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계시록(7) - 두아디라, 이세벨과 바알신앙을 회개하며... (계2: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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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0-11-29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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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7) - 두아디라, 이세벨과 바알신앙을 회개하며... (계2:18-29)
1. 경제도시 두아디라.
(1) 자주장사 루디아
① 두아디라의 옷감염색
- 유럽 최초로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루디아는 당시 귀족들만 입었던 자주색 옷감을 헬라와 로마 귀족층에게 판매하는 자주장사였다. 자주색 염료는 지중해 뿔고동이나 꼭두서니(Madder) 식물뿌리에서 소량으로 채취되어 고품질의 자주옷감은 매우 비싸고 귀했다. 루디아는 어디서 그런 염색기술을 배우고 또는 어디서 그런 자주옷감을 가져올 수 있었는가? 바로 그녀의 고향 두아디라에서였다.
- 참고로, “꼭두서니의 뿌리를 삶은 물로 천이나 나무를 붉게 염색했기 때문에 붉은 빛깔을 흔히 꼭두서니라고 한다. 특히 저녁 노을이 붉게 질 때의 색깔을 꼭두서니 빛깔이라고 했다. 꼭두서니라는 말은 본래 옛 유랑극단인 남사당패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꼭두쇠에서 유래했다. 꼭두쇠는 붉은색 옷을 입었으므로, 붉은색 염료로 사용되는 이 식물의 이름도 꼭두서니라고 한 것이다.”(야생화 백과사전/정연옥)
② 두아디라의 경제 협동조합
- 버가모가 정치도시라면 두아디라는 상업과 공업이 발달한 경제도시다. 두아디라는 꼭두서니 식물뿌리에서 나오는 자주염색업과 면직, 모직, 질그릇 등 다른 여러 제조업이 발달했다. 이런 모든 산업들은 중세의 길드 같은 조합을 구성하고 있었고 그중 가장 강한 조직은 섬유조합이었다. 당시 소아시아 모든 도시들이 황제숭배와 신전중심으로 움직이는 우상경제였지만 두아디라는 특히 심했다. 두아디라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경제활동을 하려면 동종업 협동조합에 가입해야 하고 그들과 함께 신전 우상숭배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업을 할 수 없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그리스도 신앙을 택할 것인가? 세상을 택할 것인가? 오늘날은 경제구조가 매우 크고 다양해져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지키며 사업할 수 있지만 초대교회 당시는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웠다. 1세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엄청난 핍박과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버가모에서 사탄은 목숨을 위협하며 황제숭배를 강요했지만, 두아디라에서는 경제(돈)을 가지고 그리스도 신앙 포기를 강요했다.
2. 두아디라, 이세벨과 바알신앙을 회개하며......
(1)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20절)
① 바알숭배 맘몬신앙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정당화 해줌
- 두라디라 교회에는 이세벨로 불리는 자칭 선지자가 있었다. 이세벨은 그녀의 악함을 말해주는 이름으로 본명은 아닐 것이다. 두아디라 성도 중 일부는 그녀를 선지자처럼 따르고 영향을 받았다. 그녀의 가르침은 니골라당의 영지주의 배경으로 바알신앙(맘몬숭배)를 교회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잘 믿는 자에게 물질 축복을 주신다.” “물질 축복은 그의 신앙이 좋은 것을 의미한다.” 니골라당의 교훈이(버가모교회) 신앙과 삶이 분리된 영지주의 신앙생활이라면 이세벨의 가르침은(두아디라교회) 노골적으로 물질축복을 추구하는 성공신학 번영복음이다.
- 성경은 하나님과 돈 모두를 주인으로 섬길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맘몬(돈)은 하나님과 바꿀 정도로 매력있고 위력적이다. 성도들은 두아디라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길드조합에 가입해야 하고 그것은 곧 우상경제에 참여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봐야하는 문제인가? 아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초대교회의 그런 명백한 상황에서는 타협점은 없다. 그런데 왜 성도들은 이세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녀를 따를까? 그녀는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경제에 참여함을 신앙의 이름의 정당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이세벨은 그들 속에 있는 욕심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 현대교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설교를 듣고 싶어 한다. 그들은 성경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성경이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원한다. 그것이 설교다. 내가 옳고 내가 하는 일이 맞다는 것을 설교를 계속 듣고 싶어 한다. 죄 가운데 거하며 이 세상 욕심대로 살아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칭찬하고 축복을 베푸는 설교를 듣고 싶어 한다. 그들이 바로 이세벨을 따르는 두라디라교회 성도들이다.
