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히브리서(13) -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히10:19-39)
Author
gospel323
Date
2018-10-2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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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3
히브리서(13) -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히10:19-39)
1. 새 언약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1) 첫 언약 – 에덴에서 아담과 맺으신 첫 언약
① 아담과 그의 후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심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선악과는 아담의 순종여부를 나타내는 증표였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아담과 첫 언약을 맺으시고 그와 그의 후손(인류)의 하나님 되심을 약속하셨다. 아담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순종이다.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생명을 얻고, 불순종하면 하나님과 단절된 사망임을 명백히 하셨다.
- 전통적으로 개혁신학은 에덴에서 아담과 맺으신 언약을 행위언약으로 말하지만, 서철원 교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아담언약을 행위언약이 아닌 첫 언약으로 부르는 것이 바르다고 주장한다.
- 첫째, 행위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무흠무죄한 백지상태로 창조하셨고, 아담이 자기 행위에 의해 의를 획득하고 영생을 얻어야 함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며 주신 하나님의 형상(창1:27)은 단지 죄가 없는 백지상태임을 말하기에 그릇되다. 범죄이전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완전한 의로움(원의 original rightousness)이 있었다. 아담은 무죄할 뿐 아니라 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부여 받았다. 하나님은 아담을 완전하게 창조하셨고, 그에게 자유를 주시며 언약을 맺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하고 완성하게 될 하나님의 형상은 단지 죄가 없는 백지상태가 아니라 지혜와 지식(골3:10) 의로움과 거룩함(엡4:24)에 충만한 모습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불완전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피조물의 타락은 창조주의 책임이다. -p201 서철원, 인간 하나님의 형상
- 둘째, 행위언약은 그 용어사용에 있어서 그릇되었다. 성경에서 언약은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레26:12)는 의미이기에, 에덴에서 아담언약이 아담의 후손 인류를 하나님 백성 삼으심으로 보는 것이 올바르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새 언약의 내용이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을 통해 에덴의 첫 언약을 회복, 완성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드러나고 하나님의 창조경륜까지 바르게 이해된다. 이러한 언약이해는 종교개혁시대 쯔빙글리가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쯔빙글리는 아담언약이 무죄한 인간이 스스로의 행위로 인해 의와 거룩함에 도달하고 영생을 획득하는 행위언약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 되는 (첫)언약이었음을 말했다. 이러한 언약사상에 근거하여 쯔빙글리는 유아세례를 거부한 재세례파와 맞서 유아세례를 주장하였다. -p205
- 셋째, 첫 언약은 구원이 하나님의 백성 회복 곧 첫 언약의 성취임을 잘 설명한다. 영생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김에 대한 보상이다. 사망은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섬기길 거부함에 대한 형벌이다. 첫 언약이 체결될 때부터 사람은 영생하도록 정해졌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아 언약 안에 머물기만 한다면 영생한다. 영생을 잃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하나님을 반역함에 대한 징벌일 뿐이다. 죄의 상해가 가해지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죽지 않고 영생한다. 영생은 사람이 조건들을 지키고 노력하여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이미 약속되었다. 영생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됨을 거부하지 않았으면 영생에 이르는 것이 당연하다. -p241
- 참고로, 첫 언약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서 8장에 등장하지만, 그것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하는 두 언약 중에서 첫 번째 언약 곧 옛 언약을 지칭함이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히8:7) 혹자는 옛 언약과 새 언약 모두 아브라함을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아브라함 언약을 첫 언약으로 말하지만 성경에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아담 언약이 있다.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호6:7) 아브라함 언약에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적으로 계시되었지만, 아담 언약과 노아 언약에서도 그리스도 구원의 근거는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을 첫 언약이라 함은 부당하다.
②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고 다스리라.”(창1:28)
- 하나님의 계획은 이 세상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로 충만해짐이다.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 백성들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관리하고 다스리고 돌보며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창조경륜이다.
