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히브리서(15) - 에녹, 심판과 상급을 기대하는 삶 (히11:1-6)
Author
gospel323
Date
2018-11-04 18:47
Views
2335
히브리서(15) - 에녹, 심판과 상급을 기대하는 삶 (히11:1-6)
1. 믿음으로 사는 삶
(1) 믿음은 사랑과 소망을 갖게 한다.
①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받아들이고 참여함
- 복음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셨던 구원계시가 실제로 성취된 사건이다. 범죄한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여자의 후손/ 속죄제사”(창3:15) 예언이 완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최종 성취된 사건이다. 이 복음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면 사람들은 그 복음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고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시킨다. 이것이 믿음이다.
② 믿음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품도록 만듬
-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으면 사람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다. 죄인된 자기를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격한다.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대한 무한한 헌신과 사랑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음을 사랑하는 것이다.
-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으면 죄인은 하나님을 사랑(경외)하며 다른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 지독한 자기사랑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삶으로 바뀐 것이다. 율법의 요구인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다.
- 죄를 이기고 의를 이루는 이러한 변화는 자기 힘으로 율법의 행위를 지켜 이룰 수 없다.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만 가능하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믿음으로 구원 얻은 사람이 얻게 된 성품의 변화이다(갈5:22) 이런 면에서 믿음은 사랑의 근거이다.
③ 믿음은 주의 재림을 소망하며 오늘의 어려움을 인내하며 견뎌내게 함
- 믿음은 소망의 근거이다. 믿음은 주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을 소망하게 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에게 도래했으나 그 완성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날을 소망하는 사람은 지나간 과거에 잡혀 후회하지 않으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 하루를 하나님 의지하며 살아간다.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 바라보며 인내하고 견뎌낸다.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2) 아벨 - 예배 중심의 삶.
① 속죄제사 방식으로 표현된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예언(창3:15)
- 여자의 후손 예언은 아담에게 잊을 수 없는 메시지가 되었다. “여자의 후손이 와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고. 사람들의 죄를 씻어내어 이 세상을 다시 에덴/하나님 나라로 회복 완성시켜줄 것이다.” 하나님께 직접 들은 이 예언은 아담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아담은 계속 이것을 기억하며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살았다. 그것이 속죄제사이다.
- 속죄제사는 여자의 후손 예언을 축약한 것으로 그 기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이 분명하다. 육식이 허용되지 않는 시기에 살아있는 짐승을 죽여 생명을 빼앗고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일이고 뭔가 큰 이유가 있지 않고는 저절로 생겨날 수 없다. 이후 노아의 제사나 아브라함의 제사도 모두 짐승의 희생제사임을 볼 때 속죄제사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명하신 것임이 분명하다. 사람들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속죄제사는 여자의 후손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에덴)으로 구원하는 방법을 말한다.
② 아벨은 속죄제사(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양을 치기 시작함
- 아벨은 아담에게 전해들은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양의 첫 새끼를 속죄제사로 드린 것이 그 증거이다(히11:4) 아벨이 양을 기르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 목축은 가인의 후손 라멕의 세 아들 중 야발이 그 조상이다(창4:20) 아벨은 가인의 동생으로 야발보다 7대나 앞선 사람이다. 성경이 아벨을 목축의 시조로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벨은 목축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양을 쳤던 것 같다.
- 아벨은 예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갔다.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제사를 믿고 기다리며 감사하는 예배였다. 아벨은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믿고 기다린 사람의 첫 조상이며, 죄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믿음 때문에 죽임당한 첫 순교자가 된다. 아벨과 셋의 후손, 믿음의 사람들도 모두 속죄제사를 중심으로 살아간다.
2. 에녹, 심판과 상급을 기대하는 삶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5절)
① 죄악에 빠진 사람을 보시고 하나님이 한탄하심
- 에녹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의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결혼하는 네피림 시대에 살았다. 셋의 후손들은 가인의 후손들을 죄의 문화를 좋아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림이다. 사람들은 죄악으로 가득차고 하나님은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셨다. 이때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로 불리웠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을까?
