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히브리서(24) - 우리도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히13:1-17)
Author
gospel323
Date
2019-01-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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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24) - 우리도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히13:1-17)
1.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① 예수님은 주님
- 헐몬산 아래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중 하나로 부르고 있다고 대답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접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한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며 그 대답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말씀하시고 그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신다.
- 마16:17-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 비록 제자들이 예수를 주님으로 처음 호칭할 때 완전히 하나님으로 깨닫고 불렀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성령강림을 체험한 그들이 예수를 주님으로 호칭할 때는 분명히 예수님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내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심을 고백함이다. 나를 창조하신 이가 나의 주인 되심은 당연하고 나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라야 함이 분명하다.
② 예수님은 그리스도
- 메시야(히) 그리스도(헬) 명칭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로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유대교에서 메시야/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든 인물/ 사람에 사용되는 호칭이다. 그러므로 구약 이스라엘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사, 선지자, 왕, 제사장 등의 인물들이 모두 “기름 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가 된다. 유대교는 지금도 자기 민족을 위한 영웅과 인물로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
- 기독교에서 메시야 그리스도는 유대교와 전혀 다르다. 그리스도는 혈통적 이스라엘 나라를 전쟁과 포로에서 구해줄 민족적 영웅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피를 흘리시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예수님 이외에 있을 수 없다. 내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나를 위해 피흘리신 예수님 만이 나의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가 되신다.
③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데 본문과 연관되어 한 가지만 말한다면, 구약적 배경에서 이스라엘의 왕/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이란 의미이다. 하나님은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성전은 다윗의 후손이 지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윗 왕국을 영원한 나라로 세우시고 다윗의 후손 이스라엘 왕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칭하신다고 약속하신다(삼하7장)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바로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란 의미이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아들은 성삼위 하나님의 본체라는 신학적 의미와 함께, 바울은 갈라디아서 로마서에서 종/노예와 비교하며, 아들은 주인의 모든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라는 의미로도 사용한다.
(2)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24절)
①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일까?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갈보리로 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이다. 이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주인됨을 거부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삶이다. 이것으로만 죄를 이기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삶이다.
2. 우리도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8절)
- 히브리서도 마지막 결론을 동일하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계시는 그리스도 복음안에 모두 계시되고 완전히 나타났다. 구약에서처럼 그림자로, 미래 예언으로 희미하게 남은 것이 아니라 전부 드러났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불변하며 영원토록 변하지 않고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라.
(2) 우리도 그 능욕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께로 나아가자(13절)
- 그 구원의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 백성되는 진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지신 그 능욕의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 갈보리로 가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와 부활의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지고, 구약 수 천년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진행시켜 오신 온 인류 구원의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3) “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9절)
- 오늘날 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지 않고도 신앙생활이 가능하다.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고 아무도 뭐라고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강단에서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무엇을 믿는지, 무엇이 구원의 길인지 모르고 그냥 간다. 그냥 열심히 믿고 정성을 다하면 되겠지 라는 막연한 종교심으로 교회 다닌다. 자기를 즐겁게 할 다른 교훈을 찾아다니며 귀를 기울인다. 자기확신 자기만족 자기구원 자기종교 신앙생활이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 아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이다(마7장)
<적용>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1)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자
①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5절)
-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란 “그 이름에 감사하는 말”이란 의미이다. “the fruit of lips that give thanks to His name.”(KJV, NASB)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실에 대해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의 입술을 통한 감사의 고백이다.
- 말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서 문장으로 표현함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말로서 표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기억하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감사의 고백을 짐승을 바치던 구약의 희생제사처럼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미의 제사라고 말한다.
- 호14: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 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 모든 것이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해야 한다. 구원에 대한 감사가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이다. 죄인인 나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 고통을 당하시고 부활하셨다. 이것보다 더 고맙고 감사한 일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
- 십자가에 대한 감격은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은혜는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 속에서 구원의 진리를 배우라 하시고 그 진리를 가지고 기도하라 말씀하신다. 구원계시를 배울 때 성령께서 진리와 함께 역사하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감사와 감격이 넘쳐나게 은혜를 베푸신다. 진리 속에서 내가 죄인임을 알면 알수록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가 넘쳐나게 된다. 성령은 성경과 함께 역사하신다.
(2)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구체적 행위의 제사를 드리자.
