자 책망 - 한 목자 다윗(34장)

겔34:23-25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찌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3) 성령을 너희 속에 두어 (36장)

겔36:25-28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인용) 세례요한이 물로 세례를 준 이유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이가 오신다. (요1:33)

(4) 마른 뼈 이스라엘이 큰 군대가 됨(37장)

겔37:1-12 “...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겔37:12-14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겔37:23-28 “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케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있으리니 열국이 나를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는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5) 곡마곡의 침공과 주검 새잔치(38-39장)

겔39:17-20 “너 인자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모여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한 잔치 곧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큰 잔치로 너희는 사방에서 모여서 고기를 먹으며 피를 마실찌어다. 너희가 용사의 고기를 먹으며 세상 왕들의 피를 마시기를 바산의 살찐 짐승 곧 수양이나 어린 양이나 염소나 수송아지를 먹듯 할찌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잔치의 기름을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그 피를 취토록 마시되 내 상에서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불리 먹을찌니라 하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계19:17-21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b>2. 포로 제</b><b>25</b><b>년 </b><b>– </b><b>새성전</b><b>, </b><b>새예배 성전생수</b><b>, </b><b>여호와 삼마</b><b>(40-48</b><b>장</b><b>)</b>

(1) 새성전 환상(40-42장)

계21:1-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 여호와께서 성전에 다시 임재하심(43:1-10)

겔43:1-10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 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내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거하리라”

계21:22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3) 새예배 제사장 절기 제사 (43-46장)

(4)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나옴 (47장)

겔47:1-12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5) 열두지파 기업분배, 열두성문, 여호와 삼마(48장)

겔48:1-29 열두지파 기업분배 – 단지파가 제일 먼저 나옴

겔48:30-34 열두지파 성문

겔48:35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라 하리라”

에스겔서의 핵심내용은 "성전을 떠나신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 이스라엘 회복이라는 것이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선언인

"그 성의 이름은 여호와 삼마"(겔48:35)는 바로 이 구조 전체의 결론이며, 창세기의 에덴 상실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임재 회복이 새 창조에서 완성됨을 선포하는 종말론적 선언이다.]]></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Thu, 18 Jun 2026 06:58:2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3"><![CDATA[주일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 6. 14. 주보]]></title>
			<link><![CDATA[https://gospel323.com/?kboard_content_redirect=1459]]></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gospel323.com/wp-content/uploads/2026/06/image002-1.jpg" alt="" width="1200" height="1020"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151" />]]></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14 Jun 2026 16:05:5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7"><![CDATA[주보자료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오경(26) -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19:1-6, 출20:1-17)]]></title>
			<link><![CDATA[https://gospel323.com/?kboard_content_redirect=1458]]></link>
			<description><![CDATA[<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yix7WkM1VQ4?si=xkZro0kO7dv2ADaK"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strong>온라인 예배 실황은 월요일에 주일설교 말씀만 남겨 두고 삭제됩니다.</strong>

<div style="text-align:justify;"><strong>오경(26) - </strong><b>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b><b>. (</b><b>출</b><b>19:1-6, </b><b>출</b><b>20:1-17)</b>

<b>1.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b><b>(4</b><b>절</b><b>)</b>

(1) 하나님께서 속량구속하신 백성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애굽에는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는 고센의 축복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애굽 군대는 홍해에 수장시키셨다.

-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도달하는 약 1개월 반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다. 그들은 수르광야에서 3일간 물을 구하지 못해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마라쓴물을 단물로 바꾸셨고, 엘림오아시스에서 쉬게 하셨다. 신광야에서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하늘만나를 주셨고 르비딤에서 물이 없을 때 반석생수를 주셨다. 또한 하나님은 아말렉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 신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 신32:11-12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b>2.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b><b>. </b>

(1) 거룩함 - 이스라엘을 출애굽 구원하신 목적

- 구원은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거룩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됨이다. 영원하심, 자존하심처럼 피조물이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비공유적 속성이다. 거룩이 사람에게 쓰일 때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의 첫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반역함이 없는 피조물 곧 죄와 구별되는 사람이다. 이는 선악과 행위언약을 지킬 때 유지된다.

-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 나라 언약은 파기되고 에덴은 상실되었다. 사람들은 아담의 죄가 본성이 되어 자기주인 되어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살아간다. 사망이 모든 인류에게 임했고 사람들은 하나님과 분리단절 되어 죄 가운데 살아간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하고 아름답고 거룩했던 피조세계가 사람들의 죄 때문에 악하고 부정한 사망의 나라가 되었다. 사탄의 유혹과 참소가 계속되는 죄인의 나라가 되었다.

- 하나님은 아담에게 여자의 후손이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심으로 죄와 사망에 잡힌 사람에게 생명을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해주셨다. 생명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아담의 죄 값을 직접 치루시고 아담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십자가 사랑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심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성령)로 죄인에게 죄사함과 성령내주(칭의, 그리스도와의 연합)를 주심으로 죄인 속에 있는 아담의 죄를 무력화시키고 의를 행하는 거룩한 백성을 만들어 하나님과 연합된 생명을 회복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원복음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 구원계시이다. 하나님은 원복음을 노아의 무지개 언약으로 재확인해 주셨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여자의 후손 구원계시를 인류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시작하셨다. 요셉과 모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시고 구약 이스라엘을 출애굽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시내산으로 부르시며 하나님과 함께하고 연합된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에덴의 생명을 회복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 구약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에덴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아담이 에덴에서 상실한 거룩함을 요구하셨다. 피조물의 거룩함이란 에덴의 첫 창조된 모습을 말한다. 사람이 자기 뜻, 자기주인됨(죄)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이다.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대리통치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과 바른관계인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 생명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리통치자로서 하나님과 바른관계에 있다. 피조물은 자신의 존재이유와 삶의 목적은 창조주에게서 찾아야 한다.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결정하는 순간 피조물의 반역이 시작되고 창조주와의 올바른 관계는 깨어지며 죽음은 불가피하다.

(2) 십계명 – 하나님과의 바른관계(생명) 거룩함을 유지하는 법

- 우선 십계명(율법)은 출애굽 구원 받은 이스라엘에게 주셨다. 율법은 “순서와 방법” 두 가지가 중요하다.

- 첫째, 율법은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삶의 규범이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켜 하나님 백성된 것이 아니다. 구원받았으니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둘째, 율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지키는 것이다. 율법은 절대로 자기 힘으로 지킬 수 없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지키라고 율법을 주셨다. 이 방법이 중요하다.

- 율법은 크게 윤리도덕법(십계명), 국가사회법(백성들 사이에서 지켜야할 생활규례), 종교의식법(제사절기 정결법 등 성막규례)의 세 가지로 구성된다. 오늘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제시하는 십계명(윤리도덕법)과 십계명을 당시 사람들에게 적용한 국가사회법을 주시고 피를 뿌리며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언약체결의식을 본다. 죄를 용서받는 종교의식법(제사절기 성막규례)은 다음시간에...

- 십계명은 하나님 백성의 규범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당연히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담은 로고스 예수님과 성령이 함께하심으로 십계명(윤리도덕법)이 그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에 담긴 의미이다. 십계명은 범죄한 인류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에덴의 거룩함을 “하라, 하지말라”는 계명문구로 주신 것이다. 십계명은 죄인에게만 주신 새로운 법이 아니라 창조 때 에덴에서 주신 선악과 행위언약과 아담 마음에 새겨주신 윤리도덕법의 재선포였다.

-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된다. 1-4계명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해준다. 5-10계명은 이웃사랑 방법을 말한다.

- 십계명의 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이다. 이 첫계명이 나머지 아홉계명의 뿌리이다. 사실상 십계명은 첫번째계명을 펼쳐놓은 것이다. 그래서 개혁신학은 모든 죄를 우상숭배에서 나온 것으로 설명한다.

- 십계명의 열번째계명은 "탐내지 말라"(출20:17) 이다. 앞의 계명들이 주로 외적행동을 금지한다면, 열째계명은 인간의 내적욕망을 말한다. 율법은 단순히 행동이 아니라 마음까지 요구함을 분명히 함이다. 사도바울은 바로 이 계명을 통해 자신 내면의 죄성을 깊이 깨달았다고 고백한다.(롬7:15-25) 바울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했다.(골3:5) 따라서 십계명은 첫째 계명에서 하나님 사랑을 요구하고, 열째계명에서 하나님 사랑을 가로막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탐심을 폭로한다.

- 그러므로 십계명의 결론과 대주제는 첫번째계명이다. “네가 피조물임을 알고, 하나님만 경외하고 섬겨라.”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방법 세 가지이다.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 우상숭배하지 말고 영이신 하나님으로 섬기라”(2계명) “영이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되, 보이지 않는다고 경홀히 하지 말라.”(3계명) “하나님 안에 우리의 안식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라”(4계명)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다른 사람(이웃)에 대하여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긍정명령이다. 5계명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른 사람에 대한 모든 사랑을 포괄한다. 하나님(경외), 부모(공경), 스승(존경), 친구(우정), 아랫사람(긍휼) 이는 모두 대상자에 따라 구분되는 사랑의 다른 표현들이다.

- 6계명부터 열번째계명까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대표적인 죄의 욕구 다섯가지를 금지하는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탐내어 범죄하지 말라”(6계명) “간음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정절을 탐내어 범죄하지 말라.”(7계명) ”도적질을 말라.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내어 범죄하지 말라.“(8계명) ”거짓증거 말라. 다른 사람의 명예를 탐내어 범죄하지 말라.“(9계명) ”탐내지 말라. 모든 죄의 뿌리는 탐심이다.“(10계명) 6-9계명은 탐심(탐욕)에 굴복하여 행동으로 표출된 범죄 행위를 금지함이며, 열번째계명은 그런 범죄행위를 가져다주는 모든 죄의 본질인 근본적 탐욕(내면의 죄)을 말한다.

- 출애굽기 20장-23장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십계명(윤리도덕법)과 함께 십계명을 당시 출애굽 백성들의 삶에서 적용한 국가사회법을 기록한다.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은 사람을 죽인 경우, 실수로 죽인 경우, 부모를 때린 경우, 태아를 해친 경우로 구체화된다.(출21장) 도둑질하지 말라는 8계명은 소를 훔친 경우, 양을 훔친 경우, 맡긴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 등의 사례로 적용된다.(출22장) 이처럼 십계명은 원리이고 국가사회법은 그 원리를 실제 생활에서 적용한 사례들이다. 요즘 표현으로 십계명은 헌법이고, 국가사회법은 헌법아래서 적용된 시행규례들이다.

-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십계명 윤리도덕법(출20:1-17)과 국가사회법(출20:22-출23장)을 기록하여 언약서를 만든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그 언약서를 읽고(출24:3,9) 백성들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하나님 백성으로서 율법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아갈 것을 맹세한다.

- 언약체결의식은 짐승의 피를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에게 뿌리며 진행했다. 모든 희생의 피에는 속죄의 의미가 담겨있다. 유월절의 피든 언약체결의식의 피든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죽음과 속죄를 기본전제 한다. 거기에 백성에게 뿌려진 언약체결의 피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죽음을 당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반드시 율법을 지키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겠다는 맹세를 담은 것이다. 이는 죄인이 하나님과 바른관계의 거룩함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며 절대방법이었다.

- 렘34:18-20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언약을 어긴 그들을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3) 십계명 율법은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넉넉히 지킬 수 있다.

- 십계명 율법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기준을 제시함이지 거룩해지는 능력을 주지는 못한다. 이것이 율법의 본질이며 한계이다. 분명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법이며 선하고 의롭다. 그런데 사람은 지킬 수 없다. 죄 때문이다. 내 본성과 인격으로 자리잡은 아담의 죄가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처음부터 구원의 길로 주신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으로 주신 것이다.

- 처음부터 십계명은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만 지켜지게 주신 것이다.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죄인임이 더 드러난다.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면 율법이 말하는 그런 죄를 짓지 않는 것이지 죄인이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죄인은 여전히 죄인인체 그대로 있다. 율법으로는 죄인이 의롭게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죄의 본질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잡게 한다. 이것이 율법의 본질이다.

-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b>&lt;</b><b>결론</b><b>&gt;</b><b>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가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하며 거룩해진다</b><b>. </b>

</div>]]></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14 Jun 2026 16:05:1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3"><![CDATA[주일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개혁주의 종말론(10) - 천년왕국, 새하늘과 새땅, 새에덴, 새예루살렘]]></title>
			<link><![CDATA[https://gospel323.com/?kboard_content_redirect=1457]]></link>
			<description><![CDATA[<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XR37dIVDbP4?si=FlsqgGV3-elRg1sX"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b></b><strong>제10강 천년왕국, 새하늘과 새땅, 새에덴, 새예루살렘</strong>

- 창조경륜의 회복과 완성-

<img src="https://gospel323.com/wp-content/uploads/2026/06/11111.jpg" alt="" width="1200" height="606"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149" />

<b>1. 음녀 바벨론 </b><b>(</b><b>계</b><b>17</b><b>장</b><b>)</b>

(1) 더러운 음녀(바벨론) vs 정결한 신부(새예루살렘)

계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바벨론은 하나님 나라와 대조되는 죄와 사망의 나라 혹은 그 나라에 속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죄인)들을 통칭한다. 바바벨론과 그 백성들의 특징은 음행이다. 천사는 바벨론을 큰 음녀라고 말한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음녀가 있다.

- 첫째는 하나님 백성을 음녀라고 부를 때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이다. 이 음녀들은 모두 하나님 백성의 배도를 말한다. 이와 다르게 적극적 의미의 음녀가 있다.

둘째는 이방인들을 음녀라고 부를 때다. 그들은 음행을 직업으로 삼는 매춘부다. 이사야는 두로를 음녀라고 말한다. “잊어버린바 되었던 너 음녀여...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사23:16–17) 나훔도 니느웨를 음녀라고 부른다.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나3:4) 바벨론은 바로 이런 의미의 음녀 곧 매춘부다.

