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성화(2)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 (엡2:10, 엡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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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1-11-28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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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2)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 (엡2:10, 엡4:25-32)
1.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을 늦추시는 이유.
(1) 노아언약 - 마지막 심판까지 지구와 죄인의 생명을 보존시키며 죄인들을 구원
- 노아홍수는 전지구를 물로 덮고 심판하신 역사적 사건이다. 홍수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죄는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분명히 보여주셨다. 노아는 홍수심판을 체험하고 홍수에서 구원받은 첫조상이다. 모든 인류는 죄는 반드시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복음을 노아와 함께 역사 속에서 모두 받았다.
- 홍수이후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다. 노아언약은 생명보존의 언약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마지막 심판 때까지 죄인(인류)과 지구를 그대로 두시며 그들(죄인들) 가운데서 하나님 백성 구원을 베푸시겠다고 언약하셨다. 지구보존과 인류역사의 지속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범죄가 아무리 관영해도 세상은 변함없이 지속되며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마지막 심판을 안 하시는 이유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 창8:28-29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 창9:9-11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2)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을 그대로 두신다.
- 소돔심판은 마지막 심판의 방식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신다 언약하셨다. 인류는 물이 아닌 불로서 마지막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베드로는 노아언약을 인용하며 분명히 한다. 지금 세상에 죄가 가득차고 점점 더 타락해도 지구는 존속되고 인류역사는 계속되고 있음은 하나님은 인류가 회개하여 구원 얻기를 기다리시며 오래참고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복음을 주시고 구원초청을 하고 계신다. 그 기한이 다되면 세상은 소돔성과 같이 불로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 벧후3:3-7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 벧후3:8-10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 성도에게 구원의 현재(=신앙생활)을 주셨다.
-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세상을 심판하고 새하늘과 새땅을 주지 않으시기 때문에, 모든 성도는 구원받고 세상을 살아가며 신앙생활을 해나가게 된다. 우리는 먼저 구원받았지만 아직 다른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지금 그들을 구원하고 계신다.
- 그렇다면 먼저 구원받은 성도는 부활하기 전까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이 땅에 실현된 하나님 나라, 교회로 모이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감이다. 그 방법은 성령내주, 하나님의 의(칭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 엡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골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 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라.
① 성령께서 주시는 선함, 의로움, 거룩함, 온전함, 완전함...
-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하면, 첫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의 형상이다. 아담은 에덴에서 완전하고 온전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아담은 무흠무죄 백지상태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는 완전하고 온전하게 창조되었다. 그의 완전함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같다. 단 그의 완전함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유지된다는 조건적이었음만 다르다. 이처럼 구원받은 성도가 선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온전하고 완전하게 행하는 것은 본래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 형상/하나님의 의를 회복한 것이다.
-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의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아담은 에덴에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성령(루아흐,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넣으심으로 아담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존재가 되었다. 성령이 바로 사람을 영이신 하나님과 연합되게 만드신다. 마치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성부하나님과 완전히 연합되어 있으시듯 말이다. 물론 예수님과 성령님과 하나님의 연합은 피조물과 다른 성삼위일체의 신적연합이다. 그러나 몸(body)를 가진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부하나님과 24시간 연합되는 방식은 첫아담에게 주셨던 창조원리를 그대로 따름이다. 피조물인 우리를 위해 둘째아담으로서 친히 그 방식 똑같이 해주신 것이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은 성령내주,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칭의)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자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성령의 거룩함, 하나님의 의로움,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이것은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성령께서 거하시면 자연스럽게 되고, 성령께서 거하지 않으시면 될 수 없다. 그가 아무리 선한 행위를 열심히 해도 성령내주가 없으면 그는 여전히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선행하는 종교인이다. 선행이 죄인을 의인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죄용서 받은 죄인이 성령내주, 칭의,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의인되어 선행을 하게 된다.
