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행전(7) -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바울의 소명 (행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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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0-04-1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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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7) -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바울의 소명 (9:1-15)

1.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28:6)

(1) 부활은 십자가 대속이 하나님의 구원계시임을 증거 한다.

- 다른 종교는 창시자의 깨달음을 배우고 지키나 기독교는 예수의 하나님이심과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일반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사람들 눈에 기독교는 종교망상가의 공허한 가르침으로 끝났을 것이다(고전15:19) 이는 예수의 가르침이 십자가 죄용서와 사망을 이긴 부활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의 시체를 제시하면 기독교 복음은 그 순간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예수 부활이 사실이라면 세상 모든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활은 사람이 흉내 낼 수없는 신적 사건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그리스도 복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신적 계시, 구원의 길임을 확고히 증거 한다.

(2) 부활은 죄와 사망, 사탄의 권세를 깨뜨린 사건이다.

- 예수 십자가에서 죄사함 받았기에 성도는 사망권세, 죄의 세력, 사단의 참소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성도는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사망의 공포심 때문에 사단에게 종노릇할 필요가 없다. 우리도 또한 예수님처럼 완전한 육체로 부활할 것이다.(고전15:20) 예수의 부활하심과 연합하여 우리도 또한 새사람으로 태어났다(롬6:6) 예수님의 부활은 첫 아담이 잃어버린 본래인간의 축복을 회복한 모습이다.

2.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바울의 소명

(1)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통치하신다.

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빌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②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으로

- 주 예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주 예수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는 구원의 나라다. 그리스도는 자기 피로 죄인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백성 삼아가시는 제사장적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지금 죄인을 당신의 십자가(죄용서)와 부활생명(의롭다하심)에 동참시켜 성령으로 구원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모두 모으시면 성도는 영생의 부활을 얻고 더 이상 죄와 사망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얻는다. 이때. 그리스도의 구속을 거부하며 현저하게 욕을 보인 악인은 사탄과 함께 영원히 타오르는 불에 들어간다.

- 요14:16-1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딛3:5-8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③ 하나님 나라 백성들,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교회)를 정결케 하시며 모으심

-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보좌에 앉으사 성령으로 죄인을 거룩케 하시는 구원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 구원의 날은 2천년간 지속됨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오래참으심이며 그날은 영원하지는 않는다. 주께서 죄인을 구원하는 사역을 끝내시고 창조경륜을 완성하실 때가 가까이 왔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 때에 오기를 원한다.

- 이스라엘 회복의 때를 묻는 제자들에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가 아니라고 하셨다(행1:6)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갈 하나님 백성의 수와 그 마지막 날은 우리의 권한 밖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정결하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 밖에 생각할 것이 없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으로 정결케 준비되야 함은 이사야 선지자(사54) 예수님(마22장) 바울(고후11장, 엡5장) 요한(계19장)의 일관된 메시지다.

- 사54:5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 엡5:31-32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 계19:6-9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2)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일꾼을 세우사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신다.

① 사도행전은 성령을 통해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천상사역을 기록

- 사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을 기록하였다. 공생애 동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구원을 전파하셨고, 죄인들이 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구원을 얻도록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은 한마디로 백성의 죄를 담당하는 십자가다. 십자가 대속이 없다면 우리의 죄사함이 없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실 수 없다. 성령님은 죄용서를 받은 사람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되신다. 부활 없는 십자가는 반쪽복음이지만 십자가 없는 부활은 거짓복음이다.

- 사도행전과 모든 서신서는 성령을 통해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천상사역이다. 그리스도는 지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계19:16)로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가신다. 성령님은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성령님은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는 성령으로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이방인 선교를 직접 인도해 가심을 말한다. 재림 전까지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이 땅에 다시 오사 당신의 구원사역을 계속하시고 마지막 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시 오신다.

