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전신갑주(6) -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눅9:27-36)
Author
GOSPEL323
Date
2021-09-1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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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갑주(6) -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눅9:27-36)
1. 성경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1)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①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 - 하나님께서 사람과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
- 만유(우주만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만유보다 더 크시다(요10:29,행4:24,엡4:6). 피조물 사람은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을 알 수 도 없고, 또한 그분의 마음 속 계획과 뜻을 전혀 추론할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당신의 존재와 뜻을 사람에게 계시하시고 그것을 기록하게 하셨다.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세상과 사람이 창조된 목적을 분명히 말씀한다. 하나님 나라다.
② 그리스도 구속경륜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목적
-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을 구원해 세상을 다시 하나님 나라로 만드시는 구속경륜을 세우셨다. 그것은 사람의 죄를 속죄하고 의롭게 만드시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과 교회를 통해서다.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을 회복완성하기 위한 그리스도 구속경륜이다.
-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구원해 하나님 나라를 회복완성하시는 계시다. 여기에 구약 이스라엘 역사가 들어있고 신약교회가 담겨있다. 아담 하와나 노아홍수 바벨탑 등 성경스토리를 많이 알고 있어도, 다윗 솔로몬 이스라엘 역사를 많이 알고 있어도,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과 그리스도 구속경륜을 모르면 성경은 아이들 동화책이요 이스라엘 역사책일 뿐이다. 내게 아무런 구원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 구원은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고 그리스도로 귀결된다.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구약성경이 구원의 책이 된다. 다윗과 골리앗을 읽어서는 구원받지 못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으며 다윗이야기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나라 계시가 된다. 구약을 그리스도와 성령, 새언약의 눈으로 해석하는 가르침이 기독교다. 그리스도 없는 구약해석은 유대교다. 교회 안에 유대교식 구약해석을 주의해야 한다.
(2) 고난은 신앙생활의 필수요소 필수과정.
① 믿음의 방패로 나를 보호 -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감사
-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지만, 여전히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다. 십자가에서 칭의로 얻은 구원은 성화의 삶으로 연속된다. 성화는 자기주인됨을 포기하는 과정이다. 고난이 없다면 사람은 결코 자기주도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난만 자기항복, 자기파산을 고백하게 만들며 자기교만을 내려놓게 한다. 이런 면에서 고난은 신앙생활의 필수과정이다. 구원은 칭의와 성화, 부활(영화)로 완성되는 긴 과정으로 볼 때, 고난은 우리를 다듬어 가시는 구원의 필수요소, 필수과정이다. 이 땅에서 에덴의 샬롬은 없다. 고난 중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샬롬이다.
②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이김 – 사탄이 더 이상 공격못함
- 성도에게 고난은 하나님 백성으로 세워지는 연단과정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욱 낮추시고 성숙되고 견고해지도록 만드신다. 그런데 고난이 올 때 사탄도 역사한다. 사탄은 우리 마음속에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게 하며 위협과 유혹과 미혹의 말을 던진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로 감사하며 믿음의 방패로 막아내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사탄을 공격하며 이길 방법은 무엇인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는 것이다.
2.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1) 고난 앞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 구원의 회심과 소명, 사명을 확인하자. (모세)
① 작은 위로 찾지 말고 근본부터 확인
- 사탄이 내 마음에 낙심과 불신앙의 불화살을 쏠 때 적극적으로 구원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내 주인은 나인가? 그리스도인가? 나는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가? 나는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종인가? 그리스도를 종으로 부리는 주인인가? 여기에 대한 진솔한 대답부터 출발해야 한다. 십자가 앞에 무릎 꿇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회심이 없다면 출발조차 안됐다. 밥솥에 스위치가 켜져 있지 않으며 100년을 기다려도 밥이 되지 않는다.
- 많은 CCM 찬양에서 점점 십자가가 사라지고 있다. 아무리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가사를 불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과 교회로 구원하시는 내용이 빠지면 공허하다. 하나님을 다른 신으로 바꿔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감동적인 사운드와 수많은 사람들의 찬양소리에 내 감정은 만족할지 모르지만 결코 회심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독교 문화생활 일뿐 결코 예배찬양이 아니다.
