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미가(2) -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미6:6-16)

Author
GOSPEL323
Date
2024-06-1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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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2) -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6:6-16)

1.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백성.

(1) 아브라함 언약은 옛언약과 새언약으로

-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구원 얻은 언약백성의 조상이다(갈3:5).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구원의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창12: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창15:6)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 이삭으로 말미암은 이들을 아브라함 자손으로 부르시고(롬9:8)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셨다(창17:7). 아브라함 언약은 그리스도의 새언약으로 성취되며 그 전에 먼저 옛언약의 율법과 성막으로 계시되었다.

(2)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

- 옛언약 이스라엘, 유대인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하나님 백성의 모델이 되었다. 구약 이스라엘(유대인)은 온 인류에게 율법과 성막을 나타내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탄생시키실 새 이스라엘 하나님 언약백성의 토대요 모형과 예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모형과 예표는 그 역할을 종료하고 새 이스라엘로 대체되었다.

- 새언약 이스라엘, 신약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서 예수 믿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다. 율법과 성막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므로,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는 유대인도 제사와 율법이 아닌 예수를 믿어야 하나님 백성이 된다. 이제 옛언약의 혈통적 이스라엘 유대인은 그 역할을 다했다. 그들도 예수 믿어야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된다.

2.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1) 율법은 죄인에게 거룩함을 요구한다.

- 아브라함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을 그리스도 새언약을 의미한다. 시내산 율법은 그리스도 새언약에 이르도록 주신 한시적이고 모형적인 언약이다(옛언약). 율법은 출애굽 백성들에게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요구한다. 거룩은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는 것이다.

- 에덴에서 아담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하는 판단자가 되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면 선(좋음)이고 그게 의(옳음)이다. 그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선(토브)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의 바른 길에서 벗어난 죄(하말티아)이다. 아담의 범죄로 죄인은 하나님의 의의 길로 알지도 못하고 행할 수 없게 되었다.

- 율법은 출애굽 백성들에게 삶에서 죄와 의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죄인은 자기가 옳은대로 행한다(=죄). 죄인은 하나님께서 옳고, 맞고, 바르다고 하시는 것(=의)를 알지도 못한다. 사람에게 성령이 떠나셨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섬기지도 못한다. 그들은 에덴의 삶(생명)이 없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으로 에덴의 삶을 보여주시며 죄와 의가 무엇인지 직접 말씀해 주셨다.

- 율법은 죄인들에게 네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죄)를 버리고 하나님이 맞다고 하시는 것(=의)를 행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기에 성막규례를 통하여 죄용서 받는 길을 주셨다. 율법은 사람의 죄악 행동을 제어할 뿐 사람 마음의 죄 본성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인은 스스로 율법이 제시하는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할 수 없다.

- 율법으로는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 율법은 성막규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게 한다. 율법의 속죄제사는 지은 죄를 용서받게 할 뿐 죄인을 의롭게 만들지는 못한다. 죄인이 제사드리면 죄용서 받고 형벌면제가 되지, 의를 행하는 의인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제사드린다고 의인되는 것이 아니다.

- 그러므로 옛언약 율법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구원 받는 새언약을 위해 한시적 모형적으로 주신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율법이 있어야 은혜를 알게 된다. 율법이 있어야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구원 받음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옛언약 율법은 모형과 그림자로서 그리스도 새언약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임을 밝히 드러내준다.

(2)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

-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신6:5)과 네 이웃을 사랑함이(레19:18) 율법의 핵심내용이며 대강령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들은 이 율법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의 세 가지 성품을 말한다. 아모스(공의,정의=체데크) 호세아(인자,인애=헤세드) 이사야(겸손,온유=아나브)이다. 미가는 이 세 선지자들이 말한 세 성품을 종합해서 말한다.

