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오경(13) -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창24:1-9)
Author
GOSPEL323
Date
2026-01-1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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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예배 실황은 월요일에 주일설교 말씀만 남겨 두고 삭제됩니다.
오경(13) -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창24:1-9)
1. 마지막까지 사명을 다하는 아브라함
(1)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다.
- 소명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이고, 사명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이다. 하나님은 나를 불러(소명,calling) 어떤 일을 하도록(사명,mission) 맡기셨다. 리빙스턴의 말처럼 사명자는 사명을 다할 때까지 죽지 않는다. 사명이 끝나야 죽는다.
-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속에 들어있다. 모세는 120세까지 사명 감당했고, 야고보는 일찍 순교해서 사명 감당했다. 사명에는 차이가 없으며 사명을 마친 자의 죽음은 비극이 아닌 영광스러운 퇴장이다. 마지막까지 사명을 다하는 아브라함을 보자
2.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1) 아브라함이 하란으로 종을 보낸다.(창24장)
- 아브라함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 엘리에셀에게 이삭을 위하여 여인을 찾아오되 세 가지 조건을 말한다. 첫째, 가나안 여인인 아닌 자기 친족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여인으로 구해오라. 둘째, 신부에게 보여주려고 이삭을 가나안 땅 밖으로 데려가지 말라. 셋째, 신부는 종의 말을 듣고 이삭과 결혼하러 가나안으로 오겠다고 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 아브라함이 종을 하란으로 보낸 것은 여호와 신앙을 가진 며느리를 얻기 위함이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농사에 풍요를 주는 바알 아세라 아스다롯을 섬기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아는 바 여호와 신앙의 사람들은 하란에 있는 자기의 친족들뿐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종을 하란의 친족에게로 보내 이삭의 아내를 찾도록 했고, 야곱도 하란으로 가서 어머니의 오빠인 외삼촌 라반의 딸인 레아와 라헬과 결혼한다. 아들 손자 모두 하란의 친족과 결혼하고 우상숭배 하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지 않았다. 여호와 신앙 때문이다.
- 노아홍수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셋의 후손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원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창6:3) 결혼과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참된 신앙에 두어야 한다. 신앙이 약화되면 라멕의 성공과 가나안 여인의 아름다움을 따라가다 결국 신앙을 모두 잃어버린다. 참고로,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서술은 단순히 한 명의 아내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욕망에 이끌려 다수의 여성을 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건했던 셋의 후손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더니 여호와 신앙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가인 5대손 라멕의 폭력적이고 정욕적인 일부다처 결혼까지 따라 하며 네피림이 되어 버렸다. 완전 타락해 버렸다. 아브라함이 아들과 손자의 결혼을 가나안 여인과 금지한 이유이다.
- 다소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세워나가는 신앙생활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성경에서 배우는 아브라함의 신앙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를 알고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한 구원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인지 감격하는 것이다. 이 신앙은 내가 구원받은 성도로서 교회를 지키고 세워나가는 것을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고 살도록 만든다. 모두가 네피림 라멕의 성공신화에 도취되고 번영복음에 열광할 때 에녹과 노아가 바로 그런 신앙을 가졌다.
- 하란에 있는 친족들은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전해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갈데아 우르를 떠났다. 떠난 동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브라함의 말에 자신들도 우르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브라함에게만 임했고 친족들에게는 없었다. 가나안은 아브라함에게만 허락된 곳이었다. 어쨌든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 하란의 친족에게 종을 보내는 이유는 바로 여호와 신앙 때문이었다.
(2) 하나님께서 종이 리브가를 만나도록 인도하셨다.
- 아브라함은 종을 하란으로 떠나보내며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 것이라고 축복한다. 종은 하란으로 가서 성 밖 우물곁에 도착한 후 하나님께 이삭의 아내 될 여인을 순적히 만나도록 기도한다. 그는 낙타 열 필을 이끌고 왔는데 자신이 성에서 나온 여인 중에게 물을 달라고 하면 자신뿐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길어 먹도록 하는 여인을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자로 알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들인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만나게 하셨다. 아브라함의 기도대로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것이다.
