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계시록(35) -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예복 (계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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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1-06-1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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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35) -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예복 (계19:1-10)
1. 할렐루야 찬양 -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1) 음녀(바벨론)을 심판하심
- 하늘에서 울려나는 할렐루야 찬양은 하나님께서 참되고 의로우신 분임을 찬양한다. 그 근거를 짐승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 교회를 핍박하던 세상사람들, 바벨론 백성들을 심판하심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세상 죄인들을 향해 오래 참으시며 계속 구원으로 초청하셨다. 교회로 하여금 두증인 사역을 감당하게 하사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하나님은 그동안 너무도 오랫동안 기다리시고 피조물들의 반역을 참아주셨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탐욕의 우상을 섬기며 온갖 더러운 음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끝까지 구원의 길을 거부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심은 너무도 당연하다. 심판은 하나님의 의를 보여준다
- 계19:2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2) 주의 백성, 신부(교회)를 구원하심
-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죄인, 음녀 바벨론을 심판하실 뿐 아니라 자기백성,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구원하심이다. 교회(성도)도 본래 죄의 욕심을 따라 지내던 바벨론 죄인들이었지만, 복음의 소식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다. 그들은 성령의 새롭게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바로 이들 교회를 구원하심이다. 구원의 길을 직접 준비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전해주신 후, 그들을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정말 의로우시다.
- 계19:6-8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2.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예복
(1) 창조경륜(=하나님 나라 언약) vs 혼인예식
① 에덴의 첫언약, 옛언약, 새언약 -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 세우심
- 창조경륜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곧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께서 왕되시고 사람은 그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심이다. 에덴은 하나님의 나라의 원형이며 범죄한 인류가 다시 회복하고 완성해야할 구원의 모델이다.
- 에덴의 첫언약은 선악과 금령의 형태로 주어졌다(창2: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선악과 금령에 순종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백성가운데 거하신다. 주의할 점은 선악과 금령이 하나님 나라 백성 되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 됨을 유지하는 조건이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부터 하나님 백성으로 창조됐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셨다. 첫언약이 단순한 선악과 금령 하나로 주어짐은 아담이 범죄이전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모든 행동이 거룩했기에 그가 조심하고 금지해야 할 것을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아담은 범죄했고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이 깨어지며 세상은 죄와 사망의 나라가 되었다.
- 옛언약은 하나님께서 창조경륜을 회복완성을 위해 시내산에서 주신 언약이다. 세상이 다시 에덴의 하나님 나라가 되려면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성막계시와 율법이 주어졌다. 시내산 옛언약이 선악과 금령보다 훨씬 복잡한 형태로 주어짐은 에덴에서와 달리 사람은 이미 죄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타락한 죄인이 거룩함을 얻으려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할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이 너무 많았다. 성막과 율법의 세부조항에 집중하다 보면 옛언약을 주신 이유를 망각하기 쉽다. 하나님이 왕되시고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하나님 백성되기 위해 주심이다. 창조경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방법으로 주심을 잊지 말라.
- 새언약은 하나님께서 구원계시를 완전히 드러내시는 가운데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언약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백성이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됨이다. 그것이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께서 죄인들 가운데 거하심이다. 이때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며 거룩해지게 된다. 새언약도 창조경륜 하나님 나라를 회복 완성하는 방법임을 잊지 말자. 죄인이 다시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 위해, 또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왕으로 임재하시기 위해, 에덴의 첫언약은 선악과 금령에 순종하라는 것이고, 옛언약은 성막계시와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며, 새언약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성령을 모셔 그리스도와 연합되라는 것이다. 새언약은 옛언약의 반대가 아닌 성취와 완성임을 기억하자.
② 결혼은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의 삶의 모습.
- 성경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언약으로 맺어졌으며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께서 왕 되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임이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아담과 선악과 금령을 통해 첫언약을 맺으셨고, 범죄 이후 시내산에서 옛언약을 맺으셨다. 이 언약체결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 또한 구약선지자들은 언약체결을 하나님과의 혼인맺음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은 남편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아내가 된다. 왕으로서 남편으로서 하나님은 자기백성에게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시고 완전하시므로 나라언약(왕과 백성)이건 결혼언약(남편과 아내)이건 그 책망은 백성의 신실치 못한 태도에 관한 것이다. 결혼언약은 주로 구약예언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음행을 책망할 때 많이 쓰인다. 왕으로서 남편으로서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고 불평하는 구절은 성경 그 어디에도 없다.
