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행전(20) - 요한의 세례와 성령세례 (행18:2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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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0-07-1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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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20) - 요한의 세례와 성령세례 (18:24-19:7)

1. 마게도냐 환상에서 고린도교회까지

(1) 고린도에서 2차 선교사역을 마치며...

① 갈리오 총독 판결의 의미

- 2차 선교여행은 신실한 동역자 실라(실루아노)와 함께하며 루스드라에서 청년 디모데를 제자로 삼으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이 소아시아 사역의 전부였다. 하나님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는 바울의 발걸음을 막으시고 드로아 항구에서 마게도냐 환상을 보여주신다. 마게도냐로 건너가는 배에서 비로소 2차 선교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바울은 마게도냐로 건너가 각 성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를 만난다. 예비된 자는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주께서 마음 문을 열게 하신 사람이었다. 루디아(빌립보) 야손(데살로니가) 브리스가 부부, 가이오(고린도) 또한 베뢰아, 아덴의 여러 사람들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파송 말씀처럼 성에 들어가 합당한 자를 만나 그 집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떠나는 방식으로 각 성에 교회를 세운다. 그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바울이 1년 6개월 머물며 사역한 고린도였다.

-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인도가 특별한 것은 회당 옆 디도유스도(=가이오)의 집에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고, 두 명의 회당장 그리스보와 소스데네가 회심하는 사건, 그리고 무엇보다 브리스가 부부와의 만남이다. 유대인들의 엄청난 분노와 위협 속에서 바울은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지만,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1년 6개월간 지속적으로 사역을 하였다. 이로서 헬라문화의 본산지인 아가야/그리스 지방 수도에 칭의의 복음이 확산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이 사역은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으로 부임하는 AD 51년에 마무리 된다.

- 갈리오가 총독으로 부임하자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했다. 이 소송은 갈리오 총독의 현명한 판결에 의해 기각되었다. 총독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유대인들 사이의 종교문제요 율법해석 문제로 판결하였다. 유대인들의 고소가 정치적 죄명으로 덧씌워진 것임을 간파함이다. 이후로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로마제국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반역자라고 더 이상 고소할 수 없게되었다. 바울 사역의 큰 장애물이 제거된 것이다.

② 고린도를 떠나며 겐그리아 항구에서 머리를 깍음

- 갈리오 총독의 판결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유대인들은 더욱 분노하였다. 이에 바울은 얼마 후 겐그리아 항구에서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간다.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깍은 것은 나실인의 서원을 끝마침이다. 바울은 2차 선교여행 중 언제인지 모르지만 나실인의 서원을 했다(행18:18) 포도주를 금하고 머리를 깍지 않는 등...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떠나며 했을 것으로 생각해 보지만 내 추측일 뿐 성경 기록은 없다. 그는 2차 선교여행 동안 철저히 하나님께 드려지기로 서원했다. 고린도를 떠나며 바울이 머리를 깍음은 이 서원이 종료됐고, 그의 마음속에 2차 선교여행이 끝났음을 예견케 한다. 이후 바울은 에베소를 들러 예루살렘 교회로 갔다가 안디옥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약 2년 반 정도 걸린 바울의 2차 선교여행이 마쳐진다.

(2) 에베소에서 3차 선교사역을 시작하며...

① 에베소, 아시아의 수도로서 아르테미스 여신숭배 도시

-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수도로 바울 당시 로마제국의 5대 도시중 하나였다. 에베소는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동서양을 잇는 상업, 종교, 문화의 중심지로 25-30만 명의 인구가 살았던 '아시아 최대의 도시'였다. 당시 로마 제국의 5대 도시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에베소, 고린도 인데 바울은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를 제외한 4개 도시에서 적어도 일 년 이상씩 머무르며 선교사역을 했다. 후대로 가면 고린도 보다 비잔티움이 더 중요시 된다.