- 종의 기도는 미신적인 점치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성취를 믿는 기도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 기도를 사용하셨다. 종의 기도를 "내가 이 행동을 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다"라고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기계적으로 조종해서는 안 된다. 요한 칼빈은 이 기도가 특별한 계시의 시대에 일어난 구속사적 사건임을 강조했다.
- 리브가의 행동이 다른 여인과 달랐던 것은 물을 달라는 종에게 물 한잔 주었을 뿐 아니라 10마리 낙타를 위해 물을 길어마시게 한 것이다. 낙타는 물을 매우 많이 먹기에 리브가는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우물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물을 계속 길어 올렸을 것이다. 리브가의 이런 태도는 물을 긷는 다른 여인들과 구분되는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 리브가의 행동을 본 종은 네가 누구의 딸이냐고 묻고 너의 아버지 집에 유숙할 수 있는 지를 묻는다. 리브가는 자신이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라고 말하며 유숙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정확했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녀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대로 그의 사자를 앞서 보내 친족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순적하게 만나게 해주셨다.
-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은 구약 이스라엘과 신약 교회를 탄생시키는 하나님 나라 구원역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오늘 우리가 체험하는 신약교회의 응답은 저절로 흘러가다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 구원언약을 친히 인류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만드신 결과이다. 신약교회를 체험하는 지금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삶에도 찾아오시고 섭리하신다.
-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 구원과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지켜야 한다. 칭의의 복음으로 영화의 구원을 바라보며 오늘 성화의 구원 속에서 살아야 한다.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감을 보증 받은 성도로서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실현된 교회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
- 참고로,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은 율법이 금하는 근친결혼 음행이 아니라 율법을 주시기 전 시대에 언약보존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다. 율법에서 근친결혼을 금지시킨 이유는 가나안 음란문화이기 때문이며 또한 생물학적 유전병 때문이기도 하다. 아브라함 당시 근친결혼을 해도 유전병이 없는 것은 사람들의 DNA가 오늘 우리 것보다 덜 망가졌기 때문이다.
(3)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에 묻혀 지금도 하나님의 언약을 전하고 있다.(창25장)
- 아브라함은 헤브론 막벨라 굴을 사서 하나님 나라 언약의 표지로 만들고, 이삭을 결혼시킨다. 또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또 다른 서자들 모두 재산을 주어 멀리 떠나보냄으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이삭과의 충돌을 미리 없앤다. 이로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 하고 175세에 죽는다.
- 175년 동안 아브라함 삶에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일한 것만 기록으로 남겨 우리에게 보석처럼 전달해 주셨다. 아브라함은 헤브론 막벨라 굴에 묻혀 지금도 우리들에게 하나님 나라 구원언약을 전달하고 있다. 다니엘서의 말씀처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아브라함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고 있다.(단12:3)
- 모든 사람은 죽는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출애굽의 모세도, 하나님 나라 왕국의 예표 다윗도... 죽었다. 사도들도 죽었고, 어거스틴 루터 칼빈...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을 정립시켜준 경건한 개혁신학자들도 모두 죽었다. 우리 모두 다 죽을 것이다.
-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고 육체는 썩어 없어지기에 이 땅에서 내 존재가 소멸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사람은 절대로 소멸되지 않는다. 잠시 후 부활의 날에 모든 육체가 살아난다. 신자 불신자 모두 부활해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용서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모습처럼 변화된다. 불신자는 아담의 죄가 그대로 드러난 가장 비참한 모습 그대로 부활한다. 그 모습은 죄로 가득 찬 사탄처럼 더럽고 추할 것이다. 물론 불신자가 부활하면 사탄과 똑같은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은 아니다. 죄로 더러워진 그 본질이 똑같다는 것이다. 성도가 죽어 천사되지 않듯 불신자가 죽었다고 사탄(귀신)되지 않는다. 그리스도 닮은 사람과 사탄을 닮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이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 갈6:7-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결론>모든 것은 사라지고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살아온 삶만 남는다.