- 사54:5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 렘31: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 엡5:22-2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 유대인들의 혼인예식과 성도의 구원
① 혼인약속(=정혼)과 기다림 –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마1:18)
- 얼마 전 갈릴리 가나혼인잔치 다큐영화가 나왔는데, 갈릴리 혼인예식과 주의 재림을 연결하는 큰 그림은 신선하고 좋으나 처음부터 휴거와 7년대환란을 말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는 점이 약점이다. 첫째, 신랑이 신부될 여인에게 가서 청혼할 때(정혼) 포도주를 권하고 신부가 포도주를 받아 마시면 정혼이 성립된다는 것... 이것은 성만찬 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 다시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눅22:18)는 의미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둘째, 신랑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 신부를 맞을 집을 준비하고 아버지의 허락을 기다리는 것... 이것은 성만찬때 그리스도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집을 예비하러 간다는 말씀의 근거가 된다(요14:2) 셋째, 신랑이 오는 날은 아무도 모르며 아버지만 알고 있고 갑작스럽게 밤중에 온다는 것...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밤에 오신다고 말씀하신 근거가 된다(살전5:2) 넷째, 아버지의 허락이 나면 신랑이 가서 신부를 가마에 태워 들려 데려오는데 이는 성도의 들림받음(휴거)의 근거가 된다(살전4:16-17). 이 영화는 타큐형식을 띠나 포도주의 의미와 혼인예식에 대한 좀 더 객관적 근거가 필요하며, 모든 내용을 의도적으로 휴거와 7년대환란에 맞추는 몇가지 아쉬움을 가진다.
- 우리는 1세기 유대인혼인예식 자료가 없기에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예수님 당시 결혼관습을 살펴본다. 결혼은 정혼과 기다림,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옴, 혼인잔치(결혼예식)의 단계가 있다. 먼저 정혼은 신랑과 신부가 결혼하기로 약속한 단계다. 정혼은 결혼으로 인정될 만큼 구속력이 있으며 이들은 부부로 인정되나 아직 함께 살지는 않는다. 이때 신랑과 신부는 서로 떨어져서 혼인예식을 준비하며 살게 된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그렇다.
- 신랑은 신부에게 결혼약속(정혼)을 하고 떠나간다. 신랑은 자기 집에 돌아가서 신부와 정식 혼인예식을 치루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한다. 신부는 신랑이 혼인예식 준비를 마치고 자신을 데려갈 날을 기다린다. 신부는 다시 올 신랑을 기다린다. 이 기간 동안 신부는 신랑을 사모하며 정숙함을 유지한다. 신부는 그녀의 깨끗한 결혼예복을 준비하고 혼인잔치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신부는 정혼 후 혼인예식까지 대략 1년 정도의 기다림이 있다고 한다.
- 그리스도께서 성도(교회)와 정혼하시고 떠나가셨다. 성만찬에서 새언약이 체결되고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 신랑 되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세상에 남은 신부(교회)는 신랑의 약속을 기억하며 혼인예식 때 입을 예복을 준비한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정혼했지만 아직 혼인예식을 하지 않아 함께 살지는 못하고 있다. 신랑 그리스도는 이 땅에 남겨진 신부 교회와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성령으로 함께하며 늘 교통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혼인예식 치루고 함께 살 것을 기다리며 신부예복을 준비한다.
②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는 날 – 열처녀 비유(마25:1-13)
- 때가 돼서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온다. 이날은 신랑이 신부에게 정해준 날이다. 유대인들은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되기에 이때는 해가 진 저녁이 된다. 그날 신부는 예복을 입고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기다린다. 신부의 친구들은 들러리로서 밤중에 문 밖에 나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함을 도와준다. 열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친구 들러리들이며 신랑이 저녁에 오기로 되어 있으나 무슨 일로 늦어져 밤늦게 도착해서 벌어진 일이다.
