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계시록(40) - 새하늘과 새땅, 에덴의 회복과 완성 (계21:1-8)
Author
GOSPEL323
Date
2021-07-1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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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40) - 새하늘과 새땅, 에덴의 회복과 완성 (계21:1-8)
1. 하나님 나라 에덴
(1) 에덴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 나라였다.
- 하나님의 창조경륜(목적)은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심이다. 에덴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좌정하시고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거룩한 자녀들이 온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 나라를 계획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나님께서 6일간의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날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며 안식하실 때, 모든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샬롬(평화,안식)이 임했다.
(2)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 아담의 불순종으로 에덴은 상실되고 하나님의 창조경륜은 파기되었다. 선악과 금령은 자유인격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덴)를 유지하는 법이었다.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함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겠다고 선언하여 하나님 나라 언약을 파기하였다. 언약이 파기되는 순간 아담은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모든 피조세계에는 죽음이 임했다. 에덴은 상실되고 그룹천사가 화염검으로 지킨다.
- 하나님 나라 언약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졌지만 그 결과는 모든 피조세계에 미쳤다. 아담의 불순종(죄)로 세상은 죄와 사탄 사망의 나라가 되었다. 피조물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심지어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에덴의 질서와 조화는 없어지고 세상은 사람의 죄로 인한 파괴와 죽음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피조물들은 아무런 죄도 없고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 자기 역할을 수행했지만, 대리통치자 사람의 타락으로 고통을 당한다. 피조물들은 부활의 때가 이르러 죄가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타남을 고대하고 있다.
- 창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 롬8:19-23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 새하늘과 새땅, 에덴의 회복과 완성
(1) 모든 것이 불에 타서 없어지고, 이 세상은 새하늘과 새땅이 된다(1절)
① 에덴을 상실한 처음하늘과 처음땅
- 지금까지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은 세상나라 죄의 문명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왕 되심이 없고 자기가 하나님 된 사람의 죄만 있다. 지금까지 사람이 땅위에 세운 국가영토... 그 안의 있는 유형의 모든 물건과 건물, 무형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모든 분야, 모든 시스템이 그렇다.
- 성경에서 사탄은 이 세상 임금이다. 사탄은 권세가 결박되어 땅으로 내어쫓겼지만 여전히 공중 권세 잡은 자다. 사탄의 대리자, 열뿔짐승(정치권력자)은 바다에서 올라오고, 두뿔짐승(종교권력자)은 땅에서 올라와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한다. 이처럼 아담의 범죄로 첫창조의 하늘과 땅과 바다는 죄와 사망, 사탄으로 더럽혀졌다.
- 이 땅은 완전히 불에 타서 없어진다. 새하늘과 새땅은 이 땅을 청소하고 수리해서 가장 최상의 상태로 발전시킨 모습이 아니다. 지금과 완전 다른 세상이다. 지금까지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은 불에 타서 없어진다. 사람들을 모두 부활해서 죽지 않는 몸이 되는데 세상 건물들을 그대로 남아있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 집 빌딩 도로 지하철... 모든 시설물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해보라. 부활한 사람들이 그 시설을 사용하고 거기 살아야 하나? 타락의 온상이던 퇴폐술집 카지노... 부활한 성도들은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 모든 건물을 부수고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하늘과 새땅에는 건물해체 및 재건축 전문가들이 최고 필요하겠다(joke) 모든 것은 불타 없어질 것이다. 죄가 지배하는 이 땅과 전혀 다른 새창조다.
- 벧후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1절) 이 말은 새하늘과 새땅에는 바다가 없음이 아니다. 처음하늘. 처음땅 처음바다 모두 없어지고 새창조가 되었다는 말이다. 부활한 성도가 들어갈 새하늘과 새땅에는 바다가 있다. 비록 성경에서 바다가 죽은 자들의 시체를 담고 있고(계20장) 열뿔짐승이 나오는 출현지가 되며(계13장), 용(리워야단)의 거처로 묘사되긴 했지만(사27장) 모두 범죄 이후 이야기다. 범죄 이전 첫창조 때 바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곳이다. 새하늘과 새땅에는 역시 새바다가 있고, 그 바다는 하늘성전의 유리바다와 같이 완전할 것이다. 새하늘과 새땅만 말함은 사람이 거할 공간으로서 축약함이다. 새하늘과 새땅이 되도 사람은 바다 속에서 살지 않는다.