- 아담은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첫 언약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인들의 조상이 된다. 아담은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어 살아가는 죄의 본성을 가진 자녀들을 낳아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게 된다. 세상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아담의 후손들/ 죄인들로 가득차게 된다(창5:3) 모두 자기주인되어 자기중심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2) 새 언약 – 그리스도께서 성만찬 때 제자들에게 주셨다.
① 새 언약은 아담과 맺으신 첫 언약을 회복 완성하는 최종 언약임
- 아담의 범죄이후, 하나님은 인류를 구속하는 최종 언약으로 새 언약/그리스도를 계획하셨다. 범죄이전 아담처럼 무죄무흠하고 의로움이 있는 거룩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창조경륜을 새 언약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시도록 작정하셨다.
- 구원은 첫 언약의 회복과 완성이다. 십자가와 부활로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을 죄용서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만듬이다. 만약 범죄한 아담 후손들의 죄를 씻기고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없는 또 다른 새로운 인류를 다시 만드셨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창조, 문자 그대로 새 창조가 된다. 이때 첫 창조의 범죄한 인류는 완전히 진멸된다.
- 신약에서 구원을 종종 새 창조로 부름은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5:17)로 완전히 거듭났다는 바울의 표현 때문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우리의 어떤 자원도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셨고, 그 내용도 죄 아래서 살던 옛사람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새사람이 된다. 이는 구원 받으면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신학적 의미이지 하나님이 첫 창조를 멸하시고 또 다른 인류를 창조하심이 아니다.
- 새 언약/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 구원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요 완전한 구속계시이다. 그래서 최종 언약이다. 이것은 이미 땅에 가득찬 죄인들을 다시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죄없다하심(=죄용서)과 의롭다하심(=칭의)을 주심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야만 하는 어떤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피조세계에 가득찬 아담의 죄가 제거되고 거룩해지면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때 첫 언약이 회복되고 완성된다. 하나님의 창조경륜이 이루어진다. 그 완성의 날은 주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의 날일 것이다.
② 새 언약을 분명히 알려주시기 위해 옛 언약을 먼저 주심
- 에덴에서 아담과 맺으신 첫 언약은 아담의 범죄로 파기되었다. 이후 창세기 3장부터 요한 계시록 20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에덴의 첫 언약을 회복 완성키 위하여 새 언약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계시를 전개하신다. 그 대표가 아브라함언약과 모세언약 다윗언약이다. 이들 중 특히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주신 언약은 새 언약의 내용과 특징을 분명히 알려주시기 위한 아주 중요한 언약이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새 언약을 계시하실 때에 모세언약과 비교하시며 그 특징을 말씀하셨다. 이로 인해 모세의 시내산 언약을 새 언약과 대비하여 옛 언약이라 지칭하게 되었다.
- 아브라함 언약(창15장,17장)과 모세 언약(출24장)와 다윗 언약(삼하7장)은 모두 그리스도의 새 언약(눅22:20)를 예언하고 나타낸다. 아브라함 언약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으며,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구원 얻음을 보여주며, 모세 언약(옛 언약)은 율법의 요구인 거룩함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행위로 불가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가 필요함을 깨닫게 하고, 다윗 언약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영원할 것을 나타낸다. 모두 다 새 언약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게 계시하신 중요한 언약들이다.
- 그러므로 언약은 범죄이전 아담과 에덴에서 맺으신 첫 언약이 중요하고, 그 첫 언약을 회복 완성하기 위하여 주신 구원의 완성 마지막 계시 새 언약이 중요하다. 여기서 옛 언약의 중요성은 새 언약의 내용과 특징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언약이란 점이다. 새 언약의 내용은 옛 언약과 비교할 때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③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을 베푸시며 제자들에게 새 언약을 제정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등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새 언약이 도래하였음을 선포함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에 새 언약이 제정된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속죄 피를 자신에게 뿌리며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맹세한다. 그리스도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고 연합해 주심으로 제자들이 하나님께 죄용서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도우신다.
