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요엘(2) - 출애굽 회개와 출바벨론 회개 (욜2:11-22)
Author
GOSPEL323
Date
2023-09-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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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2) - 출애굽 회개와 출바벨론 회개 (욜2:11-22)
1.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욜2:11)
(1)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의 죄악을 진멸 심판하심
- 헤렘은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멸전쟁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일곱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셨다. 그들의 군대 뿐 아니라 부녀와 어린아기 심지어 살아있는 짐승까지 모두 멸절하라는 것이다. 이 명령대로 이스라엘은 여리고에 들어가 헤렘을 시행했다. 가나안 첫 성 여리고의 모든 것은 멸절되고 불태워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용하사 가나안 일곱 족속의 죄악을 심판하심이다.
- 구속사에서 헤렘은 새언약이 출범되기 전까지 죄악을 진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다. 헤렘은 구약에만 존재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성령이 강림하고 새언약이 출범되므로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주의 재림, 우리 몸의 부활, 마지막 심판만 남기고 완성되었다. 이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진멸하는 헤렘전쟁은 없다. 중세 십자군 전쟁은 로마카톨릭의 추악한 전쟁일 뿐 여호와의 전쟁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도 미국 이라크 전쟁도 국익을 위한 세상나라간의 전쟁일 뿐 기독교 진리로 이슬람 우상을 진멸하는 성경의 거룩한 전쟁은 아니다.
-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관영할(가득찰) 때까지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약 600여년간 기다리셨다. 그러나 그들의 죄악이 임계점을 지났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예언해주신 그대로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셨다(창15장) 이 전쟁에서 가나안 족속은 헤렘의 대상이요 헤렘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도시는 헤렘의 도구이며, 가나안 죄악을 진멸하시는 하나님 심판의 막대기와 몽둥이였다(사10:5).
- 사10:5-6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진멸 심판하심
-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사사시대 왕국시대를 지나며 하나님을 거부하고 바알을 숭배하며 이웃사랑 공의가 없는 죄악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수없이 경고하시고 책망하며 회개를 촉구하신다. 사사시대에는 모압 암몬 등 이방민족이 침략하고 왕국시대에는 애굽, 블레셋 아람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온다. 이방나라들은 이스라엘을 회생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 삿2:20-2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 열국을 머물러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시며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음이 이를 인함이었더라.”
- 왕국시대 후반으로 가면 이스라엘의 죄악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히스기야와 요시야때 잠시 부흥운동이 있었지만, 므낫세가 섬긴 온갖 우상이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있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회생될 단계를 벗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을 헤렘의 도구로 사용하사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신다. 전에 가나안 일곱족속을 헤렘(진멸)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을 헤렘(진멸)하신다. 대소선지자들은 이 시기를 전후로 활동하며 심판과 회복을 예언했다.
(3) 구약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예언
-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심판과 멸망은 인류역사가 종결되는 마지막 심판 예언이 아니다. 그것은 BC 586년에 있었던 바벨론에 의한 성전파괴와 이스라엘 멸망 심판예언이다. 포로귀환 했던 학개 스가랴 말라기 선지자는 더 이상 심판을 예언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스라엘 회복만 예언한다. 예루살렘은 이미 심판받고 멸망당했기 때문이다.
- 선지자들이 예언한 여호와의 날 구원과 회복예언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성취되었다. 비록 그 예언들이 마지막 심판 날 하루(?)처럼 묘사되나 선지자는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하나로 말하고 있다. 즉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묶어 예언한다. 그들의 선포한 여호와의 날과 이스라엘의 회복예언은 예수 그리스께서 오심으로 심판과 구원이 이루어지는 구속사의 포괄적 예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오시기 약 8백년에서 4백년 전의 선지자들이다. 구속사의 진행 속에 그들에게는 아직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세밀히 구분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지 않고 여호와의 날(=신약의 말세)을 예언한다.
- 구속사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 하나의 긴 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신약성경은 이 기간을 말세라고 부른다(히1:1-2,벧전1:5) 우리는 구약선지자들이 말한 종말/심판과 구원/회복예언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성령강림 신약교회 탄생으로 성취되었음을 안다. 이는 고레스 칙령으로 역사 속에서 먼저 예표로 성취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성령강림으로 실제 성취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 마지막 심판,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 도래로 완전히 성취 된다.