1. 마지막까지 사명을 다하는 아브라함
(1)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다.
- 소명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이고, 사명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이다. 하나님은 나를 불러(소명,calling) 어떤 일을 하도록(사명,mission) 맡기셨다. 리빙스턴의 말처럼 사명자는 사명을 다할 때까지 죽지 않는다. 사명이 끝나야 죽는다.
-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속에 들어있다. 모세는 120세까지 사명 감당했고, 야고보는 일찍 순교해서 사명 감당했다. 사명에는 차이가 없으며 사명을 마친 자의 죽음은 비극이 아닌 영광스러운 퇴장이다. 마지막까지 사명을 다하는 아브라함을 보자
2.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1) 아브라함이 하란으로 종을 보낸다.(창24장)
- 아브라함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 엘리에셀에게 이삭을 위하여 여인을 찾아오되 세 가지 조건을 말한다. 첫째, 가나안 여인인 아닌 자기 친족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여인으로 구해오라. 둘째, 신부에게 보여주려고 이삭을 가나안 땅 밖으로 데려가지 말라. 셋째, 신부는 종의 말을 듣고 이삭과 결혼하러 가나안으로 오겠다고 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 아브라함이 종을 하란으로 보낸 것은 여호와 신앙을 가진 며느리를 얻기 위함이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농사에 풍요를 주는 바알 아세라 아스다롯을 섬기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아는 바 여호와 신앙의 사람들은 하란에 있는 자기의 친족들뿐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종을 하란의 친족에게로 보내 이삭의 아내를 찾도록 했고, 야곱도 하란으로 가서 어머니의 오빠인 외삼촌 라반의 딸인 레아와 라헬과 결혼한다. 아들 손자 모두 하란의 친족과 결혼하고 우상숭배 하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지 않았다. 여호와 신앙 때문이다.
- 노아홍수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셋의 후손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원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창6:3) 결혼과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참된 신앙에 두어야 한다. 신앙이 약화되면 라멕의 성공과 가나안 여인의 아름다움을 따라가다 결국 신앙을 모두 잃어버린다. 참고로,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서술은 단순히 한 명의 아내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욕망에 이끌려 다수의 여성을 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건했던 셋의 후손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더니 여호와 신앙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가인 5대손 라멕의 폭력적이고 정욕적인 일부다처 결혼까지 따라 하며 네피림이 되어 버렸다. 완전 타락해 버렸다. 아브라함이 아들과 손자의 결혼을 가나안 여인과 금지한 이유이다.
- 다소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세워나가는 신앙생활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성경에서 배우는 아브라함의 신앙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를 알고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한 구원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인지 감격하는 것이다. 이 신앙은 내가 구원받은 성도로서 교회를 지키고 세워나가는 것을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고 살도록 만든다. 모두가 네피림 라멕의 성공신화에 도취되고 번영복음에 열광할 때 에녹과 노아가 바로 그런 신앙을 가졌다.
- 하란에 있는 친족들은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전해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갈데아 우르를 떠났다. 떠난 동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브라함의 말에 자신들도 우르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브라함에게만 임했고 친족들에게는 없었다. 가나안은 아브라함에게만 허락된 곳이었다. 어쨌든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 하란의 친족에게 종을 보내는 이유는 바로 여호와 신앙 때문이었다.
(2) 하나님께서 종이 리브가를 만나도록 인도하셨다.
- 아브라함은 종을 하란으로 떠나보내며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 것이라고 축복한다. 종은 하란으로 가서 성 밖 우물곁에 도착한 후 하나님께 이삭의 아내 될 여인을 순적히 만나도록 기도한다. 그는 낙타 열 필을 이끌고 왔는데 자신이 성에서 나온 여인 중에게 물을 달라고 하면 자신뿐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길어 먹도록 하는 여인을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자로 알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들인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만나게 하셨다. 아브라함의 기도대로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것이다.