② 에덴을 회복완성 한 새하늘과 새땅
- 주께서 재림하셔서 죄인과 사탄을 지옥불못에 심판하신 후 모든 피조세계도 다시 정결케 된다. 아담의 죄로 더렵혀진 처음하늘과 처음땅은 불에 타서 없어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된다. 그곳에는 죄와 사탄이 없고 사망도 없다. 세상은 다시 에덴의 첫창조를 회복하고 완성한다. 새하늘과 새땅은 첫창조/이 땅의 회복과 완성(새창조)이다. 그 의미를 분명히 하자.
- 첫째, 새하늘과 새땅은 에덴을 회복완성(새창조)함이다. 새하늘과 새땅은 과거의 에덴으로 복귀가 아닌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그 후손들이 이 땅에 세웠을 에덴의 완성을 이룰 것이다. 만약 새하늘과 새땅이 에덴의 회복으로만 그치면, 부활한 수많은 성도들은 아담과 하와 이외에 사람이 한 번도 살지 않은 곳에 동시에 들어가게 된다. 부활한 성도들이 가서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 문화(?)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부활한 성도들이 가서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 문화(?)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창조경륜이 중단된 이래 흘러왔을 수많은 시간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창조경륜은 그 시간을 잃어버린 실패로 남는다. 이는 옳지 못하다. 하나님은 타락한 수많은 사람을 다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범죄 하지 않았으면 만들었을 하나님 나라의 미래 완성을 직접 만들어 주신다. 문화명령은 에덴을 완성하기 위해 주어졌기에, 에덴이 완성된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문화명령이 필요치 않다. 부활한 성도는 완성된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 그곳을 다스릴(관리) 뿐이다. 그래서 새하늘과 새땅은 새창조(완성)이다.
- 둘째, 새하늘과 새땅(새창조)는 이 땅에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죄로 더렵혀진 이 땅(지구)을 소멸(멸절)치 않으시며, 새로운 별(공간)에 새하늘과 새땅을 만들지 않으신다. 새하늘과 새땅은 첫창조의 연속이되 첫창조를 회복완성 하는 새창조다. 죄인을 구원해서 새로운 피조물, 새사람 되게 하셨듯(새창조), 하나님은 이 땅을 다시 에덴으로 회복완성(새창조)해주신다. 루터교회는 첫창조와 단절을 주장하나(소멸론) 개혁교회는 첫창조의 연속을 주장한다(갱신론) 단 갱신론은 이 땅이 불에 타서 완전히 없어지는 새창조임을 강조해야 한다.
(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2절)
① 에덴의 지리적 위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
- 에덴은 이 땅에 존재했던 최초의 또한 원형의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은 에덴에 충만히 임재하시고 사람(아담,하와)은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의 백성으로 살아갔다. 에덴의 샬롬(평안,안식)은 고난이 없고 재물이 풍부할 때 얻어지지 않는다. 샬롬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 때문이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관계가 될때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샬롬이 이루어진다. 에덴은 바로 그곳이었다.
- 티그리스강 유브라데스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의 이름이지만, 그 강의 현재의 위치가 에덴 때와 동일하다고 증명할 수 없다. 홍수심판 이후 물이 빠지는 가운데 융기와 침강의 대격변이 일어나 땅의 지형이 모두 바뀌었다. 땅의 높낮이가 바뀌면 흘러가는 강의 위치는 완전히 달라지기에 에덴의 지리적 위치는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② 예루살렘은 신학적 의미의 에덴.
- 에덴의 위치는 신학적으로 찾아야 한다. 범죄후 사람은 주로 에덴의 동쪽에 기거했다. 그들은 에덴의 동쪽을 배회하며 노아 홍수 때까지 살았다. 홍수심판 이후에 사람들은 계속 에덴의 동쪽으로 나아가고 시날(바벨)평지에 바벨론을 세우고 바벨탑을 쌓는다. 에덴의 동쪽이 세상나라 바벨론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하시는 바벨론의 서쪽 예루살렘(가나안)은 신학적 의미의 하나님 나라 에덴이다. 예루살렘의 기혼샘은 그 이름이 매우 흥미롭다. 에덴동산 기혼강의 발원지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에덴동산으로 생각하며 불렀음에 틀림없다. 예루살렘은 뜻은 "평화의 도시"로 번역되나 성경과 원어의 의미를 많이 약화시킨 의역이다. 직역하면 하나님의 평안과 안식이 있는 “샬롬의 터(장소)” 곧 에덴이다.