- 고린도는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숭배로 유명하고, 에베소는 아르테미스/다이아나 여신숭배의 도시로 유명하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아르테미스 여신은 제우스의 아들 태양의 신 아폴론과 쌍둥이 남매지간이며, 달의 여신, 풍요와 다산의 여신으로 숭배되어졌다.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 큰 규모로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함께 고대건축물 7대 불가사의중 하나다.

② 에베소는 바울의 3차 선교사역의 중심지

- 에베소는 3차 선교사역의 중심지다. 바울은 에베소에 3년간 머무르며 본격적인 선교사역을 하였다. 에베소에서 2년에 걸친 두란노 서원 사역으로 소아시아에 있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복음을 듣게 되었다. 2차 선교여행 중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중단되었던 소아시아 전도가 3차 선교여행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바울의 사역으로 에베소는 예루살렘, 안디옥에 이어 제3의 기독교 중심지가 되었다. 에베소는 바울과 아볼로가 사역을 했고 또 디모데가 사역한 곳이다. 후에 사도요한이 에베소 교회를 섬기며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에베소와 연결된 중요한 도로를 따라 각 교통의 중심도시에 세워졌다.

2.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성령세례

(1) 브리스가 부부가 아볼로에게 그리스도를 전했다.

① 직업과 기술을 가진 평신도 브리스가 부부

- 고린도가 아가야(헬라/그리스) 지방의 수도였다면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수도다. 2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잠시 들른다. 이때 브리스가 부부도 함께 했는데 바울은 그들이 에베소에 정착하도록 남겨두고 예루살렘으로 떠난다. 브리스가 부부는 글라우디오 칙령(49년)에 의해 로마를 떠나 바울과 비슷한 시기 혹 바울보다 조금 늦게 고린도에 왔다(행18:1) 따라서 브리스가 부부는 고린도에 완전히 정착한 기업형 장막회사는 아닌 것 같고 이는 그들이 바울과 함께 고린도를 떠나 쉽게 에베소로 이주하는 외적인 한 요인도 되었을 것 같다. 브리스가 부부는 성공한 대기업 사업가라기 보다 작은 개인사업을 하는 천막제조 수리점 정도일 것이다.

- 어쨌든 브리스가 부부는 에베소로 이주하므로 그의 집을 중심으로 에베소 교회가 세워진다.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는 이미 그곳에 정착해 있는 현지인 예비된 자들을 만났지만 소아시아 에베소에서는 고린도에서 데려간 평신도가 자기 사업을 통해 그곳에 정착하며 교회를 세운다. 기술과 직업을 가진 사업가는 중요한 평신도 선교사다. 브리스가 부부가 소중하고 특별한 이유다.

- 브리스가 부부는 에베소 회당에 들어가 바울처럼 말씀을 강론하지 않았다. 당시 회당에서 말씀을 강론하는 것은 율법에 능한 랍비들이 하는 일이다. 물론 1세기의 랍비는 오늘날과 다르다. 오늘날 유대교 랍비는 랍비학교를 거쳐 임명 받은 직업 종교인을 일컫지만, 1세기 랍비는 구성원들 중에서 율법지식과 신앙, 삶에서 존경이나 신임을 받는 현자(sage) 칭호였다. 그들은 회당에서 월급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기 생계를 책임졌다. 예수님도 랍비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회당에서 말씀을 강론하셨다. 사람들은 그 내용을 문제 삼았지 그의 자격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예수님도 랍비로 불리우셨다. 그러나 브리스가 부부는 장막업자로서 율법과 구약성경에 해박한 랍비는 아니었다.

- 내 자신이 복음을 아는 것과 그것을 성경전체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강론하는 것은 다르다. 브리스가 부부가 소중하다고 너무 띄워서는 안된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집사님 장로님들과 같다. 그들의 주된 사역은 장막업을 하며 에베소에 정착하는 것이다. 브리스가 부부는 평일에 열심히 자기 사업을 했고 안식일에는 회당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며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러던 어느날 회당에서 아볼로를 만난다.

