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신조(3) - 예수님의 생애와 복음 (고전15:1-8)
Author
GOSPEL323
Date
2022-03-2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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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3) - 예수님의 생애와 복음 (고전15:1-8)
1. 십자가와 부활
(1)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 눅24:25-27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 고전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2. 예수님의 생애와 복음
(1)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① 성령잉태 -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 성경이 기록되기 전,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당신의 뜻과 계획을 알려 주셨다. 아담 노아부터, 아브라함과 족장들, 모세와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엘리야 엘리사... 등 선지자들은 하나님 나라 계시를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특히 이스라엘 멸망기 16명의 선지자들은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으로 새언약의 하나님 나라 나라를 출범시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했다.
- 이사야는 아람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베가의 동맹으로 두려워하는 남유다 아하스왕에게 하나님께서 두 나라를 멸하실 것임을 예언하고 징조를 말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잉태 동정녀 탄생은 후대 추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창시자의 우상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역사 처음부터 성령잉태를 계속 예언해주신 핵심 계시이다. 구약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아담타락 직후 여자의 후손으로(창3:15), 족장시대에는 유다지파의 실로로(창49:10), 이스라엘 멸망기에는 다윗의 아들(렘23:5), 베들레헴 탄생(미5:2) 동정녀 탄생(사7:14) 등으로 예언했다.
- 성령잉태 동정녀 탄생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성육신이시며 여자의 후손이심을 말한다(창3:15). 모든 사람은 아버지의 씨를 받아 태어남으로 남자의 후손이다. 여자의 후손이란 성삼위 하나님 로고스 성자께서 마리아의 태에 성육신하심이다. 성령잉태는 성령이 남자의 정자역할 함을 말함이 아니다. 예수님은 성령과 난자의 하이브리드(hybrid,잡종)가 아니다. 로마카톨릭은 예수님의 무죄하심을 핑계삼아 마리아의 무염시태(원죄없음)까지 주장한다. 마리아도 남자에 의해 태어났기에 원죄가 있으니 예수님이 원죄 있는 마리아에게 태어나시면 안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심은 처녀잉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육신이기 때문이다. 즉 성삼위 로고스 성자께서 마리아에게 성육신 하심이 성령잉태 동정녀 탄생의 의미다. 하나님의 성육신이다.
- 참고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예언은 이중성취가 된다. 우선,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말한 처녀가 후에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는데 그 아기, 임마누엘이 자라서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할 청소년이 될 무렵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멸망한다는 것이다. 이사야 8장에 아람과 북이스라엘 멸망에 관한 예언이 다시 한 번 반복됨을 볼 때, 이 처녀는 후에 이사야와 결혼한 여인이고 임마누엘 아기는 그녀가 낳은 마하살렐하스바스(사8:4)와 동일인물로 보이나 동일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 즉 이사야는 대략 20년 쯤 후에 아하스가 두려워하는 아람(BC732)과 북이스라엘(BC722)이 멸망될 것을 예언했고 그대로 성취되었다.
- 그러나 임마누엘 아기 탄생예언이 당시 아하스왕에게는 대적인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들렸겠지만, 실제는 두 나라의 멸망보다 남유다 다윗왕국에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임마누엘 아기의 탄생이 바로 그 증표이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당시 임마누엘로 지목된 아기를 후에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해서 이중예언 한다.
-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임마누엘 아기 예언(사7:14)은 그 아기의 이름을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사9:6) 예언하며, 그 아기에게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의 재능의 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임하신다(사11:2)고 예언한다. 이 아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② 십자가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 빌라도는 당시 로마 총독으로 십자가 처형 결정권자였다. 당시 십자가 사형은 로마 반역자들에게 내려지는 본보기 처형으로 로마 총독이 명한다. 대제사장과 바리세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종교법으로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신명기 21장 율법에 의거하여 나무에 달려 저주 받아 죽은 자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려고 로마 반역죄를 씌었고,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물리치지 못하고 십자가 사형언도를 내렸다. 예수님의 십자가 명패,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는 예수의 죽음이 로마를 반역했기 때문이란 의미로 적은 것이다.
