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복음
제6장 사망, 인간의 현재 상태
Author
gospel323
Date
2017-10-1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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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
제6장 사망, 인간의 현재 상태
1. 사망은 하나님과 단절됨이다.
1.1 네가 정녕 죽으리라.(창2:17)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유 인격, 독립적 주체이다. 하나님은 그를 모든 피조세계의 대리통치자로서 창조하셨다. 그리고 인간의 자발적 순종에 의해 경배받으시기를 원하셨다. 에덴동산에 두신 생명나무와 죽음나무는 인간의 순종여부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자기의 피조물 됨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께 순종하면 그에게는 생명이 있게 된다. 생명은 인간이 자기의 피조물 됨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오는 열매이다. 생명은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에만 얻게된다.
선악을 자기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섬기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선과 악은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질서 속에서 판단되고 결정된다. 그러나 인간이 사단의 유혹을 듣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것이다. 스스로 선악을 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자기의 피조물임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다. 이는 반역이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한 것이다.(창2:17) 언약 파기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인간에게 정녕 죽으리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때부터 사망이 인간에게 형벌로 주어졌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들은 사망의 형벌 속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정녕 죽어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분명히 자기는 살아있는데 왜 죽었다고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분명 걸어 다니고 말을 하고 생활하고 있는데 왜 죽었다고 하는가? 하늘에 나는 새, 바다의 물고기,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짐승이 다 죽은 시체들인가? 이는 성경이 말하는 사망을 오해해서 하는 것들이다.
사망은 육체의 썩음과 해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망이 인간을 최종 장악한 모습이다. 성경은 사망의 형벌을 세 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첫째,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 둘째, 하나님 떠난 인간이 겪는 삶의 고통. 셋째, 그 다음 찾아오는 영혼과 육체의 분리, 육체의 썩음과 해체, 훗날 하나님 앞에서의 영원한 심판을 의미한다. 이중 가장 근본적인 사망은 첫 번째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이다. 이것 때문에 인간에게 삶의 고통과 육체의 썩음이 따라오게 되었다.
1.2 하나님과의 분리
인간은 영적피조물로서 하나님 없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절대의존 되어있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반사체)으로 창조되었다는 의미이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수 없도록 창조되었듯이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가 없다. 이는 피조물로서의 유한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무한한 능력이 있다면 독자적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의 유한한 능력은 자연재해, 갑작스러운 질병, 예기치 못한 사고... 에 속수무책이다. 죄로 오염된 피조세계는 인간에게 넉넉한 삶의 여유를 주지 못한다. 인간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급급하다. 유한한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 자기 힘으로 주인되어 세상에서 살 수 없다. 인간은 무한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게 사망형벌은 제일 먼저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왔다. 더 이상 하나님이 인간의 보호자가 아니셨다. 인간이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거부하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떠나셨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인간에게 몇 가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인간은 영적 존재에서 육체적 존재가 되어버렸다.(창6:3) 인간에게 주신 영적능력은 죄로 더럽혀짐으로 훼손되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도 만날 수도 없게 되었다. 피조세계를 보고 하나님을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며 다 어리석게 되었다.(시14:1-7)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찾게되는 것은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령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모르고 거부하고 저항하게 되어있다. 죄의 오염 때문이다.
둘째, 인간은 거룩한 존재에서 죄인으로 전락했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들이 순종하고 굴복하는 거룩한 존재였다. 그에게는 죄가 없었고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거룩성이 넘쳐났다. 그 거룩성이 피조물들을 이끌어가는 아담의 권위가 되었다. 아무도 인간에 대해서 거부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거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인간은 죄인이 되었다. 거룩성이 상실되었다. 그의 본성이 죄로 오염되어 탐욕과 잔인함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피조세계는 인간에게 순종하지 않는다. 그의 잔인함을 두려워하며 도망간다. 피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권위는 죄로 인하여 상실하게 되었다.
셋째, 인간은 대리통치자로서의 능력이 상실되었다.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다스리도록 주신 능력은 지혜였다. 범죄 이전 인간은 대단한 지혜를 소유하고 있었다. 모든 피조물들의 특성을 직관에 의해서 알았다. 오래 파악하고 관찰하고 추론하는 것이 아니다. 보는 순간 한 번에 그 내용과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가 지은 이름대로 동물이 불리우게 되었다. 그러나 범죄는 인간의 지혜를 어둡게 하였다. 더 이상 직관으로 사물을 파악하지 못한다. 추론과 사색을 통해서 어느정도 파악하지만 그 지혜가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더 이상 지혜로 피조세계를 다스리지 못하게 되었다.
1.3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
하나님과의 분리는 한시적인 단절이 아니었다. 영원한 분리요 단절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도 없다. 사망의 형벌이 집행된 것이다. 정녕 죽으리라는 사망의 형벌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으로 인간에게 적용되었다. 법의 특징은 감정이 없는 것이다. 옳고 그르냐에 대한 객관적 판단만 있고 그 법률에 따라 그대로 시행한다. 피조물 됨을 거부한 인간에게 사망의 형벌은 영원히 시행되었다. 지금 인간에게 사망 형벌은 유보된 것이 아니다. 지금 시행되고 있다. 지금은 살아있고 육체의 죽음이후부터 사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벌써 시행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자기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 삶의 고통과 육체의 썩음은 당연히 찾아오는 귀결이다. 인간은 지금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 사망의 형벌을 받고 있다.
