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계시록(17) - 성도들의 기도와 일곱째 인봉 (계8:1-5)
Author
GOSPEL323
Date
2021-02-0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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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7) - 성도들의 기도와 일곱째 인봉 (계8:1-5)
1.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신다.
(1) 하늘이 반시간 동안 고요해진 이유
- 지금 사도요한은 하늘보좌 하늘성전에 가있고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았다. 하늘보좌에는 네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하나님과 어린양께 찬양하고 있고 천만천사와 모든 만물이 화답하고 있었다.(4-5장) 구속의 찬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손에 있는 일곱 인봉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하나씩 인봉을 떼신다. 처음 네 인봉을 여실 때 네 마리의 말이 나오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선포된다. 다섯째 인봉에서 제단아래 있던 순교자들의 기도가 나오고, 여섯째 인봉에서 세상나라 임금 왕족 장군 부자 강한자 종과 자유자들이 하나님의 큰 진노의 날이 임함을 알고 모두 두려워 떤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전투하는 지상교회 144000을 보여주시고 승리한 천상교회 흰옷입은 큰무리를 보여주신다.
- 온 하늘에 퍼져나오는 구속의 찬양소리(5장), 여섯인봉이 열리며 등장하는 심판의 장면(6장), 지상교회 천상교회의 영광스러운 모습(7장).... 지금 사도요한은 하늘에서 보여지는 엄청난 장면을 보고 듣고 있다. 그런데 일곱째 인봉을 떼실 때 하늘이 갑자기 반시간 동안 고요해졌다. 그 엄청난 계시의 장면이 멈추고 소리들이 잠잠해졌다. 무슨 뜻일까? 왜 하나님은 반시간 동안 모든 일을 멈추시고 잠잠하게 계시는가? 바로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기 위해서다.
(2) 천사가 금향로에 성도들의 기도를 담아 향연과 함께 하나님께 올림
- 성막기구에는 향로(불 옮기는 그릇)가 있다. 제사장은 번제단 불을 담아 내성소안 분향단으로 가져와 그 불로 향을 태우며 하나님께 향연을 올린다. 성막완공 후 첫 제사 때 하나님이 직접 지명하신 아론의 두 아들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가 번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을 향로에 담아 분향하다 죽은 사건은 너무도 유명하다(레10:1-2) 두 제사장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더럽혔기 때문이며, 번제단의 불로 분향함이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구속계시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 번제단은 그리스도의 피를 덧입는 장소요, 분향단은 거룩함을 입은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고 교제하는 곳이다. 번제단을 거치지 않는다면 결코 분향단에 도달할 수 없다. 분향단의 기도는 번제단의 피를 가지고 나아간다. 향로는 그것을 말하고 천사는 그 방식을 그대로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하나님 앞에 나왔다. 그는 향로에 성도들의 기도를 담아 향연과 함께 하나님께 올린다. 성도들의 기도는 향연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바로 그 시간에 하늘이 고요해진 것이다.
- 시141:1-2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3)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인봉과 나팔 심판이 진행
-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는 구속사의 진행에 성도들의 기도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하늘보좌 앞에 선 이십 사 장로들이 금대접에 성도들의 기도를 담고 있으며(계5장) 그리스도께서 다섯째 인봉을 여시니 예수의 증거로 인해 죽임당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탄원(기도)를 드린다(계6장) 지상성도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에 기도, 천상성도는 하늘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뵈옵기에(?) 탄원이 된다. 일곱째 인봉이 열리니 천사가 성도들의 기도를 향로에 담아 향연과 함께 하나님께 올려드린다(계8장)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 응답으로 일곱째 인봉이 열리고 또한 일곱 나팔 심판을 진행하신다.
-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가? 우리의 기도는 정말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도하지 않는가?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인 대화요 교제라고 알고 있고 기도하면 응답주신다는 것을 배우지만 실제로 그것이 무슨 말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기도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2. 성도들의 기도와 일곱째 인봉
(1) 왜 성도들은 기도하지 않는가?
