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복음

제11장 십자가, 죄 사함을 위한 속죄제사

Author
gospel323
Date
2017-10-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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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십자가, 죄 사함을 위한 속죄제사

1. 십자가와 부활사건

1.1 대속물(막10:45)

예수는 자신의 모든 사역을 십자가 속죄제사에 맞추어 놓으셨다. 그분의 많은 메시지와 기적은 모두 십자가 사건이 가져다줄 하나님 나라와 연관되어 있다. 죄로 인한 사망과 사단의 유혹이 현존하고 있는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다시 통치해주심이다. 죄인을 다시 하나님 자녀, 하나님 백성 삼아주신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하나님 자녀는 개인 구원을, 하나님 백성은 모든 피조세계의 회복까지 염두에 둔 언약 용어이다. 구원은 개인구원에서 시작하여 아담이 잃어버린 모든 피조세계의 회복까지 포함한다. 예수는 자신의 성육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대속물은 구약부터 내려오는 희생제사의 용어였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류가운데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하나님 백성의 새로운 조상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 자손이 하나님 백성 되는 증표를 주셨는데 할례, 율법, 성전이었다. 할례는 이방인과 구별된 거룩함을 나타내는 하나님 백성의 개인적 증표요, 율법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의 기준이요, 성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냄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였다.

아브라함 자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았어도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본성 속에 남아있는 죄의 세력을 제거해야 했다. 그들의 매일 삶 속에 나타나는 죄의 결과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올 수 없었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제사법을 상세하게 제시한다. 이스라엘 성막과 성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속죄를 위한 제사였다. 하나님 백성의 의로움, 정결함, 거룩함은 율법을 지킴으로 이루어지는데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죄에게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죄는 죽음을 가져오기에 이스라엘은 죄 사함을 받는 생명보존의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고 율법은 희생제물을 통한 속죄제사를 그 방법으로 주셨다. 제사제도의 핵심은 죄의 전가에 있다.

속죄제사는 죄를 범한 사람의 죄를 사하기 위함이었다. (일반 평민의 경우)죄를 범한 자는 흠 없는 암염소, 어린양, 비둘기 두 마리 중 자기 형편에 맞는 제물을 성막 제사장 앞으로 가져온다. 그는 자신이 가져온 제물 위에 직접 손을 얹고 자신의 모든 죄를 전가한 후 짐승을 잡는다. 제사장은 그 피를 취하여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전부 단 밑에 쏟은 후 고기의 기름을 번제단에서 불태운다. 이때 그는 죄 사함을 받는다.(레4:1-35)

구약의 희생제사는 자신이 데려온 짐승에 직접 안수하고 봉헌자 자신이 직접 잡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회중전체를 위한 속죄제사는 그 대상자가 백성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제사장이 직접 안수하고 잡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봉헌자가 직접 제물을 도살한다. 제사장은 그 피를 제단에 바르고 기름을 불태우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는 봉헌자에게 자신의 죄가 직접 짐승에게 전가됨과 그 죄값으로 제물이 죽는다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시키기 위함이다. 봉헌자는 죄 형벌의 무서움과 죄 사함을 위해 생명을 버려 자신을 구해줄 대속제물을 깨닫게 된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기 위함으로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 이후 이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1.2 십자가 - 속죄제사 언약제사

사복음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이 되시기 전 일주일 기간을 매우 생생하게 기록한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예수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며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신다.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치들을 몰아내시며 새로운 성전(백성의 공동체)이 도래함을 예증하신다. 비유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마지막 비밀을 가르치신다. 주로 이방인 구원과 새로운 하나님 백성의 탄생과 연관된 내용이었다. 당시는 목요일 저녁부터 일주일간 계속 되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목요일 저녁은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이라 부른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양의 피를 바르고 나온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이스라엘 삼대 절기중 가장 중요한 그 첫 번째 절기에 해당한다.

예수는 유월절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규례에 따라 식사모임을 가지신다. 우리는 이것을 성만찬이라 부른다. 이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바로 전날 밤 이야기이다. 예수는 다음날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이 유월절 식사모임에서 예수는 자신의 사역에 대한 마지막 중요한 내용을 말씀하신다. 자신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서 설명하신다. 이는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는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26:26-28)

