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예정(2) -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 (출6:1-8)

Author
GOSPEL323
Date
2022-05-2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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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2) -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 (6:1-8)

1. 출애굽 구원

(1)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은 이스라엘을 큰 민족으로 만드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였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림은 야곱(이스라엘)이 기거할 땅(고센)과 양식을 미리 준비하게 하심이다. 하나님은 요셉이 총리되게 하신 후 가나안에 7년 기근을 들게 하심으로 야곱이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신다.

- 헤브론에 머물던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며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처음 정착한 가나안 땅이며 이삭이 그랄왕으로부터 약조를 맺은 땅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고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며 너를 인도하여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 창46:3-4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2)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

- 요셉이 총리가 되고 야곱(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가 고센 땅에 정착한 것은 애굽 12왕조 때였다. 이스라엘은 애굽 총리의 가문으로 크게 번성했고(약300년), 애굽 18왕조가 등장하며 학대를 받는다(약130년). 애굽 18왕조는 요셉을 알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고 국고성을 쌓도록 고역을 시킨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브엘세바에서 주신 약속을 성취하실 때가 된 것이다.

- 이스라엘은 에덴의 회복과 완성의 모형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죄로 타락한 백성을 구원하여 에덴/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만드는 모형으로 세우셨다. 하나님 나라 구원은 아담에게 여자의 후손 가죽옷으로(창3장), 노아에게 방주로(창7장)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과 이삭 야곱의 후손(창15장)으로 예언되어졌지만, 그 구원이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출애굽과 시내산에서였다.

- 창세기는 출애굽 시내산 언약의 기원이며 배경이다. 역사 속에서 나라와 민족으로서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 구원은 출애굽부터 시작한다. 이는 이스라엘은 죄와 사망에 종노릇하던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회복 완성하는 모형이기 때문이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족장들)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출애굽 시내산(옛언약)에서 비로소 모든 인류가 볼 수 있도록 역사 속에서 당신의 존재와 당신의 명백한 뜻을 분명히 나타내 주셨다. 시내산 율법과 성막(옛언약)이 중요하다.

2.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

(1) 죄와 사망의 종노릇에서 구원

① 애굽 바로의 종(노예)에서 해방

- 하나님 나라 백성됨은 출애굽 구원에서 시작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기원은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질적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의 시작은 애굽 노예에서 구원이다. 모든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항상 출애굽 구원을 상기시킨다.

- 이스라엘은 바로의 노예였다. 자기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외교적 협상으로, 군대 전쟁으로... 그 어떤 것으로도 애굽의 종 됨을 벗어날 수 없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다.

② 사람의 전적부패

- 구원은 자기 힘으로 얻을 수 없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역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다. 사람의 역할이 어디에도 없다. 죽은 자는 스스로 살아날 수 없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에게서 떠나셨다.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다. 첫 아담에게 주신 에덴의 생명은 상실되었다.

-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큰 변화가 생겼다. 벗을 줄 알고 무화과로 몸을 가린다. 죄로 인한 수치가 생겼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피하게 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하나님께서 주신 의의 눈은 완전히 멀고 죄의 눈이 밝아진다. 눈의 기능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하나님 대리통치자로서의 본래 사람의 눈이 아닌, 자기가 하나님 돼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눈이 밝아진 것이다.

③ 자기를 구원하기에 전적 무능력

- 타락은 사람의 본성적 변화이며 돌이킬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을 거부하며 자기가 하나님 되어 자기 삶의 모든 행동을 결정한다. 피조물의 반역으로 하나님과 사람의 아름답고 마땅하고 올바른 관계는 완전히 깨어졌다.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하지 않으신다. 영이신 하나님과의 동행/연합이 완전히 깨어진다. 의의 눈은 완전히 멀고 죄의 눈이 밝아진 것이다(창3:5)

- 하나님의 신이 떠나심으로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 화염검을 든 게루빔 천사가 생명나무 길을 완전히 차단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심으로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오는 생명 길을 다시 찾을 수가 없다. 사람은 정녕 죽은 것이다(창2:17)

- 죽은 자는 스스로 살아날 수 없다.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했고 스스로를 구원하기에는 전적으로 무능력하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다시 하나님 백성 될 수가 없다. 이스라엘이 애굽 노예에서 출애굽 구원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모세의 능력도 백성의 협조도 아니다. 죄로 죽은 자를 의로 살려내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이며 선물이다.

(2) 구원 중보자 - 예수 그리스도

① 출애굽 중보자, 모세

- 모세의 율법(구약)과 그리스도 복음(신약)을 대립 관계로 오해하는 신학이 있다. 신구약 성경을 한분 하나님이 주신 언약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율법주의자가 아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완전히 예표한 선지자이다. 그 어떤 누구도 구약의 모세만큼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선명히 증거한 선지자는 없다. 모세는 그 자신이 출애굽 구원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고, 율법과 성막계시를 전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증거했다.

- 모세는 이스라엘 출애굽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모세 이름에는 구원의 뜻이 들어있다. 애굽 바로는 출애굽 지도자를 나일강에 던져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나일강에서 건져내어 애굽 왕자가 되게 하셨다. 죽음의 나일강에서 출애굽 구원이 시작 되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 아들 되어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운다. 왕궁에서 40년은 출애굽 중보자로서 갖출 기본기에 불과하다. 모세의 진정한 교육은 미디안 광야에서였다.

