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스가랴(2) -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사탄 (슥3:1-10)

Author
GOSPEL323
Date
2023-11-0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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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2) -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사탄 (3:1-10)

1. 스가랴 선지자

(1) 건물성전 건축예언

- 스가랴의 성전건축 예언은 다리오왕 2년 BC520년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포되었다. 건물성전은 예수님 오시기 약 500년 전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중요한 모형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모세의 성막계시와 율법규례들이 예수님 오시기 약 1500년 전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놀라운 구원계시인 것과 같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는 스룹바벨 건물성전을 지으라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다.

- 스룹바벨 성전건축이 약 10여년을 중단되고 있던 때였다. 대적들의 반대는 심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의 삶은 매우 고단했다. 그들은 바벨론의 기반을 모두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정착해야 했다. 그들은 성전건축과 함께 자기 집도 지어야 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성전건축 중단이 점점 길어지자 백성들은 점점 여호와 신앙마저 흔들리게 된다. 처음부터 성전건축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성전건축이 중단된 것은 하나님이 바벨론 마루둑 신보다 약하기 때문인가?

(2) 스가랴가 본 여덟 환상

- 이때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하고 그 성전의 실체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하신다. 다리오 2년 11월 24일 밤에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여덟 환상을 주셨다. 여덟 환상은 하룻밤에 연속해서 나타났다. 내용은 성전건축과 그 방법(성령과 순)에 관한 것이며 그중 넷째 환상, 다섯째 환상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 두 환상을 집중적으로 보고 나머지 여섯 환상은 가볍게 넘어가겠다. 오늘은 첫째 둘째 셋째 환상과 넷째 환상이다.

- 첫째 환상은 홍마탄자(그리스도)께서 천사들(백마,흑마,홍마탄자)에게 온 세상을 두루 다녀 어떠한지 보고 오라고 하신다. 그들이 돌아와 이스라엘을 해친 온 열국은 평안히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슥1:12) 하매 하나님께서 열국들에게 진노하시겠다 말씀하시며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슥1:16) 하신다.

- 첫째 환상은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회복을 탄원하시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시 거하시겠다 하시며 그 증표로 스룹바벨 성전을 다시 건축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전체 선언이다. 이 선언이 둘째 셋째 환상에서 구체적으로 예언 되고, 넷째 다섯째 환상은 그 성전을 지을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총독(왕) 그리고 순으로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고, 여섯째 일곱째 환상은 성전이 지어진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을 준행하는 거룩한 나라가 된다는 내용이며 마지막 여덟째 환상은 천사들이 다시 열국으로 흩어져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멸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된다는 내용이다.

- 둘째 환상은 하나님께서 네 뿔을 보여주시고 네 대장장이(craftsmen)가 그 네 뿔들을 부수는 것이다. 이것을 천사가 해석해 주었다. 네 뿔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열국들이며 네 대장장이는 하나님께서 네 뿔(이스라엘의 대적들) 징벌할 도구로서의 나라와 백성들이다. 둘째 환상은 이스라엘을 헤치고도 평안히 있는 열국(대적들)을 하나님께서 징벌하시겠다는 예언이다. 넷은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땅의 수로서 온 세상을 의미한다(계7:1)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네 생물은 네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사람(하나님 대리통치자) 사자(들짐승의 왕) 독수리(날짐승의 왕) 소(가축의 왕) 땅의 모든 짐승을 대표한다. 요한계시록은 네 생물이 각각 한 얼굴씩(계4장) 에스겔은 그 네 생물이 네 얼굴로 동서남북을 향해 등을 맞대고 붙어있어 한 생물의 네 얼굴 같은 묘사이다(겔1장)

- 셋째 환상은 천사가 측량줄로 예루살렘성의 장광(가로세로)를 척량하는 환상이다. 이는 지금 황폐한 예루살렘이 다시 큰 성이 되고 백성의 수가 많아지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으로 회복된다는 환상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슥2:5) 예루살렘이 다시 하나님의 성이 되고 하나님이 그 가운데 거하신다는 예언이다. 첫째 둘째 셋째 환상은 이정도로 가볍게 넘어가고 본론에 해당하는 넷째 환상에 집중하자.