② 사람은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 방황
-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신줄 알기 전까지 자기를 알지 못한다.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왜 사람에게는 고통이 있는가? 왜 사람은 죽고,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이 모든 질문은 “나는 누구고, 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가?”로 귀결된다. 이 질문은 창조의 기원과 목적을 묻는 질문이어서 피조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이 질문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만 답이 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까지 나의 존재이유를 결코 알 수 없다. 방황한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람창조(창1-2장)와 타락(창3장), 에덴추방(창4장)을 계시하시고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다. 창세기의 첫 4장에는 모든 인류가 평생을 찾아 헤메고 있는 인생문제의 원인과 구원방법이 진리로 계시되어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신 사람인데 지금 아담의 본성(죄) 대로 살아가고 있고(타락) 하나님과의 단절된 고통(죽음)을 겪고 있다. 이것이 정확한 내 모습이다. 성경의 첫 4장만 읽어도 그리스도 구원진리가 나온다.
- 모세의 방황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끝났다. 하나님은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분이시다. 그분이 나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40년간 애굽 교육을 받게 하셨고, 40년간 광야생활을 배우게 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을 뵈옵고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발견했다. 소명을 받고 사명이 발견되었다. 모든 방황이 끝났다.
③ 성도의 소명은 동일하나 사명은 다름
- 구원의 소명(하나님의 부르심)은 사명(하나님의 보내심)으로 연결된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뵈오면 사람은 모든 방황이 끝난다. 그때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결정된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로부터 동일한 소명을 받고 동일하게 바뀐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그의 모든 것이 된다. 그의 주권이 바뀌고 가치관이 완전히 변한다. 그래서 소명은 하나다.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살겠다는 하나의 소명뿐이다. 그러나 사명은 다르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어떤 일을 할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와 연관 있다.
- 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이시다. 나와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을 뵈옵는 순간 모든 방황이 끝나고 가치관이 바뀌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바치기로 결단했다(소명) 그러나 나는 출애굽을 위해 애굽으로 가지 않는다. 나는 모세가 아니다(사명)
- 사명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명이 무엇인가? 모세처럼 민족을 구원하는 큰일을 찾으니 못 찾는 것이다. 나는 종이다. 나는 주님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사람이다. 큰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종의 태도가 아니다. 무엇을 맡기시든지 주님께 순종하겠다고 고백해야 한다. 세상은 동기와 야망을 가지라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동기와 야망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라고 말한다. 정반대다.
(2) 사명을 감당 할 때, 내 생각대로 안돼도 낙심하지 말라. (엘리야)
① 엘리야의 사명 – 바알 위기로부터 하나님 나라 언약을 지킴
-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을 대표하는 두 선지자다. 그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세는 하나님 나라 언약을 시작하고 엘리야는 바알 위기 속에서 그 언약을 지켜내었다. 그들의 사역은 자기가 완성하지 않고 후계자 여호수아와 엘리사에 의해 완성된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예표한다. 모세는 하나님 나라 언약을 시작하고, 엘리야는 지켜내고 예수님은 완성한다. 모세와 엘리야는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선지자였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왕이셨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께 나타나 곧 후에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 말씀 나눈 이유이다(눅9장)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위기 시대에 그 사명을 잘 감당했다.
② 엘리야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난 후 낙심함
-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고 바알선지자 450명을 기손시내로 끌고가 죽인다. 그 후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임한 3년 6개월의 긴 가뭄이 그치도록 큰 비를 내리신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스르엘 왕궁까지 약 26km를 달려가며 아합의 마차를 인도한다. 이스르엘 평원은 비가 오면 진흙이 마차바퀴에 붙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같은 엄청난 속도를 상상하지 마라. 그리 빠르지 않은 마차의 속도라도 26km를 뛰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 것이다. 엘리야는 바알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내는 사명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 그런데 엘리야는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 함을 듣고 브엘세바로 도망가고 거기서 광야로 하룻길을 혼자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 누어 죽기를 구한다. 엘리야는 왜 낙심했는가? 죽음이 두려워서인가? 이스라엘에 3년 6개월간 비가 오지 않을 때 아합과 이세벨이 이미 자기를 죽이려 찾지 않았는가? 불과 얼마 전에 바알선지자 450명을 죽이고, 이스르엘 궁전까지 하나님의 권능으로 아합의 마차를 인도하며 26Km를 달려간 사람치고는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엘리야는 양극성 조울증인가?
