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히브리서(8) - 믿음의 기초와 신앙의 성숙(히6:1-20)

Author
gospel323
Date
2018-09-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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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8) - 믿음의 기초와 신앙의 성숙(히6:1-20)

1.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5:13)

(1) 젖을 먹는 어린아이

- 히5:12-13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2)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장성한 자.

- 히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2. 믿음의 기초와 신앙의 성숙

(1) 믿음의 다섯 기초(elementary)위에 굳건히 서라(5:12, 6:1)

① 회개 - 죽은 행실에서 돌이킴(1절)

- 하나님 말씀의 초보란 그리스도 신앙의 시작과 기초가 되는 기본진리를 말한다. 모든 건물은 기초위에 세워지듯, 신앙에도 기초가 있다. 히브리서는 이 핵심되는 진리를 구원론의 다섯가지 용어로 요약해서 말한다.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로 나아가라는 것은 이 진리를 버리고 다른 것을 취함이 아니라 이 진리 기초위에 더욱 완전하게 나아감을 말한다. 어린아이란 이 초보가 무엇인지도 몰라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사람을 말한다.

- 첫 번째가 회개이다. 내가 주인되어 살아가던 삶의 주도권을 예수님께 내어드림이다. 지금까지 내가 주인되어 살아온 삶은 죽은 행실, 사망이요, 죄이다. 회개란 이러한 삶의 방향을 바꾸고 하나님께로 돌이킴이다. 죄에게서 돌이킴이다. 이런 면에서 회개는 복음을 들었을때 반응하는 우리의 첫 번째 행동이다.

-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가며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결코 없다. 어떻게 자기가 하나님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내 주인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다. 이것이 죄를 회개함이라는 단어 속에 담겨있는 핵심내용이다.

- 회개는 단회적 회개와 반복적 회개가 있다. 단회적 회개는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나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굴복하는 회개이다. 이전에 내가 주인되어 살던 삶에서 돌이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가겠다는 생의 방향을 돌이키는 회개이다. 한번만 필요하다.

- 반복적 회개란 우리가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자꾸 죄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나의 모든 일들은 반복적으로 회개함이다. 우리는 날마다 나를 쳐서 죄와 본성과 싸우며, 나를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만 한다. 이러한 회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반복적이다. 이것이 구원의 현재요, 신앙생활의 모습이다.

② 신앙/믿음 – 하나님께로 나아감

- 신앙(信仰)과 믿음은 동의어로 신앙은 한자어, 믿음은 순수한글이다. 회개가 자기주인된 죄악된 삶에서 돌이키는 것이라면,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 굴복하고 순종함이다.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양면으로 회개가 죄에서 돌이키는 부정적인 면이라면 믿음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긍정적인 면을 말한다. 이런 회개와 믿음을 분리하지 않고 회심(conversion)이란 한 용어로 사용한다.

- 회개와 믿음을 회심의 단회적 사건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회심이 아닌 날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반복적 사건을 말하기도 한다. 이때는 회개와 믿음이 분리되서 설명된다. 나 자신의 죄의 본성과 치열하게 싸워나가고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신앙생활의 반복적 과정인 것이다.

- 행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한다. 자신이 그동안 가르쳤던 내용이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관함이라고... 죽은 행실에서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회개이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믿음을 말함이다. 사도행전 20장 21절은 히브리서 6장 1절의 내용과 동일하다.

③ 세례와 안수

- 세례는 하나님 백성의 입례식이다. 세례는 회개와 믿음으로 회심하고 날마다 새롭게 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내적믿음의 외적표시이다. 세례는 물로 죄를 씻어 정결케 되었다는 죄용서/죄사함(엡5:24)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함으로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됨(롬6:3-5),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고 접붙임을 받는다는 의미(고전12:13)가 있다.

- 안수는 히브리인들이 기도할 때 사용하던 상징적 태도의 한 형태로서 초기 기독교회에서도 사용되었다. 사도행전과 초대교회에서 안수는 주로 성령의 은사나 교회의 직분과 연관되어 있다. 오늘날 교회는 직분자를 세울 때 성령의 은사로 충만케 되도록 간구하는 안수를 한다.

