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성령(4) - 성화와 이유 없는 고난 (롬5:1-11)
Author
GOSPEL323
Date
2021-10-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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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4) - 성화와 이유 없는 고난 (롬5:1-11)
1. 칭의성화론
(1) 성화는 신앙생활의 목표이다.
- 성도가 회심하면 그 즉시 죽어 천국에 들어가지 않는다. 회심이후 육체의 죽음을 맞을 때까지 제법 긴 시간을 살아간다. 구원의 현재이며 신앙생활은 이 기간을 지칭한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나라가 중첩된 기간이며 하나님 백성이 세상나라에서 살고 있는 기간이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이 기간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 나라 확장 등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성도가 하나님 나라 생활에 적합하도록 미리 다듬으시는 것이다. 성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미리 선취적으로 맛보게 하신 이유다. 성화가 신앙생활의 목표다.
(2) 성화는 칭의 때문에 되어 진다.
- 구원의 서정 중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회심, 성화, 견인뿐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 얻은 성도는 분명 회심(회개와 믿음)의 행위가 눈에 보이고 성화의 삶이 보이고, 마지막 까지 신앙을 지키는 견인(끝까지 인내하며 견뎌냄)이 보인다. 회심 성화 견인은 분명 성도의 행위로 나타난다. 성도가 회심하고 성도가 성화하고 성도가 견인함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다. 성도의 이러한 행위가 나오게 되는 원인은 다른데 있음이다. 바로 성령께서 그에게 생명(중생)을 주셨고, 하나님의 의(칭의)를 주셨고, 그리스도로 함께(연합)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칭의성화론이다. 성화의 동인은 칭의라는 것이다.
2. 성화와 이유 없는 고난
(1) 하나님 백성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 이유
①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하시기 위함
- 피조물에게 거룩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모습 그대로 죄가 없고 의를 행하는 에덴의 본래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거룩하고 완전했다. 그는 모든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행동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여쭙고 그분의 뜻에 따라 피조세계를 대리통치(관리)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죄)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의)를 행하고 있었다. 사람이 마음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의를 행함을 거룩이라 한다.
- 아담이 죄를 행하지 않고 의를 행하는(거룩)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성령에 충만했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성령내주, 성령충만으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성삼위 하나님과 늘 동행하고 있었다. 아담은 어떤 상황, 어떤 일을 행하든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신약의 말로하면, 아담은 하나님의 뜻(=진리)를 알고 있었고 그로인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의)를 행할 수 있었다.
- 참고로 에덴에서는 성령내주와 성령충만이 구분되지 않고 동일했다. 성령내주가 곧 성령충만이다. 이것은 에덴의 회복과 완성인 새하늘과 새땅에서도 동일하다. 부활은 범죄이전 아담의 첫모습을 회복하되 완성함이다. 완성이라 함은 부활한 성도가 죄를 범할 수 없는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기 때문이다. 이것만 첫아담과 다르다. 그의 존재방식과 행동은 에덴의 아담과 동일하다. 부활한 성도는 성령내주 성령충만으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고 동행하므로 그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한다. 이것이 생명이고 영생이다. 아담의 범죄로 죽었던 자들이 다시 본래 첫창조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이니 부활이다.
-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해야 한다. 거룩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함이다(엡4:24) 자기 뜻을 행함(=죄)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함(=의)이다. 하나님께 순종함이 없이 자기 뜻대로 사는 자는 결코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 근처(?)라도 기웃거리는 순간 화염검을 든 게루빔(천사)들에게 의해 죽는다.
② 하나님 백성의 거룩을 요구하는 신구약 말씀은 동일함
- 하나님 백성은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고 신약 교회가 그렇다. 하나님의 뜻은 도덕, 윤리를 초월하지만, 도덕 윤리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언 탐욕, 시기 분냄 원수맺음....은 결코 거룩함이 될 수 없다. 구약과 신약 성경이 똑같다.
