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스가랴(1) - 참된 성전과 그리스도 (슥1:1-6)

Author
GOSPEL323
Date
2023-10-22 21:15
Views
548

스가랴(1) - 참된 성전과 그리스도 (1:1-6)

1. 스가랴 선지자

(1) 고레스 칙령과 성전건축

- 스가랴 선지자는 학개 선지자와 함께 1차 귀환 후 성전건축을 배경으로 예언 사역을 하였다. 고레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로 돌아가라고 칙령을 내린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이 칙령으로 요시야의 4대손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해서 약 5만명이 돌아왔다. 학개, 스가랴도 그들 중 하나이다(1차귀환,BC537).

- 예루살렘에 돌아온 다음 해(BC536) 2월 예루살렘 성전재건이 시작되었다. 그들 중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보았던 노인들은 스룹바벨 성전의 초라함을 보며 울었다. 이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건축을 방해한다. 그들은 여로보암의 금송아지와 앗수르 우상들을 섬기며 사마리아 그리심산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다시 세워지면 자신들의 종교가 우상숭배 혼합주의로 밝혀짐을 두려웠던 것이다.

- 사마리아 사람들은 페르시아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며 성전건축 공사를 방해하고 지연시켰다. 그들은 페르시아 왕에게 거짓상소를 올려 예루살렘 성전건축을 중단시킨다(스4장) 이로인해 성전건축은 다리오왕 2년(BC520)까지 약 10여년간 중단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성전건축의 열기는 점점 식어져 갔다.

(2) 성전과 그리스도를 예언

- 이때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그 말씀은 다리오왕 2년 6월에 학개 선지자에게 임했고, 두 달 후 다리오 2년(BC520년) 8월에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했다. 두 선지자 모두 바벨론에 의해 무너진 여호와의 성전의 재건을 예언하나 그 강조점은 약간 달랐다.

- 학개 선지자는 주로 건물성전 건축을 독려하는 말씀을 전했고, 스가랴 선지자는 건물성전과 함께 그 성전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성전을 예언했다. 스가랴서는 시편 이사야서와 함께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약성경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3) 그리스도 예언을 예수님이 직접 자신에게 인용하심

- 하나님은 베드로의 입을 통해 요엘 선지자가 말한 성령강림 예언이 오순절 초대교회에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다. 이 선언 때문에 지금이 구약에서 예언한 새언약 시대, 여호와의 날(말세)... 임이 확증되었다. 새언약의 성령은 이미 임하셨고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부활은 하나님 보좌에 앉은 주님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 위함이요, 십자가는 성령을 부어주기 위하여 우리 죄를 대속하심이다. 요엘서의 성령강림 예언은 이처럼 중요하다.

- 스가랴 선지자는 포로귀환 후 스룹바벨 성전건축 상황에서 두 가지를 예언한다. 전반부(1-8장)는 하나님께서 순(branch, 다윗의 줄기)를 보내 성전을 짓게 하신다는 것과 후반부(9-14장)은 그 성전을 짓는 순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지으실 참된 성전/신약교회에 대해서 예언한다. 스가랴 예언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는 과정 속에 직접 자기에게 인용하심이다. 스가랴서와 요엘서가 소선지서의 꽃이다.

2. 참된 성전과 그리스도

(1)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 성전을 파괴하심

- 점점 이스라엘은 솔로몬 성전을 하나님과 동일시하였다. 그들에게 성전은 제사만 끊임없이 드리고 있으면 이스라엘을 지켜주는 우상이었다. 산헤립의 침공 때, 히스기야가 성전에 들어가 기도해서 예루살렘을 둘러싼 앗수르 18만 5천 군대가 전멸한 후 성전신앙은 더욱 확고히 굳어졌다. 그들은 마음으로 바알 숭배를 하고 있어도 성전에서 절기와 제사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 하나님은 성전을 떠나시고 바벨론을 통해 예루살렘 건물성전을 파괴하셨다. 마치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아벡 전투에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를 완전히 패하게 하시고 블레셋으로 실로를 황폐화 시키신 것과 같다(시78:60). 하나님은 실로의 성막을 버리셨다. 이때부터 언약궤는 약 100여년간 성막과 분리되어 따로 모셔지게 된다. 블레셋 도시들에서 7개월(삼상6:1),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20년간 있을때(삼상7:2)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금식을 선포한다. 이후 언약궤는 예루살렘 다윗의 장막으로 모셔올 때까지 계속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렀다. 그 기간은 최소 60년이 되며 솔로몬 성전에 모셔질 때까지는 약 100년이 된다.

- 여기서 이상한 것이 있다. 왜 사무엘은 언약궤를 성막 지성소로 모셔오지 않았을까? 왜 언약궤는 성막이 아닌 아비나답의 집에 수십년간 그대로 두었을까? 하나님께서 실로의 성막을 버리신 이후 모세가 지은 광야성막은 없어졌다. 아마도 아벡전투에서 블레셋이 실로를 파괴할 때 성막도 함께 불에 탓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 않고는 사무엘이 언약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그대로 둘 수 없다.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것도 사람들이 그곳에 성막을 다시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만든 성막일 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광야의 성막은 아니다. 물론 다윗의 장막도 모세가 만든 성막이 아니다.

- 하나님은 모세의 성막도 버리시고(삼상4장), 솔로몬 성전도 떠나셨다(겔10-11장).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하면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생각하며 섬기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드려지는 수많은 희생제사와 절기예식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람들의 자기만족일 뿐이다. 오늘날에도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다.