①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16절)
-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이웃을 사랑할 힘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힘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나도 필요하지만 나보다 더 필요한 이웃이 있다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갖자.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도울 수 있는 것을 나눠주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만 맘몬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②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아보자(1-3절)
- 1세기에 나그네는 잘 곳과 먹을 것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먼 길을 걸어왔다. 귀족은 말이나 수레를 타고 이동하며 짐은 노예가 운반해 주겠지만 대부분 가난한 나그네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하기에 여행이 무척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이런 나그네들에게는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들을 생각하라. 오늘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고난을 당하는 이웃이 있다. 그들을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을 갖자. 작은 도움의 손길도 생각해보자. 넉넉하지 않아 직접적인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따듯한 위로와 관심이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3)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5-6절)
① 음행을 피하고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취하라(4절)
- 히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② 맘몬(재물)을 집착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현대사회에서 맘몬(돈)은 신(우상)이다. 돈이 사람의 생각과 삶을 지배한다. 현대인들은 돈이 가져다주는 힘을 좋아하고 추구한다. 또 돈이 없을 때 오는 결과를 두려워한다. 사탄은 맘몬을 내세워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는다. 현대인들에게는 소유가 존재의 목적이다.
- 그리스도인들도 돈이 더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기 쉽다. 죄의 본질은 소유에 대한 욕심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사탄은 물질의 욕심을 끊임없이 유혹하며 성도를 넘어지게 만든다.
- 예수님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이까 묻는 부자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그 부자에게는 가장 큰 걸림돌이 재물임을 지적하심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다(마19장)
-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통해 돈을 쌓아놓고 안심하지만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데려가시면 그 쌓아둔 것이 아무 것도 아님을 말씀하신다. 재물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말씀하심이다. 재물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김이 신앙에 큰 유익이 된다.(눅12장)
③ “내가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 맘몬을 두려워 말고 믿음으로 고백하자.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6절)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자.
- 하나님은 에서를 피해 혈혈단신 하란으로 도망가던 야곱에게 후손과 가나안 땅에 대한 분명한 언약을 확인시켜주신다. 그리고 야곱에게 선언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야곱은 하란에서 20년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약속을 체험했다.
- 야곱이 마하나님에서 만난 하나님의 군대/천사들은 하란에서 야곱을 지켜왔던 하나님의 천사들이었을지 모른다.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그동안 천사를 통해 야곱을 직접 보호하셨음을 보여주셨다. 이것이 아니라면 마하나님의 천사들은 왜 기록되었을까? 기록되어질 아무런 이유가 없어 보인다.
- 이스라엘이 광야 40년간 이스라엘을 먹이고 입히셨다.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죽은 것은 굶어죽은 것이 아니라 불신앙으로 죽었다. 하나님은 척박한 광야에서 40년간 2백만명을 먹이고 입히셨다. 맘몬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그 누구도 맘몬/재물이 없어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다. 맘몬의 위협에 굴복하지 말자. 돈이 없으면 조금 불편할 뿐이다. 아무 문제될 것 없다. 하나님이 지키신다. 믿음으로 나아가자.
1.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① 예수님은 주님
- 헐몬산 아래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중 하나로 부르고 있다고 대답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접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한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며 그 대답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말씀하시고 그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신다.
- 마16:17-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 비록 제자들이 예수를 주님으로 처음 호칭할 때 완전히 하나님으로 깨닫고 불렀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성령강림을 체험한 그들이 예수를 주님으로 호칭할 때는 분명히 예수님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내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심을 고백함이다. 나를 창조하신 이가 나의 주인 되심은 당연하고 나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라야 함이 분명하다.
② 예수님은 그리스도
- 메시야(히) 그리스도(헬) 명칭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로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유대교에서 메시야/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든 인물/ 사람에 사용되는 호칭이다. 그러므로 구약 이스라엘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사, 선지자, 왕, 제사장 등의 인물들이 모두 “기름 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가 된다. 유대교는 지금도 자기 민족을 위한 영웅과 인물로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
- 기독교에서 메시야 그리스도는 유대교와 전혀 다르다. 그리스도는 혈통적 이스라엘 나라를 전쟁과 포로에서 구해줄 민족적 영웅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피를 흘리시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예수님 이외에 있을 수 없다. 내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나를 위해 피흘리신 예수님 만이 나의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가 되신다.
③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 하나님의 아들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데 본문과 연관되어 한 가지만 말한다면, 구약적 배경에서 이스라엘의 왕/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이란 의미이다. 하나님은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성전은 다윗의 후손이 지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윗 왕국을 영원한 나라로 세우시고 다윗의 후손 이스라엘 왕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칭하신다고 약속하신다(삼하7장)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바로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란 의미이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아들은 성삼위 하나님의 본체라는 신학적 의미와 함께, 바울은 갈라디아서 로마서에서 종/노예와 비교하며, 아들은 주인의 모든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라는 의미로도 사용한다.
(2)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24절)
①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일까?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갈보리로 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이다. 이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주인됨을 거부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삶이다. 이것으로만 죄를 이기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삶이다.
2. 우리도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8절)
- 히브리서도 마지막 결론을 동일하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계시는 그리스도 복음안에 모두 계시되고 완전히 나타났다. 구약에서처럼 그림자로, 미래 예언으로 희미하게 남은 것이 아니라 전부 드러났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불변하며 영원토록 변하지 않고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라.