- 레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 레20:26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 살전4:3-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 히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 벧전1:15-17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③ 말시온 이단 - 구약은 율법(=행함,윤리) 신약은 은혜(=믿음,자유)
- 말시온(Marcion)은 바울의 후계자로 자청하며 구약과 신약의 단절을 주장한 2세기 초 영지주의 이단이다. 그는 구약은 폐지하고 신약은 유대적 색채가 적은 누가복음(편집본)과 바울서신 10개(디모데전후서, 디도서 제외)만 성경으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율법을 적대시하고, 복음과 율법을 철저하게 분리시켰다.
- 신구약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세우실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는 언약을 기록한다. 옛언약(구약)은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것을 예언하고, 새언약(신약)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성취된 것을 말한다. 신구약 성경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시다. 성경을 하나님 나라와 언약으로 해석하지 못하면 신구약은 단절되고 율법과 복음을 분리시키는 영지주의 말시온 이단이 된다.
- 율법과 복음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언약을 계시한다. 율법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예언하고 계시하며 복음은 율법을 완성하며 성취한다. 율법이 있어야 복음이 필요한 이유를 알게 되고, 복음이 있어야 율법의 진정한 의미가 확인된다. 율법과 복음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율법과 복음은 하나님 백성(성도)의 거룩을 요구함에서 만난다.
(2) 거룩함(=성화)의 근거는 하나님의 의(=칭의)
① 구약과 신약의 다른점
- 구약(율법,행함)과 신약(복음,믿음)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을 요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구약 이스라엘이건 신약교회건 동일하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감이다. 어떤 이견이 없다. 그런데 구약과 신약은 다른 점이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언약을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씩 진전시키며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출애굽 시내산에서 옛언약을 주셨고, 그 후 약 1천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 다윗왕국이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음을 명확히 보이시고, 구약선지자에게 새언약을 예언하게 하셨다.
- 구약(율법)은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율법의 조항들을 지킴으로 거룩함을 이루고, 신약(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다. 둘 다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목표로 하나 그 거룩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르다. 구약은 자기 의로, 신약은 하나님의 의다.
- 구약과 신약을 분리시키고, 율법폐기와 방종을 복음의 자유로 말하는 거짓복음에 주의하라. 사탄의 가르침이다. 십자가를 믿으면 결코 방종할 수가 없다. 방종을 비판하며 행함을 강조하는 가르침도 주의하라.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능력이 빠져있다.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해져야 한다. 자기 힘으로 거룩해지려 함이 바로 유대교요 일반종교다. 복음은 언제나 율법주의와 방탕주의(율법폐기론)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②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없다하심(죄용서)과 의롭다하심(칭의)을 얻음
- 행13:38-39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 바울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 가지를 말한다. 죄없다하심(죄용서)과 의롭다하심(칭의)이다. 바울은 이 두 가지를 복음의 핵심 내용으로 전했다. 죄용서란 이미 저질러진 과거의 죄에 대한 형벌면제다. 죄는 반드시 그 죄값을 치루며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때(=회개) 죄용서 곧 형벌면제 해주심이다. 이는 지금 시점을 기준으로 이미 지나간 과거에 저질러진 죄들이다.
- 의롭다하심(=칭의)는 죄인이 지금 시점 이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싸워 이겨나가도록 해주심이다. 물론 죄용서에는 과거와 현재의 죄만 용서됨이 아니다. 죄용서는 미래의 죄까지 완전히 용서됨이며 마지막 심판대에서 죄없음 형벌없음이 최종선언 됨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미래에 지을 죄도 이미 용서받았기에 죄인은 앞으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오해를 주기 쉽다. 미래의 지을 죄는 칭의(의롭다하심)를 통해서 이겨나가도록 하셨다고 가르치는 것이 이런 오해를 줄인다. 칭의는 마지막 심판대의 최종선언이기도 하나 오늘 죄와 싸우며 거룩해져가는 성화의 삶을 위함이다.
- 사람은 죄를 행함과 의를 행함에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결코 죄와 의를 동시에 행할 수 없다. 자기 뜻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죄인에게 죄없다하심(죄용서)와 의롭다하심(칭의)를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내가 지은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면제 하실 뿐 아니라, 앞으로는 죄를 짓지 않고 의를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의를 전가해 주심이다.
