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샤다이 칼럼
생명나무와 죽음나무(선악과)는 우리의 자발적 순종여부를 판단한다.
Author
gospel323
Date
2018-12-0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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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악과(죽음나무) =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자주자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분리선언을 의미하는 열매
(1) 하나님께 순종여부 의미를 담아둔 생명나무와 선악과
- 창조경륜이란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뜻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 경륜을 아담을 창조하시며 알려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유인격체 사람들이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다스리며 지키도록 하심이다. 또한 그 사람들이 세상에 번성하고 가득차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심이다(창1:26-28)
- 하나님은 자기 백성 삼으시려 사람을 창조하셨다. 아담은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경륜을 알고 있었을까? 아담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창조목적을 알리지 않으실 리가 없다. 그렇다면 에덴에서 아담에게 요구되어진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잘 다스리고 관리하는 대리통치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 하나님은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나무를 두시고 그 두 나무에 하나님 백성으로서 아담의 자발적 순종여부 의미를 담아두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을 맺으시고 에덴에서 자기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셨다(창2:17)
(2) 아담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생을 소유하였다.
- 에덴에서 아담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그는 로마 카톨릭이 말하는 것처럼 죄가 없고 의도 없는 백지상태가 아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스스로 의를 쌓아야 하나님 백성 되는 과정을 두지 않으셨다. 아담은 처음부터 완전하게 창조되어 죄가 없고 의로움이 있는 거룩한 존재였다. 아담에게 요구하신 것은 의를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바른 순종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를 계속함이지 의를 쌓아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감이 아니다. 아담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 곧 원의(Original Righteousness)를 가지고 있었다.
- 에덴에서 아담의 완전성이 부활한 성도와 다른 점은 아담은 범죄할 가능성이 있고 성도는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타락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 뿐이다. 아담이 범죄만 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고 영생한다. 죽음은 죄 때문에 도입되었다. 죄가 없었다면 아담의 죽음은 없다(롬5:12). 백지상태에서 의를 쌓아야 함은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는 보조로 돕고 사람의 공로가 필요하다는 로마 카톨릭 행위구원사상을 가져온다. - 루이스벌콥 조직신학 상 p420
- 아담은 처음부터 창조될 때 이미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있었고 영생을 보장받았다. 선악과 금령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에게 부여하신 하나님 백성 됨을 유지하는 길이다. 선악과 금령은 하나님 백성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 됨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모세 율법도 마찬가지이다. 지키면 하나님 백성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애굽에서 구속하여 하나님 백성 된 사람들이 하나님 백성 됨을 유지하는 법이다.
(3) 선악과 금령을 지켜 하나님께 순종하면, 아담은 하나님 백성 됨을 유지한다.
-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길 원하셨다. 교제는 두 인격체가 서로에 대한 신뢰감과 친밀감을 갖고 상호헌신하는 행위이다. 여기에는 자발성이 필수적이다. 하나님은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며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고, 백성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온 맘 다해 하나님을 섬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공포심을 갖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되 만홀히 여기지 않음이다.
- 사람이 하나님 백성으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 대한 순종하면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인격체로 만드시고 자유를 주시며 그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심이다. 하나님 백성됨이다. 자발적 순종이다. 하나님께서 그것 하나를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이 의미를 생명나무와 죽음나무(선악과) 두 열매에 담아두셨다.(창2:6-7,16-17)
(4) 선악과 금령을 어기면, 하나님 섬기길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겠다는 선언이다.
- 선악과는 그 열매자체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과일이 아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그 후손 인류는 법원 판사 앞에 가서도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선악과 금령을 지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감이고, 반대로 선악과 금령을 범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주인되어 살아감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단절, 분리선언이다. 그 의미는 명백하다. 아담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은 선과 악의 판단을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가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피조물이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어 자존자가 되겠는 선언이다. 이때부터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옳고(선) 그름(악)이 아닌, 자기가 좋고 싫음을 선과 악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준수자가 아닌 자기가 입법자가 되었다. 이것은 자기가 하나님 되는 것이다.
