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마가(11) - 거라사 광인의 간증 (막5:1-20)

Author
GOSPEL323
Date
2022-11-0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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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11) - 거라사 광인의 간증 (5:1-20)

1. 거라사 광인

(1) 복음서에 등장하는 귀신들린 사람들

-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기록이 많으나 귀신과 대화하며 축귀하시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시며 말씀으로 쫓아내실 뿐이다. 때때로 귀신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말을 하지만 예수님은 귀신과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으신다. 그냥 쫓아내신다. 혹 복음서가 예수님의 귀신축출 내용을 세밀히 기록하지 않고 축약할 수는 있지만 오늘날 귀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귀신과 대화하며 귀신의 정체를 밝히고 쫓아내는 그런 방식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거라사 광인은 조금 다르다. 예수님은 귀신의 이름을 묻고 귀신은 자기 이름을 대답한다. 물론 군대(레기온)는 귀신의 이름이 아니다. 많은 수의 귀신이 사로잡고 있음을 말한다. 귀신은 타락한 천사이고 불신자가 죽은 영혼이 아니기에 이름이 없다. 예수님이 귀신 이름을 물으심은 그가 심하게 귀신들렸음을 보여주시려 한 것이다.

- 하나 더, 복음서에 등장하는 귀신들린 사람은 주로 신체의 장애로 나타난다. 귀신은 열 여덟 해 동안 어느 여인의 몸을 펴지 못하게 만들고(눅13장), 귀먹고 눈멀고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마12장). 또한 귀신은 어느 아이에게 간질 같은 발작 증세를 일으켜 자꾸 불속에 뛰어들게 만들었다(마17장). 그런데 거라사 광인은 그 정도가 아니다. 아주 극단적이다.

- 거라사 광인은 지금까지 언급한 복음서의 귀신들림보다 그 행동이 훨씬 심각하다. 그는 신체장애를 넘어 다른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힘을 가졌고 과격하고 미친 행동을 하며 무덤사이에 기거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귀신들림으로 이해하는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다. 왜 복음서에 등장하는 귀신들린 사람 중 거라사 광인만 유독 그 양상이 심각하고 특이한가? 우상제물용 돼지 사육처인 거라사인의 지방과 혹시 연관을 지을 수는 없을까?

(2) 거다라(마8장) 거라사(막5장)인의 지방

- 거라사/가다라는 갈릴리 동쪽 데가볼리 이방인의 땅이다. 그곳은 본래 므낫세(반)지파 마길의 손자 길르앗에게 준 땅이었지만,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사르곤에게 멸망당하기 약 10여년 전에 먼저 앗수르 디글랏빌레셀(불)에 정복되어 강제이주 당하고 제일 먼저 이방인의 땅이 되어버린다(왕하15:29). 이후 갈릴리 동편은 영원히 이방인의 땅이 되어버린다. 예수님 당시에는 열 개의(데카) 헬라 도시들이(폴리스) 있는 헬라우상 문화권이 된다. 거라사 광인의 마을은 완전히 우상숭배 신전의 땅이란 말이다.

- 특히 거라사 광인의 마을은 돼지가 2천마리나 방목되고 있음을 볼 때 예사롭지가 않다. 오늘날에도 돼지 2천마리는 개인이 집에서 식용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다. 돼지고기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전문 양돈산업이다. 오늘날보다 고기가 귀했던 예수님 당시는 어떨까? 돼지 2천마리는 작은 시골 마을사람들을 위한 식용고기가 아닌 좀 더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 거라사 광인의 마을은 데가볼리의 핵심 열 도시가 아닌 갈릴리와 맞닿은 시골 촌동네이다. 이런 곳에서 돼지 2천마리는 마을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실컷 먹기 위한 것이 아니다. 참고로 예수님 당시 갈릴리 지역 가장 큰 마을 가버나움은 인구 약 1500명 정도이며 나사렛은 약 400명 정도였다. 거라사 광인의 마을은 이보다 훨씬 작다. 이런 시골 촌동네에서 마을 사람들 식량을 위한 돼지 2천마리를 키우는 것은 좀 무리이다. 거라사 광인의 마을은 주변 헬라신전들에 우상제물 돼지를 전문적으로 공급하던 곳으로 생각된다.