- 하나님의 의는 성령을 우리 마음 속에 보내심이다. 칭의는 성령내주/성령충만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은 성령내주와 성령충만이 구분 되나 부활이후에는 동일하다. 지금도 성령내주는 곧 성령충만이어야 하나 죄인에게는 그렇지 못함이 현실이다. 죄인이 의를 행함은 성령내주/성령충만으로만 가능하다. 칭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성령은 하늘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예수님은 또다른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 성령내주/성령충만은 그리스도내주, 그리스도 충만이며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가르쳤다.
③ 성화는 칭의에서 시작된다. 칭의가 없다면 성화도 없음
- 칭의(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하심)는 미래의 마지막 심판대에서 이루어질 최종 법정적 선언이기도 하나, 오늘 우리에게 칭의는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성령을 보내시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죄인과 연합되어 주심을 말한다. 중생과 회심에서 보듯 신앙생활에서 칭의와 성화는 구분되지 않고 거의 동시적이지만 분명 구분할 필요가 있다. 칭의는 성화는 동인이기 때문이다.
- 우리가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하며 거룩하게 되어감은 칭의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연합해주셨기 때문이다. 회심이 중생 때문이듯(중생회심론) 성화는 칭의에서 왔다(칭의성화론). 칭의가 없다면 성화는 있을 수 없다. 칭의 없는 성화가 유대교요 일반종교다.
- 다시 말하지만 신구약 성경 모두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성화)를 요구하나 그 방법에 차이가 있다. 구약은 자기 힘으로 성화되어야 하고 신약은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성화됨이다. 이것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며 구원의 길이다.
- 칭의를 강조해야 성화가 되어 진다. 성도의 삶에서 칭의와 성화가 구분될 수 없으나, 성화를 하나 강조하면 칭의는 열을 강조해야 한다. 성화를 강조한다고 성화가 되어지지 않는다. 칭의를 강조해야 성화가 되어짐을 명심하라. 복음의 핵심이 이것이다. 성화를 강조해서 되어진다면 종교요 율법이다. 물론 칭의를 올바로 가르치면 성화는 강조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지만 현실 속에서 죄인은 성화의 삶을 잊어버리기 쉽다. 필요에 따라 성화를 한번 강조하면 칭의를 열 번 강조해야 한다. 칭의에서 성화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얻은 구원이 무엇인지 열 번 강조하고 나서 해야한다. 그래야 올바른 균형이 맞는다.
(3) 이유(=잘못) 없는 고난이 닥칠 때
① 하나님께 이유를 묻지 말고 그냥 견뎌낼 것
- 고난이 성도의 잘못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채찍일 수 있다. 그러나 성도에게 이유 없는 고난은 더 많다. 자기 잘못 때문이 아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계속될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난의 이유를 묻지 말고 고난을 주신 목적(=성화)을 생각하며 참고 인내하며 지나가야 한다. 이유 없는 고난이 오면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말하라고 하실 때까지 그냥 견뎌내라. 지나고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요셉과 다윗은 이유가 있어(=자기잘못) 고난당한 것이 아니다. 이유를 모를 때는 목적을 생각해라. 물론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이후 받게 된 고난은 이것과 다르다.
- 이러한 고난은 필수이며 선택이 아니다. 성도는 죄용서와 칭의를 얻었으나 부활의 날 전까지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성도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의를 부여받은 존재로서(성령내주) 죄인이며 동시에 의인이다. 이런 성도에게 신앙생활이란 죄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삶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의의 생활을 하도록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된다. 고난 없는 신앙생활은 꿈도 꾸지 말라. 성도에게 고난은 부활 전까지 계속 있을 것이다. 성경인물과 교회사 속의 인물들은 모두 고난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던 믿음의 사람들이다.
