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교회(4) - 다윗의 장막과 에덴의 시작 (행13:20-23, 삼하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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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2-02-0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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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4) - 다윗의 장막과 에덴의 시작 (13:20-23, 삼하7:11-16)

1. 성막은 에덴의 모형

(1) 언약궤 – 하나님의 발등상

- 발등상은 왕좌 앞에 있는 발판을 말한다. 왕은 보좌에 앉을 때 그의 발을 발등상에 놓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발등상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며 하나님께서 좌정하신 곳이란 의미다. 언약궤가 바로 그렇다(대상28:2) 하나님은 언약궤 위 속죄소/시은좌에 좌정하셨다.

(2) 지성소 – 에덴의 모형

- 지성소는 황금으로 덮인 성막널판(판넬)이 둘러싸고 성소휘장에는 (화염검을 든) 게루빔 천사들이 수놓아져 있다. 이는 지성소가 에덴동산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막은 에덴의 형이다. 성막뜰 번제단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고, 그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 지성소 언약궤(속죄소)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 속죄의 피를 보시고 백성의 죄를 정결케 하신다.

(3) 내성소 – 예배의 장소

- 내성소는 제사장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간이다. 제사장은 매일 두 번씩, 아침 저녁로 들어와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떡상의 진설병을 확인하며, 분향단에서 향을 피운다. 바로 예배다. 에덴에서 내성소와 지성소는 구분이 없지만, 사람의 범죄로 하나님을 뵈올 수 없어 성소휘장으로 나뉘게 되었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성소휘장을 찢으셨다. 우리는 휘장이 없는 지성소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린다. 에덴에서 우리의 삶이다. 에덴에서 우리의 삶 모습이다. 주일예배는 에덴에서 우리의 삶을 축소한 것이다.

2. 다윗의 장막과 에덴의 시작

(1) 하나님의 뜻

① 이스라엘 - 하나님 나라 에덴의 모형

-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하나셨다. 죄에 빠진 아담의 후손들을 구원하여 에덴과 사람을 만드신 창조목적(창조경륜)을 다시 회복 완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뜻을 여자의 후손과 가죽옷으로 보여주셨고, 노아에게는 방주로, 아브라함에게는 자손과 가나안 땅으로, 모세에게는 성막과 율법으로 나타내주셨다. 모두 하나님 나라 에덴과 그 나라의 왕이신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 행13:22-23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② 다윗은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고 예루살렘을 수도를 정함

- 이스라엘은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님 나라 에덴의 모형이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고 백성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거룩하게 살아가는 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에덴의 모형으로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보내시려 하셨다. 다윗은 그 일을 위해 쓰임 받은 사람이다. 다윗은 십수년간 사울왕의 핍박으로 도피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다가 사울왕이 불레셋에게 패해 길보아산에서 죽자 헤브론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된다. 이후 다윗은 블레셋과 암몬을 쳐서 몰아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애굽 하수(엘아리쉬)에서 유브라데 까지를 이스라엘 영토로 확정한다.

-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댁의 성으로 살렘(창14장)으로 불리며 성경에 최초로 등장한다. 예루살렘은 이름 자체가 샬롬의 터 곧 에덴이란 의미다. 예루살렘의 기혼샘은 에덴에서 발원한 강의 이름을 따라 지었다. 예루살렘을 에덴으로 동일시하는 의도가 분명하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실제 에덴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실제 에덴임을 증명할 수도 없거니와 신학적으로는 완전히 틀렸다. 결코 주장해서는 안된다. 랍비 유대교 신학이다. 예루살렘은 신학적 의미의 에덴이다. 에덴의 동쪽이 바벨론이면 바벨론 서쪽은 예루살렘이다. 성경전체를 볼 때 예루살렘은 에덴을 상징함이 너무도 분명하다.

-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기도 했지만 전략적으로 탁월한 결정이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는 언제나 강력한 두 지파 곧 에브라임지파와 유다지파의 주도권 경쟁이 있었다. 이는 야곱의 열두 아들 축복에서 시작되었다. 야곱은 유다지파를 이스라엘 왕으로 축복하고(창48:10),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장자로 축복한다(대상5:2) 야곱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 그대로 축복 했지만, 유다지파 후손들과 에브라임(요셉)지파 후손들은 그 축복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여 서로 우월성을 주장하며 이스라엘 역사 내내 헤게모니 경쟁을 한다.