② 핍박으로 인해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유다와 사마리아로 흩어짐

- 사도행전의 주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이다.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이 성령강림과 함께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기록한 글이다.

-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란으로 인해 교회는 예루살렘을 떠나 각 지역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 핍박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퍼져나가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물론 성령께서 직접 교회에 핍박하신 것은 아니고, 사탄이 교회 핍박하는 것은 허용하시되 그 핍박을 오히려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 이방선교의 큰 문으로 삼으셨다.

- 스데반의 순교이후 진행되는 일을 보면 이방인 선교를 직접 진두지휘하시는 총 사령관이 계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분은 성령님이시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축구는 선수가 하지만 감독의 지휘가 결정적이다. 동네축구에는 감독이 필요 없지만, 대표선수는 감독이 요구하는 자리에서 감독이 요구하는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시는 총 감독과 총 사령관이 한 분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시다.

③ 복음의 두 가지 내용 = 믿음으로 구원 + 이방인들도 구원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구원)은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는 사람의 의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로 얻는 구원이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받는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시내산 율법을 아주 우수꽝스러운 행위금지법으로 바꿔버렸다. 이스라엘 유대교는 구약성경이 말하는 구원종교가 아니라 장로와 랍비들에 의해 변형된 히브리 민족종교 랍비유대교다. 행위구원의 유대인들이 은혜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임은 거의 불가능하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 둘째, 유대인들이 행위구원에서 믿음구원으로 신학을 바꾸는 것은 천지가 개벽하는 엄청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 이방인들도 유대인과 차별 없이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방인 구원을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열국의 아비,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다(창12장)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요(출19장) 이방의 빛(사49장)으로 부르셨다.

- 민족의 구분은 바벨사건이후 언어가 달라지면서 생겨났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각 지역별로 모여 동일언어 부족을 이루고 시간이 지나 민족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모든 인류는 아담의 후손이요 노아의 자손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은 아브라함부터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삭은 혈통적 자손이 아닌 약속과 믿음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은 히브리 민족의 조장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잘못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구원 얻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조상이다(롬9장)

-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여기에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차별이 전혀 없다. 이것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주제다. 민족 우월의식에 잡혀있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도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구원의 길,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기는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3)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바울을 부르셨다.

① 헬라파 유대인 바울

-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의 등장을 가져왔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방인 선교를 위해 준비시킨 일꾼이다. 그는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헬라어와 헬라철학에 능하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운 헬라파 유대인으로 로마 시민권자였다. 하나님은 이방인 전도를 위하여 바울에게 율법교육과 헬라교육 그리고 로마시민권... 이 세 가지를 준비시키셨다. 마치 모세에게 40년간 이집트의 모든 학문과 교육을 받게 하시고, 다시 40년간 장인 이두로에게 가서 미디안 광야생활 방법을 배우게 하신 후 시내산에서 부르신 것과 같다.

- 그리스도께서 이방인 전도를 위하여 바울을 준비시키고 계셨음을 누가 알았을까? 대제사장 바리세인 공회원들과 초대교회 사도들과 순교당한 스데반... 심지어 핍박자 바울 자신도 잘 몰랐을 것이다. 하나님은 왜 베드로가 이방인 선교까지 감당하게 하지 않으셨을까?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맡을 수 없다. 사람은 기능의 한계가 있고 또 교만해진다.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세밀히 살피시며 당신의 사역자를 세우신다.

②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심

- 바울은 AD 1년 전후로 태어났음에 신학자들은 대부분 동의한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는 대략 AD 32년경이니 바울은 그런 일을 책임질만한 30세 이상의 유대인 청년 나이가 맞다(행7:58) 바울은 적극적인 핍박자였다. 바울은 대제사장으로부터 그리도인은 무론 남녀하고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하라는 공문을 받아 무리를 이끌고 다메섹으로 간다.