- 고난은 성도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구다. 사람은 그대로 두면 스스로 변화되기 힘들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실 때 마지못해 따라간다. 가고 싶어 따라감이 아니다. 안갈 수 없으니 겨우 따라감이다. 그래서 고난이 필요하다. 성공은 성도를 교만케 하고 타락하게 만들지만 고난은 성도를 아름답고 거룩하게 만들어간다. 다윗의 시로 추정되는 시편 119편은 고난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고 감사한다.
- 시119:71-73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② 고난은 나로 주도권을 포기하게 만드는 성화의 핵심도구
- 고난은 성도로 하여금 자기 주도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종케 만드는 도구이다. 사람은 결코 스스로 자기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난을 받아야 사람은 자기 한계를 느끼고 겨우 내려놓고 하나님께 엎드린다.
- 불에 달궈지지 않은 쇠는 망치로 내려치면 부러진다. 쇠가 구부러지기를 거부하며 강하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불에 달궈진 쇠는 부드럽다. 대장장이가 원하는 대로 변모한다. 망치를 치는 대로 구부러진다. 쇠는 불에 달궈져야 대장장이 손에 굴복해서 제대로 된 걸작품으로 변모한다.
③ 고난은 나를 연단시켜 소망(=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게 함
- 성도의 소망은 에덴의 아담처럼 의와 거룩함을 가진 본래사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라 했다(롬5:2) 이 소망은 환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환란은 성도를 인내케 하고, 인내는 성도를 연단시켜 그의 인격을 더욱 정결하게 만든다.
- 연단(鍊鍛)의 원뜻은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림을 말한다. 또한 성경은 광석을 도가니에 넣고 불을 가해 제련함도 연단(refine)으로 번역했다.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모양을 만들거나 불에 녹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금이나, 강철... 등을 만들거나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동일하다. 연단은 우리 자신(인격)을 에덴의 첫모습인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도록 만들어 감이다. 미래에 이루어질 우리의 소망이 환란을 통해 인내와 연단을 거쳐 이루어짐이다.
- 롬5:2-5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결론과 적용>고난이 기쁜 일은 아니지만 감사하자.
(1)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반드시 선한계획이 있다. 믿고 신뢰하자.
(2) 불평은 저절로 생기지만 감사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감사하려고 노력하자.
1. 칭의성화론
(1) 성화는 신앙생활의 목표이다.
- 성도가 회심하면 그 즉시 죽어 천국에 들어가지 않는다. 회심이후 육체의 죽음을 맞을 때까지 제법 긴 시간을 살아간다. 구원의 현재이며 신앙생활은 이 기간을 지칭한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나라가 중첩된 기간이며 하나님 백성이 세상나라에서 살고 있는 기간이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이 기간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 나라 확장 등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성도가 하나님 나라 생활에 적합하도록 미리 다듬으시는 것이다. 성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미리 선취적으로 맛보게 하신 이유다. 성화가 신앙생활의 목표다.
(2) 성화는 칭의 때문에 되어 진다.
- 구원의 서정 중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회심, 성화, 견인뿐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 얻은 성도는 분명 회심(회개와 믿음)의 행위가 눈에 보이고 성화의 삶이 보이고, 마지막 까지 신앙을 지키는 견인(끝까지 인내하며 견뎌냄)이 보인다. 회심 성화 견인은 분명 성도의 행위로 나타난다. 성도가 회심하고 성도가 성화하고 성도가 견인함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다. 성도의 이러한 행위가 나오게 되는 원인은 다른데 있음이다. 바로 성령께서 그에게 생명(중생)을 주셨고, 하나님의 의(칭의)를 주셨고, 그리스도로 함께(연합)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칭의성화론이다. 성화의 동인은 칭의라는 것이다.
2. 성화와 이유 없는 고난
(1) 하나님 백성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 이유
①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하시기 위함
- 피조물에게 거룩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모습 그대로 죄가 없고 의를 행하는 에덴의 본래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거룩하고 완전했다. 그는 모든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행동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여쭙고 그분의 뜻에 따라 피조세계를 대리통치(관리)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죄)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의)를 행하고 있었다. 사람이 마음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의를 행함을 거룩이라 한다.