사망의 형벌이 무서운 것은 그 형량이 최고형이요 다시 회복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영은 떠나셨고 인간은 죄의 오염으로 육체의 본성을 따라 살아간다. 죄가 이끄는 대로 살아가며 죄의 삯인 사망에 도달한다.(롬6:23) 죄로 인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요 단절됨이다. 법적인 죄 사함이 없이는 정녕 죽으리라는 형벌은 피할 길이 없다. 하나님과 단절 속에서 죄의 종노릇하며 영원한 심판을 향해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그 후 육체의 썩음과 해체가 찾아온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도 없다. 오직 죄에 대한 사망 형벌이 집행될 뿐이다.
2. 사망은 삶의 고통, 고난으로 나타난다.
2.1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자기 스스로 하나님 되겠다는 인간의 선택은 인류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정녕 죽게된 것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모든 행복과 특권을 상실했다. 피조물을 통치하던 대리통치자의 모든 권세를 상실하였다. 피조세계도 저주를 받아 아무리 수고해도 원하는 만큼 열매를 얻을 수 없다. 짐승들은 사람을 피하고 또 심지어 공격까지 한다.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대기의 기후도 가혹하게 바뀌고, 주변 환경도 모두 척박하게 바뀌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후부터 인간의 삶은 치열한 생존투쟁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던 양식은 극심한 노동을 해야 겨우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풍족하지 않은 양식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은 아직도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실 인간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먹는 문제가 해결되어도 인간은 다 끝난 것이 아니다. 그 다음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 인간은 먹는 것 말고도 필요한 것이 너무도 많다. 하나님 떠난 인간의 삶은 늘 부족한 물건에 대해 먼저 쟁취하기 위해 경쟁한다.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은 턱없이 부족하다. 피조세계도 죄의 오염으로 인간이 필요로 물건을 마음껏 만들도록 자원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고 그 가운데서 수많은 갈등이 야기된다. 먼저 쟁취하기 위해, 또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인간은 수고하고, 걱정하며, 고통스러워한다.
풍족하지 않은 자원은 인류에게 고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더 큰 고통의 원인은 인간의 탐욕에 있다. 죄는 인간을 부패한 본성이 요구하는 욕심의 종이 되게 만든다. 인간은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먹을 것이 해결되면 그 다음 필요를 요구하고, 그 욕구가 채워지면 또 다른 것에 대한 욕심이 인간 내부에서 끝없이 솟아난다. 그리고 마땅히 해서는 안 될 것까지 한 없이 요구한다. 이것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
2.2 막을 수 없는 사건, 사고, 질병
사망의 형벌은 인간에게만 내려진 것이 아니었다. 모든 피조세계에도 함께 임했다. 피조세계는 인간이 하나님 대리통치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가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없듯이 피조세계의 무질서는 바로 인간 때문이었다.(롬8:19-23) 피조세계의 무질서가 인간에게 천재지변 사고로 다가온다.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로 인해 22만 5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미국 뉴올리언즈에서는 1800명이 죽고 80만명이 집을 잃었다. 2008년 중국 쓰솬성 지진으로 8만 6천여명이 일시에 매몰되어 목숨을 잃었다. 누가 이 자연재해를 막아낼 수 있는가?
인간에게 다가오는 질병은 점점 더 강력해진다. 인간은 많은 질병을 정복해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인류를 괴롭혔던 많은 질병이 사라졌다. 그로인해 인간의 평균수명은 두 배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질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페니실린으로 정복한 세균성 감염질병은 이제 어떤 항생제로도 치료 불가능한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으로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21세기 최첨단 문명을 이룬 인류는 아직도 암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가 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연재해나 질병 말고도 어느 날 갑작스럽게 당하는 사고가 있다. 교통사고부터 화재, 여름철 익사사고, 추락사고, 감전사고... 개인의 작은 실수로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잘못으로 목숨과 재산을 잃는 사고들이 너무도 많다. 이데올로기 대립과 국가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일어난 한국전쟁, 그 안에서 일어난 수없이 많은 안타까운 사연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눈물을 볼 때 인간의 삶은 참으로 고통과 아픔의 연속임을 알게 된다.
2.3 인간 자신의 문제
평생 경제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재벌기업 회장의 자녀들, 아랍 아프리카 왕정국가의 귀족과 왕족들... 극히 소수겠지만 있을 것이다. 또 그들 중 자연재해, 불의의 사고 질병을 당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행복하고 문제가 없는가? 아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절대로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영적 피조물이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영혼과 육체가 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영혼과 육체 모든 부분에 고통을 가져다 준다. 우리 주위에 무속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영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귀신에게 굴복한 사람들이다. 귀신이 실제로 보이는데 어찌할 것인가? 밤마다 가위눌림으로 고통을 당하는데... 소위 신병이라고 불리우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온 몸이 아프고, 가족이 어려움을 당하고 경제가 다 무너지는데 이겨낼 방법이 없다. 영적인 고통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관동대학 황루시 교수가 쓴 “한국인의 굿과 무당”에는 경기여고,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 도미하여 UCLA에서 석사를 마치고 인도네시아에서 공부하고 논문 수집차 한국으로 귀국했다가 신병 증상이 나타나 내림굿을 통해 귀신을 받아들여 무당이 된 사례가 나와 있다. 이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의해 당하는 육체의 질병이 아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 영혼에 사단이 직접 공격하는 것이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이다.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정신세계가 있다. 신체 발달과 정신세계가 전혀 부조화를 이룬 사람도 많다. 이들은 일반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정신질환자들로 병원에 보호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말고도 정상인 중에서 우울증, 피해망상, 막연한 공포의식...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병명의 정신병으로 고통당하는 환자들이 많다. 학업을 성취하는 지적인 능력과 상관이 없다. 고학력자 중에서 정신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는 생각하는 영역이 덜 발달되고 육체의 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 고학력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훨씬 더 복잡하고 예민하기 때문이다.
