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레위기(6) - 나답 제사장의 죽음과 다른 불 (레10:1-11)
Author
gospel323
Date
2019-06-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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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
레위기(6) - 나답 제사장의 죽음과 다른 불 (레10:1-11)
1. 의의 심판과 상급
(1) 오늘의 내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① 부활이후의 나
- 오늘의 내가 부활 이후의 나다. 부활은 사람의 정체성을 바꾸지 않는다. 부활이후 내가 전혀 다른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지 않는다. 부활은 나를 죄가 없고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 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기의 제자들을 알아보시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시듯,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나는 지금과 연결된 내 의식을 갖는다. 그러기에 천국에서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②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사람도 의롭고 완전할 수 없음
- 마지막 심판은 의의 심판이다.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는 의의 심판을 말한다. 하나님은 순백색의 하나님의 의를 요구하시는데 사람이 조금이라도 자기 색깔(자기 의)을 넣으면 더러운 것이 된다. 흰색은 물감을 혼합해서 만들 수 없다. 미술에서 물감을 섞으면 섞을수록 희게 되지 않고 더 어두워지고 더 검게 변한다.
③ 구원은 결코 나의 의와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님
-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떤 색깔일까? 나는 하나님의 의가 아닌 내 의(자기옳음, 죄)로 살아왔다. 나는 결코 하나님의 의의 순백색이 될 수 없다. 이런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구원이 내 의, 내 공로로 주어진다면 나는 불가능하다.
- 마지막 심판 때, 나는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구원을 얻는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전가해 주신 의가 죄인인 나를 의롭게 만든다. 하나님은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고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다. 이것이 복음이고 구원이다.
- 그리스도의 의는 마지막 심판대에서 전가되지 않고 오늘 내게 전가된다. 죄인인 내가 오늘 의롭다하심을 얻는다. 비록 오늘 의롭다하심을 얻은 내가 여전히 죄와 싸우고, 때때로 죄의 세력에 실패하기도 하지만 구원은 오늘 얻지 미래 심판대까지 유보되지 않는다. 구원의 완성은 마지막 심판과 부활의 날이지만, 내가 그 구원을 얻는 것은 오늘 이 자리에서다.
④ 오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죄용서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음
- 오늘 내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할 때, 나의 죄는 그리스도께 전가되고 그리스도의 의가 내게 전가되고, 하나님은 나를 죄없다 하시고(죄용서, 형벌면제) 의롭다 하시며(칭의) 구원하신다. 그리스도의 의란 그리스도와 분리된 별개의 물질이 아니다.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래서 내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을 말한다. 인격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심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지금 나와 함께하심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부활생명이다.
⑤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은 내게 그리스도와 연합된 부활생명 여부만 보심
-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지금 여기서 결정된다. 내가 오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가면 구원을 얻는다. 이것은 분명하다. 지금 내가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면 구원을 얻는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부활생명이 구원의 유일한 소망이다.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은 내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가 여부만 보신다.
- 구원은 그가 평생을 살아오며 의로워진/완전해진 정도에 따라 얻게 되지 않는다. 신자건 불신자건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더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거듭난 신자라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록 그가 불신자에 비해 대단히 경건했지만 하나님의 의의 심판대 앞에서는 안된다.
- 하나님은 내 속에 있는 부활생명/그리스도의 의만 보신다. 하나님은 내가 다른 불신자보다 죄에서 벗어나 의롭고 경건했지만 내 의를 보시고 구원하지 않으신다. 어떤 신자도, 어떤 성자도, 심지어 사도바울도 자기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수 없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의에 미치지 못한 불의한 자/죄인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신자가 아무리 성화되고 거룩해져도 자기 의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오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 얻고, 내일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도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 얻는다. 구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는다. 내 공로(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다. 그래서 복음이다.
2. 나답 제사장의 죽음과 다른 불
(1) 아론의 두 아들이 다른 불을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다가 죽었다.
① 제사장 위임 후 첫 제사에서 벌어진 일
- 아론의 장남과 차남인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으로 위임받고 첫 제사를 드릴 때 여호와의 거룩을 범함으로 죽게 된다. 그들은 성소에 여호와께서 명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와 분향 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번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분향함이다. 이러한 행위는 그들이 제사장 직무에 아직 미숙하고 서툴렀기보다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구원계시와 연결된 중요한 일임과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고 두려운 분인지 깨닫지 못했음을 말한다.
