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엘리야(1) – 금송아지와 바알 우상에서 십자가 복음으로... (왕상17:1-7)
Author
gospel323
Date
2018-07-2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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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1) – 금송아지와 바알 우상에서 십자가 복음으로... (왕상17:1-7)
1. 아합과 이세벨 시대
(1) 아합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왕이었다.
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안정
- 아합은 아버지 오므리 왕이 세운 사마리아 성을 더욱 요세화하여 이스라엘을 굳건하 게 지켰다. 그는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죽기까지 강력 한 아람(시리아)의 두 차례 공격을 막아냈다. 심지어 카르카르 전투에서 앗수르 살만 에셀의 침공도 막아냈다.
- 아합의 통치 22년 동안 백성들은 제법 안정되고 부유하게 살았다. 시돈/페니키아로부 터 발전된 문물과 자원이 들어왔고, 경쟁국 남유다 왕국과 화친을 맺어 전쟁이 없었 다. 그는 에돔과 모압 역시 효과적으로 통치하여 조공을 받고 있었다. 아합은 정치 외교 군사등 다방면에서 유능했다.
② 아합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줌
- 사람들은 아합과 같은 정치가들을 좋아한다. 오늘날 아합이 선거에 나왔으면 대통령 도 되었을 것이다. 그는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었다. 풍요와 안정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가족을 잘 살도록 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 목사들 속에도 아합이 있다. 그들은 교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교회가 성장되고 공동체가 커짐으로 사람들의 커뮤니티 욕구를 충족시킴이다. 교인 들의 지적, 감정적, 문화적, 종교적, 관계적, 사회적 욕구를 모두 채워주는 일이다. 그 들에게 하나님 말씀은 순종이 아니라 활용의 대상이다. 그들은 매가 꿩을 잡는게 아 니라, 꿩 잡는 것을 매라고 부른다.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복음이라 부른다.
(2) 아합은 가장 악하고 위험한 왕이다.
① 백성들의 눈을 성공으로 가린 후 영혼을 노략질함
- 아합이 가장 악한 왕인 것은 백성들을 하나님과 단절되도록 만든 것이다. 아합은 물 질의 풍요를 주고 백성들의 영혼을 빼앗았다. 아이에게 사탕 한 알을 주고 집문서를 빼앗아 가는 것과 같다. 백성들을 풍요케 한 시돈의 문물은 바알의 독이 묻어있는 마약이었다. 백성들은 이세벨이 들여온 바알종교에 완전히 중독되었다.
②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 종교를 따라감
- 비록 분리되어 나갔지만 북이스라엘 10지파는 아브라함 자손이요, 출애굽과 모세의 율법으로 언약을 세운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제외한다는 것은 있 을 수 없다. 이전에 어떤 왕도 감히 이렇게 하지 못했다. 아합이 그렇게 했다. 심지어 남유다의 경건한 여호사밧 왕도 결혼동맹으로 인해 아합의 악한 영향력이 미치고 있 었다.
-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그러나 바알은 완전 다른 종 교였다. 아합은 하나님이 아닌 가나안 우상을 그대로 섬기게 했다. 비를 내리는 풍요 의 신 바알은 백성들이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마리아 성에 바알 산당을 세우고 이세벨이 직접 관리하는 왕실 소속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을 두었다. 아합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은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 종 교로 완전히 변질되어갔다.
2. 금송아지와 바알 우상에서 십자가 복음으로
(1)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요4장) – 금송아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① 잘못된 해결책을 찾아 고통당하고 있음
- 수가성은 사마리아 지방 세겜 옆에 있는 조그마한 성읍이다. 이 수가성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는데 그곳에 한 여인이 물을 길러왔다. 그녀는 이미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의 여섯 번째 남자도 그녀의 진정한 남편이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영혼의 목마 름은 죄와 사망 때문에 오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해결 되는 문제였다.
②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해야만...
- 성도의 목마름은 죄와 사망으로 인한 탄식이요, 하나님을 찾는 갈망이다. 그녀는 예 수님에게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중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인가를 물었다. 그녀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그녀가 찾은 여섯 남자는 이미 잘못된 해결책이었다. 일곱 번째 남자도 해결책이 아니다. 죄와 사망에서 해방 받고 참 생명을 얻을 때 해결된다. 그래서 오직 예수이다.
③ 일곱 번째 남자를 찾고 있는 성도
- 많은 사람들이 수가성 여인처럼 고통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복음을 찾아 헤 매이고 있다. 자신의 고통은 자기주인됨의 죄에서 오는 것인데, 죄의 소욕을 십자가 에 못 박을 생각은 않고 자기주인됨을 충족시켜줄 일곱 번째 남자를 찾아다니고 계 속 목말라 한다.