- 미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공의를 행하고” 공의(체데크)는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시는 것(=의)을 말하고, 정의(미쉬파트)는 법정적 법규의 의미로 하나님의 의가 사람들 사이에서 시행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체데크와 미쉬파트를 세밀히 구분할 필요 없다. 본문은 미쉬파트(정의)를 체데크(공의)로 이해해도 문제없다. 아모스는 사회정의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의는 물같이 정의는 하수같이...”(암5:24) 행해야 한다고 책망했다. 아담이 범죄하지 않고 자녀를 낳았다면 하나님 나라 에덴 백성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 사이에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죄=자기 의)을 행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살아갈 것이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언약백성은 자기 의(죄,self righteousness)가 아닌 하나님이 옳고 맞고 바르다고 하시는 공의(체데크)를 따라 이웃과 사회에게 정의(미쉬파트)를 행하라고 한다.

- 예수님은 주기도에서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기도하라 하셨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 속에서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의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구하시고 그 길로 행하셨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공의를 행하신 가장 좋은 표본이다.

- “인자를 사랑하며” 인자(仁慈,mercy)와 인애(仁愛,mercy)는 자비, 사랑과 같은 뜻의 단어이며 히브리어 헤세드이다. 헤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에 기반을 둔 인자와 인애를 말한다. 호세아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미가도 하나님은 인자를 원하고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지 않는다고 했다(미6:7)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는 일(체데크)을 하되, 사랑과 자비의 인애와 인자(헤세드)를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시행해야 한다.

- 정의 없는 사랑은 자녀를 타락시키고, 사랑 없는 정의는 자녀를 파괴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인들을 대하셨다.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혈루증 여인, 세리장 삭개오, 귀신들린 사람, 병든 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헤세드(인애)를 가지고 체데크(공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다.

-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언약문구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행하시고, 장막을 치시고...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순종하고, 따르고... 모두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임을 표현하는 문구이다. 겸손과 온유는 같은 말이다. 둘 다 히브리어 아나브를 쓴다. 겸손은 자기가 피조물임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마음 자세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주장을 할 수 없다. 그에게는 자기 의(=뜻)가 없다. 내가 피조물이고, 죄인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 얻은 사람임을 알 때 그의 태도는 겸손해지고 온유해진다. 이는 사람사이에서도 그렇다.

- 이사야는 고난 받은 여호와의 종 첫 번째 노래(사42장)에서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는다고 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로 와서 배우라고 하셨다(마11장)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겸손과 온유의 삶을 보여주셨다. 이처럼 미가는 아모스의 체데크(공의,정의), 호세아의 헤세드(인애,인자) 이사야의 아나브(겸손,온유)를 율법을 지키는 언약백성의 성품을 말해주고 이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의 성품이다.

- 사42:1-4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3) 성령이 임해야 공의, 인자, 겸손의 거룩한 성품을 가질 수 있다.

- 처음부터 율법은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주신 것이 아니다. 율법은 아담의 죄를 용서받고 성령내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칭의를 얻어야 지킬 수 있음을 하나님이 잘 아신다. 그래서 속죄제사를 주셨고 대제사장과 속죄일(욤키프르) 규례를 주셨다. 공의 인자 겸손의 성품이 없는 죄인에게 그러한 에덴의 삶을 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것을 아시고 율법을 주셨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율법 지켜 구원 얻으라고 하심이 아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모형과 예표, 그림자로서 주셨다. 옛언약은 그리스도 새언약이 오실 때까지 한시적이다.

- 성령이 임해야 죄인은 에덴의 성품을 가질 수 있다. 율법은 성령이 임해야 지킬 수 있고 성령이 임하려면 죄용서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죄용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소 우리를 위하여 대속죄물로 죽으셔야만 가능하다. 구원은 십자가에서 시작되고 십자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십자가 죄용서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부활과 성령강림의 칭의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려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죄용서를 받게 하셨다. 성령내주 칭의가 없다면 십자가는 우리에게 능력이 되지 못한다. 오늘 우리 삶에서 죄를 이길 수 없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죄용서를 주시고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영원한 언약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죄인이 체데크(공의) 헤세드(인애) 아나브(겸손)를 가지게 되었다. 지킬 수 없던 구약율법은 성령강림을 통해서 지키게 되었다.

