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계시록(22) - 교회의 두 증인 사명 (계11:1-14)

Author
GOSPEL323
Date
2021-03-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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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22) - 교회의 두 증인 사명 (11:1-14)

1. 주님께서 세운 교회

(1)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함, 천국열쇠를 가졌다.

- 마16:18-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그리스도의 피로 사셨다.

- 행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물을 새롭게 한다.

- 엡1:20-23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2. 교회의 두 증인 사명

(1) 교회는 외적으로 핍박당하나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지켜주신다.

①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 성전측량은 에스겔의 새성전 환상(겔40-48장)에서 왔다. 에스겔은 생기(성령)이 들어가 살아난 하나님 백성(신약교회)를 새롭게 지어질 하나님의 성전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척량하는 장대를 주며 성전을 측량하게 하신다. 사도요한도 동일하게 지팡이 같은 갈대로 성전을 측량하라 하신다. 성전척량은 하나님께서 직접 참된 성전(신약교회)를 지어 자기 소유로 삼으시고 직접 보호하신다는 말씀이다.

- 측량하지 말라는 성전의 바깥마당은 마땅히 측량해야할 성전의 일부다. 역사적으로 솔로몬성전 헤롯성전에서 바깥뜰은 이방인의 뜰로 불리며 성전이 아니라고 여겨졌지만 에스겔 환상으로 볼 때 그곳은 성전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소건물, 성전 안뜰, 성전 바깥뜰 모두를 측량하라 하신다. 성전 바깥뜰은 30개의 방이 있는 성벽(담)으로 둘러 쌓여진 안쪽이다(겔40장)

② 성전의 바깥마당은 이방인에 의해 마흔 두 달 짓밟힘.

- 본문의 성전은 성전 바깥마당을 포함한 성전 전체가 아니다. 제사장들이 들어가 제사하는 성소건물이며, 제단은 분향단이고, 경배하는 자들이란 일반인이 아닌 제사장들이다. 왜 하나님께서 성소건물과 제사장들을 측량케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제사장들만 구원하고 보호하실 리는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신약교회를 내면적으로 보호하심을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지키시고 구원하신다.

- 에스겔 환상에 의하면 분명히 성전 바깥마당도 성전인데 왜 이방인들이 바깥뜰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도록 놔두시는가? 성전건물과 성전 안뜰은 참된 성도, 바깥뜰은 거짓성도를 말하는가? 아니다. 거짓성도는 처음부터 성도가 아니다. 그들은 성전 바깥뜰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본문에서, 이방인들이 바깥뜰을 짓밟음은 신약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외적핍박을 말한다. 교회는 내면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만, 외적으로는 세상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한다.

- 마흔 두달, 1260일, 삼년 반은 모두 동일한 용어로 다니엘 70이레에서 마지막 반이레를 일컫는 기간이다. 모두 그리스도의 초림(십자가 혹은 성전파괴)부터 재림까지를 말한다. 42개월은 년으로 환산하면 3년 반(12개월x3+6개월)이며, 날로 환산하면 1260일(42개월x30일)이고, 다니엘과 요한계시록 용어로 한때 두때 반때이다(단7:25,단12:7,계12:14).

③ 교회의 두 측면 – 세상에서 핍박받음, 하나님의 보호받음

- 이방인들이 와서 성전 바깥뜰을 짓밟는데 성전 안뜰과 성소건물은 그대로 둘까? 불가하다. 이는 환상이요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은 의도화 된 그림이다. 이는 교회의 두 측면을 말한다. 교회는 주의 초림부터 재림때까지 외적으로는 세상나라로부터 핍박을 당하나 하나님은 교회를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심판하심이 전혀 아니다.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으로 세상나라 속에 하나님나라(교회)를 먼저 세우셨다. 죄인의 나라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졌으므로 죄인들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 나라 백성되는 구원을 받게 되었다. 죄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기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죄인들 가운데로 가져오셨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 이 기간은 복음을 믿는 자에게 여호와의 은혜의 날, 구원의 날이요, 복음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과 보복(신원)의 날이다(사61:2) 이 기간은 미래에 일어날 7년 대환란 기간이 아니라 바로 지금을 말한다(고후6:2) 신약성경은 이때를 말세, 마지막 날이라 말한다. 주의 초림부터 재림까지다.

- 주의 초림으로 세워진 신약교회는 주의 재림 때까지 세상나라 속에서 핍박을 당한다. 이방인들이 마흔 두달 동안 성전의 바깥뜰(마당)을 짓밟는다. 그러나 결코 성전의 안뜰과 성소건물을 건드리지 못한다. 교회가 그렇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백성/신약교회를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2) 교회는 하나님의 참된 성전을 지으며 진리의 말씀을 증거한다.