- 교회는 혼인예식 날에 신랑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는 신부와 같다. 교회는 이미 성만찬 새언약 체결에서 그리스도와 혼인약속(정혼)을 했으나 아직 혼인잔치(결혼)은 하지 못해 함께 거하지 못한다. 교회는 정혼한 신부로서 혼인잔치 후 신랑과 함께 거할 것을 기다리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막 혼인약속(정혼)한 신부와 오늘밤 혼인예식(결혼)을 하는 신부의 자세는 다르다. 주님은 열처녀 비유에서 교회는 오늘 혼인예식을 치루는데 지금 신랑이 더디 오고 있어 밤이 늦었다고 하신다. 주의 재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그렇다.
③ 혼인잔치(결혼) – 왕의 아들 혼인잔치 예복(마22:1-14)
- 그리스도는 재림해서 그의 신부(교회)와 혼인잔치를 치룬다. 음녀 바벨론은 불로 심판하고 신부 교회(새예루살렘)과는 혼인잔치를 치루심이다.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신부예복이다. 왕의 아들 혼인잔치에는 예복이 필요하다. 왕에게 나아가는 자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예복이 필요하다. 예복이 없는 자는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애통한다.
-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옛언약과 새언약의 성취이며 에덴의 첫언약과 창조경륜의 회복 완성을 의미한다. 이로서 죄와 사탄은 심판받고 피조세계는 다시는 사망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이 된다. 그곳에서 성도는 신랑되신 그리스도 주님과 함께하며, 성령내주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순종하고 섬기며 거룩한 백성으로 영원토록 살아간다. 이것이 생명이고 영생이다.
- 본문에서, 성도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신부로 참여하고(7절) 초청객(9절)으로 초대받아 의아하지만, 신부는 교회공동체로서의 성도를 말하고 초청객은 교회의 개별 구성원으로서의 성도를 말한다. 둘을 다른 집단이 아니다. 동일한 성도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3)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였으니 이 세마포는 곧 성도의 옳은 행실이니라.
① 신부예복은 어린양의 피로 씻어 깨끗해진 예복
- 왕의 아들 혼인잔치(=결혼)에 들어가려면 예복이 필요하다. 신부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예복은 성도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말한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화염검 불로 탄다. 예복은 죄인이 더러운 죄를 벗고 거룩한 의인으로 변화됨을 말한다. 부활의 날에 완전 의인되지만, 부활이전에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의인된다. 그 옷은 하나님이 직접 입혀주신 의의 옷(의의 호심경)이며 구원의 옷(구원의 투구)이다. 그 옷은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희게 된 옷이다. 그리스도의 신부(교회)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 죄용서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 깨끗하게 됨이다. 신부예복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직접 입혀주신 의의 옷이다.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 사59:16-17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 사61:10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 계7:13-14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② 신부예복은 성도의 거룩한 변화를 말함
- 어린양 혼인잔치 신부예복은 빛나고 깨끗한 흰 세마포인데 이 세마포는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다. 신부예복은 상징이며 성도 자신이 죄인에서 의인으로 거룩하게 변화됨이다. 에덴의 첫언약과 옛언약 새언약은 모두 하나님 백성됨을 위하여 의롭고 거룩해지는 방법을 말한다. 에덴에서는 선악과 금령을 지키며 하나님께 순종하기, 옛언약에서는 율법규례에서 죄와 거룩을 배우고 성막규례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새언약에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내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모두 하나님의 의를 힘입은 거룩한 백성이 되는 방법이다.
③ 의롭다하심을 얻은(칭의) 성도는 의로워지다가(성화) 부활이후 거룩한 몸이 됨(영화)
- 옛언약은 새언약으로 말미암아 바르게 해석되고 성취되며 완성된다. 새언약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아니라면 옛언약은 결코 구원의 길이 될 수 없다. 어떠한 행위도 사람의 죄를 용서받게 못하며,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한다. 오직 그리스도 복음만이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주신다.
