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행전(12) -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신칭의 (행13:14-53)

Author
GOSPEL323
Date
2020-05-1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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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12) -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신칭의 (13:14-53)

1. 중요한 사역을 앞두고...

(1) 버가에서 마가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 버가는 앗달리야(안탈리야) 항구에서 약 16km 떨어진 도시로 소아시아(아나톨리아고원) 내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버가에서 마가요한이 선교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 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그 때 벌어진 일이다. 바울은 마가의 일로 마음에 어떤 영향을 받았다. 그는 버가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침체된 가운데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향한다.

- 참고로 성경에는 두 개의 안디옥이 등장한다. 안디옥(안티오커스)은 알렉산더 이후 시리아 지역을 통치하던 셀루커즈 1세의 아버지 이름이다. 셀루커즈 왕조의 왕들은 도시를 건설할 때마다 안디옥이라 이름을 붙여 소아시아에는 16개의 안디옥이 있었다. 우리는 안디옥교회가 세워진 수리아의 안디옥과 바울의 이신칭의 복음설교 내용을 기록한 비시디아의 안디옥만 기억하면 되겠다.

(2)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약 200km을 가야하는 거리

- 해안지역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는 해발 2000m가 넘는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약 200km를 가야 한다. 그 길은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며 풍토병과 도적들의 위협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버가를 떠나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 도착했다(14절)고 단 한 문장으로 기록되지만 그 안에는 2000m가 넘는 고산지대를 오르며 하루 20km씩 걸어도 10일 걸려 도착한 아주 고된 여행이 들어있다. 이후의 선교여행 길도 동일하다. 고린도후서에 기록된 바울의 자서전적 고백은 이것을 잘 묘사한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성령께서 시키신 그 일을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그 길을 걸어갔다. 오직 복음 때문이다.

- 고후11:26-27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신칭의(以信稱義) 

(1) 예루살렘 성전(Temple)과 각 지역의 회당들(Synagogues)

① 제사중심의 성전과 율법중심의 회당

- 성전의 핵심기능은 피의 제사다. 성전은 예루살렘 한 곳 밖에 없다. 성전은 성막과 동일하게 지성소에 언약궤를 모시고, 내성소에 분향단, 성전뜰에 번제단이 있다. 이러한 성전은 단 하나 뿐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성전을 지으라고 직접 지정해주셨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성전에 임재하셨다. 성전은 사람 마음대로 아무 곳에 세울 수 없다. 예루살렘 이외에 어떠한 건물성전도 없다. 성전은 성막과 동일하게 제사장이 상주하고 피의 제사와 절기예식을 지키는 곳이다. 오늘날 교회와 전혀 다르다.

- 회당은 율법을 읽고 배우며 기도하는 장소다. 회당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제사를 드릴 수 없던 바벨론 포로기때 학사 에스라에 의한 율법부흥운동과 함께 본격화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성전파괴와 바벨론 포로는 제사장 중심의 제사종교에서 랍비중심의 율법종교로 변화를 가져왔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성인남자 10명이 있으면 회당을 만들고 안식일 마다 회당에 모여 구약성경을 읽고 기도한다. 성전은 예루살렘 한 곳뿐이지만, 회당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모든 지역 각 처소마다 세워진다. 바울은 이 회당에 가서 율법과 선지서를 읽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옛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언약으로 성취됨을 증거했다.

②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새언약이 출범됨을 말함

- 시내산 구원계시(옛언약)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다. 성막과 제사, 절기 및 모든 규례(율법)은 하늘성소의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모형으로 주신 것이다(히7-10장) 성전과 제사 등의 옛언약 규례는 선지자들의 예언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으로 성취되었다. 산헤드린이 예수님을 처형할 때 죄명은 성전을 헐고 율법을 거스리는 자였다. 스데반도 마찬가지다. 새언약은 건물성전과 제사, 절기,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성취를 말한다. 바울의 복음전파는 십자가와 부활이 가져온 옛언약의 성취를 증거한다. 복음은 건물성전과 제사, 절기,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성취됨을 말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큰 저항을 불러왔다.

