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요한(2) -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 (요1:19-39)
Author
gospel323
Date
2019-08-1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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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2) -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 (요1:19-39)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현현이요 하나님의 대행자시다.
-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만물을 통치하신다. 구약 전체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와 뜻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현현이며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하나님의 대행자이다. 창세기 1장에서 거듭해서 나오는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의 시행자임을 보여준다.
-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는 영원세계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존재와 뜻이 나타내신 계시이며 이는 하나님의 현현이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선포한다. 이렇게 볼 때, “말씀”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추상화된 철학개념이 아닌 전능하시며 인격이신 하나님을 가르치는 성경용어였다.
(2) 포로기 때, 하나님 명칭 YHWH는 직접 번역하지 못하고 “말씀”으로 기록했다.
- 이스라엘이 멸망해 갈 때 오리엔트의 패권은 바벨론과 페르시아가 갖게 된다. 이 시대에는 아람어가 국제통용 언어여서 히브리어 성경은 아람어로 번역되거나 또는 에스라와 다니엘 처럼 성경의 일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번역자들은 구약성경의 하나님 명칭인 YHWH를 어떻게 번역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 아람어 번역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를 수 없기에 하나님 명칭에 “거룩한 자” “하나님의 말씀” “말씀” 등으로 표현했다. 이중에서 특히 “말씀”(아람어 멤라)이란 단어는 “요나단의 탈굼”에서 320회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말씀”은 탈굼에서 하나님을 가르키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시대 탈굼에 친숙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말씀”(The Word)은 곧 하나님을 의미함을 잘 알고 있었다. - 호크마, 요한복음 P66
- 참고로, ‘아람어로 ‘탈굼’(Targum)은 ‘번역, 해석’을 의미하고, 레위인들이나 랍비들이 구약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하거나 그 뜻을 해석해서 말한 것을 의미한다. 후대에 이것이 문자로 기록되면서 ‘탈굼’은 구약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 또는 해석하여 기록한 아람어 번역본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그 “말씀”이 육체가 되신 분이다.
- 예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그 말씀(헬, 로고스)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로 오신 분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말씀(로고스)는 분리불가한 동일본질의 한 실체이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개별인격을 가시진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성삼위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므로 피조물과는 다르며 불가완해다.
-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나신(=출래) “독생하신 하나님(only begotten Son)”이시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로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구원계획을 계시하실 수 있다. 예수님은 진리가 충만하시다.
- 예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던 그 창조주(창조중보자)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다시 구속주로 오신 분이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 위에 은혜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2.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
(1) 세례요한의 중요성
①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 –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
- 세례요한의 등장은 그리스도와 오심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먼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 이사야서 40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언하며 후반부를 시작한다. 그 회복은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고 떠나가신 하나님께서(겔10장) 다시 예루살렘에 임재하시고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임재하실 때 먼저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먼저 있을 것이라 예언한다. 유대광야와 사막은 예루살렘 동편에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동쪽에 문이 있다. 성막도 동쪽에 문이 있다. 에스겔은 하나님 신이 성전의 동문으로 나가셔서 성전 동쪽에 있는 감람산을 위에 머무시고, 유다광야 쪽으로 떠나가심을 환상으로 보았다. 이사야의 예언은 바로 그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시고 성전에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동쪽 유대광야와 사막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등장한다.
- 사40:3-5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하나님께서 구주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시겠고 그가 와서 백성을 회개케 하겠다고 예언한다. 하나님의 사자는 선지자 엘리야와 같이 백성을 회개케 하는 사명으로 예언된다. 여호와께서 임하시면, 순종의 자녀에게는 은혜와 상급을 주시고, 불순종했던 자들은 그 죄에 대하여 심판과 보응하신다. 그래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는 구원과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먼저 와서 회개를 선포하는 사명이다. 구약성경의 마지막은 그리스도의 오시기 전에 광야에서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가 먼저 등장할 것을 예언하며 끝을 맺는다.
- 말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 말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② 이삭의 출생처럼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모에게 천사가 그의 출생을 기별함
- 구약에서 천사의 기별을 통해 출생한 아이는 이삭 한 사람 뿐이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께서 이삭처럼 중요한 사명을 위하여 보내신 인물이다. 세례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천사의 기별을 받고 출생한 아들이다.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고 아이가 없었다. 사가랴가 제사장 직무순서에 따라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분향할 때, 천사가 나타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말해준다. 천사는 그의 이름까지도 요한이라 정해주고, 그의 사역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예언한다. 사가랴가 자신과 아내는 늙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하자 천사는 사가랴의 말문을 막는다. 사가랴는 요한을 낳을 때까지 벙어리가 되고 요한을 낳고나서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이 모든 백성에게 알려졌다.