② 성도들은 십자가 구원계시보다 미래를 알려주는 이세벨을 의존함
- 또한 이세벨은 거짓 선지자였다. 그녀는 성도 개인의 미래를 예언해주며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두아디라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이세벨의 가르침을 더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그 가르침은 성경 용어를 사용하며 기도응답과 영적체험 형태로 나타나기에 성도들은 쉽게 미혹된다. 사람들은 이세벨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직접 듣기 원한다. 성도들에게 성경은 점점 멀어진다. 이세벨의 체험이 더 재미있고 중요해진다. 그들의 신앙기준은 성경이 아니라 이세벨이다.
- 성도가 목회자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그가 성경말씀 구원계시를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전달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성경진리에서 벗어나면 그가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기도응답 영적체험을 말하며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할 지라도 이세벨이요 아합이다.
③ 예언은 미리 예(豫)가 아니라 맡길 예(預)임
- 성경에서 예언(預言)은 '예상(豫想), 예측(豫測), 예고(豫告)에 쓰는 미리 예(豫) 예측할 예(豫)가 아니라 은행 예금(預金)처럼 맡을 예(預), 맡길 예(預)다. 미리 예(豫)는 코끼리 상(象), 맡을 예(預)는 머리 혈(頁)로 잘 구분하자. 성경이 기록되기 전 하나님의 구원계시는 예언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구원계시는 시간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되어질 미래의 일이기에 예언자는 미래를 먼저 보는 선지자로 불리기도 했지만 예언자의 본뜻은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미리 알고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대언하는데 그 내용이 시간적으로 미래의 되어질 구원계시라는 말이다. 성경의 예언은 점쟁이의 족집게 미래예언이 아니다.
(2) “너희가 어느 때까지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왕상18:21)
① 아합은 이스라엘의 풍요를 위해 시돈과 결혼동맹을 맺음
- 이스라엘은 통일왕국과 분열왕국을 통틀어 세 번의 경제적 번영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다윗과 솔로몬왕 때(BC950년경), 둘째는 북이스라엘의 오므리와 아합왕 때(BC850년경), 세 번째는 북이스라엘과 여로보암 2세와 남유다 웃시야왕 때다(BC750년경) 다윗과 솔로몬 시대는 말할 필요 없이 이스라엘 최고의 전성기였고, 여로보암 2세(북이스라엘)와 웃시야(남유다)가 통치하던 때는 남북왕국의 영토를 합치면 다윗 시대만큼 넓어지는 마지막 번영기였다.
- 우리가 보아야 할 왕은 북이스라엘의 아합이다. 아합은 성경에서 아주 악한 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종교적인 관점이다. 우리는 아합을 이세벨에게 휘둘린 줏대없는 왕 정도로 알고 있지만 세상관점으로 보면 아합은 정치적으로 뛰어나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매우 유능한 왕이다.
- 아합은 대단히 뛰어난 왕이다. 그는 페니키아(두로와 시돈)과의 결혼동맹을 맺어 지중해의 온갖 무역 물자들은 북이스라엘로 가져왔고 또한 남유다 여호사밧과 결혼동맹을 맺어 교역하며 홍해의 에일랏/에시온게벨 항구를 얻어 남방지역과 교역했다. 아합으로 인해 지중해의 시돈항구는 북이스라엘과 연결되고 육로로 남유다를 지나 에시온게벨/에일랏항구의 홍해로 연결되는 무역로가 열렸다. 그는 시돈에서 들여온 상아로 사마리아 궁전을 만들었고(왕상22:39) 므깃도와 하솔을 견고한 요새로 건축하였다. 그는 북이스라엘을 강력하고 풍요한 나라로 만들었다.
- 아합시대의 풍요는 시돈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동맹을 통한 교역이었다. 이세벨과의 결혼으로 인해 페니키아와 우호관계가 형성되었고 시돈항구로부터 지중해의 온갖 귀한 물자들이 북이스라엘로 들어오게 된다. 이세벨은 풍요를 가져오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세벨은 풍요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끌어 간다.
② 이스라엘의 풍요는 바알신앙(=맘몬숭배)과 맞바꾼 댓가임
- 이세벨은 바알제사장인 엣바알의 딸로서 아합의 왕비가 되어 북이스라엘을 바알국가화 시킨다.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이며,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왕실직속 종교인으로 삼고 온 이스라엘에 다니며 바알신앙을 가르치게 했다(왕하18:19) 물론 바알숭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백성들 사이에 은밀한 신앙으로 감히 드러내놓고 믿지는 못했다. 이세벨로 인해 바알숭배는 이스라엘의 공식종교가 되었고 백성들은 바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바알숭배로 넘어가려는 엄청난 위기시대였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왕상18:19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 또한 이세벨은 그의 딸 아달랴를 남유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시킨다. 아달랴는 남편 여호람이 질병으로 죽고 그의 막내아들 아하시야도 예후에게 죽임 당하자 유다 왕의 씨를 모두 진멸하고 자기가 왕이 된다. 다윗의 혈통은 아달랴로 인해 끊어질 위기가 되었다. 이때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1살된 요아스를 구출하여 성전에서 6년간 숨겨서 키우고 7살이 될 때그를 왕으로 세움으로 다윗의 혈통은 지속된다. 아달랴도 그 어머니 이세벨 못지않은 여자였다.
