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복음

제12장 예수는 그리스도

Author
gospel323
Date
2017-10-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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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예수는 그리스도

1.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

1.1 다윗의 자손

십자가 복음의 핵심이 되는 “그리스도” 단어를 이해하려면 초대교회 당시의 상황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리스도라는 용어를 바울과 초대교회 사도들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로 설명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주로 구약에 익숙한 유대인들이거나 혹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 혹 유대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들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선택받은 유일한 백성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선언하셨다.(창12장) 하나님은 자손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자손이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처럼 큰 민족을 이룰 것과 그 자손들이 기거하게 될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시고 언약체결 제사로 확증해주셨다.(창15장)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지경이 가나안땅 곧 오늘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정해지게 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사라의 몸에서 난 이삭을 통한 자손번성을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된 증표로 할례를 주셨다.(창17장) 이후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네 자손이 하늘에 별처럼 많아지리라는 아브라함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셨다. 요셉은 바로 이 일에 쓰임 받은 인물이다.(창50장)

아브라함 자손이 번성해지자, 하나님은 430년간 애굽에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그 약속대로 모세를 통해서 건져내셨고 그 언약이 성취되게 하셨다. 강대한 나라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림으로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게 하셨고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넘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모든 민족이 알게 하셨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직접 율법을 돌에 새겨 모세에게 주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당신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언약으로 체결하셨다. 오랜 광야기간 동안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다. 또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든 민족들을 멸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얻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었고, 언약을 이루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셨으며, 그들 앞서 나가 싸워주시는 만군의 하나님이셨다. 이 사실만 가지고도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왕 때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려던 다윗 왕에게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을 주신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 곧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사상의 가장 중요한 핵심 기반이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13-16)

이 예언은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세 가지를 약속하신다.

첫째, 다윗의 아들이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다.(7:13)
둘째, 다윗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칭하실 것이다.(7:14)
셋째, 다윗의 아들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케 하실 것이다.(7:16)

나단의 예언은 가깝게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성취되어졌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가장 크게 확대시켰다. 심지어 먼 아프리카의 시바여왕이 예물을 들고 찾아올 정도로 강대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BC 586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된 후 솔로몬 성전은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성전을 지을 다윗의 자손을 기다리게 된다.

1.2 하나님의 아들

다윗 이후의 이스라엘 왕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워졌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해주시는 하나님 나라라는 의미이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는 하나님 백성을 통치하는 자라는 언약 용어이며, 초대교회가 선포한 하나님의 본체라는 개념이 아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인간이 하나님과 동일본질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편 2편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왕의 등극식 때에 부르는 노래이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2:1-12)

이스라엘 왕이 기름부음을 받으며 대관식을 하는 장면이다. 세상 사람들이 기름 부음 받은 자(그리스도) 곧 이스라엘 왕을 대적하려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꺾고 이스라엘 왕을 거룩한 산 시온에 우뚝 세우신다. 그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주시고 열방을 깨뜨릴 권세를 주신다. 열방은 이스라엘 왕을 섬기게 된다. 이는 다윗 이후 이스라엘 왕들이 등극식을 할 때마다 낭송되는 시이다.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였다. 즉 이스라엘 왕,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두 사람에게 적용되는 단어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 곧 이스라엘 왕이 다스리는 나라였고 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기 때문에 메시아, 그리스도로 불리워졌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에 대한 유대인의 사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과 초대교회의 이스라엘 왕,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라는 용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번영과 다윗 왕의 영광을 회복할 능력있는 지도자를 말하는 것이고,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본체이신 성자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다. 신약교회는 시편 2편을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킨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행4:24-28)

1.3 그리스도 대망사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을 자신의 아들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을 직접 다스려 주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솔로몬왕 이후 북쪽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 유다 왕국, 두 나라로 분열되어 계속 몰락의 길을 걷고 결국에는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혼란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이 다윗 왕에게 주셨던 예언은 어떻게 된 것인가? 솔로몬이 지은 하나님의 성전은 모두 무너졌고 하나님의 아들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잡혀갔고 다윗의 위는 견고하게 되기는 커녕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이 완전 망해버렸다.