② 내 뜻을 하나님께 복속시키고 그 뒤를 따라감
- 하나님과 동행함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4) 다른 이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각기 자기 원하는 길을 걸어갔지만 에녹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갔다. 그는 늘 하나님께 묻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갔다.
- 동행하였다는 히브리 원어 의미는 내 뜻을 하나님께 복속시키고 그 뒤를 따라감이다. 상호 대등한 위치에서 관계가 아닌 절대순종하는 피조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피조물의 자기주장이나 자기주인됨이 있을 수 없다.
③ 아벨의 죽음과 에녹의 승천
- 하나님과 동행함은 자기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 뜻에 순종함을 말한다. 유일하게 에녹의 삶만 그렇다고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동행하는 삶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에녹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자였다. 순종의 제사를 드리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델이었다.
- 믿음의 후손들 가운데 아벨의 죽음과 에녹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 몸의 부활을 분명히 예시한다. 우리는 지금 죽어 땅에 묻히지만 성도의 죽음은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일으켜 부활의 몸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이다. 에녹의 승천은 우리에게 부활 소망을 확신시켜 준다.
(2)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갔다.
① 므두셀라의 출생
- 창5:21-23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 에녹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아니다. 만약 동행했다면 그는 원죄 없이 태어난 사람일테니 전혀 불가하다. 성경은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3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다. 므두셀라를 낳을 쯤 에녹의 신앙에 어떤 큰 변화가 생긴 것 같다.
- 혹자는 그때 에녹이 홍수심판을 계시 받았을 것으로 추론하고 그 근거를 “창을 던지는 자”, “그가 죽으면 심판을 보낸다”는 므두셀라 이름의 히브리 원어 뜻에서 찾는다. 또한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노아홍수가 난 객관적 사실이 이를 확신시켜준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므두셀라 히브리 원어는 “셀라의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석을 하고, 어떤 학자는 셈족어로 “라(Lach) 신의 사람”이라고 해석하므로 그 편차가 너무 크다. 므두셀라 이름의 뜻은 아직 정설로 확립되지 못했다.
②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분명히 믿었음
-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에녹이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염두에 둔 종말신앙을 가졌음이다. 이는 신약성경 유다서를 근거로 들 수 있다. 에녹은 가인의 문화가 크게 번성하는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을 분명히 믿었다. 종말신앙이 그로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게 했다.
- 유1:14-15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③ 성도에게 마지막 심판날은 하나님께 상을 얻는 영광의 날
-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하셨다. 주인은 먼 곳에 가며 종들을 불러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긴다. 착한 종들은 그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하여 이익을 남긴다. 주인은 돌아와 그들을 칭찬하고 상을 준다. 불의한 종들은 주인이 자신에게 주고 간 달란트를 묻어두었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얼굴을 다시 볼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주인은 돌아와서 그들을 심판했다.
-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곧 주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기 쉽다. 생각 안하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이 있고,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도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생각해보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잊고 사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다.
(3) 하나님 뵈올 것을 소망하며,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삶
① 3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감
- 아벨은 하나님께 올바른 (주일)예배를 드렸고 에녹은 날마다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간다. 그와 동명이인 가인의 아들 에녹은 성의 이름으로 불리우며 유명해졌지만, 하나님의 사람 에녹은 자기 이름을 드러냄도 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평범하게 살아갔다. 그는 어떻게 3백년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② 에녹은 3백년을 견뎌낸 삶이었음
- 집을 지을 때 목재의 가치는 무게를 견뎌내는 힘에 달려있다. 옛날 배를 만들 때 돛대는 아무 나무로 만들지 않는다. 세찬 비바람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느냐가 그 기준이었다. 하늘 소망을 가진 성도는 그날까지 견뎌내는 것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긴다는 표현보다 버티고 견뎌낸다는 말이 더 실감적으로 다가온다. 에녹도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갔다. 3년도 힘든데 에녹은 어떻게 3백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③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오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루하루를 견뎌냄
- 에녹의 삶은 구원의 완성을 바라며 주의 재림과 몸의 부활을 소망하고 기대하지만 늘 하루하루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감이다. 에녹이 날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배워나가고 있는 오늘 우리의 삶과 동일하다.
