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마가(29) - 참된 성전, 교회의 본질과 비본질 (막1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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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3-05-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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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29) - 참된 성전, 교회의 본질과 비본질 (12:13-17)

1.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 성전 건축자

(1)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 건물성전을 폐하시고 참된 성전/ 신약교회을 세우심.

- 나귀타고 예루살렘 입성(종려주일) 무화과 저주 성전정결(월요일) 성전에서 논쟁, 바리새인 책망, 성전파괴 예언(화요일) 유월절 저녁식사 겟세마네 기도, 잡히심(목요일) 대제사장 심문, 빌라도 법정,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심, 무덤에 장사되심(금요일) 안식후 첫날 부활하심(주일) 사십일 후 승천하심, 열흘 후 오순절 성령강림, 신약교회 탄생...

-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는 성전 지을 자로 예언되었다. 예루살렘 건물성전은 하나님 나라 에덴을 나타내며 자기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건물성전은 그 역할을 다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건물성전을 종결하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는 신약교회, 참된 성전을 세우셨다. 신약교회는 구약 이스라엘 예언의 성취이고 참 이스라엘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은 없다. 모든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백성이다.

(2) 하나님께서 건축자의 버린 돌로 모퉁이의 머릿돌을 삼으심

- 다윗은 이 구원을 예언하며 시편 118편을 부른다. 구원의 절정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성전 지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것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사 유대인과 이방인을 참 이스라엘로 삼으시고, 참된 성전을 지으시는 것이다.

- 시118:21-23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 구원은 예수님을 머릿돌로 해서 참된 성전이 지어지는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모든 교회가 예수님 위에 세워져 있다. 세상나라에는 민족과 인종, 빈부와 사회계급의 차별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 교회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 그때가 시편 118편에 다윗이 예언한 주가 지으신 날이요 기뻐하고 즐거워할 날이다. 구원의 날이다.

- 시118:24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 예수님이 나귀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백성들은 호산나 외친다.(시118:25) 그들은 로마로부터 해방과 구원을 기원했지만 시편 118편 호산나(지금 구원하소서)는 건축자들이 버린돌이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아 성전을 지으시는 구원을 말한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으로 참이스라엘, 참된성전, 신약교회가 세워짐이다.

- 시118:25-26 “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2. 참된 성전, 교회의 본질과 비본질

(1)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바리새인의 질문

- 산헤드린은 공회를 의미하는 헬라어 수네드리온을 음역한 것으로 구약의 70인 장로 전통에 따라 만든 유대교의 최고 의결기관이다. 출애굽 광야에서 모세는 70인 장로와 함께 일들을 처리했듯이, 산헤드린은 의장 1명과 70명의 장로들(대제사장,서기관들,장로들)로 구성된다. 그들의 신앙분파는 주로 바리새파, 사두개파이며 엣센파(금욕)와 셀롯파(열심/암살)는 없다.

- 사두개파는 대제사장 사독의 후예들로서 주로 제사장 중심의 특별계층이다. 이들은 헤롯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려는 현세주의자들로 모세오경(토라)만 성경으로 인정한다. 바리새파는 율법을 삶에서 철저히 지키려는 사람들로서 제사장부터 평민까지 넓은 부류의 사람이 분포한다. 이들이 (랍비)유대교의 주류이다. 사두개인이 특별계층 종교귀족이라면 바리새인은 일반계층 백성들이다. 이들은 모세오경(토라) 외에 선지서(네비임)와 성문서(케투빔) 및 장로들의 유전(구전율법-미쉬나)까지 모두 성경으로 인정하며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했다.

- 신약성경에는 바리새인은 천사와 영의 존재, 부활까지 믿고 있으나 사두개인은 부활과 영적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행23:8) 사두개인은 구약성경의 오경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거부한다. 그들은 성경을 일부만 믿는다. 바리새인은 구약성경(타나크) 외에 구전율법(미쉬나/탈무드)까지 믿는다. 그들은 랍비들이 가르치는 삶의 규례들(장로들의 유전=유대교종교법)을 만들어 철저히 지켰다. 바리새인은 성경 아닌 것까지 믿는다.

② 데나리온 세금 납부하는 것을 황제숭배로 만듬

-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한다.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가? 이것은 정답을 알기 위한 정직한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악한 질문이다. 만약 예수님이 그 질문대로 하라 하지 말라 대답하시면 반드시 올무에 걸리게 된다.

- 이들이 언급한 세금은 주후 6년에 제정된 인두세로 모든 성인남녀는 각각 한 데나리온을 내야했다. 문제는 데나리온 동전에 월계관을 쓴 가이사의 얼굴과 "케사르 아우구스투스 하나님의 아들, 국가의 아버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데나리온 납세문제를 우상숭배와 연관지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비약이었다. 예수님 당시 로마는 정복민들에게 황제를 신으로 섬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로마 황제를 신으로 등극시켜 황제숭배를 강요하고 핍박한 것은 네로, 도미티안 등 후기에 일어난 일이다.

- 로마가 데나리온으로 세금을 받는 것은 외환을 바꿔줄 경제시스템이 아직 발달하지 못한 고대국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로마가 황제숭배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당시 데나리온 세금납부는 황제숭배를 강요할 목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유대교 율법주의 랍비들은 데나리온 세금문제를 우상숭배와 연관지어 양자택일해야 하는 신앙문제로 비약시켰다. 이는 잘못이다.