(2) “저희가...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27절)

①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행2장) - 죄사함 받고 성령 받으라

- 베드로의 복음증거는 오순절 성령임재 현장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베드로는 초대교회에 임한 성령은 요엘서 2장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파송하신 것이라 증거 한다. 그래서 너희도 회개하고 죄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결론을 맺는다. 베드로는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를 새언약에 약속된 성령주시는 분으로 증거 한다.

②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행13장) – 성령 받고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으라.

- 바울의 복음증거는 회당에서 토라와 선지서를 읽으며 이스라엘 회복과 새언약의 성취를 기도하는 유대인들에게 행해졌다. 바울은 그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께서 예레미야의 새언약 예언처럼 성령을 주시고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구원하신다고 증거 한다.

- 둘 다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지만,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한 후 구약선지서에 예언된 것처럼 성령을 받으라고 강조하고(행2장) 바울은 성령을 받아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으라고 말한다(행13장). 구약에 정통한 랍비 바울은 어부 베드로보다 새언약 성령강림에 대한 선지서의 예언성취를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칭의)로 좀 더 구체적으로 증거하였다.

③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친히 의롭게 하심

-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려울 때의 왕이다. 그는 재위 한지 7년만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함을 보았고 또한 앗수르 산헤립의 무서운 침공을 받았다. 요시아 때, 바벨론은 아직 오리엔트 패권을 차지하지 못했으므로 유다를 침공할 여유가 없었다. 히스기야는 최고 절정기를 달리는 앗수르 제국과 대면해서 믿음으로 국가위기를 지켜냈고, 요시야는 멸망을 앞둔 앗수르를 두고 바벨론과 애굽이 패권다툼 하는 사이에 국가부흥을 이루어냈다. 국가상황이 달랐다. 가장 큰 위기는 앗수르의 공격을 받던 히스기야 때였다.

- 히스기야 때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될 것을 예언하고 또한 바벨론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한다. 앗수르가 아니라 바벨론이다. 그는 임마누엘(사7장)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의의 나라(사9장,11장)를 예언하고, 그 방법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였다(사53장)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로 자기백성을 죄용서 하시며 친히 의롭게 하신다(사50장,59장)고 이사야는 예언한다. 이스라엘 회복(구원)의 방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근거한 하나님의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었다.

- 요시야 때에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 70년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한다. 그는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와 유다를 구원하고 그 성읍은 여호와 우리의 의(렘23:6)라 불리우리라 말한다. 이 예언은 시위대 뜰에 갇혀있을 때 다시 한 번 더 주어진다(렘33:15-16)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 70년을 예언하고(렘25:11-12, 29:10) 70년이 지나면 바벨론이 멸망할 것을 예언한다(렘50-52장)

- 렘33:15-16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바벨론 포로 70년 예언을 읽다가 그 의미를 깨닫는다(단9:1-2) 그는 건물성전 파괴와 바벨론 멸망의 의미를 인류역사의 성취될 70이레의 예언으로 기록한다(단9:24-27) 이는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에게 보여주신 네 나라 신상 꿈(단2장)과 같다. 그 꿈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신 것이 다니엘의 네 나라 짐승 환상(단7장)이다. “네 나라 신상”과 “네 나라 짐승”이 다니엘 70이레 예언(단9장)의 기본 틀이며 그 뿌리는 예레미야 바벨론 포로 70년 예언(렘25장)에서 왔다.

- 에스겔은 그발강가에서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새로운 성전 회복의 예언한다. 그 예언은 한 목자 다윗/그리스도께서 성취하며(렘34:23)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백성과 화평의 언약을 맺으신다(겔34:25). 하나님은 그들을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며(겔36장) 마른뼈 같았던 그들이 성령으로 살아난다(37장) 이후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건물성전을 대신 거룩한 백성의 새로운 성전(사40-46장)을 세우심을 예언한다.