- 아담이 죄를 행하지 않고 의를 행하는(거룩)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성령에 충만했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성령내주, 성령충만으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성삼위 하나님과 늘 동행하고 있었다. 아담은 어떤 상황, 어떤 일을 행하든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신약의 말로하면, 아담은 하나님의 뜻(=진리)를 알고 있었고 그로인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의)를 행할 수 있었다.
- 참고로 에덴에서는 성령내주와 성령충만이 구분되지 않고 동일했다. 성령내주가 곧 성령충만이다. 이것은 에덴의 회복과 완성인 새하늘과 새땅에서도 동일하다. 부활은 범죄이전 아담의 첫모습을 회복하되 완성함이다. 완성이라 함은 부활한 성도가 죄를 범할 수 없는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기 때문이다. 이것만 첫아담과 다르다. 그의 존재방식과 행동은 에덴의 아담과 동일하다. 부활한 성도는 성령내주 성령충만으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고 동행하므로 그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한다. 이것이 생명이고 영생이다. 아담의 범죄로 죽었던 자들이 다시 본래 첫창조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이니 부활이다.
-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해야 한다. 거룩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함이다(엡4:24) 자기 뜻을 행함(=죄)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함(=의)이다. 하나님께 순종함이 없이 자기 뜻대로 사는 자는 결코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 근처(?)라도 기웃거리는 순간 화염검을 든 게루빔(천사)들에게 의해 죽는다.
② 하나님 백성의 거룩을 요구하는 신구약 말씀은 동일함
- 하나님 백성은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고 신약 교회가 그렇다. 하나님의 뜻은 도덕, 윤리를 초월하지만, 도덕 윤리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언 탐욕, 시기 분냄 원수맺음....은 결코 거룩함이 될 수 없다. 구약과 신약 성경이 똑같다.
- 레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 레20:26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 살전4:3-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 히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 벧전1:15-17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③ 말시온 이단 - 구약은 율법(=행함,윤리) 신약은 은혜(=믿음,자유)
- 말시온(Marcion)은 바울의 후계자로 자청하며 구약과 신약의 단절을 주장한 2세기 초 영지주의 이단이다. 그는 구약은 폐지하고 신약은 유대적 색채가 적은 누가복음(편집본)과 바울서신 10개(디모데전후서, 디도서 제외)만 성경으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율법을 적대시하고, 복음과 율법을 철저하게 분리시켰다.
- 신구약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세우실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는 언약을 기록한다. 옛언약(구약)은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것을 예언하고, 새언약(신약)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성취된 것을 말한다. 신구약 성경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시다. 성경을 하나님 나라와 언약으로 해석하지 못하면 신구약은 단절되고 율법과 복음을 분리시키는 영지주의 말시온 이단이 된다.
- 율법과 복음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언약을 계시한다. 율법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예언하고 계시하며 복음은 율법을 완성하며 성취한다. 율법이 있어야 복음이 필요한 이유를 알게 되고, 복음이 있어야 율법의 진정한 의미가 확인된다. 율법과 복음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율법과 복음은 하나님 백성(성도)의 거룩을 요구함에서 만난다.
(2) 거룩함(=성화)의 근거는 하나님의 의(=칭의)
① 구약과 신약의 다른점
- 구약(율법,행함)과 신약(복음,믿음)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을 요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구약 이스라엘이건 신약교회건 동일하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감이다. 어떤 이견이 없다. 그런데 구약과 신약은 다른 점이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언약을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씩 진전시키며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출애굽 시내산에서 옛언약을 주셨고, 그 후 약 1천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 다윗왕국이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음을 명확히 보이시고, 구약선지자에게 새언약을 예언하게 하셨다.
- 구약(율법)은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율법의 조항들을 지킴으로 거룩함을 이루고, 신약(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다. 둘 다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목표로 하나 그 거룩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르다. 구약은 자기 의로, 신약은 하나님의 의다.
