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마가(15) - 베드로야 물위를 걸어오라 (막6:45-52, 마14: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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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2-12-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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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15) - 베드로야 물위를 걸어오라 (6:45-52, 14:28-33)

1. 오병이어 기적 후

(1) 하늘만나와 생명의 떡 예수

-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유월절이 가까울 때 에레모스(빈들,광야,산)에서 베푸셨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출애굽 구원을 보여주고 계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 후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당신께서 하늘만나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먹고(요6장,생명의 떡) 마셔야(요7장,생명의 물) 산다. 오병이어를 하늘만나 생명의 떡으로 말씀하신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말씀하심이다.

(2) 사람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함

- 갈릴리 사람들은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 크게 놀란다. 그들은 예수님의 전하시는 하나님 나라 메시지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로 생각했다. 예수님을 왕/그리스도로 세워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다.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즉시 사람들을 떠나도록 하셨다. 유대인들의 잘못된 그리스도 사상을 바로잡아 주시려 하심이다.

- 요6:14-15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2. 베드로야 물위를 걸어오라

(1)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 그리스도

①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함

- 오병이어는 갈릴리 사람들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구약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주는 뛰어난 랍비, 또는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큰 선지자...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큰 인물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였다. 제자들도 유대인이었고 아직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며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려주실 그리스도이심을 몰랐다.

-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오해하는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다. 제자들을 배 태워 갈릴리 바다로 나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 예수님은 풍랑 속에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시려 하심이다. 타브가에서 벳새다까지, 혹 벳새다에서 가버나움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제자들이 밤늦게까지 갈릴리 바다에 있던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배에서 기다리라고 하신 것 같다. 밤 사경(새벽3-6시) 쯤 되어 큰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아진다.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힘들게 노를 젓고 있다. 배는 해변에서 3-3.5마일(NIV)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 일을 계획하셨다.

- 참고로 갈릴리는 그 둘레가 53Km로 우리나라 백령도 크기이다. (백령도 둘레는 52.5Km) 가장 긴 곳의 가로 21km 세로 13km 평균수심 26m, 제일 깊은 곳 43m이다. 배가 북쪽해안에서 약 5km 정도에 있다면 거의 갈릴리 북부 바다 한 복판에 있는 것이다. 또한 갈릴리는 민물호수인데 성경은 갈릴리 바다로 부른다. 이는 성경시대의 유대인들에게 호수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물이 솟아나면 샘(엔), 흘러가면 강(나할), 모여 있으면 무조건 바다(얌)라고 불렀다. 솔로몬 성전의 놋바다는 직경이 약 5m 깊이 2.5 m 크기의 놋으로 만든 물대야/물두멍이다. 그곳에는 약 45t 정도의 물이 담긴다. 유대인들은 성전 물두멍에도 많은 물이 담겨있다고 바다라고 불렀다. 하물며 갈릴리는...

②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음

- 우리가 구원 얻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셨기에 우리가 십자가를 믿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십자가로 용서하시는 근거는 무엇인가?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무흠무죄한 사람을 우리 대신 죽이셨음이 아니다. 십자가는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죄가 용서받는다. 제자들은 아직 십자가도 성육신도 잘 몰랐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안식일, 제사, 성전에 대한 놀라운 가르침은 예수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지붕에서 달아내린 중풍병자에게 예수님은 일부러 먼저 죄사함을 주시고 그 후에 병을 고쳐주셨다. 죄사함은 하나님만 주실 수 있다. 이처럼 예수님은 처음부터 당신께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아직 잘 몰랐다.

③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 제자들은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며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그들은 전에 거라사 광인의 마을로 건너가다 풍랑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예수님은 배에 계셨고 바다를 명하사 풍랑을 잠잠케 해주셨다. 그때 제자들은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막4:41) 놀랐지만 이번에는 예수님께 절하며 고백한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14:33)

-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며, 제자들은 오병이어를 체험한 갈릴리 사람들처럼 흥분하던 것이 사라졌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우리 죄를 담당하신 하나님의 본체 그리스도이심을 아직 알지는 못했으나 최소한 예수님은 자기들이 생각한 그런 메시야/그리스도와 다름을 느끼게 되었다.