- 엘리야는 죽음을 두려워해 낙심했기 보다는, 자신의 사명 감당으로 바알과 이세벨은 힘을 잃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예상했는데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것에 낙심한 것이다. 사명감당후 결과가 예상대로 되지 않음을 낙심함이다.
③ 포도나무 비유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함
-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 누워 낙심해 있는 엘리야를 호렙산으로 부르신다. 그 산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이며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나라 언약을 맺으신 곳이다. 호렙산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하나님 나라 언약을 다시 확인시켜 주시고 그의 해야할 사명을 말씀해 주신다. “하사엘을 아람왕으로 세우라. 예후를 이스라엘왕으로 세우라.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라.”(왕상19장) 하나님의 생각은 엘리사의 생각보다 높고 완전하시다. 엘리야는 자신이 직접 바알과 이세벨을 몰아내야 할 것을 사명으로 생각했는데 실패해서 낙심했지만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 하사엘과 예후가 그들을 심판할 것이며, 엘리사가 그의 사역을 계승해서 이스라엘에 하나님 나라 언약 지킴을 완성할 것이다.
- 가지는 포도열매를 맺을 수 없다. 가지가 할 일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이다.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역사하셔야 한다. 엘리야의 낙심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포도나무 진리를 확인시킨다.
<결론과 적용>낙심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자. (예수님)
(1)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 성경은 좋은 책이 아니라 유일한 책이다. 성경은 사탄의 진을 파하는 성령의 검이다. 예수님도 사탄의 시험을 신명기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사탄은 내 결심 내 의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탄은 하나님의 구원진리, 생명의 빛만 두려워한다. 죄인이 구원받고 사탄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구원진리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구원과 십자가 복음이다.
- 성경은 작은 위로 작은 만족을 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칭의와 성화의 하나님 나라 진리 속에 들어있다. 회심과 구원 속에 모든 응답이 들어 있다. 성경을 내 문제해결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읽으면 조금 더 감동을 주고, 조금 더 위로해주고, 조금 더 구체적인 방법을 말해주는 사람을 찾아 헤메다 평생 길을 잃고 방황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의 죄에서 모든 원인을 찾는다. 당장 내 문제와 직접 상관없어 보이고 그 내용이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라는 너무 크고 너무 먼 주제 같아 보여도 이 안에 우리의 모든 해답이 담겨있다. 내 문제의 근본원인과 근본해결인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발견해야 한다.
- 고난과 어려움은 그대로 나둔체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자. 내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음이 정상이고 당연하다. 내가 이해할 수 없어야 나보다 크신 하나님이시다. 내가 다 이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나와 동급이시다. 내 수준의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할 수 없고 내가 섬길 하나님이 되실 수 없다.
(2) 믿음의 찬송을 부르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 사탄이 마음에 염려와 두려움, 낙심을 줄 때 가만히 있으면 넘어진다. 작은 불이 붙었을 때 믿음의 방패로 즉시 꺼버려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께 내게 푸신 일 하나씩 입으로 고백하고 의도적으로 믿음의 찬송을 부르자.
(3) 말씀을 읽고 배우고 암송하자. - 교회성경공부 모임
- 사탄은 거짓의 아비이며 처음부터 거짓말쟁이다. 그는 진리가 없고 어두움이다. 어둠은 진리의 빛 앞에 밝히 드러난다. 사탄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구원진리 앞에서만 거짓으로 드러나 도망한다. 말씀에 굳게 서면 사탄은 감히 공격하지 못한다. 모세와 엘리야처럼 구원과 회심, 소명과 사명을 바르게 하고 말씀을 배우고 익히자. 곁가지와 잡기술을 배우지 말고 원기술을 배우라.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를 원칙으로 배우라. 평생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설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유일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1. 성경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1)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①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 - 하나님께서 사람과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
- 만유(우주만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만유보다 더 크시다(요10:29,행4:24,엡4:6). 피조물 사람은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을 알 수 도 없고, 또한 그분의 마음 속 계획과 뜻을 전혀 추론할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당신의 존재와 뜻을 사람에게 계시하시고 그것을 기록하게 하셨다.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세상과 사람이 창조된 목적을 분명히 말씀한다. 하나님 나라다.