① 기도가 무엇인지 모름
- 대부분 사람들은 기도를 “하나님의 힘으로 뭔가를 작동시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님도 기도를 그렇게 말씀하셨고 사도행전에는 기도해서 죽은 자가 살아나고 질병이 치유되는 기도응답이 나와 있다. 예수님 말씀의 문맥과 사도행전 기적의 배경을 보지 못하면, 기도는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으로 쉽게 정의된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기적을 구하면 즉시 그대로 이루어지는가? 특별한 긴급상황을 제외하곤 우리의 기도는 그런 응답으로 오지 않는다. 또한 간간이 이루어지는 기도응답도 확률로 보면 저절로 될 수 있는 일로 보이니...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기도응답에 대한 의심을 갖는다. 마치 임금님이 벌거벗었음을 보며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도 교회에서 말하지 못하는 현실처럼 보인다.
- 기도는 문제해결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백성이 위기에 처하거나 꼭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꼭 필요한 상황 중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는 특별응답에 해당한다. 기도하면 왜 문제가 해결되는지 알지 못하고 무조건 기도하면 응답된다는 단편적인 이해가 기도를 오해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기도하면 뭐든지 응답된다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과 전혀 다르다.
② 의인(나)의 고통을 보고도 하나님이 가만히 계심
- 우리는 기도하지만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듣고 계시고 기도응답 해주시는 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직접 돕지 않으시고, 가만히 계시며, 침묵하시는 것처럼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고통당하는 욥이 하나님께 기도해도, 하나님은 마지막이 될 때까지 전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 우리는 욥의 결론을 알고 있고 또 욥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만약 내가 욥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욥이 당하는 고통은 징계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가르침이었다. 그런데도 아내와 세 친구는 욥에게 계속 잘못을 회개하라고 말한다. 갑작스런 환란도 힘든데 네 잘못 때문이니 회개하라고 친구들이 정죄한다. 욥은 얼마나 답답할까?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욥이 아무리 하나님께 호소해도 하나님은 아무 말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욥기 38장에 비로소 말씀하신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욥23:8-10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③ 악인의 형통함을 하나님이 그대로 두심
- 아삽처럼 불신자가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을 당하는 너무 이상한 현실을 보며 기도는커녕 하나님을 믿는 기본신앙마저 흔들리는 상황을 때때로 경험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고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불신자들의 형통과 신자(나)의 어려움 속에 하나님은 과연 공의로우시며 과연 선하신지 의심이 들고 낙심에 빠진다. 그런데도 성도들의 기도가 향연과 함께 하나님께 상달되니 기도하라고....
- 시73:1-3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 시73:4-1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2) 기도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
① 지금 세상나라 속에 하나님 나라가 먼저 실현되게 하신 이유
- 하나님은 범죄한 세상은 그대로 두시고 그중에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죄의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가 중첩되어 성령으로 실현되는 이것이 구원의 방법이며 이것이 끝나는 날 세상나라는 멸하고 하나님 나라는 완성된다. 이 말은 죄인인 내가 지금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변화되어 간다는 의미다. 그것이 구원이며 그리스도는 지금 성령으로 이 일만 진행하신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구원의 핵심이다. 예수 믿고 바로 천국이면 쉬울텐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길고 어렵게 구원을 이루시는가?
- 왜 성도는 이미 구원 받았어도 아직 구원의 완성은 다가오지 않는가? 왜 성도는 구원 받았어도 지금 여전히 죄와 싸우며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가? 왜 하나님 나라는 바로 도래하지 않고 세상나라 속에 먼저 실현되어 중첩되게 와있는가? 모두 동일한 질문이다.