④ 일곱 번째 남자를 데려다 주는 교회
-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바로 일곱 번째 남자를 데려다 주는 교회이다. 그곳에는 십자가에 못 박힘과 예수의 주되심은 없다. 부활생명이 없다. 사 람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 다른 곳이 주지 못하는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제공하려 노력한다.
- 그곳에서 목사의 설교는 음식점의 메뉴일 뿐이다. 손님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먹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설교를 듣고 순종하고 굴복함으로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 함이 아니다. 누가 나를 더 감동, 이해, 만족시키는가에 대한 평가만 있을 뿐이다. 그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만 부활생명을 얻은 하나님 백성은 없다.
(2) 베데스다 연못(요5장) – 이웃사랑은 없고 오직 자기만 있는 바알 우상 교회
① 소원을 성취하려 모여드는 교회
- 베데스다 연못이란 복음은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공해준다고 말하는 교 회이다. 그들은 복음은 병자에게 치유를, 가난한 자에게 재물을... 그 무엇이든 원하면 얻게 해준다고 말해준다. 단 조건이 있다. 연못 물이 움직일 때 누구든지 먼저 들어 가는 단 한사람에게만 해당된다.
- 실제로 베데스다 연못의 치유는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일 리가 없다. 성경 어디에도 기적의 연못을 증거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연못의 기적을 믿고 있다. 그것 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사람들 사이에 공공연히 믿어지고 있는 것이다
② 절박할수록 더 열심을 내게 하는 교회
- 베데스다 연못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 모두는 자기 나름대로의 한 가지 소원들을 가지고 있다. 38년된 병자처럼 절박한 처지의 사람도 있었고 그냥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어 온 사람들도 있다. 소원이 강하면 강할수록 연못 가까이 있기를 원한다. 더 절박하게 열심을 낸다.
③ 이웃사랑은 없고 오직 자기 소원성취만 있는 교회
- 베데스다 연못은 평소에 대화가 있고 친교도 있다. 연못 물은 아주 가끔 한 번씩 움 직이는데 그 외의 시간에 사람들은 서로 대화하며 지루함을 달랠 것이다. 그때에는 서로의 처지도 물어보고 안타까워하며 위로하기도 할 것이다.
- 그러나 어쩌다 물이 한번 움직이는 날이면 베데스다 연못은 돌변한다. 연못에 먼저 들어가려는 피 터지는 싸움이 생긴다. 이웃의 질병, 안타까운 사정은 없다. 오직 나만 있다. 그게 베데스다 연못의 본질이다. 평상시의 모습은 본모습이 아니다. 오늘날 교 회가 바로 그런 곳이 되어 있다.
(3) 십자가 복음으로 얻은 구원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타난다.
① 복음은 자기주인됨을 포기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것
-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주인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 하지 않고는 생명이 임하지 않는다.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 매 순간마다 자기주인 됨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순종해야 한다. 여기에만 죄로부터 자유함이 있고 생명의 기쁨이 있으며 구원이 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주님이시다. 나는 예수님의 종이고 신하이며 백성이고 자녀이 다. 돌봄과 사랑을 받는 자녀이지만 순종과 굴복해야 하는 백성임을 잊어서는 안된 다. 그리스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는 내 종이 아니다. 내가 예수님의 뜻 을 따라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매 순간 매 사건마다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묻고 행동하겠다고 결단한 사람이다.
②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되어 이웃사랑을 해봐야 함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성도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는 의미이다. 머리와는 연결된 눈과 손과 발이 각각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온전한 몸이 될 수 없다.
- 교회 성도들과의 몸으로 연결되어 하나됨은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 복음의 부분적 요 소가 아닌 본질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구원이다. 성도와 하나됨은 어렵고 고 통스럽다. 다른 사람의 주인됨과 나의 주인됨이 부딪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서는 안된다. 구원은 반드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기에 구원은 이웃에 대한 나의 태도의 변화로 감지될 수 있다.
- 회개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져온다. 지역교회에 속하고 성도들과 연결되어 야 한다. 혼자서 성경공부는 지식만족일 수 있다. 성도/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부딪 히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해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아직 멀었다
<적용>금송아지와 바알 우상 시대에 우리를 엘리야로 부르셨다.
(1) 그는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약5:17)
① 그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하심.
② 오직 나만 남았거늘... 7천명을 만나 보지 못함
③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있음
(2) 내 개인과 우리 교회가 엘리야의 사명을 감당하자.