- 지금 우리는 창세기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서를 설교하며 믿음으로 오늘을 견뎌낸 구약의 인물들을 만나고 있다. 여자의 후손 약속을 분명히 믿고 붙잡았던 아벨, 그는 속죄제사/예배 중심으로 살았다. 에녹은 심판과 상급을 믿고 바라며 3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
<적용>에녹처럼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하자.
(1)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분명히 소망하자.
(2) 성경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발견하자.
①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계시이심
-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계시의 말씀이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암송하고 배워서 안다. 진리의 성령님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바르게 깨닫게 해주시지 성경에 없는 하나님을 가르쳐주시지 않는다.
② 내 문제는 그대로 나두고 성경 속으로...
-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자기가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보려 읽는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내가 힘들어하는 경제문제, 건강문제, 자녀문제, 미래문제를 점쟁이처럼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읽으면 성경에서 찾기 쉽지 않으니 성경에서 그런 것을 꼭 집어 말해주는 교회나 사람이 인기가 있다. 직접 직통계시로 말해주는 기독교 점쟁이가 최고인기이다.
- 성경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온갖 문제를 일일이 해결해주지 않고 하나의 마스터 키를 제시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자신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주는 진정한 해답이다. 이 안에서 모든 것이 풀리고 인생이 해결된다. 다른 해결책은 임시방편이며 그때뿐이다. 문제는 계속 오며 평생을 헤메이게 된다. 기독교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종이 된다.
③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되면 내 문제가 해결됨
- 문제로 힘들어할 때, 문제를 그대로 두고 성경 자체를 배우자.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 복음 안에서 나 자신을 정립하자. 이것만이 진정한 해답이다. 성경은 우리를 위로하고 치료하는 책 정도가 아니라 객관적인 하나님의 자기계시이다. 그래서 내 목적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발견하려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구원의 계획을 발견하면 비로소 나를 알게 된다. 나의 지나온 삶의 모든 것들이 이해되고 감사되고... 이때 비로소 감사가 나온다. 내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에서 그런 구절들만 찾아지게 된다. 숲은 보지 못하고, 맘에 드는 나뭇가지 하나 발견하면 거기 머물러 앉아 위로를 받는다. 잠시 지나면 또 방황하게 되고 그때는 또 다른 나뭇가지를 찾아 정처없이 헤메이게 된다.
1. 믿음으로 사는 삶
(1) 믿음은 사랑과 소망을 갖게 한다.
①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받아들이고 참여함
- 복음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셨던 구원계시가 실제로 성취된 사건이다. 범죄한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여자의 후손/ 속죄제사”(창3:15) 예언이 완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최종 성취된 사건이다. 이 복음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면 사람들은 그 복음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고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시킨다. 이것이 믿음이다.
② 믿음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품도록 만듬
-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으면 사람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다. 죄인된 자기를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격한다.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대한 무한한 헌신과 사랑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음을 사랑하는 것이다.
-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으면 죄인은 하나님을 사랑(경외)하며 다른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 지독한 자기사랑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삶으로 바뀐 것이다. 율법의 요구인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다.
- 죄를 이기고 의를 이루는 이러한 변화는 자기 힘으로 율법의 행위를 지켜 이룰 수 없다.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만 가능하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믿음으로 구원 얻은 사람이 얻게 된 성품의 변화이다(갈5:22) 이런 면에서 믿음은 사랑의 근거이다.
③ 믿음은 주의 재림을 소망하며 오늘의 어려움을 인내하며 견뎌내게 함
- 믿음은 소망의 근거이다. 믿음은 주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을 소망하게 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에게 도래했으나 그 완성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날을 소망하는 사람은 지나간 과거에 잡혀 후회하지 않으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 하루를 하나님 의지하며 살아간다.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 바라보며 인내하고 견뎌낸다.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2) 아벨 - 예배 중심의 삶.
① 속죄제사 방식으로 표현된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예언(창3:15)
- 여자의 후손 예언은 아담에게 잊을 수 없는 메시지가 되었다. “여자의 후손이 와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고. 사람들의 죄를 씻어내어 이 세상을 다시 에덴/하나님 나라로 회복 완성시켜줄 것이다.” 하나님께 직접 들은 이 예언은 아담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아담은 계속 이것을 기억하며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살았다. 그것이 속죄제사이다.