- 십자가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구원하는 은혜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려고 성육신 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임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난 것이다. 이사야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목숨을 대속제물로 바침으로 백성이 구원을 얻는다고 예언했다.
- 사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신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③ 부활 -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우리 죄를 위한 십자가 대속을 확증한다. 부활이 없었다면 복음도 없다. 부활이 없다면 사람들은 예수의 하나님이심 곧 성육신과 십자가 대속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부활은 예수의 영 곧 성령의 강림을 가져왔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파송하신다.
-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시편을 인용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한다(행13장) 시편 16편은 다윗이 쓴 시이므로 “내(다윗)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다윗)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로 해석 된다. 그러나 바울의 설명처럼 다윗은 이미 죽었고 썩었으므로 음부에 버려지지 않고 썩지 않게 될 주의 거룩한 자는 다윗이 될 수 없다.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시다. 다윗은 성령충만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한 것이다. 이게 바울의 해석이다. 시편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감정을 표현한 성문서에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놀라운 예언서이다.
- 시16:8-10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 참고로, 영어번역 He descended into hell은 본래 “go to the grave” 의미를 AD 750년 로마카톨릭이 연옥과 림보교리를 만들기 위해 “go to hell”로 바꾼 것이다. 예수님이 지옥심판의 장소로 내려가셨느냐 아니냐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베드로 전서 3장에서 음부에 있는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 문제이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벧전3:19) 개혁교회는 예수께서 우리 대신 지옥심판 형벌까지 받으실 이유가 없고 지옥강하는 로마카톨릭의 연옥교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하고, 루터교는 예수께서 지옥에 내려가서 복음선포가 아닌 율법선포로 그들을 심판하셨다고 한다. 개신교는 지옥강하를 죽음이후 구원으로 결코 말하지 않는다. 로마카톨릭은 예수님이 지옥에 내려가서 죽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을 구원했다고 한다. 여기서 연옥과 림보 교리가 만들어졌다. 죽음이후에 구원은 없다. 개혁교회는 그 근거를 확실히 차단한다. 한국어 사도신조는 죽음이후의 구원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로 정확히 잘 번역하였다.
④ 승천 -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 하늘보좌 우편에 앉으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통치하심을 말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예수의 왕 되심을 지상 천년왕국의 왕으로 말한다. 그 주장에 따르면 7년 대환란과 유대인의 천년왕국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은 아직 왕위에 등극하지 않으셨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죄와 사탄,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버지께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받으셨고(단7장) 사탄은 하늘에서 내어 쫓겼다. 백성을 미혹하고 참소하던 사탄의 권세는 깨어졌다(계12장).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통치하시며 성령을 파송하사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 시110:1,4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⑤ 재림 -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때이다. 이사야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인에게 응답해 주시는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을 예언했다(사49:8). 바울은 지금이 그때라고 말한다(고후6:2) 바로 오늘이다. 또한 이사야는 성령강림의 때를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사61:2)이라 말한다. 신원이란 대적에 대한 보복(복수)이다(사6:10) 지금 복음을 받고 하나님께 굴복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임하지만, 복음을 거부하고 여전히 불순종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불신자는 사는 동안 심판을 받고 죽는 그 순간 지옥심판을 받는다. 그는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큰 탄식을 하게 될 것이다.
- 행1:9-11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계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
①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킴
-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와 부활 성령파송을 통해 거룩한 백성을 창조하신 둘째 아담이시다. 예수님은 첫 아담이 만들었어야 할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자기 피로 만드셨다. 죄인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어 성령내주를 얻는다. 성령은 아담의 본성을 가진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새사람이 되게 하신다. 마치 성령내주를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본성 아담의 DNA를 그리스도의 DNA로 바꾸심으로 표현해본다.
- 성령은 은혜의 영이시다(히10:29) 성령충만은 우리를 초능력자로 만들지 않고 거룩한 성품을 갖도록 변화시켜 주신다. 포도열매는 포도나무가 맺듯, 범죄이전 아담의 성품, 의와 거룩의 성품, 신의 성품(벧후1:4)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접붙여질 때 나온다. 예수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음이다.