-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② 선한 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
- 독거노인을 돕고 생활이 힘든 사람을 위해 돈을 기부하는 행위는 선한 일이다. 이 행위는 악한 일이 될 수 없다. 불교신자건, 무슬림이건 무신론자건 심지어 무당이 했다 할지라도 이런 행위는 분명 선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 선행을 하기 때문에 의인이 아니라 의인이기 때문에 선행을 한다. 똑같이 선행이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얻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선행을 포도열매로 보신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다. 불신자든 신자든 선행이 구원을 가져오지 못한다. 죄인은 선한 일을 한다고 의인 되지 않는다. 예수 믿어 죄용서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야 의인이 된다.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 얻는 결과로 맺는 선한 일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 우리는 포도나무 원줄기에 붙어야 열매를 맺고 살아있도록 창조된 가지다. 어느 날 가지가 포도나무에게 분리선언을 했다. 더 이상 포도나무가 주는 생기로 살아가는 가지가 되기 싫다고 스스로 자신을 포도나무에서 잘라버렸다. 이제부터 자신은 포도나무와 주종관계가 아니며 주인이라고 스스로 선언했다. 그 순간부터 가지는 말라지기 시작했다. 포도열매를 맺던 가지가 포도가 아닌 먹지 못할 악한 열매를 맺는다. 결국 말라죽고 불에 던져진다.
-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③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우리는 지금 불신자들과 똑같이 죄 가운데 지내며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사단을 따라갔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들도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를 살리셨다.
- 우리는 복음을 믿어 하나님께 죄용서 받고 의롭다하심(칭의)을 얻은 자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올린 자들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의로움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우리의 실제가 되었다. 주의할 점은 성령내주와 하나님의 칭의, 그리스도 연합은 물질이 아닌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내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것이다. 성령과 칭의는 내 능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주입된 의가 아니라 전가된 의다.
- 성령내주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이론이 아니며 실제다. 죄인인 우리가 선행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이론과 삶이 다르지 않다. 이것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행위구원을 말하는 다른 종교들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성도들이 십자가의 능력을 이론으로만 알고, 실제 삶에서 성령의 힘이 아닌 자기 힘으로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하려 하니 힘들고 어려운 종교생활이 된다. 모든 상황에서 복음을 자기에서 선포하라.
-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시 포도나무에 접붙여지게 되었다. 우리에게 포도열매가 맺혀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열매요, 죄인을 거룩케 하시는 성령의 열매요, 본래 아담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형상/하나님의 의가 회복된 열매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열매를 맺을 때 영광 받으신다. 타락한 죄인에게 다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하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가?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이어야 한다. 성도의 선한 일은 그의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고, 하나님의 의로움과 그리스도와 연합됨을 입증하고 확증한다.
- 엡2:1-7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2)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세우신 교회를 섬기라.
① 교회의 표징
- 모든 성도의 최종목표는 교회다.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를 지역교회로 모으셨다. 구원받은 성도는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다가 주님께로 간다.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함을 먼저 생각하라. 나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생각하라.
-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표징을 말씀, 성례, 권징으로 보았다. 이는 16세기 로마카톨릭에서 개혁하던 시대의 표지다. 오늘날 개신교 안에서 교회의 표징은 무엇일까? 모두 성경으로 설교하고, 성례예식하고, 권징은 거의 사라졌지만... 어느 교회가 참된 교회이고 어느 교회는 아닌가? 현재 개신교 안에서 성찬세례예식 여부로 참된 교회와 거짓교회를 구분할 수 있을까? 아니다. 말씀 곧 복음적 설교만이 참된 교회여부를 결정한다.
②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내 주장하지 말자. 주의 몸 된 교회가 소중하기에 성도를 섬기며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참고 사랑하며 서로 용납하자.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나타나기를 기도하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엡4:1-4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3) 의와 진리의 거룩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① 거짓은 버리고,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하라.
- 모든 소문은 말에서 시작되고, 말은 사람의 주관적 해석이 담겨있다. 사람이 그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느끼는가에 따라 말이 만들어지고 전달되고 그 말은 다른 사람의 해석이 담겨 엉뚱한 내용으로 전달되게 된다. 교회 안에는 왜 덕이 되지 않는 말들이 있는가? 사람들이 자꾸 자기 해석을 넣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민사회는 특히 더 그렇다.
- 의도적인 거짓말은 쉽지 않다. 그것은 십계명에 언급된 큰 죄요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사실확인을 안한 채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데 있다. 이 말이 그 당사자에게는 피해가 되도 자기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닌 거짓이었지만 그는 책임지지 않는다. 의도적인 거짓말이 아니지만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이웃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일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우리는 이웃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부정적인 소문은 전달하지 않고 내게서 끝내는 것이 선한 일이다. 내가 확인한 사실 외에 말하지 않고, 그 사실도 부정적인 것이라면 말하지 않는 것이 선한 일이다.