③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품
- 이처럼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다. 그는 자라나 광야에 거하며 낙타 털옷을 입고 가죽허리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다(마3:4)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눅1:80) 디베료 황제 15년, 빌라도가 유대총독으로... 가야바와 안나스가 대제사장일 때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거하던 세례요한에게 임했다. 세례요한은 요단강/베다니에서 백성들에게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눅3:3)
-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푼 요단강의 베다니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여리고를 지나 암몬의 수도 랍바암몬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단 나루터 도하지점이다. 이 길은 예루살렘과 암몬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이며 아주 큰 길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여리고 앞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푸는 요한을 알게 된다. 이때 세례요한이 베푼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는 에스겔과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한 표현이다.
- 겔36:25-27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 슥12:10, 13:1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 그리스도께 대한 세례요한의 두 증거
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29절)
- 세례요한은 율법의 성취를 직접 선언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다. 그는 모든 선지자들의 그리스도 예언이 예수님께 성취되었음을 선언하며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한다. 율법은 속죄일과 속죄제사를 명하고, 이스라엘은 그 규례에 따라 예수님 오실 때까지 약 1500년간 희생제사를 드려왔다. 수도 없는 짐승이 죽었고 셀 수 없는 제사가 드려졌다. 세례요한은 이 모든 희생제물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구약 시내산 율법을 해석하고 그 성취를 선언한다.
- 세례요한의 해석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한다. 세례요한은 이사야 53장에서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여호와의 종이 속죄제물/속건제물로 죽으심으로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예언이 실제로 그리스도께 성취되었다고 증거한다. 그리고 요단나루터 베다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하며 백성들에게 선포한다.
- 요단나루터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거쳐, 랍바암만(암몬의 수도)과 왕의 대로로 연결되는 큰 길목에 있다. 요단 동편, 암몬과 모압 등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반드시 요단나루터 베다니를 지나 여리고를 거쳐 와디켈트를 따라 올라가는 길 밖에 없다. 즉 세례요한이 베다니에서 세례를 베푸는 소식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전해지게 되어 있었다.
②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리라”(33절,막1:8,마3:11,눅3:16)
- 세례요한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사역에 대해 명확하게 증거 했다. 본문에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푸는 소식이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에게 널리 퍼지자 예루살렘 공회에서 사람들을 보내어 세례요한에게 질문을 한다. “너는 누구냐?” “너는 왜 세례를 주느냐?” 이에 대해 세례요한은 자신이 세례를 베품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함이라 말한다.“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요1:31)
- 세례요한이 베푸는 물세례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가 오시는 증표였다. 에스겔(겔36:25-28)과 스가랴(슥12:10, 13:1)는 그리스도께서 임하시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큰 회개가 있을 것이라 예언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단순한 회개촉구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징조로서 세례를 베푼다.
- 세례요한이 베푼 “죄사함을 얻게 하는 세례”(눅3:3)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성령 세례”(요1:33)를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성령세례는 죄용서 받은 자들에게 성령으로 함께하셔서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만드심을 말한다. 세례요한이 증거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요1:33)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구원사역이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로 백성을 구원하신다.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어 백성의 죄를 용서받도록 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성령으로 함께하시므로 백성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시다.
(3) 세례요한의 위대성
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20절)
- 세례요한은 자기가 누구인지 잘 알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이유를 알았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 세례요한의 위대성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그는 구약 선지자들의 하나님 나라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로 성취됨을 직접 언급하였다. 그는 구약성경에 정통하였고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올바르게 해석하였다. 둘째,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스도로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했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요1:20)
②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27절)
- 세례요한은 구약에서 가장 큰 자다. 그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라는 명확한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다. 그는 이삭의 출생처럼 아이를 낳기 불가한 노년의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천사가 기별하여 출생하였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눅1:76-77)
- 이러한 그의 출생은 모든 이스라엘에게 전파되었고, 백성들은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며 주목하고 있었다.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눅1:65-66)
-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일도 감당 못하는 종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얼마나 높으신 하나님이신 줄 단적으로 표현함이다. 모든 사람들 보다 가장 큰 세례요한이 자신은 감히 그리스도 앞에서는 종보다도 못하다고 분명히 선언한다.
③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 세례요한은 자신의 피조물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고 고백했다. 그는 백성들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주목하면 자신은 사라져야 하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적용>내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만 드러내자.
(1) 내가 드러날수록 그리스도는 감춰진다.
- 그리스도는 나를 통치하시는 주님이시다. 내가 아닌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한다. 에덴에서 본래인간이 바로 그랬다.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말씀(로고스)와 함께 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께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다. 내가 드러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함이다.
(2)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강함이 되시므로 나는 온전케 된다(고후12장)
- 내가 감춰지고 그리스도께서 드러날수록 나는 온전해진다. 그리스도의 강함이 나를 드러냄이 아니고 나를 온전케 한다.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므로 나는 온전해진다. 이것이 복음이고 세상과 정반대의 진리다.