(2) 우리도 그 능욕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께로 나아가자(13절)
- 그 구원의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 백성되는 진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지신 그 능욕의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 갈보리로 가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와 부활의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지고, 구약 수 천년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진행시켜 오신 온 인류 구원의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3) “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9절)
- 오늘날 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지 않고도 신앙생활이 가능하다.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고 아무도 뭐라고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강단에서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무엇을 믿는지, 무엇이 구원의 길인지 모르고 그냥 간다. 그냥 열심히 믿고 정성을 다하면 되겠지 라는 막연한 종교심으로 교회 다닌다. 자기를 즐겁게 할 다른 교훈을 찾아다니며 귀를 기울인다. 자기확신 자기만족 자기구원 자기종교 신앙생활이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 아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이다(마7장)
<적용>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1)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자
①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5절)
-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란 “그 이름에 감사하는 말”이란 의미이다. “the fruit of lips that give thanks to His name.”(KJV, NASB)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실에 대해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의 입술을 통한 감사의 고백이다.
- 말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서 문장으로 표현함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말로서 표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기억하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감사의 고백을 짐승을 바치던 구약의 희생제사처럼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미의 제사라고 말한다.
- 호14: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 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 모든 것이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해야 한다. 구원에 대한 감사가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이다. 죄인인 나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 고통을 당하시고 부활하셨다. 이것보다 더 고맙고 감사한 일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
- 십자가에 대한 감격은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은혜는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 속에서 구원의 진리를 배우라 하시고 그 진리를 가지고 기도하라 말씀하신다. 구원계시를 배울 때 성령께서 진리와 함께 역사하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감사와 감격이 넘쳐나게 은혜를 베푸신다. 진리 속에서 내가 죄인임을 알면 알수록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가 넘쳐나게 된다. 성령은 성경과 함께 역사하신다.
(2)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구체적 행위의 제사를 드리자.
①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16절)
-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이웃을 사랑할 힘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힘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나도 필요하지만 나보다 더 필요한 이웃이 있다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갖자.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도울 수 있는 것을 나눠주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만 맘몬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②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아보자(1-3절)
- 1세기에 나그네는 잘 곳과 먹을 것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먼 길을 걸어왔다. 귀족은 말이나 수레를 타고 이동하며 짐은 노예가 운반해 주겠지만 대부분 가난한 나그네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하기에 여행이 무척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이런 나그네들에게는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들을 생각하라. 오늘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고난을 당하는 이웃이 있다. 그들을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을 갖자. 작은 도움의 손길도 생각해보자. 넉넉하지 않아 직접적인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따듯한 위로와 관심이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3)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5-6절)
① 음행을 피하고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취하라(4절)
- 히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② 맘몬(재물)을 집착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현대사회에서 맘몬(돈)은 신(우상)이다. 돈이 사람의 생각과 삶을 지배한다. 현대인들은 돈이 가져다주는 힘을 좋아하고 추구한다. 또 돈이 없을 때 오는 결과를 두려워한다. 사탄은 맘몬을 내세워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는다. 현대인들에게는 소유가 존재의 목적이다.
- 그리스도인들도 돈이 더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기 쉽다. 죄의 본질은 소유에 대한 욕심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사탄은 물질의 욕심을 끊임없이 유혹하며 성도를 넘어지게 만든다.
- 예수님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이까 묻는 부자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그 부자에게는 가장 큰 걸림돌이 재물임을 지적하심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다(마19장)
-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통해 돈을 쌓아놓고 안심하지만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데려가시면 그 쌓아둔 것이 아무 것도 아님을 말씀하신다. 재물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말씀하심이다. 재물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김이 신앙에 큰 유익이 된다.(눅12장)
③ “내가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 맘몬을 두려워 말고 믿음으로 고백하자.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6절)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자.
- 하나님은 에서를 피해 혈혈단신 하란으로 도망가던 야곱에게 후손과 가나안 땅에 대한 분명한 언약을 확인시켜주신다. 그리고 야곱에게 선언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야곱은 하란에서 20년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약속을 체험했다.
- 야곱이 마하나님에서 만난 하나님의 군대/천사들은 하란에서 야곱을 지켜왔던 하나님의 천사들이었을지 모른다.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그동안 천사를 통해 야곱을 직접 보호하셨음을 보여주셨다. 이것이 아니라면 마하나님의 천사들은 왜 기록되었을까? 기록되어질 아무런 이유가 없어 보인다.
- 이스라엘이 광야 40년간 이스라엘을 먹이고 입히셨다.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죽은 것은 굶어죽은 것이 아니라 불신앙으로 죽었다. 하나님은 척박한 광야에서 40년간 2백만명을 먹이고 입히셨다. 맘몬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그 누구도 맘몬/재물이 없어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다. 맘몬의 위협에 굴복하지 말자. 돈이 없으면 조금 불편할 뿐이다. 아무 문제될 것 없다. 하나님이 지키신다. 믿음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