④ 육체의 부활

- 부활은 구원의 완성이요 마침이다. 우리는 모두 육체로 부활할 것이다. 복음이 증거되던 초대교회 당시 헬라세계는 영육이원론이 지배하였다. 헬라사람들은 영혼은 선하고 거룩하고 영원하지만 육체는 더럽고 악하고 무가치하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바울은 우리는 부활을 믿고 증거하는 사람들이며, 만약 육체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고전15:12-20)

⑤ 상급과 심판

- 롬14:10,12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롬2: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 계20:11-15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 도의 초보에 머무르지 말고 장성한데 까지 나아가라(7-8절)

① 삶에서 예수의 주되심을 따르는 믿음의 행동들을 시도해야 함

- 신앙이 장성하고 완전한데 나아감은 실제로 변화되고 하나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한다. 여전히 자기주인되어 살아갈 때 오는 죽은 행실들 곧 가시와 엉겅퀴를 내서는 안된다. 하나님 나라 구원은 우리의 영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전인적인 변화이다. 하나님의 백성 됨은 죽음 이후에만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에서 나타난다.

- 믿음은 삶의 변화/열매와 별개로 분리되지 않는다.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고 결단하는 믿음은 실제 내 삶에서 그렇게 살아가려는 구체적인 행동을 시도하게 되어있다. 물론 우리가 죄의 본성과의 싸움에서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은 언제나 우리를 그리스도께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만들다. 의의 열매가 맺히도록 만든다.

-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잘못 가르치면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갖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죄를 버리고 의와 거룩을 행하도록 하시는 구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은 그러한 거룩을 내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함으로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하도록 힘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다. 거룩해질 힘을 주시는 은혜이지 죄 가운데 거하고 거룩하지 않아도 구원을 베푼다는 은혜가 아니다.

②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 예수님은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으니 열매를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마7:16-20) 이 말씀의 의미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21절) 바로 뒷 구절과 연결되어 있다. 믿음의 여부는 그의 행동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지 성과를 내야 천국들어간다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 틀렸다고 말하는 자본주의 경영법칙을 말함이 아니다.

③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 히브리 유대인들에게서 시작된 복음이 헬라사람들에게 전해지자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헬라사람들은 복음을 그들의 영육이원론적 사상과 연합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다.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발생하지 않던 일들이 헬라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타났다.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 자기는 복음을 믿고 있어 구원 얻었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그는 아직 올바른 것이 아니듯, 자기주인됨을 버리겠다는 믿음은 자기주인됨을 버리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물론 이때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도우심을 의지해서이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을 왜곡해서 받아들인 신자들에게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함이다. 자기주인됨을 포기하는 행동이 없다면 그는 아직 예수의 주되심을 믿는 것이 아니다.

(3)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하며 소망의 닻을 내려라(9-20절)

①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 말씀을 주셨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맹세와 약속이라는 두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맹세는 자기보다 더 높은 자의 권위를 빌려 자기 말의 진실성을 담보함이다. 하나님은 자기보다 높은 자가 없기에 “내가 반드시”라고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셨다.

-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여기에서 복은 하나님 백성의 조상이 되는 복을 말한다. 복을 재물의 부요함으로 생각하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져온다. 이 약속과 맹세를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두가지 변개치 못할 사실이라 말한다(18절) 하나님은 거짓말 하시지 않기에 그 맹세와 약속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뜻이다.

②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 소망으로 인내함

- “저기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15절) 약속을 받았음은 약속이 성취된 결과를 받았음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주어졌지만, 그 응답은 출애굽과 다윗왕국에서 이루어졌고,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서 성취되어졌다. 이것은 약 5백년과 1천년, 2쳔년이 걸렸다.

-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100년을 살다가 175세에 죽는다. 그의 나이 100세에 이삭을 낳았고 140세에 이삭을 결혼시키고 160세에 야곱과에서 쌍둥이 손자를 본다. 아브라함은 15세인 야곱만 보고 죽는다. 아브라함은 야곱이 낳을 12지파를 전혀 보지 못했다.

- 또한 아브라함은 살 동안 가나안 땅의 헤브론 막벨라 굴만 소유했다. 그에게 주신 땅의 약속은 애굽 하수에서 유브라데강까지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가 살면서 얻은 땅은 겨우 헤브론의 무덤 하나이다. 가나안 땅의 약속은 천년이 지난 후 다윗과 솔로몬에 이르러야 최종적으로 성취된다.

-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였다. 비록 이삭출생 전까지는 약간의 불신앙 행동들이 있었지만 이삭을 출생하고 난 이 후에는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이삭 출생부터 75년간 변함없이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③ 이 소망은 영혼의 닻 같이 견고하여 우리로 휘장 안으로 들어가게 함

- 바다에 떠있는 배는 닻(anchor)을 내리고 정박한다. 바다 속에 견고하게 고정된 닻이 큰 배를 떠내려가지 않도록 한다. 소망은 영혼의 닻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하는 자는 닻을 휘장 안에 계신 하나님께 고정하며 내린 것과 같다. 그는 결코 다른 곳으로 떠내려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가 있는 지성소로 들어가게 된다.

