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계시록(27) - 666과 두 짐승, 거짓선지자 (계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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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1-04-1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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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27) - 666과 두 짐승, 거짓선지자 (계13:11-18)
1. 열뿔 짐승과 두뿔 짐승은 언제 활동하는가?
(1) 칠십 이레와 마지막 반이레
① 칠십 이레란? 하나님 나라(참 이스라엘, 영적 하나님 성전, 신약교회) 완성과정 예언
-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영원한 속죄)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단9:24)
- 칠십 이레는 바벨론 포로에 있는 다니엘에게 하나님 나라 회복과 하나님 성전 완성을 보여주신 예언이다. 유대인의 나라나 건물성전이 아니다. 모든 죄악이 끝나고 영원한 속죄와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성취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칠십 이레는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초림과 재림으로 성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고 인류역사가 종결과 새하늘과 새땅이 완성됨을 말한다. 70이레 예언은 모두 성취됐고 이제는 마지막 반이레만 남았다.
② 성전중건령 후 일곱 이레 – 스룹바벨 성전건축
-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25절)
-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은 고레스칙령(BC539년)이다(대하36:22,23/스1:1-4/사44:28) 70이레는 하나님 나라 완성시간(년도)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완성과정 예언이다. 490년의 동안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다는 역사시간이 아니다. 7이레 동안 스룹바벨 성전이 건축되듯, 70이레 동안 하나님의 참된성전(신약교회, 새예루살렘)을 세우시겠다는 하나님 나라 완성과정 예언이다. 세대주의 주장처럼 예루살렘 중건령 날자를 그리스도 오심(AD27년)을 기준으로 역으로 올라가 아닥사스다 7년(BC457 에스라 귀한)으로 잡아도, 성전중건령 7년 후 스룹바벨 성전건축이 되지 않음과 기름부음 받은 자(그리스도) 오신 후 7년 뒤에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 못한다. 그들은 70이레를 하나님 나라 완성과정이 아닌 하나님 나라 완성시간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 그 곤란한 동안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루어짐은 고레스칙령에 의해 포로귀환이 이루어지고 스룹바벨 성전이 건축되고 예루살렘 성이 세워짐을 말한다. 해자는 성벽을 둘러싸고 흐르는 강물 방어막이다. 역사 속에서 예루살렘 성벽 주위로 혜자(강물)이 계속 흐른 적은 없지만 기드론 골짜기, 힌놈의 골짜기로 둘러 쌓인 예루살렘에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짐을 말함이다. 성전중건령 이후 일곱이레 만의 일이다.
③ 그후 육십이 이레 (육십구 이레) – 그리스도께서 오심
-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26절)
-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난 후 곧 성전중건령 이후 육십구 이레가 지나면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로마군대에 의해 성소가 황폐될 것이 예언된다. 성전파괴는 69이레가 지난 후 반이레에 이루어질 사건인데 27절에 기록된다.
④ 육십구 이레후 반이레 – 스룹바벨(헤롯)성전파괴
-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27절)
- 마지막 27절에 “그”를 누구로 해석하느냐가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그를 적그리스도로 해석하면 휴거와 7년대환란의 세대주의 종말론에 도달하게 된다. 27절의 주어 “그(He)”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마지막 남은 한 이레 동안의 언약/새언약을 굳게 세우신다. 그 이레의 절반/반이레 동안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제사와 희생예물의 옛언약은 금지시키시고 새언약이 출범하시며 예루살렘 건물성전을 파괴하신다. “잔포하여 미운물건”(로마의 우상과 독수리 깃발)이 독수리 날개를 의지하여 파괴된 성전위에 서게 된다(성전파괴)
- 그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이 구절을 직접 인용하시고 해석해주셨다. 건물성전을 보고 그 위용에 놀라며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성전파괴를 말씀하신다. 그때 제자들이 깜짝 놀라며 성전파괴의 날(종말의 날)이 언제냐고 묻는다. 유대인 제자들에게 성전파괴는 종말의 날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이에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성전)에 선 것을 보거든”(마24:15) 누가복음은 동일한 말씀을 예루살렘 건물성전이 로마군대에 의해 포위되고 파괴될 것으로 말한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눅21:20)
- 그 당시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다니엘이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 것을 본다고 하셨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주의 재림 심판 때(미래)에 성전에 설 것이 아니다. 미래에 세워질 제3성전은 없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은 로마 디투스장군에 의해 AD70년 포위되고 건물성전은 완전히 황폐케 된다. 예수님은 다니엘 9장 27절을 AD70년 성전파괴 예언으로 말씀하셨다. AD70년 성전파괴를 예로 들며 마지막 심판날도 말씀하시지만(원근통시법), 그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성전파괴다. 그러므로 한이레의 절반/반이레는 AD70년 성전파괴로 지나갔고 이제 나머지 반이레만 남았다.
- 27절의 마지막 부분 한글번역은 오역으로 혼란을 가중시킨다.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성전을 “황폐케 하는 자(적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된 것들이 ”황폐케 된 것“(성전)위에 쏟아짐이다. 성전파괴를 말씀함이다. 한글번역은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 영어성경 KJV을 해석하면 “가증한 것들이 뒤덮이도록,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황폐케 하되 완전히 끝날 때 까지 할 것이며, 하나님의 작정된 것(가증한 것들로 뒤덮임)이 그 황폐케 된 것(성전) 위에 부어지게(임하게) 되리라.” (and for the overspreading of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even until the consummation, and that determined shall be poured upon the desolate.)
(2) 구속사적 상징주의 해석의 근거 - 마지막 반이레
- 요한계시록의 수많은 환상들은 언제의 일을 예언함인가? 1세기 성전파괴와 로마멸망을 예언한다는 과거주의가 있고 주의 재림 직전 7년대환란 때의 일이라는 미래주의가 있고, 주의 재림때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라는 구속사적 상징주의가 있다. 우리는 구속사적 상징주의로 이해하며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활동하는 기간으로 명시된 마지막 반이레(한때 두때 반때, 1260일, 42개월)에 근거한다.