② 우리로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게 함
- 구원은 죄인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며, 복음은 죄인을 거룩케 만드는 방법이다. 결국 우리 속에 있는 죄(본성)을 어떻게 이기고 의를 행하게 만드는가 문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가 에덴의 첫아담에게 주신 완전한 창조의 본래 성품으로 변화되어져 감이다. 구원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할 수 있는 곳에 들어감이 아니다. 구원은 내가 거룩한 성품의 사람으로 변화됨을 최종 목표로 한다.
-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은 여러 가지 내용이 있지만 간략하게 하나님과 교제 나눌 인격적 존재를 말한다. 교제는 상호 대등한 관계의 두 인격 사이에서 일어난다. 인격은 지정의를 가진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발성을 가지며 자기 행동에 책임이 있다. 영적세계의 수종자인 천사를 제외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인격은 피조세계에서 사람밖에 없다. 천사는 일을 하는 수종자며, 사람은 아들이다. 창조목적이 처음부터 다르다. 천사는 지정의를 가진 인격적 피조물이나 하나님의 형상은 아니다. 하나님은 천사와 교제를 나누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교제를 나누시는 하나님의 형상 자유인격은 사람이 유일하다.
<결론 및 적용>복음은 우리를 고난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1) 우리는 고난을 통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함을 배운다.
- 고난은 무엇이며 왜 성도에게는 고난이 그치지 않는가?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셨는데 왜 문제를 계속 주시는가? 구원 받았다면 고난이 없고 아무런 문제없어 행복해져야함이 아닌가? 구원을 오해한 것이다. 구원은 죄인의 소원을 성취함이 아니라, 죄인을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셔서 즉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지 않으셨을까? 해안길(비아마리스)로 가면 몇 주일 걸릴 거리를 시내반도를 빙 돌아가게 하시는가? 해안길로 갈 때 블레셋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바로처럼 그냥 치시면 안되나?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즉시 특별변화 시켜 거룩한 성품을 갖게 하지 않으시는가? 이는 오늘 성도의 고난과 성화의 관계를 알려준다.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자유인격으로 창조되었다. 인격의 특징은 자기 스스로 원해서 행동하는 자발성에 있고 자발성은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자유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믿는 순간 특별변화시킴은 사람의 자유와 인격의 자발성을 없애는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불순종할 수도 있는 자유인격이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감사하며 순종함이 아니라,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께 순종만 하도록 프로그렘 된 비인격 로봇으로 만드심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유와 자발성을 주신체 특별변화 시키실 수 있다. 그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사람의 인격과 자유를 중단시키지 않음으로 사람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영원토록 순종하게 만든다. 이것은 죄인과 부활한 성도가 동시에 살아야 하는 것으로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
- 사람이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는 변화는 철저히 자기 결정에 따라 자발적이어야 한다. 성령께서 도우시고 그리스도께서 연합해 주시지만 성령의 소욕을 따르거나 죄의 소욕을 따르는 결정과 행동은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 이것이 자유요 거기에서 자발성이 나온다. 노예에게는 고난이 없다. 자유가 없고 자발성이 없기 때문이다. 고난은 자유인에게 있다.
- 성도가 자발적으로 나(죄)를 죽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만드는 방법이 고난이다. 고난을 피할 수 있다면 사람은 결코 고난을 받지 않을 것이다. 성도는 고난을 피할 수 없기에 어쩔수 없이 당하며 결국 어쩔수 없이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굴복한다. 이 굴복은 점점 하나님께 자발적 순종함으로 바뀐다. 고난을 받아야 사람은 자기를 내려놓는다. 죄에서 벗어난다
- 히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2) 부활은 동일하나, 하나님은 성화에 힘쓴 성도를 기억하신다.
- 부활은 모든 성도에게 동일하며 성화의 정도에 따라 차별된 부활이 있지 않다. 성화에 힘쓴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가 똑같이 부활한 몸을 갖는다. 그렇다면 성도가 이 땅에서 죄와 싸우며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땅에서 나와 부활 후에 나는 동일인격이며 동일의식을 갖는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성화에 힘쓰며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종한 성도를 부활이후에도 동일한 인물로 아신다. 부활이후 모든 성도는 동일한 몸으로 변화하나 성화에 힘쓰며 하나님께 순종했던 이 땅에서 삶은 성도마다 다르다. 하나님은 그 삶을 기억하시며 각자에게 맞는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일을 맡겨주신다. 그것이 하늘상급이다.