2. 거라사 광인의 간증

(1) 귀신 - 하나님의 아들이여...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① 귀신들이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굴복함

- 귀신은 예수님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귀신은 예수님을 보고 무서워하며 떤다. 가버나움 회당의 귀신들린 사람이나, 거라사 광인이나 똑같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보는 즉시 항복하고 무릎 꿇는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 죄를 대속하실 그리스도시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 사탄과 귀신(악령)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교회와 복음의 능력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엡1:13)이 선포됨을 가장 두려워한다. 진리/복음이 선포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므로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복음과 함께 임하고 복음이 증거될 때 사탄의 나라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사탄은 복음을 가장 두려워한다. 사탄은 복음을 증거 하는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고 위협하고 공격한다.

②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있나이까?

- 귀신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사탄과 귀신은 구원받지 못한다. 아는 것은 지식적 인식을 말함이 아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면 그분께 회개하고 주님으로 모셔야 한다. 이것이 구원얻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성령으로 말미암는다. 귀신이 아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이 것을 야고보는 정확히 인용하였다.

- 약2:18-20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 귀신이 감히 예수님께 말한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예수님 저희는 당신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당신의 제자/백성들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단지 우상숭배 이방인의 땅에서 거라사 광인을 사로잡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다. 저희를 내어 쫓지 말아주세요. 귀신은 예수님께 간청하고 있다.

③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 사탄은 마지막 심판날 자기와 귀신들이 유황불못에 들어갈 것을 잘 알고 있다.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그 권세를 상실했다. 다니엘 네 나라 짐승환상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나아가 왕권을 받으실 때 사탄의 권세는 한때 두때 반때만 남고 끝난다(단7장) 해달별을 품은 여자가 만국을 다스릴 철장권세를 가진 남자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하늘로 올라가자 큰 용 마귀 사탄은 내어쫓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으로 하늘왕권을 통치하심이다. 이때 사탄은 그 때가 얼마 남지 않을 줄 알고(한때 두때 반때) 분을 내며 땅으로 쫓겨난다(계12장).

- 사탄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자기가 세상임금 노릇하는 것은 불과 한때 두때 반때 뿐이다. 이는 70이레 하나님 나라 완성에서 69.5이레가 이루어지고 마지막 0.5이레(반이레)만 남은 것이다. 백분율로 하면 하나님 나라는 이미 99.3%가 이루어졌고 이제 마지막 0.7%만 남겨두고 있다.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 성전파괴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었고 이제는 죄인들이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는 일만 남았음을 잘 알고 있다. 사탄은 이제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 그런데 거라사 귀신은 예수님께 “때가 이르기 전에” 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초림은 하나님의 나라가 죄인의 나라 속으로 들어온 종말론적 사건이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새언약이 시작되었다. 구약에 예언된 여호와의 날, 말세가 시작되었다.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일어난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거부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 그래서 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사49:8/고후6:2). 지금이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다(사61:2)

- 하나님 나라가 죄인들 가운데 먼저 오셨기 때문에 인류역사는 중단되지 않고 진행되는 중에도 죄인이 구원받는다. 마지막 날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다. 구원은 이미 이 세상에서 받았어야 마지막 날에 부활과 영생상급을 받는다.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새롭게 구원행위(믿음)을 함으로 구원받는 일은 결코 없다. 구원받을 그 믿음은 이 땅에서 지금 해야 한다.

(2) 예수님은 거라사 광인 한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방인의 땅으로 오셨다.

① 예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만 전도하신 이유

-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인의 땅으로 가신 것을 두 번 기록한다. 거라사 광인의 마을, 수로보니게 여인의 마을이다. 물론 잠시 지나가신 것이다. 한편 칠병이어도 거라사 광인의 지방과 같이 갈릴리와 맞닿은 이방인의 땅 데가볼리 지역에서 일어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은 일생동안 가장 멀리 가신 곳이 지중해 근처 수로보니게 여인의 마을일 뿐이다. 예수님은 해외여행을 해보신 적이 없다. 유아때 헤롯을 피해 애굽피신을 해외여행이라 한다면 뭐...

- 예수님은 열두제자를 파송하시며 이방인에게 가지말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서 전도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청을 당신께서는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고 하시며 거절하셨다. 왜 예수님은 공생애동안 이방인 구원사역을 하지 않으셨나? 왜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만 구원하셨는가? 하나님 나라 복음은 유대인에게 먼저 전파된다는 구속사적 순서와 당시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방지역까지 전도하기에는 불가능한 물리적 상황때문이었다. 예수님은 결코 유대인을 우대하거나 이방인을 차별하신 것은 아니다.

② 거라사 광인 한명의 생명은 돼지 2천마리보다 귀함.