예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자신의 죽음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죄 사함을 얻게하기 위한 속죄제사라는 것이다.(8절) 유대인들이었던 제자들은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즉시 알 수 있었다. 백성 대신 죄의 형벌을 받아 죽는 대속제물의 의미였다. 예수의 죽음은 예수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었다. 예수는 성자 하나님이시고 동정녀 탄생으로 죄의 오염에서 보호되신 분이시다. 그는 처음부터 죄가 없는 분이시다.(고후5:21, 히4:15) 모든 백성의 죄를 담당하기 위함이었다. 구약의 짐승들이 봉헌자의 죄를 친히 담당하므로 그들의 죄가 사함 받았듯, 예수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는다. 속죄제사는 죄 사함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되게하는 언약제사라는 것이다.(8절) 언약제사는 속죄제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똑같다. 한 사건의 두 가지 측면을 설명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요구하시고 백성은 그 계명을 지켜 거룩한 백성이 되겠다고 서약을 한다. 이때 모세는 백성에게 언약제물로 드린 소의 피를 뿌리며 약속을 맺는다. 언약제사였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24:8)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 되는데는 죄 사함이 필수이다. 그들의 범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았다고 무조건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백성 됨의 언약제사를 드림으로 새로운 백성으로 태어난다. 속죄제사는 하나님 백성되도록 죄를 사해주고, 언약제사는 그 죄 사함을 근거로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한다. 따라서 속죄제사는 하나님 백성 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고 언약제사는 속죄제사를 근거로 하나님 백성 되는 측면을 설명한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바로 새로운 하나님 백성을 만들기 위한 속죄제사와 언약제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백성은 죄를 사함 받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하여 속죄제물과 언약제물로 돌아가셨다.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셨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라고 말씀하셨다.

1.3 부활 - 십자가 사건을 입증함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장사지낸바 된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부활은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예수의 하나님이심, 죄 없으심, 십자가에서 속죄제물과 언약제물로 돌아가심을 입증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우리를 위한 속죄제물 되심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바울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인데 그가 어떻게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단 말인가.”(신21:23) 그래서 바울은 적극적 핍박자가 되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순간 바울의 모든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셨고, 우리 죄를 담당하신 그리스도이셨다.

부활은 예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한 확고한 보증이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을 속죄제물로 받으셨다고 하는 공개적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예수의 메시지가 자기 환상에 잡힌 망상가의 헛소리가 아니었고, 종교적 신념에 차있던 종교가의 가르침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예수가 아무리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확신을 주셨다고 해도 죽음으로 끝나버리면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로 끝나버린다. “옛날에 그렇게 말하던 훌륭한 사람이 있었다” 정도로 끝나게 된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부활은 이미 예수께서 예언하신 사건이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사흘 후에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청하여 군병을 세워 예수의 무덤을 지켰다. 무덤은 이미 인봉되어 아무도 열수가 없었다.(마27:62-66) 그러나 예수는 부활하셨다. 아무도 그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다.(마28:1-15)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신 것이다. 초대교회의 확산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제시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예수는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부활을 십자가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로 삼는다. 이는 모든 인류에게 예수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구원임을 입증하는 신적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구원은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십자가가 이루신 속죄제사와 언약제사로 인해 인류는 죄 사함 받고 다시 아담이 잃어버렸던 하나님 백성 됨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확증하는 자료는 바로 예수의 부활이다. 부활을 통해 예수의 가르침과 십자가 사건이 헛된 종교가의 고상한 가르침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구원사역임을 모든 사람이 부인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언제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다. 십자가의 죄 사함과 하나님 백성되게 하심, 그리고 부활은 그 십자가를 하나님의 구원사역으로 확증함이었다.

2. 십자가는 죄를 사하셨다.

2.1 죄를 사하심 - 속죄, 대속, 구속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가 해결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였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죄였다. 죄는 사망을 가져오고 사단 참소의 근거가 된다. 인간이 죄를 이길 수 없는 것은 죄의 형벌이 생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죄 값으로 인간의 전부를 요구하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다. 암은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로 여겨진다. 현재까지 인간의 의술로는 고칠 수 없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암세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얼마든지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다. 신체부위에 붙어 있는 모든 암세포를 찾아 죽일 수 있다. 문제는 암세포는 찾아 제거할 수 있지만 인간도 그 암세포와 함께 죽는다는데 있다. 환자를 살릴 수 없는데 암수술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는 암세포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환자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죄의 형벌이 생명을 요구하면 다른 방법이 없다. 죄 값을 치루려는 모든 목적이 생명을 살리려 함인데, 생명을 요구하면 다른 아무것도 손을 쓸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 백성이 되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십자가 죄 사함은 속(贖)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한자 속(贖)은 값을 지불하고 사온다는 의미가 있다. 성경은 속(贖)이라는 한자를 사용하여 십자가의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이 단어들은 모두 하나님을 거부한 인간의 죄 사함을 기술하는 법정적 용어이다.