(2) 음녀의 유혹은 물질 풍요에서 오는 사치 향락

계17:5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음녀 바벨론은 붉은 옷을 입고 각종 금은보석으로 치장했으며 음행의 온갖 더러운 것을 담은 금잔을 가지고 있다. 음녀는 자신이 가진 풍요로 인해 사치와 향락을 좋아하며 음행의 포도주를 즐겨 마신다. 또한 바벨론은 자기가 가진 풍요와 사치로 유혹하여 다른 나라들도 함께 음행하도록 한다. 사람들이 바벨론을 따르고 바벨론과 합하여 음행하는 이유는 바벨론이 가진 물질풍요 사치와 향락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풍요를 갖고 싶어 한다.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2절)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미쳤도다”(렘51:7)

(3) 바벨론이 가진 물질 풍요는 짐승과 용이 준 것이다(7-13절)

그녀는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데 그 짐승의 몸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온갖 참람된 이름이 적혀있다. 이 짐승은 바로 교회를 핍박하는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짐승(계13장)이며 그의 보좌와 능력은 사탄(용)이 그에게 준 것이다. 음녀는 열뿔짐승과 하나 되어 물질을 풍요를 얻었고 사치와 향락하며 음행하고 있다. 음녀 바벨론이 유브라데 강변에서 풍요를 누리며 온 세상으로 음행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교회)는 광야에서 생활한다.

(4) 음녀 바벨론은 누구인가?

1세기 초대교회는 바벨론을 로마제국으로 보았음이 분명하다. 베드로도 로마를 바벨론으로 지칭하고 있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5:13) 심지어 사도요한도 그리스도께서 자기 앞에 펼쳐주신 계시들을 보며 "아! 주님이 지금 로마제국을 말씀하시는 구나"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적용의 문제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들에게 음녀 바벨론은 누구일까? 열뿔짐승과 하나되어 사치와 향락을 주며 하나님 떠나 사탄을 따르도록 유혹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특정국가를 지정해서는 안된다. 이는 18장 4절에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하는 말씀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세상 모든 나라를 통칭한다. 세상이 영적 바벨론이다.

성경은 두 여자와 두 도시를 대조한다. 더러운 음녀와 정결한 신부, 바벨론과 새예루살렘이다. 중간지대는 없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음녀 바벨론이며 바벨론 백성이다. 바벨론이란 적극적으로 음행을 주도하는 사람들이요 바벨론 백성은 바벨론을 따라서 음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그들이 자기 배(식욕)을 신으로 섬기는 자들이라고 한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9)

불신자들이 음녀 바벨론 사람들임은 명백하기에 어렵지 않다. 교회 안에서 성도가 음녀가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물론 성도는 바벨론처럼 매춘부로서 음녀가 아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가는 음녀를 말한다.

성도는 세상나라 음녀가 입은 붉은 옷과 금은보화에 속으면 안된다. 그것은 짐승과 용에게 자기영혼을 내어주고 잠시 빌린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성도는 새하늘과 새땅에서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빛나는 세마포 의복과 금면류관을 얻는다.

<b>&lt;</b><b>참고</b><b>&gt;</b><b>용과 짐승 </b><b>– </b><b>여자의 후손과 사탄결박</b>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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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네 나라 짐승(단7장)은 느브갓네살의 네 나라 신상(단2장)을 단순 반복한 환상이 아니다. 느브갓네살의 신상은 세상나라 네 제국의 표면적 영광을 보여주지만(금은동철) 다니엘의 짐승은 그 네 나라 속에 역사하는 죄와 사탄의 권세와 파괴적 속성을 보여준다.(맹수) 그러므로 다니엘의 짐승을 느브갓네살의 네 제국으로 단순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매우 부족하다.

첫째짐승 사자는 하나님처럼 돼버린 세상나라 바벨론의 교만함과 그 배후에 역사하는 죄와 사탄의 활동을 보여주고, 둘째짐승 곰은 끊임없이 정복하려는 메데바사의 탐욕 속에 역사하는 죄와 사탄의 활동을 말해주고 셋째짐승 표범은 헬레니즘 문화와 종교로 세상을 미혹하는 그리스헬라의 죄와 사탄의 활동을 알려준다. 그러나 넷째짐승은 좀 다르다. 넷째짐승은 정치와 군사의 힘으로 온세상을 밟고 부숴뜨리며 성도와 교회를 직접 박해하는 로마와 그의 후예 모든 세상나라에 역사하는 사탄의 대리자인 작은뿔을 보여준다.

사자 곰 표범 세 짐승(나라)에서 사탄은 사람들의 교만, 탐욕, 미혹 등의 죄를 부각시키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간접활동, 배후역사) 그러나 넷째짐승(나라)에서 사탄은 자신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도를 박해하며 직접 활동한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탄의 머리가 상했고(창3:15) 권세를 빼앗기고 무력화되고 결박되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을 줄 알기 때문이다(계12:12)

다니엘 네 짐승 환상의 핵심은 한때 두때 반때 동안 하나님을 모독하며 성도를 핍박하는 작은뿔에 있다. 그러나 작은뿔은 넷째짐승과 분리되어 혼자 활동하는 특별존재가 아니다. 작은뿔은 넷째짐승의 뿔이며 넷째짐승 자신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본 열뿔철이빨 넷째짐승이 작은뿔이며 작은뿔 짐승이다. 작은뿔은 넷째짐승의 사탄적 인격이다. 작은뿔(적그리스도적 인격)과 넷째짐승(적그리스도적 나라, 단체, 시스템)은 이론적으로 개념구분 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분리할 수 없는 동일한 하나의 영적 실체이다.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탄의 대리자 작은뿔 넷째짐승이 한때 두때 반때 동안 성도를 핍박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 왕권을 받으신 이후부터이다.(단7:11) 작은뿔 넷째짐승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받으실 때 머리가 상하여 죽고 불에 던져져서 권세가 결박되고 한때 두때 반때 동안 교회를 박해한다.(창3:15) 요한계시록은 이 사건을 그리스도께서 하늘보좌에 앉으시자 용이 하늘에서 내쫓겨 땅으로 내려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분을 내며 한때 두때 반때 성도를 핍박한다고 말한다.(계12:12)

작은뿔 넷째짐승은 역사 속에서 안티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단8장,11장)로 먼저 예표화 되었고 그리스도 오신 후 신약교회를 핍박하는 네로, 도미티안 등 여러 로마 황제들과 로마카톨릭의 교황, 공산독재자들로 나타났다. 신약교회 역사 속에 등장하는 모든 적그리스도적 단체와 지도자들은 작은뿔 넷째짐승의 역사적 구현이요 파편적 모습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작은뿔 넷째짐승의 완전한 모습은 아니다. 작은뿔 넷째짐승 진짜 모습은 주의 재림과 심판 직전에 무저갱에서 올라와 두증인을 죽이며 잠시 활동하는 그때 나타난다.(계11장) 그 이전까지는 다섯머리가 망하고, 여섯째머리 하나만 갖고 있는 권세가 결박된 작은뿔 넷째짐승이다.(계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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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작은뿔 넷째짐승 </b><b>(</b><b>열뿔 철이빨 놋발톱</b><b>) (</b><b>단</b><b>7</b><b>장</b><b>)</b>

다니엘 7:7-8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다니엘 7:20-22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작은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서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을 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그의 동류보다 커 보이더라.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다니엘 7:23-27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라서 온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서뜨릴 것이며 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b>작은뿔 </b><b>(</b><b>단</b><b>7:8, 11-12, 20-26)</b>

(1) 넷째짐승의 열 뿔 사이에 솟아난 작은뿔이 이전 세 개의 뿔을 뽑아버리고 나머지 일곱뿔 전체를 지배한다.

열뿔은 넷째나라에서 일어나는 열왕이며(세력과 그 지도자) 작은뿔은 사탄에게 받은 초월적인 힘으로 세 왕을 제거하고 나머지 일곱왕들의 지배자가 된다.(작은뿔이 여덟째왕이 됨=계17:11) 세상열왕들의 힘과 권세가 작은뿔 넷째짐승에게 집중되는 것은 온 세상열왕(열뿔)들이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음녀가 탄 짐승에게 주는 것과 동일하다.(계17:13).

(2)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받고 하늘보좌에 앉아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자 작은뿔 넷째짐승은 죽임당해 그 시체가 불에 던져진다.(단7:9-10)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탄은 권세가 무력화되고 결박되어 하늘에서 내쫓기고 무저갱에 갇힌 것이다.(계12장) 사탄은 자기 때가 얼마남지 않은 줄 알고 분을 내며 땅으로 내려가 여자의 남은 자손들(교회)를 핍박한다.(계12:12) 사탄이 하늘에서 내쫓겨 땅으로 내려감은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나기 전에는 하늘에만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중권세(죄인들의 왕)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때도 사탄은 땅에서 죄인을 유혹하고 참소하며 성도를 핍박하며 활동했다.(계12:9-11) 그러므로 창세기 1장 간격(Gap)이론으로 지구가 사탄의 감옥(무저갱)이란 베뢰아 귀신론과 모든 귀신론자들의  주장은 틀렸다.

(3) 작은뿔 넷째짐승은 한때 두때 반때 동안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또 성도를 핍박하며, 때와 법을 변개시킨다.(단7:20-25) 이는 바다열뿔짐승이 42개월 한때 두때 반때 동안 거룩한 신부(교회)를 핍박하고(계13장) 같은 기간에 붉은빛열뿔짐승이 음녀 바벨론을 사치향락으로 타락시킴과 동일하다.(계17장)

(4) 마지막 심판이 시작되면 작은뿔 넷째짐승은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한다.(단7:26) 주의 재림 직전, 한때 두때 반때를 마칠 때, 짐승은 무저갱에서 나와 두증인을 죽인다.(계11장, 계20:3) 사탄은 잠시 무저갱에서 풀려나고 잠간 세상을 미혹하고 성도를 핍박하지만 곧 유황불못에 던져진다.(계20:3) 최후발악이다.

<b>2.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 </b><b>(</b><b>계</b><b>11</b><b>장</b><b>)</b>

요한계시록 11:7-8

(1260일, 42개월, 한때 두때 반때가 끝나고) “그들(두증인)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한때 두때 반때가 끝나고 두증인(신약교회)이 복음증거 사명을 마치자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이 두증인과 더불어 전쟁을 벌이고(핍박) 두증인을 죽인다. 이는 마지막 때의 교회를 박해하고 죽이는 최후의 심판직전 사건이다.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옴은 사탄이 주의 재림 직전 마지막 때 잠깐 결박에서 풀려나 무저갱에서 나오는 것을 말한다.(계20:3)

한편, 짐승은 무저갱에 갇혀 한때 두때 반때 동안 전혀 활동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짐승은 권세가 결박된 바다열뿔짐승(계13장)과 음녀가 탄 붉은빛열뿔짐승(계17장)으로 1260일, 42개월, 한때 두때 반때 동안 계속 교회를 핍박하고 위협하며, 세상을 사치와 향락으로 유혹하며 미혹한다.

<b>3.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짐승 </b><b>(</b><b>계</b><b>13</b><b>장</b><b>)</b>

요한계시록 13:1-10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1) 바다열뿔짐승(계13장)은 다니엘의 네 짐승들 속에 역사해온 죄와 사탄의 권세와 파괴적 속성의 총합이며 특히 교회를 직접 핍박하는 작은뿔 넷째짐승이다.

바다열뿔짐승은 일곱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다니엘 7장 네 짐승의 일곱머리와 다르다. 이점이 중요하다. 다니엘의 네 짐승은 개별짐승인 사자 곰 표범(네개의 머리) 넷째짐승의 머리를 모두 합쳐보니 일곱머리이다. 그것은 한 짐승의 일곱머리가 아니라 네 마리 개별짐승의 머리 갯수를 모두 더한 것이다. 우리가 일곱머리라고 수를 센 것이지 성경에는 다니엘 짐승들을 일곱머리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네 마리 개별짐승들이다.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짐승은 네 짐승을 합쳐놓은 새로운 하나의 존재이며 그 새로운 존재의 머리가 일곱 개다. 즉 바다열뿔짐승의 일곱머리는 그 짐승 몸통에 사자 곰 표범(네개) 넷째짐승의 개별 머리가 붙어있지 않다. 이는 바다열뿔짐승의 머리를 바벨론 메데바사 헬라 로마로 해석할 수 없도록 만든다.

바다열뿔짐승은 인류역사에 나타난 사탄의 대리자인 작은뿔 넷째짐승이다. 그 짐승은 한때 두때 반때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작은뿔(정치권력과 통치체제, 그 우두머리)이며(단7:20-25) 마지막 때에 무저갱에서 올라와 두증인을 죽이는 짐승이다.(계11장) 바다열뿔짐승이 바벨론 메데바사 헬라 로마 등 세상나라가 아니고 그 세상나라 속에 역사하는 사탄의 대리자 작은뿔 넷째짐승임은 그가 하는 활동들로 확인된다.(5-8절)

다시 말하지만 요한계시록의 무저갱짐승(계11장) 바다열뿔짐승(계13장) 붉은빛열뿔짐승(계17장)은 모두 동일한 짐승이다. 그 짐승은 단순한 세상나라 로마제국과 그의 후예들이 아니라 그 세상나라 속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대리자인 작은뿔이 활동하는 넷째짐승(단체와 지도자)이다.

<b>4. 음녀가 타고 있는 붉은빛 열뿔짐승 </b><b>(</b><b>계</b><b>17</b><b>장</b><b>)</b>

요한계시록 17:3, 7-11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1) 음녀가 탄 붉은빛열뿔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임(8절)

짐승이 전에는 있었다가 시방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아감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 왕권을 받으실 때 작은뿔 넷째짐승이 불에 던져져 죽는 것(단7:11-12) 사탄이 결박되고(마12:29) 타르타로스 어두운 구덩이에 던져지며(벧후2:4) 조포스 흑암에 영원한 결박으로 가두시며(유1:6) 아뷔소스 무저갱에 던져 천년동안 잠그신 것(계20:3)을 말한다.