- 백마 타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며, 지상교회도 흰옷을 입고 있다. 지상교회가 입는 흰옷은 그리스도께서 의롭다고 해주신 칭의의 흰옷이다. 성도 자신은 아직 죄인이지만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당신의 의의 옷을 입혀주심이다. 그리스도의 옷은 성령으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며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성도는 아직 죄인이지만 칭의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와 연합되어 성령의 도우심으로 서서히 변화되어가고 있다.
- 성도의 삶에서 칭의와 성화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칭의의 연속이 성화며 성화의 단면이 칭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칭의와 성화는 반드시 분리해서 이해하고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칭의는 없어지고 성화만 남는다. 성화는 칭의의 결과이며, 칭의 받아야 성화됨을 분명히 해야 은혜복음이 되고 구원의 길이 된다. 성화는 칭의의 진실성을 입증하지만, 성화는 칭의의 전제조건이 결코 아니다.
- 혼인잔치 신부예복은 칭의의 예복을 입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교회가 주의 재림으로 부활해서 영화의 몸으로 변화됨을 말한다. 이때 성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처럼 죄와 사망이 없는 광체나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한다. 칭의로 시작된 거룩함이 성화를 통해 조금씩 변화되다가 부활의 날에 완전히 거룩하고 의로운 모습으로 변화됨이다. 성도의 옳은 행실 곧 빛나고 깨끗한 옷을 입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부활의 거룩한 몸으로 변화됨이다.
- 이때 비로소 사람과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경륜이 회복 완성된다. 세상은 다시는 죄와 사망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 에덴이 된다. 범죄이전 상태의 첫 에덴으로 리셋됨 아닌 범죄가 없었다면 인류가 만들었어야 하는 최종 에덴으로 완성됨이다.
- 첫에덴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다(창1:28) 홍수이후 노아에게는 생육번성 충만하라고만 하신다(창9:1) 범죄이후는 정복과 다스림이 없다. 짐승들은 죄로 오염된 사람을 두려워한다(창9:2) 새하늘과 새땅에서 성도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함은 없다. 이 충만한 숫자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 가운데서 자기 피로 구속하신다(마22:30) 그곳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대리통치자의 사역만 있다(계5:10) 그곳에서 성도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이요 정결한 아내로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서 살아간다. 다시는 범죄함이 없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음녀 바벨론의 멸망과 신부 교회의 구원을 대조하며 명확하게 보여준다.
<결론 및 적용>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다.
(1) 성도는 광야에서 신부예복을 준비한다.
- 광야는 거친 곳이다. 광야는 성도의 양육과 훈련의 장소다. 성도가 광야에서 입는 옷은 거칠고 초라해 보이나 신부예복이다. 영적인 눈을 떠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의의 옷이다. 칭의를 입어 성화되어 가는 삶이다. 생명의 향기가 난다. 음녀가 치장한 금은보석 진주, 자줏빛 옷, 금잔에 속지 말라. 음녀는 성도를 유혹하려고 쇼윈도에 진열된 사탄의 마네킹이다. 음녀의 짝퉁(가짜) 삶에 속지 말라. 멀리서 보면 화려해보이나 조금만 가까이 가면 죄의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결코 부러워하지도 관심 갖지도 말라.
(2) 혼인예식장에 세마포 입고 서있는 신부를 생각해보자
-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이듯, 모든 천만천사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입은 신부를 주목할 것이다. 그 옷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신부와 함께하신 증표다. 신부는 그리스도께서 정혼약속 때 주신 성령의 정혼반지(?)를 끼고 짐승의 핍박과 음녀의 유혹을 이겨낸 결과다. 피 흘리는 영적싸움이 그 옷에 묻어있다. 이제는 기다림도 영적싸움도 없다. 그리스도를 뵈오며 살아가는 영원한 천국잔치가 있을 뿐이다.
- 야곱의 예를 보면 유대인의 혼인잔치는 7일간 계속되니 하늘에서는 7년간 혼인잔치라고 하지말자. 이는 7년대환란의 기간을 말하기 위함이다. 부활이후 새하늘과 새땅의 삶은 혼인잔치 그 자체이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영원토록 천국잔치로 계속된다.