1. 십자가와 부활
(1)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 눅24:25-27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 고전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2. 예수님의 생애와 복음
(1)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① 성령잉태 -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 성경이 기록되기 전,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당신의 뜻과 계획을 알려 주셨다. 아담 노아부터, 아브라함과 족장들, 모세와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엘리야 엘리사... 등 선지자들은 하나님 나라 계시를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특히 이스라엘 멸망기 16명의 선지자들은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으로 새언약의 하나님 나라 나라를 출범시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했다.
- 이사야는 아람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베가의 동맹으로 두려워하는 남유다 아하스왕에게 하나님께서 두 나라를 멸하실 것임을 예언하고 징조를 말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잉태 동정녀 탄생은 후대 추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창시자의 우상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역사 처음부터 성령잉태를 계속 예언해주신 핵심 계시이다. 구약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아담타락 직후 여자의 후손으로(창3:15), 족장시대에는 유다지파의 실로로(창49:10), 이스라엘 멸망기에는 다윗의 아들(렘23:5), 베들레헴 탄생(미5:2) 동정녀 탄생(사7:14) 등으로 예언했다.
- 성령잉태 동정녀 탄생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성육신이시며 여자의 후손이심을 말한다(창3:15). 모든 사람은 아버지의 씨를 받아 태어남으로 남자의 후손이다. 여자의 후손이란 성삼위 하나님 로고스 성자께서 마리아의 태에 성육신하심이다. 성령잉태는 성령이 남자의 정자역할 함을 말함이 아니다. 예수님은 성령과 난자의 하이브리드(hybrid,잡종)가 아니다. 로마카톨릭은 예수님의 무죄하심을 핑계삼아 마리아의 무염시태(원죄없음)까지 주장한다. 마리아도 남자에 의해 태어났기에 원죄가 있으니 예수님이 원죄 있는 마리아에게 태어나시면 안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심은 처녀잉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육신이기 때문이다. 즉 성삼위 로고스 성자께서 마리아에게 성육신 하심이 성령잉태 동정녀 탄생의 의미다. 하나님의 성육신이다.
- 참고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예언은 이중성취가 된다. 우선,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말한 처녀가 후에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는데 그 아기, 임마누엘이 자라서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할 청소년이 될 무렵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멸망한다는 것이다. 이사야 8장에 아람과 북이스라엘 멸망에 관한 예언이 다시 한 번 반복됨을 볼 때, 이 처녀는 후에 이사야와 결혼한 여인이고 임마누엘 아기는 그녀가 낳은 마하살렐하스바스(사8:4)와 동일인물로 보이나 동일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 즉 이사야는 대략 20년 쯤 후에 아하스가 두려워하는 아람(BC732)과 북이스라엘(BC722)이 멸망될 것을 예언했고 그대로 성취되었다.
- 그러나 임마누엘 아기 탄생예언이 당시 아하스왕에게는 대적인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들렸겠지만, 실제는 두 나라의 멸망보다 남유다 다윗왕국에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임마누엘 아기의 탄생이 바로 그 증표이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당시 임마누엘로 지목된 아기를 후에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해서 이중예언 한다.
-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임마누엘 아기 예언(사7:14)은 그 아기의 이름을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사9:6) 예언하며, 그 아기에게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의 재능의 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임하신다(사11:2)고 예언한다. 이 아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② 십자가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 빌라도는 당시 로마 총독으로 십자가 처형 결정권자였다. 당시 십자가 사형은 로마 반역자들에게 내려지는 본보기 처형으로 로마 총독이 명한다. 대제사장과 바리세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종교법으로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신명기 21장 율법에 의거하여 나무에 달려 저주 받아 죽은 자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려고 로마 반역죄를 씌었고,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물리치지 못하고 십자가 사형언도를 내렸다. 예수님의 십자가 명패,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는 예수의 죽음이 로마를 반역했기 때문이란 의미로 적은 것이다.
- 십자가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구원하는 은혜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려고 성육신 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임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난 것이다. 이사야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목숨을 대속제물로 바침으로 백성이 구원을 얻는다고 예언했다.
