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18)
Author
gospel323
Date
2018-07-25 17:24
Views
895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18)
1. 구원의 보증, 성령님 (고후5:5)
(1) 구원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회복이지 구원티켓 한 장이 아니다.
① 천국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자녀들이 있는 곳
- 가족들 모임에는 가족 아닌 사람은 숨어들어가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가족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이다. 천국도 마찬가지이다. 천국에는 수많은 성도가 있지만 내 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설령 숨어 들어갔다 해 도 단 일 분도 있을 수가 없다.
② 자기주인되던 죄인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인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임
- 천국은 천국행 티켓 한 장 소유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들어간다. 요즘 디지털 시대에는 비행기나 열차의 좌석 티켓을 검사하지도 않는다. 천국에서는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데 자녀가 아니면서 티켓 한 장 가 졌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실제 자녀가 아닌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간다 해도 전혀 생활이 불가능하다.
③ 천국에서 하나님께 순종 없이 자기 주인됨을 나타냄(=죄)는 있을 수 없음
- 정말 십자가에 자기주인됨을 못박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이때 하 나님이 그를 아시고 그도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 자녀관계가 회복된 다. 이 땅에서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자기 회사 사장님에게 앞에서는 순종하지만 뒤 에서는 별명을 부르며 반말한다. 이유는 내가 지금은 아랫사람이지만 실제 마음으로 는 당신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국에서는 그럴 수 없다. 하나님께 겉으로만 순종하고 속으로는 불순종함이 있을 수 없다. 실제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는 것 이다. 천국은 죄가 없다는 것이 이 말이다.
(2) 하나님은 구원(=부활)을 약속하시고, 오늘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① 성령님은 구원의 보증이심
- 죄인이 다시 하나님 자녀가 되는 구원은 우리 몸의 부활로 완성되고 그러한 사람들 이 모인 곳이 천국이다. 그래서 구원의 최종 마지막 완성/단계는 그리스도의 영광스 러운 모습과 같이 우리도 죄가 없는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②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따라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감(=그리스도와 연합)
- 하나님은 우리 구원의 완성을 분명하게 약속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 령님이 구원의 증거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님/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오늘을 살아가도록 하시므로 구원이 완성되도록 하신 것이다. 죄로 죽은 우리에게 지금 부활생명 주신 것이다.
-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고후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 나님이시니라”
③ 내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며 날마다 순종할 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임
- 내안에 구원의 보증으로 주신 성령님/ 그리스도를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면 그리스도 의 형상이 점점 나타난다. 점점 아담의 형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바뀐다.. 자기 주인됨을 완전히 없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 이것이 구원의 완성, 천국의 모습이며 바로 죄가 없는 부활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으로 인치셔서 구 원을 주셨음이 바로 이 말이다
2.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1) 우리의 구원은 유보된 것이 아니라 최종 확정되었다.
①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임
-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님의 인치심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지만, 그러나 그 이 전에 먼저 성부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원에 대한 어떠한 자랑 이나 공로주장도 할 수 없다. 우리가 한 것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 얻을 모든 방법과 과정을 다 준비하여 주시고, 그 구원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때 믿음 으로 받아들인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은 구원의 조건을 걸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님
- 오직 믿음이다. 우리가 구원을 유지하려면 어느 기준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없다. 이러한 조건이 있다면 구원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물과 은혜가 되지 못한다. 그것을 유지하려는 우리의 협력, 공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원에 대한 우리의 어 떠한 자랑도 있어서는 안된다. 자랑이 바로 죄이기 때문이다.
③ 마지막 심판대에서 우리 몸이 부활되고 영생의 상급을 얻을 것을 최종 확정해 주심
- 구원은 유보적이어서 미래에 가봐야 하는 불안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확정되었다. 하나님이 확증하셨고 선물로 주셨다. 구원은 우리 공덕과 확신의 여부에 달려있지 않다. 심판날 우리가 영생의 상급 얻을 것을 조금도 두려워 말라. ex>집 계 약서 사인
(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2절)
① 두렵고 떨림으로... 오해 말 것
- 구원을 이미 확정 받았다는 사람이 왜 두렵고 떨릴까?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두려운 것이라고 쉽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구절은 구원을 이루라는 뒷 구절과 연결 되어, 마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구원이 확정되지 않았고 유보되어 변동될 수 있으니 오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얻기 위한 행동을 하거나, 구원을 잃어 버리지 않기 위한 행동을 하라는 말처럼 들리기 쉽다.