영적 귀신들림과 정신적 고통은 인간에게만 있다. 다른 피조물들은 없다. 인간에게 임한 사망의 한 모습이다. 인간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평생을 경제문제에서 자유롭고자 노력하며 애를 쓴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땅의 소산을 먹을 것이라는 형벌 그대로이다. 그런데 영적인 고통과 정신적 고통은 그것 못지않게 힘들다. 또한 인간은 개인 고통 말고도 사회생활에서 겪는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이다. 인간사이의 갈등은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내게 만든다. 하나님 떠난 인생은 산 넘어 산이다. 이것은 사망의 결과이다.
인간은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지금 움직이고 숨을 쉬고 말을 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죽은 것이 아니다. 분명 살아있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단절된 것이다. 마치 뿌리 뽑힌 나무가 아직 잎사귀는 푸르지만 그것이 곧 시들어 말라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 밖에 나와 지금 펄떡 거리는 물고기가 지금은 움직이지만 얼마 후 곧 숨을 멈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나무는 땅에, 물고기는 물에 연결되지 않으면, 그 살아있음은 얼마가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움직이지만 물밖에 나온 물고기는 죽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80년의 긴 수명을 보고 인간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원래 인간의 수명은 영원한 것이었다. 하나님과 함께하면 영원히 살 수 있던 존재가 하나님과 단절되어 겨우 80년을 산다고 하는 것은 물 밖에 나와 펄떡거리다가 몇 분 후에 죽는 물고기와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죽어있다. 물론 지금은 잠깐 살아있지만 그 생명이 곧 끊어질 것이기에 아예 죽어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이 사망의 형벌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된 사망의 흔적이다. 사망은 육체의 썩음과 해체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고통은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모든 인류에게 사망이 집행되었다. 사망이 유예된 것이 아니라 집행되고 있다. 하나님을 거부한 인간에게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심판이 지금 그대로 임하고 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바로 사망의 현상들이다. 마치 백만 원을 들고 집을 나간 아이와 똑같다. 부모의 돌봄이 있을 때 아이에게 백만 원은 대단히 큰 돈이다. 그러나 집을 나가 자기 스스로 숙식과 모든 것을 해결하려면 백만 원은 한 달도 못가는 돈이다. 집나간 아이가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그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범죄한 그 순간 생명의 근원에서 분리되었다. 하나님의 신이 사람을 떠나셨다. 전원코드에서 분리된 휴대전화가 베터리의 힘으로 얼마간 버티는 것처럼, 달리는 기관차에서 분리된 객차가 지금은 잠시 달려가고 있듯, 인간은 자기에게 주신 얼마 남은 생명의 흔적을 가지고 점점 쇠약해져가다가 마침내 모든 생명의 힘이 소잔되고 만다. 생명이 다 소잔되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고, 육체는 썩음과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된다. 지금까지 육체가 썩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 인간 속에 주셨던 생명의 기운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망의 형벌을 내리실 때 그것마저 완전하게 거두어 가신 것은 아니다. 생명의 흔적은 남겨두셨다. 이는 생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안 인간이 다시 하나님 백성 되는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시기 위함이었다.
3. 사망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 육체의 썩음과 해체로 드러난다.