- 70이레 예언의 69.5이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전파괴로 이미 이루어졌다(단7:24-27) 이제 인류역사는 마지막 반이레만 남았다. 이 마지막 반이레/한때 두때 반때가 지나면 70이레가 완성되어 영원한 속죄, 영원한 의, 성경예언이 모두 성취되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진다. 인류의 역사는 종결되고 주의 재림, 우리 몸의 부활, 마지막 심판,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성 도래, 에덴이 회복 완성된다. 그런데 주의 재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마지막 반이레는 분명 지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주의 해석은 제외되고, 주의 재림 직전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있을 7년대환란이라는 미래주의 해석과 주의 초림부터 주의 재림 때까지 전체를 말한다는 구속사적 상징주의 해석만 남는다.
- 미래주의로 해석하는 세대주의자들은 69.5이레가 지난후 아직도 반이레가 계속되고 있는 2천년의 지연을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이 69.5이레를 단절 없는 역사속의 시간으로 계산했다면 나머지 반이레(0.5)도 동일하게 연속되어야 한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70이레 계획이 변경되어 마지막 반이레는 지연되고 이방인의 교회시대가 되었다는 주장하지만 이는 그릇되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복음을 거부하는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으로 70이레 계획을 부득이 변경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가능한가? 그들은 70이레를 하나님 나라(영적인 하나님 나라와 성전=신약교회) 완성과정이 아닌 완성시간 예언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3) 마지막 반이레는 주의 초림(십자가, 성전파괴)부터 주의 재림 때까지
- 지금이 한때 두때 반때, 마지막 반이레 시기이다. 그리스도는 초림으로 죄와 사탄의 나라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셨고, 부활 승천하사 하늘보좌에 앉아 성령으로 통치하시며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신다. 또한 지금은 사탄이 땅으로 내어쫓겨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시기다. 한때 두때 반때 동안 하나님의 백성은 작은뿔에 의해 핍박당한다는 예언이 요한계시록에서 교회가 용과 짐승에 의해서 핍박당함으로 나타난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은 동일하다.
- 그러므로 주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지금이 사탄이 자신의 대리자 적그리스도 작은뿔을 내세워 교회를 핍박하는 한때 두때 반때 시기이며(단7:25)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는 핍박을 당하고 그때 주의 재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시기이다(단12:7) 지금은 교회의 두증인이 사역을 감당하다가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당하는 1260일 시기이고(계11:3) 해달별을 입은 여자(신약교회)가 용을 피해 광야에서 양육되는 시기이며(계12:14),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 짐승이 권세를 받아 교회를 핍박하는 42개월 시기(계13:5) 땅에서 올라온 두뿔 짐승이 거짓종교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시기다. 바로 지금이 마지막 반이레이며, 용(사탄)이 보낸 두 짐승이 활동하며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막는 시기다.
2. 666과 두 짐승, 거짓선지자.
(1)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막는 두 짐승(정치권력자, 거짓선지자)
①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막는 사탄의 대리자
- 적그리스도는 다니엘의 네 나라 짐승 환상에서 작은뿔(단7:25)로 이미 예언되었다. 요한계시록에는 교회의 두 증인을 죽이는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계11:7),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 짐승(계13:1), 음녀 바벨론이 탄 짐승의 일곱째 머리 여덟째 왕(계17:11)으로 등장한다. 모두 동일한 짐승이며 적그리스도다. 바울은 그를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로 불렀다.
② 열뿔 짐승과 두뿔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두 측면
- 두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두 측면이다. 둘 다 모두 적그리스도다. 정치권력자 열뿔 짐승은 드러난 적그리스도 세력의 대표며, 두뿔 짐승 거짓선지자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자 적그리스도를 숭배하도록 거짓종교로 미혹을 하는 적그리스도다. 지금 열뿔 짐승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두뿔 짐승 거짓선지자가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
- 적그리스도는 반드시 한 인물로만 단정할 필요가 없다. 교회를 핍박하는 단체와 세력도 적그리스도다. 물론 그 단체의 대표가 가장 적그리스도로 드러나겠지만, 그를 뒤에서 도와 교회를 핍박하는 적그리스도들도 있다. 이 두 짐승이 합쳐진 강력한 한 존재가 나올 수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을 지배하려면 한 사람 적그리스도보다 큰 통치기관으로서 독재정부 혹 종교권력 같은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로마교황과 바티칸 교황청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 단체란 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역사 속에 등장한 그 어떤 핍박자보다 가장 근접한 적그리스도였음이 분명하다.
③ 두 증인과 두 짐승
- 사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승천으로 하나님께 왕권(나라)를 받으실 때(단7:13-18) 죄인을 참소하는 권세가 결박되었다(계11:9-11) 사탄은 지금, 주의 초림(십자가,계12:5/성전파괴,단9:27)부터 주의 재림때까지 권세가 결박되어(무저갱에 갇혀) 자기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사탄은 교회의 두증인 사명으로 죄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얻어 하나님 나라 백성되는 구원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사탄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을 줄을 알고 분을 내며 신약교회를 핍박하고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극렬하게 막는다.
- 교회가 모세와 엘리야처럼 복음을 증거하며 두증인 사명을 감당할 때, 사탄(용)도 두 짐승(열뿔짐승, 두뿔짐승)을 보내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사람들은 용이 보낸 두짐승을 보고 교회의 두증인으로 오해하며 그들이 전하는 거짓복음을 듣고 우상을 섬긴다. 두짐승은 광명의 천사(미혹)와 우는 사자(위협)로 활동하며 교회가 두증인 사명을 못하도록 극렬하게 핍박한다.
(2) 666, 바벨론 세상나라 백성 표시
① 이마에 표시하며, 표시가 없으면 바벨론에서 생활을 못함
- 이마에 인을 침은 그가 누구에게 속한 백성인가를 분명히 나타내는 상징용어다. 사람의 이마는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곳으로 숨길 수 없는 곳이다. 그 표시를 이마에 함은 모든 사람에게 그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공개적으로 분명히 밝힘이다. 숨길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 표시와 사탄의 백성 표시다. 이마에 인을 쳐서 표시함은 신명기(6장)과 에스겔(9장)에 나온다.