- 예루살렘은 에덴의 하나님 나라를 모델로 현시함이다.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로 중단된 당신의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을 다시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에덴을 보여주는 장소를 정하시고 그곳에 임재하셨다. 그곳이 예루살렘이며 그곳이 바로 성전이다. 이후부터 에덴의 동쪽 바벨론(성)은 세상나라를 대표상징하고, 성전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좌정하시고 그의 거룩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에덴을 의미하게 된다.
(3)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7절)
① 새예루살렘성은 구원받은 성도들
- 천사가 어린양의 아내라 보여준 것은 새예루살렘성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건물과 결혼하실 리가 없기에 새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다.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2)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간다.
- 새하늘과 새땅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고, 영생의 상급을 얻은 부활한 성도들에게만 주어진다. 이들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던 자들이다. 이들은 세상나라 바벨론 백성들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물질풍요와 사치향락으로 유혹하는 음녀를 따르지 않고 로마황제의 핍박과 거짓선지자들의 우상숭배를 거부하며 그리스도 십자가를 따랐다. 이들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리스도를 형상을 닮아갔던 사람들이다. 광야의 고난이 그들로 하여금 죄의 본성을 제어하고 다듬어 하나님의 의(형상)이 나타나게 했다.
- 계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② 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 새하늘과 새땅에는 눈물이 없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죄와 사탄이 없고 사망도 없다. 그곳에는 눈물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도 없다. 극심한 수고(창3장), 사람과의 갈등(창4장) 갑작스런 사건사고(잠27장) 육체의 노병사(늙고,병들고,죽음,시90편) 마음의 수고와 무거운 짐(마11장)이 없다.
- 계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결론 및 적용>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갈 성도들
(1) 이기는 자들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니...
- 요한계시록은 황제숭배 거부로 인한 육체적 핍박과 경제적 박해의 상황에 기록되었다. 이기는 자들은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 끝까지 그리스도를 따라 순종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음녀의 유혹과 짐승의 핍박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신부로 믿음을 지키던 자들이었다.
- 계21:7-8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 오늘 우리 상황에서, 이기는 자들은...
- 고난은 광야학교의 핵심 과목이며 성도를 새하늘과 새땅에 거할 백성으로 만드는 필수과정이다. 사탄이 주는 경제와 삶의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자. 코로나 시대의 우리 삶은 매우 불확실하고 어렵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성도는 사탄의 위협보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신앙은 취미생활이 아니다. 신앙은 내 삶의 전부로 생각하고 따라야 바르게 믿는다.
1. 하나님 나라 에덴
(1) 에덴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 나라였다.
- 하나님의 창조경륜(목적)은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심이다. 에덴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좌정하시고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거룩한 자녀들이 온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 나라를 계획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나님께서 6일간의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날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며 안식하실 때, 모든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샬롬(평화,안식)이 임했다.
(2)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 아담의 불순종으로 에덴은 상실되고 하나님의 창조경륜은 파기되었다. 선악과 금령은 자유인격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덴)를 유지하는 법이었다.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함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겠다고 선언하여 하나님 나라 언약을 파기하였다. 언약이 파기되는 순간 아담은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모든 피조세계에는 죽음이 임했다. 에덴은 상실되고 그룹천사가 화염검으로 지킨다.
- 하나님 나라 언약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졌지만 그 결과는 모든 피조세계에 미쳤다. 아담의 불순종(죄)로 세상은 죄와 사탄 사망의 나라가 되었다. 피조물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심지어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에덴의 질서와 조화는 없어지고 세상은 사람의 죄로 인한 파괴와 죽음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피조물들은 아무런 죄도 없고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 자기 역할을 수행했지만, 대리통치자 사람의 타락으로 고통을 당한다. 피조물들은 부활의 때가 이르러 죄가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타남을 고대하고 있다.
- 창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 롬8:19-23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 새하늘과 새땅, 에덴의 회복과 완성
(1) 모든 것이 불에 타서 없어지고, 이 세상은 새하늘과 새땅이 된다(1절)
① 에덴을 상실한 처음하늘과 처음땅
- 지금까지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은 세상나라 죄의 문명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왕 되심이 없고 자기가 하나님 된 사람의 죄만 있다. 지금까지 사람이 땅위에 세운 국가영토... 그 안의 있는 유형의 모든 물건과 건물, 무형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모든 분야, 모든 시스템이 그렇다.
- 성경에서 사탄은 이 세상 임금이다. 사탄은 권세가 결박되어 땅으로 내어쫓겼지만 여전히 공중 권세 잡은 자다. 사탄의 대리자, 열뿔짐승(정치권력자)은 바다에서 올라오고, 두뿔짐승(종교권력자)은 땅에서 올라와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한다. 이처럼 아담의 범죄로 첫창조의 하늘과 땅과 바다는 죄와 사망, 사탄으로 더럽혀졌다.