3.1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3:19)
하나님과의 단절은 인간의 모든 면을 바꿔놓았다. 인간의 삶을 육체에 있는 생명이 다 소진될 때까지로 제한시켰다. 그래서 인간은 제한된 기간동안 생명을 유지하다가 결국 사망의 완전한 형벌에 도달하게 된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의 범죄 이후 생명의 흔적을 육체에 남겨두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구원의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세계를 버리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세계를 인간과 함께 없애셨을 것이고 온 우주는 다시 창조이전의 첫 상태, 곧 무와 공허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를 다시 회복하시기로 작정하셨다. 사망의 형벌이 집행되지만 그의 육체에 생명의 흔적을 남겨두셨다. 육체라 함은 첫 아담의 육체를 가진 거룩한 산 영과 다르다는 것이요, 생명이라 함은 육체가 썩음과 해체가 되지 않고 살아있음을 의미하며, 흔적이라 함은 기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인간이 70-80여년을 사는 동안 다가오는 삶의 모든 고통은 하나님과 단절된 사망의 현상들이다. 그러나 한편 이 기간은 인간이 다시 하나님 백성되어 모든 피조세계를 회복할, 즉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된 기회이다. 이는 물리적 피조세계는 물리적 육체를 가진 존재만 직접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 육체가 없으면 피조세계를 직접 관리할 수 없다. 하나님 형상의 중요한 의미 속에는 육체를 가진 영적 피조물임을 언급했다. 인간이 천사보다 월등한 것은 천사가 가지지 못한 육체에 있음도 언급했다. 비록 지금은 죄의 오염으로 타락되었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육체는 영혼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이다. 구원이란 인간이 본래 모습으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절대 의존되어,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서 다스림으로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부한 모든 반역이 마무리되고 하나님이 만유의 통치자로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육체를 가진 존재일 때만 가능하다. 육체의 수명이 다하면 인간 구원의 기회는 끝이 난다. 육체가 썩어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 이후에는 구원이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히9:27)
사망의 첫 번째 형태가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한 인간 삶의 고통이라면, 사망의 두 번째 형태는 육체의 수명이 다함으로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이다. 인간 창조의 신비는 물질적인 육체와 비물질적인 영혼이 하나로 결합되도록 하신 것이다. 영혼은 육체 안에 있고, 육체는 영혼을 감싸고 있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의 기능이 정지됨으로 인해 분리된다. 재림과 심판, 부활 이전까지 한시적으로 육체와 분리된다.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고 육체는 썩어 해체된다. 사람들이 사망의 형벌을 직접 확인하게 되는 것은 바로 육체의 썩음과 해체를 볼 때이다. 차가운 시신위에 드리워진 사망의 권세를 이겨낼 자가 없다.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 평등하다. 어느 누구도 사망을 이길 수 없다. 사망은 인간의 지식, 인격, 재산, 지위,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 누구도 죽음에 동행해 줄 수 없다. 혼자서 간다. 모든 것을 놓아두고 간다. 어둠의 세계로 간다. 차가운 땅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육체는 완전하게 썩고 해체가 된다.
3.2 영원한 심판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면 육체는 즉시 썩음과 해체가 되기 시작한다.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존엄성은 없어지고 사망의 형벌이 그를 완전히 지배한다. 육체의 썩음은 인간이 다시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서의 역할 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구원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육체가 썩어가는 모습을 볼 때 비로소 인간의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게 된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 육체의 썩음과 해체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롬14:10) 이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인간 육체의 부활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에 있던 인간 영혼과 땅에서 썩어 있는 육체가 다시 부활한 모습으로 만나 하나가 된다. 영혼과 육체가 하나된 모습이 바로 인간이다. 영혼 없는 육체를 인간이라 말할 수 없듯, 육체 없는 영혼도 완전한 인간이라 말할 수 없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가 하나된 존재이다. 부활한 몸은 썩지 않는 영원한 몸이다. 부활한 육체이다. 부활하였기에 영원히 죽지 않고 육체이기에 감각을 느낀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부활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계20:12) 그때 하나님을 거부한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며, 사단과 그의 범죄에 동참했던 자는 불 못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말한다. 첫 사망이 모든 인류가 당하는 형벌 곧 하나님과 단절되어 살아있는 동안 고난과 고통을 느끼고, 육체의 생명이 다하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고 육체가 썩고 해체되는 것과 비교하는 것이다. 또한 첫 사망을 받은 자 중에서 자신의 피조물 됨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 대리통치자의 역할을 감당한 자들이 영원한 하나님과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대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후 모든 인간은 부활하여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첫 사망 이후 둘째 사망의 형벌을 받을 자 곧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갈 자이다.(마25:41) 첫 사망은 육체의 썩음과 해체를 가져와 모든 책임을 없게 하지만 부활이후의 둘째 사망은 육체가 부활되기에 죽지 않는 몸으로 영원한 고통을 느끼며 형벌을 받게 만든다.
또 하나는 둘째 사망을 받지 않고 영생 곧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 속으로 들어갈 자이다.(마25:34) 이들은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같을 것이다.(고전15:20) 분명히 만져지는 육체를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죄에 오염된 육체가 아니다. 부패한 죄의 본성을 가진 육체가 아니다. 따라서 범죄 이전 아담이 가졌던 거룩한 산 영의 모습이다(창2:7) 육체가 영혼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상태이다. 거룩한 육체이다. 이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영원토록 함께 할 것이다.
3.3 그리스도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심
아무도 사망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신 공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판단하고, 원했고, 행동으로 옮겼기에 인간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 언제나 자유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사망은 형벌이기에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법정 최고형이기에 인간이 해결할 능력이 없다. 생명을 요구하는데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말 속에는 몇 가지 기본의미가 담겨있다. 첫째, 인간은 지금 큰 문제 속에 빠져있다, 둘째, 그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셋째, 제 삼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가 더 이상 인간을 지배할 수 없음을 선언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그래서 인류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
<요약>
사망은 하나님을 거부한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절대적 단절이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인간에게 두 가지 큰 변화를 가져온다. 첫째, 인간이 사는 동안 고난과 고통이다. 무한하지 못한 자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함에서 오는 모든 갈등과 어려움이다. 사망의 현상이요 증상이다. 둘째, 영혼과 육체의 분리, 육체의 썩음과 해체이다. 이 두 가지가 바로 사망이다. 근본 원인은 하나님과의 단절이고 인간에게는 삶의 고통과 육체의 썩음으로 나타난다. 육체의 썩음만 사망이 아니다. 인간의 사는 동안 모든 고통도 사망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고통은 사단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단절됨에서 왔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모든 것을 가져왔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바로 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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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망은 하나님과 단절됨이다.