- 엡4:25,29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② 내게 일어나는 분노/감정을 잘 다스리라.
- 분노는 사람의 기본감정이므로 피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때때로 화를 내고 그 감정에 지배를 받는다. 문제는 이 분노감정이 사탄이 틈타는 아주 큰 통로가 된다는 점이다. 분노하지 말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하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한다.
- 사람의 의지는 이성이 아닌 감정에 지배를 받는다. 사람은 이성으로 판단하지만 그 판단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행동여부를 결정하는 감정이다. 분노의 감정은 모든 것을 마비시킨다. 사춘기 아이들이 이유 없이 감정적이듯, 사추기(갱년기) 중년은 남성, 여성 모두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다. 분노감정은 사탄이 틈타는 큰 통로임을 명심하자.
- 분노는 자기중심성이 누군가에 의해 침해받을 때 발생된다. 분노는 불과 같아서 생각할수록 점점 더 타오른다. 분노는 모든 합리적 생각을 중지시키고 부정적 감정에 따라 부정적인 행동하게 만든다. 죄인에게 이런 감정은 막을 수 없으나 그 감정을 흔들며 사탄이 역사함이 문제다. 분노가 생길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선한 일이란 무엇일까? 큰 소리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보혈 찬송을 부르라. 여러 번 계속 찬송하라. 내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하가. 분노감정이 어느덧 사라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엡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③ 도적질하지 말고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 십계명은 하나님 나라의 토대가 되는 생활헌법(?)이다. 이웃의 물건을 도적질 말라는 것은 십계명 중 8계명이며, 이웃에게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것은 9계명이다. 도적질은 제 손으로 수고로이 일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려하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고 일확천금 한탕주의 사상이 도둑질과 도박에 중독되게 만든다. 성도는 땀 흘려 일하고 정당하게 소득을 취해야 한다.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고 돈을 벌려는 사람이 불한당(도적)이다. 주식도 건전하게 투자해야지 투기하면 안된다. 어려서부터 불로소득은 도적질이라 배워야 한다.
- 엡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결론 및 적용>나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1) 성령내주,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실제다.
(2) 내 안에서 그리스도/성령께서 충만히 역사하시도록...
1.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을 늦추시는 이유.
(1) 노아언약 - 마지막 심판까지 지구와 죄인의 생명을 보존시키며 죄인들을 구원
- 노아홍수는 전지구를 물로 덮고 심판하신 역사적 사건이다. 홍수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죄는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분명히 보여주셨다. 노아는 홍수심판을 체험하고 홍수에서 구원받은 첫조상이다. 모든 인류는 죄는 반드시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복음을 노아와 함께 역사 속에서 모두 받았다.
- 홍수이후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다. 노아언약은 생명보존의 언약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마지막 심판 때까지 죄인(인류)과 지구를 그대로 두시며 그들(죄인들) 가운데서 하나님 백성 구원을 베푸시겠다고 언약하셨다. 지구보존과 인류역사의 지속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범죄가 아무리 관영해도 세상은 변함없이 지속되며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마지막 심판을 안 하시는 이유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 창8:28-29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 창9:9-11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2)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을 그대로 두신다.
- 소돔심판은 마지막 심판의 방식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신다 언약하셨다. 인류는 물이 아닌 불로서 마지막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베드로는 노아언약을 인용하며 분명히 한다. 지금 세상에 죄가 가득차고 점점 더 타락해도 지구는 존속되고 인류역사는 계속되고 있음은 하나님은 인류가 회개하여 구원 얻기를 기다리시며 오래참고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복음을 주시고 구원초청을 하고 계신다. 그 기한이 다되면 세상은 소돔성과 같이 불로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 벧후3:3-7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 벧후3:8-10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 성도에게 구원의 현재(=신앙생활)을 주셨다.
-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세상을 심판하고 새하늘과 새땅을 주지 않으시기 때문에, 모든 성도는 구원받고 세상을 살아가며 신앙생활을 해나가게 된다. 우리는 먼저 구원받았지만 아직 다른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지금 그들을 구원하고 계신다.
- 그렇다면 먼저 구원받은 성도는 부활하기 전까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이 땅에 실현된 하나님 나라, 교회로 모이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감이다. 그 방법은 성령내주, 하나님의 의(칭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 엡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골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 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라.