1. 할렐루야 찬양 -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1) 음녀(바벨론)을 심판하심
- 하늘에서 울려나는 할렐루야 찬양은 하나님께서 참되고 의로우신 분임을 찬양한다. 그 근거를 짐승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 교회를 핍박하던 세상사람들, 바벨론 백성들을 심판하심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세상 죄인들을 향해 오래 참으시며 계속 구원으로 초청하셨다. 교회로 하여금 두증인 사역을 감당하게 하사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하나님은 그동안 너무도 오랫동안 기다리시고 피조물들의 반역을 참아주셨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탐욕의 우상을 섬기며 온갖 더러운 음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끝까지 구원의 길을 거부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심은 너무도 당연하다. 심판은 하나님의 의를 보여준다
- 계19:2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2) 주의 백성, 신부(교회)를 구원하심
-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죄인, 음녀 바벨론을 심판하실 뿐 아니라 자기백성,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구원하심이다. 교회(성도)도 본래 죄의 욕심을 따라 지내던 바벨론 죄인들이었지만, 복음의 소식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다. 그들은 성령의 새롭게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바로 이들 교회를 구원하심이다. 구원의 길을 직접 준비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전해주신 후, 그들을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정말 의로우시다.
- 계19:6-8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2.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예복
(1) 창조경륜(=하나님 나라 언약) vs 혼인예식
① 에덴의 첫언약, 옛언약, 새언약 -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 세우심
- 창조경륜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곧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께서 왕되시고 사람은 그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심이다. 에덴은 하나님의 나라의 원형이며 범죄한 인류가 다시 회복하고 완성해야할 구원의 모델이다.
- 에덴의 첫언약은 선악과 금령의 형태로 주어졌다(창2: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선악과 금령에 순종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백성가운데 거하신다. 주의할 점은 선악과 금령이 하나님 나라 백성 되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 됨을 유지하는 조건이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부터 하나님 백성으로 창조됐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셨다. 첫언약이 단순한 선악과 금령 하나로 주어짐은 아담이 범죄이전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모든 행동이 거룩했기에 그가 조심하고 금지해야 할 것을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아담은 범죄했고 하나님 나라 창조경륜이 깨어지며 세상은 죄와 사망의 나라가 되었다.
- 옛언약은 하나님께서 창조경륜을 회복완성을 위해 시내산에서 주신 언약이다. 세상이 다시 에덴의 하나님 나라가 되려면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성막계시와 율법이 주어졌다. 시내산 옛언약이 선악과 금령보다 훨씬 복잡한 형태로 주어짐은 에덴에서와 달리 사람은 이미 죄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타락한 죄인이 거룩함을 얻으려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할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이 너무 많았다. 성막과 율법의 세부조항에 집중하다 보면 옛언약을 주신 이유를 망각하기 쉽다. 하나님이 왕되시고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하나님 백성되기 위해 주심이다. 창조경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방법으로 주심을 잊지 말라.
- 새언약은 하나님께서 구원계시를 완전히 드러내시는 가운데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언약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백성이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됨이다. 그것이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께서 죄인들 가운데 거하심이다. 이때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며 거룩해지게 된다. 새언약도 창조경륜 하나님 나라를 회복 완성하는 방법임을 잊지 말자. 죄인이 다시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 위해, 또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왕으로 임재하시기 위해, 에덴의 첫언약은 선악과 금령에 순종하라는 것이고, 옛언약은 성막계시와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며, 새언약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성령을 모셔 그리스도와 연합되라는 것이다. 새언약은 옛언약의 반대가 아닌 성취와 완성임을 기억하자.
② 결혼은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의 삶의 모습.
- 성경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언약으로 맺어졌으며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께서 왕 되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임이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아담과 선악과 금령을 통해 첫언약을 맺으셨고, 범죄 이후 시내산에서 옛언약을 맺으셨다. 이 언약체결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 또한 구약선지자들은 언약체결을 하나님과의 혼인맺음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은 남편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아내가 된다. 왕으로서 남편으로서 하나님은 자기백성에게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시고 완전하시므로 나라언약(왕과 백성)이건 결혼언약(남편과 아내)이건 그 책망은 백성의 신실치 못한 태도에 관한 것이다. 결혼언약은 주로 구약예언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음행을 책망할 때 많이 쓰인다. 왕으로서 남편으로서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고 불평하는 구절은 성경 그 어디에도 없다.