- 그러나 두렵고 떨림으로는 구원을 잃어버릴까하는 두려움이 아니다. 구원자체가 하나 님과의 인격적 관계회복이다. 즉 구원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고 살아가는 것이다. 죄인이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데 두렵고 떨림이 없을까? 여기서 두렵고 떨 림은 공포가 아니라 경외함 곧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우리의 경건한 삶의 태도를 말 한다.
- 또한 두렵고 떨림은 우리가 여전히 죄인임을 아는 겸손한 태도를 말한다. 이미 구원 얻은 하나님 백성도 여전히 죄의 본성이 있다. 이것을 모르면 죄를 우습게 여기다가 크게 넘어진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나도 죄에 넘어질 수 있음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벌벌 떨며 공포 속에서 살라는 말이 아니다.
②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오늘 우리 삶에서 구원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
- 마지막 심판 후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죄의 오염이 없는 완전한 부활된 모습으로 변화된다. 이때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자기주인됨의 죄가 없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 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있고 우리는 하나님께 늘 감사와 신뢰를 드릴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인 부활이요 이러한 삶이 생명이요 영생이 다.
-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해 공덕을 쌓는 노력함이 아니다. 이미 얻은 구원을 오늘 너의 삶에서 이루어보라는 것이다. 아직은 죄인이지만 심판이후 완성 될 구원을 지금 체험하라는 것이다. 성도는 매일 삶에서 구원을 체험할 수도 체험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구원 얻은 성도도 지금 자기주인되어 죄 가운데 살아가면 죄 의 열매인 사망을 체험한다. 구원을 체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 은 오늘 구원을 체험하라는 것이다.
- 어떻게 오늘 구원을 이루고 부활생명을 체험할 수 있을까? 오늘 구원을 이루는 것 은 내가 성령님/ 그리스도께 순종할 때 온다. 십자가에 자기죽음을 선언하고 그리스 도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동참하 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때 하나님 나라 구원이 임한다. 부활생명을 체험한 다. 죄인의 형상이 점점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난다.
③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심
-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란 곧 죄인인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되는 구원이다. 즉 오늘 구원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 는 구원을 소망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신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 로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신다. 우리가 오늘 삶에서 구원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그런 마음을 품게 하시고 또 역사하시기 때 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 을까?
-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 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적용>“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빌2:14)
(1) 내게 큰 어려움을 준 사람에게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라. ex>요셉
① 내게 어려움을 준 사람에게 몰두하지 말 것
- 원망은 내게 어려움이 올 때 생기는 불평이다. 우리가 실제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명 백한 피해를 입고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그 사람에 대한 원망 이 나오겠지만 그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사단은 우리가 사람에 대한 원망에 빠져 헤 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심한 상처를 받게 한다.
② 내게 그 어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할 것
- 내게 어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 나를 향한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 사람이 내게 그런 일을 할 때 에 허락하셨을까?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다. 어려움을 실제로 준 그 사람보다도 그 어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사단에 게 속지 않는 것이다.
③ 원망과 불평에 잡혀있게 하는 것이 사탄의 목적임
-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내게 잘못을 준 그 사람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 에 대한 것은 하나님 손에 맡기고 나는 어려움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라. 우리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보다 내게 어려움을 준 그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불평에 잡혀 있을 때 사탄의 계획대로 끌려가는 것이다.
