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요한(6) -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요3:1-21)

Author
gospel323
Date
2019-09-0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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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6) -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3:1-21)

1. 성전정결 사건 이후

(1)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① 예수님은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심

- 요2:21-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② 기적을 보고, 기적 때문에 믿는 것은 부족함

- 예수님께 무관심 하거나 극렬한 반대만 하지 않아도 다행인데, 믿고 따르는 사람이 생겼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신다. 그들을 믿는 자로 여기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 기적을 보고 믿는 것, 기적 때문에 믿는 것은 부족하다. 기적을 베풀지 않으면 떠나갈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기적은 기독교의 입문은 될 수 있지만 본질이 아니다. 오히려 기적은 사람들의 눈을 막아 기독교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소가 되기 쉽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동참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2)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는가?

① 니고데모의 질문

- 니고데모는 바리세인이며 율법사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 산헤드린은 71명으로 구성된 로마시대 유대사회의 최고의결기관이다. 그는 훌륭한 인격과 진리에 대한 열망을 가진 경건한 사람이며 백성을 가르치는 이스라엘의 선생이었다. 그가 밤중에 예수께 찾아와 진지한 질문을 한다. 예수님의 대답(3절)을 보면, 2절과 3절에는 많은 대화가 생략된 것 같다. 그는 하나님 나라(=구원)에 관하여 질문한 것 같다. 그것은 결국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핵심질문으로 귀결된다.

② 유대교/일반종교 – 내 공로로 거룩해져서

- 옛언약은 하나님 백성에게 거룩을 요구하고, 거룩해지는 방법으로 할례와 제사, 절기지킴 계명준수 같은 율법의 행위를 제시한다. 옛언약은 하나님의 절대기준과 사람의 실체를 정확하게 보여줌으로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거룩해질 수 없음을 분명히 명시한다. 옛언약은 죄로 인한 사람의 전적부태와 무능력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은혜구원을 분명히 한다. 결국 옛언약은 그리스도의 새언약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였다. 하나님께서 새언약을 주실 때 옛언약과 비교하며 주신 이유다(렘31:31-34)

- 유대교는 자기 힘으로 공로를 쌓아 구원을 얻는다는 일반종교 전체를 말한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로 구원을 얻으려는 행위구원 종교다. 새관점 학파가 어떤 주장을 하지만, 분명 유대교는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하는” 행위종교임이 틀림없다(롬10:3) 이러한 행위구원론은 각 종교들 사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로 구원을 얻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 사람은 자기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을까? 있다고 말하는 것이 유대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요, 없다고 단언하는 것이 기독교다. 성경계시만 유일하게 사람의 행위구원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얻음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사람의 죄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다른 길은 없다.

③ 그리스도 – 믿음으로 죄용서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

- 그렇다면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백성(=자녀)가 될 수 있는가? 죄인이 구원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는 죄인이 다시 범죄이전처럼 거룩해져야 하는 문제다. 죄인은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다. 아담의 죄 때문이다.

-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주인 되어 살아가는 아담의 본성(=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결국 모든 사람은 죄의 본성을 거스릴 수 없기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거룩해질 수 없다. 죄인은 오직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때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받고 거룩해진다. 이때만 구원을 얻는다.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으로 구원 얻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첫째, 오늘 이전에 지은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다. 죄용서는 죄책면제 곧 형벌면제를 뜻한다. 내가 지은 모든 죄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 앞에서 형벌의 심판이 있다. 오늘 죄를 짓지 않아도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은 그대로 남아있다. 죄책 곧 형벌이 있다. 구원은 과거에 저지른 죄책이 사함 받았다는 죄용서 받는다.

- 둘째, 오늘 이후부터, 죄를 짓지 않고(=이기고) 의를 행할 수 있게 된다. 거룩함은 죄가 없는 소극적 면과 의를 행하는 적극적 면이 있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으면 무죄상태다. 이것만으로는 거룩하다 할 수 없다. 범죄이전에 아담은 죄를 짓지 않는 능력과 의를 행하는 능력이 모두 있었다.