- 사54:5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 렘31: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 엡5:22-2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 유대인들의 혼인예식과 성도의 구원
① 혼인약속(=정혼)과 기다림 –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마1:18)
- 얼마 전 갈릴리 가나혼인잔치 다큐영화가 나왔는데, 갈릴리 혼인예식과 주의 재림을 연결하는 큰 그림은 신선하고 좋으나 처음부터 휴거와 7년대환란을 말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는 점이 약점이다. 첫째, 신랑이 신부될 여인에게 가서 청혼할 때(정혼) 포도주를 권하고 신부가 포도주를 받아 마시면 정혼이 성립된다는 것... 이것은 성만찬 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 다시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눅22:18)는 의미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둘째, 신랑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 신부를 맞을 집을 준비하고 아버지의 허락을 기다리는 것... 이것은 성만찬때 그리스도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집을 예비하러 간다는 말씀의 근거가 된다(요14:2) 셋째, 신랑이 오는 날은 아무도 모르며 아버지만 알고 있고 갑작스럽게 밤중에 온다는 것...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밤에 오신다고 말씀하신 근거가 된다(살전5:2) 넷째, 아버지의 허락이 나면 신랑이 가서 신부를 가마에 태워 들려 데려오는데 이는 성도의 들림받음(휴거)의 근거가 된다(살전4:16-17). 이 영화는 타큐형식을 띠나 포도주의 의미와 혼인예식에 대한 좀 더 객관적 근거가 필요하며, 모든 내용을 의도적으로 휴거와 7년대환란에 맞추는 몇가지 아쉬움을 가진다.
- 우리는 1세기 유대인혼인예식 자료가 없기에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예수님 당시 결혼관습을 살펴본다. 결혼은 정혼과 기다림,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옴, 혼인잔치(결혼예식)의 단계가 있다. 먼저 정혼은 신랑과 신부가 결혼하기로 약속한 단계다. 정혼은 결혼으로 인정될 만큼 구속력이 있으며 이들은 부부로 인정되나 아직 함께 살지는 않는다. 이때 신랑과 신부는 서로 떨어져서 혼인예식을 준비하며 살게 된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그렇다.
- 신랑은 신부에게 결혼약속(정혼)을 하고 떠나간다. 신랑은 자기 집에 돌아가서 신부와 정식 혼인예식을 치루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한다. 신부는 신랑이 혼인예식 준비를 마치고 자신을 데려갈 날을 기다린다. 신부는 다시 올 신랑을 기다린다. 이 기간 동안 신부는 신랑을 사모하며 정숙함을 유지한다. 신부는 그녀의 깨끗한 결혼예복을 준비하고 혼인잔치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신부는 정혼 후 혼인예식까지 대략 1년 정도의 기다림이 있다고 한다.
- 그리스도께서 성도(교회)와 정혼하시고 떠나가셨다. 성만찬에서 새언약이 체결되고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 신랑 되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세상에 남은 신부(교회)는 신랑의 약속을 기억하며 혼인예식 때 입을 예복을 준비한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정혼했지만 아직 혼인예식을 하지 않아 함께 살지는 못하고 있다. 신랑 그리스도는 이 땅에 남겨진 신부 교회와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성령으로 함께하며 늘 교통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혼인예식 치루고 함께 살 것을 기다리며 신부예복을 준비한다.
②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는 날 – 열처녀 비유(마25:1-13)
- 때가 돼서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온다. 이날은 신랑이 신부에게 정해준 날이다. 유대인들은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되기에 이때는 해가 진 저녁이 된다. 그날 신부는 예복을 입고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기다린다. 신부의 친구들은 들러리로서 밤중에 문 밖에 나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함을 도와준다. 열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친구 들러리들이며 신랑이 저녁에 오기로 되어 있으나 무슨 일로 늦어져 밤늦게 도착해서 벌어진 일이다.