① 두 증인은 신약교회를 말함

- 요한계시록은 바벨론 심판 일곱재앙이 본계시로 진행되며 그 사이에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 핍박당함, 최종승리를 보여주는 삽입계시가 교차된다고 했다. 계시록 7장에서 지상교회는 여호와의 거룩한 군대로 부름받은 144000명으로서 세상 죄악에 맞서 영적 전투하는 교회였다. 계시록 10장에서 교회는 작은 책을 먹고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들에게 예언하는 사명을 받았다. 계시록 11장은 그 교회가 주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 어떤 상황이며 어떤 사명을 가졌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 두 증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대단히 많은 견해가 있지만, 우리는 지금이 실현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 현천년/무천년설을 지지하기에 대다수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견해를 따라 신약교회를 상징함으로 본다. 그렇다면 신약교회가 어떻게 두 증인이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계12:17)로서 사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신약교회를 두 증인으로 부름은 율법에서 증거의 효력을 갖기 위해 한 증인으로는 안되고 반드시 두 증인이 있어야 함에서 왔다.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신19:15). 유대인들은 언제나 두 명의 증인을 대동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두 명씩 짝을 지어 파송하셨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②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두 증인 사역 – 성전 지음

- “이는 이 땅에 주 앞에선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4절) 두 증인(신약교회)는 스가랴 4장에 예언된 순금등대(촛대)와 두 감람나무로 비유된다. 스가랴 환상에서 두 감람나무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전을 지을 자였다. 교회는 하나님의 참된 성전을 지어가는 증인이다.

-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성전 지을 두 감람나무로 지목되었다. 환상에서 두 감람나무는 순금등대에 감람유를 공급하여 성전에 불을 밝힌다.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울 자다. 사도요한은 신약교회가 바로 이 두 사람처럼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 하나님의 참된 성전을 지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③ 모세와 엘리야의 두 증인 사역 -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 선포

-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6절) 두 증인이 행하는 기적은 모세와 엘리야의 기적이었다. 엘리야는 아합을 쳐서 증거할 때에 삼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했다. 모세는 바로를 쳐서 증가할 때에 애굽의 하수가 피가 되게 했고, 또 열가지 재앙을 내렸다. 두 증인(신약교회)는 세상을 향해 증거하는 동안 하나님께 권세를 받아 엘리야와 모세처럼 사역하게 된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애굽 바로를 쳐서 증거했으며, 엘리야 역시 바알을 숭배하는 아합과 이세벨을 치며 회개와 심판을 증거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모세와 엘리야로서 말씀을 선포하되, 그 사역은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리스도를 대신한다(사11:4,사49:2)

- 두 증인 입에서 나와 백성을 사르는 불은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 선 검”(계1:16)과 동일하다. 이사야는 메시야가 “그 입의 막대기”(사11:4)와 “그 입의 날카로운 칼”(사49:2)로 세상을 치신다고 예언했고, 그리스도는 그의 입의 검으로 니골라당을 치시고(계2:16),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만국을 치신다(계19:15). 입의 검은 곧 그리스도의 참된 말씀이다. 두 증인은 세상을 향한 구원과 심판의 말씀을 증거하며 그리스도를 대신한다. 예레미야도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여 백성을 사를 것이다”고 말한다(렘5:14)

(3) 교회의 두 증인 사역을 통해 많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①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에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을 죽임

- 교회는 주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1260일,42개월,3년반,한때두때반때) 하나님의 참된 성전을 세워가고, 모세와 엘리야의 심정으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증거 한다. 교회가 세상을 향한 두 증인 사역을 마쳐갈 때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을 죽인다. 짐승은 다니엘 7장에서 언급된 사탄의 지배를 받는 세상나라를 말한다. 세상 마지막 때가 되면 사탄이 세상나라 권력(짐승)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죽이게 될 것이다. 교회의 죽음은 상징이며 실제가 아니다. 교회의 죽음은 사탄과 세상나라로부터 당하는 핍박의 극심함을 말함이다.

- 한편, 두 증인 사역을 마칠 때를 반드시 최종심판 마지막 때를 의미한다고 제한하지 말자. 이 일은 마지막 때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주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전 시대에 걸쳐 일어나는 사건으로도 적용할 수 있다. 42개월 1260일 동안 교회는 계속 두증인의 사역을 감당하고 핍박당해 죽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 핍박은 먼 미래 마지막 때에만 있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도 있다. 미국에는 실제적인 핍박이 없지만 공산권과 이슬람권에는 매우 극심한 핍박이 있다.

- 교회가 핍박당해 죽음은 성전 바깥뜰이 이방인에 의해 짓밟힘을 당함과 같다. 이는 주의 초림부터 재림때까지 전기간에 걸쳐 그렇고 마지막이 될수록 그 핍박의 강도는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분명하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성소건물과 안뜰을 측량하셨듯이 교회를 친히 지키시기 때문이다. 두 증인(신약교회)의 죽음은 실제로 교회가 죽은 것은 아니다. 교회는 사흘 반 만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

② 교회는 죽임당하나 사흘 반 만에 살아나 하늘로 올라감

- 계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 교회는 모세와 엘리야처럼 세상나라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두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되 큰 핍박을 당하고 죽임 당한다. 세상나라는 온갖 더러운 죄악으로 가득찬 소돔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애굽이다. 그들은 소돔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불로 소멸되며, 애굽처럼 열가지 재앙으로 진멸될 곳이다. 교회가 두 증인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곳이 바벨론 세상나라임을 알 수 있다.