-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바벨론 군대의 명령자는 하나님이셨다. 하나님께서 직접 바벨론 군대를 도구로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치심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진멸했던 가나안 족속들처럼 진멸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무조건 용서하고 이방민족만 심판하지 않으신다. 이스라엘도 죄악을 범하면 다른민족과 동일하게 진멸된다. 하나님께서 직접 성전을 파괴하시고 이스라엘을 진멸하셨다. 예루살렘은 멸망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이스라엘은 진멸되었다. .
- 참고로, 요엘서 2장의 군대는 메뚜기가 아닌 바벨론 제국을 뜻한다. 그 근거는 요엘서 2장 28절의 성령강림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날에 진노의 군대를 보내심은 성령강림 이전 사건이기 때문이다. 구속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단회적이듯 오순절 성령강림도 반복될 수 없다. 미래에 또 다시 성령이 강림하실 오순절의 재현은 없다. 그러므로 요엘서 2장의 군대는 세대주의 종말도식처럼 미래 7년 대환란에 있을 아마겟돈 군대와 곡마곡 군대가 아니다. 또한 요엘서 1장의 메뚜기 떼는 그 시제가 과거로 기록되었으므로 환상이기 보다 실제 사건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요엘 선지자는 당시에 실제로 있었던 메뚜기 재앙을 징조로 들어 다가올 바벨론 군대의 침입과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2.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13절)
(1) 고통은 죄악을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정화도구
- 바벨론 포로(심판)은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다시 살리고자 하심이다. 심지어 성전파괴와 예루살렘 멸망까지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범죄로 언약을 파기하고 자기백성을 완전히 버리심이 아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후 거기서 고통을 당하며 불로 연단하신 후 정결케 하사 다시 회복시키신다. 그들이 남은 자이다. 이는 사도들에 의해 유대인의 신약교회로 성취되고, 바울에 의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신약교회로 완성되었다.
- 슥13:8-9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 이스라엘 멸망은 바벨론 제국이 한 것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전을 파괴하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신 것이다. 헤렘의 주체는 하나님이셨다. 아벡전투에서 언약궤는 블레셋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다. 그들을 진멸하시려 하나님께서 친히 블레셋으로 내려가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전파괴와 바벨론 포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바벨론으로 보내 이스라엘의 죄악을 불로 정결케 하심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더러워진 땅을 70년 동안 안식을 시키셨다고 하셨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대하36:21). 그들은 선지자의 책망으로는 회생이 불가한 지경까지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마지막 특단의 수술로 성전과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시고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 포로 되게 하신다. 이는 성전불멸과 예루살렘 불패를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본을 흔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2) 출애굽 회개는 한번, 출바벨론 회개는 반복.
- 요엘 선지자의 회개촉구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오늘 우리도 회개가 필수적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출애굽과 출바벨론이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 구속역사이기도 하지만 성도 개인의 신앙 일생을 나타내기도 하다.
- 성도는 복음을 듣고 죄인됨을 회개하고 예수 믿어 출애굽 구원을 얻었다. 이때 성도는 세상나라 죄인에서 하나님의 의로 덧입혀진(칭의) 하나님 백성이 되고 하늘시민권을 받았다. 이 구원은 불변하다. 그런데 성도, 엄밀히 말해 칭의를 얻은 죄인은 여전히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가 죽어 영혼이 하나님 품으로 가거나, 그가 살았을 때 주의 재림을 맞이하여 부활의 몸을 입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성도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 70이요 강건하면 80인 그 기간의 일이다. 성경 가르침의 강조점은 주로 이때의 일이다.
- 성도는 구원의 완성을 보장받고 부활영생에서 탈락되지 않으나, 성도는 지금 날마다 죄와 싸우는 구원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바울의 말처럼 미래에 완성될 구원을 오늘 죄인의 삶 속에서 체험하며 이루어가는 것이다. 죄와의 싸움은 이 땅에서 계속 된다. 이 싸움은 내가 죽는 순간에 비로소 끝난다.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이겨나가지만 때때로 내 죄의 본성에 굴복해서 패배한다. 죄를 지으면 죄의 노예가 된다. 하나님 백성이 죄의 나라 바벨론 포로가 되어 고통 속에 지내게 된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어도 편안한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바벨론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 백성이 아니다. 죄에 대한 고통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 회개와 돌이킴이 필요하다. 출바벨론의 회개이다. 출애굽 회개는 한번뿐이다. 다시 할 필요가 없다. 한 두 번 회개야 괜찮지만 여러 번 반복하면 내가 진정 출애굽 회개를 했는가를 의심해봐야 한다. 출애굽 회개는 내 삶의 주도권을 내려놓는 근본적인 회개이다. 이 회개는 예수 믿는 첫시간에 한번 한다. 그러나 출바벨론 회개는 반복해야 한다. 구원의 현재 곧 성도의 신앙생활은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 참고로 옛언약은 새언약에 의해 성취완성 된다. 구약과 신약은 율법행위와 제사제도 같은 면에서는 단절이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연속되었다. 구약과 신약은 하나이다. 언약과 복음은 동일하다. 이스라엘과 신약교회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구약은 신약의 뿌리이며 신약은 구약의 열매이다. 구약은 신약에 의해 해석되고 신약은 구약의 성취로 설명된다.