- 교회는 혼인예식 날에 신랑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는 신부와 같다. 교회는 이미 성만찬 새언약 체결에서 그리스도와 혼인약속(정혼)을 했으나 아직 혼인잔치(결혼)은 하지 못해 함께 거하지 못한다. 교회는 정혼한 신부로서 혼인잔치 후 신랑과 함께 거할 것을 기다리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막 혼인약속(정혼)한 신부와 오늘밤 혼인예식(결혼)을 하는 신부의 자세는 다르다. 주님은 열처녀 비유에서 교회는 오늘 혼인예식을 치루는데 지금 신랑이 더디 오고 있어 밤이 늦었다고 하신다. 주의 재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그렇다.
③ 혼인잔치(결혼) – 왕의 아들 혼인잔치 예복(마22:1-14)
- 그리스도는 재림해서 그의 신부(교회)와 혼인잔치를 치룬다. 음녀 바벨론은 불로 심판하고 신부 교회(새예루살렘)과는 혼인잔치를 치루심이다.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신부예복이다. 왕의 아들 혼인잔치에는 예복이 필요하다. 왕에게 나아가는 자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예복이 필요하다. 예복이 없는 자는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애통한다.
-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옛언약과 새언약의 성취이며 에덴의 첫언약과 창조경륜의 회복 완성을 의미한다. 이로서 죄와 사탄은 심판받고 피조세계는 다시는 사망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이 된다. 그곳에서 성도는 신랑되신 그리스도 주님과 함께하며, 성령내주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순종하고 섬기며 거룩한 백성으로 영원토록 살아간다. 이것이 생명이고 영생이다.
- 본문에서, 성도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신부로 참여하고(7절) 초청객(9절)으로 초대받아 의아하지만, 신부는 교회공동체로서의 성도를 말하고 초청객은 교회의 개별 구성원으로서의 성도를 말한다. 둘을 다른 집단이 아니다. 동일한 성도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3)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였으니 이 세마포는 곧 성도의 옳은 행실이니라.
① 신부예복은 어린양의 피로 씻어 깨끗해진 예복
- 왕의 아들 혼인잔치(=결혼)에 들어가려면 예복이 필요하다. 신부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예복은 성도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말한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화염검 불로 탄다. 예복은 죄인이 더러운 죄를 벗고 거룩한 의인으로 변화됨을 말한다. 부활의 날에 완전 의인되지만, 부활이전에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의인된다. 그 옷은 하나님이 직접 입혀주신 의의 옷(의의 호심경)이며 구원의 옷(구원의 투구)이다. 그 옷은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희게 된 옷이다. 그리스도의 신부(교회)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 죄용서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 깨끗하게 됨이다. 신부예복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직접 입혀주신 의의 옷이다.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 사59:16-17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 사61:10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 계7:13-14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② 신부예복은 성도의 거룩한 변화를 말함
- 어린양 혼인잔치 신부예복은 빛나고 깨끗한 흰 세마포인데 이 세마포는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다. 신부예복은 상징이며 성도 자신이 죄인에서 의인으로 거룩하게 변화됨이다. 에덴의 첫언약과 옛언약 새언약은 모두 하나님 백성됨을 위하여 의롭고 거룩해지는 방법을 말한다. 에덴에서는 선악과 금령을 지키며 하나님께 순종하기, 옛언약에서는 율법규례에서 죄와 거룩을 배우고 성막규례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새언약에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내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모두 하나님의 의를 힘입은 거룩한 백성이 되는 방법이다.
③ 의롭다하심을 얻은(칭의) 성도는 의로워지다가(성화) 부활이후 거룩한 몸이 됨(영화)
- 옛언약은 새언약으로 말미암아 바르게 해석되고 성취되며 완성된다. 새언약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아니라면 옛언약은 결코 구원의 길이 될 수 없다. 어떠한 행위도 사람의 죄를 용서받게 못하며,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한다. 오직 그리스도 복음만이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주신다.