③ 두아디라교회의 자칭 선지자 이세벨이 바로 그런 여자임
- 구약의 이세벨처럼 두아디라교회의 자칭 선지자는 매우 위험한 여자였다. 그녀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물질축복을 가르치고 또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개인의 미래를 예언해줌으로 성도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했다. 그녀로 인해 성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십자가 구원계시에서 벗어나 맘몬숭배 바알신앙의 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성경을 읽기보다 사람을 의존하며 신앙생활 한다. 결국 이세벨의 종이 된다. 이세벨과 함께 영적음행을 하며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두아디라 이세벨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기회를 주셨지만 그녀는 회개하지 않고 음행을 계속 하며 성도들을 타락시킨다. 예수님은 그녀를 침상에 던지시겠다고 하신다. 병으로 치사 침상에 눕게 만드시겠다는 뜻이다. 또한 그녀를 따르던 자들도 여전히 회개치 않음으로 환란 가운데 던지고 사망으로 죽이신다고 책망하신다.
<적용>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1) 사람들은 이세벨의 가르침을 “깊은 것”으로 생각(24절)
- 사람들은 십자가 진리를 “얕은 것”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진리 곧 “깊은 것”을 찾는다. 예수님은 그것을 사탄의 진리라고 하신다. 성경에는 구원 얻기 위한 새로운 진리가 없다. 우리 이전의 성도들이 몰라서 구원을 얻지 못할 그 어떤 진리도 없다. 십자가 진리가 다다. 2천년 동안 기독교는 새로운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진리는 가볍고 얕은 것이 아니다.
(2)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25절)
- 사도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주신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 나라 구원 진리를 굳게 붙잡자. 십자가가 가장 고상하고 깊은 지식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경륜이다. 다른 것이 없다.
- 빌2: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1. 경제도시 두아디라.
(1) 자주장사 루디아
① 두아디라의 옷감염색
- 유럽 최초로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루디아는 당시 귀족들만 입었던 자주색 옷감을 헬라와 로마 귀족층에게 판매하는 자주장사였다. 자주색 염료는 지중해 뿔고동이나 꼭두서니(Madder) 식물뿌리에서 소량으로 채취되어 고품질의 자주옷감은 매우 비싸고 귀했다. 루디아는 어디서 그런 염색기술을 배우고 또는 어디서 그런 자주옷감을 가져올 수 있었는가? 바로 그녀의 고향 두아디라에서였다.
- 참고로, “꼭두서니의 뿌리를 삶은 물로 천이나 나무를 붉게 염색했기 때문에 붉은 빛깔을 흔히 꼭두서니라고 한다. 특히 저녁 노을이 붉게 질 때의 색깔을 꼭두서니 빛깔이라고 했다. 꼭두서니라는 말은 본래 옛 유랑극단인 남사당패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꼭두쇠에서 유래했다. 꼭두쇠는 붉은색 옷을 입었으므로, 붉은색 염료로 사용되는 이 식물의 이름도 꼭두서니라고 한 것이다.”(야생화 백과사전/정연옥)
② 두아디라의 경제 협동조합
- 버가모가 정치도시라면 두아디라는 상업과 공업이 발달한 경제도시다. 두아디라는 꼭두서니 식물뿌리에서 나오는 자주염색업과 면직, 모직, 질그릇 등 다른 여러 제조업이 발달했다. 이런 모든 산업들은 중세의 길드 같은 조합을 구성하고 있었고 그중 가장 강한 조직은 섬유조합이었다. 당시 소아시아 모든 도시들이 황제숭배와 신전중심으로 움직이는 우상경제였지만 두아디라는 특히 심했다. 두아디라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경제활동을 하려면 동종업 협동조합에 가입해야 하고 그들과 함께 신전 우상숭배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업을 할 수 없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그리스도 신앙을 택할 것인가? 세상을 택할 것인가? 오늘날은 경제구조가 매우 크고 다양해져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지키며 사업할 수 있지만 초대교회 당시는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웠다. 1세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엄청난 핍박과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버가모에서 사탄은 목숨을 위협하며 황제숭배를 강요했지만, 두아디라에서는 경제(돈)을 가지고 그리스도 신앙 포기를 강요했다.