- 아론의 아들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제사장이 되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일반백성과 똑같이 속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제사장이 되었지만 아직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다. 죄인으로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감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가지고 성소로 들어갔다. 여호와께 드려야하는 거룩한 제사를 임의대로 드렸다.
② 불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와서 그들을 태워버림
- 하나님은 지성소에 거하시고 당신의 임재를 불을 감싸고 있는 구름/구름에 덮혀 있는 불로 나타내셨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가지고 성소로 들어가 분향을 할 때 지성소에서 여호와의 불이 나와 그들을 태워버린다.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침범하면 하나님은 거룩한 불로 죄인을 태워버리신다. 에덴을 지키는 그룹천사가 화염검으로 친 것으로 볼 수 있다(창3장) 고라와 함께 반역한 250명 지도자를 불태운 여호와의 불도 동일하다. 나답과 아비후는 성소에서 분향하다가 여호와의 불로 죽었고(레10장) 250명은 회막문 앞에서 분향할 때 여호와의 불로 죽었다(민16장)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12:29)
-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일주일의 제사장 위임예식이 끝난 직후에 벌어진 점이다. 성막이 완공되고 대제사장 위임예식이 끝난 후 첫 제사에서 하나님은 아론 이후 대제사장이 될 나답과 아비후를 치셨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럽히는 일은 얼마나 무서운 일이며,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감은 어떤 일인가를 명백히 하심이다.
③ 제사장은 그들의 시체를 만지지 말 것
- 하나님은 아론과 남은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애곡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만약 너희가 머리를 풀고 옷을 찢으면 너희는 죽을 것이며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임하리라 말씀하신다. 아론에게 이 사건은 아들의 죽음이 아닌 제사장의 범죄이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개인감정이 아닌 제사장으로서 여호와의 거룩을 더럽힌 엄중한 사건임을 명심하게 하심이다.
-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의 시체를 아론의 삼촌/아자비인 레위지파 미사엘과 엘사반에게 들고 진 밖으로 나가게 하셨다. 제사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심지어 자기의 부모나 형제나 자녀 그 누구의 시체도 만져서는 안된다. 시체를 만지는 자는 부정해지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로서 특별히 정결과 성결을 유지하도록 엄중히 명하심이다.
(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① 거룩하신 하나님 - 죄는 결단코 용납지 않으심
-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다. 거룩은 첫째, 모든 면에서 옳고(=의) 깨끗하며(=정결) 어떠한 불의(=죄)나 부정결(=더러움)도 없으신 완전하심(=온전하심)을 말하고, 둘째, 피조물은 절대 도달할 수 없도록 분리되어 자존하여 계심이다. 그러므로 거룩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하나님의 신적속성이다.
- 죄인은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의 거룩은 결코 죄로 침범되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오면 죄인이 죽는다. 죄인은 절대로 하나님이 백성이 될 수 없다. 죄인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견디지 못하고 불에 타버린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내 죄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게 한다. 내 죄는 그냥 나두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 심판대에서 반드시 형벌 받을 엄청난 문제다. 하나님 백성은 거룩해져야 하는데 이는 사람의 힘으로 불가하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야만 한다.
② 사랑의 하나님 - 나의 죄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심
- 다시 말하지만, 죄인이 하나님이 백성이 되려면 거룩해져야 한다. 그래서 구원은 인간의 죄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죄인이 이미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형벌면제와 앞으로 계속 죄를 지으려는 죄인의 본성문제를 하나님의 의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다룬다. 단 사람의 거룩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그림자일 뿐 결코 하나님의 신적 거룩과 동일할 수 없다.
- 구약에 하나님께서 죄인을 즉각 심판하시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결코 죄의 위험성과 그 형벌의 무서움을 모른다. 구약을 통해 죄와 형벌을 배우고 신약의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된다. 풀밭에서 포이즌 아이비를 경험 본 사람만 그것을 조심한다.