- 죄인은 죄용서 받아 과거의 죄로부터 형벌면제를 받고, 의롭다하심(=칭의)를 얻어 미래의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하며 살아가게 된다. 점점 거룩해진다.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하나님의 의를 덧입음이다. 점점 성화되어 가다가 주의 재림의 날에 부활의 몸으로 완전성화(=영화)가 된다. 참고로, 죄용서가 미래에 지을 죄까지 용서함은 결코 방종으로 흐를 수 없다. 의롭다하심(칭의)와 겹쳐지기 때문이다.

2.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1) 십자가 – 자기주인되어 살아오던 삶에서 돌이켜야 한다.

① 에스겔 36장 25-28절 예언

- 성령은 이해되는데 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은 죄 씻음 곧 회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에스겔의 새언약 예언과 연결되어 있다. 새언약 시대가 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의 길이 열린다. 하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거듭난 모든 자에게 성령을 부으신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 그들 사이에 먼저 생명 얻는 회개(행11:18)가 일어난다.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다. 동일하게 예수님도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 죄사함을 얻는 회개가 먼저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다(눅24:45-49)

- 겔36:25-28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눅24:45-49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고”

② 회개 곧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

- 세례요한은 자신이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그리스도가 오심을 알리려 함이라 했다. 바로 이러한 구약의 예언을 말함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 이전에 먼저 죄에서 정결케 되는 회개가 있음이다. 이것을 나타내는 것이 정결예식, 세례(=물로 씻음)다. 세례요한이 바로 이러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물)세례”(눅3:3)를 전했다.

- 오늘날 시행되는 물세례 속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의미가 바로 이 회개를 말한다. 회개 곧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죽음이 먼저 있어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실 수 있다. 부활생명을 얻는다. 그래서 “생명 얻는 회개”(행11:18)다. 물로 죄 씻음 곧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죄용서를 주신다.

③ 옛 것을 개선함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창조됨

- 거듭은 원어적으로 다시 한 번 또는 위로부터(=하나님으로부터)란 뜻이다. 부모에 의한 출생 이후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한 번 태어남이다. 성령을 모시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출생이니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남이다. 옛사람을 수리해 개선함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로 태어남이다. 성령의 사람은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인류, 새로운 피조물, 새사람이다.

(2) 부활 - 성령을 모셔 그리스도와 연합 되어야 한다.

①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 기독교의 믿음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만이 아니다. 구원 얻는 믿음은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게 한다. 믿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고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셔 부활생명으로 살아가게 한다.

- 믿음은 자기주인됨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심이다. 성령을 모심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임재하신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며 성령께서 실재 내 안에 주인으로 임하시는 영적 탄생이다. 새로운 자각이나 신비한 깨달음이 아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요, 거듭난 사람이다.

② 바람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듯, 성령으로 다시 거듭남은 하나님의 신비임

- 헬라어 프뉴마는 성령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호흡, 바람이란 의미로 쓰인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거듭남을 바람에 비유하셨다. 바람이 부는 것을 사람이 바꿀 수 없듯 성령님의 역사도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실 뿐이지 사람이 움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신, 새로운 창조물이다. 사람이 임의대로 성령님을 조종할 수 없다.

-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호흡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영(산영)이 되었다(창2:7)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호흡"은 성삼위 하나님의 영이다. 아담의 범죄로, 이 성삼위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서 떠나셨다. 육체가 되었다(창6:3) 이 말은 지금 사람들은 영혼이 없거나 죽어있는 고깃덩어리라는 뜻이 아니다. 사람 속에는 사람의 영혼이 들어 있으나 처음 에덴에서처럼 성삼위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지 않는단 말이다.

-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요20:22) 이것은 창조 때 성삼위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후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범죄이후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서 떠나가시므로 육체가 되어버린 사람에게 예수의 영(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에덴의 첫창조 때처럼 성삼위 하나님의 영이 거하심이다. 산영이 됨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됨이다.

- 예수님의 호흡은 예수님 자신이며, 예수의 영, 하나님의 영이시다. 이 성령님을 모셔야 죄로 죽은 영혼이 다시 산영이 된다(창2:7) 육체가 된 죄인은(창6:3)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다시 산영이 된다. 에덴에서 성삼위 하나님의 영과 연합되었듯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다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살아난다. 산영(=생영, living soul)이 됨이다. 이것이 생명 얻음 곧 구원이다.

