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신조(7) - 우리는 영원히 산다 (요일5:11-15)

Author
GOSPEL323
Date
2022-04-2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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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7) - 우리는 영원히 산다. (요일5:11-15)

1.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

(1) 공동체는 거룩한 공회

- 우리는 성부 하나님의 선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구원을 얻었다. 이 구원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고 내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에 상실할 수 없고 탈락할 수 없다. 우리는 끝까지 인내하며 구원의 완성 부활에 이르게 된다.

-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으로 교회공동체가 탄생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보좌에 앉아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졌다. 모든 교회는 우열과 차별 없이 그리스도의 한 몸이며 각 지역교회는 소중하고 복되다. 주님은 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성령을 보내주셨다.

(2) 개인은 죄사함, 부활, 영생

-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으로 성도 자신이 하나님 백성이 된다. 죄인이 죄사함을 얻고 영광된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새하늘과 새땅에서 성삼위 하나님을 섬기며 영원히 산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이것이며 사도신경은 바로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2. 우리는 영원히 산다.

(1) 죄로 죽은 몸이 부활하여 영광된 모습으로 변한다.

① 불신악인은 사탄과 같이 추악한 모습으로 부활

- 마지막 부활의 때에, 모든 사람은 그 형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닮게 거룩하게 변화하고, 불신악인은 사탄을 닮게 추악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불신악인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거부했으므로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들은 죄로 타락된 노골적인 모습으로 부활하여 심판대 앞에 선다. 지금 살아있는 모든 사람/신자 불신자들 모두는 육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하나님께로부터 한시적인 생명을 부여받았다. 이 육체의 생명은 성도가 부활의 때에 받을 영원한 생명의 작은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생명 속에는 하나님 형상도 흔적으로 들어있다.

- 모든 사람은 육체의 생명과 하나님 형상은 동일하게 흔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불신자라도 그들은 성도와 별로 구분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기운과 하나님 형상이 흔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죽음은 불신자들을 덮고 있던 영원한 생명의 흔적이 없어짐을 뜻한다. 이로 인해 그들의 외모는 죄로 뒤덮인 본래 모습 그대로 드러난다. 그것은 추악한 사탄의 모습을 닮았다.

② 성도는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된 몸으로 부활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거하신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의로 거하신다. 십자가 죄사함과 부활의 성령이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 감싸고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시는 것이다. 죄인인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죄의 권세를 이겨낼 수 있는 이유이다. 십자가 죄사함과 부활생명 부활성령이 없다면 어떤 누구도 자기 속에 있는 죄를 벗고 없애고 씻어내고 이겨낼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죄사함 부활생명/성령으로만 가능하다.

-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에덴의 아담을 창조하실 때 거룩하고 의로운 모습이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더러운 죄를 씻어 죄가 없던 첫창조의 본래 모습을 얻게 한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범죄 하지 않은 아담과 하와가 출산했었을 거룩한 아담의 후손들이 된다. 여기에는 인종 신분 외모 능력의 우열이 없다. 모든 성도는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된다.

(2)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 = 세상은 다시 새에덴 동산이 된다.

① 새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음

- 마지막 심판 때, 이 세상은 완전히 없어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된다. 죄로 오염된 지금의 세상은 불에 타서 완전히 없어지고, 세상은 죄와 사망이 없는 첫 창조의 본래 모습을 회복된다. 새하늘과 새땅은 전혀 새로운 창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첫에덴과 본질이 동일한 새에덴이다. 새하늘과 새땅으로 변한 이 세상에 새예루살렘이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다.

-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성은 왕국과 나라를 의미한다. 성은 왕이 사는 곳이다. 왕은 성에 살면서 성과 주변의 영토를 통치한다. 에덴은 두 사람뿐이어서 그냥 동산으로 보이지만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였다. 하나님은 왕이시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후손들을 많이 낳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아지도록 명하셨다(생육,번성,충만) 하나님의 처음 목적이 하나님께서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나라임을 말씀하심이다. 바로 새예루살렘 성이다.

- 새예루살렘 성안에는 어떠한 구조물도 없다. 건물성전도 없다. 그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만 있을 뿐이다. 이는 새예루살렘 자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말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 성은 장광고가 모두 12000 스타디온으로 동일한 정육면체이다. 성경에는 장광고가 동일하게 지은 건물이 하나 있다. 성막/성전의 지성소이다. 또한 12000 스타디온은 12(하나님 백성 열두지파 완전수) x 1000(구약성경 최고 단위의 수)으로 실제 크기가 아닌 하나님 백성으로 가득찬 상징수이다. 실제수로 계산하면 12000 스타디온은 약 2300km/ 약1380mile 이다. 통상 지상에서 100km 높이를 우주의 여행의 경계 대기권으로 볼 때 새예루살렘 성은 그 높이가 대기권보다 약 23배가 높다. 이는 실제건물이 아닌 모든 하나님 백성을 의미하는 상징수임을 말한다.

② 새예루살렘 열두 문이 항상 열려 있음

-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은 에덴에 좌정하셨고, 아담은 에덴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동행했다. 범죄이후 성막/성전의 지성소가 바로 하나님이 좌정하시는 에덴을 의미한다. 죄인은 결코 직접 에덴에 들어갈 수 없다. 1년에 한번 속죄일(욤키프르)에 대제사장만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새예루살렘 성에는 열두문이 항상 열려있다.