③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불타게 사랑하는 것
-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공포심을 갖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하나님을 불타게 사랑함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경건이다. 구약과 신약은 동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십자가에서 나를 구원해 주셨다. 구약은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이 없다는 이유를 말함이다. 결국 죄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데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용서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 구원받음을 감사하게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불타게 사랑하게 된다. 이 두 가지를 배워야 성경을 바르게 본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계시하신 구원의 길
① 어떻게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가?
- 하나님께서 개인이 아닌 수많은 백성/인류 앞에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심은 시내산이 유일하다.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다. 그래서 시내산 계시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백성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려는 당신의 계획과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주셨다. 그 핵심은 일 년에 단 하루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때 가져가는 희생제사 속죄제물의 피였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계시/구원의 길은 바로 성막과 율법이다. 그것은 성막의 구조와 기물들, 대제사장, 5대 제사, 7대 절기 등의 예배규범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막을 중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구체적인 행동규범 곧 율법으로 구성된다. 성막은 율법 속에 포함되어 있기에 율법이 시내산 계시를 대표하기도 한다.
② 율법은 거룩함을 요구하고,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나옴
- 하나님 나라는 거룩한 나라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백성이 되려면 죄에서 벗어나 거룩해져야 한다. 율법은 한마디로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요구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통해 각종 정결의식과 윤리적 성결법을 지키며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의를 행하도록 배운다.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되려 한다. 성막과 예배는 백성이 율법으로 거룩한 삶을 배우며 살아가다가 죄를 범하고 실패할 때 죄용서를 주고 회복하는 기능과 또한 하나님 백성으로서 구원받은 감사의 기능을 한다.
- 율법이 요구하는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순종할 때 얻게 된다. 신구약 모든 성도는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거룩하게 되어 구원 얻는다. 하나님은 구속사의 진행시키시며 율법을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주셨다. 그리스도의 율법의 실체시오 완성이시다. 구약 성도들은 율법을 지키며 율법의 완성이신 그리스도를 기다렸다. 구약성도들도 스스로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얻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었다.
- 복음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의롭다하심을 얻어 거룩한 백성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1:16-17) 죄인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얻지 못한다. 죄인은 절대로 자기 스스로 거룩해 질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때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거룩해진다. 죄에서 벗어난다. 자유를 얻는다. 해방된다. 의롭게 된다.
③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분향한 것은 바로 이 복음을 변질시킨 것
- 하나님은 성막의 모든 일들은 하나하나 세밀하게 명하셨다. 성막의 모든 규례는 궁극적으로 죄인을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만드는 구원의 길을 계시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귀결된다. 그것은 사람이 임의대로 바꿔서는 안된다.
- 나답과 아비후가 성소에서 다른 불로 분향한 것은 성막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임의로 변개시키는 것이다. 구원은 자기 힘/공로로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 구원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으로만 얻는다. 이 방법이 모두 성막규례에 포함되어 있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분향함은 구원의 계시의 변질을 가져오고 죄인이 구원 얻는 구원의 방법을 왜곡시키게 된다.
<적용>지금 내게 그리스도의 의/부활생명이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1) 칭의는 내가 죄를 버리고 의로움으로 나아가는 성향을 갖게한다.
- 내가 오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도 나는 여전히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연합은 내가 그리스도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심이다. 연합은 나와 그리스도를 뒤섞는 혼합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때까지 여전히 죄인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죄인이고,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은 죄인이다.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하심을 얻었기에 의인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이는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부활 이후의 의인이란 뜻이 아니다. 죄의 실체를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에 의를 행할 수 있는 의인으로 말이다.
(2)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함은 나의 죽음과 나의 순종을 요구한다.
- 성도가 오늘 예수를 믿어 하나님께 칭의를 얻는 순간 그리스도처럼 완전히 죄가 없는 의인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변화는 부활이후 이루어진다. 칭의는 죄인인 내게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심을 보장함이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으로 통치하심이다. 이는 나의 죽음과 순종을 요구한다. 칭의를 얻은 자는 하나님/그리스도께 순종서약한 자들이다.
(3) 부활생명을 가진 자의 특징
- 부활생명/칭의를 얻은 자는 삶의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난다. 자기중심적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뀐다. 불신자는 결코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못한다. 이러한 변화는 신자의 일생동안 하나님을 향한 방향성으로 나타난다. 나뭇가지와 잎사귀는 햇빛을 향하듯 부활생명을 가진 신자는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한다. 신자는 하나님의 선물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사모한다. 어린아이는 선물 준 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선물만 기억한다.