2. 두아디라, 이세벨과 바알신앙을 회개하며......
(1)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20절)
① 바알숭배 맘몬신앙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정당화 해줌
- 두라디라 교회에는 이세벨로 불리는 자칭 선지자가 있었다. 이세벨은 그녀의 악함을 말해주는 이름으로 본명은 아닐 것이다. 두아디라 성도 중 일부는 그녀를 선지자처럼 따르고 영향을 받았다. 그녀의 가르침은 니골라당의 영지주의 배경으로 바알신앙(맘몬숭배)를 교회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잘 믿는 자에게 물질 축복을 주신다.” “물질 축복은 그의 신앙이 좋은 것을 의미한다.” 니골라당의 교훈이(버가모교회) 신앙과 삶이 분리된 영지주의 신앙생활이라면 이세벨의 가르침은(두아디라교회) 노골적으로 물질축복을 추구하는 성공신학 번영복음이다.
- 성경은 하나님과 돈 모두를 주인으로 섬길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맘몬(돈)은 하나님과 바꿀 정도로 매력있고 위력적이다. 성도들은 두아디라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길드조합에 가입해야 하고 그것은 곧 우상경제에 참여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봐야하는 문제인가? 아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초대교회의 그런 명백한 상황에서는 타협점은 없다. 그런데 왜 성도들은 이세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녀를 따를까? 그녀는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경제에 참여함을 신앙의 이름의 정당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이세벨은 그들 속에 있는 욕심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 현대교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설교를 듣고 싶어 한다. 그들은 성경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성경이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원한다. 그것이 설교다. 내가 옳고 내가 하는 일이 맞다는 것을 설교를 계속 듣고 싶어 한다. 죄 가운데 거하며 이 세상 욕심대로 살아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칭찬하고 축복을 베푸는 설교를 듣고 싶어 한다. 그들이 바로 이세벨을 따르는 두라디라교회 성도들이다.
② 성도들은 십자가 구원계시보다 미래를 알려주는 이세벨을 의존함
- 또한 이세벨은 거짓 선지자였다. 그녀는 성도 개인의 미래를 예언해주며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두아디라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이세벨의 가르침을 더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그 가르침은 성경 용어를 사용하며 기도응답과 영적체험 형태로 나타나기에 성도들은 쉽게 미혹된다. 사람들은 이세벨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직접 듣기 원한다. 성도들에게 성경은 점점 멀어진다. 이세벨의 체험이 더 재미있고 중요해진다. 그들의 신앙기준은 성경이 아니라 이세벨이다.
- 성도가 목회자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그가 성경말씀 구원계시를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전달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성경진리에서 벗어나면 그가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기도응답 영적체험을 말하며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할 지라도 이세벨이요 아합이다.
③ 예언은 미리 예(豫)가 아니라 맡길 예(預)임
- 성경에서 예언(預言)은 '예상(豫想), 예측(豫測), 예고(豫告)에 쓰는 미리 예(豫) 예측할 예(豫)가 아니라 은행 예금(預金)처럼 맡을 예(預), 맡길 예(預)다. 미리 예(豫)는 코끼리 상(象), 맡을 예(預)는 머리 혈(頁)로 잘 구분하자. 성경이 기록되기 전 하나님의 구원계시는 예언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구원계시는 시간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되어질 미래의 일이기에 예언자는 미래를 먼저 보는 선지자로 불리기도 했지만 예언자의 본뜻은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미리 알고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대언하는데 그 내용이 시간적으로 미래의 되어질 구원계시라는 말이다. 성경의 예언은 점쟁이의 족집게 미래예언이 아니다.
(2) “너희가 어느 때까지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왕상18:21)
① 아합은 이스라엘의 풍요를 위해 시돈과 결혼동맹을 맺음
- 이스라엘은 통일왕국과 분열왕국을 통틀어 세 번의 경제적 번영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다윗과 솔로몬왕 때(BC950년경), 둘째는 북이스라엘의 오므리와 아합왕 때(BC850년경), 세 번째는 북이스라엘과 여로보암 2세와 남유다 웃시야왕 때다(BC750년경) 다윗과 솔로몬 시대는 말할 필요 없이 이스라엘 최고의 전성기였고, 여로보암 2세(북이스라엘)와 웃시야(남유다)가 통치하던 때는 남북왕국의 영토를 합치면 다윗 시대만큼 넓어지는 마지막 번영기였다.