(2) 남은 자와 이스라엘 회복 예언

- 건물성전이 파괴된 지 70년이 지났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온다. 학개, 스가랴 선지자는 그들에게 다시 건물성전을 지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에게 예루살렘 건물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하셨을까?

- 선지자들이 예언한 이스라엘의 회복과 남은 자 예언 때문이다. 참고로 고레스 칙령은 강제 귀환이 아니다. 귀환을 원하지 않는 유대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없는 이스라엘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바벨론에 남았다. 그들에게 여호와 신앙과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은 희미하다. 바벨론 마르둑과 이스라엘 여호와 사이에서 누구를 하나님으로 부를지 머뭇머뭇 거렸다. 그들과 다르게 바벨론 고난 속에서 불 가운데를 지나며 정금같이 정결케 된 자들이 있다. 그들이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남은 자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 것도 없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단 한가지 이유다. 여호와 신앙 때문이다.

- 스룹바벨 성전은 이스라엘 남은 자들이 돌아와 여호와의 참된 성전 신약교회가 된다는 행위예언일 뿐이다. 스룹바벨 성전은 역사 속에서 그 건물자체로서 어떤 능력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제단의 불이 없었고 여호와의 영광(쉐키나)이 없었고, 언약궤(두돌판)도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솔로몬 성전으로 충분하다. 하나님은 솔로몬 성전을 통해 구원계시를 다 보여주셨다. 스룹바벨 성전은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길 안내 도로 표지판일 뿐이다. 표지판은 표지판일 뿐이다. 표지판이 화려하면 사람들은 그곳에 멈춰서서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지 않는다.

- 참고로, 이런 면에서 헤롯 성전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대적하는 대단히 비성경적이며 정치적 의도를 가진 사악한 성전이며 마귀적이다. 헤롯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솔로몬 성전보다 작고 초라하게 만들게 하신 스룹바벨 성전을 솔로몬 성전보다 약 2배 더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다. 그뿐아니라 그는 돌로 축대를 쌓아 골짜기를 메우고 성전산 정상에 축구장 20배의 크기의 평지를 만들어 성전의 바깥 뜰이 되게했다. 축대의 돌들은 평균 무게가 28톤이지만 그 중에는 크기가 13m 600톤이 넘는 것도 있다. 헤롯은 이 돌들을 채석장에서 다듬어 가져오게 했고 그 축대를 쌓는 일에만 8년이 걸렸다. 헤롯 성전은 고대 근동에서 찾아보기 힘든 당대 최고의 건물이었다. 이로서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생활 통해 어렵게 빠져나온 미신적 건물신앙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제자들도 성전건물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래서 헤롯성전은 마귀적이다.

- 이스라엘을 회복할 남은 자는 누구인가? 역사 속에서는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포로귀환한 유대인들과 그들의 후손 초대교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며 오늘날에는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음녀 바벨론의 위협과 미혹과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서 평가한다. 교회도 그러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교회의 건강함은 건물크기와 재정규모에 달려있지 않다.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의 거룩함에 있다. 우리 모두는 머지않아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참된 성전 예언

- 스룹바벨 성전은 에스겔 환상에서 나오는 새성전이 아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지 14년 즉 대략 BC572년경에 예루살렘에 회복될 새성전 환상을 본다(겔40:1) 스룹바벨 성전은 에스겔 새성전 환상보다 56년 뒤인 다리오 6년 BC516년에 세워졌다. 건물묘사와 모든 면에서 볼 때, 스룹바벨 성전은 에스겔의 새성전 예언과 다르다.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나지 않았고, 북이스라엘 열지파가 돌아와 성전주변에 기업분배 받지도 않았으며 열두 문도 없었다.

- 스룹바벨 성전은 약 500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세우신 참된 성전으로 나아가게 하는 길안내 표지판일 뿐이다. 스가랴서는 여덟 개(특히 두 개) 환상과 순 예언으로 이것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요엘서 다음으로 스가랴서를 살펴보는 이유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시간에...

<결론 및 적용>우리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을 배우는 이유

(1) 구원은 칭의와 성화로 확인되게 된다.

- 우리는 구약 선지자들의 모든 예언이 성취된 말세 신약시대를 살고 있다. 구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성취되었다. 다니엘 70이레 예언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는 99.3%가 이미 완성되었고 나머지 0.7%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백성 되도록 만들어 가시는 구원의 과정이다. 우리 시선을 그리스도에게 고정하자. 성령을 의지해서 자기중심의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집중하자. 모든 관심을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데 집중하자.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성령내주로 인한 칭의와 성화로 확인되게 될 것이다.

(2) 스가랴 이후 500년, 말라기 이후 400년 만에 성취

- 스가랴의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500년간 성취를 보지 못했다. 스룹바벨 성전이 건축되었어도 그들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다. 여전히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속국이며 강한 자들의 압제와 경제적 고통으로 힘들고 고달픈 삶이었다. 성취되지 않을 길을 막연히 따라가는 구약 성도들은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을까? 모든 성취를 체험한 우리는 너무도 쉽다.

- 우리가 소망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 것은 불과 몇 년 남지 않는다. 우리가 애를 쓰며 지역교회를 지키며 구원진리를 계속 전파하는 일도 오래 남지 않았다. 아무리 전해도 열매 없고 아무 소득 없어 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업적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에 맞는가 아닌가만 중요하다. 맞다면 믿음으로 걸어가자. 여리고가 무너지는 마지막 일곱 바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