- 새예루살렘 성은 사면으로 각각 세 개씩 열두 문이 있고 그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신구약 성도 하나님 백성들은 그 문을 통해 언제든지 하나님을 뵈옵는다. 하나님과 항상 동행하는 것이다. 항상 열려있는 열두 문은 성안과 성 밖의 구분을 없애준다. 새예루살렘 성문 밖도 역시 새예루살렘이다. 새하늘과 새땅 한가운데(?) 있는 새예루살렘 성은 온 세상이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살던 작은 에덴동산에서 신구약 성도 모두가 살고 있는 새에덴 동산이 되었음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피조세계로 들어가 정복하고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다스리라는 말씀이 성취 완성되었음을 말한다.

③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

- 생명수의 강이 새예루살렘 성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다. 그 강이 흐르는 곳마다 생명열매가 맺힌다. 에덴에서 발원한 네 강이 온 세상을 적시듯 새예루살렘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이 생명나무 열매를 맺고 만국을 소성시킨다. 이처럼 새예루살렘은 성막/성전의 지성소가 의미하던 에덴의 회복이고 완성임을 말해준다.

- 생명나무 열매는 생명을 하루씩 연장하는 열매가 아니다. 하나님과 바른관계 속에서 오는 모든 축복을 의미하는 열매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길 때 오는 행복과 아름다운 삶이다. 이 열매는 매일 늘 먹는 것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생명열매를 늘 먹고 있었다. 에덴의 생명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하나님과 함께하고 동행하고 연합된 생명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담 속에 성령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만 에덴에서 살 수 있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다. 하나님과 함께 함에서 오는 아름다운 축복을 얻는다.

-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에서는 에덴의 생명이 영원히 계속된다. 에덴의 생명은 아담이 범죄하지 않으면 주어지는 조건적이다. 새예루살렘 곧 새에덴의 생명은 영구적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성도는 영원한 부활의 몸으로 변했기에 죄를 지을 수 없다. 그는 다시 타락할 가능성이 영원히 없다. 그러므로 에덴의 생명이 영원히 계속된다. 영생이다.

- 왜 하나님은 생명의 의미를 과일에 담아주셨을까? 과일보다 고기가 실제 음식으로 더 적합한데... 천국에는 스테이크가 없다. 고기음식은 다른 짐승의 죽여야 한다. 고기음식은 사람이 짐승을 죽여 내장제거, 가죽벗김, 여러 토막냄... 등의 무서운 과정이 있다. 새하늘과 새땅에는 죽음이 없다. 짐승을 죽여 음식으로 먹지 않는다. 생명고기는 없는 이유다.

(3)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① 에덴의 아담처럼 늘 하나님을 섬기며 동행함

- 부활한 성도는 새하늘과 새땅에서 에덴의 아담처럼 살아간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감사하고 살아감이다. 부활한 성도는 에덴에서 아담이 가졌던 완전한 지혜, 거룩함, 아름다움을 회복완성 한다. 모든 피조물들은 부활한 성도에게 굴복한다. 호랑이 사자... 모든 맹수도 바다의 모든 물고기와 하늘의 새도 다 부활한 성도의 말에 순종한다. 성도는 그 피조물들을 잘 돌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 이것이 성도가 땅에서 왕노릇함이다. 마음대로 하인을 부리고 일을 시켜먹는 이세상의 왕노릇이 아니다.

② 새하늘과 새땅, 새에덴은 문화명령이 완성된 곳

- 새에덴에는 수고와 땀흘림이 없고 해산의 고통도 없다. 그곳은 죄로 인한 저주가 없다. 첫아담에게 주신 문화명령은 이미 성취되었다. 문화명령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이땅에서 만들었어야 할 하나님 나라였다. 문화명령은 사람이 에덴동산을 개발해 발전된 도시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에덴은 완전하다. 문화명령은 아담의 후손들이 생육, 번성, 충만해져서 작은 에덴동산 밖으로 나아가(정복) 온 세상이 에덴동산이 되도록 확장하는 것뿐이다(에덴의 아담으로서 다스림). 아담의 후손들이 에덴 밖으로 나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문화명령이다. 뭔가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미 완성해주셨다. 하나님 나라는 모자라거나 미완성이 아니다. 부활한 성도들이 들어가 뭔가 더 발전된 것으로 만들어 내야할 하나님 나라는 없다. 부활한 성도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 새에덴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경탄하며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첫창조때 에덴은 작은 동산이었다. 에덴동산 밖의 지역이 있었다. 그곳은 숲이 울창해서 길이 없는 원시림 정글지역이 아니다. 그곳도 에덴과 똑같은 완전한 환경이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피조물들을 다스릴 거룩한 사람이 살지 않았을 뿐이다. 범죄이전 에덴과 에덴 밖은 사람이 살고 있는 유무로 구분되었을 뿐이다.

- 마지막 심판후, 온 세상은 새하늘과 새땅으로 바뀐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수많은 성도들은 영광스런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새하늘과 새땅으로 들어간다. 부활한 성도들로 말미암아 온 세상은 새에덴이 된다. 작은 에덴동산이 아니다. 온 세계 모든 곳에 부활한 성도들이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 지역에 사는 짐승들은 사람에게 순종하고.... 이것이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과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목적이다. 하나님 나라이다. 이러한 영생의 삶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결론 및 적용> 사도신경을 마치며...

(1) 그리스도와 성령께 순종하는 삶

-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기도할 때, 우리의 열매가 아닌 그리스도의 성품, 성령의 열매가 맺혀진다. 포도열매는 포도나무가 주는 열매이다. 내 열매가 아니다. 내 인격과 삶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성령께 순종하고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있으면 가능하다. 그것만 유일한 방법이다.

- 요일5:14-15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2) 지역교회와 개인구원을 기억하자.

-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은 교회와 개인구원(죄사함 부활 영생)을 준다. 지역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자.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자. 교회생활이 없다면 우리 구원은 추상화 되고 황폐해 진다. 천국은 개인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다. 주님이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