(2) 내가 다른 사람에게 원망과 시비의 대상이 돼서도 안된다. ex>야곱
① 야곱은 에서에게 원망의 대상이었음
- 요셉의 고통은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었지만, 야곱의 고통은 야곱의 잘못 때문이었다. 야곱은 에서에게 원망 받을 일을 했다. 야곱은 아버 지와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았다. 야곱을 통해 축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받아야 함을 배워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야곱의 잘못된 신앙을 20년간 하란에 서 고치셨다. 야곱의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 택 때문이지 야곱의 행위 때문이 아니다.
② 야곱의 행위는 20년 동안 에서의 마음에 원망을 갖게 함.
-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에서는 400명을 이끌고 야곱에게 달려간다. 야곱이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 한 것은 에서의 400명이 환영의 행렬이 아니다. 복수하러 오는 군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년간 원망에 잡힌 에서는 오랜 시간을 사탄에게 속고 실패하였다. 우리는 에서처럼 되지 말고 요셉처럼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을 발견해야 한다.
- 20년간 원망한 에서는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20년간 형 에서를 원망에 잡히게 한 야 곱은 잘했는가? 절대로 아니다. 그 일로 인해 야곱은 가족을 떠나야 했고, 하나님은 야곱이 하란에서 20년, 얍복강가에서, 디나 사건을 통해서 완전히 회개케 하신다. 가 나안에 남은 이삭과 그 가족도 행복하지 않았다.
- 가롯유다의 행위로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성취되었지만 가롯유다는 자신이 하나 님의 구원사역을 도운 자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가롯유다는 하나님의 사역을 도운 것이 아니라 악한 범죄행위를 한 것뿐이고, 오히려 하나님이 가롯유다의 악한 행위 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사용하셔서 십자가 구원 계획을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야곱도 마찬가지이다. 축복은 하나님이 주셔서 얻은 것이지, 야곱이 장자권을 뺏은 행위 때 문이 아니다.
③ 하나님은 야곱이 형 에서에게 용서를 구하게 하심
-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회개하였다. 그것은 살려달라는 기도였고 그동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옴에 대한 회개였다. 그 밤에 야곱은 하나님의 응답 을 받았다. 그러나 그 순간 에서와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에서와의 문제는 야곱이 에서를 만나 실제로 용서를 구할 때 해결되었다. 만약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거기서 끝내면 어땠을까? 야곱이 에서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어도 에서가 야곱을 용서했을까? 아니다.
- 영화 “밀양”에서 나오는 기독교 비판이 그것이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하 나님께만 용서를 구하는 기독교라는 것이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가해자가 스스로 자기를 용서하거나,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는 용서받았다고 하거나, 더 나아가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였는데 당신이 왜 나를 뭐라고 하느냐고 욱박지른다 면.... 이것은 진리 문제가 아니라 상식 문제다 넌센스다. 교회는 거짓회개와 용서를 남발하지 말고 바른 구원을 전해야 한다.
- 하나님은 구약의 속죄제와 속건제를 통해 용서받는 법을 말씀해주셨다. 하나님께 대 한 잘못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고,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피해자에게 용 서를 구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잘못을 피해자가 아닌 하나님께 구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용서도 말로 끝내지 말고 구체적으로 피해액수와 함께 1/5을 더하여 120% 배 상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이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3)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가자
① 원망과 시비는 자기중심성의 죄에서 나옴
- 원망은 다른 사람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고 시비는 잘못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 있 다고 따지는 행위다. 자기중심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의 교만한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② 성도와의 관계 속에서 원망은 하지도 말고, 주지도 말 것.
- 교회에서는 원망과 시비가 없어야 한다. 심지어 내게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이웃도 원망하지 말고 용서해야한다. 사단 때문이다. 원망을 하면 사단에게 당하고, 원망을 주면 하나님께 혼난다. 교회는 죄인들 나라에 파견된 천국 대사관. 천국열쇠임을 명 심하라. 교회는 심심해서 나오는 것 아니다.
- 고후2:11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③ 자기주인됨의 죄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임
- 죄는 어떤 노력과 방법으로도 이길 수 없다. 나는 죄의 노예이고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때만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다. 생명을 얻는다.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순종하며 부활생명으로 살아갈 때만 구원을 얻는다.
