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전신갑주(4) - 평안의 복음과 하나님의 샬롬 (요14:16-17,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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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1-09-0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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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갑주(4) - 평안의 복음과 하나님의 샬롬 (요14:16-17,26-27)
1. 복음이란 무엇인가?
(1) 복된 소식
- 복음의 한자어 뜻은 복된 소식이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이 될까? 문제해결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질병문제, 자녀문제, 사업문제, 가정문제... 등 문제를 해결하러 주님 앞에 나온다. 이는 당연하다. 초신자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해야 그리스도를 찾는다. 사마리아 여인이 자기 문제가 없었다면 예수님께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문제해결은 불신자들이 주님께 나아오는 첫시작이 되지만 복음의 본질은 아니다.
(2) 하나님 나라 백성 되는 길
- 복음은 지금 내가 고통당하는 문제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주인 되어 살아가는 죄에서 왔고, 하나님과 단절된 사망 때문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문제해결에 관심 있지만 복음은 죄와 사망을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을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이 아닌 문제해결에 집중하면 기독교는 기복신앙 다른종교가 되고, 의와 생명 없이 사탄에 집중하면 사탄신학 다른복음이 된다.
- 기복신앙과 사탄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을 약화시키는 다른복음이다. 구원은 문제해결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 모습 그대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며 의와 진리로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이 됨이다. 우리가 칭의로 얻은 구원은 성화로 나타나다가 부활과 함께 영화로 완성될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성령강림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 말세는 주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구원)가 이미 우리 가운데 도래했고, 주의 재림으로 하나님 나라는 완성된다는 신약교회의 특별용어다. 우리는 이미 구원 얻었지만 아직 부활의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부활의 완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미 구원을 얻었고 이곳에서 구원을 체험할 수 있다. 이러한 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을 통해서다. 십자가 복음이다.
- 교회는 기복신앙과 사탄신학을 버리고 의와 생명을 얻는 칭의와 성화의 십자가 복음을 바르게 전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칭의와 성화의 복음이 아닌 자기 문제해결과 능력을 행사하는 복음을 원한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내려와 능력을 행해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복음이 아닌 자기들이 원하는 복음이다.
- 사마리아 여인은 여섯번째 남편을 두었지만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하지 못했다. 그녀의 목마름은 남편으로 해결될 수 없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모시며, 의와 생명의 하나님 백성이 될 때 비로소 해결되는 문제다. 사마리아 여인은 성경을 모르니 당연히 일곱번째 남편을 찾는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일곱번째 남편(다른복음)을 찾아주고 있는 점이다. 문제해결, 번영복음, 긍정의 복음, 사탄신학이 바로 그것이다.
2. 평안의 복음과 하나님의 샬롬
(1) 안식일 – 하나님의 샬롬을 기념하는 날
① 구원의 일곱 절기 (1년에 한번 지킴)
-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구원의 일곱 절기가 있다. 구원의 첫 시작인 유월절과 일주일씩 지키는 무교절기, 오순절기, 초막절기가 있고 그 사이에 초실절, 나팔절, 대속죄일이 있다. 이스라엘은 한해(1년)동안 일곱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부림절(에스더서)과 수전절(하누카/요한복음)는 바벨론 포로 이후에 만들어진 이스라엘 민족절기다. 구원절기가 아니다.
- 구원의 일곱 절기 중 어느 절기가 가장 중요할까? 이것은 질문이 잘못되었다. 일곱 절기는 애굽 노예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가는 구원의 전체과정을 계시하기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절기가 없다. 일곱 절기 모두가 동일하게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타내는 유월절,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초실절, 성령임한 오순절, 교회가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신앙생활 하는 나팔절, 칭의로 성화로 살아가는 속죄일, 구원의 완성 초실절... 어느 절기를 더 강조하고 덜 강조할 수 있는가? 없다. 이 질문보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일곱 절기를 하나에 담아주신 절기가 있다. 그것이 무슨 절기인가 질문함이 옳다.