2.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사탄

(1) 하나님 보좌 앞에 사탄이 등장하는 문제 (1절)

- 넷째 환상은 하나님의 어전회의(御前會議)에서 사탄이 등장해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참소)한다. 하나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죄를 깨끗케 하시고 그에게 정결한 관(제사장 모자)와 정결한 제사장 의복을 입히시는 내용이다. 어명은 왕의 명령이듯 어전회의란 왕이 참여하고 왕이 주재하는 회의이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좌정하시고 세라핌의 수종을 받으시고 시위(곁에서 지킴)하는 게루빔으로 둘러싸여 있는 하나님의 보좌(메르카바)가 그려진다(단7:9-10)

- 넷째 환상의 핵심이 아니지만, 우리를 혼란시키는 내용이 있다. 하나님의 어전회의에 사탄이 참여해서 하나님과 대화 하고 있음이다. 욥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탄이 욥에 대하여 하나님께 말을 하고 하나님은 대답하심이다. 지금 하나님은 사탄하고 대화하시는가? 사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당하게 욥을 두고 협상(거래)할 수 있는 대단한 존재인가? 아니다.

- 환상은 하나님께서 계시내용을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임의로 만들어내신 특별그림이다. 환상에서 본 그대로 하늘나라에 실재함이 아니다. 요셉에게 절한 해달별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보게 될 해달별이 아니다. 다니엘이 본 네 마리 짐승은 천상에 실재하지 않는다. 하늘나라에는 날개달린 머리 넷의 표범이 없다. 베드로가 본 보자기 환상은 천국에는 동물을 보자기에 담아 옮김을 말함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의 환상들도 모두 그렇다. 환상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나님께서 계시내용을 담아 임의로 만드신 그림이다.

- 하나님의 보좌 앞에 사탄이 나아가 당당하게 말함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어전회의 환상은 사탄은 사람의 죄를 참소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그림언어일 뿐이다. 실재가 아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피해 멀리 어두운 곳에 숨어 하나님께서 죄인을 자기처럼 벌 주시는가 아닌가만 지켜보고 있다. 이것을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어전회의로 표현하신 것뿐이다.

- 욥에 대해서도 그렇다. 사탄은 욥에게 고통을 주어 시험한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악한 일은 하나님이 직접 행하심이 아니다. 사탄이 행한 일이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허용하신 일과 허용하신 한도까지만 시험할 수 있다. 이게 욥기에 나오는 사탄 이야기의 핵심이다. 사탄이 하나님과 당당하게 대화하고 하나님과 협상(거래,딜)함은 사실이 아니다.

(2)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죄를 정결케 하신다 (4절)

- 본론으로 돌아와, 환상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고 사탄은 그것을 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 대제사장의 죄를 참소하고 있다. 이는 당시 실존인물 여호수아 개인의 죄를 말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악을 상징할 수도 있다. 내용의 핵심은 대제사장은 정결한 예복을 입어야 하는데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죄로 더러워진 옷을 입고 있다. 그러므로 건물성전이 세워져도 성전의 핵심인 속죄제사와 지성소로 나아감이 불가능하다. 결국 건물성전이 다시 세워져도 성전제사를 드릴 대제사장이 부정하다는 낙심된 현실이다.

-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슥3:2)였다. 그들은 완전히 망했고 아무데도 쓸모없다. 그들은 우상숭배로 인해 나라가 멸망을 당했다. 그들은 바벨론에 끌려가 70년간 포로생활을 했다. 그들은 바벨론 사람들로부터 성전에서 부르는 노래를 불러보라고 조롱 받으며 바벨론 강가에서 울고 있었다(시137편). 예루살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성전은 파괴되고 제사와 율법은 없어졌다. 이스라엘은 더러운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같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입은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정결한 옷을 입히신다. 하나님은 그에게 정결한 관(대제사장 모자)를 씌우신다.