1. 의의 심판과 상급
(1) 오늘의 내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① 부활이후의 나
- 오늘의 내가 부활 이후의 나다. 부활은 사람의 정체성을 바꾸지 않는다. 부활이후 내가 전혀 다른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지 않는다. 부활은 나를 죄가 없고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 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기의 제자들을 알아보시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시듯,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나는 지금과 연결된 내 의식을 갖는다. 그러기에 천국에서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②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사람도 의롭고 완전할 수 없음
- 마지막 심판은 의의 심판이다.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는 의의 심판을 말한다. 하나님은 순백색의 하나님의 의를 요구하시는데 사람이 조금이라도 자기 색깔(자기 의)을 넣으면 더러운 것이 된다. 흰색은 물감을 혼합해서 만들 수 없다. 미술에서 물감을 섞으면 섞을수록 희게 되지 않고 더 어두워지고 더 검게 변한다.
③ 구원은 결코 나의 의와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님
-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떤 색깔일까? 나는 하나님의 의가 아닌 내 의(자기옳음, 죄)로 살아왔다. 나는 결코 하나님의 의의 순백색이 될 수 없다. 이런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구원이 내 의, 내 공로로 주어진다면 나는 불가능하다.
- 마지막 심판 때, 나는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구원을 얻는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전가해 주신 의가 죄인인 나를 의롭게 만든다. 하나님은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고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다. 이것이 복음이고 구원이다.
- 그리스도의 의는 마지막 심판대에서 전가되지 않고 오늘 내게 전가된다. 죄인인 내가 오늘 의롭다하심을 얻는다. 비록 오늘 의롭다하심을 얻은 내가 여전히 죄와 싸우고, 때때로 죄의 세력에 실패하기도 하지만 구원은 오늘 얻지 미래 심판대까지 유보되지 않는다. 구원의 완성은 마지막 심판과 부활의 날이지만, 내가 그 구원을 얻는 것은 오늘 이 자리에서다.
④ 오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죄용서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음
- 오늘 내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할 때, 나의 죄는 그리스도께 전가되고 그리스도의 의가 내게 전가되고, 하나님은 나를 죄없다 하시고(죄용서, 형벌면제) 의롭다 하시며(칭의) 구원하신다. 그리스도의 의란 그리스도와 분리된 별개의 물질이 아니다.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래서 내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을 말한다. 인격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심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지금 나와 함께하심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부활생명이다.
⑤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은 내게 그리스도와 연합된 부활생명 여부만 보심
-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지금 여기서 결정된다. 내가 오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가면 구원을 얻는다. 이것은 분명하다. 지금 내가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면 구원을 얻는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부활생명이 구원의 유일한 소망이다.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은 내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가 여부만 보신다.
- 구원은 그가 평생을 살아오며 의로워진/완전해진 정도에 따라 얻게 되지 않는다. 신자건 불신자건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더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거듭난 신자라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록 그가 불신자에 비해 대단히 경건했지만 하나님의 의의 심판대 앞에서는 안된다.
- 하나님은 내 속에 있는 부활생명/그리스도의 의만 보신다. 하나님은 내가 다른 불신자보다 죄에서 벗어나 의롭고 경건했지만 내 의를 보시고 구원하지 않으신다. 어떤 신자도, 어떤 성자도, 심지어 사도바울도 자기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수 없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의에 미치지 못한 불의한 자/죄인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신자가 아무리 성화되고 거룩해져도 자기 의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오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 얻고, 내일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도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 얻는다. 구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는다. 내 공로(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다. 그래서 복음이다.
2. 나답 제사장의 죽음과 다른 불
(1) 아론의 두 아들이 다른 불을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다가 죽었다.
① 제사장 위임 후 첫 제사에서 벌어진 일
- 아론의 장남과 차남인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으로 위임받고 첫 제사를 드릴 때 여호와의 거룩을 범함으로 죽게 된다. 그들은 성소에 여호와께서 명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와 분향 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번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분향함이다. 이러한 행위는 그들이 제사장 직무에 아직 미숙하고 서툴렀기보다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구원계시와 연결된 중요한 일임과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고 두려운 분인지 깨닫지 못했음을 말한다.