② 안식일은 구원의 모든 절기를 담고 있음 (1주일에 한번씩 지킴)
-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일곱 절기를 모두 담아주신 날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1년 동안 일곱 절기를 지키고 1주일 마다 하루씩 안식일을 지키며 구원을 기억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다. 십계명 돌판에 직접 세겨 주셨으며 어기는 자는 죽게 될 것을 아주 엄히 말씀하셨다. 안식일을 범한자의 형벌은 대속죄일 범한 자의 형벌보다 더 엄하다. - 이스라엘 유병성 목사
- 레23:27-30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 출31:13-15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③ 하나님의 샬롬을 기억하고 소망함
-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완전하게 창조하시고 일곱째날 쉬신 것을 기념한다(창2장) 하나님의 샬롬이 임한 것을 기념함이다. 에덴과 피조세계는 더 이상 손 댈 것이 없이 완전하다. 어떤 부족과 결핍도 없고, 부조화와 갈등도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죄가 없기 때문이다.
- 시내산에서 십계명으로 주신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고(출20장) 하나님의 구속을 기념한다(신5장) 죄와 사망의 세상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에덴의 샬롬을 기억하고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실 하나님의 샬롬을 기대하는 날이다.
-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식일은 아무 일도 안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샬롬을 체험하는 날이다. 노동금지는 하나님의 샬롬을 기억하기 위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으로 새언약이 시작되었다. 구약의 모든 절기와 율법들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 역할을 다했다. 옛언약은 새언약으로 완성되었다. 구약의 안식일은 성취되었으므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주일에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샬롬을 미리 체험한다.
- 참고로, 주일예배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언약(신약)이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하는 특별선언이다. 성전파괴 이전까지 초대교회는 주일예배를 드렸지만 토요안식일에도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고 건물성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전파괴 이후 초대교회는 토요안식일에 모이지 않고 주일예배를 지킴으로 유대교와 완전히 구별된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는 로마제국 내에서 교회는 하나의 통일된 교리를 확정하라고 말했다. 교회는 삼위일체와 주일예배를 정통교리로 제출했다. 콘스탄틴은 초대교회가 내린 결론을 기독교의 정통교리로 발표하고 그대로 시행했다. 주일예배는 콘스탄틴의 명령이 아닌 초대교회의 신학적 결정이다.
- 하나 더, 부활절은 매년 날자가 변동된다. 대략 3월 말에서 4월 중순 사이에서 계속 바뀐다. 그리스도는 유월절 저녁식사 후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셨다. 부활절은 유월절에 맞추면 쉽게 날자가 정해진다. 그러나 교회는 춘분(3.21)이후 만월이 지난 첫 안식일 다음날인 주일을 부활절로 정했다. 이는 유대인의 유월절이 음력이기에 매년 요일이 바뀌므로 부활절을 유월절에 맞추면 매년 요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월절에 맞추면 정확한 날자를 기념하게 되고, 주일에 맞추면 유월절과 상관없게 된다. 교회는 주일을 선택했다(파스하 논쟁). 이 결정은 교회가 주일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가를 보여준다
(2)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샬롬을 가져다준다.
① 샬롬 – 하나님의 임재에서 오는 평안(평화,안식)
- 복음은 죄용서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적대적 원수됨을 종결시키고 우리에게 샬롬을 가져다주었다. 복음은 나와 나 사이, 나와 이웃사이에 샬롬을 준다. 복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는 없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해서 연결된 하나의 교회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시다.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
- 엡2:14-18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② 문제와 고난이 없는 에덴의 샬롬이 아님
- 우리는 보통, 평화(평안)를 전쟁이나 문제가 없는 상태로 오해하기 쉽다. 샬롬은 훨씬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샬롬은 전쟁이나 문제가 없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이다. 샬롬은 하나님의 충만하신 임재와 통치에서 오는 하나님 백성들의 평안, 안식이다. 로마제국의 팍스(Pax)은 힘에 의한 평화이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오는 샬롬을 말한다. 이러한 샬롬은 에덴에서 원형으로 완전히 이루어졌고, 범죄 이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구속사의 모형으로 때때로 나타났다.
- 에덴에서 샬롬은 문제와 어려움이 전혀 없는 평안과 안식이었다. 사람의 죄가 없고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안(샬롬)은 에덴에서 있었고 새하늘과 새땅에서만 가능하다. 죄와 사망 사탄이 심판되고 온 세상이 다시 첫창조의 완전함을 회복완성하는 그때에 이루어진다. 주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 전까지, 에덴의 샬롬은 결코 없다. 고난 없는 샬롬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
③ 문제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샬롬/평안 평화 안식...