1. 구원의 보증, 성령님 (고후5:5)
(1) 구원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회복이지 구원티켓 한 장이 아니다.
① 천국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자녀들이 있는 곳
- 가족들 모임에는 가족 아닌 사람은 숨어들어가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가족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이다. 천국도 마찬가지이다. 천국에는 수많은 성도가 있지만 내 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설령 숨어 들어갔다 해 도 단 일 분도 있을 수가 없다.
② 자기주인되던 죄인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인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임
- 천국은 천국행 티켓 한 장 소유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들어간다. 요즘 디지털 시대에는 비행기나 열차의 좌석 티켓을 검사하지도 않는다. 천국에서는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데 자녀가 아니면서 티켓 한 장 가 졌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실제 자녀가 아닌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간다 해도 전혀 생활이 불가능하다.
③ 천국에서 하나님께 순종 없이 자기 주인됨을 나타냄(=죄)는 있을 수 없음
- 정말 십자가에 자기주인됨을 못박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이때 하 나님이 그를 아시고 그도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 자녀관계가 회복된 다. 이 땅에서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자기 회사 사장님에게 앞에서는 순종하지만 뒤 에서는 별명을 부르며 반말한다. 이유는 내가 지금은 아랫사람이지만 실제 마음으로 는 당신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국에서는 그럴 수 없다. 하나님께 겉으로만 순종하고 속으로는 불순종함이 있을 수 없다. 실제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는 것 이다. 천국은 죄가 없다는 것이 이 말이다.
(2) 하나님은 구원(=부활)을 약속하시고, 오늘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① 성령님은 구원의 보증이심
- 죄인이 다시 하나님 자녀가 되는 구원은 우리 몸의 부활로 완성되고 그러한 사람들 이 모인 곳이 천국이다. 그래서 구원의 최종 마지막 완성/단계는 그리스도의 영광스 러운 모습과 같이 우리도 죄가 없는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②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따라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감(=그리스도와 연합)
- 하나님은 우리 구원의 완성을 분명하게 약속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 령님이 구원의 증거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님/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오늘을 살아가도록 하시므로 구원이 완성되도록 하신 것이다. 죄로 죽은 우리에게 지금 부활생명 주신 것이다.
-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고후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 나님이시니라”
③ 내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며 날마다 순종할 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임
- 내안에 구원의 보증으로 주신 성령님/ 그리스도를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면 그리스도 의 형상이 점점 나타난다. 점점 아담의 형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바뀐다.. 자기 주인됨을 완전히 없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 이것이 구원의 완성, 천국의 모습이며 바로 죄가 없는 부활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으로 인치셔서 구 원을 주셨음이 바로 이 말이다
2.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1) 우리의 구원은 유보된 것이 아니라 최종 확정되었다.
①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임
-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님의 인치심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지만, 그러나 그 이 전에 먼저 성부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원에 대한 어떠한 자랑 이나 공로주장도 할 수 없다. 우리가 한 것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 얻을 모든 방법과 과정을 다 준비하여 주시고, 그 구원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때 믿음 으로 받아들인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은 구원의 조건을 걸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님
- 오직 믿음이다. 우리가 구원을 유지하려면 어느 기준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없다. 이러한 조건이 있다면 구원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물과 은혜가 되지 못한다. 그것을 유지하려는 우리의 협력, 공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원에 대한 우리의 어 떠한 자랑도 있어서는 안된다. 자랑이 바로 죄이기 때문이다.
③ 마지막 심판대에서 우리 몸이 부활되고 영생의 상급을 얻을 것을 최종 확정해 주심
- 구원은 유보적이어서 미래에 가봐야 하는 불안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확정되었다. 하나님이 확증하셨고 선물로 주셨다. 구원은 우리 공덕과 확신의 여부에 달려있지 않다. 심판날 우리가 영생의 상급 얻을 것을 조금도 두려워 말라. ex>집 계 약서 사인
(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2절)
① 두렵고 떨림으로... 오해 말 것
- 구원을 이미 확정 받았다는 사람이 왜 두렵고 떨릴까?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두려운 것이라고 쉽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구절은 구원을 이루라는 뒷 구절과 연결 되어, 마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구원이 확정되지 않았고 유보되어 변동될 수 있으니 오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얻기 위한 행동을 하거나, 구원을 잃어 버리지 않기 위한 행동을 하라는 말처럼 들리기 쉽다.