- 하나님께서 아직도 죄인을 더 구원하시려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중단시키시고 역사 가운데 나타나심은 구원의 종결이며 마지막 심판의 날이다. 더 이상의 구원은 없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반역을 여전히 그대로 두심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후손들 가운데 다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약속(노아언약) 때문이다(창9:1-17) 노아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범죄로 상실된 하나님 나라 에덴을 노아의 후손(죄인들)을 구원해서 다시 회복 완성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노아는 새로운 아담,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 참고로, 왜 하나님은 세상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중첩시키시는가? 왜 하나님은 사람을 한순간에 바꾸지 않으실까? 왜 그러실까? 물론 예수 믿고 죄를 짓지 않도록 한순간에 바꾸실 수 있다. 죄의 육체를 죽이시고 바로 불러가심이다. 예수 믿는 순간 죽이심이다. 죄인을 세상나라에서 구원하여 바로 하나님 나라로 불러가심이다. 이럴 경우 세상나라와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구분되며 중첩 되지 않는다.
- “예수 믿는 사람을 바로 죽여 하늘로 데려와 그 수를 모아둔다...” 얼 듯 보면 그럴 듯 해보이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비성경적이며 전혀 불가능하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 순간 모두 죽어 하늘로 간다면 이 땅에는 누가 남는가?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가 복음전할 것인가?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직접 개입하셔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주셔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까지 세상을 그대로 두신다고 약속하신 노아언약은 파기된다. 또한 세상은 매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직접 대면해야 하며 그 순간 화염검에 불타 죽음을 면치 못한다. 천사를 보내 복음을 전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생명의 천사가 아니라 죽음의 천사다.
- 예수 믿고 바로 죽는다면 죄의 육체가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인치심이 필요 없다. 예수 믿고 죄와 싸우며 살아가는 치열한 신앙생활이 필요 없다.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필요 없다. 교회가 이 땅에 남겨질 수도 없다. 믿는 순간 모두 죽어 하늘로 올라가는데 땅에 무슨 교회가 남겠는가?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거짓이 된다(마16:18) 한마디로 하나님의 언약도 파기되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도 모두 거짓이 된다.
- 어느 날 하나님이 하늘에게 복음을 들려주시고 그가 복음을 믿으면 그 순간 죽여 하늘로 데려간다. 하나님이나 천사가 나타나 복음을 전하는데 거부할 자가 있을 수 없으며 설령 거부하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 그들도 죽을 것이다. 복음전하는 천사의 출현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이쯤 되면 복음은 생명의 소식이 아니라 죽음의 소식이 된다. 아주 이상해 질 것이다. 이는 있을 수도 없고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계시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그게 바로 사이비 교주를 따라 집단자살 한 컬트 종교집단의 종말교리다.
② 구원은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으로 죄인을 변화시켜 나가는 성화가 핵심
- 지금이 실현된 하나님 나라며, 지금 하나님 나라가 세상나라 속에 들어와 있음은 우리 구원론에 중요한 내용을 말해준다. 우리는 구원을 얻어 출발했고, 지금은 구원을 이루어(체험해)가는 중이며, 마지막 날 부활하여 구원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출발한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며 이 출발이 없는 구원은 거짓이다. 모든 사람은 우리와 동일하게 예수 믿어 죄사함을 얻고 성령내주로 의롭다하심을 얻어야 구원 얻는다. 우리는 예수 믿어 구원을 얻었고 부활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계속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 구원이다. 죄와 사탄의 나라 속에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했다는 말이다. 지금이 실현된 하나님 나라 천년왕국이란 말이 바로 이 말이다.
③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문제해결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심
-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남겨주시고 떠나가셨다. 제자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며 기도하므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 기도는 죄인이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되는 방법이다. 기도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기도응답은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응답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욥에게처럼 침묵하시고, 아삽처럼 깨닫게 하시고, 어떨 때는 긴급한 기적으로 역사하신다. 이 모든 응답은 동일하다. 죄인인 나를 연단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 백성 되게 하심이다.
(3) 향연으로 올라간 성도들의 기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 자신을 말한다.