이는 11절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여덟째왕은 다니엘 넷째짐승의 열뿔 사이에서 솟아나 먼저 있던 세뿔을 뽑아버린 작은뿔(여덟째뿔)을 말한다. 여덟째왕(일곱째머리)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마지막 때에 나타남은 지금은 사탄과 함께 권세가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사탄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죄와 사망을 무기로 죄인들의 왕노릇 하고 있었으나(전에는 있었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 나라 교회가 세워지자 하늘에서 쫓겨나 그 권세가 결박되었다.(지금은 없음) 그러나 사탄은 주의 재림 직전 무저갱에서 올라와 잠시 만국을 미혹한 후 영원한 유황불못으로 들어간다(장차 무저갱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감) 주의할 점은, 이 사이에 사탄과 그의 대리자 작은뿔 넷째짐승은 권세가 결박되고 무력화된 여섯째머리 모습으로 한때 두때 반때 성도들을 핍박한다.

(2) 짐승의 일곱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9-10절)

일곱산은 로마의 일곱 언덕을 뜻하는 지리적 묘사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난 거대하고 강력한 “세상 제국들과 그 권세들”을 상징한다. 이는 뒤이어 나오는 10절에서 천사는 “그 일곱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산이요 또 일곱왕이라”(계17:10) 말함으로 그 근거가 분명하다.

구약 예언서에서 “산”은 mountain이 아니라, 언제나 “제국(세상 나라)”이나 “강력한 왕권과 통치 권력”을 상징하는 은유로 사용되었다. 느부갓네살의 신상을 부순 뜨인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느니라”(단2:35) 여기서 태산은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뜻한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제국을 향해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아”라고 부른다.(렘51:25) 바벨론은 평지에 세워진 도시였음에도 하나님은 그 세력의 거대함 때문에 “산”이라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계시록 17장의 “일곱 산”은 로마의 일곱 언덕을 뜻하는 지리적 묘사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난 거대하고 강력한 “세상 제국들과 그 권세들”의 총합을 뜻한다. 천사는 일곱머리를 일곱산과 일곱왕이라 했다.(10절) 일곱산과 일곱왕은 같은 뜻이다. 강조하기 위해 두 번 반복한 것이다.

일곱산을 직관적으로 일곱언덕의 나라 로마제국으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1세기 성도들의 적용해석이다. 하나님은 음녀를 로마라고 직접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사도요한이 하나님께서 로마라고 하신 것을 요한계시록에 직접 쓸 수 없어 음녀 바벨론으로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도 아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음녀를 로마제국이라고 직접 말씀해주셨다면 요한계시록의 모든 예언은 이미 지나간 과거사건이 된다. 일곱째 대접이 쏟아지면 바벨론은 멸망하는데(계16:19,계18장) 로마가 이미 멸망했으니 요한계시록의 모든 재앙과 그 후 연속되는 마지막 때의 사건도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겟돈전쟁, 우리 몸의 부활, 흰보좌 심판, 유황불못,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 모두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과거사건인데 기독교는 그 과거사건에 미래적 신앙의미를 부여하여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기독교 진리가 아니다.

로마제국은 5세기 멸망했으나 하나님 나라는 완성되지 않았고, 주의 재림과 심판도 새하늘과 새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476년 서로마멸망/1453년 동로마멸망/1806년 신성로마제국멸망) 아직 마지막 반이레, 한때 두때 반때는 끝나지 않았고 지금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음녀 바벨론은 역사적 로마제국을 말함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음녀 바벨론(계17장)은 해달별을 품은 여자와 그의 남은 자손들(계12장)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 새예루살렘(계21장) 곧 신약교회와 대립되는 세상나라 전체를 말한다. 그래서 바벨론은 모든 시대 사람들에게 각각 로마제국, 로마교황청, 이슬람국가, 공산국가, 타락한 자유주의국가로 적용될 수 있다. 음녀는 세상나라 바벨론이며, 음녀가 타고 있는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온 작은뿔 넷째짐승 적그리스도(개인, 세력)이다. 음녀 바벨론은 적그리스도 짐승이 주는 사치와 향락을 누리며 성도들의 피를 잔에 담아 마시지만 후에 짐승에게 철저히 파괴되고 죽는다.(계17:16) 짐승이 음녀에게 주는 모든 풍요는 그녀를 죽이기 위해 잠시 이용하는 것뿐이다.

(3) 짐승의 일곱머리 중 다섯은 망하고 하나는 있으며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10절)

일곱머리 중에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지금 사탄의 권세가 결박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 작은뿔 넷째짐승은 일곱머리 중 여섯째머리 하나만 있다. 여자의 후손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 것이고(창3:15)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탄의 권세가 결박된 것이다.(마12:29) 이 짐승은 사탄의 대리자 작은뿔 넷째짐승이 분명하나 교회시대에는 일곱머리 중에서 다섯 개가 망하고 여섯째머리 하나만 있어 권세가 무력화되고 결박된 짐승이다.

다니엘 넷째짐승에서는 열뿔과 작은뿔로 나오지만 요한계시록에는 열뿔과 일곱머리로 나온다. 작은뿔 넷째짐승이 바로 일곱머리의 바다열뿔짐승과 붉은빛열뿔짐승이라는 것이다. 음녀가 탄 짐승의 머리와 뿔은 다르다. 일곱머리는 짐승의 인격이요 열뿔은 짐승과 협력하는 세상열왕들이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계17:12-13)

열뿔은 열왕인데 일곱머리도 일곱왕이라 하니 동일존재처럼 혼동되지만 열뿔과 일곱머리는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일곱머리는 인류역사 속에서 존재해온 작은뿔 넷째짐승 존재이며 열뿔은 세상나라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사탄의 대리자인 작은뿔 적그리스도에게 적극적으로 자기의 면류관을 드린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는 정치체제요 그 체제의 지도자들이다. 열뿔(열왕)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인류역사 속에 항상 존재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나라 지도자(사람들)들의 총합이다. 사람이 계속 바뀌어도 세상 열왕(열뿔)의 수는 언제나 그대로다.

(4)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11절)

아직 이르지 않은 여덟째왕은 별도의 왕이 아닌 본래 일곱머리 일곱왕 중 하나였었다. 이는 넷째짐승의 작은뿔이 열뿔 중 세뿔을 꺾고 여덟째뿔이 되는 것과 같다. 작은뿔과 여덟째왕은 외부에서 들어온 존재이며 사탄의 대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음녀가 탄 붉은빛열뿔짐승(=작은뿔 넷째짐승)의 일곱째머리가 여덟째왕으로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바로 그 짐승이며 멸망으로 들어갈 자 곧 작은뿔 넷째짐승의 본래모습이란 것이다. 즉 장차 올 여덟째왕 일곱째머리가 음녀가 탄 짐승의 진짜머리라는 것이다. 지금 음녀가 탄 붉은빛열뿔짐승은 일곱 개의 머리중 다섯은 이미 망했고 여섯째머리 하나만 있는 짐승이다. 권세가 무력화되고 결박된 모습이다.

<b>5. 결론 </b><b>– </b><b>용과 짐승</b><b>, </b><b>여자의 후손과 사탄결박을 마치며</b><b>...</b>

(1) 계시록 13장에서 42개월, 한때 두때 반때 동안 활동하는 바다열뿔짐승은 여섯째 머리에 해당되는 다니엘 7장의 작은뿔 넷째짐승이다. 주의 재림 전까지 무저갱에 갇혀 권세가 결박되어 무력화된 모습이다.

(2) 계시록 17장의 음녀가 타고있는 붉은빛열뿔짐승도 역시 42개월 내내 활동하는 여섯째머리에 해당되는 다니엘 7장의 작은뿔 넷째짐승이다. 역시 무저갱에 갇혀 권세가 결박되고 무력화 된 모습이다.

(3) 계시록 11장의 무저갱에서 올라와 두증인을 죽이는 짐승은 권세결박이 풀어진 일곱째머리의 작은뿔 넷째짐승이다. 주의 재림직전 사탄이 결박에서 풀려나 잠시 활동할 때 사탄의 대리자 작은뿔 넷째짐승도 권세를 회복한 일곱째머리(본래모습)로 나타나 두증인(교회)을 죽이고 멸망에 들어간다.(계20:3)

(4) 작은뿔 넷째짐승은 무저갱에 갇혀있는데 어떻게 지금 활동하는가?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다니엘서 7장과 요한계시록 13장은 열뿔짐승의 활동기간이 42개월, 한때 두때 반때, 교회시대 전체로 말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1장과 17장의 열뿔짐승은 마지막 때 무저갱에서 올라와 교회의 두증인을 죽인다. 교회시대 내내 활동한다는 열뿔짐승이 마지막 때에 무저갱에서 올라온다니 모순되지 않는가? 아니다. 열뿔짐승의 일곱머리가 바로 그 해답이다.

모두 일곱머리 열뿔용(사탄)의 대리자이다.(계12장) 모두 동일한 작은뿔 넷째짐승인데, 무저갱열뿔짐승(계11장)은 결박에서 잠시 풀려난 일곱째머리 작은뿔 넷째짐승이고 바다열뿔짐승(계13장)과 붉은빛열뿔짐승(17장)은 그 권세가 결박된 여섯째머리 작은뿔 넷째짐승이란 점이다.

참고로 열뿔짐승이 나오는 바다와 결박된 짐승이 올라오는 무저갱은 상호교차 사용된 표현으로 동일하다. cf&gt;그레고리 빌 (G. K. Beale) – "바다와 무저갱은 사탄적 영역의 다른 이름" 리처드 보컴 (Richard Bauckham) – "다니엘 7장의 바다가 계시록의 무저갱이다"

사탄이 결박되어 그의 대리자 작은뿔 넷째짐승의 일곱머리 중 여섯째머리 한 개만 남아있어도 지금 이정도로 활동하니 만약 일곱개의 머리가 모두 있었을때는 그 활동이 어떠했을지 짐작할만하다. 주의 십자가이후부터 주의 재림 직전까지 교회시대 내내 활동하는 모든 짐승은 그 권세가 결박된, 무력화된 여섯째머리의 작은뿔 넷째짐승이다.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교회를 핍박하는 왕과 황제, 독재자와 그 세력들은 모두 권세가 결박된 여섯째머리의 작은뿔 넷째짐승의 역사적 구현이었다. 그들 모두 한때 두때 반때 동안 교회를 핍박하는 바다열뿔짐승이었고 음녀가 탄 붉은빛 열뿔짐승이었으며, 사탄의 지상적 대리자였다. 그들은 권세가 풀려난 여덟째왕 일곱째머리(계17:11) 작은뿔 넷째짐승의 역사적 실체는 아니었다. 마지막 때에는 진짜가 나타날 것이다.

<b>2. 바벨론 멸망 </b><b>(</b><b>계</b><b>18</b><b>장</b><b>)</b>

계18:4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렘51:45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

계18:10-19 “...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바벨론이 즐겨하던 사치스런 상품목록(계18장)은 두로의 무역목록(겔27장)과 매우 유사하다. 두로는 금은상아, 보석, 자색 옷, 세마포, 향료, 포도주, 기름, 노예 등을 무역했다.(겔27장) 바벨론도 금은보석, 진주, 세마포, 자색 옷, 비단, 붉은 옷, 향품, 향유, 포도주, 감람유, 말과 말수레, 종들과 사람의 영혼을 상품으로 거래하고 사용했다.

그래서 개혁신학자들은 계시록 18장이 에스겔 27장의 두로 애가를 의도적으로 재사용한다고 보았다. 한마디로 바벨론은 재물와 사치와 향락과 소비를 추구하는 맘몬숭배 세상나라이다. 에스겔은 두로왕의 교만과 파멸을 사탄의 타락과 심판에 비유한다(겔28:13-14)

계18:20-21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b>3. 어린양의 혼인잔치</b><b>, </b><b>백마탄 자와 세마포 군대 </b><b>(</b><b>계</b><b>19</b><b>장</b><b>)</b>

계19:6-9 “...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계19:11-2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b>4. 천년왕국 </b><b>- </b><b>실제나라인가</b><b>? </b><b>그리스도 통치의 상징인가</b><b>? (</b><b>계</b><b>20</b><b>장</b><b>)</b>

(1) 천년왕국은 구원여부를 결정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천년왕국은 신학과 신앙생활의 뼈대가 되기에 매우 중요하다.

(2) 우리가 실현된 천년왕국(현천년설/무천년설)을 따르는 이유

첫째, 예수님과 사도들은 천년왕국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신약성경도 요한계시록 20장을 제외하고는 유대인의 나라 지상천국 천년왕국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천년동안 유대인의 지상천국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유대인의 지상천국 천년왕국은 유대교의 교리와 일맥상통하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이스라엘 회복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나님 나라(교회)로 성취되었음을 가르친다. 이것이 신약이고 기독교이다.

셋째, 요한계시록 20장은 하나님께서 음녀 바벨론 심판(계17-18장) 짐승과 거짓선지자 심판(계19장)과 함께 용(사탄)을 심판(계20장)하는 환상이다. 이 셋은 주의 초림부터 주의 재림 때까지 한때 두때 반때를 활동하며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며 교회를 핍박한 멸망의 세 원흉이며, 세상나라의 삼두체제다. 사탄은 그 우두머리다. 그리스도께서 이 셋을 차례대로 심판하신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천년왕국 - 사탄은 천년동안 무저갱에 결박되었다.

천년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가장 길고 충만한 한 단위기간이다. 유대인에게 숫자 1000은 광대하고 충만함을 나타낸다. 사탄이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히고 마지막에 잠깐 놓이는 기간인 천년은 아주 길고 광대한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주의 초림부터 주의 재림 직전 때까지다.