- 속죄제사는 여자의 후손 예언을 축약한 것으로 그 기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이 분명하다. 육식이 허용되지 않는 시기에 살아있는 짐승을 죽여 생명을 빼앗고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일이고 뭔가 큰 이유가 있지 않고는 저절로 생겨날 수 없다. 이후 노아의 제사나 아브라함의 제사도 모두 짐승의 희생제사임을 볼 때 속죄제사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명하신 것임이 분명하다. 사람들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속죄제사는 여자의 후손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에덴)으로 구원하는 방법을 말한다.
② 아벨은 속죄제사(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양을 치기 시작함
- 아벨은 아담에게 전해들은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양의 첫 새끼를 속죄제사로 드린 것이 그 증거이다(히11:4) 아벨이 양을 기르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 목축은 가인의 후손 라멕의 세 아들 중 야발이 그 조상이다(창4:20) 아벨은 가인의 동생으로 야발보다 7대나 앞선 사람이다. 성경이 아벨을 목축의 시조로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벨은 목축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양을 쳤던 것 같다.
- 아벨은 예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갔다.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제사를 믿고 기다리며 감사하는 예배였다. 아벨은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믿고 기다린 사람의 첫 조상이며, 죄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믿음 때문에 죽임당한 첫 순교자가 된다. 아벨과 셋의 후손, 믿음의 사람들도 모두 속죄제사를 중심으로 살아간다.
2. 에녹, 심판과 상급을 기대하는 삶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5절)
① 죄악에 빠진 사람을 보시고 하나님이 한탄하심
- 에녹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의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결혼하는 네피림 시대에 살았다. 셋의 후손들은 가인의 후손들을 죄의 문화를 좋아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림이다. 사람들은 죄악으로 가득차고 하나님은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셨다. 이때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로 불리웠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을까?
② 내 뜻을 하나님께 복속시키고 그 뒤를 따라감
- 하나님과 동행함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4) 다른 이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각기 자기 원하는 길을 걸어갔지만 에녹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갔다. 그는 늘 하나님께 묻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갔다.
- 동행하였다는 히브리 원어 의미는 내 뜻을 하나님께 복속시키고 그 뒤를 따라감이다. 상호 대등한 위치에서 관계가 아닌 절대순종하는 피조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피조물의 자기주장이나 자기주인됨이 있을 수 없다.
③ 아벨의 죽음과 에녹의 승천
- 하나님과 동행함은 자기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 뜻에 순종함을 말한다. 유일하게 에녹의 삶만 그렇다고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동행하는 삶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에녹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자였다. 순종의 제사를 드리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델이었다.
- 믿음의 후손들 가운데 아벨의 죽음과 에녹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 몸의 부활을 분명히 예시한다. 우리는 지금 죽어 땅에 묻히지만 성도의 죽음은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일으켜 부활의 몸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이다. 에녹의 승천은 우리에게 부활 소망을 확신시켜 준다.
(2)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갔다.
① 므두셀라의 출생
- 창5:21-23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 에녹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아니다. 만약 동행했다면 그는 원죄 없이 태어난 사람일테니 전혀 불가하다. 성경은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3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다. 므두셀라를 낳을 쯤 에녹의 신앙에 어떤 큰 변화가 생긴 것 같다.
- 혹자는 그때 에녹이 홍수심판을 계시 받았을 것으로 추론하고 그 근거를 “창을 던지는 자”, “그가 죽으면 심판을 보낸다”는 므두셀라 이름의 히브리 원어 뜻에서 찾는다. 또한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노아홍수가 난 객관적 사실이 이를 확신시켜준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므두셀라 히브리 원어는 “셀라의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석을 하고, 어떤 학자는 셈족어로 “라(Lach) 신의 사람”이라고 해석하므로 그 편차가 너무 크다. 므두셀라 이름의 뜻은 아직 정설로 확립되지 못했다.
②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분명히 믿었음
-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에녹이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염두에 둔 종말신앙을 가졌음이다. 이는 신약성경 유다서를 근거로 들 수 있다. 에녹은 가인의 문화가 크게 번성하는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을 분명히 믿었다. 종말신앙이 그로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게 했다.