1.1 네가 정녕 죽으리라.(창2:17)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유 인격, 독립적 주체이다. 하나님은 그를 모든 피조세계의 대리통치자로서 창조하셨다. 그리고 인간의 자발적 순종에 의해 경배받으시기를 원하셨다. 에덴동산에 두신 생명나무와 죽음나무는 인간의 순종여부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자기의 피조물 됨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께 순종하면 그에게는 생명이 있게 된다. 생명은 인간이 자기의 피조물 됨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오는 열매이다. 생명은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에만 얻게된다.
선악을 자기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섬기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선과 악은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질서 속에서 판단되고 결정된다. 그러나 인간이 사단의 유혹을 듣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것이다. 스스로 선악을 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자기의 피조물임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다. 이는 반역이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한 것이다.(창2:17) 언약 파기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인간에게 정녕 죽으리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때부터 사망이 인간에게 형벌로 주어졌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들은 사망의 형벌 속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정녕 죽어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분명히 자기는 살아있는데 왜 죽었다고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분명 걸어 다니고 말을 하고 생활하고 있는데 왜 죽었다고 하는가? 하늘에 나는 새, 바다의 물고기,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짐승이 다 죽은 시체들인가? 이는 성경이 말하는 사망을 오해해서 하는 것들이다.
사망은 육체의 썩음과 해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망이 인간을 최종 장악한 모습이다. 성경은 사망의 형벌을 세 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첫째,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 둘째, 하나님 떠난 인간이 겪는 삶의 고통. 셋째, 그 다음 찾아오는 영혼과 육체의 분리, 육체의 썩음과 해체, 훗날 하나님 앞에서의 영원한 심판을 의미한다. 이중 가장 근본적인 사망은 첫 번째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이다. 이것 때문에 인간에게 삶의 고통과 육체의 썩음이 따라오게 되었다.
1.2 하나님과의 분리
인간은 영적피조물로서 하나님 없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절대의존 되어있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반사체)으로 창조되었다는 의미이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수 없도록 창조되었듯이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가 없다. 이는 피조물로서의 유한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무한한 능력이 있다면 독자적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의 유한한 능력은 자연재해, 갑작스러운 질병, 예기치 못한 사고... 에 속수무책이다. 죄로 오염된 피조세계는 인간에게 넉넉한 삶의 여유를 주지 못한다. 인간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급급하다. 유한한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 자기 힘으로 주인되어 세상에서 살 수 없다. 인간은 무한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게 사망형벌은 제일 먼저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왔다. 더 이상 하나님이 인간의 보호자가 아니셨다. 인간이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거부하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떠나셨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인간에게 몇 가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인간은 영적 존재에서 육체적 존재가 되어버렸다.(창6:3) 인간에게 주신 영적능력은 죄로 더럽혀짐으로 훼손되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도 만날 수도 없게 되었다. 피조세계를 보고 하나님을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며 다 어리석게 되었다.(시14:1-7)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찾게되는 것은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령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모르고 거부하고 저항하게 되어있다. 죄의 오염 때문이다.
둘째, 인간은 거룩한 존재에서 죄인으로 전락했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들이 순종하고 굴복하는 거룩한 존재였다. 그에게는 죄가 없었고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거룩성이 넘쳐났다. 그 거룩성이 피조물들을 이끌어가는 아담의 권위가 되었다. 아무도 인간에 대해서 거부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거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인간은 죄인이 되었다. 거룩성이 상실되었다. 그의 본성이 죄로 오염되어 탐욕과 잔인함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피조세계는 인간에게 순종하지 않는다. 그의 잔인함을 두려워하며 도망간다. 피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권위는 죄로 인하여 상실하게 되었다.
셋째, 인간은 대리통치자로서의 능력이 상실되었다.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다스리도록 주신 능력은 지혜였다. 범죄 이전 인간은 대단한 지혜를 소유하고 있었다. 모든 피조물들의 특성을 직관에 의해서 알았다. 오래 파악하고 관찰하고 추론하는 것이 아니다. 보는 순간 한 번에 그 내용과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가 지은 이름대로 동물이 불리우게 되었다. 그러나 범죄는 인간의 지혜를 어둡게 하였다. 더 이상 직관으로 사물을 파악하지 못한다. 추론과 사색을 통해서 어느정도 파악하지만 그 지혜가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더 이상 지혜로 피조세계를 다스리지 못하게 되었다.
1.3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
하나님과의 분리는 한시적인 단절이 아니었다. 영원한 분리요 단절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도 없다. 사망의 형벌이 집행된 것이다. 정녕 죽으리라는 사망의 형벌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으로 인간에게 적용되었다. 법의 특징은 감정이 없는 것이다. 옳고 그르냐에 대한 객관적 판단만 있고 그 법률에 따라 그대로 시행한다. 피조물 됨을 거부한 인간에게 사망의 형벌은 영원히 시행되었다. 지금 인간에게 사망 형벌은 유보된 것이 아니다. 지금 시행되고 있다. 지금은 살아있고 육체의 죽음이후부터 사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벌써 시행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자기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 삶의 고통과 육체의 썩음은 당연히 찾아오는 귀결이다. 인간은 지금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 사망의 형벌을 받고 있다.