- 죄사함과 정결함은 하나님께로서 나온다. 구원은 우리와 협력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이다.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먼저 일방적으로 주시기에 죄인인 우리가 삶에서 거룩함/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가 있다. 물론 우리의 결단과 행위가 필요하지만 근원은 하나님께로 부터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셔야 성화가 시작된다. 협력구원은 없다. 구원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단독행위이다.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의 행위에서 나온 결과이다.

-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하나님은 쪼개진 짐승 가운데를 횃불의 모습으로 혼자 지나가셨다(창15장). 아브라함은 쪼갠 짐승 사이를 지나가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언약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 짐승 사이를 지나가면 그는 백번이고 죽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혼자 지나가셨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여 자기백성 삼으심을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자기 이름을 걸고 스스로 언약을 체결하셨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죄인들 가운데 거하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순간 죄인들은 죽기 때문이다. 거룩은 우리를 얽어매는 종교행위가 아니다. 거룩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은혜요 축복이다. 하나님은 거룩을 우리의 과제로 넘겨주지 않으시고 성령을 통해 직접 이루어주신다. 그래서 복음이다.

(3) 내가 내 종 순이 나게 하리라 (8절)

- 하나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들이 건물성전을 짓지만 그 성전은 참된 성전이 아니다. 너희들은 장차 후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symbol)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왕) 스룹바벨을 통해 건물성전을 짓는 것은 후에 순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세우실 참된성전 신약교회를 예표하는 일이다.

- 순은 당시 성전을 건축하는 왕(총독) 스룹바벨도 아니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아니다. 스가랴는 그 두 사람이 성전을 건축하지만 그들을 순이라 지명하지 않는다. 순은 미래에 오셔서 왕과 제사장의 직무를 동시에 수행하시는 한 사람이다(슥6장). 순은 참된 성전을 지으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놀라운 예언이다. 영어성경은 순을 the branch(가지)로 번역했다. 이새의 뿌리에서 나는 가지를 말함이다(NIV,KJV,NASB,ESV)

- 슥3: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너희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 슥6:12-13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 순(branch)은 다윗의 줄기에서 나오는 싹이며 다윗의 뿌리에서 나오는 가지를 말한다(사11:1-2) 순은 다윗에게서 난 한 의로운 가지(렘23:5-6)이며,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목자요 왕이다(겔34:23-25) 순은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시다(사11장,롬15장). 순은 한때 두때 반때의 일곱 인봉을 여시는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이다(단12장,계5장)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순에 관해서는 스가랴 6장에서 더 자세히...

<결론 및 적용>우리는 스가랴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고 있다.

(1) 최후의 심판과 부활의 예언만 남았다.

- 오늘 우리는 구약 선지자들의 모든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시대에 살고 있다. 여호와의 날, 이스라엘의 회복, 남은 자, 이사야의 새하늘과 새땅, 예레미야의 새언약, 에스겔의 새성전. 다니엘의 70이레, 요엘의 성령강림... 이 모든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고 주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로 완성될 것만을 남겨두고 있다.

- 이는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아무도 부인 못할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확고한 증거이다.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심으로 이루어진 놀라운 은혜였다. 구약의 거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다면 마지막 몇 개 남은 최후의 심판과 부활, 새하늘과 새땅 예언도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2) 성령의 열매를 체험하며 부활생명을 확인

- 우리는 지역교회를 섬기며 이것을 기다리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노아는 혼자였다.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았다. 사람들은 방주 짓는 노아를 이상하다고 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세상에 취해 살았다. 그들은 그렇게 9백년을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자신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계시를 우습게 여긴다. 성도들도 주의 심판을 생각지 않고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 죄인은 십자가를 믿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해진다는 것이 복음의 본질이다. 교회가 거룩함을 너무 소홀히 생각하고 있다. 거룩함이 없다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거하실 수 없다. 거룩함을 자기 힘으로 만들어 내려하니 문제다. 거룩함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주신다고 하신다. 이것이 복음인데 교회가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성령을 받아야 부활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오늘 부활생명을 가진 자가 마지막 심판날 부활영생을 얻는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무엇이 중요한가? 예수 믿고 성령 받아 부활생명 얻음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구약의 모든 예언은 그것을 귀결된다. 노아처럼 묵묵히 방주 짓고 살아가자.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