- 이 땅에서는 에덴의 샬롬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샬롬이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체험했다. 하나님은 성경인물들에게 문제와 고난을 없애지 않으시고 고난을 통과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이 사울에게 고난당할 때 그 문제를 없애주지 않으셨다. 십여년의 긴 세월 동안 묵묵히 함께하시며 다윗이 고난을 통과하게 하셨다. 요셉, 다니엘... 성경의 모든 인물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샬롬을 체험했다.
- 고난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축복의 도구이다. 고난이 없다면 사람은 죄의 본성대로 교만해진다. 한사람도 예외가 없다. 고난을 속에서 죄인의 형상이 벗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다. 이런 면에서 고난은 축복이다. 단 하나님과 함께하며 고난을 통과하는 사람일 경우를 말한다.
(3)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체험하는 방법
① 보혜사 성령님이 계심을 믿고 의지할 것 (요14장)
- 성만찬 강화는 곧이어 닥칠 핍박과 어려움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수 믿으면 고난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예수 믿기에 새로운 고난을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체험하는 방법을 말씀하여 주셨다.
-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또 우리에게 성령으로 다시 오셨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므로,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이시다. 지금 하늘보좌에 계신 그리스도와 지금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분명 물리적으로 구분되나 실제 사역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성령님은 자기 일을 하시지 않고 그리스도의 일을 하신다.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의를 행하도록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먼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라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함께하신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이것을 믿고 확신하자.
- 요14:16-1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② 포도나무 가지에 붙어있으면 됨 (요15장)
- 포도나무 비유는 예수님 대신 사역을 시작할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열매는 우리가 맺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다. 가지는 결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가지의 할 일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이다. 에덴의 첫 아담처럼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의지하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임을 명심하라.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기억하고 모든 일에 주님께 굴복하라.
③ 무엇이든지 주님께 기도하고 아뢸 것 (요16장)
- 기도는 예수께서 주되시고 나는 순종하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행위다. 기도는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행위다.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그 응답은 주님이 원하시는 결과로 오고 그 내용은 반드시 옳다. 내가 원하는 응답을 쟁취하려는 것은 우상숭배 기도다. 이런 기도는 오히려 죄를 더욱 강화시킨다. 주님께 기도함이 아니다. 기도는 내 뜻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도록 구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샬롬이 임한다.
- 요14:26-2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결론과 적용>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통과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1) 고난은 구원의 필수과정이다. 고난은 그대로 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2) 하나님이 구부리실 때는 버티지 말고 구부러지라. 나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계획을 신뢰하라.
1. 복음이란 무엇인가?
(1) 복된 소식
- 복음의 한자어 뜻은 복된 소식이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이 될까? 문제해결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질병문제, 자녀문제, 사업문제, 가정문제... 등 문제를 해결하러 주님 앞에 나온다. 이는 당연하다. 초신자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해야 그리스도를 찾는다. 사마리아 여인이 자기 문제가 없었다면 예수님께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문제해결은 불신자들이 주님께 나아오는 첫시작이 되지만 복음의 본질은 아니다.
(2) 하나님 나라 백성 되는 길
- 복음은 지금 내가 고통당하는 문제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주인 되어 살아가는 죄에서 왔고, 하나님과 단절된 사망 때문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문제해결에 관심 있지만 복음은 죄와 사망을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을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이 아닌 문제해결에 집중하면 기독교는 기복신앙 다른종교가 되고, 의와 생명 없이 사탄에 집중하면 사탄신학 다른복음이 된다.
- 기복신앙과 사탄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을 약화시키는 다른복음이다. 구원은 문제해결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 모습 그대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며 의와 진리로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이 됨이다. 우리가 칭의로 얻은 구원은 성화로 나타나다가 부활과 함께 영화로 완성될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성령강림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 말세는 주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구원)가 이미 우리 가운데 도래했고, 주의 재림으로 하나님 나라는 완성된다는 신약교회의 특별용어다. 우리는 이미 구원 얻었지만 아직 부활의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부활의 완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미 구원을 얻었고 이곳에서 구원을 체험할 수 있다. 이러한 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을 통해서다. 십자가 복음이다.
- 교회는 기복신앙과 사탄신학을 버리고 의와 생명을 얻는 칭의와 성화의 십자가 복음을 바르게 전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칭의와 성화의 복음이 아닌 자기 문제해결과 능력을 행사하는 복음을 원한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내려와 능력을 행해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복음이 아닌 자기들이 원하는 복음이다.