- 에스겔은 세마포 먹그릇 천사 환상을 본다. 하나님은 살육하는 기계를 가진 여섯 천사를 부르시고 그중 가는 베옷(세마포)를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 통을 찬 천사(=세마포 먹그릇 천사)에게 말씀하신다. 그가 먼저 가서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을 보며 탄식하고 우는 하나님 백성의 이마에 표를 한 후 나머지 다섯 천사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이마에 표를 받지 못한 모든 사람을 남녀노소, 처녀와 어린아이, 부녀 가릴 것 없이 진멸하라고 하신다.(겔9장)
- 신명기 쉐마에는 네 미간과 손목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라고 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이 말씀 그대로 두 개의 테필린(가죽상자)를 만들어 하나는 이마에 붙이고 하나는 손에 감고 기도한다. 이마는 그 사람의 얼굴이며 숨길 수 없는 곳이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신6:6-8)
- 두뿔 짐승 거짓선지자는 열뿔 짐승 정치권력자 적그리스도를 섬기도록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 절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인다. 느브갓네살이 자신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백성은 모두 죽이는 그런 무서운 일이다. 목숨을 담보로 성도와 교회를 위협하는 무서운 박해다. 또한 그는 우상숭배를 피한 자들도 이마에 짐승(사탄)의 표시가 없으면 매매를 할 수 없도록 세상나라 경제시스템에서 완전히 축출한다.
- 사탄(용)은 열뿔 짐승 두뿔 짐승(적그리스도)를 내세워 그리스도의 신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그 이마에 분명히 세상나라 바벨론 표시를 하도록 해서 그 신분을 분명하게 나타내게 하고, 자기들과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나라에 속하지 않으면 그의 목숨을 빼앗고, 경제활동도 못하도록 무섭게 핍박한다.
② 666 – 바코드, 크레딧카드, 베리칩
- 요한은 666을 열뿔 짐승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666은 어떤 인물의 이름인가? 누가 열뿔 짐승 적그리스도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666을 특정 사람의 이름으로 제시했지만 그들 모두는 역사 속에서 없어졌다. 아직도 모른다.
- 처음에는 상품분류 바코드가 666이라 했고, 얼마 후 크레딧카드도 666이라 하더니 요즘은 베리칩을 666이라고 한다. 이런 과격한 주장은 주로 휴거와 7년 대환란을 강조하는 극단적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666은 짐승 적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했다. 바코드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표시가 아니라 마트에서 물건을 분류하는 표시로 이며, 크레딧카드는 지갑에 넣고 다니지 이마에 넣지 않는다. 한동안 크레딧카드를 총괄하는 컴퓨터 이름이 beast(짐승)이라고 주장했지만 근거가 없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QR 코드를 스켄하고 제품인식은 물론 금액지급까지 한다. 그들은 이제 스마트폰이 666이라 해야 할 판이다. 요즘은 코로나 백신이 사람의 DNA를 바꾸는 지배하려는 적그리스도의 음모라고까지 한다.
- 베리칩은 Verification + Chip 의 합성어로 신원이나 정보를 확인하는 아주 작은 마이크로 칩을 말한다. 이 칩을 사람 몸속에 넣고 전용 스케너로 읽으면 그 안에 저장된 내용을 모두 읽을 수 있다. 잃어버린 애완동물이나 치매노인의 신분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고 개인정보가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베리칩은 너무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모두 사람이 속에 강제로 삽입함은 공포영화에나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주로 애완동물의 인식표 정도로 사용될 뿐 국가가 사람의 두뇌를 조종하는 엄청난 테크놀로지가 들어있지 않다. 이 모두는 불건전 종말론자들이 만들어낸 음모론이다. 바코드, 크레딧카드, 베리칩을 666 적그리스도 짐승의 수라 말함은 너무도 비정상적이다. 그런데도 불건전 종말론자들이 이런 주장을 계속하므로 성도들이 혼란과 두려움을 갖는 것은 성경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이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완전 틀리게 이해했다.
③ 666 – 네로 황제
- 현재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주장은 게마트리아 해석이다. 게마트리아로 666은 헬라어 “네론 카이사”를 히브리어로 음역해서 그 숫자를 더한 것이다. 즉 666은 로마황제 중 대표적 박해자 네로를 의미함이다. 이는 요한계시록 17장의 일곱산을 타고 앉은 음녀 바벨론을 로마제국으로 직접 설명하는 과거주의 해석에 해당하며 요한계시록을 1세기 초대교회 상황과 함께 이해하는데 유리하며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런 과거주의 해석은 계시의 미래성을 약화시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 사도요한이 666을 네로황제라고 직접 거명했다는 과거주의 해석은 요한계시록의 모든 환상이 AD 70년 성전파괴와 로마제국 멸망을 예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은 이미 과거에 다 지나간 사건기록이며 교회와 인류역사의 미래계시가 아니다. 우리에게 요한계시록은 과거에 이미 지나간 역사를 읽어보고 그 의미를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요한계시록의 환상은 1세기에 모두 이루어졌는가?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했는가? 아니다. 그래서 요한의 환상이 1세기 성전파괴와 로마제국 멸망 예언이라는 과거주의 해석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 새하늘과 새땅 까지 사실이 아닌 문학적 표현으로 여기게 되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래서 온건한 과거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의 모든 계시는 1세기 성전파괴와 로마제국 멸망이라는 과거사실을 예언하지만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의 주의 재림과 흰보좌 심판, 새하늘과 새땅은 미래에 되어질 예언이라 주장한다. 치명적 문제를 해결했지만 연속되는 계시를 과거와 미래로 구분함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 일곱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서의 성격이 있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계시의 요소를 결코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요한이 666을 네로황제를 지칭하며 썼다는 게마트리아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열뿔 짐승과 666을 보면서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은 누구나 로마황제(대표적 박해자 네로)라고 분명히 이해했을 것이다. 이는 다니엘의 네 짐승 작은뿔 환상을 알고 있는 사도요한과 초대교회 성도들이라면 당시 상황 속에서 누구나 도달하는 당연한 결론이지 하나님이 열뿔 짐승과 666을 로마황제 네로라고 직접 말씀하셨거나 요한이 네로라고 직접 제시하며 기록했기 때문은 아니다.