- 가나안 중앙산지는 남쪽의 유다산지와 북쪽의 에브라임(사마리아)산지로 구성된다. 두 산지 사이 조금 낮은 평지에 베냐민지파가 있고 지중해 해안 쪽으로 단지파가 위치한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유다산지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다스렸다. 헤브론은 유다산지의 중심도시로 가나안 중앙산지 남쪽 끝에 해당한다. 에브라임산지의 중심도시는 세겜으로 가나안 중앙산지의 북쪽 끝(?)이다. 다윗은 여부스 족속의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는다.

- 예루살렘은 가나안 중안산지의 정 중앙에 위치하며 유다산지나 에브라임산지가 아닌 사울왕의 베나민 지파 땅이다. 더욱이 예루살렘은 여호수아 가나안 전쟁 때부터 다윗 때까지 약 4백여년간 정복되지 않던 난공불락(?)의 요새이며, 가나안 중앙산지에게 가장 많은 물이 솟아나는 기혼샘이 있는 곳이다. 참고로 2017년 현재 기혼샘은 건기에 월 4천만 리터, 하루평균 133만 리터를 솟아내며 이는 하루에 만 명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 Joseph Kim PhD RPh

- 다윗이 헤브론을 포기하고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것은 에브라임지파를 배려하며, 베냐민지파를 끌어안는 탁월한 결정이었다. 더욱이 예루살렘은 지금까지 베냐민지파가 정복하지도 못해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던 성이었다. 다윗은 가나안 중앙산지의 중심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함으로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하나의 단일왕국을 이루도록 기틀을 마련했다.

③ 시온성에 다윗의 장막이 서기 전까지

- 출애굽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성막을 중앙에 두고 빙 둘러서 진을 치고 숙영하며 살았다. 성막(언약궤)는 언제나 이스라엘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광야 40년 내내 율법과 성막규례들을 지키며 성막중심으로 살아갔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 후 상황은 달라졌다. 여호수아가 죽고 사사시대를 거치며 사무엘이 등장하기까지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점점 잊혀져갔다. 성막을 파괴한 것은 엘리 대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였다.

- 엘리 대제사장은 늙고 눈이 어두웠으며 영적으로 무기력했고 그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될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매우 불량한 자였다. 그들은 여호와께 드려지는 제물을 탈취하고, 성막에서 수종 드는 여인을 겁탈했다. 하나님은 엘리 대제사장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두 아들의 악행을 경고하셨으나 엘리는 자기 두 아들을 그대로 둔다. 하나님은 두 아들과 엘리 대제사장을 한날에 죽이시고 그 집의 죄악은 영원히 속함을 받지 못하게 하셨다. 이 예언은 솔로몬 즉위시 아도니아 반란에 가담한 대제사장 아비아달을 다윗이 파면시키고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세움으로 성취된다(왕상2:27,35)

- 엘리 가문의 가장 큰 죄악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아벡 전쟁터로 가져나온 것이다. 엘리의 두 아들이 지성소에 들어가 언약궤를 내어오는데도 죽지 않음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모세의 성막은 사명을 다하게 된다. 이후 언약궤는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 시온성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성막이 아닌 다른 곳(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 가드사람 오벳에돔의 집) 등에서 약 70여년 동안 홀로 모셔지게 된다. 언약궤가 약 1백년 가까이 방치되어 개인 집에 보관되어 있음이 상상이 되는가? 사울은 왕이 되어 40년을 통치하는 동안 여호와의 언약궤에 대해서 전혀 관심도 없었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보내심은 하나님 나라 에덴을 회복할 모형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음행하는 이방민족들과 달리,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거룩한 나라창조경륜의 회복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 가나안 사람들을 내어 쫓지도 못하고 그들의 음행과 우상숭배에 동화되어 살아간다. 성막과 제사 절기, 율법규례들은 점점 없어지고 언약궤는 개인집에 보관되어 있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할 사울왕은 왕권을 유지할 생각만 하고 악신에 들려 엉뚱한 일만 벌인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다윗은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다. 다윗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

(2) 언약궤를 예루살렘 시온성 다윗의 장막으로 모셔옴

① 다윗의 유일한 소원 – 하나님의 나라 / 하나님의 성전

- 다윗은 일생동안 하나님을 앙망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자기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왕보다도 하나님의 종임을 고백했다. 다윗은 정말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구하고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것이다.