- 사마리아 여인은 여섯번째 남편을 두었지만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하지 못했다. 그녀의 목마름은 남편으로 해결될 수 없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모시며, 의와 생명의 하나님 백성이 될 때 비로소 해결되는 문제다. 사마리아 여인은 성경을 모르니 당연히 일곱번째 남편을 찾는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일곱번째 남편(다른복음)을 찾아주고 있는 점이다. 문제해결, 번영복음, 긍정의 복음, 사탄신학이 바로 그것이다.
2. 평안의 복음과 하나님의 샬롬
(1) 안식일 – 하나님의 샬롬을 기념하는 날
① 구원의 일곱 절기 (1년에 한번 지킴)
-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구원의 일곱 절기가 있다. 구원의 첫 시작인 유월절과 일주일씩 지키는 무교절기, 오순절기, 초막절기가 있고 그 사이에 초실절, 나팔절, 대속죄일이 있다. 이스라엘은 한해(1년)동안 일곱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부림절(에스더서)과 수전절(하누카/요한복음)는 바벨론 포로 이후에 만들어진 이스라엘 민족절기다. 구원절기가 아니다.
- 구원의 일곱 절기 중 어느 절기가 가장 중요할까? 이것은 질문이 잘못되었다. 일곱 절기는 애굽 노예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가는 구원의 전체과정을 계시하기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절기가 없다. 일곱 절기 모두가 동일하게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타내는 유월절,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초실절, 성령임한 오순절, 교회가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신앙생활 하는 나팔절, 칭의로 성화로 살아가는 속죄일, 구원의 완성 초실절... 어느 절기를 더 강조하고 덜 강조할 수 있는가? 없다. 이 질문보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일곱 절기를 하나에 담아주신 절기가 있다. 그것이 무슨 절기인가 질문함이 옳다.
② 안식일은 구원의 모든 절기를 담고 있음 (1주일에 한번씩 지킴)
-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일곱 절기를 모두 담아주신 날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1년 동안 일곱 절기를 지키고 1주일 마다 하루씩 안식일을 지키며 구원을 기억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다. 십계명 돌판에 직접 세겨 주셨으며 어기는 자는 죽게 될 것을 아주 엄히 말씀하셨다. 안식일을 범한자의 형벌은 대속죄일 범한 자의 형벌보다 더 엄하다. - 이스라엘 유병성 목사
- 레23:27-30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 출31:13-15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③ 하나님의 샬롬을 기억하고 소망함
-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완전하게 창조하시고 일곱째날 쉬신 것을 기념한다(창2장) 하나님의 샬롬이 임한 것을 기념함이다. 에덴과 피조세계는 더 이상 손 댈 것이 없이 완전하다. 어떤 부족과 결핍도 없고, 부조화와 갈등도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죄가 없기 때문이다.
- 시내산에서 십계명으로 주신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고(출20장) 하나님의 구속을 기념한다(신5장) 죄와 사망의 세상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에덴의 샬롬을 기억하고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실 하나님의 샬롬을 기대하는 날이다.
-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식일은 아무 일도 안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샬롬을 체험하는 날이다. 노동금지는 하나님의 샬롬을 기억하기 위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으로 새언약이 시작되었다. 구약의 모든 절기와 율법들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 역할을 다했다. 옛언약은 새언약으로 완성되었다. 구약의 안식일은 성취되었으므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주일에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샬롬을 미리 체험한다.
- 참고로, 주일예배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언약(신약)이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하는 특별선언이다. 성전파괴 이전까지 초대교회는 주일예배를 드렸지만 토요안식일에도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고 건물성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전파괴 이후 초대교회는 토요안식일에 모이지 않고 주일예배를 지킴으로 유대교와 완전히 구별된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는 로마제국 내에서 교회는 하나의 통일된 교리를 확정하라고 말했다. 교회는 삼위일체와 주일예배를 정통교리로 제출했다. 콘스탄틴은 초대교회가 내린 결론을 기독교의 정통교리로 발표하고 그대로 시행했다. 주일예배는 콘스탄틴의 명령이 아닌 초대교회의 신학적 결정이다.
- 하나 더, 부활절은 매년 날자가 변동된다. 대략 3월 말에서 4월 중순 사이에서 계속 바뀐다. 그리스도는 유월절 저녁식사 후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셨다. 부활절은 유월절에 맞추면 쉽게 날자가 정해진다. 그러나 교회는 춘분(3.21)이후 만월이 지난 첫 안식일 다음날인 주일을 부활절로 정했다. 이는 유대인의 유월절이 음력이기에 매년 요일이 바뀌므로 부활절을 유월절에 맞추면 매년 요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월절에 맞추면 정확한 날자를 기념하게 되고, 주일에 맞추면 유월절과 상관없게 된다. 교회는 주일을 선택했다(파스하 논쟁). 이 결정은 교회가 주일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가를 보여준다
(2)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샬롬을 가져다준다.