첫째, 속죄(贖罪)이다. 값을 지불하고 죄를 사했다는 의미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표현했다.(요1:29) 구약은 피가 죄를 속한다고 말한다. 이는 생명을 바쳐야 죄가 사해짐을 의미한다. 예수는 자기 목숨을 버려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신 것이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둘째, 대속(代贖)이다. 우리 대신 값을 지불하셨다는 의미이다. 신약성경은 예수의 죽음이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 죄를 위함으로 기록한다. 대속은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값을 지불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2:24)

셋째, 구속(救贖)이다. 값을 지불하고 구원하셨다는 의미이다. 예수의 속죄와 대속은 우리의 구원을 위함이셨다. 예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었다. 구속과 같은 의미의 단어가 있다. 속량(贖良)이다. 속량은 값을 지불하고 노예에서 양민으로 해방시키셨다는 의미이다. 예수의 속죄와 대속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노예에서 해방하심이었다. 속량은 구속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음으로 구속과 속량은 거의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구속에 필요한 비용이 속량물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4)

“여호와께서 야곱을 속량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으니”(렘31:1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3:13)

여기서 우리는 속(贖)의 의미가 값을 지불함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 값을 지불하느냐는 것이다. 하나님께인가, 사단에게인가? 사단에게 지불했다는 사단 배상설과 하나님께라고 말하는 형벌 만족설이 있다. 성경은 십자가가 값을 지불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음으로 설명한다.(롬3:25-26) 사단 배상설은 사단의 지위를 하나님의 위치로 높이고 그가 형벌받을 피조물에 불과함을 간과함이다. 마니교와 조로아스터교의 선악 이원론으로 간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값으로 받고 인류를 놓아줄 정도의 존재가 못된다. 인류는 죄로 인하여 사단의 종노릇하고 있지 사단이 붙잡고 있어서 종노릇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2 죄를 심판하심 - 죄의 권세를 무력화시키심

예수 십자가는 값을 지불하고 우리의 죄를 사하심과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죄를 심판하심이다. 여기서 죄를 심판함은 죄 자체를 심판함이다. 로마서 8장 1-4절은 이 내용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죄의 세력을 멸하셨기 때문이다.(destory)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 아들 그리스도의 몸에서 죄를 정하심은 죄를 심판하사 죄의 권세를 빼앗음이시다.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거의 모든 영어성경)
He condemned sin in sinful man.(NIV)
God destroyed sin's control over us by giving his Son as a sacrifice for our sins.(NLT)

“육신에 죄를 정하사”(3절) 구절을 거의 모든 영어 성경은 “육체 안에서 죄 자체를 유죄판결내리다”(condemned sin)으로 번역한다. NIV는 Flesh를 Body로 오해되는 것을 막도록 친절하게 sinful man으로 설명해주고, NLT는 죄가 우리를 지배하는 권세를 파괴했다고 의역했다. 예수의 육신을 유죄판결 내림이 아니다. 예수의 육신 안에서 죄를 유죄판결 내림이다. 유죄판결 내림은 무슨 의미인가? 죄수를 즉시 감옥에 가두어 버림과 같다. 이는 죄의 권세를 박탈함이다.

하나님은 그 아들의 속죄의 죽음을 통하여 죄를 유죄선고 하심으로 그것의 권세를 빼앗으셨다. 의인화된 죄의 세력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도록 그 권세를 박탈해 버리신 것이다. 죄를 심판하시되 예수의 육신 속에서, 십자가 죽음 속에서 심판하셨다. 이는 죄가 더 이상 인간의 주권자가 되지 못하게 하심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는 죄를 정하고 죄의 권세를 멸하는 수단이 되었다.

2.3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심

예수는 창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속죄제물 되사 하나님을 거역한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다. 부활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의 신적권위를 선포함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는 하늘로 승천하셨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이는 시편110편 1절의 성취였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시110:1)

초대교회는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사건으로 보았다. 이는 만물의 통치자라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모든 만물을 대행 통치하고 계신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불리우신다.(계19:16) 그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이시고(엡1:21),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시는 분이시다.(엡1:22) 그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모두 무릎 꿇고 주님으로 고백하는 분이시다.(빌2:11) 예수의 대행 통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이다. 그분은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져 죄와 사망이 모든 권세를 잃게 될 때 모든 만물의 주권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려드릴 것이다.(고전15:24-25)

하나님은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성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이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담당시키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중보자로 삼으셨다.(딤전2:5)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피로 새로운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드셨다. 그리고 그들의 주가 되신다. 예수는 새로운 인류의 머리가 되시고 그들의 주가 되사 사단의 세상을 복음을 가지고 의와 거룩으로 정복해 나가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때 재림하셔서 사단과 죄와 사망의 세력을 완전 끝내시고 이 주 예수의 나라(성도들, 교회)를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신다. 지금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교회와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고전15:26-28)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세계의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다.

3. 십자가는 새로운 언약백성을 탄생시켰다.