- 유1:14-15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③ 성도에게 마지막 심판날은 하나님께 상을 얻는 영광의 날
-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하셨다. 주인은 먼 곳에 가며 종들을 불러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긴다. 착한 종들은 그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하여 이익을 남긴다. 주인은 돌아와 그들을 칭찬하고 상을 준다. 불의한 종들은 주인이 자신에게 주고 간 달란트를 묻어두었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얼굴을 다시 볼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주인은 돌아와서 그들을 심판했다.
-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곧 주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기 쉽다. 생각 안하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이 있고,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도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생각해보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잊고 사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다.
(3) 하나님 뵈올 것을 소망하며,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삶
① 3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감
- 아벨은 하나님께 올바른 (주일)예배를 드렸고 에녹은 날마다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간다. 그와 동명이인 가인의 아들 에녹은 성의 이름으로 불리우며 유명해졌지만, 하나님의 사람 에녹은 자기 이름을 드러냄도 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평범하게 살아갔다. 그는 어떻게 3백년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② 에녹은 3백년을 견뎌낸 삶이었음
- 집을 지을 때 목재의 가치는 무게를 견뎌내는 힘에 달려있다. 옛날 배를 만들 때 돛대는 아무 나무로 만들지 않는다. 세찬 비바람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느냐가 그 기준이었다. 하늘 소망을 가진 성도는 그날까지 견뎌내는 것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긴다는 표현보다 버티고 견뎌낸다는 말이 더 실감적으로 다가온다. 에녹도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갔다. 3년도 힘든데 에녹은 어떻게 3백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③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오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루하루를 견뎌냄
- 에녹의 삶은 구원의 완성을 바라며 주의 재림과 몸의 부활을 소망하고 기대하지만 늘 하루하루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감이다. 에녹이 날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배워나가고 있는 오늘 우리의 삶과 동일하다.
- 지금 우리는 창세기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서를 설교하며 믿음으로 오늘을 견뎌낸 구약의 인물들을 만나고 있다. 여자의 후손 약속을 분명히 믿고 붙잡았던 아벨, 그는 속죄제사/예배 중심으로 살았다. 에녹은 심판과 상급을 믿고 바라며 3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
<적용>에녹처럼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하자.
(1)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분명히 소망하자.
(2) 성경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발견하자.
①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계시이심
-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계시의 말씀이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암송하고 배워서 안다. 진리의 성령님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바르게 깨닫게 해주시지 성경에 없는 하나님을 가르쳐주시지 않는다.
② 내 문제는 그대로 나두고 성경 속으로...
-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자기가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보려 읽는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내가 힘들어하는 경제문제, 건강문제, 자녀문제, 미래문제를 점쟁이처럼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읽으면 성경에서 찾기 쉽지 않으니 성경에서 그런 것을 꼭 집어 말해주는 교회나 사람이 인기가 있다. 직접 직통계시로 말해주는 기독교 점쟁이가 최고인기이다.
- 성경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온갖 문제를 일일이 해결해주지 않고 하나의 마스터 키를 제시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자신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주는 진정한 해답이다. 이 안에서 모든 것이 풀리고 인생이 해결된다. 다른 해결책은 임시방편이며 그때뿐이다. 문제는 계속 오며 평생을 헤메이게 된다. 기독교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종이 된다.
③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되면 내 문제가 해결됨
- 문제로 힘들어할 때, 문제를 그대로 두고 성경 자체를 배우자.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 복음 안에서 나 자신을 정립하자. 이것만이 진정한 해답이다. 성경은 우리를 위로하고 치료하는 책 정도가 아니라 객관적인 하나님의 자기계시이다. 그래서 내 목적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발견하려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구원의 계획을 발견하면 비로소 나를 알게 된다. 나의 지나온 삶의 모든 것들이 이해되고 감사되고... 이때 비로소 감사가 나온다. 내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에서 그런 구절들만 찾아지게 된다. 숲은 보지 못하고, 맘에 드는 나뭇가지 하나 발견하면 거기 머물러 앉아 위로를 받는다. 잠시 지나면 또 방황하게 되고 그때는 또 다른 나뭇가지를 찾아 정처없이 헤메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