① 샬롬 – 하나님의 임재에서 오는 평안(평화,안식)
- 복음은 죄용서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적대적 원수됨을 종결시키고 우리에게 샬롬을 가져다주었다. 복음은 나와 나 사이, 나와 이웃사이에 샬롬을 준다. 복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는 없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해서 연결된 하나의 교회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시다.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
- 엡2:14-18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② 문제와 고난이 없는 에덴의 샬롬이 아님
- 우리는 보통, 평화(평안)를 전쟁이나 문제가 없는 상태로 오해하기 쉽다. 샬롬은 훨씬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샬롬은 전쟁이나 문제가 없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이다. 샬롬은 하나님의 충만하신 임재와 통치에서 오는 하나님 백성들의 평안, 안식이다. 로마제국의 팍스(Pax)은 힘에 의한 평화이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오는 샬롬을 말한다. 이러한 샬롬은 에덴에서 원형으로 완전히 이루어졌고, 범죄 이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구속사의 모형으로 때때로 나타났다.
- 에덴에서 샬롬은 문제와 어려움이 전혀 없는 평안과 안식이었다. 사람의 죄가 없고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안(샬롬)은 에덴에서 있었고 새하늘과 새땅에서만 가능하다. 죄와 사망 사탄이 심판되고 온 세상이 다시 첫창조의 완전함을 회복완성하는 그때에 이루어진다. 주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 전까지, 에덴의 샬롬은 결코 없다. 고난 없는 샬롬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
③ 문제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샬롬/평안 평화 안식...
- 이 땅에서는 에덴의 샬롬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샬롬이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체험했다. 하나님은 성경인물들에게 문제와 고난을 없애지 않으시고 고난을 통과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이 사울에게 고난당할 때 그 문제를 없애주지 않으셨다. 십여년의 긴 세월 동안 묵묵히 함께하시며 다윗이 고난을 통과하게 하셨다. 요셉, 다니엘... 성경의 모든 인물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샬롬을 체험했다.
- 고난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축복의 도구이다. 고난이 없다면 사람은 죄의 본성대로 교만해진다. 한사람도 예외가 없다. 고난을 속에서 죄인의 형상이 벗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다. 이런 면에서 고난은 축복이다. 단 하나님과 함께하며 고난을 통과하는 사람일 경우를 말한다.
(3)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체험하는 방법
① 보혜사 성령님이 계심을 믿고 의지할 것 (요14장)
- 성만찬 강화는 곧이어 닥칠 핍박과 어려움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수 믿으면 고난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예수 믿기에 새로운 고난을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체험하는 방법을 말씀하여 주셨다.
-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또 우리에게 성령으로 다시 오셨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므로,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이시다. 지금 하늘보좌에 계신 그리스도와 지금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분명 물리적으로 구분되나 실제 사역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성령님은 자기 일을 하시지 않고 그리스도의 일을 하신다.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의를 행하도록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먼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라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함께하신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이것을 믿고 확신하자.
- 요14:16-1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② 포도나무 가지에 붙어있으면 됨 (요15장)
- 포도나무 비유는 예수님 대신 사역을 시작할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열매는 우리가 맺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다. 가지는 결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가지의 할 일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이다. 에덴의 첫 아담처럼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의지하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임을 명심하라.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기억하고 모든 일에 주님께 굴복하라.
③ 무엇이든지 주님께 기도하고 아뢸 것 (요16장)
- 기도는 예수께서 주되시고 나는 순종하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행위다. 기도는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행위다.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그 응답은 주님이 원하시는 결과로 오고 그 내용은 반드시 옳다. 내가 원하는 응답을 쟁취하려는 것은 우상숭배 기도다. 이런 기도는 오히려 죄를 더욱 강화시킨다. 주님께 기도함이 아니다. 기도는 내 뜻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도록 구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샬롬이 임한다.
- 요14:26-2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결론과 적용>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통과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1) 고난은 구원의 필수과정이다. 고난은 그대로 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2) 하나님이 구부리실 때는 버티지 말고 구부러지라. 나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계획을 신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