- 새 언약은 죄인을 구원하는 방식에 있어서 사람이 도저히 예상치 못하는 놀라운 것이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늘 보좌로 승천하신다. 하늘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함께하시며 자기 백성과 연합해주신다. 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생명으로 살아난다. 자기주인됨을 거부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새로운 인류로 태어남이다. 이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하심으로 거룩하게 하신다(롬4:25)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이미 저지른 죄의 형벌면제 곧 죄용서의 근거로 삼으심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신 자들을 의롭다하심으로 죄의 권세를 이기게 하신다.
- 새 언약이 제정되고 발효됨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들이 탄생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동참한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이다. 자기주인됨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는 그들과 함께하시며 연합해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새롭게 태어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인격적 존재 사람을 구원하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 도대체 누가 이런 구원을 계획할 수 있으며, 또 계획한다고 누가 이런 구원을 실행할 수 있을까? 오직 하나님뿐이다.
- 롬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2.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1)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22절)
①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는 것.
- 성경을 읽으면 도달하는 마지막 결론이 있다. 하나님의 뜻/계획은 죄로 더럽혀진 세상을 다시 하나님 나라로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 하나님은 내가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생명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함이다.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주인됨을 못박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감이다.
- 하나님은 내가 지금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일을 위하여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그 날은 멀지 않았고 곧 다가온다.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내 삶을 드려보자. 내 삶의 목표를 십자가와 부활이 증거 되는 일로 정해보자. 그 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교회를 섬기자. 우리교회를 통해 십자가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 구원이 전파되도록 섬기자. 갖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실행해보자.
② 선택의 순간마다, 지금 내가 선악과 앞에 서있음을 기억해야 함
- 지금 내 삶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가는건가? 선택의 순간이 오면 우리는 선악과 앞에 서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신다. 선악과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은 죄로 오염되어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지도록 몰아간다. 내 모든 판단을 내려놓고 절대로 선악과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구하라. 성경의 원리를 따르고 목회자의 도움도 구하라. 중요한 선택일수록 하나님께 재확인하고 믿음의 결정을 내리라. 일단 선택하고 나면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
③ 어려움을 만나면, 지금 내가 출애굽 광야 길에 서있음을 기억해야 함
- 히브리서는 우리가 출애굽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 광야를 지나는 동안 수도 없는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경제 문제, 사람과의 갈등, 예상치 못하는 사고, 마음의 상처와 정서의 고통, 육체의 노화와 질병 그리고 죽음... 일희일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며 묵묵히 따라가자.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날마다 먹이고 입혀주셨다. 믿고 따라가자. 내일에 대한 염려와 적정으로 사단이 주는 두려움에 잡히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자. 용기는 겁 없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함이다.
(2)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23절)
① 믿음의 기본개념은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
- 신약에서 강조하는 믿음은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기본내용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담겨진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지정의 전인격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함을 말한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행위구원에 맞서 오직 믿음으로 얻게 된 은혜구원을 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주로 이 기본개념으로 쓰인다.
② 더 나아가 믿음은 복음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
- 믿음은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기본개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복음을 믿는 것은 복음만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구원의 전체를 믿음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신뢰함이 들어있다.
- 구원에는 시간적 요소가 있다. 우리는 구원을 분명히 얻었지만 아직 완전히 도래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나안을 향한 출애굽 광야의 길을 가고 있다. 분명히 애굽에서 떠났지만 아직 가나안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광야를 지나가고 있다. 주의 재림과 우리 몸이 부활하기 전까지 우리 삶에서 죄와 사망, 사탄과의 전쟁은 끝이 없을 것이다.
- 우리 구원의 완성은 부활의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소망이 필요하다. 미래의 완성을 바라보며 오늘을 참고 이겨내는 소망이 필요하다.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인내하며 견뎌낸다.
③ 초대교회 히브리 성도들의 상황은 오늘 우리와 동일함
- 1세기 후반 초대교회는 네로 박해(64년)와 예루살렘 함락(70년) 도미티안 박해(95년)를 경험한다. 그 핍박은 2백여년을 더 지나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이르러 비로소 끝난다. 박해는 심해지고 성도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의 소망이 없다면 견뎌내기 힘들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 주의 재림은 주님이 원하시는 때 이루어진다. 구원받은 자의 수가 충만해질 때임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날이 언제인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 개인의 종말이고 그날은 분명 멀지 않음이다.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자. 구원의 완성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대하며 인내하자.