- 아론의 아들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제사장이 되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일반백성과 똑같이 속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제사장이 되었지만 아직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다. 죄인으로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감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가지고 성소로 들어갔다. 여호와께 드려야하는 거룩한 제사를 임의대로 드렸다.
② 불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와서 그들을 태워버림
- 하나님은 지성소에 거하시고 당신의 임재를 불을 감싸고 있는 구름/구름에 덮혀 있는 불로 나타내셨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가지고 성소로 들어가 분향을 할 때 지성소에서 여호와의 불이 나와 그들을 태워버린다.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침범하면 하나님은 거룩한 불로 죄인을 태워버리신다. 에덴을 지키는 그룹천사가 화염검으로 친 것으로 볼 수 있다(창3장) 고라와 함께 반역한 250명 지도자를 불태운 여호와의 불도 동일하다. 나답과 아비후는 성소에서 분향하다가 여호와의 불로 죽었고(레10장) 250명은 회막문 앞에서 분향할 때 여호와의 불로 죽었다(민16장)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12:29)
-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일주일의 제사장 위임예식이 끝난 직후에 벌어진 점이다. 성막이 완공되고 대제사장 위임예식이 끝난 후 첫 제사에서 하나님은 아론 이후 대제사장이 될 나답과 아비후를 치셨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럽히는 일은 얼마나 무서운 일이며,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감은 어떤 일인가를 명백히 하심이다.
③ 제사장은 그들의 시체를 만지지 말 것
- 하나님은 아론과 남은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애곡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만약 너희가 머리를 풀고 옷을 찢으면 너희는 죽을 것이며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임하리라 말씀하신다. 아론에게 이 사건은 아들의 죽음이 아닌 제사장의 범죄이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개인감정이 아닌 제사장으로서 여호와의 거룩을 더럽힌 엄중한 사건임을 명심하게 하심이다.
-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의 시체를 아론의 삼촌/아자비인 레위지파 미사엘과 엘사반에게 들고 진 밖으로 나가게 하셨다. 제사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심지어 자기의 부모나 형제나 자녀 그 누구의 시체도 만져서는 안된다. 시체를 만지는 자는 부정해지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로서 특별히 정결과 성결을 유지하도록 엄중히 명하심이다.
(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① 거룩하신 하나님 - 죄는 결단코 용납지 않으심
-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다. 거룩은 첫째, 모든 면에서 옳고(=의) 깨끗하며(=정결) 어떠한 불의(=죄)나 부정결(=더러움)도 없으신 완전하심(=온전하심)을 말하고, 둘째, 피조물은 절대 도달할 수 없도록 분리되어 자존하여 계심이다. 그러므로 거룩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하나님의 신적속성이다.
- 죄인은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의 거룩은 결코 죄로 침범되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오면 죄인이 죽는다. 죄인은 절대로 하나님이 백성이 될 수 없다. 죄인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견디지 못하고 불에 타버린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내 죄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게 한다. 내 죄는 그냥 나두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 심판대에서 반드시 형벌 받을 엄청난 문제다. 하나님 백성은 거룩해져야 하는데 이는 사람의 힘으로 불가하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야만 한다.
② 사랑의 하나님 - 나의 죄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심
- 다시 말하지만, 죄인이 하나님이 백성이 되려면 거룩해져야 한다. 그래서 구원은 인간의 죄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죄인이 이미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형벌면제와 앞으로 계속 죄를 지으려는 죄인의 본성문제를 하나님의 의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다룬다. 단 사람의 거룩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그림자일 뿐 결코 하나님의 신적 거룩과 동일할 수 없다.
- 구약에 하나님께서 죄인을 즉각 심판하시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결코 죄의 위험성과 그 형벌의 무서움을 모른다. 구약을 통해 죄와 형벌을 배우고 신약의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된다. 풀밭에서 포이즌 아이비를 경험 본 사람만 그것을 조심한다.
③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불타게 사랑하는 것
-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공포심을 갖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하나님을 불타게 사랑함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경건이다. 구약과 신약은 동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십자가에서 나를 구원해 주셨다. 구약은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이 없다는 이유를 말함이다. 결국 죄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데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용서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 구원받음을 감사하게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불타게 사랑하게 된다. 이 두 가지를 배워야 성경을 바르게 본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계시하신 구원의 길
① 어떻게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가?