사망의 형벌이 무서운 것은 그 형량이 최고형이요 다시 회복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영은 떠나셨고 인간은 죄의 오염으로 육체의 본성을 따라 살아간다. 죄가 이끄는 대로 살아가며 죄의 삯인 사망에 도달한다.(롬6:23) 죄로 인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요 단절됨이다. 법적인 죄 사함이 없이는 정녕 죽으리라는 형벌은 피할 길이 없다. 하나님과 단절 속에서 죄의 종노릇하며 영원한 심판을 향해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그 후 육체의 썩음과 해체가 찾아온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도 없다. 오직 죄에 대한 사망 형벌이 집행될 뿐이다.
2. 사망은 삶의 고통, 고난으로 나타난다.
2.1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자기 스스로 하나님 되겠다는 인간의 선택은 인류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정녕 죽게된 것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모든 행복과 특권을 상실했다. 피조물을 통치하던 대리통치자의 모든 권세를 상실하였다. 피조세계도 저주를 받아 아무리 수고해도 원하는 만큼 열매를 얻을 수 없다. 짐승들은 사람을 피하고 또 심지어 공격까지 한다.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대기의 기후도 가혹하게 바뀌고, 주변 환경도 모두 척박하게 바뀌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후부터 인간의 삶은 치열한 생존투쟁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던 양식은 극심한 노동을 해야 겨우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풍족하지 않은 양식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은 아직도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실 인간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먹는 문제가 해결되어도 인간은 다 끝난 것이 아니다. 그 다음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 인간은 먹는 것 말고도 필요한 것이 너무도 많다. 하나님 떠난 인간의 삶은 늘 부족한 물건에 대해 먼저 쟁취하기 위해 경쟁한다.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은 턱없이 부족하다. 피조세계도 죄의 오염으로 인간이 필요로 물건을 마음껏 만들도록 자원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고 그 가운데서 수많은 갈등이 야기된다. 먼저 쟁취하기 위해, 또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인간은 수고하고, 걱정하며, 고통스러워한다.
풍족하지 않은 자원은 인류에게 고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더 큰 고통의 원인은 인간의 탐욕에 있다. 죄는 인간을 부패한 본성이 요구하는 욕심의 종이 되게 만든다. 인간은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먹을 것이 해결되면 그 다음 필요를 요구하고, 그 욕구가 채워지면 또 다른 것에 대한 욕심이 인간 내부에서 끝없이 솟아난다. 그리고 마땅히 해서는 안 될 것까지 한 없이 요구한다. 이것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
2.2 막을 수 없는 사건, 사고, 질병
사망의 형벌은 인간에게만 내려진 것이 아니었다. 모든 피조세계에도 함께 임했다. 피조세계는 인간이 하나님 대리통치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가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없듯이 피조세계의 무질서는 바로 인간 때문이었다.(롬8:19-23) 피조세계의 무질서가 인간에게 천재지변 사고로 다가온다.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로 인해 22만 5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미국 뉴올리언즈에서는 1800명이 죽고 80만명이 집을 잃었다. 2008년 중국 쓰솬성 지진으로 8만 6천여명이 일시에 매몰되어 목숨을 잃었다. 누가 이 자연재해를 막아낼 수 있는가?
인간에게 다가오는 질병은 점점 더 강력해진다. 인간은 많은 질병을 정복해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인류를 괴롭혔던 많은 질병이 사라졌다. 그로인해 인간의 평균수명은 두 배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질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페니실린으로 정복한 세균성 감염질병은 이제 어떤 항생제로도 치료 불가능한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으로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21세기 최첨단 문명을 이룬 인류는 아직도 암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가 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연재해나 질병 말고도 어느 날 갑작스럽게 당하는 사고가 있다. 교통사고부터 화재, 여름철 익사사고, 추락사고, 감전사고... 개인의 작은 실수로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잘못으로 목숨과 재산을 잃는 사고들이 너무도 많다. 이데올로기 대립과 국가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일어난 한국전쟁, 그 안에서 일어난 수없이 많은 안타까운 사연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눈물을 볼 때 인간의 삶은 참으로 고통과 아픔의 연속임을 알게 된다.
2.3 인간 자신의 문제
평생 경제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재벌기업 회장의 자녀들, 아랍 아프리카 왕정국가의 귀족과 왕족들... 극히 소수겠지만 있을 것이다. 또 그들 중 자연재해, 불의의 사고 질병을 당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행복하고 문제가 없는가? 아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절대로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영적 피조물이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영혼과 육체가 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영혼과 육체 모든 부분에 고통을 가져다 준다. 우리 주위에 무속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영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귀신에게 굴복한 사람들이다. 귀신이 실제로 보이는데 어찌할 것인가? 밤마다 가위눌림으로 고통을 당하는데... 소위 신병이라고 불리우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온 몸이 아프고, 가족이 어려움을 당하고 경제가 다 무너지는데 이겨낼 방법이 없다. 영적인 고통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관동대학 황루시 교수가 쓴 “한국인의 굿과 무당”에는 경기여고,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 도미하여 UCLA에서 석사를 마치고 인도네시아에서 공부하고 논문 수집차 한국으로 귀국했다가 신병 증상이 나타나 내림굿을 통해 귀신을 받아들여 무당이 된 사례가 나와 있다. 이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의해 당하는 육체의 질병이 아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 영혼에 사단이 직접 공격하는 것이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이다.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정신세계가 있다. 신체 발달과 정신세계가 전혀 부조화를 이룬 사람도 많다. 이들은 일반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정신질환자들로 병원에 보호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말고도 정상인 중에서 우울증, 피해망상, 막연한 공포의식...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병명의 정신병으로 고통당하는 환자들이 많다. 학업을 성취하는 지적인 능력과 상관이 없다. 고학력자 중에서 정신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는 생각하는 영역이 덜 발달되고 육체의 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 고학력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훨씬 더 복잡하고 예민하기 때문이다.