이 엄청난 신학적 혼란은 학사 에스라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한 것을 회개하는 율법 회복운동이 일어나게 만들고, 다시 한 번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주신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할 다윗의 자손을 기다리는 메시아(그리스도) 대망사상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멸망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제라도 우리가 율법을 잘 지키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이 다시 그리스도 곧 다윗의 자손,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 왕을 보내주시고 우리 민족을 전 세계의 최고 민족으로 다시 세우실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속국이었다. 이스라엘의 형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나단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 곧 다윗 왕의 영광을 회복할 다윗의 자손, 이스라엘 왕을 기다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메시아(그리스도), 다윗의 자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어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붙이는 칭호였다. 사무엘하서 1장에는 다윗이 사울왕의 죽은 소식을 가지고 찾아온 아말렉 소년을 책망하는 구절이 나온다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삼하1:14)

이 구절을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면 “네가 어찌하여 메시아(messiah)를 죽였느냐”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글성경은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의미 풀이해서 기록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메시아”로 기록한다.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에서 이 구절을 보면 역시 “주의 그리스도를”(ton criston kuriou) 죽였다고 나온다. 사울 왕을 바로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즉 유대인들은 사울 왕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데 아무 이상함도 없었다. 이 말은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우리 그리스도인처럼 하나님의 본체시며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해 오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직분을 위해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영웅 정도의 의미였다. 한 예로 AD 132년 유대 최고 랍비 아키바가 당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출하려던 민족적 영웅 바르 코흐바를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공식 선포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어떤 존재로 인식했는가에 대한 단적인 예이다.

그리스도 용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고, 또 현실적으로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어 하나님 백성이라는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해있는 유대인들에게, 소망은 오직 하나 다윗의 자손으로 와서 이스라엘의 모든 영광을 회복해줄 하나님이 보낸 사람, 위대한 지도자 곧 그리스도에게 있었다.

2. 초대교회가 선포한 그리스도

2.1 세례요한의 증거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구약성경은 다음의 구절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고 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6)

여호와의 날, 주의 날로 예언된 메시아의 오실 때는 먼저 선지 엘리야가 나타나 그들을 회개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 성경의 제일 마지막 구절이다. 구약성경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대망하며 그 전 징조로 선지자가 와서 회개운동을 벌일 것으로 말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 앞서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 바로 그 선지자였다.(마11:14) 세례요한은 그 출생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대제사장 사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잉태치 못하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할 것을 알리고 그 이름을 직접 요한이라고 명명해주었다. 그는 자라나면서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엘리야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옷을 입는다.(왕하1:8) 그리고 회개케 하는 세례를 베풀기 시작한다.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강팍한 군인 세리들까지도 세례요한에게 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다. 세례요한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인정하는 선지자였다.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것과 또 하나는 내 뒤에 그리스도가 곧 오신다는 것이다.(눅3장)

이런 상황 속에 예수께서 유대 땅에 오셔서 말씀과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니 유대인들에게 큰 기대감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례요한이 앞서 와서 예수를 증거하였으니 말이다. 유대인들의 기대는 예수께서 치유와 기적을 행하시기 시작하실 때 더욱 커지게 된다. “드디어 우리를 로마에서 해방시키고 모든 이방인 위에 뛰어나게 하실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가 오셨구나... ” 오병이어 기적 후 그 기대는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사람들은 예수를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 했다.(요6:15) 예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칭찬을 하시면서도 당신의 그리스도 되심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의 기다리던 육신적 지도자 그리스도로 오해될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마16:20)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영광을 다시 회복할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를 기다렸지만,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독립 같은 영웅적인 일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 죄 사함, 속죄제사, 교회... 같은 메시지만 하시다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된다.

2.2 십자가에서 속죄제물로 죽으심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이려고 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당시 로마 속국이었기에 죄인을 죽일 사형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일 때 그들은 로마에 의해 아무런 제제나 거리낌을 받지 않았다. 이스라엘 종교법에 의해 얼마든지 사형시킬 수 있었다. 로마는 종교법을 어긴 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사형제도를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대제사장들은 이스라엘의 종교법에 따라 예수를 돌로 쳐서 처형하면 그 제자들에 의해 예수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고 더욱 확대될 것을 두려워했다. 즉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들이 다 핍박받은 것처럼 예수도 핍박받아 죽었다. 이것만 봐도 예수는 올바른 분이 아닌가? 그리고 그 분을 죽인 자들은 악한 자들이 아닌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이는 것보다 예수 이후에 그 운동이 멈추지 않을 것을 더 염려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을 사용하기로 원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신명기 21장 23절 말씀이었다. “예수를 십자가에 메달아 죽여야 제자들이 예수는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저주받아 죽은 자로 알고 그 가르침을 포기하리라...” 이것이 바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말씀 하시던 내용이었다. 복음서에 많은 구절이 있지만 간단하게 몇 구절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2:24)

종교지도자들의 의도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제자들에게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 “율법에 의하면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인데,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는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가 아닌가? 하나님의 저주받아 죽은 자가 어떻게 우리의 메시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제자들과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은 크게 낙심하고 흩어지게 되었다.