① 주일예배에서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복음 진리를 배우고
② 토요 셀모임에서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되어 있음을 구체적으로 체험함으로
1. 아합과 이세벨 시대
(1) 아합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왕이었다.
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안정
- 아합은 아버지 오므리 왕이 세운 사마리아 성을 더욱 요세화하여 이스라엘을 굳건하 게 지켰다. 그는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죽기까지 강력 한 아람(시리아)의 두 차례 공격을 막아냈다. 심지어 카르카르 전투에서 앗수르 살만 에셀의 침공도 막아냈다.
- 아합의 통치 22년 동안 백성들은 제법 안정되고 부유하게 살았다. 시돈/페니키아로부 터 발전된 문물과 자원이 들어왔고, 경쟁국 남유다 왕국과 화친을 맺어 전쟁이 없었 다. 그는 에돔과 모압 역시 효과적으로 통치하여 조공을 받고 있었다. 아합은 정치 외교 군사등 다방면에서 유능했다.
② 아합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줌
- 사람들은 아합과 같은 정치가들을 좋아한다. 오늘날 아합이 선거에 나왔으면 대통령 도 되었을 것이다. 그는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었다. 풍요와 안정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가족을 잘 살도록 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 목사들 속에도 아합이 있다. 그들은 교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교회가 성장되고 공동체가 커짐으로 사람들의 커뮤니티 욕구를 충족시킴이다. 교인 들의 지적, 감정적, 문화적, 종교적, 관계적, 사회적 욕구를 모두 채워주는 일이다. 그 들에게 하나님 말씀은 순종이 아니라 활용의 대상이다. 그들은 매가 꿩을 잡는게 아 니라, 꿩 잡는 것을 매라고 부른다.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복음이라 부른다.
(2) 아합은 가장 악하고 위험한 왕이다.
① 백성들의 눈을 성공으로 가린 후 영혼을 노략질함
- 아합이 가장 악한 왕인 것은 백성들을 하나님과 단절되도록 만든 것이다. 아합은 물 질의 풍요를 주고 백성들의 영혼을 빼앗았다. 아이에게 사탕 한 알을 주고 집문서를 빼앗아 가는 것과 같다. 백성들을 풍요케 한 시돈의 문물은 바알의 독이 묻어있는 마약이었다. 백성들은 이세벨이 들여온 바알종교에 완전히 중독되었다.
②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 종교를 따라감
- 비록 분리되어 나갔지만 북이스라엘 10지파는 아브라함 자손이요, 출애굽과 모세의 율법으로 언약을 세운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제외한다는 것은 있 을 수 없다. 이전에 어떤 왕도 감히 이렇게 하지 못했다. 아합이 그렇게 했다. 심지어 남유다의 경건한 여호사밧 왕도 결혼동맹으로 인해 아합의 악한 영향력이 미치고 있 었다.
-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그러나 바알은 완전 다른 종 교였다. 아합은 하나님이 아닌 가나안 우상을 그대로 섬기게 했다. 비를 내리는 풍요 의 신 바알은 백성들이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마리아 성에 바알 산당을 세우고 이세벨이 직접 관리하는 왕실 소속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을 두었다. 아합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은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 종 교로 완전히 변질되어갔다.
2. 금송아지와 바알 우상에서 십자가 복음으로
(1)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요4장) – 금송아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① 잘못된 해결책을 찾아 고통당하고 있음
- 수가성은 사마리아 지방 세겜 옆에 있는 조그마한 성읍이다. 이 수가성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는데 그곳에 한 여인이 물을 길러왔다. 그녀는 이미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의 여섯 번째 남자도 그녀의 진정한 남편이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영혼의 목마 름은 죄와 사망 때문에 오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해결 되는 문제였다.
②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해야만...
- 성도의 목마름은 죄와 사망으로 인한 탄식이요, 하나님을 찾는 갈망이다. 그녀는 예 수님에게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중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인가를 물었다. 그녀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그녀가 찾은 여섯 남자는 이미 잘못된 해결책이었다. 일곱 번째 남자도 해결책이 아니다. 죄와 사망에서 해방 받고 참 생명을 얻을 때 해결된다. 그래서 오직 예수이다.
③ 일곱 번째 남자를 찾고 있는 성도
- 많은 사람들이 수가성 여인처럼 고통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복음을 찾아 헤 매이고 있다. 자신의 고통은 자기주인됨의 죄에서 오는 것인데, 죄의 소욕을 십자가 에 못 박을 생각은 않고 자기주인됨을 충족시켜줄 일곱 번째 남자를 찾아다니고 계 속 목말라 한다.