- 백마 타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며, 지상교회도 흰옷을 입고 있다. 지상교회가 입는 흰옷은 그리스도께서 의롭다고 해주신 칭의의 흰옷이다. 성도 자신은 아직 죄인이지만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당신의 의의 옷을 입혀주심이다. 그리스도의 옷은 성령으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며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성도는 아직 죄인이지만 칭의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와 연합되어 성령의 도우심으로 서서히 변화되어가고 있다.
- 성도의 삶에서 칭의와 성화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칭의의 연속이 성화며 성화의 단면이 칭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칭의와 성화는 반드시 분리해서 이해하고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칭의는 없어지고 성화만 남는다. 성화는 칭의의 결과이며, 칭의 받아야 성화됨을 분명히 해야 은혜복음이 되고 구원의 길이 된다. 성화는 칭의의 진실성을 입증하지만, 성화는 칭의의 전제조건이 결코 아니다.
- 혼인잔치 신부예복은 칭의의 예복을 입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교회가 주의 재림으로 부활해서 영화의 몸으로 변화됨을 말한다. 이때 성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처럼 죄와 사망이 없는 광체나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한다. 칭의로 시작된 거룩함이 성화를 통해 조금씩 변화되다가 부활의 날에 완전히 거룩하고 의로운 모습으로 변화됨이다. 성도의 옳은 행실 곧 빛나고 깨끗한 옷을 입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부활의 거룩한 몸으로 변화됨이다.
- 이때 비로소 사람과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경륜이 회복 완성된다. 세상은 다시는 죄와 사망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 에덴이 된다. 범죄이전 상태의 첫 에덴으로 리셋됨 아닌 범죄가 없었다면 인류가 만들었어야 하는 최종 에덴으로 완성됨이다.
- 첫에덴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다(창1:28) 홍수이후 노아에게는 생육번성 충만하라고만 하신다(창9:1) 범죄이후는 정복과 다스림이 없다. 짐승들은 죄로 오염된 사람을 두려워한다(창9:2) 새하늘과 새땅에서 성도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함은 없다. 이 충만한 숫자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 가운데서 자기 피로 구속하신다(마22:30) 그곳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대리통치자의 사역만 있다(계5:10) 그곳에서 성도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이요 정결한 아내로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서 살아간다. 다시는 범죄함이 없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음녀 바벨론의 멸망과 신부 교회의 구원을 대조하며 명확하게 보여준다.
<결론 및 적용>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다.
(1) 성도는 광야에서 신부예복을 준비한다.
- 광야는 거친 곳이다. 광야는 성도의 양육과 훈련의 장소다. 성도가 광야에서 입는 옷은 거칠고 초라해 보이나 신부예복이다. 영적인 눈을 떠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의의 옷이다. 칭의를 입어 성화되어 가는 삶이다. 생명의 향기가 난다. 음녀가 치장한 금은보석 진주, 자줏빛 옷, 금잔에 속지 말라. 음녀는 성도를 유혹하려고 쇼윈도에 진열된 사탄의 마네킹이다. 음녀의 짝퉁(가짜) 삶에 속지 말라. 멀리서 보면 화려해보이나 조금만 가까이 가면 죄의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결코 부러워하지도 관심 갖지도 말라.
(2) 혼인예식장에 세마포 입고 서있는 신부를 생각해보자
-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이듯, 모든 천만천사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입은 신부를 주목할 것이다. 그 옷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신부와 함께하신 증표다. 신부는 그리스도께서 정혼약속 때 주신 성령의 정혼반지(?)를 끼고 짐승의 핍박과 음녀의 유혹을 이겨낸 결과다. 피 흘리는 영적싸움이 그 옷에 묻어있다. 이제는 기다림도 영적싸움도 없다. 그리스도를 뵈오며 살아가는 영원한 천국잔치가 있을 뿐이다.
- 야곱의 예를 보면 유대인의 혼인잔치는 7일간 계속되니 하늘에서는 7년간 혼인잔치라고 하지말자. 이는 7년대환란의 기간을 말하기 위함이다. 부활이후 새하늘과 새땅의 삶은 혼인잔치 그 자체이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영원토록 천국잔치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