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
- 기도는 단순한 기도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이 삶 전체를 말한다. 성도들은 어려운 핍박 가운데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있다. 그들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급한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도움을 얻는다. 내면의 어려움 속상함 두려움 모두 주님께 아뢰며 그때마다 주님께서 주시는 위안과 응답을 얻고 점점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되어 간다. 기도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과 나를 인격적으로 결합시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사귐이다.
- 계14:4-5 “이 사람들은 여자(음녀)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② 하나님은 성도들의 눈물과 고통을 보심
- 하늘로 올리워진 기도는 기도행위를 넘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 자신을 말한다. 그들의 삶이 바로 기도요 하나님께 대한 탄원의 눈물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이 애굽 바로에게 고역당하는 것을 보시고 모세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따르며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의 눈물을 아신다. 그들의 눈물이 바로 이십사 장로 금대접에 담긴 성도들의 기도요(계5장), 다섯째 인봉 때 순교자들의 탄원이며(계6장), 천사의 향연으로 올라간 성도들의 기도였다(계8장) 이 세 가지는 동일한 하나의 기도를 말한다.
③ 진노의 대접은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신원과 보복임
- 천사들은 기도의 향연을 올린 후 빈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 세상에 부었다. 이때 세상에는 번개, 뇌성, 음성, 지진, 우박이 쏟아진다. 일곱째 인봉 심판이 열렸다. 세상심판은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나님의 신원과 보복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복음 때문에 흘려야 했던 모든 눈물을 주님께서 닦아주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흘리는 눈물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결론과 적용>하나님은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주신다.
(1) 인봉된 두루마리는 세상을 심판하고 교회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메시지.
① 처음 네 인봉은 바벨론 주변심판, 나중 세 인봉은 바벨론 중심부를 심판
② 7일 동안 창조하신 것처럼, 7개의 심판으로 세상을 멸하시고 새창조하심
③ 일곱번씩 세 번 반복(일곱 인봉, 일곱 나팔, 일곱 대접) – 반드시 심판하심.
④ 점점 심판의 강도가 세지다가 마지막 일곱째 대접 때 바벨론을 완전 멸망시킴
(2)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의 완성을 기다리고 사모하며....
1.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신다.
(1) 하늘이 반시간 동안 고요해진 이유
- 지금 사도요한은 하늘보좌 하늘성전에 가있고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았다. 하늘보좌에는 네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하나님과 어린양께 찬양하고 있고 천만천사와 모든 만물이 화답하고 있었다.(4-5장) 구속의 찬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손에 있는 일곱 인봉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하나씩 인봉을 떼신다. 처음 네 인봉을 여실 때 네 마리의 말이 나오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선포된다. 다섯째 인봉에서 제단아래 있던 순교자들의 기도가 나오고, 여섯째 인봉에서 세상나라 임금 왕족 장군 부자 강한자 종과 자유자들이 하나님의 큰 진노의 날이 임함을 알고 모두 두려워 떤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전투하는 지상교회 144000을 보여주시고 승리한 천상교회 흰옷입은 큰무리를 보여주신다.
- 온 하늘에 퍼져나오는 구속의 찬양소리(5장), 여섯인봉이 열리며 등장하는 심판의 장면(6장), 지상교회 천상교회의 영광스러운 모습(7장).... 지금 사도요한은 하늘에서 보여지는 엄청난 장면을 보고 듣고 있다. 그런데 일곱째 인봉을 떼실 때 하늘이 갑자기 반시간 동안 고요해졌다. 그 엄청난 계시의 장면이 멈추고 소리들이 잠잠해졌다. 무슨 뜻일까? 왜 하나님은 반시간 동안 모든 일을 멈추시고 잠잠하게 계시는가? 바로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기 위해서다.