(5) 에덴 중앙 하나님 계신 성소에 생명나무와 선악과(죽음나무)를 두신 이유
- 에덴의 중앙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하나님 백성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나는 언제나 생명나무와 선악과 앞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는데,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며 의존하며 생명을 얻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주인되어 살아가면 반드시 사망이다. 이 원리는 주의 재림 전까지 이 땅에서 영원하다.
- 단 죄인인 나는 내 힘으로는 언제나 죄악을 선택하고 자기주인됨의 욕구를 거부할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해서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께 순종하며 생명의 열매를 먹는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때 생명의 열매를 맛보고 새 생명을 얻으며 부활생명을 체험함이 이 말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요 성령의 내주이다.
-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죄와 사망이 없다. 거기에는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생명나무가 되사 우리에게 영원토록 생명의 열매를 먹게 하신다. 부활 후 영화로운 몸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원토록 순종하고 영원토록 경배하는 거룩한 백성이 된다. 영생을 얻는다. 창조경륜이 완성된다.
2. 생명나무 =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생명의 교제 나눔을 의미하는 열매
(1) 타락은 창조 직후가 아닌 제법 시간이 지나고 나서 벌어졌다.
- 아담의 타락은 창조주간 여섯째 날이거나 창조 직후가 아니다. 창조 동시에 타락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대단한 혼란과 무질서가 발생하므로 하나님은 안식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창조를 모두 마치시고 심히 기뻐하시며 안식을 하셨다. 아담은 에덴에서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창2:20) 이 일은 하루에 다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안식과 첫 범죄 사이에는 어느정도 세월이 지나갔음을 보여준다.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에덴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다. - 서철원 교의신학 3권 인간론, p294
(2) 그동안 아담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었나? 먹지 않았나?
- 그런데 그 많은 시간동안 아담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었나? 먹지 않았나? 아담은 선악과의 의미를 알았듯이 생명나무 열매를 분명히 알았고 또한 생명나무 열매는 아담에게 전혀 금지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담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않았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일까?
-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창3:22)하신 말씀을 보고 아담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한 상태에서 선악과를 먹었다고 추론함이다. 이것은 생명나무 열매 자체가 생명의 기운을 담고 있는 특수물질 열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생명나무가 다시 등장하는 요한계시록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하신 말씀을 살펴보자.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열매(에베소) 생명의 면류관(서머나) 감추인 만나와 흰돌(버가모),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권세(두아디라). 생명책(사데) 성전의 기둥(빌라델비아) 보좌에 함께앉음(라오디게아)을 주신다고 하셨다.(계2-3장)
- 생명나무 열매가 수명을 길게 연장하여 영생을 주는 특수물질의 열매라면 에베소교회에만 주어지면 안된다. 모든 교회들에게 주셔야 한다. 생명열매를 먹지 않은 상태에서 성전의 기둥 흰돌 보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일단 생명열매를 주어 영생을 주시고 그 다음 다른 상급을 주셔야 한다. 만약 어떤 교회에도 생명나무열매를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생명열매는 이미 일곱 교회에 공통으로 주셨으리라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에 주시겠다고 하신다면 나머지 여섯 교회에는 분명 주시지 않은 것인데...
- 결국 생명열매, 생명의 면류관 생명책, 성전 보좌 권세... 모두 생명 곧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하나님의 백성됨)을 다르게 표현함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도 생명연장의 특수물질이 아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다는 의미를 담아두신 과일 열매임이 분명하다. 영생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바른 관계에서 얻게되며 특수열매를 먹음으로 얻지 못한다.
(3) 생명나무 열매는 하나님께 순종할 때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를 의미한다.
- 하나님께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심(창3:22)은 하나님과 분리선언을 한 아담이 다시 이전처럼 하나님과 함께하며 교제를 나누는 생명의 관계를 완전히 막으심을 말한다. 죄로 인하여 사람은 더이상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길을 화염검으로 완전히 차단하셨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이다. 사람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감은 절대로 못한다.
(4) 에덴에서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있었다.