- 이레니우스는 사도요한의 제자 폴리갑으로부터 성경을 배운 초대교회 교부다. 그는 요한계시록이 쓰여지고 약 45-50년 후의 사람이며(AD140년경) 스승 폴리갑으로부터 요한계시록을 직접 배웠다. 그런 그가 자신도 666이 어떤 인물을 가르키는지 모른다고 했다. 666이 네로황제를 정확하게 지칭한다면 이레니우스가 모를리가 있을까?
(3) 666은 나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세상을 따른다는 표시
① 666 - 사람으로 충만한 수
- 하나님 백성은 그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이 새겨져있고, 죄와 사탄의 세상나라 백성은 짐승(사탄)의 표시는 666을 그 이마에 새긴다. 666은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열뿔 짐승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표시다. 666이 네로황제가 아니라면 대안은 무엇인가? 게마트리아 과거주의 해석을 경계하는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666을 인본주의의 극치라고 주장한다.
- 666이 사람으로 충만한 수라는 설명이다. 요한계시록은 7을 하나님의 숫자로 기록한다. 일곱교회, 일곱눈 일곱영, 일곱천사, 일곱인봉, 일곱나팔 일곱대접... 7일, 칠칠절, 70이레, 그런데 6은 7에 하나 모자라는 불완전한 숫자다. 6은 하나님의 숫자 7을 흉내 내되 결코 7이 될 수 없는 사람의 숫자다. 그 6을 세 번이나 겹쳐서 반복해서 썼다. 그것을 육육육으로 읽든 육백 육십 육으로 읽든 상관없다. 6을 세번 반복해서 겹쳐 쓴 것이다. 사람으로 충만한 숫자다. 사도요한이 이런 의미로 666을 썼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독재자 이름이나 베리칩으로 설명하는 잘못된 해석보다는 이렇게라도 설명하는 것이 현재까지는 가장 안전하겠다.
② 666 - 바벨론
- 나는 개인적으로 666은 음녀의 이마에 세겨진 “바벨론”으로 부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17:5) 성도의 이마에는 하나님 백성의 표시(계7:1)가 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이름이다(계14:1) 그렇다면 세상나라 백성들의 이마에 세겨진 666은 무엇일까? 얼듯 사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탄은 하나님과 비견되는 세상나라의 왕이 아니다. 사탄은 결코 죄인들의 영혼을 창조한 주인이 아니기에 자기 이름을 세길 수 없다.
- 요한계시록에는 두 여자가 나온다. 해달별을 입은 거룩한 신부(계12장)와 용과 두 짐승을 섬기며 붉은 옷을 입고 온갖 금은보석을 치장한 더러운 음녀(계17장)이다. 전자는 하늘에 거하는 자, 하나님 백성, 그리스도의 신부 신약교회를 말하며, 후자는 땅에 거하는 자들, 세상나라 백성, 심판받을 죄인들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거친 광야에서 하늘만나와 반석의 물을 마시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아가지만, 음녀 바벨론은 세상에서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용과 두 짐승이 주는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며 사치와 향락에 취해 살아간다. 그러므로 용과 두 짐승에 속한 자라는 표시 666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 적그리스도 사람의 이름을 찾기보다 세상나라 대표이름 바벨론이라 부름이 더 좋다는 생각이다. 666이라 쓰고 바벨론이라 읽는다.
<결론 및 적용>666보다, 내가 지금 어린양을 따르는 백성인가를 확인하자
(1) 666 헛된 주장에 미혹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666을 이마에 받았다. 666은 살아가면서 받지 않고 이미 태어나면서 모든 사람이 받는다. 그러므로 666이 누구의 이름인가 보다 내가 지금 어린양 그리스도를 따르는 백성인가를 확인하라. 사람은 누구든지 분명하게 자기가 하나님나라 백성인지 세상나라 백성인지 표시해야 한다. 이는 지정의 전인격의 분명한 고백이며 공개적 선언이다. 하나님 백성은 어린양 그리스도께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고, 그리스도께서 어디로 인도하든지 순종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이다(계14:4)
- 666은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세상나라 바벨론 백성이라고 명백히 선언하는 표시다. 설령 666을 적그리스도의 실제이름이라 해도 666이 나오기 전 먼저 적그리스도가 나와 활동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모르고 받을 리가 없다. 모든 사람을 그 표시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고 스스로 표시한다. 그러기에 666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마트에서 바코드 붙은 상품을 샀다고 열뿔 짐승을 섬김도 아니고, 크레딧카드를 사용한다고 바벨론 백성 됨도 아니다. 누가 나를 마취해 의식을 잃게 하고 내 몸 속에 베리칩을 심었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모르는 상태로 평생 베리칩 가지고 산다고 하자.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 백성에서 지옥백성이 될까? 참 한심한 생각이다. 누가 이런 헛된 말로 교회를 혼란케하고 성도들을 미혹시키는가?
(2) 불건전 종말론에 미혹되지 말고 칭의와 성화, 십자가와 부활에 집중하자.
-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불건전 종말론자들의 거짓주장에 전혀 관심두지 말라.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 칭의와 성화에는 관심 없고 오직 불건전 종말론만 관심 있다. 그들은 성도들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거짓교사다. 그들은 거짓 종말론을 퍼트리며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들은 막연한 의심과 근거 없는 두려움만 불러일으켜 이득을 취하는 음모론자들이다. 그들은 큰 소리로 말하나 그 주장이 틀렸을 때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아니면 말고 식의 주장을 하는 무책임한 자들이다. 비록 그들이 의도적으로 칭의와 성화의 복음을 희석시키려 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만든다. 그들을 교회를 혼란케 하는 거짓교사들이다.
- 구약의 예언서와 요한계시록은 하나님 나라 구원과 십자가 복음의 완성이요 결론이다. 불건전 음모론에 미혹되지 말고 칭의와 성화의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의 두증인 사명에 집중하자.