3.1 새로운 피조물 - 칭의, 화해, 입양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원죄이다. 그래서 생득적으로 하나님께는 적대적이다. 자기가 하나님이 된다. 자기중심적이다. 이런 죄의 본성(원죄)에서 모든 자범죄들이 발생한다. 따라서 인류는 자기 힘으로 죄의 행위조차도 억제할 수 없는 죄인이다. 왜냐하면 죄악된 행위들이 인간의 부패한 본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대로 이성과 감성으로 부패한 본성을 이기지 못한다. 십자가는 이런 인류를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함이었다.(고후5:17) 십자가에서 죄의 책임이 해결되고(칭의), 죄의 부패한 본성을 이길 힘을 얻게 되었다.(성화) 이는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칭의(稱義)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의롭다 칭해주시는 것이다. 인류의 문제는 하나님을 거부한 죄였다. 그 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는 아담의 부패한 본성을 지닌 실제적 죄인이 되었다. 죄의 값은 사망이었다. 사망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고 육체의 제한된 생명의 흔적 속에 살다가 육체의 썩음과 해체를 당하는 것이다. 인류는 죄로 오염돼서 더럽고 불의하다.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과 단절된 당연한 결과이다. 인류가 하나님 백성 되기 위해서는 거룩함과 의로움을 얻어야 한다. 거룩함은 죄 사함에서 얻어진다. 십자가에서 죄 사함은 인류를 거룩케 하고, 하나님은 죄 사함 받아 거룩해진 인류를 의롭다 칭해주셨다. 인류의 죄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둘째, 화해(和解)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진노를 거두심이시다. 인류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하였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만 남겨져 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화해케 하셨다. 여기서 화해와 화목은 넓은 의미에서 같다. 화해가 칭의의 결과로 얻게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림이고 화목은 화해의 결과로 얻게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회복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8-19)

또한 십자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혔던 모든 담도 허셨다.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모든 구속사적(이스라엘과 이방인), 인종적(히브리인과 헬라인), 성별적(남자 여자), 사회신분적(주인과 노예) 차별이 없어지고 화해가 이루어진다.(갈3:28)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4-16)

셋째, 입양(入養)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 삼아주심이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제사의 피가 인류에게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가져오고(칭의), 하나님의 진노에서 피하게 만들고(화해),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신 것이다(입양). 범죄한 인류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3), 마귀의 자녀(요일3:10)에서 어떻게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십자가에서 죄 사함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오직 예수이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3.2 그리스도와 연합 -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게 하심

십자가 죄 사함은 죄인들에게 성령이 거하시는 새로운 사건을 가져왔다. 성령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인류의 죄를 사함이 없이는 거하실 수가 없었다.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제거하심으로 성령이 임재하시는 근거가 되었다. 성령은 사람들 속에 내주하셔서 그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을 시키신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성도를 거룩하게 만들어가기 때문에 성화(聖化)의 근거가 된다. 성화는 인류가 지금 실제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패한 죄의 본성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세례는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나타내는 예식이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3-5)

성도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여기서 세례는 온 몸을 물에 담그는 침례로 연상함이 훨씬 더 생생하다. 세례자가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그는 죽음을 맛보게 된다. 실제로 호흡이 멈추게 되고 그 시간이 지속되면 실제로 사망한다. 그러나 이것은 옛사람의 죽음을 상징하는 예식이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물속에 들어가는 세례를 받는 순간 그의 옛 아담적 자아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물에서 일어날 때 그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사람으로 태어난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사람은 죄의 세력을 이길 힘을 얻게 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로마서 6-8장의 주제이다.

3.3 새로운 언약 백성이 탄생함

예수께서 성만찬을 베푸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의 죽음은 속죄제사요 언약제사였다. 속죄제사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을 만들기 위해 죄를 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는 신약교회이다. 신약교회가 구약교회와 구분되는 것은 그 구성이 혈통적 아브라함 자손이 아닌 영적 아브라함 자손이라는데 있다. 영적 아브라함 자손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은 사람을 의미한다.(갈3:7) 즉 십자가 속죄제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유대인, 이방인 구분 없이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십자가에서 새로운 인류가 탄생했다. 아담의 범죄를 따르는 인류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이다. 이들은 그들의 죄를 사하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며 따르는 자들이다. 이들은 “아담 안에” 있는 자들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성령의 내주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이다. 아담의 죄를 용서받고 지금도 현존하는 죄의 세력을 이길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새로운 백성의 공동체를 남기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속죄제물로 언약제물로 죽으셨다.

<요약>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성만찬을 베푸시며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분명히 하셨다. 그것은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한 속죄제사였고 새로운 하나님 백성이 탄생하는 언약제사였다. 십자가 죄 사함은 범죄한 인류가 하나님 백성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새로운 인류가 탄생했다. 그들이 바로 새로운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 곧 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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