- 고후12:9-10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현현이요 하나님의 대행자시다.
-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만물을 통치하신다. 구약 전체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와 뜻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현현이며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하나님의 대행자이다. 창세기 1장에서 거듭해서 나오는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의 시행자임을 보여준다.
-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는 영원세계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존재와 뜻이 나타내신 계시이며 이는 하나님의 현현이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선포한다. 이렇게 볼 때, “말씀”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추상화된 철학개념이 아닌 전능하시며 인격이신 하나님을 가르치는 성경용어였다.
(2) 포로기 때, 하나님 명칭 YHWH는 직접 번역하지 못하고 “말씀”으로 기록했다.
- 이스라엘이 멸망해 갈 때 오리엔트의 패권은 바벨론과 페르시아가 갖게 된다. 이 시대에는 아람어가 국제통용 언어여서 히브리어 성경은 아람어로 번역되거나 또는 에스라와 다니엘 처럼 성경의 일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번역자들은 구약성경의 하나님 명칭인 YHWH를 어떻게 번역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 아람어 번역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를 수 없기에 하나님 명칭에 “거룩한 자” “하나님의 말씀” “말씀” 등으로 표현했다. 이중에서 특히 “말씀”(아람어 멤라)이란 단어는 “요나단의 탈굼”에서 320회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말씀”은 탈굼에서 하나님을 가르키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시대 탈굼에 친숙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말씀”(The Word)은 곧 하나님을 의미함을 잘 알고 있었다. - 호크마, 요한복음 P66
- 참고로, ‘아람어로 ‘탈굼’(Targum)은 ‘번역, 해석’을 의미하고, 레위인들이나 랍비들이 구약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하거나 그 뜻을 해석해서 말한 것을 의미한다. 후대에 이것이 문자로 기록되면서 ‘탈굼’은 구약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 또는 해석하여 기록한 아람어 번역본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그 “말씀”이 육체가 되신 분이다.
- 예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그 말씀(헬, 로고스)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로 오신 분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말씀(로고스)는 분리불가한 동일본질의 한 실체이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개별인격을 가시진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성삼위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므로 피조물과는 다르며 불가완해다.
-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나신(=출래) “독생하신 하나님(only begotten Son)”이시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로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구원계획을 계시하실 수 있다. 예수님은 진리가 충만하시다.
- 예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던 그 창조주(창조중보자)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다시 구속주로 오신 분이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 위에 은혜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2.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
(1) 세례요한의 중요성
①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 –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
- 세례요한의 등장은 그리스도와 오심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먼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 이사야서 40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언하며 후반부를 시작한다. 그 회복은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고 떠나가신 하나님께서(겔10장) 다시 예루살렘에 임재하시고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임재하실 때 먼저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먼저 있을 것이라 예언한다. 유대광야와 사막은 예루살렘 동편에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동쪽에 문이 있다. 성막도 동쪽에 문이 있다. 에스겔은 하나님 신이 성전의 동문으로 나가셔서 성전 동쪽에 있는 감람산을 위에 머무시고, 유다광야 쪽으로 떠나가심을 환상으로 보았다. 이사야의 예언은 바로 그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시고 성전에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동쪽 유대광야와 사막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등장한다.
- 사40:3-5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하나님께서 구주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시겠고 그가 와서 백성을 회개케 하겠다고 예언한다. 하나님의 사자는 선지자 엘리야와 같이 백성을 회개케 하는 사명으로 예언된다. 여호와께서 임하시면, 순종의 자녀에게는 은혜와 상급을 주시고, 불순종했던 자들은 그 죄에 대하여 심판과 보응하신다. 그래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는 구원과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먼저 와서 회개를 선포하는 사명이다. 구약성경의 마지막은 그리스도의 오시기 전에 광야에서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가 먼저 등장할 것을 예언하며 끝을 맺는다.
- 말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 말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② 이삭의 출생처럼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모에게 천사가 그의 출생을 기별함
- 구약에서 천사의 기별을 통해 출생한 아이는 이삭 한 사람 뿐이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께서 이삭처럼 중요한 사명을 위하여 보내신 인물이다. 세례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천사의 기별을 받고 출생한 아들이다.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고 아이가 없었다. 사가랴가 제사장 직무순서에 따라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분향할 때, 천사가 나타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말해준다. 천사는 그의 이름까지도 요한이라 정해주고, 그의 사역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예언한다. 사가랴가 자신과 아내는 늙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하자 천사는 사가랴의 말문을 막는다. 사가랴는 요한을 낳을 때까지 벙어리가 되고 요한을 낳고나서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이 모든 백성에게 알려졌다.