- 이 땅은 완전히 불에 타서 없어진다. 새하늘과 새땅은 이 땅을 청소하고 수리해서 가장 최상의 상태로 발전시킨 모습이 아니다. 지금과 완전 다른 세상이다. 지금까지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은 불에 타서 없어진다. 사람들을 모두 부활해서 죽지 않는 몸이 되는데 세상 건물들을 그대로 남아있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 집 빌딩 도로 지하철... 모든 시설물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해보라. 부활한 사람들이 그 시설을 사용하고 거기 살아야 하나? 타락의 온상이던 퇴폐술집 카지노... 부활한 성도들은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 모든 건물을 부수고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하늘과 새땅에는 건물해체 및 재건축 전문가들이 최고 필요하겠다(joke) 모든 것은 불타 없어질 것이다. 죄가 지배하는 이 땅과 전혀 다른 새창조다.
- 벧후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1절) 이 말은 새하늘과 새땅에는 바다가 없음이 아니다. 처음하늘. 처음땅 처음바다 모두 없어지고 새창조가 되었다는 말이다. 부활한 성도가 들어갈 새하늘과 새땅에는 바다가 있다. 비록 성경에서 바다가 죽은 자들의 시체를 담고 있고(계20장) 열뿔짐승이 나오는 출현지가 되며(계13장), 용(리워야단)의 거처로 묘사되긴 했지만(사27장) 모두 범죄 이후 이야기다. 범죄 이전 첫창조 때 바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곳이다. 새하늘과 새땅에는 역시 새바다가 있고, 그 바다는 하늘성전의 유리바다와 같이 완전할 것이다. 새하늘과 새땅만 말함은 사람이 거할 공간으로서 축약함이다. 새하늘과 새땅이 되도 사람은 바다 속에서 살지 않는다.
② 에덴을 회복완성 한 새하늘과 새땅
- 주께서 재림하셔서 죄인과 사탄을 지옥불못에 심판하신 후 모든 피조세계도 다시 정결케 된다. 아담의 죄로 더렵혀진 처음하늘과 처음땅은 불에 타서 없어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된다. 그곳에는 죄와 사탄이 없고 사망도 없다. 세상은 다시 에덴의 첫창조를 회복하고 완성한다. 새하늘과 새땅은 첫창조/이 땅의 회복과 완성(새창조)이다. 그 의미를 분명히 하자.
- 첫째, 새하늘과 새땅은 에덴을 회복완성(새창조)함이다. 새하늘과 새땅은 과거의 에덴으로 복귀가 아닌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그 후손들이 이 땅에 세웠을 에덴의 완성을 이룰 것이다. 만약 새하늘과 새땅이 에덴의 회복으로만 그치면, 부활한 수많은 성도들은 아담과 하와 이외에 사람이 한 번도 살지 않은 곳에 동시에 들어가게 된다. 부활한 성도들이 가서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 문화(?)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부활한 성도들이 가서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 문화(?)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창조경륜이 중단된 이래 흘러왔을 수많은 시간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창조경륜은 그 시간을 잃어버린 실패로 남는다. 이는 옳지 못하다. 하나님은 타락한 수많은 사람을 다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범죄 하지 않았으면 만들었을 하나님 나라의 미래 완성을 직접 만들어 주신다. 문화명령은 에덴을 완성하기 위해 주어졌기에, 에덴이 완성된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문화명령이 필요치 않다. 부활한 성도는 완성된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 그곳을 다스릴(관리) 뿐이다. 그래서 새하늘과 새땅은 새창조(완성)이다.
- 둘째, 새하늘과 새땅(새창조)는 이 땅에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죄로 더렵혀진 이 땅(지구)을 소멸(멸절)치 않으시며, 새로운 별(공간)에 새하늘과 새땅을 만들지 않으신다. 새하늘과 새땅은 첫창조의 연속이되 첫창조를 회복완성 하는 새창조다. 죄인을 구원해서 새로운 피조물, 새사람 되게 하셨듯(새창조), 하나님은 이 땅을 다시 에덴으로 회복완성(새창조)해주신다. 루터교회는 첫창조와 단절을 주장하나(소멸론) 개혁교회는 첫창조의 연속을 주장한다(갱신론) 단 갱신론은 이 땅이 불에 타서 완전히 없어지는 새창조임을 강조해야 한다.