사탄이 무저갱에 쇠사슬로 묶여있음은 권세결박이며 존재결박이 아니다. 사탄은 우리 주변에서 심하게 공격하며 유혹하며 시험한다. 사탄결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인해 결박되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아 성령으로 통치하신다. 사탄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지금 이 시대에 죄인이 복음을 믿고 하나님 백성으로 구원받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사탄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함으로 자기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3) 첫째부활에 참여한 성도는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한다.

지금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 왕노릇 하는 것인가?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 왕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약은 전투하는 지상교회와 승리한 천상교회를 동일시한다. 분명 지상교회는 아직 고통이 있고 죄와 사망이 여전하지만 예수님과 사도들은 지상교회를 이미 구원 얻은 영광스런 천상교회와 동일시한다. 이것이 복음의 비밀이다. 죄인의 나라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신비다.

비록 그것이 우리 몸의 부활로 얻을 완전한 구원과는 비교되지 않지만, 성도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 구원을 먼저, 미리, 지금 체험하고 있다. 이점이 성도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함이다.

첫째부활을 얻는 자는 예수 믿는 성도다. 천상에 있건 지상에 있건 차이가 없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이미 첫째사망 당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복음을 믿어 하나님 나라 백성된 사람들은 이 땅에서 첫째부활(구원,중생)을 얻는다. 하나님 나라가 먼저, 미리, 지금 우리 가운데 임했기 때문이다. 또한 둘째사망이 불신자의 지옥심판이라면 둘째부활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기위한 모든 사람의 육체부활이다. 이러한 해석이 예수님과 사도들이 가르친 하나님 나라 구원과 맞다.

첫째부활(중생/구원얻음), 둘째부활(육체부활)을 이미와 아직의 하나님 나라 구원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성도가 먼저 부활하고 천년 후에 불신자 부활하는 두 번의 육체부활을 말하게 된다. 한사람이 두 번 부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한 성도와 부활하지 않은 죄인들이 이 땅에서 천년동안 함께 살아간다는 큰 모순에 빠지게 된다.

더욱이 천년이 끝나면 세상이 힘을 합쳐 그리스도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을 대적하며 전쟁을 일으킨다. 부활한 성도들은 죽지 않는 몸인데 그들과 어떻게 싸우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왕으로 통치하고 계신데 그리스도를 대적해서 전쟁을 일으킴이 가능한가? 갈수록 미궁에 빠지고 혼란하게 된다

<b>&lt;</b><b>참고</b><b>&gt;</b><b>세대주의 종말론의 세 가지 문제점</b>

(1) 유대인 중심주의 – 그리스도께서 종결하신 혈통적 이스라엘을 다시 주장함

천년왕국은 요한계시록 20장에만 나온다. 사탄이 천년동안 무저갱에 결박되고 성도는 천년동안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왕노릇 한다는 것이다. 이 본문은 환상언어로 기록되었는데 일반서신처럼 해석하므로 유대인의 나라 지상천국 천년왕국설이 등장했다.

세대주의 신학의 핵심은 혈통적 이스라엘(구약교회)와 영적 이스라엘(신약교회)를 철저히 분리함이다. 구약 이스라엘 회복예언은 유대인들에게 해당되고 신약교회와는 상관이 없다. 이 전제에 따라 그들은 구약 선지서의 이스라엘 회복 예언을 모두 유대인들에게 적용시키고 이를 예루살렘에 세워질 유대인의 나라 천년왕국으로 귀결시킨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혈통적 이스라엘 나라, 유대인 우선성을 인정함이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신약 메시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세대주의는 성경의 역사를 하나의 단일 구속사가 아닌 각각 구분된 일곱 세대로 나누기에 구약과 신약, 복음과 율법의 통일성이 없다. 이는 율법과 복음을 단절시켜 도덕폐기론의 문을 열게된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그리스도 구속사로 읽혀져야 옛언약(행위)와 새언약(성령), 율법과 복음은 서로 적대적이 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된 하나님의 구원계시가 된다. 이러한 해석이 올바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창조가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아랍인 성도들은 모두 똑같은 하나님 백성이다. 어떤 구분도 없다. 유대인의 우월성을 주장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됨을 거부하고 다시 옛질서의 유대주의로 회귀함이다.

(2) 구속사를 되돌림 - 천년왕국 새예루살렘 성전에서 다시 짐승 피의 희생제사 드림

세대주의 종말론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되돌리는 결론까지 도달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에스겔의 이스라엘 회복 환상을 유대인의 지상천년왕국에 적용하여 예루살렘에 황금돔 사원이 무너지고 제3성전이 세워진 후 그곳에서 동물 희생제사가 다시 드려짐을 주장한다. 그들이 천년왕국에서 드려지는 동물 희생제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회상하며 기념한다고 하나 궁색한 설명이다. 부활한 성도들이 재림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천년동안 동물 피의제사 드림이 합당할까? 있을 수 없다. 이는 구약으로 회귀함이요 하나님의 구속사를 다시 되돌리는 엄청난 모순에 도달한다.

(3) 두려움에 근거한 신앙 - 두번 재림, 세번 부활, 환란 전 휴거, 7년대환란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육적 이스라엘은 신약교회 안에 포함되어 완성될 수 없다고 주장하므로 유대인의 지상천년왕국을 설정한 후 예수님이 두 번 재림하시고(공중재림 지상재림) 이 땅에는 세 번의 부활이 있다고 복잡한 종말도식을 그리게 된다(이방인교회 부활, 유대인 부활, 불신자 부활) 이러한 종말도식은 매우 인위적이며 부활한 성도와 부활하지 않은 악인이 천년간 함께 (신자는 천년왕국 안에 불신자는 천녕왕국 밖에) 산다는 큰 신학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신자는 부활한 몸으로 천년살고 불신자는 부활하지 않았기에 70-80년 살며 병들고 다치고 죽는다. 신자가 천년간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놀라운 모습을 보고도 불신자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재림하신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데 불신자들이 천년 후에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다.

휴거는 살아있는 성도가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으로 들림받는다는 세대주의 종말론의 용어다. 죽은 성도는 부활, 살아있는 성도는 휴거(공중들림)다. 역사적 전천년설과 실현된 천년왕국 현천년/무천년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성도는 부활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한다. 왕이 오실 때 백성이 영접나감은 지극히 당연하다. 휴거는 이게 다다. 다른 의미가 없다. 그래서 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에서는 휴거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혹시 사용해도 살아서 부활한 성도가 그리스도를 공중에서 맞이한다는 용어의 줄임말로 사용할 뿐이다. 큰 의미가 없다.

휴거를 중요시 하는 것은 세대주의 종말론이다. 세대주의에서 휴거는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7년대환란의 시작을 알리는 아주 중요한 첫 사건이다. 인류의 종말 시간표는 휴거부터 시작된다. 살아있는 성도는 휴거되어 공중에서 7년간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고, 불신자와 가짜성도는 땅에서 7년간 대환란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휴거를 많이 말하는 목사나 교회는 세대주의 종말론을 따르고 있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환란 전 휴거를 주장한다. 신약교회는 환란이 시작되기 전 휴거되어 무시무시한 7년대환란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교회(성도)가 환란당하지 않는다는데 굳이 기분나빠할 이유는 없지만, 성도 중에는 휴거되지 못해 7년대환란을 통과하며 믿음을 입증해야 할 성도도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휴거는 생생한 재림신앙을 갖게 하지만 그 근저에는 내가 땅에 남겨지면 어떻게 할까하는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으로 시작된 신앙생활은 건전하지 못하다.

<b>4. 새하늘과 새땅</b><b>, </b><b>새예루살렘 </b><b>(</b><b>계</b><b>21-22</b><b>장</b><b>)</b>

(1) 모든 것이 불에 타서 없어지고, 이 세상은 새하늘과 새땅이 된다(1절)

이 땅은 완전히 불에 타서 없어진다. 새하늘과 새땅은 이 땅을 청소하고 수리해서 가장 최상의 상태로 발전시킨 모습이 아니다. 지금과 완전 다른 세상이다. 지금까지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은 불에 타서 없어진다. 사람들을 모두 부활해서 죽지 않는 몸이 되는데 세상 건물들을 그대로 남아있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 집 빌딩 도로 지하철... 모든 시설물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해보라. 부활한 사람들이 그 시설을 사용하고 거기 살아야 하나? 타락의 온상이던 퇴폐술집 카지노... 부활한 성도들은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 모든 건물을 부수고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하늘과 새땅에는 건물해체 및 재건축 전문가들이 최고 필요하겠다(joke) 모든 것은 불타 없어질 것이다. 죄가 지배하는 이 땅과 전혀 다른 새창조다.

벧후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첫째, 새하늘과 새땅은 에덴을 회복완성(새창조)함이다. 문화명령은 에덴을 완성하기 위해 주어졌기에, 에덴이 완성된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문화명령이 필요치 않다. 부활한 성도는 완성된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 그곳을 다스릴(관리) 뿐이다. 그래서 새하늘과 새땅은 새창조(완성)이다.

둘째, 새하늘과 새땅(새창조)는 이 땅에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죄로 더렵혀진 이 땅(지구)을 소멸(멸절)치 않으시며, 새로운 별(공간)에 새하늘과 새땅을 만들지 않으신다. 새하늘과 새땅은 첫창조의 연속이되 첫창조를 회복완성 하는 새창조다. 죄인을 구원해서 새로운 피조물, 새사람 되게 하셨듯(새창조), 하나님은 이 땅을 다시 에덴으로 회복완성(새창조)해주신다. 루터교회는 첫창조와 단절을 주장하나(소멸론) 개혁교회는 첫창조의 연속을 주장한다(갱신론) 단 갱신론은 이 땅이 불에 타서 완전히 없어지는 새창조임을 강조해야 한다.

(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2절)

예루살렘은 에덴의 하나님 나라를 모델로 현시함이다.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로 중단된 당신의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을 다시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에덴을 보여주는 장소를 정하시고 그곳에 임재하셨다. 그곳이 예루살렘이며 그곳이 바로 성전이다. 이후부터 에덴의 동쪽 바벨론(성)은 세상나라를 대표상징하고, 성전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좌정하시고 그의 거룩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에덴을 의미하게 된다.

(3)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7절)

천사가 어린양의 아내라 보여준 것은 새예루살렘성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건물과 결혼하실 리가 없기에 새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다.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2)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간다.

새하늘과 새땅에는 눈물이 없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죄와 사탄이 없고 사망도 없다. 그곳에는 눈물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도 없다. 극심한 수고(창3장), 사람과의 갈등(창4장) 갑작스런 사건사고(잠27장) 마음의 수고와 무거운 짐(마11장) 육체의 노병사(늙고,병들고,죽음,시90편)가 없다.

(4) 새예루살렘성의 크기 - 장광고 12000 스타디온 정육면체 (지성소)

새 예루살렘성은 그 성 전체가 지성소이다.(16절) 새 예루살렘성은 장광고가 각각 12000 스타디온의 정육면체다. 스타디온은 당시 그리스에서 사용하던 단위로 그 길이가 정확히 알려져 있다. 1 스타디온은 185m이므로 12000 스타디온은 2,220km/약1380mile이다. 구글맵으로 워싱턴에서 LA까지 최단거리 고속도로가 2,670mile이라 할 때 새예루살렘성은 가로 세로의 길이가 미국 동부와 서부의 중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그 높이까지도 2220km다. 우주의 경계를 구분하는 대기권은 통상 지상에서 100km다. 전에 아마존 창업자가 로켓을 타고 100km 정도 올라가 우주여행 했다고 하는데, 천국 꼭대기에 올라가려면 그것보다 23배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 국제선 비행기는 통상 10km에서 13Km 사이의 하늘에서 운항한다. 새 예루살렘성의 크기, 특히 그 높이를 묘사한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새 예루살렘성은 한쪽 성벽의 길이가 12000 스타디온(=2220km)인 정육면체 단일건물인 점, 특히 그 높이가 대기권보다 23배가 높다면 이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게 될 일반적인 건축물의 묘사가 아님이 분명하다. 정육면체는 일반건물을 지을 때 사용하는 모양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정육면체로 만들라고 말씀하신 건축물이 있다. 바로 성전의 지성소다. 성막의 지성소는 10규빗 장광고(출26:16), 솔로몬성전의 지성소는 20규빗 장광고(왕상6:2), 에스겔성전의 지성소 20척 장광고(겔41:4)이다. 광야의 이동식 성막 울타리의 평면은 직사각형이나, 솔로몬 성전과 에스겔 성전은 모두 정사각형이다. 그러나 높이까지는 정육면체가 되지 못했다. 오직 지성소만 장광고가 동일한 정육면체다.

새 예루살렘성 안에는 성전이 없다. 에덴동산 전체가 성전/지성소이듯, 새 예루살렘성 전체가 성전/지성소이다.

계21:22-23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3) 새 예루살렘성은 주 하나님과 어린양을 섬기는 교회의 완성이다.(22절)

새 예루살렘성은 에덴동산이 회복완성 된 모습이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섬기며 동행했던 것처럼 새 예루살렘성에서는 구속받은 아담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그곳에는 건물성전이 없다. 성 자체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지성소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곳이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성을 각종 보석과 정금으로 표현했다.(겔28장)

새 예루살렘성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피로 세운 성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 얻고 성령으로 정결함을 얻은 사람들만 들어간다. 그들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교회(성도) 밖에 없다.

계22:1-4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창1장 – 천지창조

창2장 – 사람창조(언약의 시작)

창3장 – 사탄의 유혹으로 죄와 사망이 들어옴.