- 왕자 모세는 40세가 되어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 출애굽을 시도한다. 그는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죽였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따르기를 거부당한다. 모세가 계획한 이스라엘 출애굽 구원은 시도도 못해보고 실패한다. 모세는 바로에게 쫓겨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80세가 될 때까지 장인 이두로의 양을 치며 보낸다. 야곱은 처가살이해도 20년이 지나자 열두 아들과 수많은 자기 양떼가 생겼다. 모세는 40년간 처가살이해도 자기 양이 없다. 이두로의 양을 친다.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의 자신감은 완전히 무너졌다. 왕자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 바뀌는데 40년이 걸렸다.

②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직접 구원하심

-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당신의 이름을 나타내 주셨다. 여호와는 “존재하다”는 히브리어 하야동사에서 유래했으나 주로 언약의 문맥 속에서 사용된다. 전능의 하나님(엘샤다이)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셨다. 이제 그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출애굽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은 당신을 여호와로 나타내셨다. 여호와는 바로 그런 의미이다.

- 이스라엘은 애굽 바로의 억압과 노역 속에서 울부짖는다. 그들은 스스로 출애굽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그를 도구로만 사용하신다. 출애굽 중보자로서 모세를 사용하시되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그림자 예표인 모세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이다.

- 모세는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놓을 것을 말한다. 바로는 단칼에 거절하고 오히려 백성에게 더 큰 노역을 시킨다. 출애굽을 기대한 백성은 바로의 태도에 금방 마음이 바뀐다. 잘 있던 자기들을 모세가 괜히 부추겨 더 힘들게 만들었다고 불평한다. 바로의 완강함과 백성의 태도를 보고 모세도 크게 낙심한다. 모세는 첫판에 완전히 낙심했다.

- 출5:21-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 출6:29-3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왕 바로에게 다 고하라.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고하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를 들으리이까.”

(3) 유월절과 홍해 사건

③ 유월절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

- 하나님은 모세에게 처음부터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말씀하셨다. 이것으로만 애굽이 항복하고 이스라엘은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다른 재앙들은 애굽이 의지하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작은 일들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심으로 바로는 끝까지 거부하고 열가지 재앙을 모두 당한다. 하나님만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참된 신이시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직접 구원하심을 보이시기 위함이다.

- 한 번의 기적은 우연으로 여긴다. 두 번의 기적은 행운으로 여긴다. 그러나 열 번의 연속된 기적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바로가 마음이 강팍해서 열 번이나 하나님 명령을 거부함은 하나님께서 열가지 재앙을 모두 내리시려 함이다. 온 애굽사람과 이스라엘 백성 누구도 하나님께서 직접 출애굽을 진행하셨음을 부인하지 못하게 함이다. 모세나 백성이 한 일은 하나도 없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이다.

- 출4:2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 출6:7 “(내가 강한 손과 편팔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찌라.”

② 홍해 속에 들어가 자기 죽음을 선언함

-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고센을 출발했지만 홍해를 건너기 전까지는 애굽을 떠난 것이 아니다. 아직 애굽이다. 구원은 유월절 양의 피를 바르고 홍해를 건너야 한다. 유월절 밤을 지나고 무교절 첫날 아침 애굽 바로는 항복한다. 이스라엘은 드디어 애굽 노예에서 벗어나 애굽을 출발해서 가나안으로 향한다. 해안길(비아마리스)로 가면 가나안에 몇 주만에 갈 수 있지만 하나님은 홍해 앞으로 인도하신다(출13:17)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시려 하셨다(출3:12) 율법과 성막계시를 주시려 함이다.

-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앞에서 완전한 죽음을 경험한다. 하나님께서 밤새도록 동풍이 불게 하셔서 바다를 가르시고, 백성은 한 밤 중에 바다 속으로 들어가 홍해를 마른땅으로 건넌다. 새벽애 애굽 군대가 모두 홍해로 들어오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바퀴를 엉키게 하시고 바다로 덮으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고 애굽 군대는 모두 홍해에 수장되었다.

- 유월절과 홍해는 하나의 사건이다. 유월절은 십자가 사건은 홍해의 자기죽음을 통해 실제로 이루어진다. 홍해의 자기죽음이 없다면 출애굽이 아니다. 유월절을 믿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세례를 유월절 예수 그리스도 믿는 성도가 홍해를 건너감이라 말한다.

- 고전10:1-2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결론과 적용>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임을 오해하지 말라.

(1) 구원받은 성도는 반드시 거룩한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이다. 여기에 사람의 한 일은 하나도 없다. 전적부패한 죄인은 자신을 구원하기에 전적 무능력하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구원에 있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무하다. 그러나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 예정과 선택은 우리를 방종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 구원은 전적으로 선물로 받지만 구원 이후의 삶은 우리 힘으로 거룩하게 살라 함이 결코 아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힘입어야 죄인은 의를 행하고 거룩해 질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없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심이 이 말이다. 성령을 의지함과 자기 힘으로 거룩해짐은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보여지나 근본적으로 다르다.

(2)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는 거룩한 행실을 하게 된다.

- 전적부패한 죄인은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 받고 성령 받으면 생명을 회복하게 된다(창2:7) 생명 얻은 사람의 힘은 자기 힘이 아닌 그의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는다. 구원받은 성도는 누구보다 선행을 열심히 하되 자기 힘이 아닌 성령의 도우심으로 한다. 성령 받은 성도는 거룩한 행위를 하게 되어 있다. 성령의 사역은 성도가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하심이다. 이것을 분명하게 강조해준 것이 튤립교리 돌트신조이다.