- 구약율법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가르친다. 특히 구약의 절기는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구원을 예표 한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내 앞에 절기를 지키리라”(출5:1) 하셨다. 이스라엘은 율법에 기록된 절기를 대대로 지켰고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 절기를 철저히 지킨다. 그런데 하나의 절기는 성경에 지켜진 기록이 없다. 희년이다.

- 희년(Jubilee)은 구원을 예표하는 가장 큰 절기이다. 7번의 안식년 곧 50년째 되는 안식년이 희년이다. 7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은 개인의 구원을 기억케 한다. 개인은 안식일을 지키며 죄가 가져온 노동의 극심한 고통에서 해방되고 에덴의 생명을 잠시 기억한다.

-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은 나라 전체가 구원을 얻는 것이다. 희년이 되면, 백성들 사이에서 49년간 전당잡힌 토지를 돌려주고, 49년간 노예 되었던 사람을 해방시켜 준다. 희년이 되면 이스라엘은 죄로 인한 사망의 고통이 없어지고 다시 에덴의 안식 곧 생명으로 돌아가게 된다(초기화 리셋). 희년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는 구원의 완성이다.

- 희년은 구약에서 시행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히스기야 요시야 때 국가적으로 유월절을 지켰다는 기록은 있으나 희년을 실행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학자들 중 희미한 몇 구절을 가지고 구약에 희년이 지켜졌다 주장하기도 하나 토지를 돌려주고 노예를 풀어주는 희년율법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국가적으로 지켜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윗 솔로몬도 희년을 선포하지 못했다. 희년은 현실국가에서 실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희년을 전 국가적으로 시행하면 큰 부작용이 생긴다. 가난한 자는 희년이 가까우면 돈을 일부러 빌리고 토지나 가옥을 무조건 판매할 것이다. 부자는 이것을 뻔히 알기에 희년이 가까이 오면 사지 않고 빌려주지도 않을 것이다. 가난한 자는 희년을 생각하며 일 안하고 돈 빌리고, 부자는 희년에 돌려줄 것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희년은 사람의 소유본능(=죄)과 반대되는 것이기에 강제적으로 시행하기 어렵다.

- 희년이 시행되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 그것은 가진 자들이 자발적으로 기쁘게 토지와 사람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는 죄의 욕심을 가진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 거룩한 사람으로 바뀔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희년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인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때만 지킬 수 있다. 희년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보여주는 구속사의 최종완성 예표 절기이다.

-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나사렛 회당에서 구약 이사야 61장을 읽으시며 희년을 선포하셨다.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주의 성령이 임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 희년이 도래한다고 선포하심이다. 오순절 초대교회의 자발적 기쁨의 구제가 바로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 희년의 성취였다. 성령이 임하면 사람은 희년의 율법을 저절로 지키게 된다.

- 눅4:16-21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주의 은혜의 해(=희년)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 행2:44-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성령이 없이 살아가는 죄인의 특징은 무엇일까? 재물(맘몬)을 신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삶이다. 성령 받은 초대교회 제자들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했다. 물론 기독교는 무소유 공동체가 아니다. 자기 삶을 유지할 기본적인 것은 남기고 나머지를 다 팔아 구제함이다.

- 성령 받은 성도들은 가난한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 자기가 가진 여분의 재물들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마음이 생겼다. 그들은 희년율법을 억지로 지킨 것이 아니라 희년율법을 지킬 수 있는 거룩한 사람이 된 것이다. 성령이 임하면 지킬 수 없는 희년율법도 넉넉하게 지킨다. 공의 인자 겸손의 사람이 된 것이다.

<결론 및 적용>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거룩해진다.

(1) 모든 사람은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다.

(2) 죄용서 받고 칭의와 성화의 복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