- 사도요한은 이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을 계시록에 담았다. 요한계시록은 다니엘 70이레예언에서 봉인된 마지막 반이레 예언을 그리스도께서 여시는 기록(계5장)이다. 바벨론제국이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고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렸듯, 세상나라는 교회를 핍박하고 온갖 방법으로 무너뜨리려 한다. 그러나 70년후 바벨론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성전이 다시 세워지듯, 교회는 사탄과 세상나라의 유혹과 공격 속에서 건물성전이 아닌 참된 영적성전으로 세워지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간다. 계시록에는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한 복음처럼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는 구원의 길이 담겨있다.

(3)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38-39절)

① 의란 무엇인가?

- 의는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옳은 것, 바른 것, 맞는 것을 말한다. 에덴에서 사람은 그의 생각, 행동, 이웃 피조물과의 관계... 모든 것이 완전하고 옳았다. 그는 성령내주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되어 동행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살았다. 그러한 삶(생명)의 결과가 의로움이다. 의로움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며, 이는 성령내주로 성삼위 하나님과의 연합에서 온다. 아담은 에덴에서 성령내주, 성령충만 했고 그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창조경륜과 어긋남이 없이 옳았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의(Rightousness)다.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정확히 일치함이다. 표적에 정확히 맞았다.

-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 헬라어로 하말티아 곧 표적에서 벗어남이다. 아담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주인됨을 선언한 순간 하나님의 성령은 떠나시고 아담은 하나님과 함께하던 에덴의 생명을 상실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 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주신 바른 길에서 벗어난다(하말티아). 죄인은 아무리 바르게 행동해도 그의 모든 일은 하나님과 단절된 자기 의(옳음)에서 나온 삶이다. 그러한 의(옳음)은 만들어진 의요, 뿌리가 없는 의다. 불의한 사람(죄인)이 잠시 힘을 내서 의로운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러한 의는 지속될 수 없고 설령 지속한다 할 지라도 창조 때 주신 거룩한 의에 도달할 수 없다. 그는 결코 의인이 될 수 없다. 세상의 악한 불의보다는 분명 낫지만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피조물에게서 나온 의가 아니다. 그래서 자기 의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② 의롭다하심(칭의)로 죄를 이길 힘을 주심

- 죄용서는 이미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면제다. 죄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이미 저지른 범죄 행위들이 있다. 이러한 죄는 어떻게 하는가? 오늘 이후 죄를 전혀 안지은다고 해도 이전에 지은 죄는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용서를 주셨다. 오늘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면 이전에 지은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면제하신다. 죄용서 하신다. 죄용서는 미래의 죄까지 용서하여 마지막 심판대에서 죄없다하시는 최종선언으로 확대되지만, 오늘 이후 미래에 짓게 되는 죄는 죄용서보다 성령의 의롭다하심으로 설명함이 올바르다.

- 의롭다하심은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죄인인 나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해주심이다. 하나님의 의는 죄를 이기는 힘이다. 죄를 지어도 용서하고 형벌면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를 짓지 않을 힘을 주신다는 말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요 그리스도의 연합이며 성령내주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저질러진 과거의 죄는 형벌면제 해주시고(죄용서) 앞으로 살아가며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의 의로 덧입혀 주사 죄를 이길 힘을 주신다(의롭다하심=칭의) 그래서 구원은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으로 얻는다.

③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은

-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죄사함을 위함이요, 부활은 성령파송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죄용서 받는다. 하나님은 죄인이 십자가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자기 죽음을 선언할 때, 그 죄인의 죄 값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치러짐으로 인정하시고 용서하신다.

-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함이다. 이는 성령내주 그리스도와 연합됨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와 연합해주셔서 죄를 이길 힘을 주신다. 죄인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얻어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되어 가고, 마지막 심판날 최종 죄없다. 최종 의롭다 선언 받는다.

- 롬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적용>칭의의 복음으로 살아가며....

(1) 그리스도께서 바울과 함께 하셨듯이 오늘 우리와도 함께하신다.

- 바울의 선교현장은 낙심과 좌절이 수없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성령께서 힘을 주시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셨다. 데살로니가에서 어떤 괴악한 사람들의 테러를 피해 밤중에 급히 도망가고(행17장),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복음전하는 동안 무수한 핍박을 받았다(행18장) 그러나 주께서 바울과 함께하셨다.

- 행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2)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칭의)의 복음으로 살아가자.

-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