1. 열뿔 짐승과 두뿔 짐승은 언제 활동하는가?
(1) 칠십 이레와 마지막 반이레
① 칠십 이레란? 하나님 나라(참 이스라엘, 영적 하나님 성전, 신약교회) 완성과정 예언
-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영원한 속죄)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단9:24)
- 칠십 이레는 바벨론 포로에 있는 다니엘에게 하나님 나라 회복과 하나님 성전 완성을 보여주신 예언이다. 유대인의 나라나 건물성전이 아니다. 모든 죄악이 끝나고 영원한 속죄와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성취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칠십 이레는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초림과 재림으로 성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고 인류역사가 종결과 새하늘과 새땅이 완성됨을 말한다. 70이레 예언은 모두 성취됐고 이제는 마지막 반이레만 남았다.
② 성전중건령 후 일곱 이레 – 스룹바벨 성전건축
-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25절)
-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은 고레스칙령(BC539년)이다(대하36:22,23/스1:1-4/사44:28) 70이레는 하나님 나라 완성시간(년도)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완성과정 예언이다. 490년의 동안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다는 역사시간이 아니다. 7이레 동안 스룹바벨 성전이 건축되듯, 70이레 동안 하나님의 참된성전(신약교회, 새예루살렘)을 세우시겠다는 하나님 나라 완성과정 예언이다. 세대주의 주장처럼 예루살렘 중건령 날자를 그리스도 오심(AD27년)을 기준으로 역으로 올라가 아닥사스다 7년(BC457 에스라 귀한)으로 잡아도, 성전중건령 7년 후 스룹바벨 성전건축이 되지 않음과 기름부음 받은 자(그리스도) 오신 후 7년 뒤에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 못한다. 그들은 70이레를 하나님 나라 완성과정이 아닌 하나님 나라 완성시간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 그 곤란한 동안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루어짐은 고레스칙령에 의해 포로귀환이 이루어지고 스룹바벨 성전이 건축되고 예루살렘 성이 세워짐을 말한다. 해자는 성벽을 둘러싸고 흐르는 강물 방어막이다. 역사 속에서 예루살렘 성벽 주위로 혜자(강물)이 계속 흐른 적은 없지만 기드론 골짜기, 힌놈의 골짜기로 둘러 쌓인 예루살렘에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짐을 말함이다. 성전중건령 이후 일곱이레 만의 일이다.
③ 그후 육십이 이레 (육십구 이레) – 그리스도께서 오심
-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26절)
-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난 후 곧 성전중건령 이후 육십구 이레가 지나면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로마군대에 의해 성소가 황폐될 것이 예언된다. 성전파괴는 69이레가 지난 후 반이레에 이루어질 사건인데 27절에 기록된다.
④ 육십구 이레후 반이레 – 스룹바벨(헤롯)성전파괴
-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27절)
- 마지막 27절에 “그”를 누구로 해석하느냐가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그를 적그리스도로 해석하면 휴거와 7년대환란의 세대주의 종말론에 도달하게 된다. 27절의 주어 “그(He)”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마지막 남은 한 이레 동안의 언약/새언약을 굳게 세우신다. 그 이레의 절반/반이레 동안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제사와 희생예물의 옛언약은 금지시키시고 새언약이 출범하시며 예루살렘 건물성전을 파괴하신다. “잔포하여 미운물건”(로마의 우상과 독수리 깃발)이 독수리 날개를 의지하여 파괴된 성전위에 서게 된다(성전파괴)
- 그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이 구절을 직접 인용하시고 해석해주셨다. 건물성전을 보고 그 위용에 놀라며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성전파괴를 말씀하신다. 그때 제자들이 깜짝 놀라며 성전파괴의 날(종말의 날)이 언제냐고 묻는다. 유대인 제자들에게 성전파괴는 종말의 날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이에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성전)에 선 것을 보거든”(마24:15) 누가복음은 동일한 말씀을 예루살렘 건물성전이 로마군대에 의해 포위되고 파괴될 것으로 말한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눅21:20)
- 그 당시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다니엘이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 것을 본다고 하셨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주의 재림 심판 때(미래)에 성전에 설 것이 아니다. 미래에 세워질 제3성전은 없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은 로마 디투스장군에 의해 AD70년 포위되고 건물성전은 완전히 황폐케 된다. 예수님은 다니엘 9장 27절을 AD70년 성전파괴 예언으로 말씀하셨다. AD70년 성전파괴를 예로 들며 마지막 심판날도 말씀하시지만(원근통시법), 그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성전파괴다. 그러므로 한이레의 절반/반이레는 AD70년 성전파괴로 지나갔고 이제 나머지 반이레만 남았다.
- 27절의 마지막 부분 한글번역은 오역으로 혼란을 가중시킨다.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성전을 “황폐케 하는 자(적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된 것들이 ”황폐케 된 것“(성전)위에 쏟아짐이다. 성전파괴를 말씀함이다. 한글번역은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 영어성경 KJV을 해석하면 “가증한 것들이 뒤덮이도록,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황폐케 하되 완전히 끝날 때 까지 할 것이며, 하나님의 작정된 것(가증한 것들로 뒤덮임)이 그 황폐케 된 것(성전) 위에 부어지게(임하게) 되리라.” (and for the overspreading of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even until the consummation, and that determined shall be poured upon the desolate.)
(2) 구속사적 상징주의 해석의 근거 - 마지막 반이레
- 요한계시록의 수많은 환상들은 언제의 일을 예언함인가? 1세기 성전파괴와 로마멸망을 예언한다는 과거주의가 있고 주의 재림 직전 7년대환란 때의 일이라는 미래주의가 있고, 주의 재림때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라는 구속사적 상징주의가 있다. 우리는 구속사적 상징주의로 이해하며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활동하는 기간으로 명시된 마지막 반이레(한때 두때 반때, 1260일, 42개월)에 근거한다.