-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려고 시내산으로 가게 하셨다. 그때 모세는 민족구원을 위해 40일 금식기도하던 중이 아니다. 모세는 40년간 자기 양도 아닌 이두로의 양을 치는 처가살이 신세였다. 가장 낮아진 모세,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는 모세를 하나님이 부르셨다. 바울도 마찬가지다. 바울이 기독교를 철저히 탐구하고 유대교를 비판하다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아니다. 그는 교회를 잔멸하려던 핍박자였다. 모세나 바울 모두 자신들의 소명을 자랑할 것이 없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③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 바울의 본래 이름은 사울이다. 사울은 헬라파 유대인으로 가졌던 히브리 이름이며 바울은 로마시민권자로서 어려서부터 사용했던 로마 이름이다. 사도행전에서 사울과 바울의 이름 변화는 회심 때가 아닌 이방인 전도 시점을 기준으로 나온다. 바울은 헬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의 히브리식 이름 사울이 아닌 로마식 이름 바울을 사용했다(행13장) 바울을 뜻하는 로마어 paullus는 little(작은)이란 뜻이지만 사울을 뜻하는 히브리어 샤울은 하나님께 요청하다 간구하다는 뜻이다. 사울은 크다 위대하다는 뜻이 아니다.

-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는데,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나를 핍박한다고 하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지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님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다(마16:18)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했다(행20:28)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이 부르실 때, 유대인인 그는 당연히 하나님의 사자(천사)가 나타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는 줄 알았으리라. 그런데 그분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였다.

-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뵈옵고 바울의 모든 유대교 신학은 혼란에 빠졌다. 나무에 달려 죽은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는 확고한 신념이 무너졌다. 이때 바울은 초대교회 성령의 역사와 특히 스데반의 설교를 기억했을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 이 모든 것은 이사야53장의 고난의 종 예언과 예레미야 31장의 새언약 예언 성취였음이 이해되어졌다. 다메섹으로 들어가 3일간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하는 시간은 바울에게 구약성경을 새언약과 그리스도로 확인시키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주께서 아나니아를 보내 안수함으로 바울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그에게 다시 한 번 구약성경과 그리스도를 확인시켜 주신다. 이후 바울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다.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자에서 그리스도를 전도하는 자로 바뀐다.

<적용>회심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쓰시기 까지

(1) 아라비아에서 3년, 고향 다소에서 10년의 기간이 있었다.

- 바울은 자신이 회심한 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을 만났고(갈1:18) 두 번째 예루살렘에 간 것은 회심한 후 14년 만이라고 했다(갈2:1) 종합해보면 바울은 회심후 3년동안 다메섹과 아라비아에 있었다. 안디옥교회로 불리워 올때까지 약 10년간 다소에 있었다. 참고로 바울이 3년간 있었던 아라비아는 시내 반도의 아라비아(갈4장)나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이 아니라 나바티아(Nabatea) 왕국의 아라비아를 가리킨다고 신학자들은 본다. 이 왕국은 다메섹 동남부에서 시내 반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점유하고 있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나바티아 왕국이 아라비아에 포함되어 있다고 기록했고 로마 시대에 나바티아 왕국은 아라비아의 나바티아로 알려졌다. 바울은 3년동안 다메섹과 나바티아 왕국에서 전도했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약 10년을 보낸다. 즉 바울은 안디옥교회에 등장하지까지 13년을 사역했는데 기록이 없다. 왜 그랬을까? 그 기간은 바울의 인격과 신학과 신앙의 모든 부분을 이방인 선교에 맞도록 더욱 다듬으시는 과정이었다.

(2)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하나님의 경고로 듣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자

- 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동성애와 자유주의 신학에 이미 물들어있는 현대교회를 행한 하나님의 채찍이자 자본주의 번영신학, 심리적 위로설교를 익숙해져가는 보수기독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로 듣자. 온 교회가 이번 부활절 성찬을 중단함으로 하나님께 수찬금지의 형벌로 받으며 회개하고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