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요한(27) - 부활생명과 그리스도의 성령통치 (요2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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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0-02-1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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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27) - 부활생명과 그리스도의 성령통치 (20:19-31)

1. 안식 후 첫날

(1) 그리스도께서 삼일(사흘)만에 부활하셨다.

①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12장)

- 예수님은 눈 멀고 벙어린 된 자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는 표적을 행하셨으나 바리세인과 사두개인이 또 그리스도의 표적을 구하며 시험한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 줄 것이 없다고 하셨다. 그 표적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이다.

- 마12:39-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② 너희가 성전을 헐면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요2장)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고 소와 양과 돈 바꾸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자 유대인들은 네가 그리스도인 표적을 보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면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고 하신다. 역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함이다.

- 요2:19-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거하심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함이다.

① 시간적으로 보면, 그리스도는 안식일 하루 무덤에 계심

- 예수님은 삼일(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사흘(삼일)은 물리적 72시간을 말함이 아니라 안식일을 가운데 두고 옛시대에서 새시대로의 전환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금요일에 첫창조를 마치시고 토요일에 안식하셨듯이 예수님도 금요일에 모든 속죄사역을 마치시고 토요일에 안식하시고 주일에 다시 새창조(구속)의 첫째날을 여셨다.

- 예수님은 안식일 하루 무덤에 계셨다. 금요일 해질녁에 장사되시고 주일 새벽 아직 어두울 때 제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부활하셨으니, 날자로는 삼일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안식일 하루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무덤에 거하심은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어 안식케 하기 위함이다. 노아의 이름이 안식(쉼,RSV)이듯, 예수님은 우리의 안식을 위하여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셨다.

- 창5:28-29 “라멕은 일백 팔십 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②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들을 놓아주시려...

- 예수님이 무덤에 거하심은 죄와 사망에 잡혀 무덤 속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모든 사람은 무덤에 속해 있다. 베뢰아 귀신론처럼 이 세상이 지옥(음부)라는 것도 아니며, 로마 카톨릭처럼 죽은 자의 구원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은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고 있고 에스겔 환상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른 뼈처럼 무덤 속에 누워있다는 말이다.

- 겔37:11-14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③ 우리와 친히 연합해 주심으로 부활생명을 주심

- 우리는 죄로 인하여 사망에 잡혀있다. 우리는 이미 죽었으며 무덤에 거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는 사망에 잡힌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연합해주심으로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종노릇하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부활생명을 얻게 되었다.

- 히2:9-10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 히2:14-15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2. 부활생명과 그리스도의 성령통치

(1)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22절)

① 부활하신 첫날 저녁, 열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 여러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 주셨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도 그러하셨다.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에서는 주님을 뵈었고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모두 당신의 부활하심을 확인시켜주심이다.

-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저녁, 곧 부활하신 첫날 저녁에 열 제자들에게 나타나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 또한 예수님은 승천하시며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5)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였다. 성령과 기도였다. 성만찬 말씀 그대로다.

②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생기란 의학에서 말하는 신체를 살아있게 하는 어떤 생명작용이 아니다.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하는 유무에 따라 사람은 산영과 육체로 구분된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호흡(루아흐) 곧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피조물이 됨에 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린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살아있지만 성경은 그들을 생명 없는 육체라고 하셨다(창6:3)

-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도 동일하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죽은 마른 뼈였다. 그들이 살게 됨은 여호와의 생기(성령)가 그들 속에 들어갈 때였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겔37:9) 생기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그들이 살아난다. 마른 뼈처럼 죽어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서 무덤에서 나오게 된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겔37:13-14)

③ 성령을 다시 모심으로 육체(창6:3)에서 산영으로(창2:7)

-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창1:27)임은 사람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이다. 아담은 마음속에 성령을 모심으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된 피조물로 창조되었다. 에덴에서 아담은 성령충만 받아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 살아갔다. 이러한 사람이 산영(창2:7) 곧 살아있는 영적존재다. 그러므로 살아있음(생명)은 사람이 본래 창조원리, 피조물의 존재방식대로 하나님의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감을 말한다. 다른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성령은 거하지 않으신다. 오직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이다.

-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첫아담은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산영이었다.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는 육체가 되어버린 사람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다시 산영으로 만들어 주시는 살려주는 영이시다. 그리스도는 죄로 죽은 죄인을 십자가의 피로 구속하고 성령을 주셔서 의의 백성 되게하시고 에덴의 생명을 회복시키신다. 에스겔의 성전회복(겔43장)과 요한계시록의 새예루살렘성(계21장)은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 가운데 거하심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모시고 다시 산영이 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거하심이다.

(2)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

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

-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셨고 모든 만물이 예수를 주로 부르도록 하셨다. 예수님이 왕이시면 하나님은 왕이 아니신가? 오해하지 말라. 하나님은 영원한 왕이시고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지금 하나님 나라를 위임 통치하신다. 보좌 우편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을 위임받으심이다.