(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2절)
① 에덴의 지리적 위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
- 에덴은 이 땅에 존재했던 최초의 또한 원형의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은 에덴에 충만히 임재하시고 사람(아담,하와)은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의 백성으로 살아갔다. 에덴의 샬롬(평안,안식)은 고난이 없고 재물이 풍부할 때 얻어지지 않는다. 샬롬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 때문이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관계가 될때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샬롬이 이루어진다. 에덴은 바로 그곳이었다.
- 티그리스강 유브라데스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의 이름이지만, 그 강의 현재의 위치가 에덴 때와 동일하다고 증명할 수 없다. 홍수심판 이후 물이 빠지는 가운데 융기와 침강의 대격변이 일어나 땅의 지형이 모두 바뀌었다. 땅의 높낮이가 바뀌면 흘러가는 강의 위치는 완전히 달라지기에 에덴의 지리적 위치는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② 예루살렘은 신학적 의미의 에덴.
- 에덴의 위치는 신학적으로 찾아야 한다. 범죄후 사람은 주로 에덴의 동쪽에 기거했다. 그들은 에덴의 동쪽을 배회하며 노아 홍수 때까지 살았다. 홍수심판 이후에 사람들은 계속 에덴의 동쪽으로 나아가고 시날(바벨)평지에 바벨론을 세우고 바벨탑을 쌓는다. 에덴의 동쪽이 세상나라 바벨론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하시는 바벨론의 서쪽 예루살렘(가나안)은 신학적 의미의 하나님 나라 에덴이다. 예루살렘의 기혼샘은 그 이름이 매우 흥미롭다. 에덴동산 기혼강의 발원지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에덴동산으로 생각하며 불렀음에 틀림없다. 예루살렘은 뜻은 "평화의 도시"로 번역되나 성경과 원어의 의미를 많이 약화시킨 의역이다. 직역하면 하나님의 평안과 안식이 있는 “샬롬의 터(장소)” 곧 에덴이다.
- 예루살렘은 에덴의 하나님 나라를 모델로 현시함이다.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로 중단된 당신의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을 다시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에덴을 보여주는 장소를 정하시고 그곳에 임재하셨다. 그곳이 예루살렘이며 그곳이 바로 성전이다. 이후부터 에덴의 동쪽 바벨론(성)은 세상나라를 대표상징하고, 성전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좌정하시고 그의 거룩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에덴을 의미하게 된다.
(3)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7절)
① 새예루살렘성은 구원받은 성도들
- 천사가 어린양의 아내라 보여준 것은 새예루살렘성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건물과 결혼하실 리가 없기에 새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다.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2)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간다.
- 새하늘과 새땅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고, 영생의 상급을 얻은 부활한 성도들에게만 주어진다. 이들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던 자들이다. 이들은 세상나라 바벨론 백성들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물질풍요와 사치향락으로 유혹하는 음녀를 따르지 않고 로마황제의 핍박과 거짓선지자들의 우상숭배를 거부하며 그리스도 십자가를 따랐다. 이들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리스도를 형상을 닮아갔던 사람들이다. 광야의 고난이 그들로 하여금 죄의 본성을 제어하고 다듬어 하나님의 의(형상)이 나타나게 했다.
- 계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② 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 새하늘과 새땅에는 눈물이 없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죄와 사탄이 없고 사망도 없다. 그곳에는 눈물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도 없다. 극심한 수고(창3장), 사람과의 갈등(창4장) 갑작스런 사건사고(잠27장) 육체의 노병사(늙고,병들고,죽음,시90편) 마음의 수고와 무거운 짐(마11장)이 없다.
- 계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결론 및 적용>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갈 성도들
(1) 이기는 자들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니...
- 요한계시록은 황제숭배 거부로 인한 육체적 핍박과 경제적 박해의 상황에 기록되었다. 이기는 자들은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 끝까지 그리스도를 따라 순종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음녀의 유혹과 짐승의 핍박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신부로 믿음을 지키던 자들이었다.
- 계21:7-8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 오늘 우리 상황에서, 이기는 자들은...
- 고난은 광야학교의 핵심 과목이며 성도를 새하늘과 새땅에 거할 백성으로 만드는 필수과정이다. 사탄이 주는 경제와 삶의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자. 코로나 시대의 우리 삶은 매우 불확실하고 어렵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성도는 사탄의 위협보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신앙은 취미생활이 아니다. 신앙은 내 삶의 전부로 생각하고 따라야 바르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