① 성령께서 주시는 선함, 의로움, 거룩함, 온전함, 완전함...
-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하면, 첫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의 형상이다. 아담은 에덴에서 완전하고 온전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아담은 무흠무죄 백지상태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는 완전하고 온전하게 창조되었다. 그의 완전함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같다. 단 그의 완전함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유지된다는 조건적이었음만 다르다. 이처럼 구원받은 성도가 선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온전하고 완전하게 행하는 것은 본래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 형상/하나님의 의를 회복한 것이다.
-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의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아담은 에덴에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성령(루아흐,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넣으심으로 아담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존재가 되었다. 성령이 바로 사람을 영이신 하나님과 연합되게 만드신다. 마치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성부하나님과 완전히 연합되어 있으시듯 말이다. 물론 예수님과 성령님과 하나님의 연합은 피조물과 다른 성삼위일체의 신적연합이다. 그러나 몸(body)를 가진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부하나님과 24시간 연합되는 방식은 첫아담에게 주셨던 창조원리를 그대로 따름이다. 피조물인 우리를 위해 둘째아담으로서 친히 그 방식 똑같이 해주신 것이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은 성령내주,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칭의)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자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성령의 거룩함, 하나님의 의로움,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이것은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성령께서 거하시면 자연스럽게 되고, 성령께서 거하지 않으시면 될 수 없다. 그가 아무리 선한 행위를 열심히 해도 성령내주가 없으면 그는 여전히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선행하는 종교인이다. 선행이 죄인을 의인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죄용서 받은 죄인이 성령내주, 칭의,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의인되어 선행을 하게 된다.
-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② 선한 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
- 독거노인을 돕고 생활이 힘든 사람을 위해 돈을 기부하는 행위는 선한 일이다. 이 행위는 악한 일이 될 수 없다. 불교신자건, 무슬림이건 무신론자건 심지어 무당이 했다 할지라도 이런 행위는 분명 선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 선행을 하기 때문에 의인이 아니라 의인이기 때문에 선행을 한다. 똑같이 선행이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얻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선행을 포도열매로 보신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다. 불신자든 신자든 선행이 구원을 가져오지 못한다. 죄인은 선한 일을 한다고 의인 되지 않는다. 예수 믿어 죄용서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야 의인이 된다.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 얻는 결과로 맺는 선한 일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 우리는 포도나무 원줄기에 붙어야 열매를 맺고 살아있도록 창조된 가지다. 어느 날 가지가 포도나무에게 분리선언을 했다. 더 이상 포도나무가 주는 생기로 살아가는 가지가 되기 싫다고 스스로 자신을 포도나무에서 잘라버렸다. 이제부터 자신은 포도나무와 주종관계가 아니며 주인이라고 스스로 선언했다. 그 순간부터 가지는 말라지기 시작했다. 포도열매를 맺던 가지가 포도가 아닌 먹지 못할 악한 열매를 맺는다. 결국 말라죽고 불에 던져진다.
-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③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우리는 지금 불신자들과 똑같이 죄 가운데 지내며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사단을 따라갔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들도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를 살리셨다.
- 우리는 복음을 믿어 하나님께 죄용서 받고 의롭다하심(칭의)을 얻은 자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올린 자들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의로움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우리의 실제가 되었다. 주의할 점은 성령내주와 하나님의 칭의, 그리스도 연합은 물질이 아닌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내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것이다. 성령과 칭의는 내 능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주입된 의가 아니라 전가된 의다.
- 성령내주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이론이 아니며 실제다. 죄인인 우리가 선행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이론과 삶이 다르지 않다. 이것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행위구원을 말하는 다른 종교들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성도들이 십자가의 능력을 이론으로만 알고, 실제 삶에서 성령의 힘이 아닌 자기 힘으로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하려 하니 힘들고 어려운 종교생활이 된다. 모든 상황에서 복음을 자기에서 선포하라.
-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시 포도나무에 접붙여지게 되었다. 우리에게 포도열매가 맺혀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열매요, 죄인을 거룩케 하시는 성령의 열매요, 본래 아담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형상/하나님의 의가 회복된 열매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열매를 맺을 때 영광 받으신다. 타락한 죄인에게 다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하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가?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이어야 한다. 성도의 선한 일은 그의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고, 하나님의 의로움과 그리스도와 연합됨을 입증하고 확증한다.