- 모세의 신명기 4장 예언(복,저주,멸망,귀환/심판,회복)은 신약복음에 의해 폐기되지 않는다. 오히려 완성된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면(=율법을 지키면=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 백성의 축복을 얻는다. 구약은 직접 너의 힘으로 율법조항을 지키며 섬겨보라는 것이고 신약은 너의 힘으로는 안되니 성령의 법을 따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며 섬기라는 것이다. 율법과 나의 힘으로는 하나님 경외하는 거룩한 삶을 결코 살아갈 수 없지만, 복음과 성령의 능력은 죄인인 내가 할 수 있게 만든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죄 가운데 살아도 복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3)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 하나님은 죄를 범한 성도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시며 언약에 근거한 인애와 사랑(=헤세드)를 베푸신다. 성도가 죄 가운데 빠지면 하나님은 처음에 작은 경고를 주신다. 돌이키지 않으면 점점 경고가 커지고 나중에는 심판의 큰 고통이 닥친다. 그때라도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다. 비록 죄의 댓가가 너무 크고 힘들지만 하나님은 성도가 죄에서 돌이킬 때 언제든지 받아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에게 회복을 말씀하신다. 다음시간에...
<결론 및 적용>죄는 무시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 우리 속의 아담 본성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 성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야 한다. 내 죄의 본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권세를 억제할 뿐이다. 죄에 대한 자기 과신은 신학적 무지의 산물이다. 반드시 큰 실수를 가져오고 엄청난 댓가를 치루게 된다. 성도는 죄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 적은 일에도 늘 회개하는 것은 그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2) 성령이 함께하시니 죄와의 싸움을 두려워하지도 말라.
- 성도는 결국 승리한다. 작은 실패에 낙심하지 말고 믿음의 길로 돌아오라. 오늘은 실패했지만 성령을 의지해서 죄와 계속 싸워나가자. 결국 반드시 승리한다.
1.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욜2:11)
(1)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의 죄악을 진멸 심판하심
- 헤렘은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멸전쟁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일곱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셨다. 그들의 군대 뿐 아니라 부녀와 어린아기 심지어 살아있는 짐승까지 모두 멸절하라는 것이다. 이 명령대로 이스라엘은 여리고에 들어가 헤렘을 시행했다. 가나안 첫 성 여리고의 모든 것은 멸절되고 불태워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용하사 가나안 일곱 족속의 죄악을 심판하심이다.
- 구속사에서 헤렘은 새언약이 출범되기 전까지 죄악을 진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다. 헤렘은 구약에만 존재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성령이 강림하고 새언약이 출범되므로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주의 재림, 우리 몸의 부활, 마지막 심판만 남기고 완성되었다. 이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진멸하는 헤렘전쟁은 없다. 중세 십자군 전쟁은 로마카톨릭의 추악한 전쟁일 뿐 여호와의 전쟁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도 미국 이라크 전쟁도 국익을 위한 세상나라간의 전쟁일 뿐 기독교 진리로 이슬람 우상을 진멸하는 성경의 거룩한 전쟁은 아니다.
-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관영할(가득찰) 때까지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약 600여년간 기다리셨다. 그러나 그들의 죄악이 임계점을 지났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예언해주신 그대로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셨다(창15장) 이 전쟁에서 가나안 족속은 헤렘의 대상이요 헤렘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도시는 헤렘의 도구이며, 가나안 죄악을 진멸하시는 하나님 심판의 막대기와 몽둥이였다(사10:5).
- 사10:5-6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진멸 심판하심
-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사사시대 왕국시대를 지나며 하나님을 거부하고 바알을 숭배하며 이웃사랑 공의가 없는 죄악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수없이 경고하시고 책망하며 회개를 촉구하신다. 사사시대에는 모압 암몬 등 이방민족이 침략하고 왕국시대에는 애굽, 블레셋 아람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온다. 이방나라들은 이스라엘을 회생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 삿2:20-2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 열국을 머물러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시며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음이 이를 인함이었더라.”