- 만물이 회복되는 그날, 예수님은 자기 피로 구속한 모든 하나님 나라(백성)을 아버지께로 돌리신다. 심판과 부활이전은 그리스도의 나라로, 이후는 하나님의 나라로 구분되나, 아들의 나라와 아버지의 나라는 동일하고 그리스도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다를 수 없다.

- 고전15:24-26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② 십자가와 성령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나라

-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통치와 다르기에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잘 깨닫지 못한다. 성도들도 지금 그리스도께서 왕이라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를 실감하지 못하기도 하다. 세상 왕의 눈으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제사장적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친히 자기 피로 죄용서 하시고, 성령을 보내사 죄인을 의롭게 하시며 자기백성 삼으시고 구원하시는 왕이시다. 누룩과 겨자씨 같이 잘 보이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성령통치는 세상 곳곳에서 구원의 백성을 만들어 나간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다. 그리스도의 왕 되심은 세상나라와 전혀 다르다.

-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 예언처럼 지금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다(사49:8) 지금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고 자기백성을 모으시는 때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여 죄에서 벗어나 의를 행하는 하나님 백성으로 만드시고 그들을 보존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모든 피조세계까지 확대되지만 그 시작은 그리스도의 피로 죄인을 정결케 하는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에서 부터다.

- 지금 그리스도는 죄인을 속량하시는 구속주로만 보이지만, 재림과 심판 부활이후 우리는 요한이 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뵙게 될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나고 높은 보좌에 앉으사 네 생물과 24장로들, 천만천사, 모든 만물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그런 왕적 권위를 우리 눈으로 직접 보게 된다(계4-5장)

③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 지금이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일곱 교회가 주의 재림 때까지 어떻게 참된 성전과 새 예루살렘 성의 하나님 나라를 회복해 나가는지 보여준다. 비록 주의 재림 날까지 얼마가 남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주님은 지금 하늘보좌에서 성령을 보내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며 모으고 계신다. 새하늘과 새땅은 영의 세계가 아니라 죄로 더러워진 첫창조 지구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신 곳이므로 들어갈 인원은 무한대가 아니다. 주께서 자기백성을 모으심을 완결하는 때가 있다.

- 노아의 무지개는 사람들이 아무리 죄로 극악해져도 하나님은 노아 때처럼 인류역사에 개입해서 죄인을 심판하시지 않으시겠다는 증표다.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해도, 죄악이 아무리 극심해도 심판은 마지막 한번으로 끝난다.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 때까지 참으시며 죄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지금 그 사역을 하고 계신다. 지금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심은 세상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노아에게 주신 약속 때문이다.

- 창9:11-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3) 하나님 나라는 교회(성도)의 복음증거와 성령의 역사로 확산되게 하셨다.

① 성령을 주시고 제자를 파송하심

- 부활하신 그날 저녁,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가라고 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복음전파로 확장된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쳐주셨듯이 제자들도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갖는다. 하나님은 돌을 들어 하나님 백성을 만드실 수 있지만(마3:9) 그렇게 하나님 백성을 만드신 적은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해서 하나님 백성을 만드신다. 구원받은 교회/성도가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과 함께 성령의 역사로 죄인을 구원해서 하나님 백성 삼고 계신다.

- 요20:19-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진다는 말씀을 오해할 필요는 없다. 복음전파 문맥이다. 우리가 전한 복음을 받으면 그 사람의 죄가 사해지고, 복음을 거부하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다는 말씀이다. 죄사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만 있는 신적 권세다. 사람은 그 누구도 죄사함의 권세를 직접 가질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복음을 받으면 그들도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어 구원얻는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그들의 죄를 사해주신다.

②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지듯, 죄인을 회개시켜 거듭나게 함은 우리의 희생과 고난 위에 일어난다. 바울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 했다. 교회를 세우려면 아직도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 하고 그 고난을 자신이 받는다고 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지금도 하늘에서 고난 받으심이 아니고 자신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키 위해 받으신 십자가 고난이라 함이다. 죄인 한사람이 돌아올 때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하듯 바울은 자신의 고난은 당연하다고 한다. 우리의 고난과 희생 위에 죄인이 돌아오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세워진다.

- 구약의 선지자들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돌에 맞아 죽었다. 포도원 주인은 열매를 받으려 자기의 종을 보냈지만 악한 소작인들은 세 번이나 종을 때리고 능욕하고 돌로 쳐서 죽인다.(마21장,막12장,눅20장) 주인은 종들이 능욕 받고 돌로 침을 당하고 죽을 줄 알면서도 계속 보낸다. 종들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렇게 희생된다. 마지막에는 주인의 아들까지 가서 죽임당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복음을 전하다 죽도록 보냄받았고 우리도 그렇게 보냄을 받았다. 죄인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나라는 원래 그렇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렇게 고난을 당하셨듯, 그리스도께서 세상으로 보내신 우리(교회)도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똑같이 당한다.

<적용>보좌에 앉으신 우리 주님을 바라보자

(1)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다.

(2) 십자가 죽음이 없으면 일생에 매여 사망의 종노릇하게 된다.

(3) 세상일에 너무 매이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