계20장 – 죄인과 사탄을 유황불못에 심판. (죄, 사망 사탄이 없음)

계21장 –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성(선악과 행위언약성취 - 거룩한 백성)

계22장 – 새에덴의 회복과 완성. (창조경륜)]]></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Thu, 11 Jun 2026 16:38: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3"><![CDATA[주일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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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2026. 6. 7. 주보]]></title>
			<link><![CDATA[https://gospel323.com/?kboard_content_redirect=1456]]></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gospel323.com/wp-content/uploads/2026/06/image002.jpg" alt="" width="1200" height="1020"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143" />]]></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07 Jun 2026 16:25:0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7"><![CDATA[주보자료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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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오경(25) - 하늘만나와 반석의 물을 마시며 (출16:1-5, 고전10:1-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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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lL4_mOnH08o?si=1Vo4GpfKH9vDxpzo"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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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justify;"><strong>오경(25) - </strong><b>하늘만나와 반석의 물을 마시며 </b><b>(</b><b>출</b><b>16:1-5, </b><b>고전</b><b>10:1-4)</b>

<b>1. 출애굽해서 시내산까지</b>

(1) 구원은 장소바꿈이 아니라 죄인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 에덴은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이 아니라 사람의 죄가 없는 곳이다. 에덴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관계가 된 곳이다. 하나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죄인을 이 땅에서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시켜 가다가 주의 재림때 부활영화 시켜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구원이다. 창조주 하나님께 이 땅을 새하늘과 새땅으로 다시 창조하심은 전혀 어렵지 않다. 죄없는 사람을 다시 창조하여 하나님 백성 삼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범죄한 죄인을 회개시켜 거룩하게 만들고 최종 영화롭게 만드시는 일이 어렵다 이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주실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만 죄인이 구원 얻을 수 있다.

- 출애굽 과정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언약대로 구약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변화시켜 가시는 구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것이 복음이고 성도의 신앙생활이다.

<b>2. 하늘만나와 반석의 물을 마시며</b>

(1) 복음 -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 출4:2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 출애굽은 유월절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시며 처음부터 열가지 재앙을 말씀해주셨다. 하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애굽의 모든 신들을 멸하고 자기백성 구원하심을 온 세상에 알리려 하심이다. 하나님은 유월절 규례를 주시며 자기백성이 대대로 기억하게 하셨다.

- 유월절 어린양은 일년 된 흠 없는 수컷이어야 했다.(출12:5) 일 년 된 수컷은 미성숙한 새끼양이 아니라 젊은 양이다.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세례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사도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5:7) 말했다.

- 유월절의 핵심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뿌리고) 그 집 안에 거하는 것이다. 죽음의 천사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보고 그 집은 지나간다.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을 때, 피를 바른 집 안에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을 얻는다. 유월절 세데르(저녁식탁)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되어 구속사적 역할을 다했다. 예수님은 유월절 세데르를 종료시키고 당신의 십자가로 죄사함과 그리스도와의 연합됨을 기억하는 성만찬으로 교체/대체하셨다.

- 유월절의 출애굽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 나라 구원얻음으로 성취되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이었다. 성자하나님께서 내 죄의 삯인 죽음형벌을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에 내가 죄용서 받고 구원 얻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 죄의 형벌을 담당하실 때 내가 한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나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신 십자가 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객관적 십자가 사건을 믿음으로 얻는다.

(2) 세례 - 홍해를 건너며 자기죽음을 고백해야 한다.

- 출14: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 하나님은 출애굽 이스라엘을 지중해 해안길(Way of the sea)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홍해 앞 바닷가로 인도하셨다. 이는 바로가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뒤쫓아 오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시고 애굽군대를 수장하시기 위함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심을 온 세상에 나타내려 하심이다.

- 바로는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 진을 쳤다는 소식을 듣고 길을 잘못 들어 광야에 갇힌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는 특별병거 600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가지고 군대장관과 함께 이스라엘을 추격하여 홍해 앞으로 나아왔다. 애굽 군대가 홍해 앞에선 이스라엘을 즉시 공격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막으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앞서 인도하던 불과 구름기둥이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서서 막으심으로 밤새도록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진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 출애굽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행하신 10가지 재앙과 유월절을 체험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바로가 병거를 이끌고 뒤쫓아오자 두려워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믿음은 관념이 아닌 실제이다. 믿음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라가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우리도 우리의 모습을 잘 모른다. 문제 앞에 서봐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실제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신뢰함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 출14:10-12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 모세가 손을 내밀자 홍해가 갈라져 길을 내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고 애굽군대는 홍해에서 수장되었다. 유월절과 홍해의 기적 앞에 애굽과 이스라엘 모두는 하나님의 역사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유월절에 죽은 장자보다 더 많은 수의 군대가 홍해에 수장되고 나서야 바로는 완전히 항복하였다.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출14:13-14)

- 참고로, 이스라엘이 출애굽 때 건넌 홍해는 수에즈만이 아니라 아카바만이라는 주장이 있다. 시내산은 시나이반도가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새로 발견한 복음진리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유대 전통과 대부분의 개혁신학자들은 출애굽 이동 경로가 숙곳 에담 바하히롯(홍해 앞) 등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이 유월절에 고센(라암셋)을 떠나 홍해 앞에 도달할 때까지 대략 3일이 걸렸다고 본다.(민33장) 고센에서 시나이반도의 수많은 산악지대를 거쳐 아카바만까지 3일 만에 도달함은 불가능하다. 시내산이 시나이반도가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다는 주장은 성경의 구원계시와 아무 상관없는 무의미한 일이며, 그들의 근거자료들은 학문적 가치가 없어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애굽(죄, 사망, 사단)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긴다. 죄와 사망의 세력은 쉽게 항복하지 않는다. 온 애굽이 쑥대밭이 되고 애굽 모든 장자가 죽어나가도 또 쫓아온다. 죄와의 영적싸움을 쉽게 생각하지 마라. 죄는 우리 결심 노력으로 이길 수 없다. 십자가 앞에 나아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할 때만 이길 수 있다.

-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는 사건들(10가지 재앙, 유월절, 홍해 기적)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이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하나님이 행하시고 백성들은 믿음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구원에는 우리 공로가 전혀 없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이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믿음뿐이다.

(3) 그리스와의 연합(성령) - 광야에서 하늘만나와 반석생수를 마셔야 한다.

-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수르광야에서 물이 없어 3일간 고통을 당했지만 아직 버틸 수 있다. 애굽에서 가져온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으로 감정을 누르며 불만을 참는다. 일단 하나님은 마라 쓴물을 단물로 바꿔 그들에게 주시고 엘림 오아시스에서 쉬게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할 만큼 인도하신다. 고센을 떠나고(1.15) 정확히 한 달 후(2.15) 신광야에 도착하자(출16:1) 애굽에서 가져온 먹을 것이 모두 소진되었다. 이때부터 불평이 시작된다. 더 이상 이성으로 감정이 억제되지 않는다. 애굽에서 가져온 것은 한 주먹에 불과하다. 가나안까지는 40년이 남았는데 겨우 한 달 치 분량이다. 우리가 자랑하고 의지하는 모든 것이 그렇다. 하나님은 신광야에서 하늘만나를 주셨고(출16장) 르비딤에서 반석생수를 주셨다.(출17장, 민33장)

- 출애굽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가는 것이다. 광야에 들어서야 비로소 가나안으로 가는 구원의 여정이 시작된다. 광야는 내가 자랑하던 애굽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살 수 있는 곳이다. 광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내가 누구인지 철저하게 배우는 곳이다.

- 신학적 의미로 보면 광야는 본래 에덴과 같은 완전한 세상이었다. 하나님은 광야를 창조하지 않으셨다. 사람의 죄 때문에 에덴같은 세상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광야로 바뀐 것이다. 에덴동산은 사람이 피조물로서 성삼위 하나님 안에 거하며 순종하며 대리통치자로 살아가는 곳인데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단절시켰고 에덴을 죽음의 광야로 만들어 버렸다. 광야는 절대로 내 것으로는 살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만나와 반석생수로만 살 수 있는 곳이다. 죄의 세상이 그렇다.

- 오병이어 기적을 본 무리가 다시 표적을 구하자, 예수님은 당신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먹인 하늘만나 생명의 떡(요6:35) 반석생수 생명의 물(요7:8)이라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먹고 마셔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 죄사함 받고 성령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칭의)돼야 광야 40년을 살 수 있고 주의 재림때 부활영화를 얻게 된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7-39)

-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1-4절)

<b>&lt;</b><b>결론</b><b>&gt;</b><b>구원은 날마다 하늘만나와 반석의 물을 마시며 그리스와의 연합되어 살아가는 것이다</b><b>.</b>

</div>]]></description>
			<author><![CDATA[GOSPEL323]]></author>
			<pubDate>Sun, 07 Jun 2026 16:24:1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ospel323.com/?kboard_redirect=3"><![CDATA[주일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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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개혁주의 종말론(9) - 교회 위로 - 일곱 계시 (한때 두때 반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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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justify;"><strong>개혁주의 종말론(9) 교회 위로 – 일곱 계시 (한때 두때 반때)</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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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인 맞은 자 </b><b>14</b><b>만</b><b>4</b><b>천과  흰옷 입은 큰 무리 </b><b>(</b><b>계</b><b>7</b><b>장</b><b>)</b>

(1)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3절)

이마에 인을 치는 것은(계7장) 에스겔의 세마포 먹그릇 천사 환상(겔9장)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살육하는 기계를 가진 여섯 천사를 부르시고 그중 가는 베옷(세마포)를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한 천사(=세마포 먹그릇 천사)에게 먼저 가서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을 보며 탄식하고 우는 하나님 백성의 이마에 표하라고 하신다. 나머지 다섯 천사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이마에 표를 받지 못한 모든 사람을 남녀노소, 처녀와 어린아이, 부녀 가릴 것 없이 진멸하라고 하신다.

이마에 인을 침은 하나님 백성으로 완전히 확정하는 뜻이다. 이마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장 눈에 띄는 곳이다. 그곳에 하나님 백성의 표시를 한다. 신명기 쉐마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미간(이마)에 붙여 표를 삼으라고 했다(신6:8). 짐승의 수 666 표시(계13:16)나 하나님 백성의 인(=하나님 이름과 어린양의 이름)도 모두 이마에 받는다(계7:1,계14:1,계22:4)

(2)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144000은 상징수이다. 이 숫자는 어디서 나왔을까? 신구약 성도들의 대표 24장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24장로는 구약 열두지파와 신약 열두사도를 말한다. 144000은 구약 열두지파와 신약 열두사도 숫자에 군대단위 일천을 곱한 것이다(12x12x1000) 구약 이스라엘 군대는 일천명을 단위로 해서 한 개의 부대를 조직한다. 그 부대 안에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출18:13-31)이 있다. 또한 이스라엘에서 1000은 완전수 10을 3번 곱한 것으로 무한과 충만을 의미한다(출20:6 죄는 삼사대, 은혜는 천대, 대하1:6 솔로몬 일천마리 번제) 천년왕국에서 천년의 기간이 바로 그런 의미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대하여 각 지파에서 일천인씩을 싸움에 보낼찌니라 하매 매 지파에서 일천인씩 이스라엘 천만인 중에서 일만 이천인을 택하여 무장을 시킨지라”(민31:4-5)

민수기 31장에는 각 지파별로 1천명씩 뽑아 1만 2천명의 특별군대를 소집한다. 그들은 바알브올 음행사건을 일으킨 미디안을 치러 보내는 군대이다. 1만2천명은 여호와의 진멸전쟁을 치루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군대이다.

교회는 죄, 사탄과 영적전투를 치루는 거룩한 군대로서 신구약 성도의 총계는 144000명이 된다. 군인의 총수가 24000(24장로 x 1000) 명이 아니라 144000명(구약12지파 x 신약12사도 x 1000)임은 민수기 인구조사에서 보듯 이스라엘 각 지파의 군인 수는 만명 단위이며, 열두지파 군인의 총수는 십 만명 단위임과 맞추려는 것 같다.

여기서 조금 의아한 것은 열두지파 명단에 단지파가 빠지고 레위지파가 들어갔다. 단지파는 사사기에서 은으로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 백성 열두지파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거나 단지파는 동쪽으로 멀리 가서 단군이 되었다는 주장을 하지 말자. 이스라엘 회복을 말하는 에스겔 환상 기업분배(겔48장)에는 단지파가 들어 있음을 보아 그 모든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7장 전투적 교회 명단에서 단 지파가 빠진 것은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다. 세상 우상과 타협하고 배교하는 자는 주님의 거룩한 군대에 들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구약의 에스겔 48장 승리적 교회 명단에서는 그 자격 없는 단 지파가 가장 먼저 기업을 얻는다. 이것이 복음이다! 역사의 과정 속에서는 우리의 죄악으로 징계를 받고 탈락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은 창세 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을 예수의 피로 정결케 하사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에 단 한 사람도 낙오 없이(단 지파까지도) 다 구원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144000명은 한 단체 내에서 볼 때는 매우 큰 숫자이지만, 수천년 역사 속에 구원받은 자의 총수로 생각하면 너무도 작은 숫자다. 그들을 유대인으로 제한한다 해도 그렇다. 역사이래 지금 까지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구원받은 자가 144000명 뿐이라니... 그 수가 작아도 너무도 작다. 이 숫자는 상징수로 신구약 성도 모두를 말하며 하나님 백성의 충만한 수를 표현한다.

열두지파 144000명은 지상교회가 전투하는 교회임을 말하고자 함이 분명하다. 지상교회는 영적싸움으로 인한 수많은 피흘림이 있다. 영적으로 그렇고 박해국가에서는 실제로도 그렇다. 이것이 죽임당한 자들의 수가 찰 때까지라는 의미다.

(3)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흰 옷 입은 큰 무리

사도요한은 인 맞은 자 144000명의 환상을 보고나서 또다시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무리를 환상으로 본다.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양 그리스도께 구원의 감사 찬양을 드리고 있었다. 그들은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로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되었다. 그들은 하늘성전에서 찬양하고 있었다. 그들은 죄 사탄과의 치열한 영적싸움을 끝낸 승리한 천상교회 성도들이다.

인 맞은 자 144000은 지금 이 땅에 있다.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지금 하늘성소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찬양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둘은 세대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유대인 중 구원 얻은 자(144000)와 이방인 중 구원 얻은 자(큰무리)가 아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인 맞은자 144000명이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서 새노래를 부르는데 이 새노래를 부를 자는 144000명 밖에 없다. 즉 이 땅에서 구원 얻은 자는 144000뿐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144000은 유대인중 구원 얻은 자가 아니라 전투하는 지상교회로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구원받은 자를 말한다. 흰 옷 입은 큰무리는 승리한 천상교회 성도를 말한다.