이때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신 것이다. 예수 부활은 우리 육체가 죽지 않고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개인적 소망을 주는 정도가 아니다. 예수 부활은 예수께서 자기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으신 분이 아니요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시고 대속제물로 죽으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받으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시키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내내 제자들에게 직접 간접적으로 예언하셨던 것이다.

예수 부활을 체험한 초대교회 제자들은 지나간 예수의 모든 메시지가 깨달아지기 시작했다. 예수는 단순히 우리를 로마의 속국에서 건져내줄 육신적 지도자가 아니라 자기 몸을 하나님 앞에 속죄제물로 드리심으로 전 인류를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건져내시고 하나님 자녀 만드시는 분으로 올바로 깨닫게 되었다. 이때부터 유대교의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그리스도가 의미적으로 확연하게 달라지게 된다.

2.3 그리스도는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과 연관된 칭호

하나님이 보내시겠다고 하신 그리스도는 한 민족을 구원하는 육신적 지도자가 아니라 바로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분이셨다. 그분은 아담의 원죄로 인해 부패한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류 곧 죄와 사망에 종노릇하며 사단의 공격과 참소를 당하는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 그분은 성도를 미래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 뿐만 아니라 지금 구원을 불완전하지만 미리 선취적으로 맛보게 하시고, 새로운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 아담으로 인해 타락한 세상을 부분적으로나마 다시 회복시키시는 분이었다. 그 후 재림의 주로 오셔서 모든 것을 완전 회복시키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체이셨다. 이것이 바로 구약 성경 전부가 예언하고 있던 그리스도의 본래적 의미였음을 초대교회가 구약성경 예언과 그 예언의 성취인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통해 확인하게 된 사실이었다.

십자가를 경험하고 예수 부활을 직접 체험한 초대교회는 그 이후부터 유대인들이 육신적으로 자신들에게만 사용했던 다윗의 자손, 이스라엘의 왕, 하나님의 아들, 성전, 아브라함 자손 등의 모든 용어를 영적으로 확대 해석하기 시작했다. 또 이것이 그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과 또 그 구절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본래적 의미라고 자신있게 확신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십자가로 거듭난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온 천하에 다니면서 이 사실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이었다.

구약성경을 읽으며 이스라엘의 육신적 회복을 기다리는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에서 예언한 그리스도는 육신적 지도자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 전에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린 그 예수가 하나님의 속죄제물로 보내신 진정한 그리스도라고 설명하고 예수 부활을 증거로 제시했다. 헬라지방 회당에서 율법을 읽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는 너희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는 바로 얼마 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시다. 바울은 성경을 가지고 이 내용을 밝히 증거한 것이다.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바울이 한 이 메시지는, 구약 성경에서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분이 그리스도인데, 그분이 바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란 것이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행17:2-3)

부활은 예수가 자기의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신 그리스도이신 결정적인 증거였기 때문에 제자들은 가는 곳 마다 예수의 십자가 대속을 증거하고 그 확고한 증거로 예수 부활을 제시하였다. 예수 부활은 실제적 사실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 증거를 반박하지 못했고 기독교 복음은 거침없이 확산되어져 나갔다. 신약성경의 서신서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죄 사함에 관한 구절들로 가득 차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하심이라.”(고후5:21)

다시 한 번 초대교회가 증거했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것처럼 말을 타고 정복자로 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육신적으로 구원해줄 유대인만을 위한 위대한 인간 영웅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는 죽임 당하신 어린양으로 와서 속죄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을 거부하여 죄와 사망에 매여 일생을 종노릇하는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심으로 다시 그들을 하나님 자녀로 삼으시는 분이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신 분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약성경과 바울서신의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반드시 십자가 죽으심 사건과 직접 연관되어 사용된다.

3.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의미

3.1 그리스도의 삼중직이란?

그리스도를 삼중직으로 설명하는 것은 칼빈에 의해 최종 정립된 개혁교회 신학의 귀중한 전통이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그리스도 삼중직에 대한 최초 언급은 AD 4세기경 유세비우스(260-340)에 의해서였고, 이것을 오늘의 삼중직으로 정립한 사람이 바로 16세기의 요한 칼빈이다. 개혁교회의 삼중직은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신 우리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의 그리스도를 예표한 선지자, 제사장, 왕과 비교하며 설명하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이 구약의 세 직분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박형룡박사의 조직신학을 잠시 참고해보자.