- 생명나무는 칼빈의 말처럼 아담과 하와가 그 과실을 먹을 때마다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토록 해주는 성례전적(聖禮典的) 의미를 지닌 나무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에덴에서는 생명나무 열매를 한번 먹는 것이 아니라 계속 먹는 것이 된다. 아담은 에덴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날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담은 에덴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직접 먹고 있었고 하나님과의 생명 관계를 체험하고 있었다. 범죄만 없었다면 아담은 그 상태가 계속된다. 영생이다.
(5)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나무가 되신다.
- 다시 말하지만, 에덴에서 생명나무와 죽음나무는 그 열매 자체의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인류의 자발적 순종여부 의미를 담아두신 실제 나무였다. 이 나무는 오늘 우리에게도 신앙적 의미로 놓여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생명을 선택할 것인가? 자기주인되어 살아가며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죽음열매 선악과는 먹지 말아야하고 생명열매는 먹어야 한다. 우리는 선악과 안먹는 소극적 신앙이 아니라 생명열매 먹는 적극적인 신앙을 확인해야 한다.
-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이미 죄로 오염되어 생명열매를 먹을 수 없다. 이땅에서는 어떤 사람도 스스로 생명열매를 먹을 수 없다. 죄인은 한가지 선악과만 있고 필연적으로 죽음의 열매를 먹는다. 우리가 생명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생명의 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부활생명으로 살아날때만 우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된다. 생명의 열매를 먹는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는 생명 열매를 먹을 수 있다. 이것이 구원이다.
- 부활 이후 새 하늘과 새 땅은 에덴의 회복과 완성한다. 그곳에는 선악의 죽음나무는 없고 생명나무만 있되 그 생명나무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시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인류는 의롭고 거룩했지만 선악과가 있어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부활 후 성도는 에덴에서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모두 회복하되 더 나아가 영원히 죄를 지을 수 없는 완전한 상태가 된다. 생명나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함께하심으로 생명의 열매를 영원토록 주시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성도는 하나님 백성으로 영원히 존속되고 영생을 얻는다. 다시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가 없고 사망이 없다. 하나님의 창조경륜이 완전히 이루어진다.
(1) 하나님께 순종여부 의미를 담아둔 생명나무와 선악과
- 창조경륜이란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뜻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 경륜을 아담을 창조하시며 알려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유인격체 사람들이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다스리며 지키도록 하심이다. 또한 그 사람들이 세상에 번성하고 가득차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심이다(창1:26-28)
- 하나님은 자기 백성 삼으시려 사람을 창조하셨다. 아담은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경륜을 알고 있었을까? 아담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창조목적을 알리지 않으실 리가 없다. 그렇다면 에덴에서 아담에게 요구되어진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잘 다스리고 관리하는 대리통치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 하나님은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나무를 두시고 그 두 나무에 하나님 백성으로서 아담의 자발적 순종여부 의미를 담아두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을 맺으시고 에덴에서 자기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셨다(창2:17)
(2) 아담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생을 소유하였다.
- 에덴에서 아담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그는 로마 카톨릭이 말하는 것처럼 죄가 없고 의도 없는 백지상태가 아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스스로 의를 쌓아야 하나님 백성 되는 과정을 두지 않으셨다. 아담은 처음부터 완전하게 창조되어 죄가 없고 의로움이 있는 거룩한 존재였다. 아담에게 요구하신 것은 의를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바른 순종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를 계속함이지 의를 쌓아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감이 아니다. 아담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 곧 원의(Original Righteousness)를 가지고 있었다.
- 에덴에서 아담의 완전성이 부활한 성도와 다른 점은 아담은 범죄할 가능성이 있고 성도는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타락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 뿐이다. 아담이 범죄만 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고 영생한다. 죽음은 죄 때문에 도입되었다. 죄가 없었다면 아담의 죽음은 없다(롬5:12). 백지상태에서 의를 쌓아야 함은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는 보조로 돕고 사람의 공로가 필요하다는 로마 카톨릭 행위구원사상을 가져온다. - 루이스벌콥 조직신학 상 p420
- 아담은 처음부터 창조될 때 이미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있었고 영생을 보장받았다. 선악과 금령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에게 부여하신 하나님 백성 됨을 유지하는 길이다. 선악과 금령은 하나님 백성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 됨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모세 율법도 마찬가지이다. 지키면 하나님 백성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애굽에서 구속하여 하나님 백성 된 사람들이 하나님 백성 됨을 유지하는 법이다.