- 믿음은 소망을 낳고 소망은 인내하게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은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며 오래 참았다. 아브라함은 남방 네게브의 브엘세바에 살았지만 그는 유다산지 헤브론에 가족 묘실을 만들고 하나님의 약속을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이삭 출생후 아브라함의 삶이란 무덤 만들고 자녀들 가르친 것밖에 없다. 나머지는 년중 강우량이 약 200mm 밖에 안되는 네게브 사막의 브엘세바에서 인내하며 살아간 것뿐이다.

(4) 도의 초보에 머무르다가 배교하는 자들을 강한 권면(4-6절)

① 한번 비췸을 얻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회개케 하여 새롭게 할 수 없나니

- 이 본문(4-6절)은 성경의 대표적 난해구절이다. 이유는 분명히 성도로 보이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사람으로 타락함에 있다. 또한 한 번 타락한 사람은 회개와 구원이 불가능 하다고 함이다. 이 난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그 열쇠는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6절)로 보인다. 예수는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은 자로서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이다(고전12:3).

- 첫째, 이 구절은 성도가 배교할 수 있음을 말함이 아니다. 즉 히브리 교회 성도들에게 배교하지 말라는 권면의 말이지 거듭난 성도의 배교 가능성 여부를 신학자들과 토론함이 아니다. 낙심하여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교인에게 배교하지 말라는 목회자의 권면을 성도는 배교가 불가하기에 그가 말을 잘못했다고 따지는 것을 본문을 왜곡한 것이다. 이 본문을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주의하라”(고전10:12)는 바울의 권면과 연계하여 진정으로 거듭난 성도도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배교할 가능성을 열어둠은 옳지 않다. 그 본문은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배교는 아니다. 우상제물로 인하여 경건을 잃어버리는 타락을 경계함이다. 진정으로 거듭난 성도도 교만해지면 윤리적으로 타락할 수 있다. 그렇다고 회개가 불가함은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저주함과는 다르다.

- 둘째, 그러므로 본문에서 다시 회개할 수 없는 타락이란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배교를 말함이지 낙심한 성도가 잠시 방황하고 타락함이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을 훼방한 죄와 동일맥락이다. 용서받지 못하는 성령훼방죄는 눈멀고 귀먹은 자에게서 귀신을 내어쫓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악의적으로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모독하는 바리세인에게 말씀하심이다(막3:22-30 마12:22-32). 낙심한 성도가 잠시 타락해서 방황한다고 성령을 훼방함이 아니다. 십자가 진리의 내용을 모를 리 없는 성도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자라고 말함은 기독교 자체를 부인함이다. 이미 선을 넘었고 마지막까지 간 것이다.

- 셋째, 이에 따라 본문을 조심스럽게 해석해보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이 부분만 뽑아내서 교리신학적으로 보면 거듭난 신자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본문은 배교문제로 어수선한 히브리 교회 내의 모든 성도들에게 전달된 권면의 글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지금 교우들에게 그리스도의 진리를 떠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이지 너는 처음부터 아니었다고 정죄함이 아니다. 따라서 한번 비췸을 얻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었다는 등등의 표현은 지금까지 성도로서 교회생활을 해왔다는 일반적 표현이다.

- 배교한 자들은 교회 안에서 가르쳐지는 그리스도 도의 초보(1절) 즉 복음 진리의 내용과 신앙체험 등등 교회생활 전반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들이 실제로 변화되었음을 말하지는 않는다. 성령에 참예했다는 것은 교리신학적 표현이 아니라, 이들이 히브리 교회내에서 다른 성도들과 똑같이 진리의 내용을 배우며 함께 신앙생활을 해오던 신자들이라고 말하는 목회론적 표현이다.

- 다시 말하지만 본문에서 한번 비췸을 얻었다가 배교하는 자는 거듭난 신자가 아니다. 이들이 거듭나지 않았음은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욕보임은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며 신명기 율법에 기록된 대로 나무에 달려 하나님의 저주받아 죽은 자라고 함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가 거듭난 성도 일리가 없다. 이들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적용>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잊지 말자.

(1)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오래 참고 인내하게 만든다.

-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 롬5:2-4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