- 하나님께서 개인이 아닌 수많은 백성/인류 앞에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심은 시내산이 유일하다.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다. 그래서 시내산 계시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백성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려는 당신의 계획과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주셨다. 그 핵심은 일 년에 단 하루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때 가져가는 희생제사 속죄제물의 피였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계시/구원의 길은 바로 성막과 율법이다. 그것은 성막의 구조와 기물들, 대제사장, 5대 제사, 7대 절기 등의 예배규범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막을 중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구체적인 행동규범 곧 율법으로 구성된다. 성막은 율법 속에 포함되어 있기에 율법이 시내산 계시를 대표하기도 한다.
② 율법은 거룩함을 요구하고,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나옴
- 하나님 나라는 거룩한 나라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백성이 되려면 죄에서 벗어나 거룩해져야 한다. 율법은 한마디로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요구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통해 각종 정결의식과 윤리적 성결법을 지키며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의를 행하도록 배운다.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되려 한다. 성막과 예배는 백성이 율법으로 거룩한 삶을 배우며 살아가다가 죄를 범하고 실패할 때 죄용서를 주고 회복하는 기능과 또한 하나님 백성으로서 구원받은 감사의 기능을 한다.
- 율법이 요구하는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순종할 때 얻게 된다. 신구약 모든 성도는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거룩하게 되어 구원 얻는다. 하나님은 구속사의 진행시키시며 율법을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주셨다. 그리스도의 율법의 실체시오 완성이시다. 구약 성도들은 율법을 지키며 율법의 완성이신 그리스도를 기다렸다. 구약성도들도 스스로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얻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었다.
- 복음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의롭다하심을 얻어 거룩한 백성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1:16-17) 죄인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얻지 못한다. 죄인은 절대로 자기 스스로 거룩해 질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때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거룩해진다. 죄에서 벗어난다. 자유를 얻는다. 해방된다. 의롭게 된다.
③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분향한 것은 바로 이 복음을 변질시킨 것
- 하나님은 성막의 모든 일들은 하나하나 세밀하게 명하셨다. 성막의 모든 규례는 궁극적으로 죄인을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만드는 구원의 길을 계시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귀결된다. 그것은 사람이 임의대로 바꿔서는 안된다.
- 나답과 아비후가 성소에서 다른 불로 분향한 것은 성막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임의로 변개시키는 것이다. 구원은 자기 힘/공로로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 구원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으로만 얻는다. 이 방법이 모두 성막규례에 포함되어 있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분향함은 구원의 계시의 변질을 가져오고 죄인이 구원 얻는 구원의 방법을 왜곡시키게 된다.
<적용>지금 내게 그리스도의 의/부활생명이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1) 칭의는 내가 죄를 버리고 의로움으로 나아가는 성향을 갖게한다.
- 내가 오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도 나는 여전히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연합은 내가 그리스도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심이다. 연합은 나와 그리스도를 뒤섞는 혼합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때까지 여전히 죄인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죄인이고,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은 죄인이다.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하심을 얻었기에 의인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이는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부활 이후의 의인이란 뜻이 아니다. 죄의 실체를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에 의를 행할 수 있는 의인으로 말이다.
(2)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함은 나의 죽음과 나의 순종을 요구한다.
- 성도가 오늘 예수를 믿어 하나님께 칭의를 얻는 순간 그리스도처럼 완전히 죄가 없는 의인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변화는 부활이후 이루어진다. 칭의는 죄인인 내게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심을 보장함이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으로 통치하심이다. 이는 나의 죽음과 순종을 요구한다. 칭의를 얻은 자는 하나님/그리스도께 순종서약한 자들이다.
(3) 부활생명을 가진 자의 특징
- 부활생명/칭의를 얻은 자는 삶의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난다. 자기중심적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뀐다. 불신자는 결코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못한다. 이러한 변화는 신자의 일생동안 하나님을 향한 방향성으로 나타난다. 나뭇가지와 잎사귀는 햇빛을 향하듯 부활생명을 가진 신자는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한다. 신자는 하나님의 선물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사모한다. 어린아이는 선물 준 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선물만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