- 70이레 예언의 69.5이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전파괴로 이미 이루어졌다(단7:24-27) 이제 인류역사는 마지막 반이레만 남았다. 이 마지막 반이레/한때 두때 반때가 지나면 70이레가 완성되어 영원한 속죄, 영원한 의, 성경예언이 모두 성취되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진다. 인류의 역사는 종결되고 주의 재림, 우리 몸의 부활, 마지막 심판,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성 도래, 에덴이 회복 완성된다. 그런데 주의 재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마지막 반이레는 분명 지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주의 해석은 제외되고, 주의 재림 직전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있을 7년대환란이라는 미래주의 해석과 주의 초림부터 주의 재림 때까지 전체를 말한다는 구속사적 상징주의 해석만 남는다.
- 미래주의로 해석하는 세대주의자들은 69.5이레가 지난후 아직도 반이레가 계속되고 있는 2천년의 지연을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이 69.5이레를 단절 없는 역사속의 시간으로 계산했다면 나머지 반이레(0.5)도 동일하게 연속되어야 한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70이레 계획이 변경되어 마지막 반이레는 지연되고 이방인의 교회시대가 되었다는 주장하지만 이는 그릇되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복음을 거부하는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으로 70이레 계획을 부득이 변경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가능한가? 그들은 70이레를 하나님 나라(영적인 하나님 나라와 성전=신약교회) 완성과정이 아닌 완성시간 예언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3) 마지막 반이레는 주의 초림(십자가, 성전파괴)부터 주의 재림 때까지
- 지금이 한때 두때 반때, 마지막 반이레 시기이다. 그리스도는 초림으로 죄와 사탄의 나라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셨고, 부활 승천하사 하늘보좌에 앉아 성령으로 통치하시며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신다. 또한 지금은 사탄이 땅으로 내어쫓겨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시기다. 한때 두때 반때 동안 하나님의 백성은 작은뿔에 의해 핍박당한다는 예언이 요한계시록에서 교회가 용과 짐승에 의해서 핍박당함으로 나타난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은 동일하다.
- 그러므로 주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지금이 사탄이 자신의 대리자 적그리스도 작은뿔을 내세워 교회를 핍박하는 한때 두때 반때 시기이며(단7:25)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는 핍박을 당하고 그때 주의 재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시기이다(단12:7) 지금은 교회의 두증인이 사역을 감당하다가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당하는 1260일 시기이고(계11:3) 해달별을 입은 여자(신약교회)가 용을 피해 광야에서 양육되는 시기이며(계12:14),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 짐승이 권세를 받아 교회를 핍박하는 42개월 시기(계13:5) 땅에서 올라온 두뿔 짐승이 거짓종교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시기다. 바로 지금이 마지막 반이레이며, 용(사탄)이 보낸 두 짐승이 활동하며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막는 시기다.
2. 666과 두 짐승, 거짓선지자.
(1)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막는 두 짐승(정치권력자, 거짓선지자)
①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막는 사탄의 대리자
- 적그리스도는 다니엘의 네 나라 짐승 환상에서 작은뿔(단7:25)로 이미 예언되었다. 요한계시록에는 교회의 두 증인을 죽이는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계11:7), 바다에서 올라온 열뿔 짐승(계13:1), 음녀 바벨론이 탄 짐승의 일곱째 머리 여덟째 왕(계17:11)으로 등장한다. 모두 동일한 짐승이며 적그리스도다. 바울은 그를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로 불렀다.
② 열뿔 짐승과 두뿔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두 측면
- 두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두 측면이다. 둘 다 모두 적그리스도다. 정치권력자 열뿔 짐승은 드러난 적그리스도 세력의 대표며, 두뿔 짐승 거짓선지자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자 적그리스도를 숭배하도록 거짓종교로 미혹을 하는 적그리스도다. 지금 열뿔 짐승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두뿔 짐승 거짓선지자가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
- 적그리스도는 반드시 한 인물로만 단정할 필요가 없다. 교회를 핍박하는 단체와 세력도 적그리스도다. 물론 그 단체의 대표가 가장 적그리스도로 드러나겠지만, 그를 뒤에서 도와 교회를 핍박하는 적그리스도들도 있다. 이 두 짐승이 합쳐진 강력한 한 존재가 나올 수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을 지배하려면 한 사람 적그리스도보다 큰 통치기관으로서 독재정부 혹 종교권력 같은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로마교황과 바티칸 교황청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 단체란 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역사 속에 등장한 그 어떤 핍박자보다 가장 근접한 적그리스도였음이 분명하다.
③ 두 증인과 두 짐승
- 사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승천으로 하나님께 왕권(나라)를 받으실 때(단7:13-18) 죄인을 참소하는 권세가 결박되었다(계11:9-11) 사탄은 지금, 주의 초림(십자가,계12:5/성전파괴,단9:27)부터 주의 재림때까지 권세가 결박되어(무저갱에 갇혀) 자기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사탄은 교회의 두증인 사명으로 죄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얻어 하나님 나라 백성되는 구원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사탄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을 줄을 알고 분을 내며 신약교회를 핍박하고 교회의 두증인 사명을 극렬하게 막는다.
- 교회가 모세와 엘리야처럼 복음을 증거하며 두증인 사명을 감당할 때, 사탄(용)도 두 짐승(열뿔짐승, 두뿔짐승)을 보내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사람들은 용이 보낸 두짐승을 보고 교회의 두증인으로 오해하며 그들이 전하는 거짓복음을 듣고 우상을 섬긴다. 두짐승은 광명의 천사(미혹)와 우는 사자(위협)로 활동하며 교회가 두증인 사명을 못하도록 극렬하게 핍박한다.
(2) 666, 바벨론 세상나라 백성 표시
① 이마에 표시하며, 표시가 없으면 바벨론에서 생활을 못함
- 이마에 인을 침은 그가 누구에게 속한 백성인가를 분명히 나타내는 상징용어다. 사람의 이마는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곳으로 숨길 수 없는 곳이다. 그 표시를 이마에 함은 모든 사람에게 그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공개적으로 분명히 밝힘이다. 숨길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 표시와 사탄의 백성 표시다. 이마에 인을 쳐서 표시함은 신명기(6장)과 에스겔(9장)에 나온다.