② 학문과 성경에 능한 자 아볼로

-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유대인으로 바울처럼 학문과 성경에 능한 자였다. 그가 태어난 알렉산드리아는 학문의 도시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약 50여만권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다. 그 덕에 기하학의 원조 유클리드, 위대한 수학자이자 발명가 아르키메데스, 지구의 둘레를 계산한 에라토스테네스, 지구중심설의 천체이론을 수립한 수학자 프톨레미와 같은 학자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왔고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 번역한 70인역(셉투아진트)도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되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학문을 배운 지성인이었다.

- 또한 아볼로는 구약성경에 정통한 자였다. 많은 유대인들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나 그들 중 대부분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모르고 금지명령에 묶여있는 랍비유대교 종교인에 머무른다. 그런데 아볼로는 달랐다. 그는 구약성경에 정통했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핵심을 알았다. 그는 율법과 시편과 선지서에 기록된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예언을 자세히 알았고 그 예언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였다.

- 한마디로 아볼로는 바울과 같이 준비된 자였다. 그는 학문과 성경에 능한 랍비요 설교자였다. 영어성경은 아볼로를 an eloquent man으로 기록했다. 아볼로가 학문이 많다는 것은 지식이 많은 지성인 정도가 아닌 말과 논리로 사람에게 감동을 주며 설득할 수 있는 웅변의 사람이요 설교자였다. 단지 그가 부족한 것은 아직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점이다. 그는 회당에서 열심히 그리스도의 관한 성경을 강론했지만 그리스도가 오셨음은 몰랐다. 그는 세례요한의 물세례만 알았다.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성령세례를 몰랐다. 우리 주변에 바울처럼 아볼로처럼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신 자들이 있다.

③ 브리스가 부부와 아볼로의 만남

- 하나님께서 아볼로와 브리스가 부부를 만나게 하셨다. 브리스가 부부가 에베소 회당에 갔는데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유대인 아볼로가 와서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을 자세히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단 그의 성경강론은 요한의 세례까지 뿐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모르고 있었다. 브리스가 부부는 아볼로를 자기 집으로 청하여 복음을 자세히 풀어 증거하였다. 학문이 뛰어나고 성경에 능한 아볼로를 가르쳤다기 보다는 겸손하게 그러나 명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간증했다.

- 바울이 다메섹 아나니아의 도움을 받았듯이, 아볼로는 브리스가 부부가 전한 복음을 듣고 이전에 그가 가졌던 모든 성경지식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정립했다. 이때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회심했음은 당연하다. 이후부터 아볼로는 회당에 들어가 담대히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거하며 수많은 유대인들의 말을 유력하게 이겼다. 후에 아볼로는 고린도로 건너가 고린도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큰 사역을 감당한다. 그는 바울과 함께 초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된다. 이런 아볼로를 하나님께서 브리스가 부부와 만나게 하셨다.

(2) 요한의 세례만 아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고 성령세례를 받았다.

①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함

- 에베소 부흥사역은 요한의 세례만 아는 아볼로와 에베소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성령세례를 전하고 그들이 성령을 받음으로 시작되었다. 에베소의 제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아볼로처럼 하나님께서 이방인 중에서 예비하신 경건한 자들이었다. 신약성경에서 제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지만 에베소의 제자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완고한 바리새 랍비유대교인보다는 낫겠지만 그들은 아볼로처럼 세례요한까지만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 복음(=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을 모르고는 결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 한편, 이들은 아볼로의 제자도 아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 온지 얼마 안됐고 또 회심한 아볼로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냥 고린도로 떠나갔을 리는 없다. 그들은 아볼로처럼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전해들고 그 메시지를 따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임에 분명하다. 바리새 유대교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도 복음 쪽에 가까운 자들이지만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세례요한의 물세례에 머무르고 있는 이방인 제자들이다.

