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샤다이 칼럼
믿으면 의롭다 칭함받고 죄를 이깁니다.
Author
gospel323
Date
2018-07-11 10:19
Views
1200
십자가 죄사함을 믿으면 내 속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죄는 그리스도께 전가되고 그리스도의 의는 내게 전가되어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칭의)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았기에, 나는 죄를 이기고 의인이 되어갑니다.(성화)
죄사함은 십자가 복음의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이는 법적으로는 죄 용서받고 실제적으로는 죄를 이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믿으면 죄 용서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칭의) 죄를 이기고 의인이 되어갑니다(성화)
십자가 복음에는 “죄와 사망”이 자주 나오고, 그와 대조해서 “의와 생명”이 계속 설명됩니다. 또 그와함께 죄의 산출과 사망의 근거로 "율법"과 , 의와 생명을 주시는 "성령"이 대조됩니다. 바울의 로마서 설명이 그렇습니다.
바울이 전한 십자가 복음을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주인된 우리가 죄인에서 의인되고, 사망에서 생명얻고, 율법지배에서 성령인도 받는 하나님 백성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인데 곧 율법의 지배를 받아 죄와 사망아래 있는 인류가 성령의 지배(인도)를 받아 의와 생명을 누리는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분기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고,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객관적 십자가 사건을 우리의 믿음으로 나와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 백성이 되는 구원을 얻습니다. 십자가 믿음이 구원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해보면, 모든 인류는 첫 아담에 속하여 있습니다.(고전15:22) 그는 죄의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롬6:17) 그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는 부패한 본성대로 사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 되는 아담의 원죄에 종노릇하고 있습니다.(롬3:23) 그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는 자기 중심적 본성으로 살아갑니다.(창3:5) 그는 자기 내면의 부패한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육체의 원하는대로 살아갑니다.(엡2:2) 그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고 사망의 고통을 당합니다.(롬6:23) 그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엡2:3) 그는 사단의 유혹과 참소를 이길 수 없고, 사단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계12:9-10) 죄의 산출과 사망의 근거는 율법이기에, 그는 율법아래 있습니다.(롬3:19) 그는 육신의 사람 곧 육체(Flesh)입니다.(창6:3)
그런데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인류가 있습니다.(요1:12) 그는 첫 아담의 죄에서 벗어나 의의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롬6:18) 그는 죄 용서받았기에 죄를 이길 힘을 얻었고, 죄의 지배를 벗어난 사람입니다.(롬6:22) 그는 자기의 피조물 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창15:6) 그는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롬8:14) 그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죄를 이기며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생명을 맛봅니다.(계2:7) 그는 죄 사함받고 죄를 이기기에, 사단이 그를 참소하지 못합니다.(롬6:14) 그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사망에서 벗어났으며 사단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롬8:2) 죄를 이김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기에, 그는 성령아래 있습니다.(롬8:9) 그는 육신의 사람이 아니고 성령의 사람입니다.(롬8:14)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인류는 첫 아담에 속하지 않고 둘째 아담에게 속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인류는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의와 생명을 맛볼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인류는 죄를 이기고, 정결케 되어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인류는 죄인에서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까? 어떻게 해야, 인류는 종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을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로 주신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힘입는 것입니다. 첫 아담의 범죄를 회개하고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사역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아담적 본성으로 살던 모든 것을 회개하고 자기는 피조물이며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고백하고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사건을 전인격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때 그의 내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그의 안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해주심으로 그를 변화시켜 가십니다. 그때 첫 아담에게 속한 죄인이 죄사함 받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의인이 됩니다. 그는 다시 본래인간에게 주신 축복과 사명을 체험하는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성령의 역사이며(롬10:10)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2:8-9)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의롭다 인정되면, 우리의 실제 삶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나타납니다. 법적 죄용서 받고 의인됨과(칭의) 그로인한 실제적 죄를 이김과 의인되어감입니다.(성화)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의를 주셨습니다. 이를 신학용어로 "전가의 교리"라고 하고 "죄의 전가" "의의 전가"라고 말합니다.
참고로 우리가 받은 의는 "주입된 의"(infused)가 아니고 "전가된 의"(imputed)입니다. 카톨릭의 "주입된 의"는 인간 영혼에 주입되어 인간을 의롭게 만드는 실제적 힘이지만 개혁교회의 "전가된 의"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호의(Favor)요 은혜(Grace)입니다. 그러므로 카톨릭은 개인의 행위가 강조되지만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강조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전가해주신 의가 있습니다. 그 의는 현실과 상관없이 추상적이거나 이론뿐인 무능력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의는 현실에서 우리가 실제로 죄를 이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죄를 이기게 하지 못하는 의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개인이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만 추구케 하면 어떻게 됩니까? 개인을 현실에 무능하게 만들고 도달하지 못하는 영적 세계만 탓하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모르고 그렇게 가르치면 부족한 복음설명으로, 성경과 신학의 소양부족으로 넘어가지만 알면서 그렇게 가르치면 "다른복음, 거짓복음"으로, 구약에서는 거짓 선지자, 신약에서는 이단이 됩니다.(갈1:8)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현실과 상관없는 그런 기독교라면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가르침이었다면 기독교는 벌써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2천년 기독교가 신앙해온 복음은 미래를 추구하며 현실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러나 성령받은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은 인간의 결심이나 결단 정도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에 오염되어 있고, 사단은 아직 실재하기에 우리의 힘은 너무도 약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죄를 이긴다면 너무도 힘든 종교적 고행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죄를 이기게 하는 가르침인데 우리 힘으로 해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가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죄를 이기도록 하십니다. 성령이 죄를 이기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죄를 이기되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요, 십자가 복음의 핵심입니다.