- 엡2:1-7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2)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세우신 교회를 섬기라.
① 교회의 표징
- 모든 성도의 최종목표는 교회다.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를 지역교회로 모으셨다. 구원받은 성도는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다가 주님께로 간다.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함을 먼저 생각하라. 나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생각하라.
-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표징을 말씀, 성례, 권징으로 보았다. 이는 16세기 로마카톨릭에서 개혁하던 시대의 표지다. 오늘날 개신교 안에서 교회의 표징은 무엇일까? 모두 성경으로 설교하고, 성례예식하고, 권징은 거의 사라졌지만... 어느 교회가 참된 교회이고 어느 교회는 아닌가? 현재 개신교 안에서 성찬세례예식 여부로 참된 교회와 거짓교회를 구분할 수 있을까? 아니다. 말씀 곧 복음적 설교만이 참된 교회여부를 결정한다.
②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내 주장하지 말자. 주의 몸 된 교회가 소중하기에 성도를 섬기며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참고 사랑하며 서로 용납하자.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나타나기를 기도하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엡4:1-4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3) 의와 진리의 거룩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① 거짓은 버리고,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하라.
- 모든 소문은 말에서 시작되고, 말은 사람의 주관적 해석이 담겨있다. 사람이 그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느끼는가에 따라 말이 만들어지고 전달되고 그 말은 다른 사람의 해석이 담겨 엉뚱한 내용으로 전달되게 된다. 교회 안에는 왜 덕이 되지 않는 말들이 있는가? 사람들이 자꾸 자기 해석을 넣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민사회는 특히 더 그렇다.
- 의도적인 거짓말은 쉽지 않다. 그것은 십계명에 언급된 큰 죄요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사실확인을 안한 채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데 있다. 이 말이 그 당사자에게는 피해가 되도 자기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닌 거짓이었지만 그는 책임지지 않는다. 의도적인 거짓말이 아니지만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이웃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일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우리는 이웃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부정적인 소문은 전달하지 않고 내게서 끝내는 것이 선한 일이다. 내가 확인한 사실 외에 말하지 않고, 그 사실도 부정적인 것이라면 말하지 않는 것이 선한 일이다.
- 엡4:25,29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② 내게 일어나는 분노/감정을 잘 다스리라.
- 분노는 사람의 기본감정이므로 피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때때로 화를 내고 그 감정에 지배를 받는다. 문제는 이 분노감정이 사탄이 틈타는 아주 큰 통로가 된다는 점이다. 분노하지 말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하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한다.
- 사람의 의지는 이성이 아닌 감정에 지배를 받는다. 사람은 이성으로 판단하지만 그 판단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행동여부를 결정하는 감정이다. 분노의 감정은 모든 것을 마비시킨다. 사춘기 아이들이 이유 없이 감정적이듯, 사추기(갱년기) 중년은 남성, 여성 모두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다. 분노감정은 사탄이 틈타는 큰 통로임을 명심하자.
- 분노는 자기중심성이 누군가에 의해 침해받을 때 발생된다. 분노는 불과 같아서 생각할수록 점점 더 타오른다. 분노는 모든 합리적 생각을 중지시키고 부정적 감정에 따라 부정적인 행동하게 만든다. 죄인에게 이런 감정은 막을 수 없으나 그 감정을 흔들며 사탄이 역사함이 문제다. 분노가 생길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선한 일이란 무엇일까? 큰 소리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보혈 찬송을 부르라. 여러 번 계속 찬송하라. 내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하가. 분노감정이 어느덧 사라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엡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③ 도적질하지 말고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 십계명은 하나님 나라의 토대가 되는 생활헌법(?)이다. 이웃의 물건을 도적질 말라는 것은 십계명 중 8계명이며, 이웃에게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것은 9계명이다. 도적질은 제 손으로 수고로이 일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려하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고 일확천금 한탕주의 사상이 도둑질과 도박에 중독되게 만든다. 성도는 땀 흘려 일하고 정당하게 소득을 취해야 한다.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고 돈을 벌려는 사람이 불한당(도적)이다. 주식도 건전하게 투자해야지 투기하면 안된다. 어려서부터 불로소득은 도적질이라 배워야 한다.
- 엡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결론 및 적용>나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1) 성령내주,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실제다.
(2) 내 안에서 그리스도/성령께서 충만히 역사하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