② 그리스도 구속경륜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목적
-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을 구원해 세상을 다시 하나님 나라로 만드시는 구속경륜을 세우셨다. 그것은 사람의 죄를 속죄하고 의롭게 만드시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과 교회를 통해서다.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을 회복완성하기 위한 그리스도 구속경륜이다.
-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구원해 하나님 나라를 회복완성하시는 계시다. 여기에 구약 이스라엘 역사가 들어있고 신약교회가 담겨있다. 아담 하와나 노아홍수 바벨탑 등 성경스토리를 많이 알고 있어도, 다윗 솔로몬 이스라엘 역사를 많이 알고 있어도,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과 그리스도 구속경륜을 모르면 성경은 아이들 동화책이요 이스라엘 역사책일 뿐이다. 내게 아무런 구원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 구원은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고 그리스도로 귀결된다.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구약성경이 구원의 책이 된다. 다윗과 골리앗을 읽어서는 구원받지 못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으며 다윗이야기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나라 계시가 된다. 구약을 그리스도와 성령, 새언약의 눈으로 해석하는 가르침이 기독교다. 그리스도 없는 구약해석은 유대교다. 교회 안에 유대교식 구약해석을 주의해야 한다.
(2) 고난은 신앙생활의 필수요소 필수과정.
① 믿음의 방패로 나를 보호 -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감사
-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지만, 여전히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다. 십자가에서 칭의로 얻은 구원은 성화의 삶으로 연속된다. 성화는 자기주인됨을 포기하는 과정이다. 고난이 없다면 사람은 결코 자기주도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난만 자기항복, 자기파산을 고백하게 만들며 자기교만을 내려놓게 한다. 이런 면에서 고난은 신앙생활의 필수과정이다. 구원은 칭의와 성화, 부활(영화)로 완성되는 긴 과정으로 볼 때, 고난은 우리를 다듬어 가시는 구원의 필수요소, 필수과정이다. 이 땅에서 에덴의 샬롬은 없다. 고난 중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샬롬이다.
②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이김 – 사탄이 더 이상 공격못함
- 성도에게 고난은 하나님 백성으로 세워지는 연단과정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욱 낮추시고 성숙되고 견고해지도록 만드신다. 그런데 고난이 올 때 사탄도 역사한다. 사탄은 우리 마음속에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게 하며 위협과 유혹과 미혹의 말을 던진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로 감사하며 믿음의 방패로 막아내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사탄을 공격하며 이길 방법은 무엇인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는 것이다.
2.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1) 고난 앞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 구원의 회심과 소명, 사명을 확인하자. (모세)
① 작은 위로 찾지 말고 근본부터 확인
- 사탄이 내 마음에 낙심과 불신앙의 불화살을 쏠 때 적극적으로 구원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내 주인은 나인가? 그리스도인가? 나는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가? 나는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종인가? 그리스도를 종으로 부리는 주인인가? 여기에 대한 진솔한 대답부터 출발해야 한다. 십자가 앞에 무릎 꿇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회심이 없다면 출발조차 안됐다. 밥솥에 스위치가 켜져 있지 않으며 100년을 기다려도 밥이 되지 않는다.
- 많은 CCM 찬양에서 점점 십자가가 사라지고 있다. 아무리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가사를 불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과 교회로 구원하시는 내용이 빠지면 공허하다. 하나님을 다른 신으로 바꿔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감동적인 사운드와 수많은 사람들의 찬양소리에 내 감정은 만족할지 모르지만 결코 회심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독교 문화생활 일뿐 결코 예배찬양이 아니다.