인 맞은자 14만4천과 흰 옷 입은 큰 무리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말함이 아닌 지상교회와 천상교회로서 동일한 신약교회의 두 측면을 말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질 것을 약속하셨다. 민수기 인구조사에서처럼 20세 이상 전쟁에 나갈 수 있는 군인의 수는 세고 나머지 숫자는 세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셀 수 없이 많아지리라는 아브라함 언약을 기억함이다. 그러므로 144000은 치열하게 영적전투하는 지상교회를 말하고,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는 셀 수 없이 많은 하나님 백성의 총수요 천상교회를 말한다. 144000과 큰 무리는 지상교회와 천상교회로서의 동일한 하나의 신약교회를 말한다.

천상교회는 더 이상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않는다.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저희 목자가 되사 생명수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죄와 사탄으로 인한 사망의 고통이 없다. 그들의 구원은 완성되었다. 아직 몸의 부활과 상급을 받지 못했기는 했으나, 그것은 재림 때 주께서 당연히 주실 것이기에 그들의 구원은 완성되었다. 그들은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4) 천상교회는 의로워진 몸(흰옷)을 입었다.

흰옷은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된 거룩한 영화의 몸을 말한다. 다섯째 인봉이 열릴 때, 제단의 피로 드려진 순교자들에게 주님은 흰 두루마기(긴옷)를 입혀주신다. 흰옷은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긴 옷(계1:13)과 같다. 어린양과 함께한 시온산에 서있는 하나님의 인을 맞은 백성 144,000명(계14:4-5), 하늘성전에 있는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어린양의 피로 씻어 희게 된 옷을 입었다(계7:14) 흰옷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갈 예복(계19:8)이며, 마지막 심판 때 백마 탄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늘군대가 입은 옷(계19:14)이다.

지상교회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다(=칭의) 흰옷 입은 성도들은 죄와 사탄이 없는 천상교회 성도들이다. 지상교회 성도는 그 정체성이 흰옷입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세마포 군대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흰옷을 아직 입지 못했다. 재림 이전에 지상에서 흰옷입고 영화의 몸을 입은 성도는 있을 수 없다. 지상에서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의의 옷을 입는다.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다. 그리스도로 옷(갈3:27)입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빛의 갑옷을 입는다(롬13:114) 칭의가 바로 그 말이다. cf&gt;십자군 전쟁은 교회의 잘못된 정복신학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b>2. 작은 책 </b><b>(</b><b>계</b><b>10</b><b>장</b><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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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계10:7)

하나님의 비밀이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완성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세상나라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에게 보여주신 “네 나라 신상 꿈”(단2장)을 말한다. 다니엘은 그 꿈을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에게 주신 “은밀한 것”(비밀,단2:18)이라 했고 그 꿈은 인류역사 속에서 “후일에 되어질 일”(단2:28)이다. 사도요한은 느브갓네살에게 주신 꿈 곧 “후일에 되어질 일”(단2:28)을 “반드시 속히 될 일”(계1:1)로 “은밀한 것”(단2:18)을 “하나님의 비밀”(계10:7)이라 말한다.

하나님의 비밀은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명백히 드러난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계11:15) 그러므로 천사가 말한 하나님의 비밀이란 하나님 나라가 세상나라 인류역사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완성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니엘의 “네 나라 짐승”(단7장)으로 더욱 세밀히 계시되며, “수양과 수염소”(단8장, 페르시아 이기고 헬라제국의 등장) “70이레”(단9장) “북방왕과 남방왕”(단10-11장, 헬라제국 분열 후 톨레미와 셀루커즈의 전쟁)까지 예언된다. 여기까지가 70이레의 69이레와 반이레(1/2)에 일어날 일이다.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에게 봉인하라고 하신 70이레의 마지막 남은 반이레(1/2, 한때 두때 반때)의 계시를 말한다.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구약 역사 속에 등장한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 나라가 세상나라 가운데 이루어짐을 직접, 간접으로 예언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시대 사람들에게 예언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의 회복과 완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제 그리스도의 오심과 신약교회의 탄생으로 구약 선지자들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사야의 이스라엘 회복 예언과, 예레미야의 바벨론 포로 70년 회복예언과, 에스겔의 성전회복 예언과 다니엘의 70이레 예언과 요엘 스가랴... 모든 예언이 그리스도와 성령 신약교회의 탄생으로 성취되었다.

(2) 작은 책을 먹으니 입에는 달고 배에는 썼다.

펼쳐진 작은 두루마리 책(계10장)은 하나님 손에 있던 인봉된 두루마리(계5장)이다. 일부 학자들은 작은 책이 뒤이어 나오는 교회의 두증인 사명(계11장)이라 보기도 하지만 그 책을 먹고 백성과 나라와 방언들에게 다시 예언하라는 말을 보면 이는 일곱재앙으로 계속되고 있는 하늘보좌에서 본 그 두루마리를 가르킴이 합당하다.

하늘보좌 일곱인봉된 두루마리는 죄로 오염된 세상나라 속에 하나님 나라가 도래 완성되는 구원계시다. 이 계시는 세상나라 바벨론을 심판하는 일곱재앙이 들어있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 백성 교회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구원 메시지였다. 이 두루마리를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로 여시므로 펼쳐진 작은 책(두루마리)이 되었다. 사도요한에게 이 작은 책을 먹고 백성과 나라와 방언에게 전하는 사명을 받는다. 그 사명을 교회가 받는다.

그리스도께서 사도요한에게 작은 책(두루마리)를 먹고 그 안에 기록된 하나님 나라 구원계시를 백성과 나라와 방언에 전하라고 하신다. 작은 책을 먹음은 에스겔이 선지자와 동일하다. 이 진리는 우리 자신이 먼저 먹어 우리 것이 되어야 하며(꿀처럼 달다) 세상사람들에게는 진리로 인해 배척과 핍박을 받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자(배에서 쓰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시고 백성에게 가서 그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의 재앙과 애곡이었다. 에스겔은 제사장 출신으로(겔1:3) 제2차 포로(BC597년)가 되어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이스라엘이 멸망될 것을 예언하고,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파괴 소식을 들은 후(겔33:21) 메시야와 성령강림으로 의한 참된 성전 새로운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한다. 이스라엘 멸망기 때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그의 예언사명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알 수 있다.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동일한 시대의 선지자다.

<b>3. 두 증인 </b><b>(</b><b>계</b><b>11</b><b>장</b><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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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전을 측량하라. 바깥 뜰은 측량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

성전측량은 에스겔의 새성전 환상(겔40-48장)에서 왔다. 에스겔은 생기(성령)이 들어가 살아난 하나님 백성(신약교회)를 새롭게 지어질 하나님의 성전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척량하는 장대를 주며 성전을 측량하게 하신다. 사도요한도 동일하게 지팡이 같은 갈대로 성전을 측량하라 하신다. 성전척량은 하나님께서 직접 참된 성전(신약교회)를 지어 자기 소유로 삼으시고 직접 보호하신다.

측량하지 말라는 성전의 바깥마당은 마땅히 측량해야할 성전의 일부다. 역사적으로 솔로몬성전 헤롯성전에서 바깥뜰은 이방인의 뜰로 불리며 성전이 아니라고 여겨졌지만 에스겔 환상으로 볼 때 그곳은 성전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소건물, 성전 안뜰, 성전 바깥뜰 모두를 측량하라 하신다. 성전 바깥뜰은 30개의 방이 있는 성벽(담)으로 둘러 싸여진 안쪽이다(겔40장)

성전의 바깥마당은 이방인에 의해 마흔 두 달 짓밟힌다. 본문의 성전은 성전 바깥마당을 포함한 성전 전체가 아니다. 제사장들이 들어가 제사하는 성소건물이며, 제단은 분향단이고, 경배하는 자들이란 일반인이 아닌 제사장들이다. 왜 하나님께서 성소건물과 제사장들을 측량케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제사장들만 구원하고 보호하실 리는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신약교회를 내면적으로 보호하심을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지키시고 구원하신다.

에스겔 환상에 의하면 분명히 성전 바깥마당도 성전인데 왜 이방인들이 바깥뜰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도록 놔두시는가? 성전건물과 성전 안뜰은 참된 성도, 바깥뜰은 거짓성도를 말하는가? 아니다. 거짓성도는 처음부터 성도가 아니다. 그들은 성전 바깥뜰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본문에서, 이방인들이 바깥뜰을 짓밟음은 신약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외적핍박을 말한다. 교회는 내면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만, 외적으로는 세상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한다.

마흔 두달, 1260일, 삼년 반은 모두 동일한 용어로 다니엘 70이레에서 마지막 반이레를 일컫는 기간이다. 모두 그리스도의 초림(십자가 혹은 성전파괴)부터 재림까지를 말한다. 42개월은 년으로 환산하면 3년 반(12개월x3+6개월)이며, 날로 환산하면 1260일(42개월x30일)이고, 다니엘과 요한계시록 용어로 한때 두때 반때이다(단7:25,단12:7,계12:14).

이방인들이 와서 성전 바깥뜰을 짓밟는데 성전 안뜰과 성소건물은 그대로 둘까? 불가하다. 이는 환상이요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은 의도화 된 그림이다. 이는 교회의 두 측면을 말한다. 교회는 주의 초림부터 재림때까지 외적으로는 세상나라로부터 핍박을 당하나 하나님은 교회를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심판하심이 전혀 아니다.

(2) 교회는 하나님의 참된 성전을 지으며 진리의 말씀을 증거 한다.

두 증인은 신약교회를 말한다. 계시록 7장에서 지상교회는 여호와의 거룩한 군대로 부름받은 144000명으로서 세상 죄악에 맞서 영적 전투하는 교회였다. 계시록 10장에서 교회는 작은 책을 먹고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들에게 예언하는 사명을 받았다. 계시록 11장은 그 교회가 주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 어떤 상황이며 어떤 사명을 가졌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약교회가 어떻게 두 증인이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계12:17)로서 사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약교회를 두 증인으로 부름은 율법에서 증거의 효력을 갖기 위해 한 증인으로는 안되고 반드시 두 증인이 있어야 함에서 왔다.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신19:15). 유대인들은 언제나 두 명의 증인을 대동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두 명씩 짝을 지어 파송하셨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두 증인이 행하는 기적은 모세와 엘리야의 기적이었다. 엘리야는 아합을 쳐서 증거할 때에 삼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했다. 모세는 바로를 쳐서 증가할 때에 애굽의 하수가 피가 되게 했고, 또 열가지 재앙을 내렸다. 두 증인(신약교회)는 세상을 향해 증거하는 동안 하나님께 권세를 받아 엘리야와 모세처럼 사역하게 된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애굽 바로를 쳐서 증거했으며, 엘리야 역시 바알을 숭배하는 아합과 이세벨을 치며 회개와 심판을 증거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모세와 엘리야로서 말씀을 선포하되, 그 사역은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리스도를 대신한다(사11:4,사49:2)

(3) 교회의 두 증인 사역을 통해 많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교회는 주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1260일,42개월,3년반,한때두때반때) 하나님의 참된 성전을 세워가고, 모세와 엘리야의 심정으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증거 한다. 교회가 세상을 향한 두 증인 사역을 마쳐갈 때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을 죽인다. 짐승은 다니엘 7장에서 언급된 사탄의 지배를 받는 세상나라를 말한다. 세상 마지막 때가 되면 사탄이 세상나라 권력(짐승)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죽이게 될 것이다. 교회의 죽음은 상징이며 실제가 아니다. 교회의 죽음은 사탄과 세상나라로부터 당하는 핍박의 극심함을 말함이다. 핍박은 먼 미래 마지막 때에만 있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도 있다. 미국에는 실제적인 핍박이 없지만 공산권과 이슬람권에는 매우 극심한 핍박이 있다.

교회가 핍박당해 죽음은 성전 바깥뜰이 이방인에 의해 짓밟힘을 당함과 같다. 이는 주의 초림부터 재림때까지 전기간에 걸쳐 그렇고 마지막이 될수록 그 핍박의 강도는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분명하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성소건물과 안뜰을 측량하셨듯이 교회를 친히 지키시기 때문이다. 두 증인(신약교회)의 죽음은 실제로 교회가 죽은 것은 아니다. 교회는 사흘 반 만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

계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교회는 모세와 엘리야처럼 세상나라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두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되 큰 핍박을 당하고 죽임 당한다. 세상나라는 온갖 더러운 죄악으로 가득찬 소돔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애굽이다. 그들은 소돔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불로 소멸되며, 애굽처럼 열가지 재앙으로 진멸될 곳이다. 교회가 두 증인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곳이 바벨론 세상나라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죽임 당하신 곳(예루살렘)에서 죽는다. 교회는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라간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복음을 전하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를 지고 동일하게 죽는다. 바벨론 세상사람들은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 교회는 자기가 만들어낸 새로운 진리를 전함이 아니라 그들의 주님인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복음을 그대로 전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 세상사람들은 교회가 전하는 복음과 삶을 보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일곱인봉, 일곱나팔, 일곱대접 심판 문맥에서 불신자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며 우상을 숭배하고 불순종한다. 그런데 교회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진리의 말씀을 전할 때 불신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는다. 그들은 아직 세상에 있으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기 백성이다. 세상에는 멸망 받을 진노의 자녀들이 있고 우리처럼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섞여 있다. 교회의 두 증인 사명이 이렇게 중요하다.

<b>4. 여자와 용 </b><b>(</b><b>계</b><b>12</b><b>장</b><b>)</b>

(1) 해와 달과 열두 별을 입은 여자(=하나님백성, 신구약교회)

요한이 환상 중에 본 여자는 해와 달과 열두 별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구약의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구약교회)임이 분명하다. 이 여자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아들(그리스도)를 낳은 후에 신약의 하나님 백성 영적이스라엘(신약교회)가 된다. 용이 죽이려 하자 여자는 광야로 가서 1260일 한때 두때 반때 양육받는다.