<적용>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힘쓰자
(1) 우리는 서로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하다.
- 사랑과 선행이란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할 때 죄인의 형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내가 점점 죄의 권세를 이기고 그리스도의 의가 나타남이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성경말씀 속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계속 확인하고, 삶에서 그것을 체험하도록 서로 격려를 받아야 지속된다.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광야 길에서 어려움은 많이 남아있다. 광야길에서 힘들면 낙심하게 되고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기 쉽다.
- 우리는 지금 이민광야에 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정신없이 살아야 유지되는 삶이다. 낙심하기 쉽고 서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삶에 치여 살다보면 우리가 가나안으로 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게 된다. 자기주인되어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은 어디나 어렵다. 한국과 미국중 어디가 더 어려운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가장 어렵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돌보자. 먼저 된 자들이 따듯하게 손을 내밀자.
(2)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25절)
- 사탄의 최우선 공격목표는 교회이다. 교회에서만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가 선포되고 하나님 나라 백성되는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계속해서 교회가 진리에 서지 못하도록 문제를 일으키고 모임을 약화시킨다. 함께 모이는 것만으로도 사탄을 대적하는 큰 일이 된다. 주일예배와 토요성경공부, 매월 셀모임에 참여하자.
(3) “잠시 잠간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리라”(37절)
-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살아왔다. 자본주의는 고객중심 한마디로 소비자가 왕이다. 소비자를 거스리는 그 어떤 기업도 살아남지 못한다. 사람들은 교회를 소비자 중심의 마인드로 대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많이 줄 수 있는 교회를 찾는다. 교회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들을 많이 나열하고 선전한다. 교회는 기업이 아니고 성도는 소비자가 아니다. 교회는 죄인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시켜 구원하는 공동체이다. 환자에게 치료방법을 물어보는 곳은 병원이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말자. 다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의 얼굴을 뵈올 것이다. 사람은 무엇이든 자기가 선택하고 그 일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게 된다. 마지막 날 내가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1. 새 언약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1) 첫 언약 – 에덴에서 아담과 맺으신 첫 언약
① 아담과 그의 후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심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선악과는 아담의 순종여부를 나타내는 증표였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아담과 첫 언약을 맺으시고 그와 그의 후손(인류)의 하나님 되심을 약속하셨다. 아담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순종이다.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생명을 얻고, 불순종하면 하나님과 단절된 사망임을 명백히 하셨다.
- 전통적으로 개혁신학은 에덴에서 아담과 맺으신 언약을 행위언약으로 말하지만, 서철원 교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아담언약을 행위언약이 아닌 첫 언약으로 부르는 것이 바르다고 주장한다.
- 첫째, 행위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무흠무죄한 백지상태로 창조하셨고, 아담이 자기 행위에 의해 의를 획득하고 영생을 얻어야 함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며 주신 하나님의 형상(창1:27)은 단지 죄가 없는 백지상태임을 말하기에 그릇되다. 범죄이전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완전한 의로움(원의 original rightousness)이 있었다. 아담은 무죄할 뿐 아니라 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부여 받았다. 하나님은 아담을 완전하게 창조하셨고, 그에게 자유를 주시며 언약을 맺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하고 완성하게 될 하나님의 형상은 단지 죄가 없는 백지상태가 아니라 지혜와 지식(골3:10) 의로움과 거룩함(엡4:24)에 충만한 모습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불완전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피조물의 타락은 창조주의 책임이다. -p201 서철원, 인간 하나님의 형상
- 둘째, 행위언약은 그 용어사용에 있어서 그릇되었다. 성경에서 언약은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레26:12)는 의미이기에, 에덴에서 아담언약이 아담의 후손 인류를 하나님 백성 삼으심으로 보는 것이 올바르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새 언약의 내용이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을 통해 에덴의 첫 언약을 회복, 완성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드러나고 하나님의 창조경륜까지 바르게 이해된다. 이러한 언약이해는 종교개혁시대 쯔빙글리가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쯔빙글리는 아담언약이 무죄한 인간이 스스로의 행위로 인해 의와 거룩함에 도달하고 영생을 획득하는 행위언약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 되는 (첫)언약이었음을 말했다. 이러한 언약사상에 근거하여 쯔빙글리는 유아세례를 거부한 재세례파와 맞서 유아세례를 주장하였다. -p205