- 에스겔은 세마포 먹그릇 천사 환상을 본다. 하나님은 살육하는 기계를 가진 여섯 천사를 부르시고 그중 가는 베옷(세마포)를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 통을 찬 천사(=세마포 먹그릇 천사)에게 말씀하신다. 그가 먼저 가서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을 보며 탄식하고 우는 하나님 백성의 이마에 표를 한 후 나머지 다섯 천사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이마에 표를 받지 못한 모든 사람을 남녀노소, 처녀와 어린아이, 부녀 가릴 것 없이 진멸하라고 하신다.(겔9장)
- 신명기 쉐마에는 네 미간과 손목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라고 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이 말씀 그대로 두 개의 테필린(가죽상자)를 만들어 하나는 이마에 붙이고 하나는 손에 감고 기도한다. 이마는 그 사람의 얼굴이며 숨길 수 없는 곳이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신6:6-8)
- 두뿔 짐승 거짓선지자는 열뿔 짐승 정치권력자 적그리스도를 섬기도록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 절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인다. 느브갓네살이 자신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백성은 모두 죽이는 그런 무서운 일이다. 목숨을 담보로 성도와 교회를 위협하는 무서운 박해다. 또한 그는 우상숭배를 피한 자들도 이마에 짐승(사탄)의 표시가 없으면 매매를 할 수 없도록 세상나라 경제시스템에서 완전히 축출한다.
- 사탄(용)은 열뿔 짐승 두뿔 짐승(적그리스도)를 내세워 그리스도의 신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그 이마에 분명히 세상나라 바벨론 표시를 하도록 해서 그 신분을 분명하게 나타내게 하고, 자기들과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나라에 속하지 않으면 그의 목숨을 빼앗고, 경제활동도 못하도록 무섭게 핍박한다.
② 666 – 바코드, 크레딧카드, 베리칩
- 요한은 666을 열뿔 짐승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666은 어떤 인물의 이름인가? 누가 열뿔 짐승 적그리스도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666을 특정 사람의 이름으로 제시했지만 그들 모두는 역사 속에서 없어졌다. 아직도 모른다.
- 처음에는 상품분류 바코드가 666이라 했고, 얼마 후 크레딧카드도 666이라 하더니 요즘은 베리칩을 666이라고 한다. 이런 과격한 주장은 주로 휴거와 7년 대환란을 강조하는 극단적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666은 짐승 적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했다. 바코드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표시가 아니라 마트에서 물건을 분류하는 표시로 이며, 크레딧카드는 지갑에 넣고 다니지 이마에 넣지 않는다. 한동안 크레딧카드를 총괄하는 컴퓨터 이름이 beast(짐승)이라고 주장했지만 근거가 없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QR 코드를 스켄하고 제품인식은 물론 금액지급까지 한다. 그들은 이제 스마트폰이 666이라 해야 할 판이다. 요즘은 코로나 백신이 사람의 DNA를 바꾸는 지배하려는 적그리스도의 음모라고까지 한다.
- 베리칩은 Verification + Chip 의 합성어로 신원이나 정보를 확인하는 아주 작은 마이크로 칩을 말한다. 이 칩을 사람 몸속에 넣고 전용 스케너로 읽으면 그 안에 저장된 내용을 모두 읽을 수 있다. 잃어버린 애완동물이나 치매노인의 신분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고 개인정보가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베리칩은 너무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모두 사람이 속에 강제로 삽입함은 공포영화에나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주로 애완동물의 인식표 정도로 사용될 뿐 국가가 사람의 두뇌를 조종하는 엄청난 테크놀로지가 들어있지 않다. 이 모두는 불건전 종말론자들이 만들어낸 음모론이다. 바코드, 크레딧카드, 베리칩을 666 적그리스도 짐승의 수라 말함은 너무도 비정상적이다. 그런데도 불건전 종말론자들이 이런 주장을 계속하므로 성도들이 혼란과 두려움을 갖는 것은 성경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이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완전 틀리게 이해했다.
③ 666 – 네로 황제
- 현재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주장은 게마트리아 해석이다. 게마트리아로 666은 헬라어 “네론 카이사”를 히브리어로 음역해서 그 숫자를 더한 것이다. 즉 666은 로마황제 중 대표적 박해자 네로를 의미함이다. 이는 요한계시록 17장의 일곱산을 타고 앉은 음녀 바벨론을 로마제국으로 직접 설명하는 과거주의 해석에 해당하며 요한계시록을 1세기 초대교회 상황과 함께 이해하는데 유리하며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런 과거주의 해석은 계시의 미래성을 약화시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 사도요한이 666을 네로황제라고 직접 거명했다는 과거주의 해석은 요한계시록의 모든 환상이 AD 70년 성전파괴와 로마제국 멸망을 예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은 이미 과거에 다 지나간 사건기록이며 교회와 인류역사의 미래계시가 아니다. 우리에게 요한계시록은 과거에 이미 지나간 역사를 읽어보고 그 의미를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요한계시록의 환상은 1세기에 모두 이루어졌는가?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했는가? 아니다. 그래서 요한의 환상이 1세기 성전파괴와 로마제국 멸망 예언이라는 과거주의 해석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 새하늘과 새땅 까지 사실이 아닌 문학적 표현으로 여기게 되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래서 온건한 과거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의 모든 계시는 1세기 성전파괴와 로마제국 멸망이라는 과거사실을 예언하지만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의 주의 재림과 흰보좌 심판, 새하늘과 새땅은 미래에 되어질 예언이라 주장한다. 치명적 문제를 해결했지만 연속되는 계시를 과거와 미래로 구분함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 일곱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서의 성격이 있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계시의 요소를 결코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요한이 666을 네로황제를 지칭하며 썼다는 게마트리아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열뿔 짐승과 666을 보면서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은 누구나 로마황제(대표적 박해자 네로)라고 분명히 이해했을 것이다. 이는 다니엘의 네 짐승 작은뿔 환상을 알고 있는 사도요한과 초대교회 성도들이라면 당시 상황 속에서 누구나 도달하는 당연한 결론이지 하나님이 열뿔 짐승과 666을 로마황제 네로라고 직접 말씀하셨거나 요한이 네로라고 직접 제시하며 기록했기 때문은 아니다.