용은 일곱 머리에 열 뿔을 가지고 있으며 일곱 면류관을 쓰고 있다. 다니엘 7장의 네 짐승을 합쳐놓은 계시록 13장의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도 일곱 머리 열 뿔이다. 사탄이 그들의 주인임을 말함이다. 이 용을 분명히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옛 뱀이라고 밝히므로 계시록 12장 본문은 원시복음(창3:15)에서 등장하는 사탄과 여자, 사탄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탄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예언된 세가지 적대관계가 형성됨을 보여준다.

사탄은 꼬리로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 구약에서 별은 천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의인을 말하기도 한다(단12:3) 문맥으로 판단해야 한다. 본문은 하늘에 별과 같이 빛나는 성도(신구약교회)를 핍박하는 사탄을 말함이다. 천사의 1/3을 타락시킴으로 보기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배경으로 하는 본문의 문맥과 어색하다. 용은 여자가 낳은 아들(그리스도)를 삼키려 함과 여자와 그의 남은 자손들을 핍박함이다. 창세기 3장 원시복음 예언과 완전 동일하다.

(2) 사탄은 미가엘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하늘에서 내어쫓김

미가엘은 사탄과 대적하여 싸우는 군대장관이다. 그가 등장하는 성경 세 곳 모두 사탄과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다(단10-12장, 유다1장, 계12장)

요한은 하늘에서 미가엘이 하늘군대를 이끌고 사탄의 군대와 싸우는 환상을 본다. 이 전쟁에서 사탄이 패배하고 하늘에서 내어쫓겨 땅으로 내려온다. 이 본문은 사탄의 타락을 말함이 아니다(사14장,겔28장)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한 사탄의 권세가 무너지고 하늘에서 내어쫓김을 말한다.

사탄의 타락을 밝혀주는 본문은 이사야 14장이다. 이사야는 세상나라 바벨론왕의 교만을 책망할 때 사탄의 타락과 심판을 예를 들어 예언한다. 에스겔 28장도 마찬가지다. 두로왕의 심판을 예언할 때 그 예를 사탄으로 들었다. 구약의 두 본문은 창세기 3장 이전에 있었던 사탄의 타락을 보여준다.

하늘전쟁은 창조 때 벌어진 일이 아니라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보좌 앞에 섬으로 벌어졌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가져온 승리의 내용을 말함이다. 세상나라 가운데 죄와 사망이 물러가고 하나님 나라 생명이 임함이다. 사탄의 완전한 패배요, 결정적 패배요, 최종 패배다. 세상나라를 지배하던 사탄의 권세가 깨어지고 사탄의 나라가 무너짐이다.

미가엘과 사탄의 하늘전쟁은 계시의 내용을 담고 있는 환상이며 사탄의 패배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전쟁그림이다. 전쟁은 미가엘과 사탄이 벌였지만, 미가엘은 그리스도의 군대장관이다. 미가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탄과 하늘전쟁을 치룬다. 미가엘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말한다. 사탄은 그리스도에게 패배했다.

(3) 사탄이 패배하여 하늘에서 쫓겨남은 하나님 나라가 임함을 말한다.

하늘전쟁에서 사탄이 패배함은 하나님의 주권과 권세가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심을 말한다. 하나님은 하늘로 올리우신 아들(그리스도)를 하늘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하나님 나라의 주님(왕)으로 세우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죄인들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 백성되는 구원을 얻게 되었다. 죄인이 구원 받는 길이 열리므로 사탄은 등뼈가 부러지는 결정적 패배를 당하게 되었다. 점점 사탄의 나라는 무너져 간다. 사탄과 미가엘의 하늘전쟁은 그리스도의 피로 죄인들이 구원 얻게 되어 사탄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말하는 그림이요 상징이다.

사탄이 하늘전쟁에서 패배하고 땅으로 쫓겨남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 사람의 죄를 정죄하고 참소하던 그의 권세가 완전히 깨어진 것이다. 사탄의 권세가 결박된 것이다.(마12:28-29) 어두운 구덩이(타르타로스)에 가두고(벧후2:4) 흑암(조포스)에 가두고(유1:6), 무저갱(아비소스)에 갇힌 것(계20:3)이다.

(4) 어린 양의 피와 복음의 말씀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11절)

사탄은 온 천하를 꾀는 자요(9절) 하나님 앞에서 우리 형제를 밤낮 참소하던 자다.(10절) 하늘에서 내쫓기고 자기 때가 얼마남지 않은 줄 알고 분내어 땅에 내려갔다. 그리스도께서 나라를 세우심으로 그의 왕국이 무너졌다. 권세를 결박당했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의와 생명으로 통치하시는 나라다. 이제 사람들은 죄와 사망 사탄에게서 해방되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죄와 사탄을 이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하게 되었다. 사탄은 더 이상 하나님께 사람들을 참소할 수 없다. 사탄은 하늘에서 쫓겨났다. 사탄의 나라는 무너지고 죄인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구원의 길이 열렸다.

(5) 용 입에서 물을 강같이 토해내 여자를 죽이려 하지만 땅이 그 물을 흡수함

용이 입으로 토해내는 강물은 사탄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퍼붓는 온갖 핍박(위협)과 사치향락(유혹), 거짓 교훈과 이단의 영적혼란(미혹)등을 상징한다. 개혁주의는 이것을 “교회 시대 전체에 걸친 사탄의 공격”이라 말한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이 토한 강물을 삼키는 것은 출애굽 때 홍해사건을 연상시켜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준다.

여자의 남은 자손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 (계12:17)

<b>5. 열뿔 짐승과 두뿔 짐승 </b><b>(</b><b>계</b><b>13</b><b>장</b><b>)</b>

(1)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 짐승 - 정치권력자 적그리스도

바다에서 올라온 일곱머리에 열뿔을 가진 짐승은 다니엘의 네 나라 짐승 환상(단7장) 곧 사자 곰 표범, 열뿔철이빨 짐승을 종합한 모습이다. 사실 용도 일곱머리 열뿔을 가졌음을 볼 때 모두 동일한 근원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계12:3) 하나님은 지금 요한에게 다니엘에게 보여주신 네 나라 짐승 환상을 좀 더 확장해서 자세히 보여주고 계심이 분명하다. 계시록 13장은 다니엘 7장과 연결해서 해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 짐승은 분명 다니엘의 네 짐승 환상에서 왔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다니엘의 네 짐승은 각각 구분된 네 마리 짐승인데 요한계시록의 열뿔 짐승은 네 짐승을 종합한 한 마리다. 이점이 분명히 구분되고 다르다. 그렇다면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 짐승은 누구인가? 열뿔 짐승의 묘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 네 나라를 가리키지 않고, 네 번째 나라에서 등장하는 한 인격 존재임이 분명해진다. 참고로 바다는 용의 거처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사27:1)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 짐승은 다니엘 넷째 짐승의 작은뿔을 말한다. 열뿔 짐승은 그 머리들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다. 그는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용으로부터 모든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아 42개월 동안 그 입으로 하나님을 훼방하며 성도들과 싸워 이긴다. 그러므로 계시록 13장의 열뿔 짐승은 역사속에 존재했던 네 제국을 말함이 아니라 바로 네 나라 속에서 역사하는 제국주의적 성격을 띤 적그리스도적 체제와 그 우두머리를 말한다.(=작은뿔, 단7장)

특히 열뿔 짐승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왕권을 주실 때 일어난 일이다.(작은뿔 가진 열뿔철이빨 넷째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불에 던져짐, 단7:11-12) 사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그 권세가 결박당했고, 하늘에서 내어쫓겨 땅으로 내려와 한때 두때 반때 동안, 주의 재림 때까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며 성도들을 박해하며 교회를 극심하게 핍박 한다.(단7:20-25) 이는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 짐승의 일곱머리 중 상하여 죽게 된 머리 하나의 상처가 나아서 살아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섬기는 것과 같고(계13:3) 열뿔 짐승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비방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것과 같다.(계13:4-10) 즉 요한계시록 13장의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 짐승은 다니엘 7장의 작은 뿔 적그리스도가 하는 일과 똑같다.

열뿔 짐승은 요한이 자기 메시지를 다니엘의 환상의 용어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계시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네 나라 짐승 환상(단7장)을 주셨고, 요한에게 열뿔 짐승 환상(계13장)을 주셨다. 열뿔 짐승 환상은 네 나라 짐승 환상을 더 자세히 보여주심이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주의 재림 때까지 교회를 핍박하는 작은뿔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을 말씀해주셨고 사도요한은 그 작은뿔 적그리스도가 주의 재림 때까지 교회를 핍박하는 열뿔 짐승으로 나타났음을 환상으로 본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읽는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은 열뿔 짐승이 로마황제로 나타났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고, 종교개혁시대의 성도들은 로마교황으로 알게 되며, 공산치하의 성도들은 공산독재자임을 분명히 알게 된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열뿔 짐승(교회를 핍박하는 적그리스도적 세상 권력과 시스템)과 두 뿔 짐승(종교 다원주의, 인본주의, 음행을 조장하는 거짓 선지자의 사상)은 이미 동시에 강력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이 두 짐승의 연합 공세는 주님 오시기 직전 최종적인 큰환난 때에 가장 극악한 형태로 절정에 달할 것이다

(2) 땅에서 올라온 두뿔 짐승 - 거짓선지자 적그리스도

땅에서 두뿔 짐승이 올라오는데 그는 거짓종교 거짓선지자이다. 그는 새끼양처럼 두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한다. 그는 겉으로 어린양 그리스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바른 진리를 가르치는 참선지자처럼 위장한다 그러나 그는 사탄의 능력으로 교묘하게 진리를 왜곡하며 거짓진리를 가르쳐 사람들을 미혹한다. 참고로 땅에서 올라옴은 두뿔 짐승이 활동하는 곳이 땅임을 말한다. 바다는 열뿔 짐승 두뿔 짐승이 시작된 기원을 말하고 땅은 그 짐승들이 활동하는 곳을 말한다. 동일하며 차이는 없다.

두뿔 짐승은 복음진리를 왜곡하는 적그리스도 거짓선지자다. 그는 용(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사람들 앞에서 큰 기적을 베푼다. 그는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하는 기적을 흉내 내어 사람들이 자신을 참선지자처럼 알도록 위장한다. 기적과 능력은 참선지자의 표징이 아니다. 거짓선지자들도 사탄의 능력을 받아 얼마든지 기적을 낼 수 있다. 심지어 그는 열뿔 짐승의 우상을 만들어 우상이 말을 하도록 한다. 그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다. 그의 모든 기적과 가르침은 사람들이 열뿔 짐승과 그의 우상을 섬기게 하지만 사실은 두뿔 짐승 거짓선지자의 가르침대로 열뿔 짐승 정치권력자가 움직인다.

(3)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막는 두 짐승(정치권력자, 거짓선지자)

적그리스도는 다니엘의 네 나라 짐승 환상에서 작은뿔(단7:25)로 이미 예언되었다. 요한계시록에는 교회의 두 증인을 죽이는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계11:7),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 짐승(계13:1), 음녀 바벨론이 탄 짐승의 일곱째 머리 여덟째 왕(계17:11)으로 등장한다. 모두 동일한 짐승이며 적그리스도다. 바울은 그를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로 불렀다.

열뿔 짐승과 두뿔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두 측면이며 두 대리인이다. 둘 다 모두 적그리스도다. 정치권력자 열뿔 짐승은 드러난 적그리스도 세력의 대표며, 두뿔 짐승 거짓선지자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자 적그리스도를 숭배하도록 거짓종교로 미혹을 하는 적그리스도다. 지금 열뿔 짐승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두뿔 짐승 거짓선지자가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

적그리스도는 반드시 한 인물로만 단정할 필요가 없다. 교회를 핍박하는 단체와 세력도 적그리스도다. 물론 그 단체의 대표가 가장 적그리스도로 드러나겠지만, 그를 뒤에서 도와 교회를 핍박하는 적그리스도들도 있다. 이 두 짐승이 합쳐진 강력한 한 존재가 나올 수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을 지배하려면 한 사람 적그리스도보다 큰 통치기관으로서 독재정부 혹 종교권력 같은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중세의 로마교황과 바티칸 교황청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 단체란 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역사 속에 등장한 그 어떤 핍박자보다 가장 근접한 적그리스도였음이 분명하다.

사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승천으로 하나님께 왕권(나라)를 받으실 때(단7:13-18) 죄인을 참소하는 권세가 결박되었다(계11:9-11) 사탄은 지금, 주의 초림(십자가,계12:5/성전파괴,단9:27)부터 주의 재림때까지 권세가 결박되어(무저갱에 갇혀) 자기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사탄은 교회의 두증인 사명으로 죄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얻어 하나님 나라 백성되는 구원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사탄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을 줄을 알고 분을 내며 신약교회를 핍박하고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극렬하게 막는다.

교회가 모세와 엘리야처럼 복음을 증거하며 두증인 사명을 감당할 때, 사탄(용)도 두 짐승(열뿔짐승, 두뿔짐승)을 보내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사람들은 용이 보낸 두짐승을 보고 교회의 두증인으로 오해하며 그들이 전하는 거짓복음을 듣고 우상을 섬긴다. 두짐승은 광명의 천사(미혹)와 우는 사자(위협)로 활동하며 교회가 두증인 사명을 못하도록 극렬하게 핍박한다.

(4) 666, 바벨론 세상나라 백성 표시

이마에 인을 침은 그가 누구에게 속한 백성인가를 분명히 나타내는 상징용어다. 사람의 이마는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곳으로 숨길 수 없는 곳이다. 그 표시를 이마에 함은 모든 사람에게 그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공개적으로 분명히 밝힘이다. 숨길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 표시와 사탄의 백성 표시다. 이마에 인을 쳐서 표시함은 신명기(6장)과 에스겔(9장)에 나온다.