영적 귀신들림과 정신적 고통은 인간에게만 있다. 다른 피조물들은 없다. 인간에게 임한 사망의 한 모습이다. 인간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평생을 경제문제에서 자유롭고자 노력하며 애를 쓴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땅의 소산을 먹을 것이라는 형벌 그대로이다. 그런데 영적인 고통과 정신적 고통은 그것 못지않게 힘들다. 또한 인간은 개인 고통 말고도 사회생활에서 겪는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이다. 인간사이의 갈등은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내게 만든다. 하나님 떠난 인생은 산 넘어 산이다. 이것은 사망의 결과이다.
인간은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지금 움직이고 숨을 쉬고 말을 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죽은 것이 아니다. 분명 살아있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단절된 것이다. 마치 뿌리 뽑힌 나무가 아직 잎사귀는 푸르지만 그것이 곧 시들어 말라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 밖에 나와 지금 펄떡 거리는 물고기가 지금은 움직이지만 얼마 후 곧 숨을 멈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나무는 땅에, 물고기는 물에 연결되지 않으면, 그 살아있음은 얼마가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움직이지만 물밖에 나온 물고기는 죽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80년의 긴 수명을 보고 인간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원래 인간의 수명은 영원한 것이었다. 하나님과 함께하면 영원히 살 수 있던 존재가 하나님과 단절되어 겨우 80년을 산다고 하는 것은 물 밖에 나와 펄떡거리다가 몇 분 후에 죽는 물고기와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죽어있다. 물론 지금은 잠깐 살아있지만 그 생명이 곧 끊어질 것이기에 아예 죽어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이 사망의 형벌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된 사망의 흔적이다. 사망은 육체의 썩음과 해체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고통은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모든 인류에게 사망이 집행되었다. 사망이 유예된 것이 아니라 집행되고 있다. 하나님을 거부한 인간에게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심판이 지금 그대로 임하고 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바로 사망의 현상들이다. 마치 백만 원을 들고 집을 나간 아이와 똑같다. 부모의 돌봄이 있을 때 아이에게 백만 원은 대단히 큰 돈이다. 그러나 집을 나가 자기 스스로 숙식과 모든 것을 해결하려면 백만 원은 한 달도 못가는 돈이다. 집나간 아이가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그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범죄한 그 순간 생명의 근원에서 분리되었다. 하나님의 신이 사람을 떠나셨다. 전원코드에서 분리된 휴대전화가 베터리의 힘으로 얼마간 버티는 것처럼, 달리는 기관차에서 분리된 객차가 지금은 잠시 달려가고 있듯, 인간은 자기에게 주신 얼마 남은 생명의 흔적을 가지고 점점 쇠약해져가다가 마침내 모든 생명의 힘이 소잔되고 만다. 생명이 다 소잔되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고, 육체는 썩음과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된다. 지금까지 육체가 썩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 인간 속에 주셨던 생명의 기운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망의 형벌을 내리실 때 그것마저 완전하게 거두어 가신 것은 아니다. 생명의 흔적은 남겨두셨다. 이는 생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안 인간이 다시 하나님 백성 되는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시기 위함이었다.
3. 사망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 육체의 썩음과 해체로 드러난다.