- 사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신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③ 부활 -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우리 죄를 위한 십자가 대속을 확증한다. 부활이 없었다면 복음도 없다. 부활이 없다면 사람들은 예수의 하나님이심 곧 성육신과 십자가 대속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부활은 예수의 영 곧 성령의 강림을 가져왔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파송하신다.
-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시편을 인용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한다(행13장) 시편 16편은 다윗이 쓴 시이므로 “내(다윗)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다윗)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로 해석 된다. 그러나 바울의 설명처럼 다윗은 이미 죽었고 썩었으므로 음부에 버려지지 않고 썩지 않게 될 주의 거룩한 자는 다윗이 될 수 없다.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시다. 다윗은 성령충만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한 것이다. 이게 바울의 해석이다. 시편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감정을 표현한 성문서에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놀라운 예언서이다.
- 시16:8-10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 참고로, 영어번역 He descended into hell은 본래 “go to the grave” 의미를 AD 750년 로마카톨릭이 연옥과 림보교리를 만들기 위해 “go to hell”로 바꾼 것이다. 예수님이 지옥심판의 장소로 내려가셨느냐 아니냐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베드로 전서 3장에서 음부에 있는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 문제이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벧전3:19) 개혁교회는 예수께서 우리 대신 지옥심판 형벌까지 받으실 이유가 없고 지옥강하는 로마카톨릭의 연옥교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하고, 루터교는 예수께서 지옥에 내려가서 복음선포가 아닌 율법선포로 그들을 심판하셨다고 한다. 개신교는 지옥강하를 죽음이후 구원으로 결코 말하지 않는다. 로마카톨릭은 예수님이 지옥에 내려가서 죽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을 구원했다고 한다. 여기서 연옥과 림보 교리가 만들어졌다. 죽음이후에 구원은 없다. 개혁교회는 그 근거를 확실히 차단한다. 한국어 사도신조는 죽음이후의 구원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로 정확히 잘 번역하였다.
④ 승천 -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 하늘보좌 우편에 앉으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통치하심을 말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예수의 왕 되심을 지상 천년왕국의 왕으로 말한다. 그 주장에 따르면 7년 대환란과 유대인의 천년왕국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은 아직 왕위에 등극하지 않으셨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죄와 사탄,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버지께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받으셨고(단7장) 사탄은 하늘에서 내어 쫓겼다. 백성을 미혹하고 참소하던 사탄의 권세는 깨어졌다(계12장).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통치하시며 성령을 파송하사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 시110:1,4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⑤ 재림 -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때이다. 이사야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인에게 응답해 주시는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을 예언했다(사49:8). 바울은 지금이 그때라고 말한다(고후6:2) 바로 오늘이다. 또한 이사야는 성령강림의 때를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사61:2)이라 말한다. 신원이란 대적에 대한 보복(복수)이다(사6:10) 지금 복음을 받고 하나님께 굴복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임하지만, 복음을 거부하고 여전히 불순종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불신자는 사는 동안 심판을 받고 죽는 그 순간 지옥심판을 받는다. 그는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큰 탄식을 하게 될 것이다.
- 행1:9-11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계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
①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킴
-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와 부활 성령파송을 통해 거룩한 백성을 창조하신 둘째 아담이시다. 예수님은 첫 아담이 만들었어야 할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자기 피로 만드셨다. 죄인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어 성령내주를 얻는다. 성령은 아담의 본성을 가진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새사람이 되게 하신다. 마치 성령내주를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본성 아담의 DNA를 그리스도의 DNA로 바꾸심으로 표현해본다.
- 성령은 은혜의 영이시다(히10:29) 성령충만은 우리를 초능력자로 만들지 않고 거룩한 성품을 갖도록 변화시켜 주신다. 포도열매는 포도나무가 맺듯, 범죄이전 아담의 성품, 의와 거룩의 성품, 신의 성품(벧후1:4)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접붙여질 때 나온다. 예수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음이다.
② 우리로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게 함
- 구원은 죄인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며, 복음은 죄인을 거룩케 만드는 방법이다. 결국 우리 속에 있는 죄(본성)을 어떻게 이기고 의를 행하게 만드는가 문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가 에덴의 첫아담에게 주신 완전한 창조의 본래 성품으로 변화되어져 감이다. 구원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할 수 있는 곳에 들어감이 아니다. 구원은 내가 거룩한 성품의 사람으로 변화됨을 최종 목표로 한다.