- 다윗에게 성전은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는 핵심이다. 성전은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니었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 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전의 문지기가 되는 것을 원했다. 다윗에게 성전은 하나님 나라 그 자체였다.

- 성막이 소실되고 언약궤가 개인 집에 방치(?) 되어 있는 동안, 다윗은 항상 여호와의 언약궤를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윗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는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내부로는 열두지파를 통합해야 했고 외부로는 싸워야할 많은 적들이 있었다. 다윗은 많은 전쟁을 통해 적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안정시켜 하나님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후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다. 그리고 꿈에도 소원인 여호와의 언약궤를 예루살렘 시온성 다윗의 장막으로 모셔온다.

- 다윗의 장막은 다윗이 만든 성막 곧 언약궤를 모시는 장소였다(삼하6:17,대상15:1) 다윗은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약 40여년 동안, 예루살렘 시온성에 다윗의 장막을 세워 언약궤를 모시고 율법과 성막규례대로 대제사장을 세우며 찬양대를 조직하고 모든 예배제도를 정비한다.

- 시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 시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 시122: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② 다윗의 후손이 성전을 세우리라(삼하7장)

- 다윗은 성전을 정말 짓고 싶었고, 성전을 지을 모든 힘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하게 하신다. 왜 그러셨는가? 다윗은 전쟁으로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합당치 못하다 하셨고 그 내용은 두 가지로 이해된다.

- 첫째, 사람들이 다윗을 신성시 하지 못하도록 하심이다. 다윗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견줄 이스라엘 나라의 시조이다. 그는 뿔뿔이 흩어진 열두지파를 하나로 통합하고, 블레셋과 주변 이방민족들을 완전히 격퇴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세웠다. 다윗왕때 이스라엘은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다. 가장 무서웠던 블레셋은 완전히 멸절됐고 남쪽의 애굽과 북쪽 메소포타미아의 앗수르도 감히 이스라엘을 침범하지 못했다. 다윗은 당시 고대근동에서 왕 중의 왕으로 최고의 지배자며 이스라엘의 전설이었다. 이런 다윗이 예루살렘 성전까지 지으면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이 된다. 이는 다윗 자신에게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위험하다.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에 들어가 땅까지 분배해주는 것과 같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세를 우상화하는데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나님께서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하게 하신 이유다.

- 둘째, 더 중요한 것은, 성전은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짓는다는 예언이다. 이것이 가장 핵심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성전은 모세의 성막처럼 하나님 나라 에덴을 예표하는 구속사적 모형이다. 이 성전을 다윗이 건축하지 않고 다윗의 후손이 건축한다. 다윗의 후손은 가깝게는 솔로몬이지만 그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사 하나님의 성전 삼으신다. 이것이 나단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주신 예루살렘 성전건축의 의미다.

③ 성전 건축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는 다윗

-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성전건축을 준비한다. 밧세바 범죄로 다윗은 참회하며 하나님께 눈물의 시간을 보내지만 하나님은 용서하셨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간 탄식하며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려고 몸부림칠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여디디야로 부르시며 성전 지을 자로 지명하신다. 그제야 비로소 다윗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구원의 기쁨을 회복한다. 그후부터 다윗은 솔로몬이 성전 지을 수 있도록 그 설계도면 부터 건축 자제까지 일체의 모든 것을 넉넉히 준비한다(대상28:19) 솔로몬은 다윗이 준비한 것을 따라 그대로 건축한 것 밖에 없다. 성전은 다윗이 지시대로 그대로 건축되었다. 솔로몬 성전이 아니라 다윗 성전이다.

<결론 및 적용>에덴을 회복완성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1) 다윗의 일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 삶이었다.

- 다윗은 BC 1000년에 살았던 인물이다. 우리나라 고조선에 해당한다. 그 시대 우리나라 역사기록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성경은 다윗이라는 이새의 막내아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는 놀라운 역사를 이처럼 생생하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안에는 인류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 다윗의 생애는 인생역전 스토리가 아니다. 에덴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다. 그는 장자중심의 씨족사회에서 여덟 형제의 막내로 태어났고, 하는 일은 양치기 목동에 불과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사용하셨다. 다윗의 장막은 하나님 나라 에덴을 향한 다윗의 마음을 보여준다.

(2) 신약교회로 모인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도록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