- 이레니우스는 사도요한의 제자 폴리갑으로부터 성경을 배운 초대교회 교부다. 그는 요한계시록이 쓰여지고 약 45-50년 후의 사람이며(AD140년경) 스승 폴리갑으로부터 요한계시록을 직접 배웠다. 그런 그가 자신도 666이 어떤 인물을 가르키는지 모른다고 했다. 666이 네로황제를 정확하게 지칭한다면 이레니우스가 모를리가 있을까?
(3) 666은 나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세상을 따른다는 표시
① 666 - 사람으로 충만한 수
- 하나님 백성은 그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이 새겨져있고, 죄와 사탄의 세상나라 백성은 짐승(사탄)의 표시는 666을 그 이마에 새긴다. 666은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열뿔 짐승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표시다. 666이 네로황제가 아니라면 대안은 무엇인가? 게마트리아 과거주의 해석을 경계하는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666을 인본주의의 극치라고 주장한다.
- 666이 사람으로 충만한 수라는 설명이다. 요한계시록은 7을 하나님의 숫자로 기록한다. 일곱교회, 일곱눈 일곱영, 일곱천사, 일곱인봉, 일곱나팔 일곱대접... 7일, 칠칠절, 70이레, 그런데 6은 7에 하나 모자라는 불완전한 숫자다. 6은 하나님의 숫자 7을 흉내 내되 결코 7이 될 수 없는 사람의 숫자다. 그 6을 세 번이나 겹쳐서 반복해서 썼다. 그것을 육육육으로 읽든 육백 육십 육으로 읽든 상관없다. 6을 세번 반복해서 겹쳐 쓴 것이다. 사람으로 충만한 숫자다. 사도요한이 이런 의미로 666을 썼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독재자 이름이나 베리칩으로 설명하는 잘못된 해석보다는 이렇게라도 설명하는 것이 현재까지는 가장 안전하겠다.
② 666 - 바벨론
- 나는 개인적으로 666은 음녀의 이마에 세겨진 “바벨론”으로 부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17:5) 성도의 이마에는 하나님 백성의 표시(계7:1)가 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이름이다(계14:1) 그렇다면 세상나라 백성들의 이마에 세겨진 666은 무엇일까? 얼듯 사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탄은 하나님과 비견되는 세상나라의 왕이 아니다. 사탄은 결코 죄인들의 영혼을 창조한 주인이 아니기에 자기 이름을 세길 수 없다.
- 요한계시록에는 두 여자가 나온다. 해달별을 입은 거룩한 신부(계12장)와 용과 두 짐승을 섬기며 붉은 옷을 입고 온갖 금은보석을 치장한 더러운 음녀(계17장)이다. 전자는 하늘에 거하는 자, 하나님 백성, 그리스도의 신부 신약교회를 말하며, 후자는 땅에 거하는 자들, 세상나라 백성, 심판받을 죄인들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거친 광야에서 하늘만나와 반석의 물을 마시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아가지만, 음녀 바벨론은 세상에서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용과 두 짐승이 주는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며 사치와 향락에 취해 살아간다. 그러므로 용과 두 짐승에 속한 자라는 표시 666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 적그리스도 사람의 이름을 찾기보다 세상나라 대표이름 바벨론이라 부름이 더 좋다는 생각이다. 666이라 쓰고 바벨론이라 읽는다.
<결론 및 적용>666보다, 내가 지금 어린양을 따르는 백성인가를 확인하자
(1) 666 헛된 주장에 미혹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666을 이마에 받았다. 666은 살아가면서 받지 않고 이미 태어나면서 모든 사람이 받는다. 그러므로 666이 누구의 이름인가 보다 내가 지금 어린양 그리스도를 따르는 백성인가를 확인하라. 사람은 누구든지 분명하게 자기가 하나님나라 백성인지 세상나라 백성인지 표시해야 한다. 이는 지정의 전인격의 분명한 고백이며 공개적 선언이다. 하나님 백성은 어린양 그리스도께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고, 그리스도께서 어디로 인도하든지 순종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이다(계14:4)
- 666은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세상나라 바벨론 백성이라고 명백히 선언하는 표시다. 설령 666을 적그리스도의 실제이름이라 해도 666이 나오기 전 먼저 적그리스도가 나와 활동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모르고 받을 리가 없다. 모든 사람을 그 표시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고 스스로 표시한다. 그러기에 666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마트에서 바코드 붙은 상품을 샀다고 열뿔 짐승을 섬김도 아니고, 크레딧카드를 사용한다고 바벨론 백성 됨도 아니다. 누가 나를 마취해 의식을 잃게 하고 내 몸 속에 베리칩을 심었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모르는 상태로 평생 베리칩 가지고 산다고 하자.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 백성에서 지옥백성이 될까? 참 한심한 생각이다. 누가 이런 헛된 말로 교회를 혼란케하고 성도들을 미혹시키는가?
(2) 불건전 종말론에 미혹되지 말고 칭의와 성화, 십자가와 부활에 집중하자.
-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불건전 종말론자들의 거짓주장에 전혀 관심두지 말라.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 칭의와 성화에는 관심 없고 오직 불건전 종말론만 관심 있다. 그들은 성도들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거짓교사다. 그들은 거짓 종말론을 퍼트리며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들은 막연한 의심과 근거 없는 두려움만 불러일으켜 이득을 취하는 음모론자들이다. 그들은 큰 소리로 말하나 그 주장이 틀렸을 때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아니면 말고 식의 주장을 하는 무책임한 자들이다. 비록 그들이 의도적으로 칭의와 성화의 복음을 희석시키려 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만든다. 그들을 교회를 혼란케 하는 거짓교사들이다.
- 구약의 예언서와 요한계시록은 하나님 나라 구원과 십자가 복음의 완성이요 결론이다. 불건전 음모론에 미혹되지 말고 칭의와 성화의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의 두증인 사명에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