3.1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3:19)
하나님과의 단절은 인간의 모든 면을 바꿔놓았다. 인간의 삶을 육체에 있는 생명이 다 소진될 때까지로 제한시켰다. 그래서 인간은 제한된 기간동안 생명을 유지하다가 결국 사망의 완전한 형벌에 도달하게 된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의 범죄 이후 생명의 흔적을 육체에 남겨두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구원의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세계를 버리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세계를 인간과 함께 없애셨을 것이고 온 우주는 다시 창조이전의 첫 상태, 곧 무와 공허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를 다시 회복하시기로 작정하셨다. 사망의 형벌이 집행되지만 그의 육체에 생명의 흔적을 남겨두셨다. 육체라 함은 첫 아담의 육체를 가진 거룩한 산 영과 다르다는 것이요, 생명이라 함은 육체가 썩음과 해체가 되지 않고 살아있음을 의미하며, 흔적이라 함은 기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인간이 70-80여년을 사는 동안 다가오는 삶의 모든 고통은 하나님과 단절된 사망의 현상들이다. 그러나 한편 이 기간은 인간이 다시 하나님 백성되어 모든 피조세계를 회복할, 즉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된 기회이다. 이는 물리적 피조세계는 물리적 육체를 가진 존재만 직접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 육체가 없으면 피조세계를 직접 관리할 수 없다. 하나님 형상의 중요한 의미 속에는 육체를 가진 영적 피조물임을 언급했다. 인간이 천사보다 월등한 것은 천사가 가지지 못한 육체에 있음도 언급했다. 비록 지금은 죄의 오염으로 타락되었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육체는 영혼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이다. 구원이란 인간이 본래 모습으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절대 의존되어,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서 다스림으로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부한 모든 반역이 마무리되고 하나님이 만유의 통치자로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육체를 가진 존재일 때만 가능하다. 육체의 수명이 다하면 인간 구원의 기회는 끝이 난다. 육체가 썩어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 이후에는 구원이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히9:27)
사망의 첫 번째 형태가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한 인간 삶의 고통이라면, 사망의 두 번째 형태는 육체의 수명이 다함으로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이다. 인간 창조의 신비는 물질적인 육체와 비물질적인 영혼이 하나로 결합되도록 하신 것이다. 영혼은 육체 안에 있고, 육체는 영혼을 감싸고 있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의 기능이 정지됨으로 인해 분리된다. 재림과 심판, 부활 이전까지 한시적으로 육체와 분리된다.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고 육체는 썩어 해체된다. 사람들이 사망의 형벌을 직접 확인하게 되는 것은 바로 육체의 썩음과 해체를 볼 때이다. 차가운 시신위에 드리워진 사망의 권세를 이겨낼 자가 없다.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 평등하다. 어느 누구도 사망을 이길 수 없다. 사망은 인간의 지식, 인격, 재산, 지위,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 누구도 죽음에 동행해 줄 수 없다. 혼자서 간다. 모든 것을 놓아두고 간다. 어둠의 세계로 간다. 차가운 땅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육체는 완전하게 썩고 해체가 된다.
3.2 영원한 심판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면 육체는 즉시 썩음과 해체가 되기 시작한다.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존엄성은 없어지고 사망의 형벌이 그를 완전히 지배한다. 육체의 썩음은 인간이 다시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서의 역할 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구원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육체가 썩어가는 모습을 볼 때 비로소 인간의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게 된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 육체의 썩음과 해체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롬14:10) 이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인간 육체의 부활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에 있던 인간 영혼과 땅에서 썩어 있는 육체가 다시 부활한 모습으로 만나 하나가 된다. 영혼과 육체가 하나된 모습이 바로 인간이다. 영혼 없는 육체를 인간이라 말할 수 없듯, 육체 없는 영혼도 완전한 인간이라 말할 수 없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가 하나된 존재이다. 부활한 몸은 썩지 않는 영원한 몸이다. 부활한 육체이다. 부활하였기에 영원히 죽지 않고 육체이기에 감각을 느낀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부활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계20:12) 그때 하나님을 거부한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며, 사단과 그의 범죄에 동참했던 자는 불 못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말한다. 첫 사망이 모든 인류가 당하는 형벌 곧 하나님과 단절되어 살아있는 동안 고난과 고통을 느끼고, 육체의 생명이 다하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고 육체가 썩고 해체되는 것과 비교하는 것이다. 또한 첫 사망을 받은 자 중에서 자신의 피조물 됨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 대리통치자의 역할을 감당한 자들이 영원한 하나님과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대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후 모든 인간은 부활하여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첫 사망 이후 둘째 사망의 형벌을 받을 자 곧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갈 자이다.(마25:41) 첫 사망은 육체의 썩음과 해체를 가져와 모든 책임을 없게 하지만 부활이후의 둘째 사망은 육체가 부활되기에 죽지 않는 몸으로 영원한 고통을 느끼며 형벌을 받게 만든다.
또 하나는 둘째 사망을 받지 않고 영생 곧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 속으로 들어갈 자이다.(마25:34) 이들은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같을 것이다.(고전15:20) 분명히 만져지는 육체를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죄에 오염된 육체가 아니다. 부패한 죄의 본성을 가진 육체가 아니다. 따라서 범죄 이전 아담이 가졌던 거룩한 산 영의 모습이다(창2:7) 육체가 영혼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상태이다. 거룩한 육체이다. 이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영원토록 함께 할 것이다.
3.3 그리스도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심
아무도 사망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신 공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판단하고, 원했고, 행동으로 옮겼기에 인간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 언제나 자유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사망은 형벌이기에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법정 최고형이기에 인간이 해결할 능력이 없다. 생명을 요구하는데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말 속에는 몇 가지 기본의미가 담겨있다. 첫째, 인간은 지금 큰 문제 속에 빠져있다, 둘째, 그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셋째, 제 삼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가 더 이상 인간을 지배할 수 없음을 선언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그래서 인류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
<요약>
사망은 하나님을 거부한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절대적 단절이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인간에게 두 가지 큰 변화를 가져온다. 첫째, 인간이 사는 동안 고난과 고통이다. 무한하지 못한 자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함에서 오는 모든 갈등과 어려움이다. 사망의 현상이요 증상이다. 둘째, 영혼과 육체의 분리, 육체의 썩음과 해체이다. 이 두 가지가 바로 사망이다. 근본 원인은 하나님과의 단절이고 인간에게는 삶의 고통과 육체의 썩음으로 나타난다. 육체의 썩음만 사망이 아니다. 인간의 사는 동안 모든 고통도 사망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고통은 사단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단절됨에서 왔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모든 것을 가져왔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바로 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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