(2)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①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짐

- 베드로가 물에 빠지는 본문은 마태복음에만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 기사가 동일사건의 다른 본문인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에 없다는 이유로 사실성을 의심하지만 우리는 사실로 믿는다. 우리는 성경의 무오와 성경의 영감성을 믿기에 베드로 기사를 분명한 사실로 믿으며 마태가 우리에게 전해준 이유를 찾는다.

- 베드로가 몇 발자국인지는 모르지만 바다 위를 걸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기도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가게해달라고 요청했다. 예수님은 걸어오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서 예수님께 간다. 그러다가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여 물에 빠진다. 본문의 핵심은 베드로가 물위를 걸었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베드로는 분명 물위를 걸었고 후에 물에 빠졌다. 베드로는 언제 물위를 걸었고, 언제 물에 빠졌는가가 본문의 핵심이다.

②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여...

-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오라고 하는 예수님의 허락을 들었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린다. 그리고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나아간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베드로가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걸어가고 있다. 이런 일은 모세 엘리야도 체험 못한 기적이다. 베드로는 실제로 물위를 걸었고 예수님께로 나아갔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얼마못가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진다.

- 없던 바람이 갑자기 부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밤 사경 내내 바람과 씨름하고 있었다. 바람은 베드로가 배에 있을 때도 불었고,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을 때도 불고 있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새삼스레 바람을 보고 무서워했을까?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풍랑이는 바다를 보며 배에서 내리는 베드로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베드로는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오라 하셨다. 그렇다면 내가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을 때 예수님이 바람을 잠잠케 해주실 것이다” 배에서 내리는 베드로는 그런 생각으로 갈릴리 바다에 선다. 그리고 몇 발자국을 걸었다. 그런데 바람이 그치지 않고 풍랑이 여전히 일고 있다. 그래서 두려워한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응답이 오지 않기 때문에 베드로가 두려워한 것이다.

③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 땅에 있다면 바람은 그리 무섭지 않다. 그러나 물위를 걷는 베드로에게 바람은 무섭다. 바닥은 흔들리고 큰 파도가 몰아쳐 오고 주변에는 아무도 도와줄 자 없이 혼자 걷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바다 위를 걸어오라고 하신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주변을 보면 금방 두려움이 찾아온다. 사탄은 내가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계속 유혹하고 위협한다.

- 불신자들은 자기 배를 타고 멸망으로 가지만, 성도는 모두 자기 배에서 내려 주님께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걸어가고 있다. 흔들리는 바다, 여전히 밀려오는 파도... 내일에 대한 염려 걱정 두려움이 몰려온다. 내가 지금 구원의 길을 가고 있는지 의심이 생기고 불안해진다.

- 주님의 약속을 잊어버리면 금방 시험에 든다. “예수님이 오라 하셨으니 내가 물위를 걷는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물위를 걸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는 순간 두려움과 불신앙이 생긴다. 오라고 하시는 예수님 말씀은 생각나지 않는다. 내 시선이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순간 두려움이 생긴다. 물에 빠진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다고 말씀하셨다.

<결론 및 적용>믿음은 주님을 바라보며 물위를 걷는 것이다.

(1)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물위를 걷는다.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예수님은 우리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려오시지 않았다. 구원의 고행길이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걷고 있는가? 내가 아직도 주인되어 있어 그렇다. 내가 아직 십자가에 죽지 않아서 그렇다. 이미 죽은 사람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죽지 않았기 때문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것이다(히2:14-15)

(2) 구원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고 회심 성화 견인의 삶으로 나타난다.

- 예수믿고 성령받은 것은 회심 성화 견인의 삶으로 나타난다. 은사가 아니다. 구원은 죄인에게 성령을 보내시고 마지막 날 부활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새하늘과 새땅에 이르게 하심이다. 이 땅에서의 구원은 죄인 속에 성령을 인쳐주심이다. 하나님의 예정과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때문에 죄인인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다(엡1장). 이런 사람에게만 물위를 걷는 본문이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