- 우리가 보아야 할 왕은 북이스라엘의 아합이다. 아합은 성경에서 아주 악한 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종교적인 관점이다. 우리는 아합을 이세벨에게 휘둘린 줏대없는 왕 정도로 알고 있지만 세상관점으로 보면 아합은 정치적으로 뛰어나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매우 유능한 왕이다.
- 아합은 대단히 뛰어난 왕이다. 그는 페니키아(두로와 시돈)과의 결혼동맹을 맺어 지중해의 온갖 무역 물자들은 북이스라엘로 가져왔고 또한 남유다 여호사밧과 결혼동맹을 맺어 교역하며 홍해의 에일랏/에시온게벨 항구를 얻어 남방지역과 교역했다. 아합으로 인해 지중해의 시돈항구는 북이스라엘과 연결되고 육로로 남유다를 지나 에시온게벨/에일랏항구의 홍해로 연결되는 무역로가 열렸다. 그는 시돈에서 들여온 상아로 사마리아 궁전을 만들었고(왕상22:39) 므깃도와 하솔을 견고한 요새로 건축하였다. 그는 북이스라엘을 강력하고 풍요한 나라로 만들었다.
- 아합시대의 풍요는 시돈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동맹을 통한 교역이었다. 이세벨과의 결혼으로 인해 페니키아와 우호관계가 형성되었고 시돈항구로부터 지중해의 온갖 귀한 물자들이 북이스라엘로 들어오게 된다. 이세벨은 풍요를 가져오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세벨은 풍요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끌어 간다.
② 이스라엘의 풍요는 바알신앙(=맘몬숭배)과 맞바꾼 댓가임
- 이세벨은 바알제사장인 엣바알의 딸로서 아합의 왕비가 되어 북이스라엘을 바알국가화 시킨다.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이며,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왕실직속 종교인으로 삼고 온 이스라엘에 다니며 바알신앙을 가르치게 했다(왕하18:19) 물론 바알숭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백성들 사이에 은밀한 신앙으로 감히 드러내놓고 믿지는 못했다. 이세벨로 인해 바알숭배는 이스라엘의 공식종교가 되었고 백성들은 바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바알숭배로 넘어가려는 엄청난 위기시대였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왕상18:19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 또한 이세벨은 그의 딸 아달랴를 남유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시킨다. 아달랴는 남편 여호람이 질병으로 죽고 그의 막내아들 아하시야도 예후에게 죽임 당하자 유다 왕의 씨를 모두 진멸하고 자기가 왕이 된다. 다윗의 혈통은 아달랴로 인해 끊어질 위기가 되었다. 이때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1살된 요아스를 구출하여 성전에서 6년간 숨겨서 키우고 7살이 될 때그를 왕으로 세움으로 다윗의 혈통은 지속된다. 아달랴도 그 어머니 이세벨 못지않은 여자였다.
③ 두아디라교회의 자칭 선지자 이세벨이 바로 그런 여자임
- 구약의 이세벨처럼 두아디라교회의 자칭 선지자는 매우 위험한 여자였다. 그녀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물질축복을 가르치고 또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개인의 미래를 예언해줌으로 성도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했다. 그녀로 인해 성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십자가 구원계시에서 벗어나 맘몬숭배 바알신앙의 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성경을 읽기보다 사람을 의존하며 신앙생활 한다. 결국 이세벨의 종이 된다. 이세벨과 함께 영적음행을 하며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두아디라 이세벨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기회를 주셨지만 그녀는 회개하지 않고 음행을 계속 하며 성도들을 타락시킨다. 예수님은 그녀를 침상에 던지시겠다고 하신다. 병으로 치사 침상에 눕게 만드시겠다는 뜻이다. 또한 그녀를 따르던 자들도 여전히 회개치 않음으로 환란 가운데 던지고 사망으로 죽이신다고 책망하신다.
<적용>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1) 사람들은 이세벨의 가르침을 “깊은 것”으로 생각(24절)
- 사람들은 십자가 진리를 “얕은 것”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진리 곧 “깊은 것”을 찾는다. 예수님은 그것을 사탄의 진리라고 하신다. 성경에는 구원 얻기 위한 새로운 진리가 없다. 우리 이전의 성도들이 몰라서 구원을 얻지 못할 그 어떤 진리도 없다. 십자가 진리가 다다. 2천년 동안 기독교는 새로운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진리는 가볍고 얕은 것이 아니다.
(2)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25절)
- 사도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주신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 나라 구원 진리를 굳게 붙잡자. 십자가가 가장 고상하고 깊은 지식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경륜이다. 다른 것이 없다.
- 빌2: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