-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죽임 당하신 곳(예루살렘)에서 죽는다. 교회는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라간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복음을 전하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를 지고 동일하게 죽는다. 바벨론 세상사람들은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 교회는 자기가 만들어낸 새로운 진리를 전함이 아니라 그들의 주님인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복음을 그대로 전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 세상사람들은 교회가 전하는 복음과 삶을 보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 사흘 반은 그리스도의 부활(사흘)과 교회의 두 증인 사역기간 삼년 반을 연상시키는 용어다. 짐승으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은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하고 하늘로 올라간다. 마지막 때에 모든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핍박받아 죽고 부활한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공동체를 말한다. 성도 개개인의 부활을 말함이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그렇다는 말이다.

- 교회의 죽음과 부활은 마지막 종말의 때에 교회가 큰 핍박당함과 최종승리를 말하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교회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공동체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핍박당해 죽지만,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 이러한 죽음과 부활이 오늘 우리 교회에도 계속 반복된다. 세상은 성전의 바깥뜰을 짓밟지만 성소건물과 성전 안뜰은 결코 건들지 못한다. 주님께서 지키시기 때문이다.

③ 성의 1/10이 무너져 7천명이 죽고,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 교회의 두 증인 말씀선포 사역을 거부하던 바벨론 세상사람들은 교회가 짐승/사탄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즐거워했지만 교회가 다시 살아나 하늘로 올라가자 크게 두려워한다. 그때 큰 지진이 나서 성의 1/10이 무너지고 7천명이 죽는다. 여기서 성의 1/10과 7천명은 어떤 숫자일까? 실제수 7천명은 그 성의 전체 인구를 알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1만명 중에서 7천명은 거의 전멸에 해당하는 상당한 수이며, 100만명 중에서 7천명은 상대적으로 그리 많은 수는 아니다. 따라서 실제수로 보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요한계시록 용례대로 상징적인 수로 보아야 한다.

- 구약에서 1/10과 7천명은 소수의 남겨진 자를 의미한다. 1/10은 이스라엘 황폐한 땅에 남겨진 그루터기(사6:13)이며, 7천명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겨진 자(왕상19:18)다. 엘리야 때는 여호와를 섬기는 자 7천명만 남았고 이사야는 유다왕국의 1/10의 그루터기를 예언한다. 1/10과 7천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바알(사탄)을 섬겼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교회의 두 증인 사역으로 그 반대가 된다. 성은 1/10만 무너지고 죽은 자가 7천명이며 나머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다. 교회의 두 증인 사역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는지 말해준다.

- 큰 지진으로 죽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는 본문이 교회의 두 증인 사역결과를 긍정적으로 기술하는 문맥흐름으로 볼 때 불신자들의 회개하고 구원받음으로 해석된다. 또한 본문은 두 증인의 죽음과 부활이 마지막 때의 한 번의 사건처럼 기술하지만, 교회가 주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 전 기간에 걸쳐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핍박당해 죽지만 다시 살아남을 통해 많은 불신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옴을 말함으로 적용할 수 있다.

- 일곱인봉, 일곱나팔, 일곱대접 심판 문맥에서 불신자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며 우상을 숭배하고 불순종한다. 그런데 교회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진리의 말씀을 전할 때 불신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는다. 그들은 아직 세상에 있으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기 백성이다. 세상에는 멸망 받을 진노의 자녀들이 있고 우리처럼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섞여 있다. 교회의 두 증인 사명이 이렇게 중요하다.

<결론 및 적용>교회는 하나님 나라 구원의 공동체다.

(1) 교회의 참모습은 믿음의 눈으로만 보인다.

- 성경에서 말하는 영광스러운 교회와 오늘 우리 삶에서 경험하는 교회는 너무 차이가 많아 보인다. 내 시선을 성경에 맞춰야한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교회의 참된 모습이 보인다. 세상의 눈으로 교회를 보지 말고 구원의 말씀을 따라 교회를 보자.

(2)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 작은 책을 가진 큰 천사는 일곱째 나팔이 지체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지금은 다섯째 나팔, 여섯째 나팔이 이미 불렸고 바벨론 불신세상 가운데 황충,마병 악령들이 역사하고 있다. 우리는 바벨론 세상가운데 살고 있다. 우리가 누구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를 잊으면 금방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진노의 불이 내려 이미 곳곳에 타오르고 있는대도 불신세상은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하고 탐스럽게 보인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세상과 교회를 진리의 눈으로 정확하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