(2) 천사가 금향로에 성도들의 기도를 담아 향연과 함께 하나님께 올림
- 성막기구에는 향로(불 옮기는 그릇)가 있다. 제사장은 번제단 불을 담아 내성소안 분향단으로 가져와 그 불로 향을 태우며 하나님께 향연을 올린다. 성막완공 후 첫 제사 때 하나님이 직접 지명하신 아론의 두 아들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가 번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을 향로에 담아 분향하다 죽은 사건은 너무도 유명하다(레10:1-2) 두 제사장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더럽혔기 때문이며, 번제단의 불로 분향함이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구속계시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 번제단은 그리스도의 피를 덧입는 장소요, 분향단은 거룩함을 입은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고 교제하는 곳이다. 번제단을 거치지 않는다면 결코 분향단에 도달할 수 없다. 분향단의 기도는 번제단의 피를 가지고 나아간다. 향로는 그것을 말하고 천사는 그 방식을 그대로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하나님 앞에 나왔다. 그는 향로에 성도들의 기도를 담아 향연과 함께 하나님께 올린다. 성도들의 기도는 향연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바로 그 시간에 하늘이 고요해진 것이다.
- 시141:1-2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3)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인봉과 나팔 심판이 진행
-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는 구속사의 진행에 성도들의 기도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하늘보좌 앞에 선 이십 사 장로들이 금대접에 성도들의 기도를 담고 있으며(계5장) 그리스도께서 다섯째 인봉을 여시니 예수의 증거로 인해 죽임당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탄원(기도)를 드린다(계6장) 지상성도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에 기도, 천상성도는 하늘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뵈옵기에(?) 탄원이 된다. 일곱째 인봉이 열리니 천사가 성도들의 기도를 향로에 담아 향연과 함께 하나님께 올려드린다(계8장)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 응답으로 일곱째 인봉이 열리고 또한 일곱 나팔 심판을 진행하신다.
-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가? 우리의 기도는 정말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도하지 않는가?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인 대화요 교제라고 알고 있고 기도하면 응답주신다는 것을 배우지만 실제로 그것이 무슨 말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기도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2. 성도들의 기도와 일곱째 인봉
(1) 왜 성도들은 기도하지 않는가?
① 기도가 무엇인지 모름
- 대부분 사람들은 기도를 “하나님의 힘으로 뭔가를 작동시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님도 기도를 그렇게 말씀하셨고 사도행전에는 기도해서 죽은 자가 살아나고 질병이 치유되는 기도응답이 나와 있다. 예수님 말씀의 문맥과 사도행전 기적의 배경을 보지 못하면, 기도는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으로 쉽게 정의된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기적을 구하면 즉시 그대로 이루어지는가? 특별한 긴급상황을 제외하곤 우리의 기도는 그런 응답으로 오지 않는다. 또한 간간이 이루어지는 기도응답도 확률로 보면 저절로 될 수 있는 일로 보이니...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기도응답에 대한 의심을 갖는다. 마치 임금님이 벌거벗었음을 보며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도 교회에서 말하지 못하는 현실처럼 보인다.
- 기도는 문제해결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백성이 위기에 처하거나 꼭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꼭 필요한 상황 중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는 특별응답에 해당한다. 기도하면 왜 문제가 해결되는지 알지 못하고 무조건 기도하면 응답된다는 단편적인 이해가 기도를 오해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기도하면 뭐든지 응답된다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과 전혀 다르다.
② 의인(나)의 고통을 보고도 하나님이 가만히 계심
- 우리는 기도하지만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듣고 계시고 기도응답 해주시는 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직접 돕지 않으시고, 가만히 계시며, 침묵하시는 것처럼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고통당하는 욥이 하나님께 기도해도, 하나님은 마지막이 될 때까지 전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 우리는 욥의 결론을 알고 있고 또 욥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만약 내가 욥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욥이 당하는 고통은 징계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가르침이었다. 그런데도 아내와 세 친구는 욥에게 계속 잘못을 회개하라고 말한다. 갑작스런 환란도 힘든데 네 잘못 때문이니 회개하라고 친구들이 정죄한다. 욥은 얼마나 답답할까?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욥이 아무리 하나님께 호소해도 하나님은 아무 말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욥기 38장에 비로소 말씀하신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욥23:8-10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③ 악인의 형통함을 하나님이 그대로 두심
- 아삽처럼 불신자가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을 당하는 너무 이상한 현실을 보며 기도는커녕 하나님을 믿는 기본신앙마저 흔들리는 상황을 때때로 경험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고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불신자들의 형통과 신자(나)의 어려움 속에 하나님은 과연 공의로우시며 과연 선하신지 의심이 들고 낙심에 빠진다. 그런데도 성도들의 기도가 향연과 함께 하나님께 상달되니 기도하라고....