- 거라사 광인은 가장 비천한 사람이다. 그는 가난한 촌마을에 살고 있으며 또한 그 마을 사람들에게서도 완전히 배척받았다. 참고로 가다라와 거라사는 데카폴리 열 개 도시에 해당하는 현대식(?) 큰 도시로서 갈릴리에서 내륙으로 한참 들어가 위치한다. 그러나 거라사(막5장) 가다라(마8장) 광인의 마을은 데가볼리 그 큰 도시가 아니다. 거라사인 혹은 가다라인들이 살고 있는 갈릴리 호숫가 작은 어촌마을일 뿐이다. 즉 갈릴리와 맞닿은 작은 어촌에 가다라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이 살고 있음이다. 예수님은 그 거라사 광인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풍랑을 뚫고 갈릴리를 건너 가셨다.

- 귀신은 예수님께 자신들을 무저갱으로 들어가게 말고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무저갱은 감옥을 연상시키나 장소적 감옥이라기 보다는 마지막 심판날 까지 사탄과 귀신을 세상에서 마음껏 활동하지 못하도록 그 능력을 제한하고 제어해둠을 말한다(유1장). 예수님은 이것을 결박이라 하셨다(마12장). 단 사탄권세의 결박이지 사탄존재의 결박은 아니다. 즉 사탄이 아무리 세상임금 공중권세 잡은 자라 해도 자기 맘대로 함부로 사람을 뒤흔들지는 못한다. 사탄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만큼만 활동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다.

- 돼지 떼 2천마리는 오늘날에도 큰 재산이다. 고기가 귀했던 예수님 당시는 말할 것도 없다. 거라사 광인의 생명은 돼지 2천마리보다 귀하다. 예수님은 비천한 거라사 광인 한사람을 그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셨다. 어느 누가 돼지 2천마리와 귀신들린 한 사람 치유를 바꿀까? 그의 부모... 가족 외에는 없다. 그 가족이라도 전 재산을 바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는 오늘날 보다 더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돼지 2천마리와 한 사람의 생명을 바꾸셨다. 그것도 느브갓네살왕 같은 정신병자가 아닌(단4장) 평범한 시골사람의 생명을 위해서다. 돼지가 우상제물로 쓰이는 부정한 짐승이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은 소 2만 마리와도 바꾸실 것이다.

- 참고로 성경은 돼지 2천마리의 죽음을 그냥 지나간다. 오늘날 같으면 큰 문제가 생길텐데... 성경은 복음전파와 사람구원을 중심으로 기록한 책이기에 거라사 광인 사건을 상세히 기록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거라사 광인을 구원한 것은 좋은데 돼지 2천마리 재산을 희생케 한 것은 괜찮은가? 예수님은 그 한사람을 고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재산 돼지 2천마리를 강제적으로 손해 보게 하셨나? 물론 그들이 예수님이 귀신들에게 돼지 떼에 들어가라고 하셨음을 모를 수도 있다. 또 그 엄청난 권위앞에 감히 예수님께 불평할 수 없음도 않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귀신에게 허락하지 않으셨으면 돼지 2천마리는 몰사하지 않았음을 안다. 그렇다면 이 난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혹시 그 돼지 떼는 거라사 광인과 연관되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거라사 광인의 가족이 그 돼지들을 키우는 사람들이었다든지... 그 돼지들은 거라사 광인의 소유였다든지... 더 나아가 거라사 광인은 원래 그 돼지를 치며 우상숭배를 심하게 하던 사람이었다든지... 이렇게 되면 손해배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재산을 일방적으로 빼앗은 것은 아니게 된다. 나는 이렇게 난제를 푼다. 내 추측이다. 근거는 없다.

<결론 및 적용>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네게 행하신 큰일을 말하라.

(1) 예수님은 거라사 광인을 데려가지 않고 그의 집으로 돌려보내셨다.

- 거라사 광인은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은 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함께 전도하겠다고 했다. 예수님은 허락지 않으시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신다.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큰일을 보여주게 된다. 그의 소식은 데가볼리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그는 증인이 되었다.

(2) 거라사 광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 증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집중하도록 증언하는 사람이다. 많은 간증들 속에 인위적인 극적인 감동요소가 점점 추가됨을 본다. 그런 간증을 들으면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없어지고 간증자만 크게 남게 된다. 이것은 간증이 아니다. 거라사 광인이 자기를 자랑하며 간증한다면 얼마나 이상하고 괴기스러울까? 거라사 광인이 양복입고 돌아다니며 집회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류의 간증이 제법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