- 아볼로나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은 복음이 필요했다. 그들은 성경을 배워 바르게 알고 있었으나 아직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자들이다. 왜 하나님은 그들을 바울과 브리스가 부부와 만나게 하셨을까? 혼자 성경을 읽다가 스스로 복음을 깨닫거나 하나님이 직접 공중에서 말씀해주셔도 되는데 말이다. 구원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전하는 복음 내용을 통해 구원역사를 베푸신다. 복음은 사람을 통해서 전파되게 하셨다. 어떤 사람에게도 전해듣지 않고 스스로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없다. 복음은 폭포 밑에 앉아 스스로 도를 깨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사람을 통해 복음을 받아야지 스스로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신 것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다.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못 말린다.

②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성령세례

- 요한의 물세례는 죄를 회개하는 에스겔의 예언에서 왔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겔36:25) 요한의 물세례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고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더러움에서 정결케 하라는 회개의 세례다. 세례요한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 또한 요한의 물세례는 그리스도의 성령세례를 가르치는 것이다. 에스겔의 물세례는 성령세례로 연결된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겔36:26-28) 이런 면에서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임이 분명하다 세례요한은 그리스도를 증거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③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세례

- 세례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나...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 막1:8, 눅3:16)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 불은 성령의 정결케 하는 속성을 가르킨다. 물로 씻거나 불로 태움은 모두 죄로부터 정결케 됨을 의미한다. 천사는 제단 숯불을 가져와 이사야의 입술에 대어 그를 죄에서 정결케 하였다(사6:7) 오순절 성령강림은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위에 임하며 나타났다. 성령께서 마가다락방 120명 각 사람의 죄를 성령의 불로 정결케 하심이다. 성령께서 불로서 우리를 정결케 함은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기 위함이다.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세례다.

(3) 교회의 세례예식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성령세례를 나타낸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신앙고백

-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명령)하신 두 개의 예식이 있다. 세례(마28:18-20)와 성찬(마26:26-28, 고전11:23-26)이 있다. 세례는 수세자의 머리에 물을 뿌림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함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예식이다. 세례를 받으며 수세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으로 살아가는 십자가 신앙을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하게 된다.

② 세례의 핵심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 바울은 세례의 핵심을 그리스도와의 연합(롬6:3-5)이라 말한다. 십자가와 부활을 신앙고백 하는 수세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다.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함이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그와 실제로 함께하심으로(성령내주) 그도 그리스도와 합하여 십자가에서 죽어 죄의 형벌을 받고, 그리스도의 함께 부활생명으로 살아나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 세례는 보이스카웃 선서식이 아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영적인 실제사건이다. 성령세례다.

- 롬6: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③ 옛사람의 죽음에 머무르지 말고 예수의 주되심으로 나아가야 함

-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다. 복음은 회개로부터 출발하지만 회개에 머물러서는 않된다. 회개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회개는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위한 필수적 전단계로 반드시 필요하나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아무리 회개해도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못하면 은혜구원을 얻지 못하고 행위종교에 머무른다. 구원은 반드시 회개의 문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거기 머물러서는 안된다. 구원은 회개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할 때 얻는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 없이 회개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 우리의 믿음과 복음이 요한의 세례에 머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회개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하고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성령세례가 증거 되어야 한다. 요즘은 성령세례는 고사하고 요한의 세례도 아닌 아예 번영신학과 긍정의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도 있다 그들은 목사가 아니라 바알제사장이다. 성령세례를 예언과 기적행함으로 강조하는 거짓 선지자들도 조심하라 그들도 바알제사장이다. 신비주의와 물질주의는 양극단이지만 그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욕구충족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기독교와 전혀 다른 바알종교다.

<적용>브리스가 부부를 기억하며...

(1) 모든 성도는 평신도 선교사로 부름받았다.

(2) 내가 가진 직업을 복음증거의 도구로 사용하자.

(3) 교회와 복음을 중심으로 일하고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