② 사람은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 방황
-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신줄 알기 전까지 자기를 알지 못한다.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왜 사람에게는 고통이 있는가? 왜 사람은 죽고,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이 모든 질문은 “나는 누구고, 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가?”로 귀결된다. 이 질문은 창조의 기원과 목적을 묻는 질문이어서 피조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이 질문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만 답이 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까지 나의 존재이유를 결코 알 수 없다. 방황한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람창조(창1-2장)와 타락(창3장), 에덴추방(창4장)을 계시하시고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다. 창세기의 첫 4장에는 모든 인류가 평생을 찾아 헤메고 있는 인생문제의 원인과 구원방법이 진리로 계시되어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신 사람인데 지금 아담의 본성(죄) 대로 살아가고 있고(타락) 하나님과의 단절된 고통(죽음)을 겪고 있다. 이것이 정확한 내 모습이다. 성경의 첫 4장만 읽어도 그리스도 구원진리가 나온다.
- 모세의 방황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끝났다. 하나님은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분이시다. 그분이 나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40년간 애굽 교육을 받게 하셨고, 40년간 광야생활을 배우게 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을 뵈옵고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발견했다. 소명을 받고 사명이 발견되었다. 모든 방황이 끝났다.
③ 성도의 소명은 동일하나 사명은 다름
- 구원의 소명(하나님의 부르심)은 사명(하나님의 보내심)으로 연결된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뵈오면 사람은 모든 방황이 끝난다. 그때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결정된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로부터 동일한 소명을 받고 동일하게 바뀐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그의 모든 것이 된다. 그의 주권이 바뀌고 가치관이 완전히 변한다. 그래서 소명은 하나다.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살겠다는 하나의 소명뿐이다. 그러나 사명은 다르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어떤 일을 할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와 연관 있다.
- 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이시다. 나와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을 뵈옵는 순간 모든 방황이 끝나고 가치관이 바뀌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바치기로 결단했다(소명) 그러나 나는 출애굽을 위해 애굽으로 가지 않는다. 나는 모세가 아니다(사명)
- 사명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명이 무엇인가? 모세처럼 민족을 구원하는 큰일을 찾으니 못 찾는 것이다. 나는 종이다. 나는 주님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사람이다. 큰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종의 태도가 아니다. 무엇을 맡기시든지 주님께 순종하겠다고 고백해야 한다. 세상은 동기와 야망을 가지라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동기와 야망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라고 말한다. 정반대다.
(2) 사명을 감당 할 때, 내 생각대로 안돼도 낙심하지 말라. (엘리야)
① 엘리야의 사명 – 바알 위기로부터 하나님 나라 언약을 지킴
-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을 대표하는 두 선지자다. 그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세는 하나님 나라 언약을 시작하고 엘리야는 바알 위기 속에서 그 언약을 지켜내었다. 그들의 사역은 자기가 완성하지 않고 후계자 여호수아와 엘리사에 의해 완성된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예표한다. 모세는 하나님 나라 언약을 시작하고, 엘리야는 지켜내고 예수님은 완성한다. 모세와 엘리야는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선지자였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왕이셨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께 나타나 곧 후에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 말씀 나눈 이유이다(눅9장)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위기 시대에 그 사명을 잘 감당했다.
② 엘리야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난 후 낙심함
-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고 바알선지자 450명을 기손시내로 끌고가 죽인다. 그 후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임한 3년 6개월의 긴 가뭄이 그치도록 큰 비를 내리신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스르엘 왕궁까지 약 26km를 달려가며 아합의 마차를 인도한다. 이스르엘 평원은 비가 오면 진흙이 마차바퀴에 붙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같은 엄청난 속도를 상상하지 마라. 그리 빠르지 않은 마차의 속도라도 26km를 뛰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 것이다. 엘리야는 바알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내는 사명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 그런데 엘리야는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 함을 듣고 브엘세바로 도망가고 거기서 광야로 하룻길을 혼자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 누어 죽기를 구한다. 엘리야는 왜 낙심했는가? 죽음이 두려워서인가? 이스라엘에 3년 6개월간 비가 오지 않을 때 아합과 이세벨이 이미 자기를 죽이려 찾지 않았는가? 불과 얼마 전에 바알선지자 450명을 죽이고, 이스르엘 궁전까지 하나님의 권능으로 아합의 마차를 인도하며 26Km를 달려간 사람치고는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엘리야는 양극성 조울증인가?