믿음의 구체적인 의미는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사함은 십자가 복음의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이는 법적으로는 죄 용서받고 실제적으로는 죄를 이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믿으면 죄 용서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칭의) 죄를 이기고 의인이 되어갑니다(성화)
십자가 복음에는 “죄와 사망”이 자주 나오고, 그와 대조해서 “의와 생명”이 계속 설명됩니다. 또 그와함께 죄의 산출과 사망의 근거로 "율법"과 , 의와 생명을 주시는 "성령"이 대조됩니다. 바울의 로마서 설명이 그렇습니다.
바울이 전한 십자가 복음을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주인된 우리가 죄인에서 의인되고, 사망에서 생명얻고, 율법지배에서 성령인도 받는 하나님 백성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인데 곧 율법의 지배를 받아 죄와 사망아래 있는 인류가 성령의 지배(인도)를 받아 의와 생명을 누리는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분기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고,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객관적 십자가 사건을 우리의 믿음으로 나와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 백성이 되는 구원을 얻습니다. 십자가 믿음이 구원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해보면, 모든 인류는 첫 아담에 속하여 있습니다.(고전15:22) 그는 죄의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롬6:17) 그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는 부패한 본성대로 사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 되는 아담의 원죄에 종노릇하고 있습니다.(롬3:23) 그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는 자기 중심적 본성으로 살아갑니다.(창3:5) 그는 자기 내면의 부패한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육체의 원하는대로 살아갑니다.(엡2:2) 그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고 사망의 고통을 당합니다.(롬6:23) 그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엡2:3) 그는 사단의 유혹과 참소를 이길 수 없고, 사단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계12:9-10) 죄의 산출과 사망의 근거는 율법이기에, 그는 율법아래 있습니다.(롬3:19) 그는 육신의 사람 곧 육체(Flesh)입니다.(창6:3)
그런데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인류가 있습니다.(요1:12) 그는 첫 아담의 죄에서 벗어나 의의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롬6:18) 그는 죄 용서받았기에 죄를 이길 힘을 얻었고, 죄의 지배를 벗어난 사람입니다.(롬6:22) 그는 자기의 피조물 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창15:6) 그는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롬8:14) 그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죄를 이기며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생명을 맛봅니다.(계2:7) 그는 죄 사함받고 죄를 이기기에, 사단이 그를 참소하지 못합니다.(롬6:14) 그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사망에서 벗어났으며 사단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롬8:2) 죄를 이김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기에, 그는 성령아래 있습니다.(롬8:9) 그는 육신의 사람이 아니고 성령의 사람입니다.(롬8:14)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인류는 첫 아담에 속하지 않고 둘째 아담에게 속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인류는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의와 생명을 맛볼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인류는 죄를 이기고, 정결케 되어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인류는 죄인에서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까? 어떻게 해야, 인류는 종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을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로 주신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힘입는 것입니다. 첫 아담의 범죄를 회개하고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사역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아담적 본성으로 살던 모든 것을 회개하고 자기는 피조물이며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고백하고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사건을 전인격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때 그의 내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그의 안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해주심으로 그를 변화시켜 가십니다. 그때 첫 아담에게 속한 죄인이 죄사함 받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의인이 됩니다. 그는 다시 본래인간에게 주신 축복과 사명을 체험하는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성령의 역사이며(롬10:10)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2:8-9)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의롭다 인정되면, 우리의 실제 삶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나타납니다. 법적 죄용서 받고 의인됨과(칭의) 그로인한 실제적 죄를 이김과 의인되어감입니다.(성화)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의를 주셨습니다. 이를 신학용어로 "전가의 교리"라고 하고 "죄의 전가" "의의 전가"라고 말합니다.
참고로 우리가 받은 의는 "주입된 의"(infused)가 아니고 "전가된 의"(imputed)입니다. 카톨릭의 "주입된 의"는 인간 영혼에 주입되어 인간을 의롭게 만드는 실제적 힘이지만 개혁교회의 "전가된 의"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호의(Favor)요 은혜(Grace)입니다. 그러므로 카톨릭은 개인의 행위가 강조되지만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강조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전가해주신 의가 있습니다. 그 의는 현실과 상관없이 추상적이거나 이론뿐인 무능력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의는 현실에서 우리가 실제로 죄를 이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죄를 이기게 하지 못하는 의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개인이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만 추구케 하면 어떻게 됩니까? 개인을 현실에 무능하게 만들고 도달하지 못하는 영적 세계만 탓하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모르고 그렇게 가르치면 부족한 복음설명으로, 성경과 신학의 소양부족으로 넘어가지만 알면서 그렇게 가르치면 "다른복음, 거짓복음"으로, 구약에서는 거짓 선지자, 신약에서는 이단이 됩니다.(갈1:8)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현실과 상관없는 그런 기독교라면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가르침이었다면 기독교는 벌써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2천년 기독교가 신앙해온 복음은 미래를 추구하며 현실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러나 성령받은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은 인간의 결심이나 결단 정도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에 오염되어 있고, 사단은 아직 실재하기에 우리의 힘은 너무도 약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죄를 이긴다면 너무도 힘든 종교적 고행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죄를 이기게 하는 가르침인데 우리 힘으로 해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가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죄를 이기도록 하십니다. 성령이 죄를 이기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죄를 이기되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요, 십자가 복음의 핵심입니다.
믿음의 구체적인 의미는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