(3) 선악과 금령을 지켜 하나님께 순종하면, 아담은 하나님 백성 됨을 유지한다.
-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길 원하셨다. 교제는 두 인격체가 서로에 대한 신뢰감과 친밀감을 갖고 상호헌신하는 행위이다. 여기에는 자발성이 필수적이다. 하나님은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며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고, 백성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온 맘 다해 하나님을 섬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공포심을 갖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되 만홀히 여기지 않음이다.
- 사람이 하나님 백성으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 대한 순종하면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인격체로 만드시고 자유를 주시며 그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심이다. 하나님 백성됨이다. 자발적 순종이다. 하나님께서 그것 하나를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이 의미를 생명나무와 죽음나무(선악과) 두 열매에 담아두셨다.(창2:6-7,16-17)
(4) 선악과 금령을 어기면, 하나님 섬기길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겠다는 선언이다.
- 선악과는 그 열매자체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과일이 아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그 후손 인류는 법원 판사 앞에 가서도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선악과 금령을 지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감이고, 반대로 선악과 금령을 범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주인되어 살아감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단절, 분리선언이다. 그 의미는 명백하다. 아담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은 선과 악의 판단을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가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피조물이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어 자존자가 되겠는 선언이다. 이때부터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옳고(선) 그름(악)이 아닌, 자기가 좋고 싫음을 선과 악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준수자가 아닌 자기가 입법자가 되었다. 이것은 자기가 하나님 되는 것이다.
(5) 에덴 중앙 하나님 계신 성소에 생명나무와 선악과(죽음나무)를 두신 이유
- 에덴의 중앙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하나님 백성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나는 언제나 생명나무와 선악과 앞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는데,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며 의존하며 생명을 얻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주인되어 살아가면 반드시 사망이다. 이 원리는 주의 재림 전까지 이 땅에서 영원하다.
- 단 죄인인 나는 내 힘으로는 언제나 죄악을 선택하고 자기주인됨의 욕구를 거부할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해서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께 순종하며 생명의 열매를 먹는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때 생명의 열매를 맛보고 새 생명을 얻으며 부활생명을 체험함이 이 말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요 성령의 내주이다.
-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죄와 사망이 없다. 거기에는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생명나무가 되사 우리에게 영원토록 생명의 열매를 먹게 하신다. 부활 후 영화로운 몸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원토록 순종하고 영원토록 경배하는 거룩한 백성이 된다. 영생을 얻는다. 창조경륜이 완성된다.
2. 생명나무 =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생명의 교제 나눔을 의미하는 열매
(1) 타락은 창조 직후가 아닌 제법 시간이 지나고 나서 벌어졌다.
- 아담의 타락은 창조주간 여섯째 날이거나 창조 직후가 아니다. 창조 동시에 타락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대단한 혼란과 무질서가 발생하므로 하나님은 안식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창조를 모두 마치시고 심히 기뻐하시며 안식을 하셨다. 아담은 에덴에서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창2:20) 이 일은 하루에 다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안식과 첫 범죄 사이에는 어느정도 세월이 지나갔음을 보여준다.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에덴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다. - 서철원 교의신학 3권 인간론, p294
(2) 그동안 아담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었나? 먹지 않았나?
- 그런데 그 많은 시간동안 아담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었나? 먹지 않았나? 아담은 선악과의 의미를 알았듯이 생명나무 열매를 분명히 알았고 또한 생명나무 열매는 아담에게 전혀 금지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담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않았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일까?