- 셋째, 첫 언약은 구원이 하나님의 백성 회복 곧 첫 언약의 성취임을 잘 설명한다. 영생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김에 대한 보상이다. 사망은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섬기길 거부함에 대한 형벌이다. 첫 언약이 체결될 때부터 사람은 영생하도록 정해졌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아 언약 안에 머물기만 한다면 영생한다. 영생을 잃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하나님을 반역함에 대한 징벌일 뿐이다. 죄의 상해가 가해지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죽지 않고 영생한다. 영생은 사람이 조건들을 지키고 노력하여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이미 약속되었다. 영생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됨을 거부하지 않았으면 영생에 이르는 것이 당연하다. -p241
- 참고로, 첫 언약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서 8장에 등장하지만, 그것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하는 두 언약 중에서 첫 번째 언약 곧 옛 언약을 지칭함이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히8:7) 혹자는 옛 언약과 새 언약 모두 아브라함을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아브라함 언약을 첫 언약으로 말하지만 성경에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아담 언약이 있다.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호6:7) 아브라함 언약에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적으로 계시되었지만, 아담 언약과 노아 언약에서도 그리스도 구원의 근거는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을 첫 언약이라 함은 부당하다.
②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고 다스리라.”(창1:28)
- 하나님의 계획은 이 세상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로 충만해짐이다.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 백성들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관리하고 다스리고 돌보며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창조경륜이다.
- 아담은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첫 언약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인들의 조상이 된다. 아담은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어 살아가는 죄의 본성을 가진 자녀들을 낳아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게 된다. 세상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아담의 후손들/ 죄인들로 가득차게 된다(창5:3) 모두 자기주인되어 자기중심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2) 새 언약 – 그리스도께서 성만찬 때 제자들에게 주셨다.
① 새 언약은 아담과 맺으신 첫 언약을 회복 완성하는 최종 언약임
- 아담의 범죄이후, 하나님은 인류를 구속하는 최종 언약으로 새 언약/그리스도를 계획하셨다. 범죄이전 아담처럼 무죄무흠하고 의로움이 있는 거룩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창조경륜을 새 언약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시도록 작정하셨다.
- 구원은 첫 언약의 회복과 완성이다. 십자가와 부활로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을 죄용서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만듬이다. 만약 범죄한 아담 후손들의 죄를 씻기고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없는 또 다른 새로운 인류를 다시 만드셨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창조, 문자 그대로 새 창조가 된다. 이때 첫 창조의 범죄한 인류는 완전히 진멸된다.
- 신약에서 구원을 종종 새 창조로 부름은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5:17)로 완전히 거듭났다는 바울의 표현 때문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우리의 어떤 자원도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셨고, 그 내용도 죄 아래서 살던 옛사람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새사람이 된다. 이는 구원 받으면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신학적 의미이지 하나님이 첫 창조를 멸하시고 또 다른 인류를 창조하심이 아니다.
- 새 언약/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 구원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요 완전한 구속계시이다. 그래서 최종 언약이다. 이것은 이미 땅에 가득찬 죄인들을 다시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죄없다하심(=죄용서)과 의롭다하심(=칭의)을 주심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야만 하는 어떤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피조세계에 가득찬 아담의 죄가 제거되고 거룩해지면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때 첫 언약이 회복되고 완성된다. 하나님의 창조경륜이 이루어진다. 그 완성의 날은 주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의 날일 것이다.