③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품
- 이처럼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다. 그는 자라나 광야에 거하며 낙타 털옷을 입고 가죽허리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다(마3:4)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눅1:80) 디베료 황제 15년, 빌라도가 유대총독으로... 가야바와 안나스가 대제사장일 때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거하던 세례요한에게 임했다. 세례요한은 요단강/베다니에서 백성들에게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눅3:3)
-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푼 요단강의 베다니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여리고를 지나 암몬의 수도 랍바암몬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단 나루터 도하지점이다. 이 길은 예루살렘과 암몬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이며 아주 큰 길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여리고 앞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푸는 요한을 알게 된다. 이때 세례요한이 베푼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는 에스겔과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한 표현이다.
- 겔36:25-27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 슥12:10, 13:1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 그리스도께 대한 세례요한의 두 증거
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29절)
- 세례요한은 율법의 성취를 직접 선언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다. 그는 모든 선지자들의 그리스도 예언이 예수님께 성취되었음을 선언하며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한다. 율법은 속죄일과 속죄제사를 명하고, 이스라엘은 그 규례에 따라 예수님 오실 때까지 약 1500년간 희생제사를 드려왔다. 수도 없는 짐승이 죽었고 셀 수 없는 제사가 드려졌다. 세례요한은 이 모든 희생제물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구약 시내산 율법을 해석하고 그 성취를 선언한다.
- 세례요한의 해석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한다. 세례요한은 이사야 53장에서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여호와의 종이 속죄제물/속건제물로 죽으심으로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예언이 실제로 그리스도께 성취되었다고 증거한다. 그리고 요단나루터 베다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하며 백성들에게 선포한다.
- 요단나루터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거쳐, 랍바암만(암몬의 수도)과 왕의 대로로 연결되는 큰 길목에 있다. 요단 동편, 암몬과 모압 등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반드시 요단나루터 베다니를 지나 여리고를 거쳐 와디켈트를 따라 올라가는 길 밖에 없다. 즉 세례요한이 베다니에서 세례를 베푸는 소식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전해지게 되어 있었다.
②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리라”(33절,막1:8,마3:11,눅3:16)
- 세례요한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사역에 대해 명확하게 증거 했다. 본문에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푸는 소식이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에게 널리 퍼지자 예루살렘 공회에서 사람들을 보내어 세례요한에게 질문을 한다. “너는 누구냐?” “너는 왜 세례를 주느냐?” 이에 대해 세례요한은 자신이 세례를 베품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함이라 말한다.“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요1:31)
- 세례요한이 베푸는 물세례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가 오시는 증표였다. 에스겔(겔36:25-28)과 스가랴(슥12:10, 13:1)는 그리스도께서 임하시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큰 회개가 있을 것이라 예언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단순한 회개촉구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징조로서 세례를 베푼다.
- 세례요한이 베푼 “죄사함을 얻게 하는 세례”(눅3:3)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성령 세례”(요1:33)를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성령세례는 죄용서 받은 자들에게 성령으로 함께하셔서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만드심을 말한다. 세례요한이 증거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요1:33)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구원사역이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로 백성을 구원하신다.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어 백성의 죄를 용서받도록 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성령으로 함께하시므로 백성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시다.
(3) 세례요한의 위대성
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20절)
- 세례요한은 자기가 누구인지 잘 알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이유를 알았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 세례요한의 위대성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그는 구약 선지자들의 하나님 나라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로 성취됨을 직접 언급하였다. 그는 구약성경에 정통하였고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올바르게 해석하였다. 둘째,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스도로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했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요1:20)
②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27절)
- 세례요한은 구약에서 가장 큰 자다. 그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라는 명확한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다. 그는 이삭의 출생처럼 아이를 낳기 불가한 노년의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천사가 기별하여 출생하였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눅1:76-77)
- 이러한 그의 출생은 모든 이스라엘에게 전파되었고, 백성들은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며 주목하고 있었다.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눅1:65-66)
-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일도 감당 못하는 종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얼마나 높으신 하나님이신 줄 단적으로 표현함이다. 모든 사람들 보다 가장 큰 세례요한이 자신은 감히 그리스도 앞에서는 종보다도 못하다고 분명히 선언한다.
③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 세례요한은 자신의 피조물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고 고백했다. 그는 백성들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주목하면 자신은 사라져야 하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적용>내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만 드러내자.
(1) 내가 드러날수록 그리스도는 감춰진다.
- 그리스도는 나를 통치하시는 주님이시다. 내가 아닌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한다. 에덴에서 본래인간이 바로 그랬다.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말씀(로고스)와 함께 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께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다. 내가 드러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함이다.
(2)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강함이 되시므로 나는 온전케 된다(고후12장)
- 내가 감춰지고 그리스도께서 드러날수록 나는 온전해진다. 그리스도의 강함이 나를 드러냄이 아니고 나를 온전케 한다.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므로 나는 온전해진다. 이것이 복음이고 세상과 정반대의 진리다.
- 고후12:9-10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