-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은 여러 가지 내용이 있지만 간략하게 하나님과 교제 나눌 인격적 존재를 말한다. 교제는 상호 대등한 관계의 두 인격 사이에서 일어난다. 인격은 지정의를 가진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발성을 가지며 자기 행동에 책임이 있다. 영적세계의 수종자인 천사를 제외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인격은 피조세계에서 사람밖에 없다. 천사는 일을 하는 수종자며, 사람은 아들이다. 창조목적이 처음부터 다르다. 천사는 지정의를 가진 인격적 피조물이나 하나님의 형상은 아니다. 하나님은 천사와 교제를 나누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교제를 나누시는 하나님의 형상 자유인격은 사람이 유일하다.
<결론 및 적용>복음은 우리를 고난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1) 우리는 고난을 통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함을 배운다.
- 고난은 무엇이며 왜 성도에게는 고난이 그치지 않는가?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셨는데 왜 문제를 계속 주시는가? 구원 받았다면 고난이 없고 아무런 문제없어 행복해져야함이 아닌가? 구원을 오해한 것이다. 구원은 죄인의 소원을 성취함이 아니라, 죄인을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셔서 즉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지 않으셨을까? 해안길(비아마리스)로 가면 몇 주일 걸릴 거리를 시내반도를 빙 돌아가게 하시는가? 해안길로 갈 때 블레셋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바로처럼 그냥 치시면 안되나?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즉시 특별변화 시켜 거룩한 성품을 갖게 하지 않으시는가? 이는 오늘 성도의 고난과 성화의 관계를 알려준다.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자유인격으로 창조되었다. 인격의 특징은 자기 스스로 원해서 행동하는 자발성에 있고 자발성은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자유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믿는 순간 특별변화시킴은 사람의 자유와 인격의 자발성을 없애는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불순종할 수도 있는 자유인격이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감사하며 순종함이 아니라,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께 순종만 하도록 프로그렘 된 비인격 로봇으로 만드심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유와 자발성을 주신체 특별변화 시키실 수 있다. 그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사람의 인격과 자유를 중단시키지 않음으로 사람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영원토록 순종하게 만든다. 이것은 죄인과 부활한 성도가 동시에 살아야 하는 것으로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
- 사람이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는 변화는 철저히 자기 결정에 따라 자발적이어야 한다. 성령께서 도우시고 그리스도께서 연합해 주시지만 성령의 소욕을 따르거나 죄의 소욕을 따르는 결정과 행동은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 이것이 자유요 거기에서 자발성이 나온다. 노예에게는 고난이 없다. 자유가 없고 자발성이 없기 때문이다. 고난은 자유인에게 있다.
- 성도가 자발적으로 나(죄)를 죽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만드는 방법이 고난이다. 고난을 피할 수 있다면 사람은 결코 고난을 받지 않을 것이다. 성도는 고난을 피할 수 없기에 어쩔수 없이 당하며 결국 어쩔수 없이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굴복한다. 이 굴복은 점점 하나님께 자발적 순종함으로 바뀐다. 고난을 받아야 사람은 자기를 내려놓는다. 죄에서 벗어난다
- 히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2) 부활은 동일하나, 하나님은 성화에 힘쓴 성도를 기억하신다.
- 부활은 모든 성도에게 동일하며 성화의 정도에 따라 차별된 부활이 있지 않다. 성화에 힘쓴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가 똑같이 부활한 몸을 갖는다. 그렇다면 성도가 이 땅에서 죄와 싸우며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땅에서 나와 부활 후에 나는 동일인격이며 동일의식을 갖는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성화에 힘쓰며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종한 성도를 부활이후에도 동일한 인물로 아신다. 부활이후 모든 성도는 동일한 몸으로 변화하나 성화에 힘쓰며 하나님께 순종했던 이 땅에서 삶은 성도마다 다르다. 하나님은 그 삶을 기억하시며 각자에게 맞는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일을 맡겨주신다. 그것이 하늘상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