- 왕국시대 후반으로 가면 이스라엘의 죄악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히스기야와 요시야때 잠시 부흥운동이 있었지만, 므낫세가 섬긴 온갖 우상이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있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회생될 단계를 벗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을 헤렘의 도구로 사용하사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신다. 전에 가나안 일곱족속을 헤렘(진멸)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을 헤렘(진멸)하신다. 대소선지자들은 이 시기를 전후로 활동하며 심판과 회복을 예언했다.
(3) 구약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예언
-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심판과 멸망은 인류역사가 종결되는 마지막 심판 예언이 아니다. 그것은 BC 586년에 있었던 바벨론에 의한 성전파괴와 이스라엘 멸망 심판예언이다. 포로귀환 했던 학개 스가랴 말라기 선지자는 더 이상 심판을 예언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스라엘 회복만 예언한다. 예루살렘은 이미 심판받고 멸망당했기 때문이다.
- 선지자들이 예언한 여호와의 날 구원과 회복예언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성취되었다. 비록 그 예언들이 마지막 심판 날 하루(?)처럼 묘사되나 선지자는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하나로 말하고 있다. 즉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묶어 예언한다. 그들의 선포한 여호와의 날과 이스라엘의 회복예언은 예수 그리스께서 오심으로 심판과 구원이 이루어지는 구속사의 포괄적 예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오시기 약 8백년에서 4백년 전의 선지자들이다. 구속사의 진행 속에 그들에게는 아직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세밀히 구분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지 않고 여호와의 날(=신약의 말세)을 예언한다.
- 구속사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 하나의 긴 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신약성경은 이 기간을 말세라고 부른다(히1:1-2,벧전1:5) 우리는 구약선지자들이 말한 종말/심판과 구원/회복예언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성령강림 신약교회 탄생으로 성취되었음을 안다. 이는 고레스 칙령으로 역사 속에서 먼저 예표로 성취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성령강림으로 실제 성취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 마지막 심판,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 도래로 완전히 성취 된다.
-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바벨론 군대의 명령자는 하나님이셨다. 하나님께서 직접 바벨론 군대를 도구로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치심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진멸했던 가나안 족속들처럼 진멸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무조건 용서하고 이방민족만 심판하지 않으신다. 이스라엘도 죄악을 범하면 다른민족과 동일하게 진멸된다. 하나님께서 직접 성전을 파괴하시고 이스라엘을 진멸하셨다. 예루살렘은 멸망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이스라엘은 진멸되었다. .
- 참고로, 요엘서 2장의 군대는 메뚜기가 아닌 바벨론 제국을 뜻한다. 그 근거는 요엘서 2장 28절의 성령강림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날에 진노의 군대를 보내심은 성령강림 이전 사건이기 때문이다. 구속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단회적이듯 오순절 성령강림도 반복될 수 없다. 미래에 또 다시 성령이 강림하실 오순절의 재현은 없다. 그러므로 요엘서 2장의 군대는 세대주의 종말도식처럼 미래 7년 대환란에 있을 아마겟돈 군대와 곡마곡 군대가 아니다. 또한 요엘서 1장의 메뚜기 떼는 그 시제가 과거로 기록되었으므로 환상이기 보다 실제 사건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요엘 선지자는 당시에 실제로 있었던 메뚜기 재앙을 징조로 들어 다가올 바벨론 군대의 침입과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2.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13절)
(1) 고통은 죄악을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정화도구
- 바벨론 포로(심판)은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다시 살리고자 하심이다. 심지어 성전파괴와 예루살렘 멸망까지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범죄로 언약을 파기하고 자기백성을 완전히 버리심이 아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후 거기서 고통을 당하며 불로 연단하신 후 정결케 하사 다시 회복시키신다. 그들이 남은 자이다. 이는 사도들에 의해 유대인의 신약교회로 성취되고, 바울에 의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신약교회로 완성되었다.
- 슥13:8-9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 이스라엘 멸망은 바벨론 제국이 한 것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전을 파괴하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신 것이다. 헤렘의 주체는 하나님이셨다. 아벡전투에서 언약궤는 블레셋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다. 그들을 진멸하시려 하나님께서 친히 블레셋으로 내려가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전파괴와 바벨론 포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바벨론으로 보내 이스라엘의 죄악을 불로 정결케 하심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더러워진 땅을 70년 동안 안식을 시키셨다고 하셨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대하36:21). 그들은 선지자의 책망으로는 회생이 불가한 지경까지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마지막 특단의 수술로 성전과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시고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 포로 되게 하신다. 이는 성전불멸과 예루살렘 불패를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본을 흔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2) 출애굽 회개는 한번, 출바벨론 회개는 반복.