-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창3:22)하신 말씀을 보고 아담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한 상태에서 선악과를 먹었다고 추론함이다. 이것은 생명나무 열매 자체가 생명의 기운을 담고 있는 특수물질 열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생명나무가 다시 등장하는 요한계시록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하신 말씀을 살펴보자.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열매(에베소) 생명의 면류관(서머나) 감추인 만나와 흰돌(버가모),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권세(두아디라). 생명책(사데) 성전의 기둥(빌라델비아) 보좌에 함께앉음(라오디게아)을 주신다고 하셨다.(계2-3장)
- 생명나무 열매가 수명을 길게 연장하여 영생을 주는 특수물질의 열매라면 에베소교회에만 주어지면 안된다. 모든 교회들에게 주셔야 한다. 생명열매를 먹지 않은 상태에서 성전의 기둥 흰돌 보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일단 생명열매를 주어 영생을 주시고 그 다음 다른 상급을 주셔야 한다. 만약 어떤 교회에도 생명나무열매를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생명열매는 이미 일곱 교회에 공통으로 주셨으리라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에 주시겠다고 하신다면 나머지 여섯 교회에는 분명 주시지 않은 것인데...
- 결국 생명열매, 생명의 면류관 생명책, 성전 보좌 권세... 모두 생명 곧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하나님의 백성됨)을 다르게 표현함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도 생명연장의 특수물질이 아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다는 의미를 담아두신 과일 열매임이 분명하다. 영생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바른 관계에서 얻게되며 특수열매를 먹음으로 얻지 못한다.
(3) 생명나무 열매는 하나님께 순종할 때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를 의미한다.
- 하나님께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심(창3:22)은 하나님과 분리선언을 한 아담이 다시 이전처럼 하나님과 함께하며 교제를 나누는 생명의 관계를 완전히 막으심을 말한다. 죄로 인하여 사람은 더이상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길을 화염검으로 완전히 차단하셨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이다. 사람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감은 절대로 못한다.
(4) 에덴에서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있었다.
- 생명나무는 칼빈의 말처럼 아담과 하와가 그 과실을 먹을 때마다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토록 해주는 성례전적(聖禮典的) 의미를 지닌 나무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에덴에서는 생명나무 열매를 한번 먹는 것이 아니라 계속 먹는 것이 된다. 아담은 에덴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날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담은 에덴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직접 먹고 있었고 하나님과의 생명 관계를 체험하고 있었다. 범죄만 없었다면 아담은 그 상태가 계속된다. 영생이다.
(5)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나무가 되신다.
- 다시 말하지만, 에덴에서 생명나무와 죽음나무는 그 열매 자체의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인류의 자발적 순종여부 의미를 담아두신 실제 나무였다. 이 나무는 오늘 우리에게도 신앙적 의미로 놓여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생명을 선택할 것인가? 자기주인되어 살아가며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죽음열매 선악과는 먹지 말아야하고 생명열매는 먹어야 한다. 우리는 선악과 안먹는 소극적 신앙이 아니라 생명열매 먹는 적극적인 신앙을 확인해야 한다.
-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이미 죄로 오염되어 생명열매를 먹을 수 없다. 이땅에서는 어떤 사람도 스스로 생명열매를 먹을 수 없다. 죄인은 한가지 선악과만 있고 필연적으로 죽음의 열매를 먹는다. 우리가 생명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생명의 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부활생명으로 살아날때만 우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된다. 생명의 열매를 먹는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는 생명 열매를 먹을 수 있다. 이것이 구원이다.
- 부활 이후 새 하늘과 새 땅은 에덴의 회복과 완성한다. 그곳에는 선악의 죽음나무는 없고 생명나무만 있되 그 생명나무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시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인류는 의롭고 거룩했지만 선악과가 있어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부활 후 성도는 에덴에서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모두 회복하되 더 나아가 영원히 죄를 지을 수 없는 완전한 상태가 된다. 생명나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함께하심으로 생명의 열매를 영원토록 주시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성도는 하나님 백성으로 영원히 존속되고 영생을 얻는다. 다시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가 없고 사망이 없다. 하나님의 창조경륜이 완전히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