- 구약과 신약을 분리시키고, 율법폐기와 방종을 복음의 자유로 말하는 거짓복음에 주의하라. 사탄의 가르침이다. 십자가를 믿으면 결코 방종할 수가 없다. 방종을 비판하며 행함을 강조하는 가르침도 주의하라.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능력이 빠져있다.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해져야 한다. 자기 힘으로 거룩해지려 함이 바로 유대교요 일반종교다. 복음은 언제나 율법주의와 방탕주의(율법폐기론)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②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없다하심(죄용서)과 의롭다하심(칭의)을 얻음
- 행13:38-39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 바울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 가지를 말한다. 죄없다하심(죄용서)과 의롭다하심(칭의)이다. 바울은 이 두 가지를 복음의 핵심 내용으로 전했다. 죄용서란 이미 저질러진 과거의 죄에 대한 형벌면제다. 죄는 반드시 그 죄값을 치루며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때(=회개) 죄용서 곧 형벌면제 해주심이다. 이는 지금 시점을 기준으로 이미 지나간 과거에 저질러진 죄들이다.
- 의롭다하심(=칭의)는 죄인이 지금 시점 이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싸워 이겨나가도록 해주심이다. 물론 죄용서에는 과거와 현재의 죄만 용서됨이 아니다. 죄용서는 미래의 죄까지 완전히 용서됨이며 마지막 심판대에서 죄없음 형벌없음이 최종선언 됨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미래에 지을 죄도 이미 용서받았기에 죄인은 앞으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오해를 주기 쉽다. 미래의 지을 죄는 칭의(의롭다하심)를 통해서 이겨나가도록 하셨다고 가르치는 것이 이런 오해를 줄인다. 칭의는 마지막 심판대의 최종선언이기도 하나 오늘 죄와 싸우며 거룩해져가는 성화의 삶을 위함이다.
- 사람은 죄를 행함과 의를 행함에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결코 죄와 의를 동시에 행할 수 없다. 자기 뜻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죄인에게 죄없다하심(죄용서)와 의롭다하심(칭의)를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내가 지은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면제 하실 뿐 아니라, 앞으로는 죄를 짓지 않고 의를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의를 전가해 주심이다.
- 하나님의 의는 성령을 우리 마음 속에 보내심이다. 칭의는 성령내주/성령충만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은 성령내주와 성령충만이 구분 되나 부활이후에는 동일하다. 지금도 성령내주는 곧 성령충만이어야 하나 죄인에게는 그렇지 못함이 현실이다. 죄인이 의를 행함은 성령내주/성령충만으로만 가능하다. 칭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성령은 하늘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예수님은 또다른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 성령내주/성령충만은 그리스도내주, 그리스도 충만이며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가르쳤다.
③ 성화는 칭의에서 시작된다. 칭의가 없다면 성화도 없음
- 칭의(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하심)는 미래의 마지막 심판대에서 이루어질 최종 법정적 선언이기도 하나, 오늘 우리에게 칭의는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성령을 보내시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죄인과 연합되어 주심을 말한다. 중생과 회심에서 보듯 신앙생활에서 칭의와 성화는 구분되지 않고 거의 동시적이지만 분명 구분할 필요가 있다. 칭의는 성화는 동인이기 때문이다.
- 우리가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하며 거룩하게 되어감은 칭의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연합해주셨기 때문이다. 회심이 중생 때문이듯(중생회심론) 성화는 칭의에서 왔다(칭의성화론). 칭의가 없다면 성화는 있을 수 없다. 칭의 없는 성화가 유대교요 일반종교다.
- 다시 말하지만 신구약 성경 모두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성화)를 요구하나 그 방법에 차이가 있다. 구약은 자기 힘으로 성화되어야 하고 신약은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성화됨이다. 이것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며 구원의 길이다.