③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로

- 예수님의 대답은 놀라웠다. 데나리온으로 세금을 안낸다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아니다. 신앙의 본질은 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바리새인은 랍비들이 정한 장로들의 유전 규례를 가지고 로마 동전으로 세금납부 하는 행위가 우상숭배인가 아닌가를 따져 물었는데 예수님은 데나리온 세금납부 문제를 성경의 본질이 아닌 랍비들이 만든 규례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의 본질은 로마 동전 사용여부가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안식일 문제와 같은 맥락으로 예수님이 율법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이시기에 대답하실 수 있는 큰 문제였다.

- 물론 이 대답은 로마황제를 신으로 강요받는 1세기 후반과는 다르다. 세금납부가 명백히 하나님을 거부하고 황제를 신으로 신앙고백 해야 하는 절대적 문제였다면 예수님은 다르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성도는 세금납부 하지 말아야 한다. 공산당이 총을 겨누고 예수님 사진에 침을 뱉으면 살려준다고 할 때, 그 사진은 예수님 자신에 해당한다. 그 사진은 성도가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 한 장이 아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타협도 없다. 로마 카타콤에서 예배드리고 콜로세움에서 짐승의 밥이 된 사람들은 신앙수준이 낮아 순교한 것이 아니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안식일 준수여부와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데나리온으로 세금납부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의 본질과 비본질의 말씀이다. 이 말씀으로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이니 우상숭배가 아니라 변명할 수 없고, 동성애는 이웃사랑이며 죄가 아니라고 합리화할 수 없다.

(2) 교회는 본질과 비본질을 잘 구분해야 한다.

① 하나님 나라 / 교회는 세상나라와 다름

- 성도는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들어간 사람들이다. 세상은 민족(언어)과 나라(지역), 빈부격차, 권력유무로 구분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신자와 불신자 /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으로만 나누신다. 불신자 유대인보다 신자 팔레스틴이 더 가깝고, 불신자 미국사람보다 신자인 일본사람, 중국사람이 우리와 더 가깝다.

- 성도는 세상사람들과 본질이 다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새로운 인류, 새로운 피조물이다. 성도는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 그리스도는 성도를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신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고 성도는 이것을 믿는 사람이다.

- 성도는 가야할 마지막 장소가 불신자들과 다르다. 성도는 죽어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으로 간다. 성도는 주의 재림때 육체로 부활하여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간다. 성도는 그곳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다스리게 될 것이다. 마치 첫아담이 에덴에서 했었던 그런 일들이다.

- 성도는 살아가는 방식이 세상과 다르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성도는 복음진리가 선포될 때 성령께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심을 따라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다. 성령은 중생회심과 칭의성화와 내주연합견인을 우리에게 일으키신다. 구원과 성령받음은 이것으로만 확인된다.

② 교회는 교회가 해야 할 본질적인 일을 하라.

- 예수님이 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고 했을까? 성과 속을 이원론으로 구분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 것을 하나님 것과 혼동하라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되 신앙의 본질을 잘 지키라는 말씀이다. 이는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를 돕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가룟유다에게 하신 말씀과 같다. 이 금액은 노동자가 거의 일 년 동안 일한 임금에 해당한다. 이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매우 큰 금액이다. 유다는 그 많은 돈을 예수님 발에 그냥 부어버렸다고 책망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말씀하신다.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하지만 복음의 본질은 아니다. 구제는 교회의 목적이 아니다. 병자를 고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기 위해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다.

- 요12:4-8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권세자들에게 굴복할 것과 납세를 잘하라고 말했다(롬13장). 그가 언급한 것은 로마황제와 로마제국 세금임이 분명하다. 바울 당시 로마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정복하고 많은 물건을 약탈해왔다. 심지어 로마는 피정복민들을 노예로 잡아왔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나라를 정복하고 수탈하는 로마의 악행과 노예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 일들이 옳고 선하기 때문은 아니다. 복음으로만 그런 악행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바울은 십자가 복음을 전했고, 로마제국을 향해 정권타도 노예해방을 위해 일생을 바치지 않았다. 그런 일들은 복음을 믿게 되면 나타나는 결과요 열매일 수는 있지만 교회의 존재이유 주된 사명일 수는 없다. 바울은 교회가 해야 할 본질적인 일과 비본질적인 일을 잘 알고 있었다.

- 교회는 죄사함 받고 성령내주함을 입은 성도들의 공동체이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에덴에서 아담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갔듯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예배이다. 에덴의 삶은 모두 예배였다. 성도의 삶 전체가 예배이기는 하지만 이는 부활이후에 가능하다. 부활이전까지 성도는 매일 삶을 예배로 살아가려 하지만 사실 그렇게 되기 힘들다. 성도는 주일예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이 말씀이다. 로마교황교회는 화채설을 주장하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찬제례를 예배의 본질로 하지만, 개혁교회는 복음진리 설교를 예배의 핵심으로 삼는다. 참된 교회여부는 참된 예배 곧 복음진리 여부에 달려있다. 성찬예식도 바른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쳐지고 진행될 때 성찬이 된다. 바른진리 없는 성찬은 성찬이 아닌 종교적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교회는 복음진리를 설교하고 가르치고 전파하여 성도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아가게 한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③ 교회의 비본질이 교회의 본질보다 앞서지 못하게 하라.

- 바리새인들이 데나리온 세금을 우상숭배 신앙문제로 만든 것은 하나님 섬김을 로마동전 사용여부로 판단한 신앙의 본질을 바꾼 일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 한다고 이렇게 했다. 그들의 신학적 무지와 신앙적 교만이 이런 잘못을 저지르게 했다. 그들은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비난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자랑과 형제비난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결론 및 적용>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1)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하되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

- 갈5:1,13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2) 모든 것을 잘하려 하지 말라. 잘해야 할 것을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