- 그러나 두렵고 떨림으로는 구원을 잃어버릴까하는 두려움이 아니다. 구원자체가 하나 님과의 인격적 관계회복이다. 즉 구원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고 살아가는 것이다. 죄인이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데 두렵고 떨림이 없을까? 여기서 두렵고 떨 림은 공포가 아니라 경외함 곧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우리의 경건한 삶의 태도를 말 한다.
- 또한 두렵고 떨림은 우리가 여전히 죄인임을 아는 겸손한 태도를 말한다. 이미 구원 얻은 하나님 백성도 여전히 죄의 본성이 있다. 이것을 모르면 죄를 우습게 여기다가 크게 넘어진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나도 죄에 넘어질 수 있음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벌벌 떨며 공포 속에서 살라는 말이 아니다.
②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오늘 우리 삶에서 구원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
- 마지막 심판 후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죄의 오염이 없는 완전한 부활된 모습으로 변화된다. 이때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자기주인됨의 죄가 없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 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있고 우리는 하나님께 늘 감사와 신뢰를 드릴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인 부활이요 이러한 삶이 생명이요 영생이 다.
-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해 공덕을 쌓는 노력함이 아니다. 이미 얻은 구원을 오늘 너의 삶에서 이루어보라는 것이다. 아직은 죄인이지만 심판이후 완성 될 구원을 지금 체험하라는 것이다. 성도는 매일 삶에서 구원을 체험할 수도 체험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구원 얻은 성도도 지금 자기주인되어 죄 가운데 살아가면 죄 의 열매인 사망을 체험한다. 구원을 체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 은 오늘 구원을 체험하라는 것이다.
- 어떻게 오늘 구원을 이루고 부활생명을 체험할 수 있을까? 오늘 구원을 이루는 것 은 내가 성령님/ 그리스도께 순종할 때 온다. 십자가에 자기죽음을 선언하고 그리스 도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동참하 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때 하나님 나라 구원이 임한다. 부활생명을 체험한 다. 죄인의 형상이 점점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난다.
③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심
-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란 곧 죄인인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되는 구원이다. 즉 오늘 구원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 는 구원을 소망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신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 로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신다. 우리가 오늘 삶에서 구원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그런 마음을 품게 하시고 또 역사하시기 때 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 을까?
-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 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적용>“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빌2:14)
(1) 내게 큰 어려움을 준 사람에게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라. ex>요셉
① 내게 어려움을 준 사람에게 몰두하지 말 것
- 원망은 내게 어려움이 올 때 생기는 불평이다. 우리가 실제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명 백한 피해를 입고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그 사람에 대한 원망 이 나오겠지만 그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사단은 우리가 사람에 대한 원망에 빠져 헤 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심한 상처를 받게 한다.
② 내게 그 어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할 것
- 내게 어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 나를 향한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 사람이 내게 그런 일을 할 때 에 허락하셨을까?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다. 어려움을 실제로 준 그 사람보다도 그 어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사단에 게 속지 않는 것이다.
③ 원망과 불평에 잡혀있게 하는 것이 사탄의 목적임
-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내게 잘못을 준 그 사람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 에 대한 것은 하나님 손에 맡기고 나는 어려움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라. 우리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보다 내게 어려움을 준 그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불평에 잡혀 있을 때 사탄의 계획대로 끌려가는 것이다.