- 시73:1-3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 시73:4-1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2) 기도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
① 지금 세상나라 속에 하나님 나라가 먼저 실현되게 하신 이유
- 하나님은 범죄한 세상은 그대로 두시고 그중에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죄의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가 중첩되어 성령으로 실현되는 이것이 구원의 방법이며 이것이 끝나는 날 세상나라는 멸하고 하나님 나라는 완성된다. 이 말은 죄인인 내가 지금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변화되어 간다는 의미다. 그것이 구원이며 그리스도는 지금 성령으로 이 일만 진행하신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구원의 핵심이다. 예수 믿고 바로 천국이면 쉬울텐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길고 어렵게 구원을 이루시는가?
- 왜 성도는 이미 구원 받았어도 아직 구원의 완성은 다가오지 않는가? 왜 성도는 구원 받았어도 지금 여전히 죄와 싸우며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가? 왜 하나님 나라는 바로 도래하지 않고 세상나라 속에 먼저 실현되어 중첩되게 와있는가? 모두 동일한 질문이다.
- 하나님께서 아직도 죄인을 더 구원하시려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중단시키시고 역사 가운데 나타나심은 구원의 종결이며 마지막 심판의 날이다. 더 이상의 구원은 없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반역을 여전히 그대로 두심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후손들 가운데 다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약속(노아언약) 때문이다(창9:1-17) 노아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범죄로 상실된 하나님 나라 에덴을 노아의 후손(죄인들)을 구원해서 다시 회복 완성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노아는 새로운 아담,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 참고로, 왜 하나님은 세상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중첩시키시는가? 왜 하나님은 사람을 한순간에 바꾸지 않으실까? 왜 그러실까? 물론 예수 믿고 죄를 짓지 않도록 한순간에 바꾸실 수 있다. 죄의 육체를 죽이시고 바로 불러가심이다. 예수 믿는 순간 죽이심이다. 죄인을 세상나라에서 구원하여 바로 하나님 나라로 불러가심이다. 이럴 경우 세상나라와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구분되며 중첩 되지 않는다.
- “예수 믿는 사람을 바로 죽여 하늘로 데려와 그 수를 모아둔다...” 얼 듯 보면 그럴 듯 해보이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비성경적이며 전혀 불가능하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 순간 모두 죽어 하늘로 간다면 이 땅에는 누가 남는가?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가 복음전할 것인가?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직접 개입하셔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주셔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까지 세상을 그대로 두신다고 약속하신 노아언약은 파기된다. 또한 세상은 매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직접 대면해야 하며 그 순간 화염검에 불타 죽음을 면치 못한다. 천사를 보내 복음을 전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생명의 천사가 아니라 죽음의 천사다.
- 예수 믿고 바로 죽는다면 죄의 육체가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인치심이 필요 없다. 예수 믿고 죄와 싸우며 살아가는 치열한 신앙생활이 필요 없다.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필요 없다. 교회가 이 땅에 남겨질 수도 없다. 믿는 순간 모두 죽어 하늘로 올라가는데 땅에 무슨 교회가 남겠는가?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거짓이 된다(마16:18) 한마디로 하나님의 언약도 파기되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도 모두 거짓이 된다.