예수는 선지자이시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 위에 계신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자기의 선지적 사역을 땅 위에서 계속하신다. 그는 자기의 제자들을 떠나시기 전에 그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보내시어 그들의 기억력을 보조하시며 그들에게 새 진리를 가르치시며 그들을 모든 진리의 이해에서 인도하시며 그들을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에 의하여 풍부케 하신 것이었다.(요14:26,16:7-15).

예수는 제사장이시다. 하늘 위의 그리스도는 또한 제사장의 사역을 수행하신다. 그는 멜기세댁의 반차를 이은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부르짖으신 것은 그의 능동적 수난이 종결되었다는 의미의 표현이요, 그의 제사장적 사역에 그 종점에 도달하였다 하심이 아니었다. 그의 제사장적 사역은 하나님 우편에서 계속된다는 것을 성경이 말한다.

예수는 왕이시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위를 자주 그의 왕정과 연결시켜 말한다. 그는 그의 성령으로 그의 교회를 통치하고 보호하시며 그의 임명하신 직원들을 통하여 이것을 관리하신다. 천상만군은 그의 휘하에 있으니 천사들은 그의 사자들로서 성도들에게 그의 주시는 복을 전달하며 그들을 주위의 위험에 대항하여 보호하기로 항상 준비되어 있다. 그는 자연의 세력 위에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모든 권력 위에 권위를 행사하시어 통치하시기를 그가 최종 원수를 굴복시킬 때까지 하실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개혁교회의 삼중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나타내는데 주로, 계시의 전달자로서 선지자, 죄 사함을 위한 제사장, 모든 피조세계를 통치하시는 왕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2 한 가지 십자가 사건에 대한 세 가지 설명

그렇다면 초대교회가 증거했던 그리스도와 개혁교회가 설명하는 그리스도의 의미는 다른가? 초대교회는 예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육신적인 영웅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속죄제물 되신 그리스도라고 증거했다. 개혁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 선지자 제사장으로 설명한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초대교회가 증거하는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라는 복음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역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삼중직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다”라는 복음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속죄사역을 세 가지 직분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 착각하면 초대교회 제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라는 복음을 “예수가 왕, 선지자, 제사장이다”라고 믿었고, 그래서 “예수를 왕, 선지자, 제사장으로 증거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는 오해이다. 교회사에서 삼중직의 최초 등장은 4세기라고 했다. 그것도 불완전한 형태였다 오늘날 같은 완전한 형태는 16세기에 등장한다. 이는 1세기 초대교회에는 왕, 선지자, 제사장으로 설명하는 그리스도의 삼중직 설명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삼중직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역에 관한 설명이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에 관한 설명이 아니다.

따라서 개혁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한 가지 십자가 사건에 대한 세 가지 설명이다. 즉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가 지금 성령으로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신다(선지자),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가 지금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속죄사역을 이루시고 계신다(제사장).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가 지금 만왕의 왕이 되셔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인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온 우주를 통치하고 계신다(왕). 이 얼마나 정확하고 귀중한 설명인가? 십자가 사건이 먼저이다. 그리스도의 의미는 십자가 죄 사함이 본질이고 삼중직은 그 십자가 사건을 세 가지 방향으로 적용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삼중직의 의미이다.

3.3 십자가에서 속죄제물로 죽으신 예수가 바로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셨다.

초대교회 복음의 핵심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그리스도관과 크게 상반되는 것이었다. 로마에 속국되어 있는 이스라엘 나라를 정치적으로 회복시키지도 못하고, 대단한 혁명운동을 일으키지도 못했으며, 초라하게 죽으신 예수가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라는 주장은 유대인들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율법의 기록에 의하면 나무에 달려 죽은 저주받은 자인데 그가 어찌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관을 바꾸는 일을 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육신적 욕구를 채워주는 민족적 영웅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죄 사함으로 모든 인류를 하나님 백성되도록 만드시는 분이셨다. 그분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셨다.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초대교회와 유대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증거한 예수는 그리스도의 의미이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5:42)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행18:5)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행18:28)

<요약>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초대교회 복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신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다윗의 영광을 회복해줄 민족적 지도자를 원했지만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육신적 지도자가 아니셨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죄 문제를 해결하시러 십자가에서 속죄제물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셨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과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차이였다. 초대교회는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육신적 영웅의 개념을 바꾸고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증거했다.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던 그 그리스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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