(2) 내가 다른 사람에게 원망과 시비의 대상이 돼서도 안된다. ex>야곱
① 야곱은 에서에게 원망의 대상이었음
- 요셉의 고통은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었지만, 야곱의 고통은 야곱의 잘못 때문이었다. 야곱은 에서에게 원망 받을 일을 했다. 야곱은 아버 지와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았다. 야곱을 통해 축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받아야 함을 배워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야곱의 잘못된 신앙을 20년간 하란에 서 고치셨다. 야곱의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 택 때문이지 야곱의 행위 때문이 아니다.
② 야곱의 행위는 20년 동안 에서의 마음에 원망을 갖게 함.
-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에서는 400명을 이끌고 야곱에게 달려간다. 야곱이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 한 것은 에서의 400명이 환영의 행렬이 아니다. 복수하러 오는 군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년간 원망에 잡힌 에서는 오랜 시간을 사탄에게 속고 실패하였다. 우리는 에서처럼 되지 말고 요셉처럼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을 발견해야 한다.
- 20년간 원망한 에서는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20년간 형 에서를 원망에 잡히게 한 야 곱은 잘했는가? 절대로 아니다. 그 일로 인해 야곱은 가족을 떠나야 했고, 하나님은 야곱이 하란에서 20년, 얍복강가에서, 디나 사건을 통해서 완전히 회개케 하신다. 가 나안에 남은 이삭과 그 가족도 행복하지 않았다.
- 가롯유다의 행위로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성취되었지만 가롯유다는 자신이 하나 님의 구원사역을 도운 자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가롯유다는 하나님의 사역을 도운 것이 아니라 악한 범죄행위를 한 것뿐이고, 오히려 하나님이 가롯유다의 악한 행위 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사용하셔서 십자가 구원 계획을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야곱도 마찬가지이다. 축복은 하나님이 주셔서 얻은 것이지, 야곱이 장자권을 뺏은 행위 때 문이 아니다.
③ 하나님은 야곱이 형 에서에게 용서를 구하게 하심
-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회개하였다. 그것은 살려달라는 기도였고 그동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옴에 대한 회개였다. 그 밤에 야곱은 하나님의 응답 을 받았다. 그러나 그 순간 에서와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에서와의 문제는 야곱이 에서를 만나 실제로 용서를 구할 때 해결되었다. 만약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거기서 끝내면 어땠을까? 야곱이 에서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어도 에서가 야곱을 용서했을까? 아니다.
- 영화 “밀양”에서 나오는 기독교 비판이 그것이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하 나님께만 용서를 구하는 기독교라는 것이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가해자가 스스로 자기를 용서하거나,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는 용서받았다고 하거나, 더 나아가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였는데 당신이 왜 나를 뭐라고 하느냐고 욱박지른다 면.... 이것은 진리 문제가 아니라 상식 문제다 넌센스다. 교회는 거짓회개와 용서를 남발하지 말고 바른 구원을 전해야 한다.
- 하나님은 구약의 속죄제와 속건제를 통해 용서받는 법을 말씀해주셨다. 하나님께 대 한 잘못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고,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피해자에게 용 서를 구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잘못을 피해자가 아닌 하나님께 구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용서도 말로 끝내지 말고 구체적으로 피해액수와 함께 1/5을 더하여 120% 배 상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이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3)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가자
① 원망과 시비는 자기중심성의 죄에서 나옴
- 원망은 다른 사람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고 시비는 잘못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 있 다고 따지는 행위다. 자기중심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의 교만한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② 성도와의 관계 속에서 원망은 하지도 말고, 주지도 말 것.
- 교회에서는 원망과 시비가 없어야 한다. 심지어 내게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이웃도 원망하지 말고 용서해야한다. 사단 때문이다. 원망을 하면 사단에게 당하고, 원망을 주면 하나님께 혼난다. 교회는 죄인들 나라에 파견된 천국 대사관. 천국열쇠임을 명 심하라. 교회는 심심해서 나오는 것 아니다.
- 고후2:11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③ 자기주인됨의 죄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임
- 죄는 어떤 노력과 방법으로도 이길 수 없다. 나는 죄의 노예이고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때만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다. 생명을 얻는다.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순종하며 부활생명으로 살아갈 때만 구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