- 칭의를 강조해야 성화가 되어 진다. 성도의 삶에서 칭의와 성화가 구분될 수 없으나, 성화를 하나 강조하면 칭의는 열을 강조해야 한다. 성화를 강조한다고 성화가 되어지지 않는다. 칭의를 강조해야 성화가 되어짐을 명심하라. 복음의 핵심이 이것이다. 성화를 강조해서 되어진다면 종교요 율법이다. 물론 칭의를 올바로 가르치면 성화는 강조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지만 현실 속에서 죄인은 성화의 삶을 잊어버리기 쉽다. 필요에 따라 성화를 한번 강조하면 칭의를 열 번 강조해야 한다. 칭의에서 성화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얻은 구원이 무엇인지 열 번 강조하고 나서 해야한다. 그래야 올바른 균형이 맞는다.
(3) 이유(=잘못) 없는 고난이 닥칠 때
① 하나님께 이유를 묻지 말고 그냥 견뎌낼 것
- 고난이 성도의 잘못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채찍일 수 있다. 그러나 성도에게 이유 없는 고난은 더 많다. 자기 잘못 때문이 아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계속될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난의 이유를 묻지 말고 고난을 주신 목적(=성화)을 생각하며 참고 인내하며 지나가야 한다. 이유 없는 고난이 오면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말하라고 하실 때까지 그냥 견뎌내라. 지나고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요셉과 다윗은 이유가 있어(=자기잘못) 고난당한 것이 아니다. 이유를 모를 때는 목적을 생각해라. 물론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이후 받게 된 고난은 이것과 다르다.
- 이러한 고난은 필수이며 선택이 아니다. 성도는 죄용서와 칭의를 얻었으나 부활의 날 전까지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성도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의를 부여받은 존재로서(성령내주) 죄인이며 동시에 의인이다. 이런 성도에게 신앙생활이란 죄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삶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의의 생활을 하도록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된다. 고난 없는 신앙생활은 꿈도 꾸지 말라. 성도에게 고난은 부활 전까지 계속 있을 것이다. 성경인물과 교회사 속의 인물들은 모두 고난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던 믿음의 사람들이다.
- 고난은 성도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구다. 사람은 그대로 두면 스스로 변화되기 힘들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실 때 마지못해 따라간다. 가고 싶어 따라감이 아니다. 안갈 수 없으니 겨우 따라감이다. 그래서 고난이 필요하다. 성공은 성도를 교만케 하고 타락하게 만들지만 고난은 성도를 아름답고 거룩하게 만들어간다. 다윗의 시로 추정되는 시편 119편은 고난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고 감사한다.
- 시119:71-73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② 고난은 나로 주도권을 포기하게 만드는 성화의 핵심도구
- 고난은 성도로 하여금 자기 주도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종케 만드는 도구이다. 사람은 결코 스스로 자기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난을 받아야 사람은 자기 한계를 느끼고 겨우 내려놓고 하나님께 엎드린다.
- 불에 달궈지지 않은 쇠는 망치로 내려치면 부러진다. 쇠가 구부러지기를 거부하며 강하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불에 달궈진 쇠는 부드럽다. 대장장이가 원하는 대로 변모한다. 망치를 치는 대로 구부러진다. 쇠는 불에 달궈져야 대장장이 손에 굴복해서 제대로 된 걸작품으로 변모한다.
③ 고난은 나를 연단시켜 소망(=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게 함
- 성도의 소망은 에덴의 아담처럼 의와 거룩함을 가진 본래사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라 했다(롬5:2) 이 소망은 환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환란은 성도를 인내케 하고, 인내는 성도를 연단시켜 그의 인격을 더욱 정결하게 만든다.
- 연단(鍊鍛)의 원뜻은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림을 말한다. 또한 성경은 광석을 도가니에 넣고 불을 가해 제련함도 연단(refine)으로 번역했다.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모양을 만들거나 불에 녹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금이나, 강철... 등을 만들거나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동일하다. 연단은 우리 자신(인격)을 에덴의 첫모습인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도록 만들어 감이다. 미래에 이루어질 우리의 소망이 환란을 통해 인내와 연단을 거쳐 이루어짐이다.
- 롬5:2-5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결론과 적용>고난이 기쁜 일은 아니지만 감사하자.
(1)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반드시 선한계획이 있다. 믿고 신뢰하자.
(2) 불평은 저절로 생기지만 감사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감사하려고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