두뿔 짐승 거짓선지자는 열뿔 짐승 정치권력자 적그리스도를 섬기도록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 절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인다. 느브갓네살이 자신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백성은 모두 죽이는 그런 무서운 일이다. 목숨을 담보로 성도와 교회를 위협하는 무서운 박해다. 또한 그는 우상숭배를 피한 자들도 이마에 짐승(사탄)의 표시가 없으면 매매를 할 수 없도록 세상나라 경제시스템에서 완전히 축출한다.

요한은 666을 열뿔 짐승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666은 어떤 인물의 이름인가? 누가 열뿔 짐승 적그리스도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666을 특정 사람의 이름으로 제시했지만 그들 모두는 역사 속에서 없어졌다. 아직도 모른다.

처음에는 상품분류 바코드가 666이라 했고, 얼마 후 크레딧카드도 666이라 하더니 이제는 베리칩을 666이라고 한다. 이런 과격한 주장은 주로 휴거와 7년 대환란을 강조하는 극단적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주장이며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주장은 게마트리아 해석이다. 게마트리아로 666은 헬라어 “네론 카이사”를 히브리어로 음역해서 그 숫자를 더한 것이다. 즉 666은 로마황제 중 대표적 박해자 네로를 의미함이다. 이는 요한계시록 17장의 일곱산을 타고 앉은 음녀 바벨론을 로마제국으로 직접 설명하는 과거주의 해석에 해당하며 요한계시록을 1세기 초대교회 상황과 함께 이해하는데 유리하며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런 과거주의 해석은 계시의 미래성을 약화시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 일곱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서의 성격이 있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계시의 요소를 결코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요한이 666을 네로황제를 지칭하며 썼다는 게마트리아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열뿔 짐승과 666을 보면서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은 누구나 로마황제(대표적 박해자 네로)라고 분명히 이해했을 것이다. 이는 다니엘의 네 짐승 작은뿔 환상을 알고 있는 사도요한과 초대교회 성도들이라면 당시 상황 속에서 누구나 도달하는 당연한 결론이지 하나님이 열뿔 짐승과 666을 로마황제 네로라고 직접 말씀하셨거나 요한이 네로라고 직접 제시하며 기록했기 때문은 아니다.

이레니우스는 사도요한의 제자 폴리갑으로부터 성경을 배운 초대교회 교부다. 그는 요한계시록이 쓰여지고 약 45-50년 후의 사람이며(AD140년경) 스승 폴리갑으로부터 요한계시록을 직접 배웠을 텐데 자신도 666이 어떤 인물을 가르키는지 모른다고 했다. 666이 네로황제를 정확하게 지칭한다면 이레니우가 모를리 없을텐데....

(5) 666은 나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세상을 따른다는 표시

하나님 백성은 그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이 새겨져있고, 죄와 사탄의 세상나라 백성은 짐승(사탄)의 표시는 666을 그 이마에 새긴다. 666은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열뿔 짐승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표시다. 666이 게마트리아로 네로황제가 아니라면 대안은 무엇인가?

666이 사람으로 충만한 수라는 설명이다. 요한계시록은 7을 하나님의 숫자로 기록한다. 일곱교회, 일곱눈 일곱영, 일곱천사, 일곱인봉, 일곱나팔 일곱대접... 7일, 칠칠절, 70이레, 그런데 6은 7에 하나 모자라는 불완전한 숫자다. 6은 하나님의 숫자 7을 흉내 내되 결코 7이 될 수 없는 사람의 숫자다. 그 6을 세 번이나 겹쳐서 반복해서 썼다. 그것을 육육육으로 읽든 육백 육십 육으로 읽든 상관없다. 6을 세번 반복해서 겹쳐 쓴 것이다. 사람으로 충만한 숫자다. 사도요한이 이런 의미로 666을 썼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독재자 이름이나 베리칩으로 설명하는 잘못된 해석보다는 이렇게라도 설명하는 것이 현재까지는 가장 안전하겠다.

개인적으로 666은 음녀의 이마에 세겨진 “바벨론”으로 부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17:5) 성도의 이마에는 하나님 백성의 표시(계7:1)가 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이름이다(계14:1) 그렇다면 세상나라 백성들의 이마에 세겨진 666은 무엇일까? 얼듯 사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탄은 하나님과 비견되는 세상나라의 왕이 아니다. 사탄은 결코 죄인들의 영혼을 창조한 주인이 아니기에 자기 이름을 세길 수 없다.

요한계시록에는 두 여자가 나온다. 해달별을 입은 거룩한 신부(계12장)와 용과 두 짐승을 섬기며 붉은 옷을 입고 온갖 금은보석을 치장한 더러운 음녀(계17장)이다. 전자는 하늘에 거하는 자, 하나님 백성, 그리스도의 신부 신약교회를 말하며, 후자는 땅에 거하는 자들, 세상나라 백성, 심판받을 죄인들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거친 광야에서 하늘만나와 반석의 물을 마시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아가지만, 음녀 바벨론은 세상에서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용과 두 짐승이 주는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며 사치와 향락에 취해 살아간다. 그러므로 용과 두 짐승에 속한 자라는 표시 666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 적그리스도 사람의 이름을 찾기보다 세상나라 대표이름 바벨론이라 부름이 더 좋다는 생각이다. 666이라 쓰고 바벨론이라 읽는다.

<b>6. 시온산 어린양 </b><b>14</b><b>만</b><b>4</b><b>천 새노래 </b><b>(</b><b>계</b><b>14</b><b>장</b><b>)</b>

(1) 지금 이 시대는... / 마지막 반이레 / 주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

지금 우리는 다니엘 70이레 예언 중 마지막 반이레에 해당한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69.5이레가 지나갔고 나머지 0.5이레(반이레)만 남았다. 마지막 반이레는 사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패배하고 그 권세가 결박된 때다. 지금 사탄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고 분을 내며 계속 하나님 나라 백성(교회)를 미혹하고 핍박한다. 사탄은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작은뿔)을 보내 주의 재림 때까지 교회를 시험하고 핍박할 것이다. 교회를 힘으로 탄압하는 정치권력자(열뿔짐승)와 교회를 진리로 미혹하는 거짓선지자(두뿔짐승)이다. 미국 땅에는 교회를 탄압하는 열뿔 짐승(정치권력자)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은 두뿔 짐승(거짓선지자)가 온갖 거짓복음으로 교회를 미혹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본주의 성공신학 바알기독교다.

지상교회는 전투적 교회다. 지상교회는 사탄의 위협과 핍박, 미혹과 시험을 받으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지상교회는 지금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고 두증인 사명이 끝나면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 당한다. 교회는 그만큼 핍박을 당할 것이다. 사탄은 승리하고 교회는 패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탄의 승리는 잠시뿐이요 삼일반 동안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시 일으키시고 사탄(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는 지옥불못에 들어가고 하나님 나라는 완성된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 속지 말고, 영광스러운 정체성을 잊지 말라.

(2) 지금은 핍박을 당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참여할 자들

12지파에서 1천명씩 계수된 144000은 여호와의 거룩한 군대이다(민수기1-9장) 그들은 사탄과 영적전투를 벌이고 있는 모든 성도, 모든 지상교회를 대표한다. 전투는 쉽지 않다. 피흘리는 상처와 목숨까지 잃는다. 지상교회는 태생적으로 그런 어려움에 있다.

그러나 144000, 지상교회는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큰 무리임을 명심하라. (144000과 흰옷 입은 큰 무리는 동일한 하나님 백성의 두 측면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두 집단이 아니다. 그들은 지상교회와 천상교회를 대표하지만 동일한 한 집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다.) 피 흘리는 처절한 지상교회는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보좌 앞에 서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옷을 씻어 희게 되었고, 하나님이 그들 위에 장막을 펴시며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의 샘으로 인도하신다. 지상교회는 지금 어렵지만 결코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

금거문고(하프) 맞추어서 새노래를 부를 때... 성도들이 하늘에서 부르는 새노래는 많은 물소리와 뇌성소리 같으며 금거문고 소리처럼 들렸다. 소아시아 에게해 사람들은 폭풍 중에 해안 바닷가를 때리는 많은 물소리와 천둥소리를 잘 안다. 그 소리는 매우 크고 무섭다. 새노래는 세상 사람들에게 심판의 소리며 매우 두려운 소리다. 그러나 성도들은 금거문고 소리로 들린다. 그 내용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는 노래며(계7장) 출애굽 홍해를 건넌 모세의 노래처럼(출15장), 성도들도 불붙은 유리바닷가를 건너 출바벨론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계15장).

새노래는 오직 144000만 부를 수 있다. 이는 144000이 구원받은 모든 신자를 대표하는 상징임을 말해준다. 144000은 사탄과 싸우고 있는 지상교회를 대표하는 구원 얻은 자의 상징수다.

(3)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며

144000은 전투에 나갈 수 있는 남자의 수다. 그래서 여자와 더불어 음행하지 않았다고 표현된다.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았음은 상징표현이다. 여자는 음녀 바벨론을 말하며 성도는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짐승과 우상과 짐승의 수로 더럽히지 않았음을 말한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종종 처녀로 표현된다(암5: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시다(렘31:32,사54:5)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은 음행이며 영적간음이다. 호세아의 아내로 음행한 여인 고멜은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을 표현한다.

새노래를 부르는 144000은 하나님과 어린양이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가는 자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양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믿고 따라간다. 때때로 그리스도께서 깊은 계곡을 지나가라고 하셔도 양들은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며 따른다. 그들은 목자를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원시복음에 예언된 여자의 후손들(창3:15)이며, 이사야서의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으로 말미암아 탄생된 여호와의 종들이며(사54:17) 해달별을 입은 여자의 남은 자손들(계12:17) 곧 신약교회요 참된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 나라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이다. 이는 그리스도(사53:9)와 그의 남은 자(습3:11) 인용이다. 그리스도는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며,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라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입에 궤휼한 혀가 없다. 그들은 흠이 없는 자들이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틀린 말을 함이지만, 진짜 거짓말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진리)이 아닌 다른 말을 함이다.

<b>7</b><b>. 하늘홍해 유리바다</b><b>, </b><b>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 </b><b>(</b><b>계</b><b>15</b><b>장</b><b>)</b>

(1) 성도는 불이 섞인 하늘홍해 유리바다를 건너 출바벨론 한다.(3절)

솔로몬 성전의 놋바다는 하늘성전 유리바다의 모형이다. 성전에는 광야 성막에 없었던 성물이 있다. “놋바다”(The Brazen Sea)인데 놋으로 만든 반구형 큰 대야 같은 것으로 번제단 옆에 두었다. 놋바다는 직경이 10규빗(약5.3m) 높이가 5규빗 (약2.6m) 둘레가 30규빗 (약16m)이며 최대 3,000밧(대하4:5) 18000갤런 66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제법 큰 저수통, 저수조다. 놋바다는 성막에 없었다고 해서 솔로몬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다. 성전은 다윗이 하나님께 받은 식양대로 지은 것이므로 놋바다는 하나님께서 만들도록 하신 것이다. 아마 이정도 크기와 무게의 놋바다는 광야에서 이동이 불가능했기에 성막에서는 만들지 않게 하셨을 것이다.

제미나이 – 놋바다의 규모는 우리가 흔히 보는 대형 공공 수영장이나 올림픽 규격 수영장(길이 50m)에 비하면 전체 부피는 작지만, ‘가정용 수영장’이나 ‘풀빌라 독채 수영장’과 비교하면 매우 직관적으로 그 규모를 체감할 수 있다. 솔로몬의 놋바다는 물이 최소 44톤에서 최대 66톤까지 들어가므로, 요즘 웬만한 고급 풀빌라 독채에 딸린 수영장보다 2.5배에서 3.5배나 더 많은 양의 물을 담을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놋바다의 깊이(높이)는 2.25m에 달했다. 이는 올림픽 다이빙 풀이나 아주 깊은 특수 수영장 수준의 깊이로, 키가 2m인 거구가 들어가도 완전히 잠겨서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은 수준이다.

놋바다의 기원은 사도요한이 본 하늘성전(하늘보좌) 환상에서 찾을 수 있다(계4장) 하나님 보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바다가 있다(계4:6) 솔로몬 성전은 하늘성전의 모형대로 만들었으므로, 놋바다는 바로 수정 같은 유리바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사도요한보다 먼저 다윗에게 하늘성전의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다. 하늘보좌 앞에 향단, 번제단, 유리바다가 있음은 그곳이 백성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하는 성막/성전의 원형임을 보여준다.

짐승과 우상을 이긴 교회(성도)들이 불붙은 유리바다(계15장) 가에 서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 두 개를 부름이 아니다. 하나의 노래며 같은 노래다. 짐승과 우상을 이긴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는 어린양의 노래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죄인을 구속(속량)하심을 감사하는 노래다(계5장) 그런데 사도요한은 어린양의 노래(계15장)를 모세의 노래(출15장)와 동일한 노래라고 한다. 성도의 구원(속량)을 출애굽 사건과 동일한 출바벨론 사건으로 말하는 것이다.

다니엘 예언(단2장,7장,9장)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교회)의 회복과 완성은 세상나라 바벨론에서 구원 받는 출바벨론 사건이다. 사도요한은 짐승을 이긴 성도들이 심판의 불이 붙은 유리바다 가에 서서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는 모세의 노래와 동일함을 본다. 애굽군대는 홍해에 수장되고 이스라엘은 구원받음이다.

교회는 지금 세상나라 바벨론에서 용과 두 짐승 적그리스도들에 의해 핍박당하고 있다. 교회는 바벨론 우상숭배를 거부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고 가혹한 경제박해를 당하고 있다. 하나님 백성이 애굽의 노예나 바벨론 포로가 된 동일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군대가 홍해에서 수장되듯이 모두 불붙은 유리바다에 수장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 교회만 불붙은 유리바다를 건너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며, 에덴의 회복과 완성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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