- 종의 기도는 미신적인 점치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성취를 믿는 기도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 기도를 사용하셨다. 종의 기도를 "내가 이 행동을 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다"라고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기계적으로 조종해서는 안 된다. 요한 칼빈은 이 기도가 특별한 계시의 시대에 일어난 구속사적 사건임을 강조했다.
- 리브가의 행동이 다른 여인과 달랐던 것은 물을 달라는 종에게 물 한잔 주었을 뿐 아니라 10마리 낙타를 위해 물을 길어마시게 한 것이다. 낙타는 물을 매우 많이 먹기에 리브가는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우물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물을 계속 길어 올렸을 것이다. 리브가의 이런 태도는 물을 긷는 다른 여인들과 구분되는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 리브가의 행동을 본 종은 네가 누구의 딸이냐고 묻고 너의 아버지 집에 유숙할 수 있는 지를 묻는다. 리브가는 자신이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라고 말하며 유숙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정확했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녀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대로 그의 사자를 앞서 보내 친족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순적하게 만나게 해주셨다.
-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은 구약 이스라엘과 신약 교회를 탄생시키는 하나님 나라 구원역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오늘 우리가 체험하는 신약교회의 응답은 저절로 흘러가다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 구원언약을 친히 인류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만드신 결과이다. 신약교회를 체험하는 지금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삶에도 찾아오시고 섭리하신다.
-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 구원과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지켜야 한다. 칭의의 복음으로 영화의 구원을 바라보며 오늘 성화의 구원 속에서 살아야 한다.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감을 보증 받은 성도로서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실현된 교회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
- 참고로,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은 율법이 금하는 근친결혼 음행이 아니라 율법을 주시기 전 시대에 언약보존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다. 율법에서 근친결혼을 금지시킨 이유는 가나안 음란문화이기 때문이며 또한 생물학적 유전병 때문이기도 하다. 아브라함 당시 근친결혼을 해도 유전병이 없는 것은 사람들의 DNA가 오늘 우리 것보다 덜 망가졌기 때문이다.
(3)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에 묻혀 지금도 하나님의 언약을 전하고 있다.(창25장)
- 아브라함은 헤브론 막벨라 굴을 사서 하나님 나라 언약의 표지로 만들고, 이삭을 결혼시킨다. 또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또 다른 서자들 모두 재산을 주어 멀리 떠나보냄으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이삭과의 충돌을 미리 없앤다. 이로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 하고 175세에 죽는다.
- 175년 동안 아브라함 삶에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일한 것만 기록으로 남겨 우리에게 보석처럼 전달해 주셨다. 아브라함은 헤브론 막벨라 굴에 묻혀 지금도 우리들에게 하나님 나라 구원언약을 전달하고 있다. 다니엘서의 말씀처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아브라함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고 있다.(단12:3)
- 모든 사람은 죽는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출애굽의 모세도, 하나님 나라 왕국의 예표 다윗도... 죽었다. 사도들도 죽었고, 어거스틴 루터 칼빈...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을 정립시켜준 경건한 개혁신학자들도 모두 죽었다. 우리 모두 다 죽을 것이다.
-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고 육체는 썩어 없어지기에 이 땅에서 내 존재가 소멸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사람은 절대로 소멸되지 않는다. 잠시 후 부활의 날에 모든 육체가 살아난다. 신자 불신자 모두 부활해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용서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모습처럼 변화된다. 불신자는 아담의 죄가 그대로 드러난 가장 비참한 모습 그대로 부활한다. 그 모습은 죄로 가득 찬 사탄처럼 더럽고 추할 것이다. 물론 불신자가 부활하면 사탄과 똑같은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은 아니다. 죄로 더러워진 그 본질이 똑같다는 것이다. 성도가 죽어 천사되지 않듯 불신자가 죽었다고 사탄(귀신)되지 않는다. 그리스도 닮은 사람과 사탄을 닮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이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 갈6:7-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결론>모든 것은 사라지고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살아온 삶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