② 새 언약을 분명히 알려주시기 위해 옛 언약을 먼저 주심
- 에덴에서 아담과 맺으신 첫 언약은 아담의 범죄로 파기되었다. 이후 창세기 3장부터 요한 계시록 20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에덴의 첫 언약을 회복 완성키 위하여 새 언약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계시를 전개하신다. 그 대표가 아브라함언약과 모세언약 다윗언약이다. 이들 중 특히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주신 언약은 새 언약의 내용과 특징을 분명히 알려주시기 위한 아주 중요한 언약이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새 언약을 계시하실 때에 모세언약과 비교하시며 그 특징을 말씀하셨다. 이로 인해 모세의 시내산 언약을 새 언약과 대비하여 옛 언약이라 지칭하게 되었다.
- 아브라함 언약(창15장,17장)과 모세 언약(출24장)와 다윗 언약(삼하7장)은 모두 그리스도의 새 언약(눅22:20)를 예언하고 나타낸다. 아브라함 언약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으며,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구원 얻음을 보여주며, 모세 언약(옛 언약)은 율법의 요구인 거룩함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행위로 불가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가 필요함을 깨닫게 하고, 다윗 언약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영원할 것을 나타낸다. 모두 다 새 언약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게 계시하신 중요한 언약들이다.
- 그러므로 언약은 범죄이전 아담과 에덴에서 맺으신 첫 언약이 중요하고, 그 첫 언약을 회복 완성하기 위하여 주신 구원의 완성 마지막 계시 새 언약이 중요하다. 여기서 옛 언약의 중요성은 새 언약의 내용과 특징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언약이란 점이다. 새 언약의 내용은 옛 언약과 비교할 때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③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을 베푸시며 제자들에게 새 언약을 제정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등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새 언약이 도래하였음을 선포함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에 새 언약이 제정된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속죄 피를 자신에게 뿌리며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맹세한다. 그리스도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고 연합해 주심으로 제자들이 하나님께 죄용서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도우신다.
- 새 언약은 죄인을 구원하는 방식에 있어서 사람이 도저히 예상치 못하는 놀라운 것이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늘 보좌로 승천하신다. 하늘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함께하시며 자기 백성과 연합해주신다. 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생명으로 살아난다. 자기주인됨을 거부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새로운 인류로 태어남이다. 이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하심으로 거룩하게 하신다(롬4:25)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이미 저지른 죄의 형벌면제 곧 죄용서의 근거로 삼으심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신 자들을 의롭다하심으로 죄의 권세를 이기게 하신다.
- 새 언약이 제정되고 발효됨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들이 탄생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동참한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이다. 자기주인됨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는 그들과 함께하시며 연합해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새롭게 태어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인격적 존재 사람을 구원하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 도대체 누가 이런 구원을 계획할 수 있으며, 또 계획한다고 누가 이런 구원을 실행할 수 있을까? 오직 하나님뿐이다.
- 롬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2.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1)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22절)
①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는 것.
- 성경을 읽으면 도달하는 마지막 결론이 있다. 하나님의 뜻/계획은 죄로 더럽혀진 세상을 다시 하나님 나라로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 하나님은 내가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생명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함이다.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주인됨을 못박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감이다.
- 하나님은 내가 지금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일을 위하여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그 날은 멀지 않았고 곧 다가온다.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내 삶을 드려보자. 내 삶의 목표를 십자가와 부활이 증거 되는 일로 정해보자. 그 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교회를 섬기자. 우리교회를 통해 십자가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 구원이 전파되도록 섬기자. 갖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실행해보자.
② 선택의 순간마다, 지금 내가 선악과 앞에 서있음을 기억해야 함
- 지금 내 삶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가는건가? 선택의 순간이 오면 우리는 선악과 앞에 서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신다. 선악과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은 죄로 오염되어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지도록 몰아간다. 내 모든 판단을 내려놓고 절대로 선악과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구하라. 성경의 원리를 따르고 목회자의 도움도 구하라. 중요한 선택일수록 하나님께 재확인하고 믿음의 결정을 내리라. 일단 선택하고 나면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
③ 어려움을 만나면, 지금 내가 출애굽 광야 길에 서있음을 기억해야 함
- 히브리서는 우리가 출애굽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 광야를 지나는 동안 수도 없는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경제 문제, 사람과의 갈등, 예상치 못하는 사고, 마음의 상처와 정서의 고통, 육체의 노화와 질병 그리고 죽음... 일희일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며 묵묵히 따라가자.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날마다 먹이고 입혀주셨다. 믿고 따라가자. 내일에 대한 염려와 적정으로 사단이 주는 두려움에 잡히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자. 용기는 겁 없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함이다.