- 요엘 선지자의 회개촉구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오늘 우리도 회개가 필수적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출애굽과 출바벨론이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 구속역사이기도 하지만 성도 개인의 신앙 일생을 나타내기도 하다.
- 성도는 복음을 듣고 죄인됨을 회개하고 예수 믿어 출애굽 구원을 얻었다. 이때 성도는 세상나라 죄인에서 하나님의 의로 덧입혀진(칭의) 하나님 백성이 되고 하늘시민권을 받았다. 이 구원은 불변하다. 그런데 성도, 엄밀히 말해 칭의를 얻은 죄인은 여전히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가 죽어 영혼이 하나님 품으로 가거나, 그가 살았을 때 주의 재림을 맞이하여 부활의 몸을 입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성도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 70이요 강건하면 80인 그 기간의 일이다. 성경 가르침의 강조점은 주로 이때의 일이다.
- 성도는 구원의 완성을 보장받고 부활영생에서 탈락되지 않으나, 성도는 지금 날마다 죄와 싸우는 구원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바울의 말처럼 미래에 완성될 구원을 오늘 죄인의 삶 속에서 체험하며 이루어가는 것이다. 죄와의 싸움은 이 땅에서 계속 된다. 이 싸움은 내가 죽는 순간에 비로소 끝난다.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이겨나가지만 때때로 내 죄의 본성에 굴복해서 패배한다. 죄를 지으면 죄의 노예가 된다. 하나님 백성이 죄의 나라 바벨론 포로가 되어 고통 속에 지내게 된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어도 편안한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바벨론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 백성이 아니다. 죄에 대한 고통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 회개와 돌이킴이 필요하다. 출바벨론의 회개이다. 출애굽 회개는 한번뿐이다. 다시 할 필요가 없다. 한 두 번 회개야 괜찮지만 여러 번 반복하면 내가 진정 출애굽 회개를 했는가를 의심해봐야 한다. 출애굽 회개는 내 삶의 주도권을 내려놓는 근본적인 회개이다. 이 회개는 예수 믿는 첫시간에 한번 한다. 그러나 출바벨론 회개는 반복해야 한다. 구원의 현재 곧 성도의 신앙생활은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 참고로 옛언약은 새언약에 의해 성취완성 된다. 구약과 신약은 율법행위와 제사제도 같은 면에서는 단절이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연속되었다. 구약과 신약은 하나이다. 언약과 복음은 동일하다. 이스라엘과 신약교회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구약은 신약의 뿌리이며 신약은 구약의 열매이다. 구약은 신약에 의해 해석되고 신약은 구약의 성취로 설명된다.
- 모세의 신명기 4장 예언(복,저주,멸망,귀환/심판,회복)은 신약복음에 의해 폐기되지 않는다. 오히려 완성된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면(=율법을 지키면=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 백성의 축복을 얻는다. 구약은 직접 너의 힘으로 율법조항을 지키며 섬겨보라는 것이고 신약은 너의 힘으로는 안되니 성령의 법을 따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며 섬기라는 것이다. 율법과 나의 힘으로는 하나님 경외하는 거룩한 삶을 결코 살아갈 수 없지만, 복음과 성령의 능력은 죄인인 내가 할 수 있게 만든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죄 가운데 살아도 복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3)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 하나님은 죄를 범한 성도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시며 언약에 근거한 인애와 사랑(=헤세드)를 베푸신다. 성도가 죄 가운데 빠지면 하나님은 처음에 작은 경고를 주신다. 돌이키지 않으면 점점 경고가 커지고 나중에는 심판의 큰 고통이 닥친다. 그때라도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다. 비록 죄의 댓가가 너무 크고 힘들지만 하나님은 성도가 죄에서 돌이킬 때 언제든지 받아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에게 회복을 말씀하신다. 다음시간에...
<결론 및 적용>죄는 무시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 우리 속의 아담 본성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 성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야 한다. 내 죄의 본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권세를 억제할 뿐이다. 죄에 대한 자기 과신은 신학적 무지의 산물이다. 반드시 큰 실수를 가져오고 엄청난 댓가를 치루게 된다. 성도는 죄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 적은 일에도 늘 회개하는 것은 그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2) 성령이 함께하시니 죄와의 싸움을 두려워하지도 말라.
- 성도는 결국 승리한다. 작은 실패에 낙심하지 말고 믿음의 길로 돌아오라. 오늘은 실패했지만 성령을 의지해서 죄와 계속 싸워나가자. 결국 반드시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