-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③ 성령으로 거듭남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임은 사람의 피동성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말함이다. 구원은 아무 일 하지 않고 있다가 요행이나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공로를 쌓아도 구원은 자기의 힘으로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 어떤 조건을 하면 반드시 해당되는 결과물을 줄 때, 그는 주권자가 아니라 노예요 기계다. 밴딩머신 자동판매기다. 하나님은 주권자시지 나의 노예가 아니다. 구원은 나의 조건행함에 달려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근거한다. 어떤 누구도 자기를 자랑할 수 없다.

- 바람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이 나는지 모른다. 바람은 공기분자가 이동하는 흐름으로 그 실체를 볼 수 없다.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고 바람이 있음을 느낄 뿐이다. 성령님도 그러하다. 성령님은 보이지 않으나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 나타나는 거룩한 변화를 통해 그 사람 속에 성령님이 거하심을 볼 수 있을 뿐이다.

-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3) 성령으로 거듭남은 십자가 복음을 믿을 때 주신다.

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 민수기의 놋뱀 사건은 매우 특이하다(민21장) 백성들이 불신앙함으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사 불뱀에게 물려 죽게 하신다. 그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메달라고 하시고 그 놋뱀을 쳐다 본 자는 살려주신다. 성경에서 뱀은 축복의 대상일 수 없다. 뱀은 저주의 대상이다. 심지어 지금 백성을 물어 죽게 만든 고통의 원인이지 않는가! 그 저주스러운 뱀을 장대에 매달라니... 율법에서 나무에 매달림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명백한 징표다(신23:21) 저주받은 뱀을 나무에 매다는 것은 놋뱀이 저주받아 죽었음을 명백히 한다. 그런데 그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바라보면 살게 되다니 도대체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왜 놋뱀을 장대에 매달라고 하셨을까? 민수기의 놋뱀 사건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언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직접 해석하셨다.

- 십자가는 하나님의 저주요 심판이다.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 매달리사 나의 모든 죄와 저주를 담당하셨다. 장대에 매달려 죽음의 형벌을 당하는 놋뱀처럼 그리스도는 내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 뱀에게 물려 죽어가던 백성은 나무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며 자기가 하나님께 불평과 불신앙했음을 회개한다. 자신이 저주받아 나무에 매달려야 함을 회개한다.

- 놋뱀은 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으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본래 죄가 없으신 순결하고 의로우신 그리스도시지만 십자가에서는 죄인으로 죽으셨다. 내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이다. 내가 저주받아 죽어야 할 놋뱀인데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저주받은 놋뱀으로 죽으셨다. 이게 십자가고 백성이 놋뱀을 바라보아 살게 된 이유다. 히브리서 11장 표현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②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이처럼(so)” 사랑하심이란 무슨 말일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심을 말한다(14절) 자기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그렇게 매우(so) 사랑하심이다. 독생자는 His only begotten Son으로 하나님께로서 나신 유일하신 분이란 의미다. 영어에서 birth는 어머니가 아이를 낳았을 때 쓰고, begat/beget은 아버지가 아이를 낳았다고 할 때 쓴다. 한마디로 beget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는 단어다. 아담의 족보(창5장) 노아의 족보(창11장) 마태복음 1장 아브라함 족보에 계속 등장한다. Abraham begat Isaac; and Isaac begat Jacob; and Jacob begat Judas and his brethren(KJV) 이를 현대영어로 조금 쉽게 의미번역하면 Abraham was the father of Isaac, Isaac the father of Jacob, Jacob the father of Judah and his brothers,(NIV)

- 왜 내 대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을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외엔 그 어떤 이유도 없다. 나로 하여금 사망의 죄값을 치루고 생명을 얻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속죄방법을 계획하심도 놀랍지만, 그 구원 계획을 실제로 시행하심은 더 놀랍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앞에 그저 엎드려 감격하며 감사할 할 뿐이다.

③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얻는다. 예수를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이다. 장대에 매달려 죽은 저주받은 놋뱀처럼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생명으로 살아감을 말한다. 구약의 예언대로 하면, 물로 씻어 정결함을 얻는 회개와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감이다. 이러한 삶이 생명이며 부활이후 시간적으로 영원히 지속됨이 영생이다. 이것이 구원이요 하나님 나라다.

<적용>언제나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자.

(1)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기억하자.

(2)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그리스도께 순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