(2)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23절)
① 믿음의 기본개념은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
- 신약에서 강조하는 믿음은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기본내용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담겨진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지정의 전인격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함을 말한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행위구원에 맞서 오직 믿음으로 얻게 된 은혜구원을 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주로 이 기본개념으로 쓰인다.
② 더 나아가 믿음은 복음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
- 믿음은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기본개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복음을 믿는 것은 복음만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구원의 전체를 믿음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신뢰함이 들어있다.
- 구원에는 시간적 요소가 있다. 우리는 구원을 분명히 얻었지만 아직 완전히 도래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나안을 향한 출애굽 광야의 길을 가고 있다. 분명히 애굽에서 떠났지만 아직 가나안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광야를 지나가고 있다. 주의 재림과 우리 몸이 부활하기 전까지 우리 삶에서 죄와 사망, 사탄과의 전쟁은 끝이 없을 것이다.
- 우리 구원의 완성은 부활의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소망이 필요하다. 미래의 완성을 바라보며 오늘을 참고 이겨내는 소망이 필요하다.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인내하며 견뎌낸다.
③ 초대교회 히브리 성도들의 상황은 오늘 우리와 동일함
- 1세기 후반 초대교회는 네로 박해(64년)와 예루살렘 함락(70년) 도미티안 박해(95년)를 경험한다. 그 핍박은 2백여년을 더 지나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이르러 비로소 끝난다. 박해는 심해지고 성도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의 소망이 없다면 견뎌내기 힘들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 주의 재림은 주님이 원하시는 때 이루어진다. 구원받은 자의 수가 충만해질 때임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날이 언제인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 개인의 종말이고 그날은 분명 멀지 않음이다.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자. 구원의 완성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대하며 인내하자.
<적용>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힘쓰자
(1) 우리는 서로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하다.
- 사랑과 선행이란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할 때 죄인의 형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내가 점점 죄의 권세를 이기고 그리스도의 의가 나타남이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성경말씀 속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계속 확인하고, 삶에서 그것을 체험하도록 서로 격려를 받아야 지속된다.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광야 길에서 어려움은 많이 남아있다. 광야길에서 힘들면 낙심하게 되고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기 쉽다.
- 우리는 지금 이민광야에 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정신없이 살아야 유지되는 삶이다. 낙심하기 쉽고 서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삶에 치여 살다보면 우리가 가나안으로 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게 된다. 자기주인되어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은 어디나 어렵다. 한국과 미국중 어디가 더 어려운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가장 어렵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돌보자. 먼저 된 자들이 따듯하게 손을 내밀자.
(2)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25절)
- 사탄의 최우선 공격목표는 교회이다. 교회에서만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가 선포되고 하나님 나라 백성되는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계속해서 교회가 진리에 서지 못하도록 문제를 일으키고 모임을 약화시킨다. 함께 모이는 것만으로도 사탄을 대적하는 큰 일이 된다. 주일예배와 토요성경공부, 매월 셀모임에 참여하자.
(3) “잠시 잠간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리라”(37절)
-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살아왔다. 자본주의는 고객중심 한마디로 소비자가 왕이다. 소비자를 거스리는 그 어떤 기업도 살아남지 못한다. 사람들은 교회를 소비자 중심의 마인드로 대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많이 줄 수 있는 교회를 찾는다. 교회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들을 많이 나열하고 선전한다. 교회는 기업이 아니고 성도는 소비자가 아니다. 교회는 죄인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시켜 구원하는 공동체이다. 환자에게 치료방법을 물어보는 곳은 병원이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말자. 다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의 얼굴을 뵈올 것이다. 사람은 무엇이든 자기가 선택하고 그 일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게 된다. 마지막 날 내가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