- 엘리야는 죽음을 두려워해 낙심했기 보다는, 자신의 사명 감당으로 바알과 이세벨은 힘을 잃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예상했는데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것에 낙심한 것이다. 사명감당후 결과가 예상대로 되지 않음을 낙심함이다.
③ 포도나무 비유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함
-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 누워 낙심해 있는 엘리야를 호렙산으로 부르신다. 그 산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이며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나라 언약을 맺으신 곳이다. 호렙산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하나님 나라 언약을 다시 확인시켜 주시고 그의 해야할 사명을 말씀해 주신다. “하사엘을 아람왕으로 세우라. 예후를 이스라엘왕으로 세우라.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라.”(왕상19장) 하나님의 생각은 엘리사의 생각보다 높고 완전하시다. 엘리야는 자신이 직접 바알과 이세벨을 몰아내야 할 것을 사명으로 생각했는데 실패해서 낙심했지만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 하사엘과 예후가 그들을 심판할 것이며, 엘리사가 그의 사역을 계승해서 이스라엘에 하나님 나라 언약 지킴을 완성할 것이다.
- 가지는 포도열매를 맺을 수 없다. 가지가 할 일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이다.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역사하셔야 한다. 엘리야의 낙심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포도나무 진리를 확인시킨다.
<결론과 적용>낙심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자. (예수님)
(1)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 성경은 좋은 책이 아니라 유일한 책이다. 성경은 사탄의 진을 파하는 성령의 검이다. 예수님도 사탄의 시험을 신명기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사탄은 내 결심 내 의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탄은 하나님의 구원진리, 생명의 빛만 두려워한다. 죄인이 구원받고 사탄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구원진리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구원과 십자가 복음이다.
- 성경은 작은 위로 작은 만족을 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칭의와 성화의 하나님 나라 진리 속에 들어있다. 회심과 구원 속에 모든 응답이 들어 있다. 성경을 내 문제해결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읽으면 조금 더 감동을 주고, 조금 더 위로해주고, 조금 더 구체적인 방법을 말해주는 사람을 찾아 헤메다 평생 길을 잃고 방황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의 죄에서 모든 원인을 찾는다. 당장 내 문제와 직접 상관없어 보이고 그 내용이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라는 너무 크고 너무 먼 주제 같아 보여도 이 안에 우리의 모든 해답이 담겨있다. 내 문제의 근본원인과 근본해결인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발견해야 한다.
- 고난과 어려움은 그대로 나둔체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자. 내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음이 정상이고 당연하다. 내가 이해할 수 없어야 나보다 크신 하나님이시다. 내가 다 이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나와 동급이시다. 내 수준의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할 수 없고 내가 섬길 하나님이 되실 수 없다.
(2) 믿음의 찬송을 부르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 사탄이 마음에 염려와 두려움, 낙심을 줄 때 가만히 있으면 넘어진다. 작은 불이 붙었을 때 믿음의 방패로 즉시 꺼버려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께 내게 푸신 일 하나씩 입으로 고백하고 의도적으로 믿음의 찬송을 부르자.
(3) 말씀을 읽고 배우고 암송하자. - 교회성경공부 모임
- 사탄은 거짓의 아비이며 처음부터 거짓말쟁이다. 그는 진리가 없고 어두움이다. 어둠은 진리의 빛 앞에 밝히 드러난다. 사탄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구원진리 앞에서만 거짓으로 드러나 도망한다. 말씀에 굳게 서면 사탄은 감히 공격하지 못한다. 모세와 엘리야처럼 구원과 회심, 소명과 사명을 바르게 하고 말씀을 배우고 익히자. 곁가지와 잡기술을 배우지 말고 원기술을 배우라.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를 원칙으로 배우라. 평생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설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유일한 진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