④ 일곱 번째 남자를 데려다 주는 교회
-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바로 일곱 번째 남자를 데려다 주는 교회이다. 그곳에는 십자가에 못 박힘과 예수의 주되심은 없다. 부활생명이 없다. 사 람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 다른 곳이 주지 못하는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제공하려 노력한다.
- 그곳에서 목사의 설교는 음식점의 메뉴일 뿐이다. 손님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먹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설교를 듣고 순종하고 굴복함으로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 함이 아니다. 누가 나를 더 감동, 이해, 만족시키는가에 대한 평가만 있을 뿐이다. 그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만 부활생명을 얻은 하나님 백성은 없다.
(2) 베데스다 연못(요5장) – 이웃사랑은 없고 오직 자기만 있는 바알 우상 교회
① 소원을 성취하려 모여드는 교회
- 베데스다 연못이란 복음은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공해준다고 말하는 교 회이다. 그들은 복음은 병자에게 치유를, 가난한 자에게 재물을... 그 무엇이든 원하면 얻게 해준다고 말해준다. 단 조건이 있다. 연못 물이 움직일 때 누구든지 먼저 들어 가는 단 한사람에게만 해당된다.
- 실제로 베데스다 연못의 치유는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일 리가 없다. 성경 어디에도 기적의 연못을 증거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연못의 기적을 믿고 있다. 그것 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사람들 사이에 공공연히 믿어지고 있는 것이다
② 절박할수록 더 열심을 내게 하는 교회
- 베데스다 연못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 모두는 자기 나름대로의 한 가지 소원들을 가지고 있다. 38년된 병자처럼 절박한 처지의 사람도 있었고 그냥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어 온 사람들도 있다. 소원이 강하면 강할수록 연못 가까이 있기를 원한다. 더 절박하게 열심을 낸다.
③ 이웃사랑은 없고 오직 자기 소원성취만 있는 교회
- 베데스다 연못은 평소에 대화가 있고 친교도 있다. 연못 물은 아주 가끔 한 번씩 움 직이는데 그 외의 시간에 사람들은 서로 대화하며 지루함을 달랠 것이다. 그때에는 서로의 처지도 물어보고 안타까워하며 위로하기도 할 것이다.
- 그러나 어쩌다 물이 한번 움직이는 날이면 베데스다 연못은 돌변한다. 연못에 먼저 들어가려는 피 터지는 싸움이 생긴다. 이웃의 질병, 안타까운 사정은 없다. 오직 나만 있다. 그게 베데스다 연못의 본질이다. 평상시의 모습은 본모습이 아니다. 오늘날 교 회가 바로 그런 곳이 되어 있다.
(3) 십자가 복음으로 얻은 구원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타난다.
① 복음은 자기주인됨을 포기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것
-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주인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 하지 않고는 생명이 임하지 않는다.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 매 순간마다 자기주인 됨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순종해야 한다. 여기에만 죄로부터 자유함이 있고 생명의 기쁨이 있으며 구원이 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주님이시다. 나는 예수님의 종이고 신하이며 백성이고 자녀이 다. 돌봄과 사랑을 받는 자녀이지만 순종과 굴복해야 하는 백성임을 잊어서는 안된 다. 그리스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는 내 종이 아니다. 내가 예수님의 뜻 을 따라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매 순간 매 사건마다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묻고 행동하겠다고 결단한 사람이다.
②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되어 이웃사랑을 해봐야 함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성도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는 의미이다. 머리와는 연결된 눈과 손과 발이 각각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온전한 몸이 될 수 없다.
- 교회 성도들과의 몸으로 연결되어 하나됨은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 복음의 부분적 요 소가 아닌 본질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구원이다. 성도와 하나됨은 어렵고 고 통스럽다. 다른 사람의 주인됨과 나의 주인됨이 부딪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서는 안된다. 구원은 반드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기에 구원은 이웃에 대한 나의 태도의 변화로 감지될 수 있다.
- 회개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져온다. 지역교회에 속하고 성도들과 연결되어 야 한다. 혼자서 성경공부는 지식만족일 수 있다. 성도/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부딪 히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해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아직 멀었다
<적용>금송아지와 바알 우상 시대에 우리를 엘리야로 부르셨다.
(1) 그는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약5:17)
① 그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하심.
② 오직 나만 남았거늘... 7천명을 만나 보지 못함
③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있음
(2) 내 개인과 우리 교회가 엘리야의 사명을 감당하자.
① 주일예배에서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복음 진리를 배우고
② 토요 셀모임에서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되어 있음을 구체적으로 체험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