- 어느 날 하나님이 하늘에게 복음을 들려주시고 그가 복음을 믿으면 그 순간 죽여 하늘로 데려간다. 하나님이나 천사가 나타나 복음을 전하는데 거부할 자가 있을 수 없으며 설령 거부하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 그들도 죽을 것이다. 복음전하는 천사의 출현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이쯤 되면 복음은 생명의 소식이 아니라 죽음의 소식이 된다. 아주 이상해 질 것이다. 이는 있을 수도 없고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계시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그게 바로 사이비 교주를 따라 집단자살 한 컬트 종교집단의 종말교리다.
② 구원은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으로 죄인을 변화시켜 나가는 성화가 핵심
- 지금이 실현된 하나님 나라며, 지금 하나님 나라가 세상나라 속에 들어와 있음은 우리 구원론에 중요한 내용을 말해준다. 우리는 구원을 얻어 출발했고, 지금은 구원을 이루어(체험해)가는 중이며, 마지막 날 부활하여 구원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출발한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며 이 출발이 없는 구원은 거짓이다. 모든 사람은 우리와 동일하게 예수 믿어 죄사함을 얻고 성령내주로 의롭다하심을 얻어야 구원 얻는다. 우리는 예수 믿어 구원을 얻었고 부활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계속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 구원이다. 죄와 사탄의 나라 속에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했다는 말이다. 지금이 실현된 하나님 나라 천년왕국이란 말이 바로 이 말이다.
③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문제해결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심
-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남겨주시고 떠나가셨다. 제자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며 기도하므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 기도는 죄인이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되는 방법이다. 기도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기도응답은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응답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욥에게처럼 침묵하시고, 아삽처럼 깨닫게 하시고, 어떨 때는 긴급한 기적으로 역사하신다. 이 모든 응답은 동일하다. 죄인인 나를 연단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 백성 되게 하심이다.
(3) 향연으로 올라간 성도들의 기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 자신을 말한다.
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
- 기도는 단순한 기도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이 삶 전체를 말한다. 성도들은 어려운 핍박 가운데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있다. 그들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급한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도움을 얻는다. 내면의 어려움 속상함 두려움 모두 주님께 아뢰며 그때마다 주님께서 주시는 위안과 응답을 얻고 점점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되어 간다. 기도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과 나를 인격적으로 결합시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사귐이다.
- 계14:4-5 “이 사람들은 여자(음녀)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② 하나님은 성도들의 눈물과 고통을 보심
- 하늘로 올리워진 기도는 기도행위를 넘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 자신을 말한다. 그들의 삶이 바로 기도요 하나님께 대한 탄원의 눈물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이 애굽 바로에게 고역당하는 것을 보시고 모세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따르며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의 눈물을 아신다. 그들의 눈물이 바로 이십사 장로 금대접에 담긴 성도들의 기도요(계5장), 다섯째 인봉 때 순교자들의 탄원이며(계6장), 천사의 향연으로 올라간 성도들의 기도였다(계8장) 이 세 가지는 동일한 하나의 기도를 말한다.
③ 진노의 대접은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신원과 보복임
- 천사들은 기도의 향연을 올린 후 빈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 세상에 부었다. 이때 세상에는 번개, 뇌성, 음성, 지진, 우박이 쏟아진다. 일곱째 인봉 심판이 열렸다. 세상심판은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나님의 신원과 보복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복음 때문에 흘려야 했던 모든 눈물을 주님께서 닦아주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흘리는 눈물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결론과 적용>하나님은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주신다.
(1) 인봉된 두루마리는 세상을 심판하고 교회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메시지.
① 처음 네 인봉은 바벨론 주변심판, 나중 세 인봉은 바벨론 중심부를 심판
② 7일 동안 창조하신 것처럼, 7개의 심판으로 세상을 멸하시고 새창조하심
③ 일곱번씩 세 번 반복(일곱 인봉, 일곱 나팔, 일곱 대접) – 반드시 심판하심.
④ 점점 심판의 강도가 세지다가 마지막 일곱째 대접 때 바벨론을 완전 멸망시킴
(2)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의 완성을 기다리고 사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